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
명문장이란 < 자기 심중에 떠오른 바로 그것! >을 그대로 잘 드러낸 문장입니다. 천하의 명문장치고 일필휘지로 단번에 씌여진 것은 없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우연입니다. 따라서 일필의 우연을 바랄 것이 아니라 이필, 삼필, 아니면 수백필을 하여서라도 < 자기 심중에 드러난 바로 그것! >이 나타나도록 가필하고 개필하는 것이 문장법의 원칙입니다.
중국의 문장가 구양수는 초고를 문설주에 걸어 놓고 들면 날면 읽고 고치었고, 러시아 문장을 가장 아름답게 썼다는 뚜르게네프는 어떤 작품이든지 초고를 서랍에 넣어두고 석 달에 한 번씩 거내보고 고쳤고, 훼밍웨이는 < 노인과 바다 >를 수 백번 고쳐 썼다고 합니다. 아무튼 두 번 고친 것이 한 번 고친 것보다 세번 고친 것이 두 번 고친 것보다 낫습니다. 이렇게 < 자기 심중에 떠오른 바로 그것! >을 꼭 그대로 드러내기 위하여 문장을 고쳐가는 작업을 < 推敲 >라고 합니다. 이렇게 문장을 고쳐가는 것을 < 퇴고 >라고 부르는데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얽혀 있습니다.
鳥宿池邊樹 僧鼓月下門 ( 조숙지변수 승고월하문 )
밤새는 못가 나무 숲에 깃들고, 청량한 달빛 아래 문 두드리는 스님
위의 시는 당나라 시인 가도의 敍景詩인데 이 시의 바깥짝 < 僧鼓月下門 >은 원래 < 僧推月下門 >이었습니다. < 두드릴 고,鼓 >가 아니라 < 문을 밀칠 퇴, 推 >였습니다. 즉 <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는 스님 >이 아니라 < 달빛 아래 문을 밀치고 있는 스님 >이었습니다. 시인 가도는 처음에 < 승퇴월하문 >이라 써놓고 아무리 읊어보아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문 밀칠 퇴 대신에 문 두드릴 고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 승고월하문 >이라 읊어보니 괜찮기는한데 웬지 아까 것인 < 승퇴월하문 >이 더 좋은 듯 하였습니다.
시인 가도는 퇴로 할까? 고로 할까? 망설이던 중 어느날 노새를 타고 거리에 나갔습니다. 가도는 노새 위에 앉아서도 퇴로 할까? 고로 할까? 에만 열중 하다가 부윤의 행차가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만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가도는 불경죄로 부윤 앞에 끌려 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시를 짓다가 퇴로 할가? 고로 할까? 하는 문제에 몰두하다가 그만 이런 불경죄를 저지르게 되었노라고 사죄 하였습니다.
부윤이 가도의 사정 이야기를 다 듣더니 파안대소하고 잠시 생각한 후에 “ 이보시게, 그건 문 밀칠 퇴보다 문 두드릴 고가 더 나은 것 같소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부윤은 다름 아닌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 높은 韓退之(한퇴지)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한퇴지와 가도는 그 자리에서부터 문우가 되었고, 가도가 승퇴월하문을 승고월하문으로 고친 것은 물론이요, 이후로 후인들이 문장을 고치는 것을 < 퇴고 >라고 일컫게 되었습니다. < 이태준, 문장강화, 창작과 비평사, 189-190 쪽 >
중국의 문장가 구양수는 초고를 문설주에 걸어 놓고 들면 날면 읽고 고치었고, 러시아 문장을 가장 아름답게 썼다는 뚜르게네프는 어떤 작품이든지 초고를 서랍에 넣어두고 석 달에 한 번씩 거내보고 고쳤고, 훼밍웨이는 < 노인과 바다 >를 수 백번 고쳐 썼다고 합니다. 아무튼 두 번 고친 것이 한 번 고친 것보다 세번 고친 것이 두 번 고친 것보다 낫습니다. 이렇게 < 자기 심중에 떠오른 바로 그것! >을 꼭 그대로 드러내기 위하여 문장을 고쳐가는 작업을 < 推敲 >라고 합니다. 이렇게 문장을 고쳐가는 것을 < 퇴고 >라고 부르는데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얽혀 있습니다.
鳥宿池邊樹 僧鼓月下門 ( 조숙지변수 승고월하문 )
밤새는 못가 나무 숲에 깃들고, 청량한 달빛 아래 문 두드리는 스님
위의 시는 당나라 시인 가도의 敍景詩인데 이 시의 바깥짝 < 僧鼓月下門 >은 원래 < 僧推月下門 >이었습니다. < 두드릴 고,鼓 >가 아니라 < 문을 밀칠 퇴, 推 >였습니다. 즉 <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는 스님 >이 아니라 < 달빛 아래 문을 밀치고 있는 스님 >이었습니다. 시인 가도는 처음에 < 승퇴월하문 >이라 써놓고 아무리 읊어보아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문 밀칠 퇴 대신에 문 두드릴 고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 승고월하문 >이라 읊어보니 괜찮기는한데 웬지 아까 것인 < 승퇴월하문 >이 더 좋은 듯 하였습니다.
시인 가도는 퇴로 할까? 고로 할까? 망설이던 중 어느날 노새를 타고 거리에 나갔습니다. 가도는 노새 위에 앉아서도 퇴로 할까? 고로 할까? 에만 열중 하다가 부윤의 행차가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만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가도는 불경죄로 부윤 앞에 끌려 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시를 짓다가 퇴로 할가? 고로 할까? 하는 문제에 몰두하다가 그만 이런 불경죄를 저지르게 되었노라고 사죄 하였습니다.
부윤이 가도의 사정 이야기를 다 듣더니 파안대소하고 잠시 생각한 후에 “ 이보시게, 그건 문 밀칠 퇴보다 문 두드릴 고가 더 나은 것 같소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부윤은 다름 아닌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 높은 韓退之(한퇴지)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한퇴지와 가도는 그 자리에서부터 문우가 되었고, 가도가 승퇴월하문을 승고월하문으로 고친 것은 물론이요, 이후로 후인들이 문장을 고치는 것을 < 퇴고 >라고 일컫게 되었습니다. < 이태준, 문장강화, 창작과 비평사, 189-190 쪽 >
첫 페이지
663
664
665
666
667
668
669
670
671
672
673
674
675
676
677
678
679
680
681
682
683
684
685
686
687
688
689
690
691
692
693
694
695
696
697
698
699
700
701
702
703
704
705
706
707
708
709
710
711
712
713
714
715
716
717
718
719
720
721
722
723
724
725
726
727
728
729
730
731
732
733
734
735
736
737
738
739
740
741
742
743
744
745
746
747
748
749
750
751
752
753
754
755
756
757
758
759
760
761
762
763
764
765
766
767
768
769
770
771
772
773
774
775
776
777
778
779
780
781
782
783
784
785
786
787
788
789
790
791
792
793
794
795
796
797
798
799
800
801
802
803
804
805
806
807
808
809
810
811
812
813
814
815
816
817
818
819
820
821
822
823
824
825
826
827
828
829
830
831
832
833
834
835
836
837
838
839
840
841
842
843
844
845
846
847
848
849
850
851
852
853
854
855
856
857
858
859
860
861
862
끝 페이지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