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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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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관상을 수행하는 이들, 즉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묵상은 말하자면 자신의 사악함이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듬어 아는 자각이자 갑작스런 깨달음입니다. 사전에 독서나 설교에서 도움을 받았다든가, 주제가 무엇이든 어떤 것을 두고 특별히 묵상했다든가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이런 돌발적인 인식과 깨달음은 사람보다 하나님에게서 얻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따라서 나는 그대가 이 단계에서 그대 자신의 사악함이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주제로 묵상하되, 그대 스스로 선택한 '죄'나 '하나님' 또는 그와 사한 낱말 하나를 끝까지 파고든다고 하더라도 전혀 꺼림칙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나는 분명히 그대가 이 문제에서 하나님의 은총에 감도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낱말들을 마치 그 구성요소들을 고찰함으로써 그대의 신심을 높일 수 있는 것처럼 상상력 풍부한 솜씨로 분석하거나 설명하지는 마십시오. 그대가 관상시간에 반드시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다만 낱말들의 있는 그대로를 전체적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죄'란 어떤 부분을 세세하게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덩어리 전체로서 의미를 갖는바, 이는 그것이 바로 그대 자신에 다름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에 그대가 덩어리로 응고시켜 왔고 바로 그대 자신에 다름아닌 이 죄를 거의 본능적으로 깨달아 아는 이같은 각성은 그대를 지상에서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는 가장 지독한 미치광이로 만들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대를 바라보는 사람치고 그 누구도, 행실이 온건하고, 무엇 하나 표정으로 드러내는 일 없고, 무슨 일이나 다 해내고, 더없이 차분하게 앉고 걷고 눕고 기대고 서고 무릎을 꿇는 그대의 외양을 보고는 그런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합니다!
54. 관상적 묵상이 다른 기도와 다른 점 (「무지의 구름」 36장 참조)
지금쯤 그대는 물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탐색을 위한 (사랑으로 하나님을 찾아 나서는) 관상기도가 다른 형태의 기도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합일하는 기도에서 우리는 지성과 기억과 상상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사랑의 표현인 낱말기도에 마음을 모으기만 하면 됩니다. 사랑하는 벗이여 이 낱말기도에서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혹은 그대의 과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분석하려고 노력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그대의 의지로 기울이는 사랑어린 관심을 통해 이 기도가 상징하는 사랑을 당장 체험하도록 하십시오.
내가 일반적 원칙으로 권유하고 싶은 것은 시종일관 똑같은 낱말기도를 바치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런저런 원칙으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의 사랑이 다른 낱말기도로 훨씬 훌륭하게 표상되거나 아니면 전혀 말이 없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대를 부르시는 방식이 어떤 것이든 그대로 그대 자신을 하나님께 들어올리도록 하십시오. 어떤 수련자가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한 해 중 절반 이상을 하나님의 현존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에 잠긴 채 침묵 가운데 감실 앞에 앉아 있기만 했답니다. 그저 하나님의 현존을 느껴야 한다는 원의 말고는 어떤 말도, 어떤 사랑의 느낌도 없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벗이여, 분명히 말하거니와 이것이 가장 높은 수준의 관상기도입니다. 그리고 이 하님에 대한 원의도 하나님께로부터 왔숨니다. 그 수련자를 사랑의 탐색으로 부르시고, 당신의 신성을 사랑의 탐색의 목적으로 드러내 보이신 분은다름아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합시다!
55. 관상적 자세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벗이여, 그대는 머지않아 관상적 묵상이 일상생활의 다른 활동으로 확산됨을 깨닫기 시작할 것입니다. 관상적 묵상은 그대가 바치는 또 다른 형태의 기도에 스며들어 그 기도를 한결 자연스럽게 만듭니다. 성서묵상, 교회의 가르침 또는 성덕을 좇는 그대의 삶을 교화시켜 주고, 시편 같은 남송기도나 전례기도에도 스며들어 변모시키며 이해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려 줍니다. 이것은 다만 기도활동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대가 사랑의 탐색이라는 특별한 기도를 통해 각별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지극히 평범한 것에 이르기까지 그대의 모든 활동들에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고전 10:31) 하나님의 일은 너무나 미묘하여 어쩌면 처음에는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대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이 먼저 그대에게서 이 같은 변화를 감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스스로 작용하여 그대를 변모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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