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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렘3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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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6년 1월 22일 주일3부 설교 |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가라사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 우리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유물론적 무신론자들은 이 우주는 물질뿐이며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불가지론자들은 하나님이 계신지 아니 계신지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유신론자 중에도 하나님이 계셔도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살든 죽든 무관심하다.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신가요?
[본론]
1.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첫째로, 성경은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야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국사에 너무 분망하여 크게 마음이 스트레스에 걸렸습니다. 하루 저녁 자기 친구인 천문학자를 불러서 백악관에서 식사를 하고 난 다음에 백악관 정원에 나와서 하늘을 처다 보고 있는데 그 친구 천문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통령 각하, 우리 지구가 소속해 있는 곳은 바로 눈에 보이는 저 은하성좌입니다. 은하성자 중심부에서 태양계까지는 거리가 약 2만 3천 광년이 됩니다. 1광년은 햇빛이 1년 동안에 달려갈 거리인데 2만 3천 광년에 저 은하성자 변두리에 우리 태양이 있고 지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속한 저 은하수를 보십시오. 저 은하성자에 별들이 얼마나 많으냐면 약 10억 개 가까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 이곳에서 한 2백만 광년 거리에 가면 안드로메다성자가 있습니다. 그 안드로메다성좌는 우리 은하성자보다 더 커서 그 별들이 한 천억 개 가까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천문학이 알려진 바에 의하면 온 우주에 이와 같은 은하성자가 1천억 개 이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루즈벨트 대통령이 하늘을 처다 보고 입을 딱 벌리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하면서 “아이쿠! 너무 큰 우주가 되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에 비교하면 내가 돌보는 국사는 먼지와 티끌도 못하군. 안심하고 가서 자야 되겠어.”하고 잠자리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은 참으로 크시고 광대하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이 많은 별들의 이름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고 그 별들이 가는 길을 하나님은 다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별들 하나님이 지으시고 그 이름을 부르시고 가는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도 아시고 여러분의 머리털 숫자까지도 헤아리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광대하시고 크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주를 지으시고 완성하신 하나님이시며 지구를 만드시고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구를 지으시고 빛을 비취게 하시고 궁창이 생겨나게 하시고 바닷물이 모이고 육지가 생겨나고 각종 열매 맺는 나무와 풀이 나게 하시고 해와 달과 별들이 비취게 하시고 공중에는 새들이 물에는 물고기들이 종류대로 있게 하시고 지구에는 온갖 동물들과 곤충들이 생겨나게 하시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사 이 지구를 돌보고 다스리며 지배하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위대하시고 크심은 말로 다할 수 없지요. 인생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인류공동체의 대표로써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으로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옛사람을 청산하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되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새로운 신분을 얻고 새로운 정체성을 얻고 새로운 자아 이미지를 가지고 새로운 지위를 얻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2: 2에는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말씀하셨고, 요한계시록 7:10에는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다 이루어 놓으시고 만백성에게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값없이 은혜로 선물로 구원을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이 만물을 정말 정교하게 설계하고 만드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집 한 채도 설계 없이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냥 망치가지고 못가지고 재목만 가지고 집 못 지어요. 설계도를 그려놓고 그 설계도에 따라서 집을 짓습니다. 집마다 지은이가 있는데 우주도 하나님이 설계하지 않고는 지어질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로마서 1:20을 통해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찌니라”고 말하므로 만물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기기묘묘한 만물은 하나님이 설계하셔야만 존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과학과 수학과 철학의 대가인 아이작 뉴턴은 태양계의 모형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커다란 금색 공을 태양으로 만들고 그 주변에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이 다 두루 열을 지어서 있게 해서 돌리면 진짜 태양계를 중심으로 해서 모든 위성들이 돌아가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장관이었습니다. 상당한 돈을 드리고 설계를 하고 기술자들이 노력을 해서 모형 태양계를 만들었습니다. 하루는 아이작 뉴턴의 친한 친구가 방문을 했는데 그 친구는 열렬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가 아이작 뉴턴을 보고 “야! 이것 굉장히 근사하게 만들었네. 이 태양을 중심으로 해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이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는 것 보니 굉장하구나. 이것 누가 만들었어?” 아이작 뉴턴이 “아무도 안 만들었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안 만들고 어떻게 있어?” “아니야! 아침에 오니까 이 굵은 공들이 모여서 자기끼리 의논을 하더니만 와장창 소리가 나더니 만들어졌어.” “이사람 사람을 바보로 생각하느냐? 놀리느냐?” 그때 아이작 뉴턴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사람아, 이것은 하나의 지구 모형일세. 그런데 이 우주의 모형을 만드는데도 내가 굉장한 설계를 하고 돈을 드려서 만들었어. 설계하고 만드는 자가 없으면 이것 만들어지지 않았어. 그런데 모형도 그렇거든 하물며 진짜인 우주가 자네 생각으로 우연히 뱅~하고 부딪혀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느냐? 이 사람아 정신을 똑똑히 차려!” 그의 친구가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하기야 맞았어. 이런 것도 설계하고 만들지 않고는 될 수가 없는데 우주의 지적 설계자가 배후에 없으면 오늘 우주가 되었겠는가!” 그는 무신론을 버리고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야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놀고 계시지 않습니다. 만물이 하나님이 지적으로 계획하고 설계하셔서 만유를 지으시고 인류를 하나님이 계획하셔서 예수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행하시고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2. 구속의 그 이름 야훼
그리고 둘째로, 우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은 그 성호가 야훼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나가서 악수하고 내 이름은 누굽니다. 그렇게 말하잖아요. 저도 요사이 손님을 많이 만나는데 만날 때마다 아예 습관적으로 악수하면서 “나는 조용기입니다.” 저쪽에도 당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이름을 말해서 자기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실 때 당신의 성호를 야훼라고 했습니다. 야훼라는 말은 성경에 6,823회에 언급되었는데 그 의미는 우리를 건져 주시는 하나님,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훼란 이름은 우리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일을 해주시겠다는 언약을 표시하는 귀중한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야훼라는 이름을 계시해 주신 것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야훼라는 이름이 여러모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야훼 이레라고 성경 창세기 22:13~14에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재물로 드리려고 할 때 하나님이 이삭을 죽이지 말라고 하시고 난 다음 대신으로 산양을 뿔이 넝쿨에 얽히게 해서 잡히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산양을 취해서 재물을 드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성호를 계시 받았습니다. ‘야훼 이레, 하나님이 예비하신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시므로 처음부터 끝까지를 다 알고 계시므로 우리의 삶을 예정하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2: 9에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하십니다. 기가 막히게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모든 과정에서 필요한 것을 예비해 주시는 야훼 이레가 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누구시지요? 나는 너희에게 야훼 이레가 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 야훼 이레의 성호를 부르면서 어떠한 역경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결방책을 열어 놓은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나의 이름은 야훼 라파라고 말했습니다. 출애굽기 15:26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치료하는 야훼, 히브리말로서는 야훼 라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을 우리에게 소개할 때 “나는 야훼 라파 너의 의사라”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약이나 의술로 고치지 못하는 절망적인 병에 걸렸을 때도 하나님이 나의 의사가 되신다는 것을 알 때 희망이 있고 용기가 생기고 하나님께 나가서 부르짖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한원길 안수집사님은 손주가 지석이라는 아름다운 어린이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며느리가 지석이를 업고 울면서 왔습니다. “아버님 큰일 났어요. 지석이가 변을 잘못보고 배가 아파 고생을 해서 병원에 가보니까 의사가 항문근육종이라고 해서 항문의 암이라고 말합니다. 의사가 말하기를 살 가망성은 30%밖에 없으며 항문근육종은 수술을 못한다고 그래서 절망이라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 말을 듣자 우리 한원길 안수집사님은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맞손주가 이와 같은 흉악한 병에 들렸으니 어떻게 합니까? 병원에서 희망이 없다니까 그 부인과 함께 곧장 오산리 금식기도원에 가서 나흘 동안 금식기도를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지석이의 항문근육종을 고쳐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내려와서 보니 이제는 항암치료를 받는데 어린아이가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으니까 머리가 한주먹씩 뽑히고 고통에서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의사선생은 항암치료는 그저 암의 진도를 늦출 뿐이지 고치지는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또 거듭거듭 오산리 올라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내 손주 지석이를 고쳐 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수요일 날 예배에 그 손주를 데리고 와서 예배드리고 저희 사무실에 와서 제게 안수를 받았습니다. 안수를 받고 난 다음 그 다음 병원에 가서 조사를 하니까 의사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암세포의 50%가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용기를 얻고 힘을 얻어서 가족이 합쳐서 계속해서 야훼 하나님께 부르짖었는데 지난 11월에 병원에 가서 조사를 하니까 암이 100% 사라지고 건강해졌습니다. 야훼 라파인 것입니다. 우리가 병들어서 절망에 처할 때라도 찾아갈 곳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의사니까요.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영원하신 하나님이 나의 의사가 되시므로 내가 찾아가서 외치고 부르짖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우리를 보고 말합니다. “야, 나는 너희 하나님 야훼 라파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나는 야훼 닛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듬에서 아말렉의 공격을 받아 나라가 무너질 뻔 당했을 때 여호수아가 군대를 데리고 나가서 싸워 그 모세가 훌과 아론을 데리고 산위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 응답하셔서 아말렉을 물리치고 승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이름이 야훼 닛시입니다. ‘야훼 우리 승리의 깃발’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20: 5에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야! 네가 직접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겨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싸워 주시는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속이 상하고 원수에게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님은 “야! 내가 닛시 아니냐? 내가 너를 위해서 싸워줄 것이니 네가 싸우지 말고 내게 맡겨라. 내가 너에게 승리의 깃발이 되어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훼 닛시 우리를 위해서 싸워 주시는 하나님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나의 이름은 야훼 샬롬이다. 야훼 평강이라고 말합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을 만나고 난 다음 야훼 살롬이라는 말을 계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평화가 되시는 것입니다.
