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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을 위해 부름받는 사람

예레미야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221 추천 수 0 2009.10.10 14:36:05
.........
성경본문 : 렘1:4-10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2002.10.30

오늘은 제 44 주년 현충일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56년 국무회의 결의에 따라 현충일을 6월 6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현충일(顯忠日)을 포피 데이라 하여 1차 대전이 끝난 11월 11일(Armistice Day, 휴전기념일)에서 가장 가까운 주일을 잡아 행사를 치루고 있습니다. 1차 대전 중 가장 치열한 전투를 한 플란더즈에 장병들의 핏자국 마다 양귀비 꽃이 피었다고 하여 그들은 양귀비 꽃을 가슴에 달고 이 날을 지킨다고 합니다. 미국은 Memorial Day라 하여 5월 마지막 월요일을 현충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현충일 하면 무엇이 생각납니까? 저는 저희 집안 사람 중에 나라를 위해 순국하신 분이 없고 국립묘지에 안장된 분이 없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읽은 강제구, 이인호 소령이 생각납니다. 이인호 소령이 월남전에 참전하여 소속 부대원들과 함께 동굴 속의 월맹군을 소탕하다가 날아온 수류탄을 발견하고 부하들에게『수류탄이다!』라는 짧은 외마디를 남기고 자신의 가슴으로 수류탄을 껴안아 부하들의 목숨을 구하고 전사한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이 이야기를 읽을 때 직업 군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민족을 위하는 길은 군인이 되는 길만 있을까요? 여러 가지 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1. 나에게 주어진 일을 소명 의식을 가지고 수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북에는 앗시리아 남에는 에굽이 밀고 들어 올 때 예레미야를 사명자로 민족의 지도자로 불렀습니다. 나라가 위태로운 상태에 있었는데 분단된 조국은 부패하고, 정치 지도자들은 타락하였고, 경제 질서는 제 길을 가지 않아 가난한 사람은 너무나 가난하여 굶주리고 부한 사람은 호화롭게 살고 있을 때 였습니다. 그 때 예레미야를 하나님이 불렀습니다. 예레미야가 나선 것 아닙니다. 대통령에 국회의원에 출마한 것아닙니다. 나 지도자 시켜 달라고 금식기도 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기드온(삿6:14-16)을 불렀습니다. 솔로몬(왕상3:7)을 불렀습니다. 다윗(시131:1,2)을 불렀습니다. 바울(고전15:9,10)을 불렀습니다. 모세(출3:11)를 불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지만 더 나아가 사명자로의 부르십니다. 소명의식이란 무엇입니까?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이 하나님이 주신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일에 성실한 것입니다. 주어진 일을 내가 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보십시오. 지금 예레미야에게 일을 맡깁니다. 누가 맡깁니까? 하나님입니다. 자기가 좋아서 한 일 아닙니다. 4절 보십시오. 5절보십시오.
1)복중에 짖기 전에 알았다고 합니다. 2)태에서 나오기 전에 구별하였다는 것입니다. 3)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다고 합니다.
10절 보십시오. 누가 세웁니까?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매사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맡긴 일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들에겐 부족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경제적 위기 체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명의식입니다. 생산을 하는 자도 소명의식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소비하는 자도, 공부하는 자도, 대통령도, 공무원도, 신앙인도, 종교 지도자도, 직장인도 소명의식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할 때 그렇게 하지 않아요. 욕심으로, 명예를 위해, 이익을 위해, 권력을 위해, 출세를 위해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면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이 되고 결국 함께 죽습니다.
지한 해 우리가 경제 면에서 IMF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조 조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금융구조 조정하라는 것입니다. 기업 구조 조정하라는 것입니다. 경제 구조 조정하는 것입니다.
