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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

느헤미야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126 추천 수 0 2009.10.10 14:42:59
.........
성경본문 : 느4:7-14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2002.10.30

오랜 전에 세계 성화전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이나 레오날드 다빈치의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상 같은 작품을 볼 때 감동을 받습니다. 펄벅의 "대지"나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조정래의 태백 산맥같은 작품을 읽을 때도 역시 감동을 받습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메사야를 들을 때 우리 마음은 막힌 것이 확 뚤리는 상쾌함을 느끼게 됩니다. 한 작가가 수년 혹은 수십년 아니면 일생을 바쳐 만들어낸 작품은 후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영향력을 주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도 그렇지만 신앙인의 신앙적 작품도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감동과 영향력을 줍니다. 어거스틴의 생이나 칼빈과 루터는 종교 개혁은 위대한 신앙 유산으로 인류에게 많은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한 시대 조그마한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인생의 작품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작품을 만들기 원하십니까? 오늘 성경에 나오는 느헤미야는 어떤 작품을 남겼습니까? 전쟁으로 패허된 민족을 재건하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참으로 좋은 신앙의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신앙 작품을, 모세는 이스라엘의 해방이라는 신앙 작품, 솔로몬은 성전을 신앙 작품을, 바울은 유럽 복음화라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어떤 작품을 남겨야 할까요?
감동적이고 영향력있는 신앙의 작품을 남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1. 감동적이고 영향력있는 신앙의 작품을 만들길 원하는 사람들은 소명감에 의한 뚜렷한 목적 즉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1).
비전을 말하면 흔히들 야망, 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야망이나 꿈은 예수 믿든 안 믿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명에 의한 비전은 누구나 갖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느헤미야가 지금 하고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1) 성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적군의 침략으로 황폐해진 성을 포로에서 돌아와 재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야망이 아닙니다. 저는 이것을 소명에 의한 비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시 느헤미야의 신분은 무엇이었습니까? 술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느1:11). 그에게 일반적인 야망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분은 전쟁에 패배해서 포로로 잡혀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출세를 하였습니다. 왕의 신임을 받아 술관원장이 되었습니다. 왕이 마시는 술을 관할하며 술잔을 가지고 왕 앞에 나가는 관직입니다. 인간적으로 권력, 부도, 명예도 어느 정도 이룬 상태입니다. 인간적인 야망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더 원한다면 더 높은 관직에 올라 총리정도 하고 싶은 생각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가진 비전이 그런 것이었습니까? 아닙니다. 1장 3절을 보십시오. 자기 고국에 남아 있는 백성들이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당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성문들이 불탔고 예루살렘 성은 다 부서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때 그는 예루살렘 재건에 대한 비전을 가졌습니다. 1장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민족 재건에 대한 그의 비전이 얼마나 간절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신앙적 작품을 남기는 신앙인의 소명적 비전입니다.
이 소명적 비전은 책임의식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상을 이루고자하는 야망도 아닙니다. 현재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응하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고자하는 소명의식에 의한 결단이고 비전입니다. 기본적으로 책임의식을 갖는 것 중요합니다.
가정에 대한 책임의식, 직장에 대한 책임 의식, 교회에 대한 책임의식, 나라에 대한 책임의식 등 책임의식이 필요합니다. 목사가 교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제 식사 하면서 강도사님 이야기를 들으니까 어느 낚시를 좋아하시는 목사님이 하루는 낚시대를 매고 낚시하러 나갔답니다. 그 때 집사님이 "목사님 어디 가세요?"라고 하더래요. 그래서 "낚시하러 갑니다." 하니까 "목사님 오늘 주일이어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정도 목회자면 목회 그만 두어야 합니다. 자신이 무슨 책임을 맡고 있는지 전혀 감을 못잡는 사람입니다. 직장인이 기본적으로 직장에 나가면 8시간 일을 하는 것은 기본 책임입니다. 그런데 2시간 일하고 3시간 사워나 실에 있다가 한 시간 점심 먹고 퇴근하면 그 사람 직장에서 필요한 사람이겠습니까?
