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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 전도운동의 문제점과 방향

한국교회허와실 기독교신문............... 조회 수 1707 추천 수 0 2009.09.30 11: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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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교회 전도운동의 문제점과 방향

세상을 향한 열린교회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 감당 필요
나눔과 섬김을 통한 사랑의 선교 실천, 주민중심 전도자원 계발
농촌·중소도시·대도시에 맞는 실제적 전도전략 제시 필요성 제기

국민들은 종교선호도 조사에서 기독교에게 가장 낮은 점수를 주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결과이다. 또한 한국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빛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교회의 마이너스 성장현상에 대해 교회성장학을 연구하는 목회자와 학자들은 대부분 한국교회의 거품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는 분열과 갈등을 거듭하면서 교회와 교인의 수가 부풀려졌으며, 분열의 종교로 국민들에게 비쳐졌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한국교회는 교회이기주의에 매몰되었고, 세상을 밝혀줄 빛마저 잃어버렸다. 교회마다 교회성장을 위한 전도폭발, 전도세미나 등의 전도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지만, 현실목회와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때문에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을 극복할 수 있는 현장중심의 전도전략을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또한 십자가탑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교회도 세상을 향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의 현실 지적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에서 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지난 1990년도 이후 한국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당시 한국교회의 교인수가 1천3백만명(문화관광부 추산 1천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17년이 지난 오늘 한국교회의 교인수가 많게는 1천만명에서 적게는 8백만명으로 추산되는 것은 한국교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대목이다. 이것은 70-80년대 고도의 경제성장과 함께 급성장한 한국교회의 교인수가 얼마만큼 허수였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결과이다. 또한 한국교회의 교인중 상당수는 2중으로 교회에 등록되어 있는 사실을 그대로 입증한 것이기도 하다. 부풀려진 교인의 수는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여기에 한국교회를 지탱해준 전도운동이 소원해지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특히 한국교회의 전도중심에 서 있던 전도사역자들도 과거만큼 열정적인 전도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똑같은 전도운동은 더 이상 비기독교인들을 매료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시대의 변화도 한 몫했다. 과거 어렵고 가난하던 시대에는 교회가 대안이 됐지만, 풍요로운 사회에서 교회는 ‘생각 좀 해보자’라는 차선택일 뿐이다. 전도의 방법에 있어서도 시대착오를 거듭했다. 과거에는 무조건적인 전도가 먹혔지만, 현재는 맹목적이다는 비판만 받는다. 오히려 지역사회를 위한 나눔과 봉사정신이 부족하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여기에 수평이동식 전도, 은사신비주의에 빠진 전도, 수도원적 영성운동 등의 팽배는 마이너스 성장을 더욱더 부채질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교회의 교인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한껏 부풀려진 교인들은 마치 거품이 녹듯이 사라지고 있다. 급기야 한국교회 전반의 뿌리를 흔드는 상황까지 왔다. 뒤늦게 곳곳에서 초기 한국교회로 회귀하자는 움직임이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마련 없이는 실효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대부분의 중대형교회들이 현재에 안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새로운 교인을 전도하기 보다는, 작은 교회의 교인들을 빼앗아 교회를 부흥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교회 간에 전도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때문에 한국교회는 세상 속에서 빛을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세상 사람들에게 분열의 종교로 비쳐지고 있다. 여기에다 교인들의 집단이기주의와 교회이기주의가 극에 달하면서, 한국의 기독교는 종교선호도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때문에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목회자와 교인들은 잃어버린 빛을 회복, 기독교 정체성을 회복하고, 한국교회가 다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가 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도프로그램의 변화 시급

한국교회의 전도운동은 줄지 않았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구태의연한 전도운동 프로그램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전도운동 프로그램은 연일 넘쳐나지만 명칭만 다를 뿐,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기독교계 언론사에 난무하는 전도운동 관련 광고들만 봐도, 그 양은 많은데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전도단체마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 비기독교인들에게 더욱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 단체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전도세미나는 시급한 수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더욱이 지역 목회자를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마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마디로 중소도시 및 농어촌교회에게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이것은 세미나 강사 대부분이 도시에서 교회를 성장시킨 목회자 및 부흥사들로, 중소도시 및 농어촌교회의 현실과 전혀 다른 전도전략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미나는 ‘빛깔 좋은 전도전략’으로 전락해 버렸다.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꿈만 잔뜩 부풀려주고,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주고 있다. 더불어 농촌, 중소도시, 어촌, 대도시 등으로 나누어 전도세미나를 실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실 전도전략을 제시할 때 한국교회가 무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주문이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기독교전도대학 최일호목사는 “오늘날 전도형태는 과거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형태가 대다수이다”면서, “시대에 맞는 다양한 전도프로그램을 마련해 마이너스 성장만 거듭하는 한국교회를 제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목사는 또한 “그동안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지상주의에 빠져 교인 수를 늘리기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교인들에 대한 양육이 부족하고, 초신자 정착률이 낮아졌다”면서, “초기 한국교회의 모습으로 회귀하기 위해서는 전도지상주의를 벗어나 교회의 본질적 의미를 먼저 제시하는 전도형태로 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도자원 계발의 중요성

한국교회가 전도의 경쟁력을 잃어버린 것은 일본제국주의와 구한말 선교사들이 뿌려놓은 선교의 자원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교회는 교육사업을 비롯한 의료사업, 교회복지사업 등을 통해 전도의 자원을 만들어 냈다. 또한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소명을 가진 교회지도자들을 길러냈다. 당시만 해도 한국교회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전도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한국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종교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한 종교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다. 70-80년대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또한 분열과 갈등 속에서 부풀려진 기독교인의 숫자가 빠져 나가면서, 마이너스라는 그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 한국교회가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해외선교도 중요하지만, 전도의 자원을 계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교자원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전도자원의 확충을 위해 과거로 회귀해야 한다. 시대에 맞는 전도프로그램을 제시하되, 초기 한국교회의 본질을 그대로 심어줘야 한다.
수원기독병원 김환근목사는 “교회의 전도는 부흥의 전도가 아니며, 교회기능을 회복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면서, “교회의 인원을 늘리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진정한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사회가 변했기 때문에 더 이상 과거 복음을 전하는 형태만을 고집해서는 안된다”면서, “지역사회를 위해 나눔과 섬김의 봉사정신을 보여줬을 때 전도자원은 풍부해 진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목사는 “어렵고 가난했던 시대에는 교회가 또 다른 대안이 됐지만, 오늘날 한국교회는 과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소외된 자들을 위한 다양한 전도프로그램을 마련해 전도자원 확충뿐 아니라, 대사회운동의 선두주자로 한국교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변화의 물결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전도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전도자원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나눔과 섬김을 통한 사랑의 선교를 실천할 때,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한국교회는 인식해야 한다. 선교초기 선교사들의 활동이 증명해 주듯이, 한국교회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선교를 실천해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십자가의 탑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는데, 우리사회가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별이 빛을 잃어버려 어둠에 잠기듯, 한국교회도 위기를 맞았다. 다시한번 한국교회는 세상의 어둠을 환하게 밝혀줄 별처럼 빛을 발해야 한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을 비롯한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등의 교단이 세상을 향한 전도전략을 내놓기 시작했다. 생명목회를 비롯한 복지목회, 주민목회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교회 안에서 케어복지를 비롯한 노인복지, 가정복지 등에 대한 세미나가 한 때 성행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한국교회 성장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교회들도, 목회현장에 맞는 전도전략을 계발,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지적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교회의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장일권(케쉐트전문전도자훈련원 대표)목사의 ‘열매형 전도’는 새로운 전도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전도목회’란 분야를 새롭게 개척하고, 전도프로그램으로 정책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마이너스 성장을 교회성장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또한 전도 전략도 중요하지만, 교인들의 전도에 대한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더욱더 중요하다. 사실 교인과 목회자가 열심히 전도한 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의 틈새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대체의학 등의 특수한 목회전략을 접목시키면 교회성장의 속도는 매우 빠르다.
이에 대해 케쉐트전문전도자훈련원 장일권목사는 4가지 전도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전도는 성경적인 원리로 진행되어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교회로 교인들을 많이 불러 모으는 것이 전도가 아니다. 성경에 입각한 전도가 이뤄져야 한다. 때문에 전도사들도 이 점을 숙지해 비기독교인들에게 접근해야 한다. 또한 전도사들은 전도현장에 대한 사전적 지식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 간혹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전도현장에 접근해 낭패를 보는 전도사들이 있다. 이들은 전도실패뿐만 아니라, 자신의 앞으로 전도운동에 있어서도 큰 손해를 보게 된다.
또 대부분의 전도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지속적인 훈련없이는 ‘우물에 고인 물’처럼 발전은 없고 제자리걸음만 하게 된다. 여기에 교회에 정착되는 전도운동을 실천해야 한다. 한 마디로 전도의 시작부터 정착단계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교회의 마이너스성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바른 전도운동’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대부분 교회들은 실질적인 전도보다 교인들의 수평이동으로 대형화되고, 그 교회가 성장했다고 자랑한다. 이제는 오늘의 현실에 맞는 전도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에 본지는 지난호부터 좥한국교회 전도운동의 현주소와 방향좦을 기획하고, 이번호부터 케쉐트전문전도훈련원 대표인 장일권목사의 글을 4회에 걸쳐 게재한다. 장목사는 한국교회 전도운동의 ‘허’와 ‘실’을 파악하고, ‘열매형 전도법’으로 큰 열매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Ⅰ. 한국교회 이대로 좋은가?

