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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 내에서의 부교역자 문제

한국교회허와실 기독교신문............... 조회 수 2787 추천 수 0 2009.09.30 11: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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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2009/05/20 - 한국교회 내에서의 부교역자 문제
부교역자 사역 실태 ‘심각’, 담임 목회자의 의식전환이 매우 시급하다

오케스트라에서 제2연주자의 위치처럼 목회전선에서 위치 중요해
평신도 리더를 길러내서 제자화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대안


일부 대형교회의 경우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부교역자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역한다는 것은 이미 한국교회 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입 밖으로 내는 못하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이자 은혜스럽지 못한 행동이라는 인식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가 공론화되지 못한 이유는 부교역자들이 다른 교역자들과의 관계 또는 자신의 장래를 염려해 선뜻 나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교회 업무를 실제적으로 담당하면서도 사실상 정확한 정체성을 갖고 있지 못한 이른바 ‘부교역자’들의 불안정한 처우 및 역할의 문제는 현재뿐 아니라, 내일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그대로 잉태하고 있다.


사례비는 최저 생계비 이하 수준

최근 서울의 한 중견교회 부교역자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근로자라면 누구나 혜택을 받아야 할 산재보험에조차 가입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해당 교회가 비교적 규모가 있어 성도들로부터 일정 정도의 도움을 받았지만, 다른 부교역자들에게 이 같은 상황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조건이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라면 어떠한 입장에 처해질지는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부교역자는 물론 노동자는 아니지만 4대 보험조차 가입되어있지 않는등 사실상 비정규직 처우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직설적이지만 현실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연봉에 관해 언급해보자. 부교역자로서 소속 교회에서 받고 있는 연봉 수준이 어떻게 되는지, 또 담임목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알면 이들의 문제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부교역자들은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현실적으로는 생활인으로 살고 있기에, 생활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극복을 하지못하는 한 금전문제에 대한 예속성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보통 부교역자의 급여수준은 담임목사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례비를 제대로 받는 부교역자의 경우 최저생계비에 걸쳐있지만 대부분 최저 생계비 이하 수준이다. 평균적으로 보면 의식주 자체가 어려운 정도는 아니지만, 그 외의 생활비 지출은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절약해서 살면 빚은 안지게 되지만 공부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는 수준에 있는 부교역자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부교역자들 사이에서는 주변에서 신학교를 간다고 하는 후배들이 있으면, 결혼할 때 직업이 탄탄한 여자를 만나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아침에 아내의 등을 툭툭 치면서 “돈 많이 벌어와”라고 말하는 남편을 ‘등처가’ 라고 하는데 부교역자들은 이것도 못한다고 하소연한다.
최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발표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교회의 신뢰에 대한 이상 징후가 부쩍 늘어났다. 심각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개신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호감도가 가장 낮았다. 한국교회의 신뢰 문제는 무엇보다 목회자 신뢰문제와 직결된다. 그러나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신뢰도 역시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일반인이나 성도들의 평가는 말할 것도 없고, 목회자 스스로가 그리는 자화상도 그리 긍정적이지는 못하다.


부교역자에 대한 성경적모색 필요

한국교회는 부교역자의 직제문제에 대해, 성경적 모색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오케스트라에서 제2 연주자의 위치가 중요한 것처럼 목회전선에서 부교역자의 위치는 중요하다.
교역자를 보조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교역자와 신도들의 중간에서 관계를 잘 조절하는 것이 주요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교회 대부분 교단 헌법들은 담임목사 이외의 모든 교역자는 담임목사의 목회를 단지 돕는 사람일 뿐,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을 전혀 인정해주고 있지 않다. 부교역자들이 자신의 지위와 처우의 부당함을 개선하는데 큰 관심이 없는 이유 또한 신학대학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헌법규정을 줄줄 외듯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예장 합동 헌법에 보면 “부목사는 위임 목사를 보좌하는 임시 목사니, 당회의 결의로 청빙하되 계속 시무하게 하려면 매년 당회장이 노회에 청원하여 승낙을 받는다”라고 되어 있다. 통합측 헌법에도 “부목사는 위임목사를 보좌하는 목사다. 임기는 1년이며 연임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목회자의 한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담임을 보좌하는 위치로 정체성이 설정되어 있다. 목회자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등급이 매겨져 있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부교역자는 이른 바 ‘등급외 목회자’이다.

부교역자들은 보통 교회에 부임하여 사역을 시작할 때, 담임목사나 장로들로부터 “잘해보자”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런데 이 말은 함께 잘해보자는 동역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담임목사 또는 교회 체제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을 의미한다.
최근 목회현장에서 ‘부교역자 십계명’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오직 담임목사만을 위하여, 담임목사만의 영광을 구하라. 담임목사 앞에서 세력을 만들지 말라. 담임목사 모르는 기도회나 심방을 가지 말라”등등의 내용이다. 누가 지어냈고, 어떤 경로로 퍼져 나가는지는 모르지만 ‘부목사 십계명’에서 성경적 근거로 제시되는 예를 보면, 예수님은 담임목사였고 제자들은 부목사였다는 식이다.
로마 가톨릭의 교회 역사를 보면 초대교회는 팀 사역의 개념이었고 돌아가면서 의장을 했다. 한국교회의 부목사 개념은 성경적이지 않다. 유교문화의 특징까지 가미되었다. 부교역자를 의미하는‘Assist Pastor’는 미국에서 따온 개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국과 같이 대화가 가능하고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문화에서와는 달리 한국교회는 계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화적·제도적으로 의사소통이 취약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대화나 소통대신 이 뜻이 철저하게 계급화 되어 나타나고 있다.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경우 많아