시편 29:11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부귀, 영화, 공명을 얻어 봐야 되겠다는 야심이 있었습니다. 어찌하든지 성공을 해야 되겠다. 내가 성공만 하면은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어 생각해 보니 틀렸습니다. 성공이 행복을 갖다 주지 않습니다. 평화가 행복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적게 먹어도 평화로우면 육손이 가득하고도 평안이 없는 집안보다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큰 평화가 행복이 평화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의 샬롬 평화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아무리 부귀, 영화, 공명을 다 가져본들 평화가 있습니까? 절대로 없습니다. 돈도 평화가 안 되고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부귀나 영화가 평화가 되지 않습니다. 행복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내 중심에 있으면 평화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에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야훼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야훼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이 얼마나 우리의 샬롬, 평화가 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의 샬롬이다. 야훼 샬롬 너의 평화가 되신다.” 그리고 시편 91편을 우리에게 증거로 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품안에서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야훼 로이다. 야훼 로이라는 것은 ‘나는 목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23: 1에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8: 9에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저희의 목자가 되사 영원토록 드십소서”
에스겔 34:15에 “나 주 야훼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찌라” 주 야훼의 말씀이라고 한 것입니다.
양에게 목자가 얼마나 필요합니까? 양은 모든 짐승들 중에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무기가 없습니다. 이빨도 사납지 않고 뿔도 사납지 않습니다. 발톱도 없고 걸음도 빠르지 않습니다. 양은 그대로 노출 되어서 공격을 받으면 아무 저항 없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양이의 공격을 받아도 양은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양은 향상 주인이 있습니다. 주인이 양을 인도하고 보호하고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주인 없는 양은 없습니다. 주인이 있기 때문에 양은 숫자가 늘고 왕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양으로 비유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다른 사람처럼 안 믿는 사람처럼 남을 물고 찢는 이빨도 없고 남을 할퀴는 손톱이 없고 빨리 뛰어갈 수단과 방법도 없는 무방비 상태의 성도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저가 사랑하는 것은 시편 23편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내가 비록 사망의 깊은 골짜기에 떨어져서 모든 사람에게 분리되고 외롭고 처절한 절망이 있을지라도 우리 목자 되시는 주님은 그 자리에 함께 계셔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이끌어 내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저가 사랑하는 것은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가 오면 원수의 등에 내 밥상을 짊어지고 오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원수가 그냥 철렁철렁 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원수 덩어리에 하나님 밥상 지워 가지고서 “네가 내 사랑하는 양에게 가서 밥상 차려라” 원수의 공격이 오면 밥상도 같이 짊어지고 와서 차려 놓아서 밥상에 음식을 먹고 힘을 얻고 기름부음을 받아 높임을 얻고 잔이 넘치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오면 “아! 내 밥상 짊어지고 오는구나. 밥 먹을 준비 해야지.” 그렇게 마음에 기쁨을 가지고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야훼 로이가 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나는 또 야훼 치드케누이다. 야훼 치드케누라서 해서 ‘나는 너의 의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우리는 벌거벗은 존재와 같습니다. 아담이 벌거벗어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앞치마를 해 입어도 수치를 가릴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의로운 행위, 도덕적인 행위를 해도 자기의 부끄러움을 가리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설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려면 하나님과 같이 의로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5:21에 보면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의로우냐 하나님처럼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정신이 아찔합니다. 어지럽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처럼 의롭게 됩니까? 그러나 예수의 보혈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처럼 의롭게 만들어 주시는 야훼 치드케누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야훼 치드케누 아버지를 섬기고 예수를 의지하고 천국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천국에 절대로 못 들어갑니다. 벌거벗은 수치를 가지고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나는 야훼 메카디쉐켐이라고 말합니다. 메카디쉐켐이라는 것은 ‘세상과 마귀에서 우리를 건져내고 변화시키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세상과 마귀에게 얽히고설켜서 그물에 얽힌 짐승처럼 발버둥치고 우리가 못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 성령이 오셔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단칼에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야훼 메카디쉐켐의 뜻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어본 적 있습니다. 레이몬드 릴리라는 난폭하고 악한 흑인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이상하게 목사만 보면 때려죽이고 싶습니다. 이상한 병에 걸렸습니다. 목사만 보면 치를 떨고 죽여야지하고 이를 갑니다. 하루는 그는 그 동리에 있는 가장 큰 교회 목사님을 죽이겠다고 결심을 하고 벽돌 한 장을 들고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강단에서 목사님이 설교하는데 그 들어오는 입구에 숨어 섰습니다. 목사님이 설교하고 나오면 벽돌로 머리를 쳐서 죽이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고 벌벌 떨면서 서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그날따라 그 설교가 두 날가진 검보다 예리하여 그 영과 혼과 및 골수를 쪼갭니다. 너무나 말씀에 충격을 받고 감동을 입어서 그만 벽돌을 놓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기 혼자 꿇어 앉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변화를 받았습니다. 메카디쉐켐 하나님께서 오셔서 마귀와 세상을 벗어 버리고 그를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는 그 이후에 늘 그 벽돌을 가슴에 안고 다녔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수년 후 세계 최대의 자선병원으로 알려진 시카고의 쿡 카운티 병원에 질병에 시달리거나 죽어가는 수천의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목사가 있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 목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선한 사마리아의 흑인 릴리 목사로 이름이 불렸습니다. 그는 자기가 죽이려고 가져갔던 그 벽돌을 늘 들고 다니면서 사무실에 얹어 놓고 그 벽돌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살인자였는데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성령의 감동으로 오늘 나도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중에 죽을 때도 유언으로 벽돌을 함께 묻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벽돌을 가지고 다니는 목사였습니다. 언제나 그 벽돌을 볼 때마다 “나는 살인자였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서 나의 힘이 아니고 나의 능력도 아니고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나를 죄와 사망에서 벗겨서 주의 종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훼 메카디쉐켐 하나님이십니다. 어떠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거듭나면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 능력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나는 야훼 삼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야훼 삼마라는 것은 ‘항상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함께 계세요. 여러분 공기를 피할 수 있습니까? 공기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나 안방에서나 부엌에서나 어느 곳에나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 안 듣는다고 소근 소근 말합니다. 하나님 속에서 다 듣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산에서 살 때 연탄공장을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부인이 열심히 믿는 성도였습니다. 남편을 인도해서 교회에 모시고 나왔습니다. 남편이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고 집에 와서는 꼭 담배를 피우시는데 그 부인이 하루는 말했습니다. “여보! 교회 갔다 와서 집에서 담배를 피우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아니야, 자네는 몰라. 교회에는 하나님이 계시지만 여기는 우리 지붕이 가려서 하나님이 못 보셔. 못 보실 때 담대 피워야지 보는데 안피지 않느냐?”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만 하나님이 못 보시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야훼 삼마, 어느 곳에나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성전 삼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움직이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계신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도피해서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내려가도 하나님이 그곳에 계신 것은 내가 하나님 성전이기 때문에 내가 산꼭대기에 있으나 산골짜기에 있으나 밝은 대낮에 있으나 흑암한 곳에 있으나 하나님은 같이 계셔서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야훼, 그 이름을 야훼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3. 현실적 삶에 관여하시는 하나님
셋째로, 우리의 현실적인 삶에 관여하셔서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어느 우리 한국에 현역 국회의원이 교회를 평해서 말하기를 “오늘날 교회는 꼭 하나님이 미워하는 일만 골라가면서 한다. 성경에 골방에 가서 기도하라 했는데 왜 고함을 치고 야단이냐.” 나는 그래서 그 국회의원님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고 생각을 합니다. 골방에 가서 부르짖으라는 것은 남 들으라고 기도하지 말라. 문자써가며 미사리 어구를 써서 다른 사람 감동적으로 들으라고 기도를 하지 말고 마음속에 진심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간절히 외쳐서 하나님께 우리의 뜻을 아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간구의 기도가 되어야 응답합니다.
