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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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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상 초심자가 반드시 활용해야 하는 요긴한 도움들이 있으니, 이른바 '독송(讀誦)'과 '묵상'과 '기구(祈求)'가 그것으로, 이를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읽기'와 '사색'과 '기도'가 됩니다. 이 세 가지는 다른 저자가 다른 곳에서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다루고 있으니 내가 여기에서 그것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이 말만은 하고자 합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까닭에 초심자들과 숙련자들에게는 -다만 우리가 인간적인 차원에서 말하는 완성자들은 빼고- 읽기나 듣기가 선행되지 않는 한 사색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성직자는 책을 읽고, 저잣거리 사람은 성직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귀로 들으면서 성직자를 '읽게' 됩니다. 초심자와 숙련자는 먼저 사색을 하지 않는 한 기도하지 못합니다.
이를 입증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글로 기록되었든 구두로 표현되었든 하나의 거울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말해서 영혼의 '눈'은 바로 그대의 이성이요, 양심은 그대의 영적 '얼굴'입니다. 그대가 거울을 보거나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는 한 그대의 얼굴에 무엇이 묻은 것을 알지 못하듯이 영적으로도 빈번하게 범한 죄로 말미암아 소경이 된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듣지 않고서는 자기 양심에 더러운 때가 묻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다가 거울을 보고서든 누군가가 -자구적으로뿐 아니라 영성적으로 정확하게- 말해주든 자기 얼굴에 무엇이 묻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야 비로소 샘으로 달려가서 말끔하게 씻어냅니다. 만일 때 자국이 고의적인 죄라면 '샘'은 교회요, '물'은 고백이 되고 다른 모든 것도 여기에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사악한 충동에서 나온 아주 뿌리 깊은 죄라면, '샘'은 지극히 자비로운 하나님이요, '물'은 기도가 되며 그 밖의 모든 것은 이것과 결부됩니다. 따라서 초심자와 숙련자는 먼저 읽거나 듣지 않으면 생각하지 못하고, 사색이 선행되지 않으면 기도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53. 지성 · 기억 · 상상의 역할(2) (「무지의 구름」 35장 참조)
사랑하는 벗이여, 여기에서 잠시 우리의 작은 집(우리 정신)에 살고 있는 세 자매에게 시선을 돌려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관심을 집중해 온 것은 의지였고, 또 그 자매가 자기 방의 침묵과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껴안는 사랑어린 포옹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대에게 새삼 알려주고 싶은 것은 우리의 또 다른 힘인 지성과 기억과 상상 자매들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사랑의 탐색이라는 관상적 포옹에 이들을 활용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낱말기도에서는 예외지만 그것도 미미할 정도입니다. 사실상 이때조차도 우리는 이들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사랑의 기도가 진정한 것이 되려면 이 셋이 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대도 들어서 알겠지만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요, '사랑에 선행하는 것이 앎' 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을 드러내 보여주는 원천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원천들이란 교회의 가르침과 성서, 그리고 성인들과 학자들이 성서를 읽고 성찰했던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성서와 영성서적을 읽고 음미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과 우리 자신에 대해 터득한 바를 기도로 하나님께 쏟아내야 합니다.
간단하게나마 우리가 시편 22편을 바라보던 방식을 생각해보십시오. 거기서 우리는 기억과 상상과 지성을 활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독서와 사색과 기도가 포함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도는 지성을 활용하여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흔히 관상적 묵상과 구분하여 사변적 묵상이라고 하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이 터득한 바를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적 학습과 성서 읽기, 교회에서 예배 중에 봉독하는 말씀과 강론, 그리고 이런 것들을 두고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는 토의 등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하여 배웁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벗이여,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사랑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다시 말해 이런 일들 모두가 관상적 묵상을 통해 사랑으로 하나님을 껴안는 과정에 도움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런 일로 보내는 시간이 우리가 받는 은총에 따라, 그리고 관상기도 속에서 평화롭고 차분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부름받는 초대에 따라 여러 가지일 수는 있지만 결코 이런 일들을 소홀히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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