책임의식 참 중요합니다. 책임감있는 사람들이 작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임있는 성도가 있는 교회가 무엇인가 신앙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소명의식에 의한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낸 사람들을 보십시오. 느헤미야서 바로 뒤에 나오는 에스더를 보십시오. 일반 평민으로서 한 나라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야망을 이룬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 나라의 제 2인자인 하만이 유대인 학살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사실을 안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한 말을 보십시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에 4:14)" 이말을 듣고 에스더가 어떻게 합니까?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 4:16)"
이것이 바로 소명적 비전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지금의 환경이 주를 위해 위대한 작품을 만들라는 조건인 줄 알고 주를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명예, 나에게 주어진 재물, 내에게 주어진 재능, 나에게 주어진 지위, 나에게 주어진 지식, 나에게 주어진 외모, 나에게 주어진 능력, 나에게 주어진 신앙, 나에게 주어진 교회, 나에게 주어진 가정, 나에게 주어진 직장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단으로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시대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예레미야를 보십시오. 에스겔을 보십시오. 나는 말이 둔합니다. 나는 아이입니다. 나는 부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지었다고 합니다. 내가 너를 깨끗이 하였다고 합니다. 내가 너의 입술에 능력을 주었다고 하십니다.
나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에 순종하고 비전을 갖는 것입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냈던 척 콜슨이라는 사람이 쓴 책 가운데, "누가 하나님을 대변할 것인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 속에 인디아나주 출신의 미국의 대법관으로 있었던, 윌리엄 본 트레이저라는 사람의 실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분은 늦게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의 은혜를 체험했답니다. 주를 위한 비전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대법정에서 헤리 팔머라는 사람을 재판하게 되었습니다. 나쁜 강도질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강도가 교도소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트레이져 판사는 그가 진심으로 회심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돕고 싶은 마음이 있어 고민하였습니다. 정상적인 판결에 의하면 적어도 한 10년쯤을 언도하는 것이 정상적인 언도 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고민하였답니다. 10년이란 기간을 교도소에 보내는 교도는커녕 그의 인생을 망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1년형을 언도하고 몇 년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답니다. 문제는 부당한 판결이라고 여론이 들끌었습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대법관 자리를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1년 후, 그가 언도를 내렸던 헤리팔머가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나오던 그날 그는 마중을 나갔습니다. 그는 교도소를 걸어 나오는 팔머를 끌어 안았습니다. 죄수는 굵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트레이져 판사앞에 엎그리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판사님, 이렇게 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는데." 그때 본 트레이져는 그를 향해서 "이렇게 까지라니요. 주님은 형제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목숨까지 주셨는데요."
이것은 책임의식을 넘어선 소명적 비전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모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통한 신앙 작품의 비전을 가지시기 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통한 신앙의 작품을 만드는 비전, 자녀, 교회, 민족을 통한 신앙 작품의 비전을 가지시기 원합니다.
한 번 태어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열심히 먹고 자다 왔습니다로 끝마치겠습니까? 뭔가 작품을 만들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가져야 할 비전이 무엇이겠습니까?
경제 재건입니까? 무엇보다 우리가 늘 외우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버크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참된 종교는 사회의 기초이다. 그 기초가 경멸로 인해 한번 흔들리면 그 모든 구조는 안정될 수도 없고 유지될 수도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6.25 49주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경제 재건은 어느 정도 이루어 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의 회복입니다.

2. 신앙의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장애물을 극복해야 합니다.
작품을 만드는데는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습니다. 작가에게는 가난이 다가 올 수 있습니다. 도구가 없습니다. 건강이 쇠약합니다. 유혹이 있습니다. 신앙의 작품을 만드는 느헤미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에게 다가온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크게 외적인 장애물과 내적인 장애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1)외적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외적들이었습니다. 성을 재건하는데 방해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은 기뻐하는 자들입니다. 느헤미야가 성을 재건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합니까? (1)산발랏이 크게 분노하며 비웃습니다(1,7). (2)능력이 없다고 조롱합니다. 불타버린 성벽을 다시 일으키려고 한다고 조롱합니다. (3)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지겠다고 합니다. (4)적극적으로 방해를 합니다(7-8).
고도의 심리전을 펴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무리를 크게 보이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무리들이 스스로 매우 미약한 무리라는 것을 자각하게 합니다. 자신감을 상실하게 하고 자포자기 하게 만듭니다. 성벽 재건이 너무 큰 일인데 너희가 그 일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라고 낙담하게 만듭니다. 성을 쌓으나 무너질 것이라고 실패의 두려움을 주어 결국 일을 포기하게 하여고 합니다.

2)내적인 장애물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따라야할 백성들이었습니다. 이럴 때 자기를 따르던 백성들이 단합하여 목적을 성취하면 좋을 텐데 외적 어려움이 오면 사람들이 어떻게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흩틀어집니다. 배반합니다. 자기 살길 찾습니다. 이것이 비전을 이루는 무서운 적입니다. 신앙 작품을 만드는데 가장 힘겨운 적이 바로 냇적인 장애물입니다. 그를 따랐던 백성들의 태도를 보십시오. (1)사기가 저하되었습니다(10) (2)낙심(10)합니다.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고 단언합니다. (3)두려워(11)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얼마나 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까?