시편 91:15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간절히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목사님께 와서 “목사님! 나 성령 받게 해주십시오.” 목사님이 “너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 받는다.” “어떻게 간절히 기도합니까? 간절히 기도하는 법을 알려 주십시오.” “그래? 그러면 나하고 오늘 나하고 바닷가에 좀 가자.” 목사님이 그 청년을 데려가서 “우리 바다로 들어가자.” 배까지 들어오는 물에 들어가자 목사님이 그 청년 머리위에 손을 얹고 꽉 눌러 버렸습니다. 머리를 눌러서 머리에 올라 타 앉았습니다. 청년이 물속에 빠져서 숨을 쉴 수가 없으니까 발버둥을 치고 거품을 부글부글 올리고 안 죽을 만큼 될 때 목사님이 놓아 주었습니다. “휴” 숨을 쉬고는 “목사님! 간절히 기도하는 것 알려 달라고 했지 나를 물에 빠져 죽이라고 했습니까?” 그랬더니 목사님이 “물에 빠져 있으니까 어떻데? 물에 빠져 있으면서 부모 생각나데? 친구 생각나데? 애인 생각나데? 공부할 것 생각나데?” “생각은 무슨 생각이요? 숨이 답답해 죽을 지경인데…” “그럼 무엇을 원했느냐?” “나는 숨쉬기를 간절히 원했어요. 숨 쉬는 것 이외에는 아무생각도 안했어요.”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제목 이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숨쉬기를 원하는 것같이 갈급한 마음으로 부르짖는 기도가 간절한 기도네. 무슨 기도하면서 시장의 물건 값도 생각하고 친구하고 놀러 갈 것도 생각하고 애인에게 꽃다발 갖다 줄 것도 생각하고 그러면 그것이 간절한 기도냐?”
어떠한 자매님이 제게 와서 신앙상담 와서 “목사님 나는 새벽기도를 가면 자꾸 졸아요.” 졸면서 어떻게 합니까? “입에서 나도 모르게 기도하기를 양말 한 켤레에 얼마요. 이것 한 켤레 사세요. 그런 소리를 내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잡생각이고 간절한 기도가 아닙니다.” 여러분 간절한 기도는 그것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 잡생각 하면 간절한 기도가 아닙니다. 집중적으로 그 기도하는 목표에 대해서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할 때 간절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절한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보십시오. 엘리야가 3년 6개월 동안 비가오지 않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갈멜산에서 기도할 때 성경에 보니 그 머리가 다리 사이로 들어갔다 했습니다. 그 말 여러분 체험 안하면 몰라요. 제가 성령받기 원해서 신학교 다닐 때 삼각산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나중에는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으니까 창자가 당겨서 창자가 오그라지는 것 같아서 점점 몸이 고부라져 가지고서 머리가 다리 사이로 들어가더라구요. 머리가 완전히 다리 사이로 들어가서 부르짖어 기도하니까 성령충만하게 받는 체험을 얻었던 것입니다. 엘리야 같은 하나님의 종도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기에 창자가 꼬여서 허리가 새우등같이 굽어져서 머리가 다리 사이에 들어가면서 기도했습니다. 종보고 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응답이 있는가 보라. 올라가서 내려와서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여섯 번 올라갔다가 내려와서도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일곱째 올라가서 내려와서 손바닥만 한 구름이 보입니다. 이제 큰 비의 소리가 들린다. “빨리 아압왕에게 마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라고 말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엘리야도 기도할 때 그냥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도덕적, 윤리적으로 한참 타락했을 때 한 신실한 청년이 시골에서 살기를 찾아 런던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는 여기저기 다니며 직업을 찾다가 겨우 런던 뒷골목의 어느 전당포 직원으로 취직이 되었습니다. 전당포를 정리하고 그 앞길을 청소하면서 그는 하나님 앞에 탄식을 했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타락한 런던의 참담한 현실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도시에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이곳 어디에 하나님의 공의가 있습니까?’ 한동안 삶의 목표를 잃고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시편 5: 3의 말씀이 그 심령을 찔렀습니다. “야훼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그래서 그는 아침에 하나님께 간절히 바라고 하나님의 영국을 살려주고 런던을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그 응답이 자기에게 온 것입니다. “네가 일어나서 영국을 살리고 런던을 변화시키라.” 그는 그 소명을 받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일어나서 영국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가 바로 다른 분이 아닌 구세군의 창설자 부스 대장인 것입니다. 간절히 부르짖으면 하나님의 응답은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다가자 하는 기도, 장난삼아 하는 기도, 집중되지 않은 기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기도 이런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사를 걸어놓은 그런 간절한 기도는 나를 변화시키고 이웃을 변화시키고 환경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갖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할 때에 반드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 저도 사람을 많이 만나잖아요. 만나기만 하면 제가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저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입니다.” 저쪽편도 당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서로 이름을 통해서 누군지를 알고 만날 수가 있지요. 이름이 왜 효과를 발생하느냐. 저에게 면담해 달라는 요청이 많이 옵니다. 전국에서 전 세계에서 면담하게 해 달라. 안수기도 해 달라. 끝없는 요청이 옵니다. 그것 다 받아들이다가는 저는 아무것도 못해요. 그런데 효과를 발생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면담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지 끝에 제가 피치 못할 이름이 있습니다. 장로회 회장님 및 임원들이나 우리교회 내가 사랑하고 잘 아는 권사님들이나 성도의 이름을 넣어서 이분이 나에게 목사님께 편지하랍니다. 그럼 내가 별 도리 없이 그분 이름 때문에 받아 주어요. 이름이 굉장한 효과가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한국에 여러 기독교 단체에 이름을 빌려 달라고 해서 제가 한 4~50개 단체에 이름을 빌려 주었는데 요사이는 그 이름 취소한다고 애를 먹습니다. 왜 이름이 필요하냐? 그 모든 단체에 무게를 주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이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름이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 예수 이름으로 나가야 하나님이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육신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충성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하십니다. 지극히 높여 주셔서 하늘위에 있는 이름이나 땅에 있는 이름이나 땅 아래 있는 이름들이 모두다 예수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냥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안 들어 주시지만 예수님 이름으로 나가면 “어? 내 아들 예수 이름으로 왔냐? 오너라. 좋다.” 문을 활짝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이름을 듣기만 해도 즐거워하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예수님이 나의 신랑이요, 나의 형님이요, 나의 구주가 되십니다. 하나님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면 하나님이 “오냐! 좋다. 들어오너라.” 모든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은 예수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이름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응답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13~14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하십니다.
그 다음 우리가 주님께 기도할 때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24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했으며, 야고보서 1: 6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믿음은 결단입니다. 내가 마음에 깊이 결단하고 ‘하나님이여, 나는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이제는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하나님을 믿고 나가겠습니다.’ 마음에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는다고 한 다음 우유부단하고 자꾸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습니다. 정말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말을 안 하겠다고 결단을 내리고 ‘이제부터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과 말을 하고 살겠습니다.’고 마음에 결단을 내리고 믿으면 굉장한 축복이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믿음의 결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우유부단합니다. 항상 바다 물결같이 출렁 거리는 것입니다.
태평양에서 표류하다가 20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되었던 리컨 베커 선장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선원 한사람과 함께 태평양을 건너다가 배가 파선이 되어서 그들은 뗏목을 타고 표류했습니다. 처음에는 망망대해에서 견디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낮이면 작렬하는 태양과 목마름으로 밤이면 살을 애는 추위와 몰려드는 상어 떼의 위협으로 고통스럽기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장님은 예수를 잘 믿고 성경을 열심히 읽었는데 그가 외워놓은 성경구절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이사야 43: 2을 외웠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 말씀을 그는 의지하고 이 말씀을 계속해서 외우며 하나님이 살려줄 것을 결단적으로 믿었습니다. 죽을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 망망대해에 인적이 끊어진 곳에서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자 양식도 없고 물도 없고 너무나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추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양식이 없으니 배가 고파서 죽겠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하니까 우연히 갈매기 한 마리가 태평양 한가운데서 날라서 머리 위에 앉거든. 태평양에 어디 갈매기가 있어요. 갈매기 한 마리가 와서 다른 데가 아니라 머리위에 앉아요. 그래서 잡았어요. 그를 뜯어 가지고서 갈매기 다리를 그냥 생채로 바닷물에 씻어 먹었어요. 먹고 그 다음에는 자기 옷에 있는 핀을 가지고 낚시를 만들어 가지고 갈매기 창자를 꼽아서 물에 던지니까 고기들이 이런 것이 낚였습니다. 그래서 먹는 것이 해결 되었어요. 그 다음에는 하늘이 먹장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니까 가판으로 비를 받아 가지고서 물을 마실 수가 있었습니다. 낮에는 구름이 떠서 해를 막아 주시고 밤에는 기후가 온화해져서 견딜 만 했습니다. 그래서 2주간 동안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감사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상선에 의해서 구조를 받았습니다. 그는 내내 성경말씀을 외우고 결단적인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아니하신다. 나는 구원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신문기자들이 그들이 구출 받았을 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어려운 시련을 견딜 수가 있느냐?” 그러자 선장은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라고만 대답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믿음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말하기를 내가 크고 비밀한 일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크고 비밀한 일들을 주님이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 왔을 때 뒤에는 애굽의 대군대가 습격을 하고 앞에는 홍해가 가렸지 않습니까? 그들은 갈 길이 없습니다. 인간으로써 살 길이 없습니다. 대책이 전무합니다. 그럴 때 그들이 주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길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4:14절로 16절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하나님께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애굽의 바로왕도 모르고 이스라엘 백성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역사할 때 우리 상상을 초월한 기적을 베풀어 주실 때가 있습니다. “아! 그것은 옛날에 구약시대의 이야기지요. 요사이 무슨 그런 기적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야훼는 변치 아니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존 밴 디스트의 ‘기적’이라는 책에 보면 도리스 센포드라는 소년의 간증이 실려 있습니다. 그는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좋지 않을 때 중국 공산당이 승승장구하여 중국내륙지방을 점령하고 나오던 그 길목에 선교사집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마침 미국에 보고하러 갔는데 어머니하고 그 자식들이 있는데 공산군이 습격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공산당 두목과 병사들이 총을 겨누고 “네가 예수를 안 믿는다고 하면 살려주고 예수를 믿겠다고 하면 총살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 어머니가 담대하게 서서 “나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버릴 수 없다. 하나님은 당신들의 총보다 더 강하다. 지금도 당신들의 총에서 우리를 건지실수 있다. 만일 우리가 죽는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영생천국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하실 것이다. 나는 결코 예수님을 포기할 수 없다.” 그러자 분노한 공산군 장교와 병사들이 줄을 서서 그것을 보고 총살을 하려고 자세를 취하는데 갑자기 마른하늘에 벽력이 쳤습니다. 중국의 내지에는 우박도 떨어지고 번개도 치지만 그러나 천둥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냥 마른하늘에 벼락 치는 천둥이 일어나고 번개가 그 공산군들 앞에 번쩍번쩍하고 떨어지니까 모두다 기절초풍을 하고 “걸음아, 날 살려라!”고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일보직전에서 천둥번개 때문에 살았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거짓말로 책을 지을 리가 만무하지 않습니까? 베스트셀러중의 하나인 그 책이 우리에게 오늘날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주의 백성이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크고 비밀한 일을 나타내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마라의 기적도 있잖아요.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졌더라. 수르광야를 통하다가 물이 없어 사흘 길을 걸어가다가 목이 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연못물을 발견했는데 쓴 연못물이라 마실 수 없었습니다. 부르짖어 하나님께 외치니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뭇가지를 지시하시는지라 꺾어 넣으니 중화가 되어서 물을 마셨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당했을 때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런 기적이 있어요. 제가 LA에서 집회를 할 때 그 집사님 한 분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기 집 앞에 큰 나무가 있는데 이른 새벽에 새떼들이 새까맣게 나무에 앉아서 지저귀기 때문에 새벽 4시가 되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너무 지저귀기기 때문에. 그래서 그 새떼를 향해서 총도 쏘아보고 그냥 고함을 쳐보기도 하고 해도 그대로, 그대로 새떼가 와서 하루는 할 수 없어서 가족들이 모여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새떼 때문에 우리 가족이 전부 잠을 잘 수가 없고 이 집에서 이사를 가든지 해야 되겠는데 어찌하든지 새떼를 좀 쫓아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그 다음부터 새떼가 안 날라 오더랍니다. 이상해서 하루는 기도하면서 그 나무를 보니까 나무가 영적으로 성령의 불이 활활 타고 있더랍니다. 새떼가 불이 활활 타고 있는 나무를 보고 올 턱이 있습니까? 성령의 불꽃이 나무를 태우고 있으니까 새떼들이 다 놀래서 도망쳐 버리고 그때부터 편안하게 잠을 잤다는 이야기를 저보고 했습니다.