초대 사도행전 교회의 성장 동력은 오직 기도와 오직 전도였다(행6:4). 교회사에 나타난 교회의 성장 동력도 역시 기도와 전도였으며 한국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많은 교회들이 기도와 전도로 부흥하고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지금 부흥기를 지나 쇠퇴기에 놓여있다.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가고 있으며 전도는 되지 않는다. 전도가 교회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으나 전도가 잘되지 않아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러한 때에 곳곳에서 전도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전도운동의 옥석은 가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건강한 전도운동이 아니면 오히려 교회의 전도불씨를 꺼버리는 결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 가장 강력했던 전도운동 중 하나가 교회를 무너뜨리는 나쁜 영향과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전도운동의 동향

초대한국교회의 대부흥운동 후(길선주목사에 의해 평양에서 1907년에 일어남) 1970년대에 빌리그래함 전도 집회, 전도엑스포74 등, 대형 전도 집회를 통해 놀라운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사회적 환경으로 대형 전도 집회를 할 수 없게 되자 축호전도와 노방전도를 통해 교회 부흥을 꾀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전도운동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을까?
◆성령의 능력전도·요즈음도 ‘파워전도’라는 전도운동이 있지만 오순절 성령운동이 순복음교회에서 시작되어 한국교회 전 교단에 영향을 미칠 때 일어난 전도운동이다. 전도대상자들의 문제를 기도해주고 교회로 인도하는 전도법이다. 이 전도운동은 오순절 성령운동이 은사 신비주의 경향으로 문제화될 때 교회갱신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약화되기 시작했다.
◆복음제시 전도·선교단체에 소속된 교회갱신운동그룹의 목회자들에 의해 귀납법적 성경공부, 제자훈련, 강해설교 등을 도입하며 말씀목회(훈련목회)로 영향을 입힐 때 복음제시전도가 전도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때 도입된좥사영리좦전도방식으로 전도하다가 미국에서 개발된좥전도폭발전도좦가 한국교회 전도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다.
◆총동원 전도.·주안장로교회에서 폭발적인 전도부흥운동으로 개발된 ‘총동원 전도운동’이 한때는 한국교회 전도운동을 주도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많이 그 세력이 약화되었고, 지금 H전도운동으로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다.
◆관계전도·왕성교회의 ‘태신자 운동’, 사랑의 교회의 ‘영적대각성전도’, 그 후에 일어난 ‘새생명 축제’, ‘이웃초청잔치’ 등의 관계전도 운동들이다. 관계전도를 체계화시켜 한때 한국교회에 영향을 입힌 ‘이슬비전도’와 빌립전도 등이 있다. 그 외에도 한국교회에 악영향을 끼친 ‘D전도운동’, 불신자들에게 거부감을 준 외침전도 등 많은 운동들이 일어났었다.
근세 한국교회의 전도운동의 동향을 보면 최근에 ‘성령의 능력전도’, ‘복음제시전도’ ‘총동원전도’ ‘관계전도’ 운동들이 큰 영향을 입히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교회 전도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전도운동은 ‘해피데이전도’와 ‘탁월한 열매형 전도’라고 평가하고 있다. ‘해피데이전도’는 시스템을 강조하고, ‘탁월한 열매형 전도’는 전문전도자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전도가 잘되지 않는 이유

전도운동은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실제로 전도가 잘되지 않는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여러 전도운동에 참여하여 여러 가지 전도법을 교회에 적용해 보았지만 열매가 맺히지 않아서 깊은 좌절감 속에 전도할 힘마저 잃고 말았다. 필자도 많은 전도법을 적용하여 보았지만 전도가 되지 않아 낙심하였고, 복지 상담 목회로 전환하려고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왜 전도가 잘되지 않을까?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제시하고자 한다.
◆기복주의 신앙관 때문이다.·전도자로 봉사하면서 절감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기복주의 신앙관을 바꾸지 않는다면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대부분 신앙생활의 목적이 예수 믿고 복 받겠다는 생각이다. 성경은 창조와 구원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보여주신다. 이 비전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을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또 구원하시고 교회로 부르시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도록 사명을 주셨다.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성취에 헌신하는 것이 복음주의 신앙생활이라 할 수 있겠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는데, 주기도문적 기도생활을 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불교도, 유교도 해결하지 못한 복을 해결 받겠다고 기도하는 자들이 한국교회 기독교인들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이 없는데 어찌 전도에 헌신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 나라 관점이 아닌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하기에 헌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생명 살리는 전도에 헌신하지 않고 어떻게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는가?
◆예배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한국교회가 성장을 멈추고 정체되었을 때, 문제해결을 예배회복에서 찾으려 했다. 그래서 경배와 찬양예배, 열린 예배로 예배형식을 과감히 바꾸었다. 그렇게 하면 교회에 등을 돌린 자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가? 작은 교회에서 중대형교회로 신자들이 이동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예배회복을 외쳤지만, 과연 예배회복은 되었으며, 교회들은 성장하게 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진정한 예배회복은 새가족 중심의 예배가 드려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가 제사장적 사명을 감당해야함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출19:6 ; 벧전2:9).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새가족 중심의 예배형태이다(롬15:16). 이런 예배 회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전도를 해야 하는데 예배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전도를 해야 할 사명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잘못된 영성운동 때문이다.·포스트모더니즘으로 영성이 강조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오순절 성령운동으로 오순절적 영성이 한때 한국교회를 뜨겁게 하였다. 그러나 은사 신비주의로 벗어나는 폐단이 있어 한국교회는 말씀운동으로 교회를 갱신시키고자 하였다. 그 결과 교회는 말씀중심으로 어느 정도 건강해졌으나, 영적인 갈급함을 해결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태백에 있는 예수원(토레이신부)에서 시작된 영성운동이 서서히 영향을 입히기 시작하였고, 이교도에서 수도원 영성운동을 받아들였으며, 심지어 불교영성까지 받아들이는 곳도 있다고 한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경건영성에서 사도행전 영성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어느 전도단체에서는 전도자가 대상자를 통해 자기를 발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것은 수련영성이지 전도영성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상처의 아픔을 안고 있는 사람들을 주목하여 보셨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신다’(요9:3) 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아픔을 해결해 주셨다. 이것이 전도영성이며, 이러한 전도영성으로 이웃의 아픔을 느끼고 복음의 은혜로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행3:4).
◆양육중심의 관리형 목회구조 때문이다.·예수께서 3년 동안 제자들에게 전도훈련을 시킨 후 그들을 파송하며 지상명령을 선포하셨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
이 지상명령을 분석해보면, 먼저 예수께서 자신의 왕권을 천명하신 후, (전도-정착-양육-사역)의 구조로 말씀하셨다. 4단계 사역이 이루어질 때 이 땅에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셨다.
‘제자 삼으라(전도)’ ‘세례를 주라(정착)’ ‘가르치라(양육)’ ‘지키게 하라(사역)’ 의 구조를 언급하시며 파송하셨다. 이것은 교회를 세우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인 것이다. 또한 사도바울도 목회구조를 예수님처럼 4단계로 정리하고 있다(골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전도)’ ‘각 사람을 권하고(정착)’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양육)’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사역)’
이처럼 목회구조는 “전도-정착-양육-사역”의 4단계로 이루어짐을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목회는 전도로부터 시작되고, 전도가 빠진 목회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안타깝게도 전도가 빠진 양육중심의 관리형 목회구조를 갖고 있기에 활발하게 전도운동이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양적 교회성장을 위한 수평이동을 선호하였기 때문이다.·한국교회는 세속화되어 물량주의에 빠졌다. 그 결과 외적구조인 성전건축에 주력하며, 불신자 전도가 아닌 기존 교인들의 수평이동으로 교회를 성장시키려는 잘못된 의식으로 문제교인과 이동 신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전도를 기피하게 되었다.
◆전도신학의 부재로 전도현장을 아는 목회자를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필자는 목회하면서 ‘사도행전’이 가장 어려웠고 전도목회도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전도현장을 모르는 신학수업만 받아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바른 전도운동만이 교회를 갱신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전도목회를 하려는 목회자들의 하소연은 신학교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도목회의 방해꾼은 신학수업을 받은 부교역자들이라고 한다. 신학교가 구조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전도하지 못하는 전도사를 양산하는 신학교가 변해야 한다. 필자의 전도운동에 참여한 많은 목회자들이 먼저 신학교에 가서 전도를 가르치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모교단 총회 교육원의 원장께서 교단 내 450여명의 전도사들을 현장전도훈련을 시켜줄 것을 제의하기도 하였다. 신학교에서 전도목회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목회자가 변해야 교회가 변하기 때문이다.
◆전도운동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수많은 전도운동이 일어나 교회를 깨우고 전도할 수 있도록 많은 유익을 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도운동이 오히려 교회가 전도하지 못하게 하는 악영향도 끼쳤음이 사실이다. 어떻게 전도운동이 교회를 전도할 수 없게 하였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같지만 사실이 그렇다. 많은 목회자들이 전도하기 위해 전도세미나에 참석하여 감동받고 그 전도프로그램을 적용시키다 열매가 없어 포기하고, 또 다른 세미나에 가서 배운 대로 적용하려다 또 실패하고, 그렇게 실패를 여러 번 반복하다가 목회자와 교인들이 탈진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날까? 첫째 이유는, 전도운동이 현장실습이 빠진 이론과 동기부여만 하였기 때문이다. 둘째는 중대형 교회에서 개발한 전도법이좥브랜드전도좦이기에 작은 교회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도만은 중대형교회 맞춤형 방식과 작은 교회 맞춤형 방식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특히 전도방법에서 중대형 교회는 씨뿌리는 전도를 하지만, 작은 교회는 씨뿌리는 전도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추수하는 전도를 말씀하셨다(마9:37,38 ; 요4:35,36). 준비된 영혼을 추수하는 전도방식을 배워야 한다. 셋째는 전도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사도바울은 전략적인 전도를 하였다. 그런데 전도전략을 외면하고 기도하고 나가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넷째는 전문성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사도바울은 전도 전문가였다. 또한 제자들을 전도자로 세우시기 위하여 3년간 훈련시키셨다(막3:13~15). 전문가로 양성하신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목회자들은 전문성을 외면한 채 아무나 전도하면 된다고 가르친다. 필자의 교회에는 1년에 수백 명을 전도하여 정착시키는 전문전도자가 있다. 그런 전문가를 키워 전문전도자 중심으로 전교인이 참여하는 팀사역으로 전도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는 전도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전도대상자를 고려하지 않고 전도자 중심의 일방적 전도방식을 버려야 한다. 또한 죄인을 전제로 한 복음제시 전도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교회가 전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확실히 드러났다. 이제는 그러한 문제점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이러한 문제점들을 잘 해결하고 놀라운 열매를 맺어 다시 한 번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기를 소원한다.