인원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무슨 이야기입니까? 매출을 줄여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생산을 조금 적게하라는 말 아닙니까?
"공급은 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은 그동안 자본주의 사회에서 믿어왔던 경제 법칙이었습니다. 한 200년 동안 물건만 만들어 놓으면 잘 팔렸습니다. 누가 먼저 많이 잘 만드냐가 관건이었습니다. 1950년 대까지는 영업이라는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만들어 놓으면 팔렸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생각해 보십시오. 백색 전화 청색 전화, 전화 놓으려면 대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핸드폰 보세요. 얼마나 선전을 합니까? 간첩 암호처럼 메스컴을 통하여 선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회사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온전하겠습니까? 미국이나 일본은 정보통신 회사가 하나라고 합니다. 칼 막스는 "자본주의가 망한다면 공급 초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소명의식이 없어요. 만드는데도 공장을 하는데도 직장을 다니는데도 소명의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이고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저 욕심대로 하고 돈만 되면 다하면 안됩니다. 남이 노래방하면 나도 노래방하고 남이 소수방 하면 나도 소주방하고 남이 통닭구이하면 나도 통닭구이 합니다. 누가 아이디어를 내어 유망 산업이 되면 우후 준순처럼 일어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형 매장이 잘된다고 다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형 유통 센타는 인구 8-9만에 하나면 된다고 합니다. 분당에 몇 개나 있습니까? 분당 40만이니까 많아야 다섯 개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12개나 된다고 합니다. 다 완공하면 16개라고 합니다. 인구 30만인 일산은 9개, 완공하면 13개라고 합니다. 뭐가 되겠습니까?
우리 한국이 과잉 생산의 주범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이 손대었다하면 왕창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보세요. 자동차가 2001년 연 600만대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이 연 650만대 일본이 연 530대입니다. 선진국이 볼 때 그 자동차 어떻게 팔겠냐는 것입니다. 2천년이 되면 가동율 50%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도체 가장 많이 만들어 냅니다.(20%) 석유화학, 조선, 철강 다 초과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줄이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입니다.
그런데 내돈으로 하면 그것 누가 뭐라하겠습니까? 30대 제벌 부체비율 441%이라는 것입니다. 대만 82%, 미국 150%, 일본 200%, 그런데다 이자는 가장 비싸다고 합니다. 연간 이자율 12%, 대만 6%, 미국 6.5%, 일본 2%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익이 남겠습니까? 많이 투자해놓았으니 인권비, 원료비, 판매비가 오르지요 이자 오르지요 매출 천원에 1원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30대 제벌은 80전 남는다고 해요.
소비도 마찬가지어요. 소명의식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해야겠다는 것이 없습니다. 주를 위해 하겠다는 것이 없습니다.
192개국에서 삐삐 2등, 시티폰-1등, 택시폰-1위, 여대생들은 자존심 상해 자신이 사는 핸드폰은 안가기고 다닌다고 해요. 남자 친구가 사준대요. 거짓말로 사주었다고 한 대요. 소비에는 기능적 소비가 있습니다. 기능 보고 사는 것입니다. 심리적 소비가 있습니다. 기쁨을 위해 삽니다. 사회적 소비가 있습니다. 남의 이목을 보고 사는 것입니다.
좋은 소비는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경제학에 대하여 잘 모르지만 소명적 소비를 해야합니다.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직장 생활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교회생활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명감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청소하는 것도, 식당일 하는 것도, 교역자 일하는 것도, 전도하는 것도, 봉사하는 것도 소명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그 중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소명의식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인은 정치인데도, 경제인은 경제인데로, 교육가는 교육가대로, 종교인들은 종교인대로 소명의식을 회복해야 합니다.