버다 스미스의 자서전 ‘집에 가서 말하라’ Go home and tell에 보면 이 여자는 중국 내지 선교를 떠났습니다. 중국 내지의 생활이 너무나 열악해서 가보니까 집이 없어요. 빌렸다는 것이 마구간을 빌렸습니다. 마구간을 청소하고 자기 가재도구를 갖다 놓고 거기에서 자고 깨고 선교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파리가 달라 들었든지 눈으로 코로 귀로 다 들어오고 밥을 지어 놓으면 밥은 안보이고 파리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너무 미국에서 행복한 집에서 태어나서 좋은 잠자리에 자고 깨끗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호사하고 살았기 때문에 현실의 생활이 도저히 적응이 안 됩니다. 이 많은 파리 떼가 늘 눈과 코와 귀에 기어 들어오니 잠을 잘 수가 없고 밥이 새까맣게 파리가 붙었으니 파리를 먹는지 밥을 먹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해주시옵소서. 하나님 원하시는 파리 떼를 다 없애 주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파리와 함께 살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랬는데 그 기도를 마치고 나서 그 다음날부터 파리가 일절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파리가 그 마구간 밖으로 나가면 와글와글 한데 집에는 한 마리도 들어오지 않고 깨끗하게 파리 없는 삶을 살고 열심히 전도를 했다는 책을 그의 Go home and tell 이라는 자서전에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사소한 일에도 크고 비밀한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기적만 응답해 준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잔치에 갔을 때 그들이 혼인이 무르익을 때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인생이란 항상 떨어져요. 사랑이 떨어지고 의복이 떨어지고 돈이 떨어지고 힘이 떨어지고 인생은 늘 떨어지고 모자라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도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개인가정에 잔치하다가 포도주가 떨어진 것도 문제가 될 것인데 하물며 혼인잔치에 사람들은 꾸역꾸역 오는데 대접할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이 낭패 아닙니까? 그때 마리아가 예수님께 이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종들을 보고 결례통 여섯에 물을 채워라. 물을 아구까지 채우매 떠다 주라. 그러니 포두주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주 좋은 포도주를 마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이 가정에 예수님이 안 왔더라면 그들은 낭패에 처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없는 것 떨어진 것을 그대로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채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채우시고 믿음을 채우시고 소망을 채우시고 물질을 채우시고 성공으로 채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의 기적은 옛날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도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멜 테리 목사가 적은 책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이라는 책을 제가 읽어 보았었습니다. 멜 테리 목사는 인도네시아 부흥회 리더로써 굉장히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주의 종입니다. 그 멜 테리가 동티모르라는 조그만 섬에 있을 때 한 교회에서 성찬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이상하게 성찬식 할 때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체험하는 교회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동티모르는 포도가 안 되기 때문에 포도주가 없어요. 그들은 맹물에다가 독한 술을 타가지고서 설탕을 집어넣어서 그것으로 성찬용 음료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멜 테리가 그곳에 갔을 때는 그 교회는 맹물을 떠놓으면 포도주가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거짓말이지 싶어서 그가 가서 자기가 자원해서 성찬식 날 우물에 가서 물을 떠서 왔습니다. 떠서 와서 그 우물물에 흰 천으로 덮고 자기가 그 물통을 안고서 집사들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거기에 장난칠까 싶어가지고서 그것을 자기가 안고서 눈을 뜨고 한 시간 동안 집사들과 함께 기도를 했는데 이상하게 그것을 덮어 놓은 천이 물에 닿으니까 빨갛게 물이 들어 버리더랍니다. 하얀 천을 덮었는데 빨갛게 되었어요. 놀래서 그것을 찍어서 먹어 보니까 색깔만 물이 빨갛지 포도주는 아니에요. ‘이상하다. 흰 물 색깔이 빨간 포도주가 되었느냐.’ 그래서 그 물통을 자기가 들고 집사들과 함께 목사님께 가지고 갔습니다. 목사님이 그것을 찍어서 맛보니 “야! 맛있는 포도주다.” 그래서 멜 테리가 ‘거짓말 한다.’ 그래서 자기가 포도주를 찍어서 보니까 아까는 맹물이더니 이제는 완전히 포도주가 되어버렸습니다. 가져가는 동안에 물이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멜 테리 목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60회 동안이나 물이 포도주로 변화 되었습니다. 성찬예배를 60회 하는 동안에 그가 참석을 했는데 다 물이 포도주가 되었어요. 그래서 그가 그 책에 기록한 것을 제가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하나님은 변화시키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맹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것처럼 우리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의, 평강, 희락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승리로 변화시켜 주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입니까?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야훼 하나님은 여러분 일을 행하시고 그 일을 지어 성취하여 주시는 야훼 하나님인 것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시는 이름 야훼 하나님인 것입니다. 야훼 이레 하나님, 야훼 라파 하나님, 야훼 닛시 하나님, 야훼 샬롬 하나님, 야훼 로이 하나님, 메카디쉐켐 하나님, 야훼 치드케누 하나님, 야훼 삼마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이 야훼 성호를 여러분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이 이름 하나하나가 다 ‘내가 다 이 일을 너를 위해서 해주겠다.’는 이름인 것입니다.
[결론]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과 함께 삶을 사는 이들을 말합니다. 예수 믿고 혼자 외롭게 이 땅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우리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따로, 사람 따로, 예배 따로, 사회생활 따로가 아닙니다. 좋을 때 시련을 당할 때 원수의 공격을 당할 때 답답할 때 핍박을 당할 때 죽을 때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공동의 삶을 사는 것이 우리 성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를 행하시고 이를 지어 완성하시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나는 너에게 야훼가 된다. 너를 구속하신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위해서 준비하는 이레다. 나는 너를 치료하는 라파다. 나는 너를 위해서 싸워주는 닛시다. 나는 너에게 평안을 주는 샬롬이다. 나는 너의 목자가 되는 로이다. 나는 너에게 의로운 옷을 입혀 주는 치드케누다. 나는 너를 세상과 마귀에서 이기게 하는 거룩하게 하는 메카디쉐켐이다. 나는 너와 항상 함께 있는 야훼 삼마 하나님이 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를 예수님 가운데 모시고 하나님과 함께 기뻐 즐거워하며 믿음으로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아무 일도 안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 우주를 지으시고 세상을 지으셨으며 우리 구원을 이루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됨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와 관계없는 하나님이 아니라 야훼 하나님, 우리와 구속을 연관해서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야훼 하나님, 야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같이 하셔서 우리를 붙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기막힌 비밀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이 야훼 하나님,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과 항상 깊은 은혜와 관계를 맺고 사는 우리 성도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 우리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유물론적 무신론자들은 이 우주는 물질뿐이며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불가지론자들은 하나님이 계신지 아니 계신지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유신론자 중에도 하나님이 계셔도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살든 죽든 무관심하다.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신가요?