2. 한국교회 전도비전은 있는가?

제사장적 사명과 역할을 감당하지 않는 이는 하나님께 버림받아
한국교회는 예루살렘 교회구조, 전도중심의 안디옥교회가 돼야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셨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창조의 비전을 이루시려고 언약을 맺으셨다.하나님은 이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에 안식하시며, 이날을 예배의 날 곧 안식일로 정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을 통해 예배 받으시기를 원하셔서 첫 사람 아담과 선악과로 언약을 맺으셨다(창2:17;호6:7). 왜 언약을 맺으셨을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 곧 자기백성을 삼으시려는 것이었다(레26:12).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나라 곧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고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사43:21).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청사진으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그곳에서 언약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게 하셨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여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고 말았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속의 비전을 이루시기위해 언약을 맺으셨다.·세계 모든 족속이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면서 우상숭배에 빠져들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은 종교의 씨앗이 있어서 하나님 대신 우상숭배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모든 인류가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사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그에게 씨와 땅을 약속하시며 다시 약속의 언약을 맺으신다(창15:18).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세워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주시고, 모든 족속이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나라를 하나님 섬기는 모델로 세우실 뿐 아니라, 모든 족속이 하나님께 돌아와 제사할 수 있도록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는 제사장 나라로 세우신 것이다.
시내산에서 10계명으로 언약을 맺은 이 언약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아 모든 족속이 하나님께 제사할 수 있도록 하는 사명의 언약이었다(출19:5,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시내산 언약이 구약성경의 핵심이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족속이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전도하는 복음의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 했다.

◆언약백성으로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여 버림받게 된다.·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도 하나님께 제사하는 대신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기 정체성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자기 사명을 감당하기를 촉구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자기들만이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받고 하나님을 섬길 자격이 있는 선민으로 선택받았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족속을 이방인으로 규정하였다.
이스라엘은 모든 족속을 전도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모든 인류가 하나님께 나올 수 없도록 만드는 장애물이 되고 말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내 이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된다. 왜 그들이 버림받게 되었을까? 그들의 잘못된 선민사상 때문이다. 하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을 삼아 왕으로서 예배 받으시며 영광 받으시길 기뻐하시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음으로 버림받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버림받았음을 언급하시고(마21:43) 사도바울도 이스라엘이 버림 받은 사실을 로마서에서 담담히 기술하면서 이방인에게도 경고한다(롬11:21).
왜 구약백성들이 버림받았는가?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전도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는 제사장적 사명과 역할을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돌아올 수 없고,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메시아 예수께서 구원받은 새 언약백성으로 새 이스라엘을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계1:6) 하나님께서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을 모든 민족 중에 장자로 세우시고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셨는데(출19:5,6;출4:22),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예수 그리스도로 자기를 믿는 새 백성을 장자로 삼으시기로 작정하셨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시어 12족장으로 구약 이스라엘을 세우셨듯이 12제자를 산으로 부르시고 산상수훈의 말씀을 선포하시므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신다(마4:17). 시내산 언약을 재현하시는 형태를 취하시고, 율법을 재 선포하시며, 새 언약백성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다. 그리고 해설하시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정리하신다.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그에게 속한 백성들을 새 언약 백성, 곧 장자인 제사장 나라로 세우시는 것이다. 그리고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예수께서는 3년 동안 전도를 훈련시키시고(막3:13~15),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14:23)’고 파송을 하신다. 마지막으로 주신 지상명령은 전도하여 교회를 세우고 이 땅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나라를 건설하라는 것이다(마28:18~20).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장 나라의 사명과 역할을 감당하지 않아서 버리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에게 속한 백성을 새 이스라엘로 세워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것이다(벧전2:9).
이제 예수 믿는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 즉, 제사장 나라가 되었다. 그러므로 제사장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의 기이한 빛(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들어가게 하신 예수의 아름다운 덕, 곧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 얻은 백성을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 사명을 깨닫고 학자요 저술가이면서도 그 길을 포기하고 온갖 핍박과 고난을 무릅쓰며 순교하기까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였던 것이다(고후9:16).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잘 알고 있었다. 진정한 예배회복은 불신자를 전도하여 그를 제물로 드리는 예배라고 선언한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 직하게 하려하심이라.”(롬15:16)
이래도 전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 삶의 존재목적이 전도하여 예배하는 교회를 세워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29장의 주인공이 되어야한다