가정환경, 자신의 조건, 자신의 능력의 한계, 성격적 결함, 과거의 쓰라린 전력,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비협조, 질병, 나이, 성, 등 얼마나 많은 장애물이 우리 앞에 있습니까?
그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3. 신앙의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어떻게 장애물을 극복합니까?
1)먼저 기도합니다.
소명적 비전을 이루어 신앙의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꿈도 있어야 하고, 환경에 대한 통찰과 적응력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의식과 해결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 감각도 있어야 합니다. 창의력도 있어야 합니다. 가치관이 분명해야 합니다. 의사결정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과학적 경영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지도력의 분산운용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강인한 의지력과 견인력이 있어야 합니다. 선견지명이 있어야 합니다. 전문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도덕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적 능력 기도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지칠 줄 모르는 기도의 능력말입니다. 느헤미야를 보십시오. 기도합니다. 금식기도를 합니다(1:4-). 그리고 왕의 허락을 받아냅니다. 그냥 갑니까? 기도합니다(2:4). 그렇다고 문제가 끝납니까? 기도해도 방해합니다(2:18). 귀족들은 담부하지 않습니다(3:5). 그 때 뭐합니까? 또 기도합니다(4:4-).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습니까? 더 강하게 방해합니다(4:7). 그때 뭐합니까? 4:8을 보십시오. 또 기도합니다. 소명적 비전을 놓고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위대한 신앙적 작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의 통로입니다. 기도를 가소평가하지 마십시오. 기도하다 회의에 잠기지 마십시오. 성경을 보십시오. 엘리야 같은 능력의 사람이 비내리기를 기도할 때 어떻게 합니까? 바로 기도하니까 비가 옵니까? 왕상18:42절을 보십시오. 무릎을 땅에 끓어 엎드려 일곱 번째까지 진지하게 기도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75세에 아들에 대한 약속을 받고 100살에 낳았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40년 광야 생활의 훈련을 통하여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게 하였습니다. 기도를 도깨비 방망이로 생각하시 마십시오. 그것은 신앙이 아니고 미신입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기도를 통하여 신앙의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2)최선을 다합니다.(9,13,16,17,18,22)
기도하고 그대로 있습니까? 아닙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1)싸울 수 있도록 무장시켰습니다.
(2)백성들로 하여금 서로 서로 협력하게 합니다.
본문16 "그때로부터 내 종자의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백성을 단결시켰습니다.
(3)능률적으로 대처하게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우선 사람들을 두 무리로 나누었습니다. 한 무리는 계속 공사하는 무리로 나누었고, 또 다른 한 무리는 무장을 시켜 전쟁에 대비시킨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전쟁에만 대비하지 왜 그렇게 하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목적은 전쟁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전 재건입니다. 멈출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세계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농업혁명에서 산업혁명으로 이제 지식혁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농업 시대는 땅이 재산이었습니다. 산업 시대에는 노동력과 자본이 재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모습은 점점 달라지고 있습니다. 정보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보시대에는 지식이 재산입니다.
대체로 1770년부터 19세기 초엽까지 산업혁명이 진행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은 두 개의 큰 기둥은 1776년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 기관과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라고 말합니다. 국부론의 중심 내용은 분업이라는 것입니다.
1949컴퓨터의 등장으로 이제 정보 사회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적응해합니다. 가만히 촛불 켜놓고 기도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현장에서 하나님의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3)하나님을 바라봅니다.(20)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1)우리의 적의 꾀를 폐하게 하시는 하나님(15)이십니다.
(2)우리를 도우심으로 다시 역사를 시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6).
중단되었던 성벽을 다시 재건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3)우리를 위해 친히 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9-20).
성벽을 52일만에 완공합니다. 이 때 그들의 고백은 무엇입니까?(6:16)
결국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창세기를 통하여 위대한 작품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보십시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니라로 시작한 창세기는 야곱과 요셉의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50장에 나타나는 요셉의 고백을 보십시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 50:20)"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창 50:24)"
계시록 마지막 계22:20-21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롬 11:36)"
하나님께서 만든 작품 중에서 인간은 참으로 아름답게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신묘 막측한 위대한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 139:1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창 1:4)
뭍을 만들고 물을 만들고(창 1:10),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창 1:12) 만들고, 빛과 어두움을 만드시고(창 1:18), 물고기와 생물을 만드시고(창 1:21), 땅의 짐승을 만드시고(창 1:25)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보시기에 좋았더라였습니다. 인간을 만드신 후는 뭐라 말하였습니까?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 1:31)"
그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서 무엇을 원하겠습니까? 보시기 좋으신 신앙의 작품을 만드시길 원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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