[본론]
1.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첫째로, 성경은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야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국사에 너무 분망하여 크게 마음이 스트레스에 걸렸습니다. 하루 저녁 자기 친구인 천문학자를 불러서 백악관에서 식사를 하고 난 다음에 백악관 정원에 나와서 하늘을 처다 보고 있는데 그 친구 천문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통령 각하, 우리 지구가 소속해 있는 곳은 바로 눈에 보이는 저 은하성좌입니다. 은하성자 중심부에서 태양계까지는 거리가 약 2만 3천 광년이 됩니다. 1광년은 햇빛이 1년 동안에 달려갈 거리인데 2만 3천 광년에 저 은하성자 변두리에 우리 태양이 있고 지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속한 저 은하수를 보십시오. 저 은하성자에 별들이 얼마나 많으냐면 약 10억 개 가까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 이곳에서 한 2백만 광년 거리에 가면 안드로메다성자가 있습니다. 그 안드로메다성좌는 우리 은하성자보다 더 커서 그 별들이 한 천억 개 가까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천문학이 알려진 바에 의하면 온 우주에 이와 같은 은하성자가 1천억 개 이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루즈벨트 대통령이 하늘을 처다 보고 입을 딱 벌리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하면서 “아이쿠! 너무 큰 우주가 되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에 비교하면 내가 돌보는 국사는 먼지와 티끌도 못하군. 안심하고 가서 자야 되겠어.”하고 잠자리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은 참으로 크시고 광대하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이 많은 별들의 이름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고 그 별들이 가는 길을 하나님은 다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별들 하나님이 지으시고 그 이름을 부르시고 가는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도 아시고 여러분의 머리털 숫자까지도 헤아리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광대하시고 크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주를 지으시고 완성하신 하나님이시며 지구를 만드시고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구를 지으시고 빛을 비취게 하시고 궁창이 생겨나게 하시고 바닷물이 모이고 육지가 생겨나고 각종 열매 맺는 나무와 풀이 나게 하시고 해와 달과 별들이 비취게 하시고 공중에는 새들이 물에는 물고기들이 종류대로 있게 하시고 지구에는 온갖 동물들과 곤충들이 생겨나게 하시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사 이 지구를 돌보고 다스리며 지배하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위대하시고 크심은 말로 다할 수 없지요. 인생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인류공동체의 대표로써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으로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옛사람을 청산하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되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새로운 신분을 얻고 새로운 정체성을 얻고 새로운 자아 이미지를 가지고 새로운 지위를 얻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2: 2에는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말씀하셨고, 요한계시록 7:10에는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다 이루어 놓으시고 만백성에게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값없이 은혜로 선물로 구원을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이 만물을 정말 정교하게 설계하고 만드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집 한 채도 설계 없이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냥 망치가지고 못가지고 재목만 가지고 집 못 지어요. 설계도를 그려놓고 그 설계도에 따라서 집을 짓습니다. 집마다 지은이가 있는데 우주도 하나님이 설계하지 않고는 지어질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로마서 1:20을 통해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찌니라”고 말하므로 만물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기기묘묘한 만물은 하나님이 설계하셔야만 존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과학과 수학과 철학의 대가인 아이작 뉴턴은 태양계의 모형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커다란 금색 공을 태양으로 만들고 그 주변에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이 다 두루 열을 지어서 있게 해서 돌리면 진짜 태양계를 중심으로 해서 모든 위성들이 돌아가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장관이었습니다. 상당한 돈을 드리고 설계를 하고 기술자들이 노력을 해서 모형 태양계를 만들었습니다. 하루는 아이작 뉴턴의 친한 친구가 방문을 했는데 그 친구는 열렬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가 아이작 뉴턴을 보고 “야! 이것 굉장히 근사하게 만들었네. 이 태양을 중심으로 해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이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는 것 보니 굉장하구나. 이것 누가 만들었어?” 아이작 뉴턴이 “아무도 안 만들었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안 만들고 어떻게 있어?” “아니야! 아침에 오니까 이 굵은 공들이 모여서 자기끼리 의논을 하더니만 와장창 소리가 나더니 만들어졌어.” “이사람 사람을 바보로 생각하느냐? 놀리느냐?” 그때 아이작 뉴턴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사람아, 이것은 하나의 지구 모형일세. 그런데 이 우주의 모형을 만드는데도 내가 굉장한 설계를 하고 돈을 드려서 만들었어. 설계하고 만드는 자가 없으면 이것 만들어지지 않았어. 그런데 모형도 그렇거든 하물며 진짜인 우주가 자네 생각으로 우연히 뱅~하고 부딪혀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느냐? 이 사람아 정신을 똑똑히 차려!” 그의 친구가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하기야 맞았어. 이런 것도 설계하고 만들지 않고는 될 수가 없는데 우주의 지적 설계자가 배후에 없으면 오늘 우주가 되었겠는가!” 그는 무신론을 버리고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야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놀고 계시지 않습니다. 만물이 하나님이 지적으로 계획하고 설계하셔서 만유를 지으시고 인류를 하나님이 계획하셔서 예수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행하시고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2. 구속의 그 이름 야훼
그리고 둘째로, 우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은 그 성호가 야훼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나가서 악수하고 내 이름은 누굽니다. 그렇게 말하잖아요. 저도 요사이 손님을 많이 만나는데 만날 때마다 아예 습관적으로 악수하면서 “나는 조용기입니다.” 저쪽에도 당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이름을 말해서 자기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실 때 당신의 성호를 야훼라고 했습니다. 야훼라는 말은 성경에 6,823회에 언급되었는데 그 의미는 우리를 건져 주시는 하나님,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훼란 이름은 우리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일을 해주시겠다는 언약을 표시하는 귀중한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야훼라는 이름을 계시해 주신 것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야훼라는 이름이 여러모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야훼 이레라고 성경 창세기 22:13~14에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재물로 드리려고 할 때 하나님이 이삭을 죽이지 말라고 하시고 난 다음 대신으로 산양을 뿔이 넝쿨에 얽히게 해서 잡히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산양을 취해서 재물을 드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성호를 계시 받았습니다. ‘야훼 이레, 하나님이 예비하신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시므로 처음부터 끝까지를 다 알고 계시므로 우리의 삶을 예정하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2: 9에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하십니다. 기가 막히게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모든 과정에서 필요한 것을 예비해 주시는 야훼 이레가 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누구시지요? 나는 너희에게 야훼 이레가 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 야훼 이레의 성호를 부르면서 어떠한 역경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결방책을 열어 놓은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나의 이름은 야훼 라파라고 말했습니다. 출애굽기 15:26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치료하는 야훼, 히브리말로서는 야훼 라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을 우리에게 소개할 때 “나는 야훼 라파 너의 의사라”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약이나 의술로 고치지 못하는 절망적인 병에 걸렸을 때도 하나님이 나의 의사가 되신다는 것을 알 때 희망이 있고 용기가 생기고 하나님께 나가서 부르짖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한원길 안수집사님은 손주가 지석이라는 아름다운 어린이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며느리가 지석이를 업고 울면서 왔습니다. “아버님 큰일 났어요. 지석이가 변을 잘못보고 배가 아파 고생을 해서 병원에 가보니까 의사가 항문근육종이라고 해서 항문의 암이라고 말합니다. 의사가 말하기를 살 가망성은 30%밖에 없으며 항문근육종은 수술을 못한다고 그래서 절망이라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 말을 듣자 우리 한원길 안수집사님은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맞손주가 이와 같은 흉악한 병에 들렸으니 어떻게 합니까? 병원에서 희망이 없다니까 그 부인과 함께 곧장 오산리 금식기도원에 가서 나흘 동안 금식기도를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지석이의 항문근육종을 고쳐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내려와서 보니 이제는 항암치료를 받는데 어린아이가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으니까 머리가 한주먹씩 뽑히고 고통에서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의사선생은 항암치료는 그저 암의 진도를 늦출 뿐이지 고치지는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또 거듭거듭 오산리 올라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내 손주 지석이를 고쳐 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수요일 날 예배에 그 손주를 데리고 와서 예배드리고 저희 사무실에 와서 제게 안수를 받았습니다. 안수를 받고 난 다음 그 다음 병원에 가서 조사를 하니까 의사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암세포의 50%가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용기를 얻고 힘을 얻어서 가족이 합쳐서 계속해서 야훼 하나님께 부르짖었는데 지난 11월에 병원에 가서 조사를 하니까 암이 100% 사라지고 건강해졌습니다. 야훼 라파인 것입니다. 우리가 병들어서 절망에 처할 때라도 찾아갈 곳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의사니까요.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영원하신 하나님이 나의 의사가 되시므로 내가 찾아가서 외치고 부르짖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우리를 보고 말합니다. “야, 나는 너희 하나님 야훼 라파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나는 야훼 닛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듬에서 아말렉의 공격을 받아 나라가 무너질 뻔 당했을 때 여호수아가 군대를 데리고 나가서 싸워 그 모세가 훌과 아론을 데리고 산위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 응답하셔서 아말렉을 물리치고 승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이름이 야훼 닛시입니다. ‘야훼 우리 승리의 깃발’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20: 5에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야! 네가 직접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겨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싸워 주시는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속이 상하고 원수에게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님은 “야! 내가 닛시 아니냐? 내가 너를 위해서 싸워줄 것이니 네가 싸우지 말고 내게 맡겨라. 내가 너에게 승리의 깃발이 되어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훼 닛시 우리를 위해서 싸워 주시는 하나님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나의 이름은 야훼 샬롬이다. 야훼 평강이라고 말합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을 만나고 난 다음 야훼 살롬이라는 말을 계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평화가 되시는 것입니다.