사도행전은 전도하여 교회세운 역사를 증언하는 책이다. 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새 이스라엘로 제사장적 사명을 감당하였는가의 여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요절은 사도행전 1장 8절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승천의 때가 이르자 제자들에게 약속한 성령강림을 기다리라고 부탁하신다. 그때 제자중 하나가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가 이때니이까?” 하고 묻는다. 그가 질문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성령강림으로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전도하여야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답변하신 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신 행1:8말씀대로 되어지는 것이 사도행전이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이 과연 행1:8대로 이루어지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과 예루살렘 교회·성령께서 청시적 언어현상으로 강림하셨고 통역 없이 방언으로 말하고 듣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성령강림으로 언어가 통일을 이루어 서로 원활하게 교통하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증거를 보여 주신 것이다.
이 놀라운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성령 충만한 베드로가 설교하기 시작한다. 전도부흥회를 통해 3천명이 회개하며 예수를 영접하고 세워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다. 엄청난 대형교회로 출발하였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에 복음을 증거하여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구심점이 된다. 그렇지만 이 예루살렘 교회는 행1:8 말씀대로 가서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전혀 힘쓰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기에 전념한다(행2:46).
그러자 주님은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나게 하여 사방으로 흩어버리신다. 결정적인 사건이 스데반의 순교다.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8:1). 주님은 예루살렘 교회와 사도들이 행1:8을 따라가지 않을 것을 아시고 사도바울을 준비하신다(행9:15). 그리고 베드로에게 이방인 고넬료 집에 들어가 이방인을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의도를 보게 하신다. 그렇지만 베드로와 예루살렘 교회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아 결국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안디옥 교회와 사도바울.·그러나 안디옥교회는 출생부터 예루살렘교회와는 달랐다. 안디옥교회는 평신도 전도자들이 헬라인(이방인)을 전도하여 세운 교회이며, 바나바와 사도바울 외에도 3명이나 더 함께 공동목회사역을 한 특수한 교회였으며, 무엇보다도 세워진지 1년밖에 되지 않은 교회가 바나바와 바울 곧 담임목사를 전도자로 파송하는 교회였다(행13:2,3). 예루살렘교회는 모여 예배하는 예배중심의 교회였다면 안디옥교회는 파송예배가 있는 교회로서 전도중심의 교회였다.
예루살렘형 교회는 예배를 가장 강조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런 교회는 기존 성도 중심으로 예배하는 교회다. 안디옥교회형 교회는 전도를 가장 강조하므로 새가족 중심형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안디옥교회형 교회가 제사장적 예배를 드리는 교회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떤가? 거의 모든 교회가 안디옥교회가 아닌 예루살렘교회 구조로 가고 있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교회의 부흥과 회복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사도바울과 안디옥 교회는 행1:8을 나침반으로 삼고 주의 명하심 따라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므로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사도바울은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전도 네트워크를 이루고 1,2,3차 전도여행을 통해 전도하여 교회세우는 사역을 감당하였다.
2차 전도여행에서 상기해야 할 것은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마가문제로 다투고 헤어지게 되는데, 이 다툼에서 잘못한 사람은 사도바울이었다. 바나바는 본명이 요셉인데 ‘권위의 사람’이란 뜻으로 바나바라는 이름이 붙여진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충격적인 것은 두 사람이 다투고 헤어진 후에 바나바는 성경에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행1:8을 따르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역사의 무대에서 아웃당하고, 행1:8을 따라가는 자만이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성경의 명백한 증언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주님이 쓰시는 사람은 제사장적 예배를 드리기 위해 전도하는 자이고, 주님이 쓰시는 교회는 예루살렘교회형이 아닌 전도하는 안디옥교회형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존재목적은 전도하여 교회세우고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요, 교회의 존재목적도 안디옥교회처럼 행1:8을 좇아 복음전하는 전도자를 세워 전도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한국교회가 행1:8을 좇아 복음증거 하는 안디옥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복음전하는 전도자를 많이 세워 사도행전 29장을 기록하기를 소망하게 된다.

3. 한국교회, 전도자는 준비되어 있는가?

예수님과 사도바울의 전도는 전문전도자 중심의 팀전도 전략
전도자는 목회자 말에 순종하고, 전문지도자로서 자질을 길러야

전문전도자중심의 전도 팀사역 전략

◆예수님의 전도 전략과 사역
예수께서는 이 땅에 전도하기 위하여 전도자로 오셨다. 예수님은 ‘보냄받은자’ 의식으로 전도하시며 전도자를 세워 훈련시키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자로 부르셨고(마4:18), 또 그들을 현장에서 전도훈련을 시키셨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전도하는 삶이었다. 주께서는 3년 동안 전도현장에서 전도하시며, 제자들을 전도훈련 시키신 것이다. (막3:13~15)에서 밝히신 것처럼, 자기의 뜻을 이루시려고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어 함께 생활하셨다. 전도 마인드 작업을 하시기 위해서였고 또 전도를 가르치시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은 오직 전도에 관심하셨고 또 제자들을 전문전도자로 기르셨다. 주께서 제자들을 임상 훈련시킨 것은 오직 전도 임상훈련 뿐이었다(마10:5~15). 2명씩 짝지어 내어보내시고, 전도대상자를 정해주시고, 합당한자를 찾아내어 그곳을 떠나기까지 그 집에 머물도록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전도전략을 살펴볼 수 있다. 한 지역을 택하여 12제자를 그곳에 보내어 집중하여 전도하게 하셨고, 한집에 머물도록 하신 이유는 그 집을 거점으로 열매 맺은 자들이 모여 교제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후에 사도바울은 주님의 전략을 적용하여 교회를 세우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께서는 전도전문가이신 자신과 12제자 그리고 수종드는 여인들, 70인 전도대가 함께하는 팀 사역으로 전도하였음을 알게 된다.

◆사도바울의 전도 전략과 사역
사도행전에서 놀라는 것은 전도자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사도들, 빌립과 스데반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전도부흥사들이었으며, 끝까지 전도하지 않는다. 또한 스데반은 순교했고 빌립도 후에는 전도하는 흔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예수님처럼 전략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역사를 이룬 사도바울은 예수께서 전도하신 방식을 잘 적용하여 전략적으로 전도하였다. 사도바울이 전도여행(1,2,3차)을 할 때 팀을 이루어 전략적으로 전도하였음을 보여준다.
전문 전도자 중심의 팀 전도 전략으로 전도한 분은 오직 예수님과 사도바울뿐이다. 예수님과 사도바울은 전문전도자이었으며, 교회를 세우는 전략으로 전도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는 준비된 전문전도자를 중심으로 팀 사역을 하여야 할 것이다. 전교우가 협력전도자가 되고 전문전도자에게 열매 맺도록 하는 것은 운영의 기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전문전도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전도자 위치와 역할

기독교는 여러 교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또 개 교단마다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장로교의 장로정치, 감리교의 감독정치, 침례교의 회중정치 등, 그러나 정치구조 이전에 교회목회구조에 대해 성경의 증언을 통해 고찰하고자 한다.
주 예수께서 교회 목회구조에 대해 지상명령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왕권선언)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전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정착)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양육, 사역)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나님 나라 성취) 하시니라”(마28:18~20).
예수께서 제시한 목회구조는 ‘전도 - 정착 - 양육 - 사역’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도자 사도 바울도 예수님과 같은 목회 구조를 제시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전도) 각 사람을 권하고(정착)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양육)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사역)”(골1:28) 이러한 목회구조로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교회의 일꾼 곧 교회의 직원을 세우시고 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
교회를 세우기 위해 두 직분이 언급되고 있다. 사도와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와 목사 교사가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들이다. 교회법을 살펴보면 교회의 직원을 비상직원과 통상직원으로 구분한다. 비상직원은 신약성경이 완성되기까지의 교회직원을 말하며, 통상직원은 그 후 모든 시대의 교회 직원을 일컫는다.
사도(apostles)는 보냄 받은 자이다. 사도의 자격으로는 주예수로부터 직접 부름 받고,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목격한 자로 직접 파송 받은 자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자격이 갖추어져야 하는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복음을 증거 하는 자로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는 복음증거 하는 전도자라 할 수 있다. 또한 선지자(prophets)는 목회자를 말한다. 선지자는 구약의 선지자와 같이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아 예언하는 자들이었다. 성경이 완성되지 않은 시대이기에 비상적인 방법으로 선지자에게 계시하여 성도들을 양육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사도시대의 초대 교회는 사도와 선지자가 비상직원으로 사역하였다. 사도가 전도하여 교회가 세워지면 목회를 하는 자는 선지자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복음전하는 전도자와 목회를 하는 목사교사가 교회의 직원이 되었다. 전도자가 전도하여 정착시키면 목사교사는 양육과 훈련으로 교회를 세워 나갔다. 전도자 사도바울과 목사교사인 디모데가 역할 분담하여 사역하므로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있음을 본다.
전도된 자 곧 성도를 온전하게(katartismos) 훈련시켜, 봉사의 일을 하는 사역자로 세워,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다.
건강한 목회를 위해서는 전도자와 목회자가 주께서 제시한 목회구조대로 동역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구조와 시스템을 갖추어야 전도목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회구조를 가진 안디옥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셨음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 전도목회만이 주님이 디자인하신 교회를 세우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가 이러한 목회구조로 전도자와 목사가 동역하여 교회세우기 운동을 벌여 나갈 때 신사도행전의 역사는 일어나리라고 확신하게 된다.
우선 먼저 목회자는 평신도 전도목회자를 세워 동역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전문전도자를 양성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교회가 전문전도자를 양성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사역이다. 목회자 마인드를 가진 전도자가 곧 전문전도자이다. 목회자 마인드가 없이는 교회를 세우는 전도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담임목사와 똑같은 교회 마인드를 가진 전도자가 세워진다면 목회하기가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필자가 목회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 전도마인드가 되어 있지 않은 부교역자보다 열 몫은 하기 때문이다.
전문전도자의 위치는 목회자보다 우선한다. 먼저 “복음전하는 자”를 언급하고 그 다음으로 “목사교사”를 언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도자가 목회자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전도자보다 목회자가 교회에서 훨씬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왜냐하면 목회자는 교회의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창조질서에서 모든 영역은 핵을 구심점으로 이루어진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도자 목사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 하나님은 교회 지도자로 세운 목사를 통해 뜻을 보여주시고 이루어 가신다. 그러므로 전문전도자가 목사 동역자이지만 철저하게 목회자 권위아래서 순종하며 사역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교회에서의 전도자의 위치와 역할을 살펴보았다. 에베소서에서 제시한 목회 구조 속에서 전문전도자를 양성하여 전도목회 동역자로 사역해야 할 것이다.

