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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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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겸손부터 살펴보기로 합시다. 우리가 이제 곧 알게될 테지만 겸손이 복합적인 동기에서 나을 때는 설령 주된 동기가 하나님이라고 할지라도 '불완전'하기 마련이며, 하나님께로부터 기인할 때라야 '완전'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겸손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겸손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를 더 진실하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겸손 그 자체는 우리 자신을 실제 있는 그대로 아는 진실한 앎이요, 깨달음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알고 느끼는 사람은 진실로 겸손해지기 마련입니다. 겸손을 유발하는 요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면서 나타난 퇴화와 참상과 약점으로서, 그는 자신이 제아무리 거룩하다 할지라도 살아가는 시간 동안 이것을, 부분적으로는 강도(强度)가 다를망정,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자신의 분에 넘치는 사랑과 진가로서, 이를 바라보노라면 모든 천지만물은 몸을 떨고 모든 학자들은 바보가 되고 모든 성인과 천사들은 눈이 멀고 맙니다. 하나님은 신적지혜에 입각하여 당신에 대한 그들의 안목을 은총 속에서 이룬 발전에 따라 저울질하지 않으셨던 까닭에 말(言)은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이야기해 주지 못합니다.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동기 가운데 후자는 '완전'한 것이요, 영원합니다. 하지만 전자는 '불완전'한 즉, 그 이유는 이것이 한시적일뿐 아니라 이 사멸할 육신 안에 깃든 영혼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총으로 (당신이 원하시는 만큼 자주 그리고 오래도록) 그의 열망을 증폭시켜 주시는 까닭으로, 별안간 자기 자신을 완전하게 망각하면서 자신이 사악하다든가 거룩하다든가 하는 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준비된 영혼에게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든 어쩌다가 발생하든 간에 그 시간은 잠간일 뿐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는 영혼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가장 일차적인 동기 외에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하게 겸손합니다. 하지만 그가 다른 요인을 의식하고 거기에 따라 움직이게 되면 하나님 자친이 주된 동기가 되신다고 하더라도 그의 겸손은 불완전해지고 맙니다. 물론 이런 겸손도 선익한것이며 반드시 체험해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대는 내 말을 잘못 알아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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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악한 생각에 관심이 들릴 때 (「무지의 구름」 13장 참조)
때때로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기억은 그대가 마땅히 하고 있어야 할 일이나 해야 하는데 잊어버린 일을 나열한 목록을 제시합니다. 상상은 그대가 이를 수 있는 놀라운 계획들과, 심지어는 악하지만 그대를 현혹시킬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 보입니다. 아빌라의 성 데레사는 수련자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거든 가볍게 웃어넘기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내가 그대에게 말하려는 바는, 그대가 초대하지 않은 방문객들에게 귀를 기울이느라 사랑의 낱말기도를 중단했다는 사실을 깨eke거든 그들을 무시하고 기도로 되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이런 일이 수없이 되풀이되더라도 그때마다 그렇게 하면 됩니다. 횟수는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사랑의 낱말기도로 되돌아갈 때마다 하나님을 향한 그대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는 셈입니다. 하나님 안에 사랑하는 벗이여, 기억이나 상상이 들이대는 일이 무척 중요하고, 그래서 꼭 지성을 불러 함께 논의해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그냥 가서 그 일을 하십시오. 사랑의 낱말기도는 다른 시간에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15. 인기 없는 덕목, 겸손 (무지의 구름」 13장 참조)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벗이여, 우리는 영성의 대가들에게서 겸손이 영성생활의 토대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관상이라는 사랑의 탐색에 몰입하고자 진실로 바랄진대, 하나님께서 우리의 겸손을 키워주시기를 청해야 합니다. 오늘의 우리 세계에서 (어쩌면 늘 그래왔겠지만)겸손은 가장 인기 없는 덕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겸손이 없으면 우리는 사랑의 탐색에서 첫걸음을 떼어놓는 일조차 할 수 없게 됩니다. 참된 겸손은 너무나도 힘들어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올 때라야 비로소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부디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멍에는 달고, 그 짐은 가볍습니다.