시편 29:11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부귀, 영화, 공명을 얻어 봐야 되겠다는 야심이 있었습니다. 어찌하든지 성공을 해야 되겠다. 내가 성공만 하면은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어 생각해 보니 틀렸습니다. 성공이 행복을 갖다 주지 않습니다. 평화가 행복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적게 먹어도 평화로우면 육손이 가득하고도 평안이 없는 집안보다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큰 평화가 행복이 평화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의 샬롬 평화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아무리 부귀, 영화, 공명을 다 가져본들 평화가 있습니까? 절대로 없습니다. 돈도 평화가 안 되고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부귀나 영화가 평화가 되지 않습니다. 행복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내 중심에 있으면 평화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에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야훼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야훼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이 얼마나 우리의 샬롬, 평화가 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의 샬롬이다. 야훼 샬롬 너의 평화가 되신다.” 그리고 시편 91편을 우리에게 증거로 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품안에서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야훼 로이다. 야훼 로이라는 것은 ‘나는 목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23: 1에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8: 9에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저희의 목자가 되사 영원토록 드십소서”
에스겔 34:15에 “나 주 야훼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찌라” 주 야훼의 말씀이라고 한 것입니다.
양에게 목자가 얼마나 필요합니까? 양은 모든 짐승들 중에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무기가 없습니다. 이빨도 사납지 않고 뿔도 사납지 않습니다. 발톱도 없고 걸음도 빠르지 않습니다. 양은 그대로 노출 되어서 공격을 받으면 아무 저항 없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양이의 공격을 받아도 양은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양은 향상 주인이 있습니다. 주인이 양을 인도하고 보호하고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주인 없는 양은 없습니다. 주인이 있기 때문에 양은 숫자가 늘고 왕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양으로 비유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다른 사람처럼 안 믿는 사람처럼 남을 물고 찢는 이빨도 없고 남을 할퀴는 손톱이 없고 빨리 뛰어갈 수단과 방법도 없는 무방비 상태의 성도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저가 사랑하는 것은 시편 23편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내가 비록 사망의 깊은 골짜기에 떨어져서 모든 사람에게 분리되고 외롭고 처절한 절망이 있을지라도 우리 목자 되시는 주님은 그 자리에 함께 계셔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이끌어 내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저가 사랑하는 것은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가 오면 원수의 등에 내 밥상을 짊어지고 오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원수가 그냥 철렁철렁 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원수 덩어리에 하나님 밥상 지워 가지고서 “네가 내 사랑하는 양에게 가서 밥상 차려라” 원수의 공격이 오면 밥상도 같이 짊어지고 와서 차려 놓아서 밥상에 음식을 먹고 힘을 얻고 기름부음을 받아 높임을 얻고 잔이 넘치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오면 “아! 내 밥상 짊어지고 오는구나. 밥 먹을 준비 해야지.” 그렇게 마음에 기쁨을 가지고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야훼 로이가 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나는 또 야훼 치드케누이다. 야훼 치드케누라서 해서 ‘나는 너의 의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우리는 벌거벗은 존재와 같습니다. 아담이 벌거벗어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앞치마를 해 입어도 수치를 가릴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의로운 행위, 도덕적인 행위를 해도 자기의 부끄러움을 가리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설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려면 하나님과 같이 의로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5:21에 보면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의로우냐 하나님처럼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정신이 아찔합니다. 어지럽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처럼 의롭게 됩니까? 그러나 예수의 보혈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처럼 의롭게 만들어 주시는 야훼 치드케누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야훼 치드케누 아버지를 섬기고 예수를 의지하고 천국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천국에 절대로 못 들어갑니다. 벌거벗은 수치를 가지고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나는 야훼 메카디쉐켐이라고 말합니다. 메카디쉐켐이라는 것은 ‘세상과 마귀에서 우리를 건져내고 변화시키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세상과 마귀에게 얽히고설켜서 그물에 얽힌 짐승처럼 발버둥치고 우리가 못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 성령이 오셔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단칼에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야훼 메카디쉐켐의 뜻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어본 적 있습니다. 레이몬드 릴리라는 난폭하고 악한 흑인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이상하게 목사만 보면 때려죽이고 싶습니다. 이상한 병에 걸렸습니다. 목사만 보면 치를 떨고 죽여야지하고 이를 갑니다. 하루는 그는 그 동리에 있는 가장 큰 교회 목사님을 죽이겠다고 결심을 하고 벽돌 한 장을 들고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강단에서 목사님이 설교하는데 그 들어오는 입구에 숨어 섰습니다. 목사님이 설교하고 나오면 벽돌로 머리를 쳐서 죽이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고 벌벌 떨면서 서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그날따라 그 설교가 두 날가진 검보다 예리하여 그 영과 혼과 및 골수를 쪼갭니다. 너무나 말씀에 충격을 받고 감동을 입어서 그만 벽돌을 놓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기 혼자 꿇어 앉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변화를 받았습니다. 메카디쉐켐 하나님께서 오셔서 마귀와 세상을 벗어 버리고 그를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는 그 이후에 늘 그 벽돌을 가슴에 안고 다녔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수년 후 세계 최대의 자선병원으로 알려진 시카고의 쿡 카운티 병원에 질병에 시달리거나 죽어가는 수천의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목사가 있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 목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선한 사마리아의 흑인 릴리 목사로 이름이 불렸습니다. 그는 자기가 죽이려고 가져갔던 그 벽돌을 늘 들고 다니면서 사무실에 얹어 놓고 그 벽돌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살인자였는데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성령의 감동으로 오늘 나도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중에 죽을 때도 유언으로 벽돌을 함께 묻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벽돌을 가지고 다니는 목사였습니다. 언제나 그 벽돌을 볼 때마다 “나는 살인자였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서 나의 힘이 아니고 나의 능력도 아니고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나를 죄와 사망에서 벗겨서 주의 종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훼 메카디쉐켐 하나님이십니다. 어떠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거듭나면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 능력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나는 야훼 삼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야훼 삼마라는 것은 ‘항상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함께 계세요. 여러분 공기를 피할 수 있습니까? 공기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나 안방에서나 부엌에서나 어느 곳에나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 안 듣는다고 소근 소근 말합니다. 하나님 속에서 다 듣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산에서 살 때 연탄공장을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부인이 열심히 믿는 성도였습니다. 남편을 인도해서 교회에 모시고 나왔습니다. 남편이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고 집에 와서는 꼭 담배를 피우시는데 그 부인이 하루는 말했습니다. “여보! 교회 갔다 와서 집에서 담배를 피우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아니야, 자네는 몰라. 교회에는 하나님이 계시지만 여기는 우리 지붕이 가려서 하나님이 못 보셔. 못 보실 때 담대 피워야지 보는데 안피지 않느냐?”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만 하나님이 못 보시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야훼 삼마, 어느 곳에나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성전 삼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움직이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계신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도피해서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내려가도 하나님이 그곳에 계신 것은 내가 하나님 성전이기 때문에 내가 산꼭대기에 있으나 산골짜기에 있으나 밝은 대낮에 있으나 흑암한 곳에 있으나 하나님은 같이 계셔서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야훼, 그 이름을 야훼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3. 현실적 삶에 관여하시는 하나님
셋째로, 우리의 현실적인 삶에 관여하셔서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어느 우리 한국에 현역 국회의원이 교회를 평해서 말하기를 “오늘날 교회는 꼭 하나님이 미워하는 일만 골라가면서 한다. 성경에 골방에 가서 기도하라 했는데 왜 고함을 치고 야단이냐.” 나는 그래서 그 국회의원님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고 생각을 합니다. 골방에 가서 부르짖으라는 것은 남 들으라고 기도하지 말라. 문자써가며 미사리 어구를 써서 다른 사람 감동적으로 들으라고 기도를 하지 말고 마음속에 진심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간절히 외쳐서 하나님께 우리의 뜻을 아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간구의 기도가 되어야 응답합니다.