전문 전도자의 자질

성경에서 전도자의 위치는 목회 동역자이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자질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전도자는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할까?
첫째는 전도자의 인격이다. 인격은 관계하는 그릇이다. 인격이 갖추어 있지 않으면 어떻게 상처 입은 자들을 수용할 수 있겠는가? 또 전도는 목사님과 동역자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불어 사역이기에 팀원들과의 관계가 원만해야만 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8~29)
예수께서는 온유하고 겸손하시기에 멍에를 메고 그들을 섬기는 사명을 감당하셨다. 전도자의 인격이 온유하고 겸손해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나아와 쉼을 얻지 않겠는가?
둘째는 영적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도는 준비된 영혼인지, 또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야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훈련을 통해 영적통찰력을 개발해야 한다. 어떻게 영적통찰력으로 준비된 영혼인지, 또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을까?
예수께서 제자들과 길을 가고 있을 때 소경이 구걸하고 있는 것을 보시며, 측은하게 생각하며 주목하실 때 날 때부터 소경인 것을 영적통찰력으로 파악 하셨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날 때부터 소경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너무도 불쌍하여 아픈 마음으로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소경된 원인이 뉘 죄 때문인가를 묻는다. 예수께서는 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서 영적 통찰력을 개발하는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영적통찰력은 관점을 바꾸면 된다는 사실이다. 제자들의 관점은 율법 주의적 시각이고, 예수님의 관점은 복음주의적 시각이었다. 정죄하는 율법적 시각을 갖고 있는 한 영적 통찰력은 개발되지 않을 것이다. 불쌍히 여기는 주님의 마음으로 다가가면 영혼의 갈급함과 상처받은 마음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될것이다.
셋째는 사랑의 감수성이다. 감수성이란 상대의 마음을 느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아픔을 깊이 느끼시며 우셨다. 예수님처럼 공감으로 교감하는 전도자가 되어야 전도대상자의 마을을 열게 할 수 있고, 또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전문전도자이기에 전문성이 요구되며, 전문성을 갖추지 않고는 상처 입은 불신자의 마음과 영혼을 어루만질 수 없다. 순발력이 있어야 상황 따라 관계 할 수 있고 또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섬세함이 필요하다. 섬세함은 훈련을 통하여 갈고 닦을 수 있다. 책임감도 중요하다. 한 영혼, 한 영혼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책임감 있게 전도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전문 전도자이기에 인격, 영적 통찰력, 사랑의 감수성, 전문성 등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훈련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한국교회 전도운동은 거의 전도자의 자질에 침묵하고 있다. 왜 그럴까? 전도자의 자질을 강조하면 전도가 쉽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도가 쉽다는 말에 현혹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을 3년 동안 훈련시키신 이유가 전도자의 자질 때문이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차분하게 긴 안목을 가지고 예수님의 방식대로 전도자를 발굴하여 잘 훈련시켜 전도자의 자질을 갖추게 한다면 놀라운 전도열매를 맺게 될 것이고, 다시 한 번 전도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게 될 것이다.

4. 한국교회, 전도법의 대안은 있는가?

탁월한 열매형전도법의 원리

필자는 평신도 시절에 수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였지만, 목회자가 되어서 전도가 되지 않았다. 수없이 실패를 거듭한 후에 전도은사가 강하다고 생각되는 평신도 한명을 집중훈련시키며 전도현장에서 이 전도법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후에 검증을 받기위해 성경을 살펴보다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가 전도현장에서 개발한 전도법이 예수께서 하신 전도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좥성육신적 관계전도 법좦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성육신적 관계전도 법이란 어떤 전도법인가? 그 원리를 빌립보서 2장6절부터 8절에서 발견하게 된다.
▲성육신의 자세-예수께서는 본체가 하나님이신데도 하나님으로 주장하지 않으셨다.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에서 “취하다”는 단어가 ‘도적질하다’라는 의미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이 되려고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본체를 도적질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본체가 하나님이신데도 동등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이러한 자세와 태도를 가지셨기에 성육신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전도자에게 이러한 자세 곧 겸손이 필요한 것이다.
▲성육신의 목적-왜 성육신하셨을까? 종의 모습이 되어 섬기기 위해서였다. ‘종의 형체를 가져(taking the very nature of a servant)’라고 증언한다. 주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죄인을 주인으로 모시고 섬기는 매우 자연스러운 종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적 관계전도 법이란 전도대상자를 주인처럼 생각하고 종이 되어 섬기는 전도법이다. 왜 전도에 열매가 없을까? 전도자가 교회에 데리고 가기 위해 일방적인 전도를 하기 때문이다.
▲성육신적인 삶-예수께서 종으로 섬기시기 위해 성육신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고 결국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생명까지 바치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삶이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8절)
이 구절에 성육신, 공생애, 십자가 구속이 함께 연결되어 있음이 특징이라 하겠다. ‘성육신 - 공생애 - 십자가구속’을 연결하여 이해하여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성육신적 관계전도 법의 적용

그렇다면 예수님과 사도바울은 어떻게 전도하셨을까?
▲예수님의 전도방식-예수께서는 3년 동안 전도현장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고치시는’ 사역(마4:23)을 하셨다. 또한 3년 동안 전도현장에서 제자들에게 전도를 가르치셨다(막3:13~15). 예수께서는 팀 전도전략(전문가 예수님, 12제자들, 수종드는 여인들, 70인 전도 대)으로 전도하셨고, 전도방식은 섬기는 것이었다.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치료하는 사역이었기에 오히려 구제사역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분명히 천국복음을 전파하러 오셨다고 하셨으며, 마지막 지상명령이 구제명령이 아니라, 전도명령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전도현장에서 복음제시를 하며 전도를 하지만, 예수께서는 복음제시 방식으로 전도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복음제시 전도법은 로마서의 구원의 도리를 함축한 것으로 복음제시를 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게 한다. 그러나 복음제시의 문제점은 처음 만난 자에게 죄인인 것을 인정하게 하여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고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거부감을 가지고 핍박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전도대상자의 아픔을 보시고, 그들의 아픔을 끌어안는 방식으로 전도하셨다.
예수께서는 70인 전도대가 돌아와 전도보고를 하였을 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시며,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돌보아 주고 돌보아 주라’고 말씀하시며, 섬기는 전도방식으로 전도하기를 가르치셨다. 놀라운 것은 죄 없으신 예수께서 개인적으로 단 한사람도 죄인이라고 정죄하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관계전도를 하셨기에 전도대상자들과 식사 사역을 자주 하셨음을 보게 된다. 전도대상자는 주로 죄인과 세리들이었다. 그중에는 창녀도 있었다. 창녀와 세리는 그 시대에 주홍글씨의 대상이었다. 그들이 예수님과 한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였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이다. 예수께서는 창녀를 창녀로 보신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기구한 삶을 사는 여인의 눈물과 아픔을 보신 것이다.
세리 장이었던 삭개오가 사람들을 의식하여 망설이다가 뒤늦게 나아와 뽕나무에 걸터 앉아있었다. 누가보아도 그는 구경꾼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세리를 향하여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외치셨다. 세리의 소외된 고독과 외로움을 보시고 친구처럼 이름을 부르시며 함께 지내자고 다가가신다. 그가 어떻게 하였는가?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였다고 증언한다. 만약에 예수께서 삭개오에게 복음제시를 하였다면, 그가 즐겁게 예수를 영접하였겠는가?
또 예수께서 수가성 여인을 전도한 사례를 살펴보자. 예수께서는 뜨거운 한낮에 우물가에 앉아서 물 길러 오는 여인을 기다리고 계시다가, 그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비상식적인 제안을 하신다. 자기가 생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말도 되지 않는 제안인데도 이 여인은 뜻밖의 반응을 보인다. 준비된 영혼인 것을 파악하신 것이다. 그리고는 갑작스럽게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그녀의 아픔을 찌른다. 그녀는 당황하며 남편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때 예수께서는 그의 아픈 과거를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알고 계심을 드러내시며 “네 남편이 없다하는 말이 옳도다”고 하신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그녀의 아픈 과거를 드러낸 것은 그녀가 죄인이라고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픔을 치료하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전도대상자의 아픔을 끌어안는 성육신적 관계전도법으로 전도하셨던 것이다.
▲사도바울의 전도방식-사도바울도 예수님처럼 성육신적 관계전도법 곧 섬기는 전도방식으로 전도하였음을 볼 수 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9:19).
사도바울도 종으로 섬기며 전도하였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그는 늘 ‘빚진 자’ 의식(롬1:4)으로, 빚을 갚는 마음으로 종이 되어 섬기는 전도를 하였다.

