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 출처 : |
|---|
40. 관상에서는 성덕이든 악덕이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대는 '죄'라는 단일한 낱말의 내적 의미로 그대의 영을 채울 뿐, 그것이 어떤 종류의 죄인가, 소죄인가 대죄인가, 교만인가 분노인가, 시기인가 탐욕인가, 나태인가 폭식인가 아니면 음욕인가를 따지고 분석해서는 안 됩니다. 관상가에게 죄의 종류가 무엇이며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관상가는 그들이 관상에 임하고 있고, 제 아무리 사소한 죄라도 그들을 하나님에게서 떼어놓는 마당에 그들한테는 모든 죄가 다 크게 생각되기 마련입니다.
죄를 특정한 어느 부분으로 세세하게 따지지 말고 전체적으로 -하나의 덩어리로 -느끼십시오. 그리고 그 전체가 곧 그대임을 감지하십시오. 그런 다음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이렇게 부르짖으십시오. "죄! 죄! 죄! 도와주소서! 도와주소서! 도와주소서!" 이같은 영적 부르짖음은 어떤 사람에게서 말로 배우는 것보다 하나님께 체험으로 배우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이것은 미리 계획되거나 말로 발설하지 않는, 철저히 영적인 것일 때가 최상입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영혼과 육체가 다 함께 슬픔과 죄에 대한 부담으로 꽉 찬 까닭에 견디지 못한 마음이 말로 터져 나오는 때가 있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짤막한 단어도 똑같은 방법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대는 자신의 영을 이 낱말에 담긴 내적 의미로 확 채우되 그분의 일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특별히 고찰하면서, 예를 들어 그것이 좋다거나 더 좋다거나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좋다거나를 따진다거나, 혹은 그것이 육적이냐 영적이냐를 판단한다거나, 그것이 사람의 영혼 안에서 은총으로 싹트는 덕목인가 여부를 가늠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며, 또한 이 마지막 경우와 관련해서 그 덕목이 과연 겸손인가 사랑인가, 인내인가 절제인가, 희망 · 믿음 · 자제 · 순결인가 아니면 자발적인 가난인가를 구분하려고 들어서도 안 됩니다.
이 모두가 관상가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각각의 성덕 일체를 발견하고 체험하기 마련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 안에 있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창조하셨고 또 보전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차지하면 선익한 것 모두를 차지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어떤 선익한 것을 특별히 바라는 일은 전혀 없고 오로지 선하신 하나님만을 갈망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대 역시 은총에 힘입어 할 수 있는 한 똑같이 행동하면서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구하되 하나님 전부를 구하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오로지 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도 그대의 마음이나 의지에 작용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대가 이처럼 비천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내내 그대 자신의 주요 부분인 이 더럽고 구역질나는 죄 덩어리를 체험할 수밖에 없는 까닭에 그대는 마땅히 '죄'와 '하나님'이라는 두 낱말을 번갈아 가며 끊임없이 되뇌어야 합니다. 그대가 하나님을 소유했더라면 죄를 범하지 않을 테고, 죄를 범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 속에서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대는 '죄'라는 단일한 낱말의 내적 의미로 그대의 영을 채울 뿐, 그것이 어떤 종류의 죄인가, 소죄인가 대죄인가, 교만인가 분노인가, 시기인가 탐욕인가, 나태인가 폭식인가 아니면 음욕인가를 따지고 분석해서는 안 됩니다. 관상가에게 죄의 종류가 무엇이며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관상가는 그들이 관상에 임하고 있고, 제 아무리 사소한 죄라도 그들을 하나님에게서 떼어놓는 마당에 그들한테는 모든 죄가 다 크게 생각되기 마련입니다.
죄를 특정한 어느 부분으로 세세하게 따지지 말고 전체적으로 -하나의 덩어리로 -느끼십시오. 그리고 그 전체가 곧 그대임을 감지하십시오. 그런 다음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이렇게 부르짖으십시오. "죄! 죄! 죄! 도와주소서! 도와주소서! 도와주소서!" 이같은 영적 부르짖음은 어떤 사람에게서 말로 배우는 것보다 하나님께 체험으로 배우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이것은 미리 계획되거나 말로 발설하지 않는, 철저히 영적인 것일 때가 최상입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영혼과 육체가 다 함께 슬픔과 죄에 대한 부담으로 꽉 찬 까닭에 견디지 못한 마음이 말로 터져 나오는 때가 있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짤막한 단어도 똑같은 방법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대는 자신의 영을 이 낱말에 담긴 내적 의미로 확 채우되 그분의 일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특별히 고찰하면서, 예를 들어 그것이 좋다거나 더 좋다거나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좋다거나를 따진다거나, 혹은 그것이 육적이냐 영적이냐를 판단한다거나, 그것이 사람의 영혼 안에서 은총으로 싹트는 덕목인가 여부를 가늠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며, 또한 이 마지막 경우와 관련해서 그 덕목이 과연 겸손인가 사랑인가, 인내인가 절제인가, 희망 · 믿음 · 자제 · 순결인가 아니면 자발적인 가난인가를 구분하려고 들어서도 안 됩니다.
이 모두가 관상가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각각의 성덕 일체를 발견하고 체험하기 마련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 안에 있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창조하셨고 또 보전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차지하면 선익한 것 모두를 차지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어떤 선익한 것을 특별히 바라는 일은 전혀 없고 오로지 선하신 하나님만을 갈망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대 역시 은총에 힘입어 할 수 있는 한 똑같이 행동하면서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구하되 하나님 전부를 구하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오로지 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도 그대의 마음이나 의지에 작용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대가 이처럼 비천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내내 그대 자신의 주요 부분인 이 더럽고 구역질나는 죄 덩어리를 체험할 수밖에 없는 까닭에 그대는 마땅히 '죄'와 '하나님'이라는 두 낱말을 번갈아 가며 끊임없이 되뇌어야 합니다. 그대가 하나님을 소유했더라면 죄를 범하지 않을 테고, 죄를 범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 속에서 말입니다!
|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