2.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은 어떤 일이라도 능력 부족이라고 회피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야 합니다.
주인이 종에게 밭을 갈라고 합니다. 그러자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왜 내가 밭을 가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의 행동이 아닙니다.

1)소명의식으로 일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제한하며 주어진 일을 회피하지 말아야 합니다(6).
예레미야는 능력이 없습니다. 특별한 기적을 일으킨 것 아닙니다. 무능력하게 잡혀갔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사는 길이었습니다. 반역으로 고발 당해 옥에 갖혔습니다.(렘37:4-15). 진흙 구덩이에 던져짐(38:1-6) 당했습니다.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43:5-7). 전승에 의하면 결국 애굽에서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다 할 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주어진 일을 해 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약점, 허물 단점 다 아십니다. 그리고 맡기는 것이어요. 부족하다고 생각하시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수가 적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통하여 얼마든지 일할 수 있습니다. 기드온의 300명의 군사를 사용하십니다. 시대 마다 많은 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을 사용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의인 10명을 찾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다수가 지배하는 시대처럼 보입니다. 물량이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교회에서까지도 숫자가 우상시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중심에는 참으로 그 시대를 이끌어간 소수가 있었습니다. "테크노헤게모니"란 책에는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를 이끌어 가는 국가가 있는데 그 국가는 기술의 주도권을 가진 국가이다. 바로 기술(Technology)의 주도력(Hegemony)을 지닌 국가가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이다. 영국이 16세기에 들어 산업혁명을 먼저 일으키게 된 것도 영국이 당시에 먼저 기술력을 선점하였기 때문이다. 영국 다음에 독일이 강대국이 되었던 것도 독일이 화학공업과 기계공업을 중심으로 당시에 첨단기술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0세기에 들어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된 것도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영국, 독일, 미국이 기술의 헤게모니를 잡게 된 원인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 원인을 종교개혁 직후에 모여진 개신교 신자들의 창조정신과 개척정신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창조적인 사고방식, 개척정신과 모험심, 합리성과 과학정신을 가진 개신교 신자들이 영국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었었고 독일 산업화와 미국 건국의 초석이 되었다고 합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 가는 개척자가 되어야 합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위대한 선교 업적을 이룩하고 있었다. 그때 한 선교단체가 그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는 당신을 도울 선교사를 파견할 예정입니다.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쉬운 길이 있으면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리빙스턴은 회신에서 "당신들이 쉬운 길로 오려는 선교사들을 파송하려면 나는 그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전혀 길이 없어도 오려는 사람들을 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2)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은 앞으로 할 일을 보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힘으로 감당해야 합니다(8).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예언하라는 명령을 줍니다. 그가 전해야 할 명령이 무엇입니까? 10절 보십시오. 심판 계획과 구원계획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세요. 심판이 많이 강조되고 있습니까? 구원이 강조되고 있습니까? 심판이라는 말이 훨씬 강조되고 있습니다.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입니다. 심판에 대한 말이 4회여요. 구원에 대한 말은 건설하며 심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레미야서에는 심판의 메시지가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9:1;13:17).
자기 백성이 멸망될 것을 선언하는 선지자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고 싶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7절 8절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이 능력을 주십니다. 나 홀로 놓아 두지 않습니다.
5절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알고 있습니다. 낳기 전에 알고 있습니다. 아무도 우리의 부모 형제도 우리를 몰라 준다할지리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우리를 구별하였습니다. 왕따시킨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를 인정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구별하여 특별히 세워주신다는 말입니다. 무능력하지만 능력을 주어 일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일합니다.
사람들은 조건을 보고 능력있는 사람만 사용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명을 주고 그에 따른 힘을 주셔서 사용하십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과학자들 한국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이야기입니다. 한국 사람이 죽어 하나님께 갔습니다. 일본 억압에 한이 맺혀 하나님 우리가 일본만큼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제대로 된 과학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과학자 다섯 명만 대한민국으로 보내주십시오."라고 했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를 불쌍히 여겨 퀴리부인, 아인슈타인, 에디슨, 갈릴레이,뉴튼 이렇게 다섯명을 보내주었답니다. 그리고 몇년이 흐른 뒤 일이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퀴리부인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려했는데 얼굴이 못생겼다고 취직이 안돼서 놀고 있었고 에디슨은 발명을 많이 해서 특허를 신청하려고 했는데 초등학교 밖에 못나와 글을 못쓴다고 특허신청을 못내고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수학만 잘하고 다른 건 못해 대학도 못가고 놀고 있었으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며 대들기 좋아하던 갈릴레이는 우리 나라 과학현실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연구비 지원이 끊겨 놀고 있었답니다. 마지막으로 뉴튼은 대학원까지 갔는데 졸업 논문을 교수들이 이해 못해 졸업도 못한채 집에서 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 땅에 우리를 보내어 주었습니다. 사명자로 보내었습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5)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6)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7)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8)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9)"

3.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은 편협한 민족주의 즉 국수주의에 사로잡혀서는 안됩니다(5,10).
자기 나라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세울 때 누구를 위해 세웠습니까? 열방의 선지자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우리에게는 두 개의 조국이 있습니다. 하나는 대한 민국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레미야를 세울 때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습니다. 단순한 이스라엘을 위한 지도자가 아닙니다. 결국 메시야적 예언을 통하여 구원을 선포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으로 하늘 나라 사람입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일본의 '내촌감삼'은 "내게는 두개의 제이자(J)가 있다. 하나는 Japan(일본)이요, 다른 하나는 Jesus(예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조국은 두 개입니다. 대한 민국과 하늘 나라입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민족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얼마나 많은 살상을 저질렀습니까? 일본이 그랬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많은 나라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각 나라가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지구는 한 가족입니다. 지구촌입니다. 함께 더불러 살아가는 사회의 지도자 소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민족이 일본의 억압통치 아래서 고통을 겪을 때 춘원 이광수는 1922년 "민족개조론"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76년 전인 1922년의 일이다. 한국인은 거짓말을 잘하고 게으르고, 겁이 많고, 이기심이 강하여 남과 어울려 큰 일을 도모하는 사회성이 결여되었고, 신용. 신의가 없는 약점 투성이의 성격을 가진 민족이라고 그는 질타하였습니다. 그는 우리민족이 살아남기 위해선 남을 속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공리. 공론에 빠지지 않고 표리부동의 반복없이 충성. 신의를 지켜야 한다고 충고하였습니다. 개인보다 단체, 즉 사회에 대한 봉사를 생명으로 하는 성숙한 민족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세계성을 가져야 합니다. 내 나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중국의 황사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제 한 나라만 잘되면 되는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인류는 한 가족으로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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