탁월한 열매형전도법의 실재

필자의 훈련원에서 훈련받은 전문전도자는 처음 만난 전도대상자를 20~30분 안에 그의 아픈 과거를 함께 나누게 되며, 현장에서 교회등록을 하고 교패까지 붙이게 된다. 한 사례를 소개하기로 한다.
좬아파트에서 한 집 한 집 벨을 누르며 축호전도를 하다가 40대 주부를 만나게 되었다. (본 훈련원에서는 일방적인 노방전도를 하지 않고 아파트 축호전도만을 훈련하게 된다.) 언제나 그랬듯이 벨을 3번 누르고, 인기척이 없어 손으로 노크하면서 “잠깐만요. 이웃에서 왔는데요” 라고 하는데, “누구세요?” 하면서 문을 조금 열고 누군가하고 살핀다. 문만 열리면 발이 이미 들어가 있기에 닫을 수가 없다. 얼른 문을 잡아당기며 어느새 안으로 들어가 거실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본다.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물 한잔만 얻어먹고 갈게요. 참 인상도 좋으시고 귀티 나는 미인이시네요” 정말 귀티 나는 여인이었다. 그렇게 대화가 되어 여러 차례 재방문을 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다. 그동안 출입하며 어린 자녀들을 보면서, 재혼한 가정인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4차 재방문하여 커피를 끓여온 그녀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를 해주었다. 큰 아픔을 안고 사는 그녀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끌어안는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할 때 통곡하며 자기의 아픔을 쏟아놓는다. 바람둥이 남편의 외도에 견딜 수가 없어서 이혼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상처입고 가장 힘들어할 때 친정에서 받아주지 않아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큰 상처를 받게 된 것이다. 너무나 소외된 외로움에 남자를 만나게 되고 얼마 되지 않아 헤어지고, 이런 생활을 여러 번 반복하게 된 아픈 사연을 모두 털어 놓게 된다. 재혼만 3번째라고 한다. 너무도 가슴이 아파서 함께 부둥켜안고 또 울었다. 그리고는 이 아픔을 누가 치료할 수 있으며, 누가 위로해 줄 수 있겠느냐고 위로하면서 복음제시를 하였다. 전에 교회를 다녔었고 또 집사직분까지 받았단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자리에서 교회에 등록하고 교패까지 붙이게 되었다. 그 후로 친구가 되어 남편까지 전도하여 잘 다니고 있다.좭
탁월한 열매형전도법은 예수께서 긍휼의 마음으로 상처 입은 자를 치료해 주었듯이,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으로 섬기는 전도법이다. 필자가 개발한 이 전도법은 파악하는 단계, 관계맺는 단계, 열매맺는 단계, 정착시키는 단계로 이루어진다. 제일 중요한 것이 파악하는 것이다. 대상자가 준비된 자인지, 또 그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준비된 자는 영적 갈급함이 강하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환경의 고난, 육체적 질병, 마음의 상처, 영적인 눌림 등이다. 이 두 가지를 먼저 파악할 수 있어야 전도할 수 있게 되는데, 훈련으로 파악할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갖게 된다.
예수께서 전도현장에서 길가에 구걸하는 소경을 보고 불쌍한 마음으로 주목하였다(요9:1~6). 날 때부터 소경으로 기구하게 살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누구 죄때문인가 하고 묻는다. 주님은 누구의 죄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신다고 대답하신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관점과 시각이 달랐던 것이다. 준비된 자인지, 그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영적 통찰력은 제자들처럼 율법적 시각 곧 정죄하는 시각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으로 그의 아픔을 불쌍히 여기는 복음적인 시각으로 주목할 때 열리게 된다.
또한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감수성으로 상대의 아픈 감정을 깊이 공감할 때, 마음을 열게 되고 마음의 상처를 나누게 된다. 현대인의 가장 아파하는 것은 마음의 상처다. 이 아픔을 어루만지며 끌어안고 진정으로 위로하고 나눌 수 있어야 전도가 된다. 필자의 훈련원에 전문 전도자들은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성육신적 관계전도 법으로 한해 수백 명씩 전도열매를 맺고 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예수께서 문밖에 서서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고 계신다. 예수님처럼 문 두드리는 전도법이다. 대문을 두드리고, 마음 문을 두드리는 축호전도를 한다. 가정에 방문하여 마음을 열게 하여 아픔을 함께 나누는 전도법이다. 사람들은 진정으로 자기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감을 갖게 되면 쉽게 마음을 열고 자기의 아픔을 쏟아내는 것을 전도현장에서 많이 경험하게 된다. 예수님처럼 긍휼의 마음으로 다가가는 전도자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내어놓지 않았던 아픔의 상처를 내어놓게 되는 것이다.

5. 한국교회, 다시 한 번 전도의 부흥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한국교회는 교인의식, 교회구조, 신학교육구조 혁명 일어나야
전동운동을 단순사역이 아닌 종합적 사역으로 여기는 자세 필요