한편 부교역자의 처우가 열악한 것은 둘째로 친다고 하더라도 신분상의 보장은 거의 전무하다고 보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일정한 기준도 없이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부교역자들이 담임목사로부터 받는 처우는 차라리 압박을 당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내 일도 아닌데 나섰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맡았던 부서가 부흥되면 교회가 오히려 긴장을 한다. 그러다보니 자꾸 무엇을 하지 말라는 얘기만 하게 된다. “교회의 중심은 둘이 될 수 없다. 주인은 둘이 될 수 없다”는 식의 논리다. 그저 부교역자는 담임목사를 보좌하여 빛나게 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요, 그것을 못하면 아무리 영성이 깊고, 성경공부를 잘 가르치고, 설교를 잘해도 교회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
담임목사가 교회부서를 부흥시키는 것이 마음에 안들게 되면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라”며 부교역자 십계명을 전달받는다. 그래도 시정이 안되면, “교회을 떠나라”는 통보를 받는다.
당회가 있지만 담임목사는 인사문제에 있어서 개의치 않고 전횡을 한다. 담임목사 앞에서 목회얘기를 하면 대부분은 “부목사는 목회가 아니야. 목회는 담임목사가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1년이면 4~5명의 부교역자들이 교체되는 교회도 적지 않다. 주중에 인사도 없이 사임시키고 교인들이 “누구 전도사, 어느 목사님 어디 갔냐?”고 찾으면 “잘랐다”는 말을 쉽게 한다.
합동측의 경우에는 부교역자들은 당회원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임기도 보장되지 않는다. 교인들에게도 부교역자들은 능력이 없어서 담임목회를 못한다는 인식이 있다. 담임목사를 해야 제대로 된 목회를 한다는 인식은 평신도들에게도 있다.
교회 내 의사결정 구조에 만연된 비민주성과 목회자들 사이의 소통 부족으로부터 나오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의식이 있는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공동체성을 회복을 방해하는 가장 커다란 요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러한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은 부교역자들이 생활과 처우문제를 넘어서, 극단적 상황에서 충성의 대상을 누구로 삼을 것인가로 이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교역자들은 특정한 상황에서 신앙 양심이 충돌할 경우, 목회 현실에서는 자신의 신앙양심보다는 담임목사에게 충성할 것을 유도당하고 있다. 담임목사가 교단 임원에 출마한다고 돈봉투를 돌리러 다니는 부교역자들의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과연 이 부분에서 부교역자가 자기 신앙양심을 내세워 그것을 거절한다 해도 교회에서 남아있을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들을 제기하면, “억울하면 너도 어서 담임목사가 돼라”는 식이다. 교인들도 당연히 그렇게 보고 있다.


평신도를 제자화 하는 사역이 대안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자기와 다른 얘기를 한다는 이유에서 부교역자들을 경계한다. 평신도들을 제자로 삼고 사역을 위임하게 되면, 전임사역자를 쓰지 않아도 된다. 사역의 필요에 따라 사역자를 평신도중에서 세우는 것을 고민해보아야 한다. 초대교회에서도 한명의 목회자가 목양이 가능한 수는 30명 정도로 봤다. 현실적으로 한 교회당 적정교인을 200명 정도로 볼 때, 부교역자를 몇 명 두는 것보다는 평신도 중에서 목회사역을 위임할 수 있는 리더를 여러 명 길러내서 성경공부를 인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역시 제도적인 문제를 고치지 않고는 해결될 수가 없다. 헌법에 그렇게 명시하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못 고친다. 담임목사들에 의해 움직여지는데, 부교역자들은 총회나 노회에 참여할 기회도 없다. 모든 것을 담임목사들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 교회 내에서도 관심과 규칙이 담임목사 중심으로 되어 있고 담임자 스스로도 그 틀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의식 있는 담임목사가 개혁을 시도하려고 해도, 기존 교회에서는 완강한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담임목사가 의식을 가지고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제도적인 개선 없이는 이상적인 외침으로 그칠 확률이 높다. 담임목사가 부교역자에게 아무리 청렴하고 윤리를 강조하고, 인격적으로 대해주어도 어느 순간 한계선이 명확히 그어진다. 제도적 틀 안에서 인격적일 뿐, 그것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개혁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개 교회 내에서 시도가 있을 수 있고, 더 근본적으로는 교단 차원에서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거의 모든 담임목사가 과거 자신도 부교역자 생활을 경험했음에도, 그저 “그 땐 그랬지”하는 과정적 차원에서 문제를 보아서는 안된다. 이러한 구조를 과연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을 없을 것이지만, ‘나도 굴러봤으니 너도 굴러봐라’는 식의 악순환의 고리를 깨야 하는데, 문제는 이 구조가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교역자들 스스로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커다란 문제이다. 교육부서가 거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부교역자도 전문사역자가 생겨나야 한다. “내가 성공하여 담임목사가 되면 나도 저렇게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부교역자들에게 팽배해 있는 한 담임목사와의 사역체계를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 구조로 전환할 수 있는 해결책은 요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임장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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