시편 91:15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간절히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목사님께 와서 “목사님! 나 성령 받게 해주십시오.” 목사님이 “너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 받는다.” “어떻게 간절히 기도합니까? 간절히 기도하는 법을 알려 주십시오.” “그래? 그러면 나하고 오늘 나하고 바닷가에 좀 가자.” 목사님이 그 청년을 데려가서 “우리 바다로 들어가자.” 배까지 들어오는 물에 들어가자 목사님이 그 청년 머리위에 손을 얹고 꽉 눌러 버렸습니다. 머리를 눌러서 머리에 올라 타 앉았습니다. 청년이 물속에 빠져서 숨을 쉴 수가 없으니까 발버둥을 치고 거품을 부글부글 올리고 안 죽을 만큼 될 때 목사님이 놓아 주었습니다. “휴” 숨을 쉬고는 “목사님! 간절히 기도하는 것 알려 달라고 했지 나를 물에 빠져 죽이라고 했습니까?” 그랬더니 목사님이 “물에 빠져 있으니까 어떻데? 물에 빠져 있으면서 부모 생각나데? 친구 생각나데? 애인 생각나데? 공부할 것 생각나데?” “생각은 무슨 생각이요? 숨이 답답해 죽을 지경인데…” “그럼 무엇을 원했느냐?” “나는 숨쉬기를 간절히 원했어요. 숨 쉬는 것 이외에는 아무생각도 안했어요.”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제목 이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숨쉬기를 원하는 것같이 갈급한 마음으로 부르짖는 기도가 간절한 기도네. 무슨 기도하면서 시장의 물건 값도 생각하고 친구하고 놀러 갈 것도 생각하고 애인에게 꽃다발 갖다 줄 것도 생각하고 그러면 그것이 간절한 기도냐?”
어떠한 자매님이 제게 와서 신앙상담 와서 “목사님 나는 새벽기도를 가면 자꾸 졸아요.” 졸면서 어떻게 합니까? “입에서 나도 모르게 기도하기를 양말 한 켤레에 얼마요. 이것 한 켤레 사세요. 그런 소리를 내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잡생각이고 간절한 기도가 아닙니다.” 여러분 간절한 기도는 그것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 잡생각 하면 간절한 기도가 아닙니다. 집중적으로 그 기도하는 목표에 대해서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할 때 간절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절한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보십시오. 엘리야가 3년 6개월 동안 비가오지 않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갈멜산에서 기도할 때 성경에 보니 그 머리가 다리 사이로 들어갔다 했습니다. 그 말 여러분 체험 안하면 몰라요. 제가 성령받기 원해서 신학교 다닐 때 삼각산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나중에는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으니까 창자가 당겨서 창자가 오그라지는 것 같아서 점점 몸이 고부라져 가지고서 머리가 다리 사이로 들어가더라구요. 머리가 완전히 다리 사이로 들어가서 부르짖어 기도하니까 성령충만하게 받는 체험을 얻었던 것입니다. 엘리야 같은 하나님의 종도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기에 창자가 꼬여서 허리가 새우등같이 굽어져서 머리가 다리 사이에 들어가면서 기도했습니다. 종보고 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응답이 있는가 보라. 올라가서 내려와서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여섯 번 올라갔다가 내려와서도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일곱째 올라가서 내려와서 손바닥만 한 구름이 보입니다. 이제 큰 비의 소리가 들린다. “빨리 아압왕에게 마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라고 말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엘리야도 기도할 때 그냥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도덕적, 윤리적으로 한참 타락했을 때 한 신실한 청년이 시골에서 살기를 찾아 런던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는 여기저기 다니며 직업을 찾다가 겨우 런던 뒷골목의 어느 전당포 직원으로 취직이 되었습니다. 전당포를 정리하고 그 앞길을 청소하면서 그는 하나님 앞에 탄식을 했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타락한 런던의 참담한 현실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도시에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이곳 어디에 하나님의 공의가 있습니까?’ 한동안 삶의 목표를 잃고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시편 5: 3의 말씀이 그 심령을 찔렀습니다. “야훼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그래서 그는 아침에 하나님께 간절히 바라고 하나님의 영국을 살려주고 런던을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그 응답이 자기에게 온 것입니다. “네가 일어나서 영국을 살리고 런던을 변화시키라.” 그는 그 소명을 받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일어나서 영국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가 바로 다른 분이 아닌 구세군의 창설자 부스 대장인 것입니다. 간절히 부르짖으면 하나님의 응답은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다가자 하는 기도, 장난삼아 하는 기도, 집중되지 않은 기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기도 이런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사를 걸어놓은 그런 간절한 기도는 나를 변화시키고 이웃을 변화시키고 환경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갖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할 때에 반드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 저도 사람을 많이 만나잖아요. 만나기만 하면 제가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저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입니다.” 저쪽편도 당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서로 이름을 통해서 누군지를 알고 만날 수가 있지요. 이름이 왜 효과를 발생하느냐. 저에게 면담해 달라는 요청이 많이 옵니다. 전국에서 전 세계에서 면담하게 해 달라. 안수기도 해 달라. 끝없는 요청이 옵니다. 그것 다 받아들이다가는 저는 아무것도 못해요. 그런데 효과를 발생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면담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지 끝에 제가 피치 못할 이름이 있습니다. 장로회 회장님 및 임원들이나 우리교회 내가 사랑하고 잘 아는 권사님들이나 성도의 이름을 넣어서 이분이 나에게 목사님께 편지하랍니다. 그럼 내가 별 도리 없이 그분 이름 때문에 받아 주어요. 이름이 굉장한 효과가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한국에 여러 기독교 단체에 이름을 빌려 달라고 해서 제가 한 4~50개 단체에 이름을 빌려 주었는데 요사이는 그 이름 취소한다고 애를 먹습니다. 왜 이름이 필요하냐? 그 모든 단체에 무게를 주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이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름이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 예수 이름으로 나가야 하나님이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육신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충성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하십니다. 지극히 높여 주셔서 하늘위에 있는 이름이나 땅에 있는 이름이나 땅 아래 있는 이름들이 모두다 예수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냥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안 들어 주시지만 예수님 이름으로 나가면 “어? 내 아들 예수 이름으로 왔냐? 오너라. 좋다.” 문을 활짝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이름을 듣기만 해도 즐거워하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예수님이 나의 신랑이요, 나의 형님이요, 나의 구주가 되십니다. 하나님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면 하나님이 “오냐! 좋다. 들어오너라.” 모든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은 예수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이름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응답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13~14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하십니다.
그 다음 우리가 주님께 기도할 때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24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했으며, 야고보서 1: 6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믿음은 결단입니다. 내가 마음에 깊이 결단하고 ‘하나님이여, 나는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이제는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하나님을 믿고 나가겠습니다.’ 마음에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는다고 한 다음 우유부단하고 자꾸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습니다. 정말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말을 안 하겠다고 결단을 내리고 ‘이제부터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과 말을 하고 살겠습니다.’고 마음에 결단을 내리고 믿으면 굉장한 축복이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믿음의 결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우유부단합니다. 항상 바다 물결같이 출렁 거리는 것입니다.
태평양에서 표류하다가 20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되었던 리컨 베커 선장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선원 한사람과 함께 태평양을 건너다가 배가 파선이 되어서 그들은 뗏목을 타고 표류했습니다. 처음에는 망망대해에서 견디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낮이면 작렬하는 태양과 목마름으로 밤이면 살을 애는 추위와 몰려드는 상어 떼의 위협으로 고통스럽기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장님은 예수를 잘 믿고 성경을 열심히 읽었는데 그가 외워놓은 성경구절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이사야 43: 2을 외웠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 말씀을 그는 의지하고 이 말씀을 계속해서 외우며 하나님이 살려줄 것을 결단적으로 믿었습니다. 죽을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 망망대해에 인적이 끊어진 곳에서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자 양식도 없고 물도 없고 너무나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추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양식이 없으니 배가 고파서 죽겠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하니까 우연히 갈매기 한 마리가 태평양 한가운데서 날라서 머리 위에 앉거든. 태평양에 어디 갈매기가 있어요. 갈매기 한 마리가 와서 다른 데가 아니라 머리위에 앉아요. 그래서 잡았어요. 그를 뜯어 가지고서 갈매기 다리를 그냥 생채로 바닷물에 씻어 먹었어요. 먹고 그 다음에는 자기 옷에 있는 핀을 가지고 낚시를 만들어 가지고 갈매기 창자를 꼽아서 물에 던지니까 고기들이 이런 것이 낚였습니다. 그래서 먹는 것이 해결 되었어요. 그 다음에는 하늘이 먹장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니까 가판으로 비를 받아 가지고서 물을 마실 수가 있었습니다. 낮에는 구름이 떠서 해를 막아 주시고 밤에는 기후가 온화해져서 견딜 만 했습니다. 그래서 2주간 동안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감사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상선에 의해서 구조를 받았습니다. 그는 내내 성경말씀을 외우고 결단적인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아니하신다. 나는 구원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신문기자들이 그들이 구출 받았을 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어려운 시련을 견딜 수가 있느냐?” 그러자 선장은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라고만 대답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믿음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말하기를 내가 크고 비밀한 일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크고 비밀한 일들을 주님이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 왔을 때 뒤에는 애굽의 대군대가 습격을 하고 앞에는 홍해가 가렸지 않습니까? 그들은 갈 길이 없습니다. 인간으로써 살 길이 없습니다. 대책이 전무합니다. 그럴 때 그들이 주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길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4:14절로 16절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하나님께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애굽의 바로왕도 모르고 이스라엘 백성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역사할 때 우리 상상을 초월한 기적을 베풀어 주실 때가 있습니다. “아! 그것은 옛날에 구약시대의 이야기지요. 요사이 무슨 그런 기적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야훼는 변치 아니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존 밴 디스트의 ‘기적’이라는 책에 보면 도리스 센포드라는 소년의 간증이 실려 있습니다. 그는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좋지 않을 때 중국 공산당이 승승장구하여 중국내륙지방을 점령하고 나오던 그 길목에 선교사집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마침 미국에 보고하러 갔는데 어머니하고 그 자식들이 있는데 공산군이 습격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공산당 두목과 병사들이 총을 겨누고 “네가 예수를 안 믿는다고 하면 살려주고 예수를 믿겠다고 하면 총살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 어머니가 담대하게 서서 “나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버릴 수 없다. 하나님은 당신들의 총보다 더 강하다. 지금도 당신들의 총에서 우리를 건지실수 있다. 만일 우리가 죽는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영생천국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하실 것이다. 나는 결코 예수님을 포기할 수 없다.” 그러자 분노한 공산군 장교와 병사들이 줄을 서서 그것을 보고 총살을 하려고 자세를 취하는데 갑자기 마른하늘에 벽력이 쳤습니다. 중국의 내지에는 우박도 떨어지고 번개도 치지만 그러나 천둥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냥 마른하늘에 벼락 치는 천둥이 일어나고 번개가 그 공산군들 앞에 번쩍번쩍하고 떨어지니까 모두다 기절초풍을 하고 “걸음아, 날 살려라!”고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일보직전에서 천둥번개 때문에 살았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거짓말로 책을 지을 리가 만무하지 않습니까? 베스트셀러중의 하나인 그 책이 우리에게 오늘날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주의 백성이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크고 비밀한 일을 나타내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마라의 기적도 있잖아요.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졌더라. 수르광야를 통하다가 물이 없어 사흘 길을 걸어가다가 목이 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연못물을 발견했는데 쓴 연못물이라 마실 수 없었습니다. 부르짖어 하나님께 외치니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뭇가지를 지시하시는지라 꺾어 넣으니 중화가 되어서 물을 마셨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당했을 때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런 기적이 있어요. 제가 LA에서 집회를 할 때 그 집사님 한 분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기 집 앞에 큰 나무가 있는데 이른 새벽에 새떼들이 새까맣게 나무에 앉아서 지저귀기 때문에 새벽 4시가 되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너무 지저귀기기 때문에. 그래서 그 새떼를 향해서 총도 쏘아보고 그냥 고함을 쳐보기도 하고 해도 그대로, 그대로 새떼가 와서 하루는 할 수 없어서 가족들이 모여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새떼 때문에 우리 가족이 전부 잠을 잘 수가 없고 이 집에서 이사를 가든지 해야 되겠는데 어찌하든지 새떼를 좀 쫓아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그 다음부터 새떼가 안 날라 오더랍니다. 이상해서 하루는 기도하면서 그 나무를 보니까 나무가 영적으로 성령의 불이 활활 타고 있더랍니다. 새떼가 불이 활활 타고 있는 나무를 보고 올 턱이 있습니까? 성령의 불꽃이 나무를 태우고 있으니까 새떼들이 다 놀래서 도망쳐 버리고 그때부터 편안하게 잠을 잤다는 이야기를 저보고 했습니다.