전도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전도가 안 될 수밖에 없는 환경적 구조를 갖고 있다. 이 환경적 구조가 무엇이며 또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교인들의 의식구조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전도를 왜 해야 하는가? 이 물음은 출애굽사건에서 분명히 보여준다. 전도자(선지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목적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삼기 위해서였다(출3:12). 또한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자기백성을 구원하러 오신 전도자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과 구원하신 목적도 오직 하나님 나라 건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갖고 사명을 감당하는 전도자를 세워야 한다. 모든 성도들이 기복주의 신앙의식에서 깨어나 하나님 나라 건설에 대한 사명감으로 살아가게 하는 복음주의로의 혁명이 일어나야한다.
▲교회구조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지금의 한국교회는 양육중심의 관리형 교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상교회는 전투교회다. 전투교회는 공격형 구조를 가져야 한다. 전도 중심의 공격형 구조로 바꾸지 않으면 전도목회가 될 수 없다. 주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방식과 직원에 대해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부터 16절까지 확실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성도를 훈련시켜서(온전케하며-prepare) 봉사(섬김)를 하게하는 사역자로 만들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교회의 직원이 사도와 선지자, 복음전하는 전도자와 목사교사이다. 이들은 교회 세우기 위해 특별히 소명 받은 교회의 직원들로서 비상직원과 통상직원이 있다. 사도는 보냄 받은 자로 전도자이며, 선지자는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비상적으로 예언을 통해 계시를 받아 성도들을 양육시키는 목회자이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는 사도인 전도자와 선지자인 목사교사 곧 목회자가 교회세우기 위해 특별하게 소명 받은 교회의 직원이었다.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복음전하는 전도자와 목회하는 목사교사가 특별하게 소명 받은 교회의 직원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목회 구조다. 그러므로 교회는 먼저 전도하여 정착시키는 전문전도자가 세워져야 한다. 목회자가 특별한 소명을 받고 신학교육을 통한 목회자 훈련을 받았듯이 전도자도 훈련받은 전도목회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전문전도자와 목회자가 동역자로써 협력하여 교회를 세워야 주님이 원하시는 전도형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문전도자는 평신도 전도목회자(lay pastor)이다. 목회자는 전문전도자를 목회에 동역하는 평신도 목회자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질서(church order)가 중요하다. 피조세계의 모든 영역은 질서를 위해 조직으로 이루어졌다. 조직의 구심점에 지도자가 있는데, 교회질서를 위해 지도자인 교회의 담임목사를 구심점으로 하여 교회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지도자인 담임목사의 권위에 철저하게 순종해야 한다. 역할보다 앞서는 것이 위치이며 질서이기 때문이다.
▲신학교 구조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가장 큰 문제는 신학교의 구조다. 지금 전도목회자들이 하소연하는 것은 전도목회를 가로막는 자가 다름 아닌 부교역자들이라는 것이다. 신학교육의 전도실천 신학의 부재로 전도목회에 대한 마인드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도사가 전도를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도를 거부하는 기현상이 오늘의 현실이다.
교리 신학 중심에서 전도실천신학 중심의 교육과정을 통해 전도자 목회자를 배출하는 것이 시급하다.
학부에서는 철저하게 현장전도를 알고 전도하는 전도사를 배출하고, 대학원 과정에서는 설교 잘하는 강도사로 기르고, 그다음에 목사수업(리더십, 목회경영, 목양 등)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전도운동을 펼쳐 나가야 한다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전도부흥이 일어나려면 보다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전도운동이 적극적으로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전도운동을 일으켜 나갈 수 있겠는가?
▲개척·미자립교회 살리기 운동을 해야 한다-100명 미만의 교회가 한국교회중 85%에 해당한다고 한다. 도시에서 30명 미만의 개척미자립교회는 실재적으로 목회를 포기한 교회들이 많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주일예배는 드리지만, 생활문제로 목회자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척미자립교회가 살아나지 않는 한 한국교회가 회복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개척미자립교회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방법은 오직 하나, 전도할 수 있도록 전도자를 세우는 일이다. 개척미자립교회는 전도할 전도자가 없기 때문에 우선 목회자 사모들을 훈련시키는 길밖에 없다. 교회를 개척할 때 목회자가 전도 마인드가 없기 때문에 전도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데도 전도를 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열악한 상황이라해도 개척미자립교회 목회자가 생명 걸고 전도하는 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전도에 대한 대안이 없이 교회를 개척하면 안 된다.
현재 목회가 되지 않는 개척미자립교회를 전도하게 할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일까? 직장생활하고 있는 목회자 사모들을 모아서 전도 훈련시켜야 할 것이다. 그들이 전도자가 되면 직장 생활하지 않고 목회를 하여 교회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생활비 때문에 결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훈련받는 기간 동안 기본생활비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필자의 훈련원에서는좥개척미자립교회 살리기 운동본부좦를 두고, 3개월간 기본집중훈련을 하며 생활지원비로 100만원씩 돕고 있다.
개척미자립교회를 살리는 확실한 대안은 전도할 수 있는 목회자를 세우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한국교회가 전문전도자를 많이 세워야한다-하나님은 전도자를 세워 세상을 구원하시길 기뻐하셨다(고전1:21).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 곧 전문전도자다. 그러므로 전도자를 발굴하고 훈련시켜 전도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길은 오직 하나 전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할 수 있는 전문전도자를 세워야 한다. 본원에서는 전국에 있는 한국교회를 위해 10만 명의 전문전도자를 세우기 위해 전도부흥회를 시행하고 있으며, 1년 반 동안 약 2,000여명의 전문전도자로 헌신할 자를 결단하게 하여 8주 동안 현장실습 전도훈련을 시켜왔고 많은 전문전도자를 양성하였다.
전문전도자가 되기 위해 매일전도자로 결단하고 훈련 받아야 한다. 전문 전도자가 되려면 매일 전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매일 전도 전문자로 결단하게 하여 훈련받을 수 있는 자를 세우기 위한 전도부흥회를 개최해야하고 또 부흥회를 인도할 수 있는 부흥사단을 조직하여야 한다. 매일 전도하는 전도 전문가를 10만 명만 세울 수 있다면 한국교회는 전도운동이 활기차게 일어날 것이고 다시 한 번 부흥의 계절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전도 네트워크 운동으로 전국의 모든 지역에 전도 붐을 조성해야 한다-전도가 쉬울 때는 개교회별로 전도하여도 될 것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전도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교파를 초월하여 모두 일어나 함께 전도 붐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전도 사례 교회들이 각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 교회들을 중심으로 하여 이 운동을 전개해 나가면 그 지역 교회들이 도전을 받게 되고, 노하우를 전수받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원에서는 그 일을 위해 전도 사례 교회들을 중심으로 전도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있으며, 서로 힘을 합하여 전도운동을 전개할 때 전도의 붐이 조성될 것이고, 또 모든 교회가 함께 열매를 맺고 교회가 부흥성장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게 된다.

전도운동은 종합적 다중사역

지금까지 전도운동은 단순 사역이었다. 이론적으로 동기부여만 하던 것에서 벗어나 훈련을 통해 방법만을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다중 종합운동으로 나가지 않으면 결실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본원에서는 다중 복합적인 방식으로 7대 사역을 전개해 나가로 있다. 그 7대 사역을 소개하기로 한다.
▲전국 목회자 부부초청전도목회 특별 세미나-먼저 목회자가 변해야 한다. 전도목회를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전도 설교를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전도자를 어떻게 세울 수 있는가? 전도팀을 어떻게 운영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들을 함께 나누고, 무엇보다 전도관점에서 본 성경이해, 전도관점에서 본 하나님 나라와 교회 그리고 목회에 대한 이해를 하게 한다. 그리하여 전도목회 곧 전도-정착-양육-훈련(사역)의 과정으로 목회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역이다.
▲전국 전도자 세미나-현재 18차 세미나가 개최되었으며, 목회자와 전도자가 함께 참여하여 전도하는 삶을 살도록 헌신을 결단시키는 자리이다. 철저하게 동기부여를 하여 전도하지 않고는 신앙생활을 잘못하는 것으로 인식을 갖게 하며, 전도중심의 생활패턴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과정이다.
▲현장실습 전도학교-현재 8기가 진행 중이며, 500여 명씩 참여하여 실습하고 있다. 훈련교재1권을 중심으로 8주 동안 진행되며, 전도자의 기본 자질에 대해 증거하고, 평신도 전도자는 현장에 나가 아파트 축호 전도를 실습하고, 목회자는 개교회에서 전도자를 훈련시킬 수 있도록 훈련교재를 함께 나눈다. 그리고 모두 모여서 보고회를 통해 바른 전도방법과 현장 노하우를 공개한다. 이 기본 훈련을 마치는 마지막 날은 하루 종일 각 교회에서 훈련받고 전도한 사례들을 보고하는 축제로 갖게 된다.
이 전도학교는 현장실습을 강조하며 특히 자기현장에서 주3일 이상 전도하도록 하고 현장전도숙제, 간증숙제, 독서숙제 등으로 진행되는 ‘숙제학교’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었다.
▲전도 부흥회-전도학교에서 훈련받은 교회를 중심으로 개교회에 가서 전도부흥회를 인도하게 된다. 교인들의 전도 마인드 작업을 하고, 또 매일 전도 헌신자를 결단시켜 전도팀을 구성해주는 부흥회이다. 지금까지 시행한 교회에서 놀라운 역사와 매일 전도헌신자들이 세워지고 있다. 각교회의 교인중 10%이상이 매일 전도자로 헌신하는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현장체험 훈련(전도코칭) 및 전도목회 컨설팅(전도목회 현장 지원)-전도형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전도하다가 열매를 잘 맺지 못해 좌절하는 전도자들을 돕는 사역이며, 팀 관리를 잘 할 수 있도록 코칭과 컨설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장실습 전문 전도대학-한국교회를 섬기기 위한 일환으로 전도대학을 2~3년 과정으로 전문전도 목회자 훈련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전도하는 여전도사를 양성하는 여교역자반, 개척미자립교회 중심의 목회자 사모반, 그리고 평신도 전문 전도자반으로 편성하고자 한다. 평신도 전도자는 개교회 담임목사의 추천으로 입학 할 수 있고 담임목사의 인정 하에 졸업시키며, 평신도 전도자는 다른 교회에 청빙 받을 수 없도록 하여 종신 사역자로 충성하게 한다.
▲전국 전도 컨퍼런스-1년에 2회에 열리며, 각 지역 붐을 조성하는 각 지역 네트워크별로 전도대회를 갖고 2~3일로 한곳에 모여 전도 축제를 갖는다. 전도자 시상, 전도형 사례교회시상, 세미나, 보고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가짐으로 전도의 열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3대 구조혁명과 3대운동 그리고 7대 사역으로 전도운동을 펼쳐나간다면 한국교회에 다시 한 번 전도부흥이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전도비전을 통한 동기부여, 그리고 현장에서 아파트 축호전도로 기본기를 훈련하고 매일 전도자로 헌신하여 훈련받으면 탁월하게 열매 맺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끝) 한국교회, 전도목회만이 살 길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회구조는 예수님과 바울의 전도목회 구조
예배와 양육 시스템의 전환 통해 교회 부흥운동에 앞장서야

