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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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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관상가가 되는 길에 발을 들여놓은 이들은 활동가들이 불평할 때 그들을 용서해야 할 뿐 아니라, 영적으로 하는 일에 철저히 매진함으로써 사람들이 그들에게 하는 말이나 보이는 행동에 전혀 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귀감이 되고 있는 마리아는 자매 마르다가 우리 주님에게 불만을 토로했을 때 바로 그렇게 했던 것이며, 따라서 우리가 그와 똑같이 처신할 경우 우리 주님은 마리아에게 하셨던 일을 오늘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해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일이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당신 앞에서는 어떠한 비밀도 감추어질 수 없는 사랑하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마르다로부터 마리아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을 접대하는 일을 거들도록 말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마리아의 영이 당신의 신성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음을 아신 까닭에 지극히 정중하고 합당한 말씀으로 친히 마리아를 두둔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마리아도 주님께 쏟던 사랑의 흐름을 차단해 가며 언니의 말에 대꾸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떤 식으로 대꾸하셨습니까? 물론 그분은 마르다가 간청한 대로 심판관 노릇을 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는 마리아를 정당하게 변호하는 옹호자로 나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 마르다!"(눅 10:41) 그분은 마르다의 이름을 연거푸 두 번이나 부르셨으니, 이는 그녀가 당신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이해하기 바라셨던 까닭입니다. 그런 다음에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많은 일에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고 있다." (활동가들은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나 그리스도교적 사랑이 요구하는 대로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자비를 베풀 필요성 때문에 수많은 일들에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분이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마르다가 스스로 하고 있는 일이 그녀의 영적 건강에 유익하고 도움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라신 까닭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 하고 있는 일을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가장 훌륭한 일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기위해서 그분은 이렇게 덧붙이고 계십니다. "그러나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이 한 가지 일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정녕 사람이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할 수 있는 다른 모든 일에 앞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오직 그분만을 찬미하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은 마르다가 현세의 일들로 분주하게 움직이면서도 하나님을 만유 위에 사랑하고 찬미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막고, 또 하나님을 육적인 방법과 영적인 방법으로 동시에 섬길 수 있는가 없는가 -이 경우 그녀는 불완전하게 섬길 수는 있어도 완전하게 섬기지는 못합니다.- 하는 의문을 해소하려는 뜻에서 마리아가"가장 좋은 몫을 택했고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덧붙이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상에서 시작하는 이 완전한 사랑의 발돋움은 천상의 지복 속에서 영원토록 이어질 그것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두는 하나인 것입니다.
20. 베들레헴 방문 (「무지의 구름」 20장 참조)
내가 이따금씩 찾는 또 다른 성지는 베들레헴입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자리에 세워진 성탄 성당에서 걸어서 15분쯤 걸리는 언덕 위에 우아한 가르멜회 수녀원이 있고, 이 수녀원의 부속 건물로 순례자들과 방문객들을 위한 커다란 유스 호스텔이 있습니다. 미국 베리놀 선교회 사제와 수사들은 해마다 12명쯤 되는 소그룹을 짜서 차례로 이곳을 찾아와 영성 쇄신 프로그램을 갖습니다. 이들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3,40년씩 선교사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지난해에 나는 그들 각 그룹이 이곳을 찾아올 때마다 「무지의 구름」에 기술되어 있고, 이 책에서 다시 다루는 독특한 방식에 따라 관상기도 피정겸 강습회를 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지도하는 월리엄 갤빈 신부는 자기 수도회원들 사이에 이런 방식의 피정을 보급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이를 일컬어 '바쁜 사람들을 위한 관상기도'라고 합니다. 바쁜 사람들일수록 그들의 사업이 사랑의 결실이 되게 하려면 예수의 발치에 앉아 사랑을 탐색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몇 년 전에 매우 인기를 얻은 표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을 심으면 사랑을 발견하게 되리라.' 사랑은 하나님과의 관상적 합일에서 나옵니다. 사랑을 찾으십시오. 이 책은 적어도 사랑을 찾는 데 아주 중요한 길 하나를 보여줍니다.
나는 트라피스트회 수사로서 30년 동안 '관상수도회'인 엄률의 시토 수도회(트라피스트회)에 몸담아 왔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벗이여, 나는 우리 수도회가 '마리아'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에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반대합니다. 그리스도교적 인간관계에서는 서로 사랑으로 섬기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 수사들은 자신이 마르다와 마리아를 한데 합쳐놓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예수의 발치에 앉아서 성무일도를 바치고 성서와 교부들을 공부하고 관상기도를 하며 희미한 구름 속을 더듬는 일로 보냅니다.
반면에 우리는 또한 요리하고 세탁하고 병원업무를 보고 농사짓고 집안일을 하고 손님과 피정하러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등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일에도 아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메리놀 선교사들이 세계 도처에서 자신들이 하는 성부의 일이 그들의 관상적 사랑에서 다양한 형태로 샘솟도록 노력하듯이, 우리 트라피스트인들도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일이 섬김과 활동 그 자체로 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마다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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