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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오로리 숲에 꽃사슴이 살았대요.
꽃처럼 예뻐서 그런 이름이었는지, 꽃을 좋아해서 그런 이름이었는지, 그건 모르겠네요.
달빛이 휘영청 밝은 어느 날 밤, 꽃사슴이 작은 언덕에 서 있는데 어디선가 달콤한 음성이 들려왔어요.
“사랑해요, 주인님.”
“어쩌면 그렇게도 잘 생기셨나요?”
“주인님 덕분에 우리가 있어요. 고맙습니다.”
가만 들어보니 혼자서 내는 소리가 아니군요.
“존경합니다, 주인님.”
“주인님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꽃사슴이 땅에 귀를 바짝 대고 물었어요. 소리가 그쪽에서 났거든요.
“누구니? 너희들 누구야?”
“우리가 누군지 모른다고요? 섭섭합니다, 주인님. 하지만 뭐, 괜찮아요.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게 우리 운명인걸요.”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게 너희 운명이라고?”
“예, 주인님.”
“내가 너희들 주인이라면, 그렇다면, 내가 너희를 낳자마자 버린다는 거냐?”
“예, 주인님. 그게 주인님이 가시는 길이니까요. 우리를 버리지 않으면 주인님은 살 수가 없답니다.”
“내가 너희를 버려야 살 수 있다고?”
“예, 주인님. 주인님과 우리는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 없는 사이지만,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주인님은 우리를 등져야 한답니다. 그게 주인님과 우리의 슬픈 인연이거든요.”
“무슨 그런 인연이 다 있담?”
“그러게 말입니다, 주인님.”
“도대체 너희가 누구니?”
“발을 들고 발밑을 보셔요. 방금 우리들 가운데 막내가 태어났네요.”
꽃사슴이 발을 들고 발밑을 보았어요.
거기 있는 것은, 휘영청 밝은 달빛에 드러난 자기 발자국이었습니다.
“아하, 너였구나?”
“그래요, 주인님. 우린 주인님이 오로리 숲에 남기신 발자국들이랍니다.”
“사랑해요, 주인님.”
“주인님 덕분에 우리가 생겨났어요. 고맙습니다, 주인님.”
“우리를 잊지 말아주셔요.”
“주인님 가시는 곳이면 거기가 지옥이라도 따라갈 거예요.”
꽃사슴이 뒤로 돌아섰어요.
두 줄로 나란히 끝도 보이지 않게 이어져 있는 발자국들을 보며,
“미안하다, 내가 여태껏 너희를 잊고 살았구나.”
꽃사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사실은 너희가 이렇게 나를 따라오는 줄 몰랐어.”
“괜찮아요, 주인님. 주인님한테서 잊혀지는 게 우리 운명인 걸요.”
“아니, 이제부턴 너희를 잊지 않겠다.”
“고맙습니다. 주인님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나도 너희가 자랑스럽다.”
“사랑합니다, 주인님.”
“나도 너희를 사랑한다.”
꽃사슴이 오로리 숲에 남겨진 제 발자국을 되밟으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걷기 시작했어요.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하는 것이니까요.
그 뒤로 아무도 오로리 숲에서 꽃사슴을 볼 수 없게 되었답니다.
왜냐고요?
머리는 뒀다 뭐 하실 거예요? 스스로 한번 생각해보셔요. 오로리 숲에 남겨진 제 발자국들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간 꽃사슴을 그 뒤로 아무도 볼 수 없게 된 까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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