전도목회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현대교회의 목회구조는 여러 가지로 다양화되고 있다. 기도와 설교 그리고 심방으로 이루어지는 전통목회에서 영성목회, 말씀목회, 상담목회, 복지목회 등으로 전문화 또는 다양화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전도목회도 그 부류 중 한 분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성경은 전도목회 구조만을 말하고 있으며, 또한 교회의 기능과 역할에서도 전도중심의 목회기능과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전도목회 구조-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과 영성수련회를 하면서 교회 세울 것을 말씀하셨다(마16:18). 전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고백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이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천국열쇠 곧 전도를 통해 생명의 권세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임을 밝히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디자인하신 교회를 세우려면 전도목회를 하여야만 할 것이다.
또 주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지상명령을 주셨는데, 이 말씀에서 전도하여 교회세우는 목회구조를 분명하게 밝히신다(마28:18-20).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전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고’(정착).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양육). ‘지키게 하라’(사역(훈련)).
예수께서 제시한 목회구조는좥전도 - 정착 - 양육 - 사역(훈련)좦으로 이루어졌다. 목회는 전도로부터 시작되어 정착, 양육, 사역으로 이루어질 때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제시한 목회는 전도목회인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사도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되어(행13:2,3),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하였다. 1차 전도 여행은 전도하여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하였다.
2차 전도여행은 전도하여 세운 교회에 다시 가서 형제들이 잘 다니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정착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행15:36).
3차 전도여행은 양육하고 훈련하여 모든 제자를 굳게 세워 교회를 든든히 세우기 위함이었다. 사도바울의 전도 여행은 전도하여 교회세우는 전략적 전도여행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도바울 역시 전도목회 구조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우리가 그를 전파여(전도), 각 사람을 권하고(정착),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양육),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훈련)”(골1:28)
사도바울이 가르치는 목회구조도 예수님처럼 좥전도-정착-양육-사역(훈련)좦으로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전도목회는 현대교회의 전문화, 다양화된 목회구조의 한 부류가 아니다. 전도목회는 목회의 본질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도목회를 하지 않으면 건강한 목회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도하여 교회를 세워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도분야를 부정하면 목회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교회의 목회 구조는 어떠한가? 전도가 빠진 양육중심의 목회라 할 수 있다. 과연 전도가 빠진 목회를 건강한 목회라 할 수 있겠는가? 전도는 교회부흥의 수단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목회본질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교회세우는 교회직원, 곧 교회를 세우기 위해 특별히 소명받은 자를 복음전하는 자와 목사교사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하심이라.”(엡4:11, 12)
전도목회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훈련된 전문전도자 곧 평신도 전도 목회자를 세워야 한다. 초대교회에서 전도자 사도 바울과 목회자 디모데가 동역하였듯이 전문전도자를 세워 함께 동역하는 목회를 하여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성경적 목회를 회복하는 길이다. 전도자 없이 목회자가 목회를 하기 때문에 양육중심의 관리형 목회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전문전도자를 양성하여좥복음전하는자와 목사교사좦가 동역하는 전도중심의 공격형 목회구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기능과 역할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5가지 기능과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행2:42-47).
①예배(‘하나님을 찬미하며’) ②교제(‘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③훈련(‘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④사역(‘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⑤전도(‘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 기능과 역할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배를 제일 강조하는 예배 중심의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행2:46)의 말씀처럼 날마다 모여 하나님을 찬미하는 예배중심의 교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디옥교회의 기능과 역할은 예루살렘교회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안디옥 교회는 예배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전도 중심의 교회이다.
안디옥 교회는 설립 1년 만에 지도자인 바나바와 사도바울을 파송하여 전도하게 하는 파송예배가 있는 교회이었다. 예루살렘교회는 기존성도를 중심으로 예배가 드려졌고 안디옥 교회는 새가족 중심의 예배가 드려지는 것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세워 이방인을 전도하여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구약 이스라엘이 이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므로 그들을 버리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제사장 나라를 다시 세우게 된다(계1:6).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좥왕같은 제사장좦으로 세우시어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받게 하시고, 그들을 예배하는 백성삼아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길 원하신 것이다(벧2:9). 이 이유 때문에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안디옥교회처럼 전도하여 불신자(이방인)를 제물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이다(롬15:16).
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교회의 목회구조, 그리고 그 기능과 역할에서도 전도가 빠진 목회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목회의 본질인 전도목회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좥전도 - 정착 - 양육 - 사역좦구조의 전도목회를 회복하고, 좥전도 - 예배 - 교제 - 훈련 - 사역좦의 전도중심의 기능과 역할로 전도하여 예배하는 교회를 세우는 운동을 펼쳐 나갈 때 한국교회는 회복될 수 있을 것이고, 다시 한 번 주의 역사를 강하게 드러내는 부흥운동이 일어나리라고 확신하게 된다.

전도목회할 수 있는 교회환경을

전도목회를 하려면 가장 우선적으로 교회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거의 모든 교회의 목회구조가 양육중심의 관리형 구조이기에 전도자를 세워 전도에 전념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전도된 새가족이 교회에 정착하기 어려운 환경이기에 새가족이 잘 적응할 수 있는 교회환경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교회 환경은 외적환경과 내적환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외적환경은 예배시설 및 교육공간, 문화공간 등이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형교회를 제외하고는 외적환경이 잘 갖추어져있지 못하기에 내적환경을 강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가?
▲예배환경을 갖추어야 한다-처음나온 새가족이 예배에 잘 적응하여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예배환경으로는 중요한 것이 예배안내자와 성가대원 그리고 설교자라 할 수 있다. 전도목회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성도가 전도마인드를 갖추고 새가족이 잘 예배할 수 있도록 돕는 제사장적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특히 설교자는 새가족에게 맞는 설교 곧 회복과 치유 설교를 하여야 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쉼을 주는 설교를 하여야 할 것이다.
▲전도 양육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전도되어 교회에 나오면 새가족반에 편성하여 교제중심으로 한 가족 의식을 갖게 하여야 정착률이 높아질 수 있다. 그 다음은 전도·양육 시스템에 편성하여 좥예배 - 교제(교회생활) - 양육 - 성장 - 사역 - 월드비전좦을 갖게 하는 양육·사역을 시행한다. 이 과정을 마친 자들은 전도사역 시스템으로 재편성 한다. 전도 마인드를 갖게 하고 전도자를 세우기 위한 과정이다. 좥전도개관 - 전도비전(하나님나라) - 전도목표(교회) - 전도자 - 전도법 - 전도네트워크좦의 과정으로 훈련한다. 이 시스템과 교육과정을 본 훈련원에서 개발 중에 있다.
▲전도 및 정착을 위한 전교인 팀사역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성경에서 전도사역에 성공한 자는 전도 명령자이신 예수님과 사도바울뿐이다. 예수님과 사도바울은 전문전도자 중심으로 팀사역을 하였다. 이 원리와 전략을 적용하여 전문전도자를 양성하는 것이 우선이며, 이들을 중심으로 전교인이 참여하는 전도정착 팀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전문전도자를 중심으로 주1~2회 참여하는 자는 협력전도자로, 그리고 중보기도 협력전도자, 물질봉사 협력전도자, 행정봉사 협력전도자 정착사역 전도자 등으로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바울은 전문 전도자이었고 바나바는 정착전문가이었다. 이러한 구조로 인력을 개발하여 팀사역을 할 수 있다면 이상적인 사역이 될 것이다.
▲좋은 교회 만들기 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전도는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를 증거 하는 것보다 그의 몸 된 교회를 자랑하고 증거해야 한다. 불신자의 관심은 전도자가 다니는 교회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주의 몸 된 교회를 자랑하고 증거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교회자랑과 간증, 담임목사의 간증과 자랑, 교우들의 간증과 자랑을 잘하면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고 전도자들이 전도현장에서 좋은 교회를 만들어가는 작업이 된다.
전도자뿐 아니라 전교인이 서로 간증하고 자랑하며, 모든 교우들이 교회와 목사를 자랑한다면 건강하고 좋은 교회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예배환경, 전도양육 시스템, 전도·정착 팀사역 구성, 좋은 교회 만들기 운동을 전개해 나간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전도목회를 결단할 수 있는가?

지금의 한국교회의 대안은 전도목회라 할 수 있다. 전도하지 않고 교회를 세울 수 있겠는가? 이제 모든 목회자들이 결단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전도목회로의 전환을 시도한다면 분명 한국교회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고, 세계교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역사적인 교회가 될 것으로 확신하면서 전도자 사도바울이 목회자 디모데에게 부탁한 말씀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중 략)-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1~5)
디모데는 전도하는 전도자가 아니라 목회자이었다. 그러한 디모데에게 순교하기 전에 유언적인 권면을 하고 있다. 목회자인 디모데를 자기의 후계자로 삼아 전도하는 전도자가 되게 하려고 이렇게 권면하였을까?
이 문맥을 잘 살펴보면 목회가 전도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전제하면서 전도인의 직무를 감당하여 전도목회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전도자를 기르고, 전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며, 전도복음을 증거하는 설교자가 되어 주께서 디자인하신 교회를 세우라고 유언적 권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회복되고 부흥하려면 목회자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는 이 엄숙한 권고를 가슴으로 받아서 전도목회로 결단하여 전도자를 세우고 전도환경을 만들어 나간다면 한국교회에 부흥의 봄날이 올 것으로 믿고 기대하게 된다.
 장일권 /케쉐트 전문전도훈련원 대표·목사

한국교회 전도운동의 문제점과 방향.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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