버다 스미스의 자서전 ‘집에 가서 말하라’ Go home and tell에 보면 이 여자는 중국 내지 선교를 떠났습니다. 중국 내지의 생활이 너무나 열악해서 가보니까 집이 없어요. 빌렸다는 것이 마구간을 빌렸습니다. 마구간을 청소하고 자기 가재도구를 갖다 놓고 거기에서 자고 깨고 선교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파리가 달라 들었든지 눈으로 코로 귀로 다 들어오고 밥을 지어 놓으면 밥은 안보이고 파리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너무 미국에서 행복한 집에서 태어나서 좋은 잠자리에 자고 깨끗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호사하고 살았기 때문에 현실의 생활이 도저히 적응이 안 됩니다. 이 많은 파리 떼가 늘 눈과 코와 귀에 기어 들어오니 잠을 잘 수가 없고 밥이 새까맣게 파리가 붙었으니 파리를 먹는지 밥을 먹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해주시옵소서. 하나님 원하시는 파리 떼를 다 없애 주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파리와 함께 살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랬는데 그 기도를 마치고 나서 그 다음날부터 파리가 일절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파리가 그 마구간 밖으로 나가면 와글와글 한데 집에는 한 마리도 들어오지 않고 깨끗하게 파리 없는 삶을 살고 열심히 전도를 했다는 책을 그의 Go home and tell 이라는 자서전에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사소한 일에도 크고 비밀한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기적만 응답해 준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잔치에 갔을 때 그들이 혼인이 무르익을 때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인생이란 항상 떨어져요. 사랑이 떨어지고 의복이 떨어지고 돈이 떨어지고 힘이 떨어지고 인생은 늘 떨어지고 모자라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도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개인가정에 잔치하다가 포도주가 떨어진 것도 문제가 될 것인데 하물며 혼인잔치에 사람들은 꾸역꾸역 오는데 대접할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이 낭패 아닙니까? 그때 마리아가 예수님께 이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종들을 보고 결례통 여섯에 물을 채워라. 물을 아구까지 채우매 떠다 주라. 그러니 포두주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주 좋은 포도주를 마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이 가정에 예수님이 안 왔더라면 그들은 낭패에 처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없는 것 떨어진 것을 그대로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채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채우시고 믿음을 채우시고 소망을 채우시고 물질을 채우시고 성공으로 채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의 기적은 옛날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도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멜 테리 목사가 적은 책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이라는 책을 제가 읽어 보았었습니다. 멜 테리 목사는 인도네시아 부흥회 리더로써 굉장히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주의 종입니다. 그 멜 테리가 동티모르라는 조그만 섬에 있을 때 한 교회에서 성찬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이상하게 성찬식 할 때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체험하는 교회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동티모르는 포도가 안 되기 때문에 포도주가 없어요. 그들은 맹물에다가 독한 술을 타가지고서 설탕을 집어넣어서 그것으로 성찬용 음료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멜 테리가 그곳에 갔을 때는 그 교회는 맹물을 떠놓으면 포도주가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거짓말이지 싶어서 그가 가서 자기가 자원해서 성찬식 날 우물에 가서 물을 떠서 왔습니다. 떠서 와서 그 우물물에 흰 천으로 덮고 자기가 그 물통을 안고서 집사들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거기에 장난칠까 싶어가지고서 그것을 자기가 안고서 눈을 뜨고 한 시간 동안 집사들과 함께 기도를 했는데 이상하게 그것을 덮어 놓은 천이 물에 닿으니까 빨갛게 물이 들어 버리더랍니다. 하얀 천을 덮었는데 빨갛게 되었어요. 놀래서 그것을 찍어서 먹어 보니까 색깔만 물이 빨갛지 포도주는 아니에요. ‘이상하다. 흰 물 색깔이 빨간 포도주가 되었느냐.’ 그래서 그 물통을 자기가 들고 집사들과 함께 목사님께 가지고 갔습니다. 목사님이 그것을 찍어서 맛보니 “야! 맛있는 포도주다.” 그래서 멜 테리가 ‘거짓말 한다.’ 그래서 자기가 포도주를 찍어서 보니까 아까는 맹물이더니 이제는 완전히 포도주가 되어버렸습니다. 가져가는 동안에 물이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멜 테리 목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60회 동안이나 물이 포도주로 변화 되었습니다. 성찬예배를 60회 하는 동안에 그가 참석을 했는데 다 물이 포도주가 되었어요. 그래서 그가 그 책에 기록한 것을 제가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하나님은 변화시키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맹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것처럼 우리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의, 평강, 희락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승리로 변화시켜 주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입니까?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야훼 하나님은 여러분 일을 행하시고 그 일을 지어 성취하여 주시는 야훼 하나님인 것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시는 이름 야훼 하나님인 것입니다. 야훼 이레 하나님, 야훼 라파 하나님, 야훼 닛시 하나님, 야훼 샬롬 하나님, 야훼 로이 하나님, 메카디쉐켐 하나님, 야훼 치드케누 하나님, 야훼 삼마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이 야훼 성호를 여러분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이 이름 하나하나가 다 ‘내가 다 이 일을 너를 위해서 해주겠다.’는 이름인 것입니다.
[결론]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과 함께 삶을 사는 이들을 말합니다. 예수 믿고 혼자 외롭게 이 땅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우리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따로, 사람 따로, 예배 따로, 사회생활 따로가 아닙니다. 좋을 때 시련을 당할 때 원수의 공격을 당할 때 답답할 때 핍박을 당할 때 죽을 때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공동의 삶을 사는 것이 우리 성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를 행하시고 이를 지어 완성하시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나는 너에게 야훼가 된다. 너를 구속하신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위해서 준비하는 이레다. 나는 너를 치료하는 라파다. 나는 너를 위해서 싸워주는 닛시다. 나는 너에게 평안을 주는 샬롬이다. 나는 너의 목자가 되는 로이다. 나는 너에게 의로운 옷을 입혀 주는 치드케누다. 나는 너를 세상과 마귀에서 이기게 하는 거룩하게 하는 메카디쉐켐이다. 나는 너와 항상 함께 있는 야훼 삼마 하나님이 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를 예수님 가운데 모시고 하나님과 함께 기뻐 즐거워하며 믿음으로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아무 일도 안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 우주를 지으시고 세상을 지으셨으며 우리 구원을 이루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됨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와 관계없는 하나님이 아니라 야훼 하나님, 우리와 구속을 연관해서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야훼 하나님, 야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같이 하셔서 우리를 붙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기막힌 비밀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이 야훼 하나님,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과 항상 깊은 은혜와 관계를 맺고 사는 우리 성도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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