사람들이 겸손을 그토록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결코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언젠가 '신학자' 한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겸손이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면서도 그 보다 한두 단계 아래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겸손은 일부러 못난 체하는 일종의 속임수가 되는 셈이니 말입니다.
사랑하는 벗이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대가 진실로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알고 기꺼이 받아들일 때 그대는 겸손해집니다. 여기에서 지성이 다시 등장합니다. 지성이 끊임없이 진리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십시오. 지성은 늘 진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방문 앞을 지나가는 진리를 보면 맞아들여 차 대접을 (질문을) 합니다. 그대가 잘 알겠지만 지성이 맞아들여서 질문을 던질 아주 중요한 진리 중 하나는 바로그대 자신에 대한 것입니다.
지성이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 몇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 다른 사람들이 그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어느 정도나 진실한가? 무엇이 그대를 화나고 당황하고 슬프고 창피하게 만드는가? 그대는 현재 생활에서 얼마나 적절하게 자신의 직무에 대처하고 있는가? 일상생활에서 주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그대를 사랑하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비판을 받아들일 줄 아는가? 그대는 저급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가, 아니면 고상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가? 그대가 마땅히 정면으로 부딪쳐야 함에도 피하고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 같은 질문들은 그 밖에도 많이 있습니다.
만일 이런 종류의 자기 성찰에 익숙지 않다면 그대는 이런 물음들에 자기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답변하고, 그리하여 자기가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는 결론을 끌어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극단적으로 흘러서 그대 자신을 완전한 실패작으로 판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결론은 어느 쪽도 겸손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16. 겸손이란 그대 자신을 진실하게 아는 것 (「무지의 구름」 13장 참조)
만일 그대가 하나님께서 주신 겸손을 지니고 있다면 그대는 자신을 진실하게 알 것이며, 그 진실이 그대를 자유롭게 풀어줄 것입니다. 그대는 피조물이요 한 인간으로서 타락한 인류에 속해 있습니다. 그대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 불리지만, 타락한 본성으로 말미암아 속임수․이기심·욕정 ·권력에 쓸리는 지적 존재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공동체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없는 그대는 아무것도 아니니만 못합니다. 그대의 지성으로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자유로이 진단한다면, 일상생활에서 이처럼 부정적이고 죄스러운 태도가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만큼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대는 타락한 인류의 일원일 뿐 아니라 구속받은 거룩한 백성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성자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역사하심 덕분에 그대는 그리스도의 몸에 귀속되어 있으며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대는 현세와 내세, 양쪽에서 영광스러운 미래를 약속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을 굽혀 그대를 타락한 인류라는 수렁에서 건져내어 당신의 품에 안아 키워주고 감싸주며 사랑의 포옹을 해주십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양면을 모두 인정해야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본성에서 비롯된 약점들과, 예수의 구속과 성령에 의해 아버지께로 돌아와 받게 된 영광이라는 이 두 모습이 우리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잘 깨닫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무관하게 자신을 들어 높이고자 끊임없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모상과 다르게 만들어 내는 거짓된 자아를 알아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날마다 힘겨루기에 뛰어들고 있음을 잘 보아야 합니다. 분노·거짓말·절망·슬픔·위협·질투·두려움·뇌물을 이용하고 그 밖에도 오만가지 사악한 계략을 써서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도 지배하려 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벗이여 동전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탐색에 뛰어들 때 그것은 우리의 참된 자아를 향한 사랑의 탐색에 뛰어드는 셈이기도 합니다. 관상기도를 통한 사랑의 합일로 하나님을 껴안음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에 이끌려 점차 참된 자아를 알아갑니다. 갖가지 약점들을 지니고 있는 우리가 과연 어떤 모습이며, 하나님의 은총이 없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딸인 우리의 모습도 알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겸손입니다. 이런 겸손을 얻도록 노력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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