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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4: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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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영교 형제 |
참고 : | 새길교회 2009.06.14주일 설교 |
2002년 늦은 여름 어느 날 경찰서에 오라는 연락을 받고 찾아가 어느 형사와 마주앉았습니다. 향토예비군법 위반이 그 이유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비군에 편성된 사람이 장기 출국 후 귀국해서 15일 이내에 신고를 하지 않으면 향토예비군법을 위반한 것이 됩니다. 대부분 벌금형을 선고 받고 그렇게 해서 수많은 전과자가 만들어진 것으로 압니다. 요즘은 대개 불기소처분을 해서 전과자가 되는 것을 막는다고 하고 저도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개 의사들은 군 복무를 늦게 하기 때문에 그 당시 제 나이가 40이 넘었지만 아직 동원예비군으로 편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외국 연수를 다녀와서 시차에, 이런 저런 일에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한 달 정도 지난 후 신고를 했는데 이미 늦어서 불려갔습니다.
경험이 있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름이 뭡니까, 주민번호가 어떻게 됩니까’ 라고 했던 것 같고 대답을 하니 그 형사는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는 ‘젊었을 때 주먹 좀 쓰셨네요’라고 하더군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인가 하는 죄명으로 기소유예가 된 기록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주먹에 힘을 주어 누구를 때려 본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저의 경찰서에서의 기억은 그 때를 포함해서 3번 정도인 것 같은데 그것이 3번째입니다.
그 전에 경찰서에 불려 간 것은 공중보건의사를 하던 때인데 관사에서 전기누전으로 불이 났습니다. 죽기 5분전쯤 잠에서 깨어 겨우 살았는데 그 때는 아마 방화 내지는 실화의 혐의로 조사를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형사가 말하던 그 ‘주먹’이 문제가 된 것이 첫 번째 경우인데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그 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이라는 항목 앞에 있던 것은 ‘설교방해죄’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14년째 계속해서 한 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신도가 늘어나서 제가 고등학생이었던 때 20여년된 흙벽돌 교회를 허물고 새 성전을 건축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어느 교회나 그랬듯이 교인들이 힘들게 건축헌금을 해서, 기적적으로, 2~30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본당을 가진 새 교회당을 건축했습니다. 문제가 발생할 당시가 1980년으로 온 나라는 10.26, 12.12, 광주 민주화운동 등으로 소용돌이 속에 있었지만 저는 교회 일이나 세상일과 동떨어진 재수생 신분이기도 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눈치가 별로 없는 편이어서 막후에서 돌아가는 분위기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을 들어가고 주위의 권유로 기꺼이 성가대에 앉았는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그러다 갈등이 표면화되고 나서야 심각성을 알게 되었는데 청년들이 목사님에 반대해서 성가대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성가대에는 목사님을 지지하거나 마냥 사람 좋은 신도들만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목사님은 독단적이고, 물질에 대한 욕심이 많은 것 등 그 당시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자와 비슷한 문제가 많은 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장년층과 마찰이 생겨 청장년들이 하나 둘 교회를 떠나자 그 다음에는 청년들과 부딪쳤습니다. 청년들은 왜 우리가 교회를 떠나느냐며 목사님에게 잘못을 따지기도 하고, 그러다 안되자 주일 아침에 교인들에게 목사님의 잘못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목사님이 인도하는 예배를 거부하며 찬송을 부르기도 하고, 좀 더 과격한 청년은 목사님이 본당에 들어오지 못하게 몸으로 막기도 했습니다. 그 때 청년회는 반정부운동, 노동운동, 교회 일치 운동 등에 관심이 많은 소위 운동권이 주축이어서 부당하다고 판단되는 목사님에게 할 말을 못하고 순종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주일마다 목사님은 마이크를 잡고 예배를 진행하고, 한 쪽에서는 그 예배를 거부하고 찬송을 부르는 밀고 당김을 반복하곤 했습니다. 교회를 가는 것이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고 괴로움이었습니다. 갈등은 지속되고 또 증폭되어 목사님을 반대하던 70이 넘으신 원로장로님이 화가 나서 강대상을 넘어뜨리는 사건도 생기고, 방송과 신문에까지 교회의 사건이 보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을 지지하는 신도들로 임원회, 징계위원회를 구성하여 목사님을 반대하지 않는 한 분의 장로님 외에 다른 장로님들은 모두 다른 교회로 파송하고, 반대하는 교인은 출교를 결정하였습니다. 저는 주동자가 아니어서 초기에는 출교를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저녁에 교회에 남아있었는데 형사가 찾아왔습니다. 그 때 교회에 있던 청년들 모두 경찰서로 가자고 해서 저를 포함한 9명이 연행이 되었습니다. 열 손가락 지장도 찍고 설교방해죄와 폭력 등의 이유로 송치되었지만 나중에 기소유예로 종결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괴로운 대학 1년을 보내다 저는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곳 저곳 여러 교회를 떠돌아다니며 예배를 드렸는데 한 동안은 잘 아시는 JMS의 초창기 교회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제가 교회를 떠난 얼마 후 100여명의 신도가 제명이 되었고 그 뒤 결국 신도들 대부분은 교회를 떠났습니다. 교회를 떠난 신도들이 다음해 말에 새로 개척교회를 창립하였고 저도 다시 10여년을 새 교회로 출석하였습니다.
당시 신도들 중에서 청년들의 입장에 찬성하는 비율이 훨씬 더 많았지만, 저의 성장기 동안 몸에 익숙해진 한국의 교회 분위기에서 제사장이던 목사님을 비판하고, 반대하고, 거부하는 것도, 갈등의 현장에서 그 갈등을 온 몸으로 겪으며 주일 하루를 지내는 것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회학교에서 내게 가르치던 어른들과, 오랜 교회학교 친구의 부모님과 정면으로 대립하던 것도 정말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다툼은 단지 너의 의견이 옳으냐 나의 의견이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누구의 신앙이 옳으냐를 판가름하는 것 같은 상황이 되고 맙니다. 나의 신앙의 순수성을 의심받으며 신앙이나 양심의 가장 밑바닥까지 모두 파헤쳐 드러내 보이는 것 같은 시험의 연속이었습니다. 주일에 교회를 다녀오면 온 몸이 녹초가 되고 머리는 지끈거리곤 했습니다.
무엇이 그 때 내 마음을 그렇게 무겁게 만들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무례하게 운전을 하는 차들이 적지 않습니다. 난폭운전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 위험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를 보면서도 저는 입 밖으로 내어서 욕을 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아니 저 녀석이’라고 하는 정도입니다. 마음속으로 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려 했는데, 며칠 전 이 부분의 원고를 수정했습니다. 처음 원고를 작성한 후에 운전을 하면서 제 자신을 잘 들여다보니 마음속으로 나쁜 말을 좀 하더군요.
사람의 피부에는 멜라닌 색소가 모두 비슷한 양이 있는데 피부가 검은 사람은 색소가 바깥에 많이 분포한 것이고 피부가 흰 사람은 속으로 많이 분포한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얼굴이 검은 교회후배에게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후배가 저에게 ‘나는 얼굴이 검지만, 형은 속이 시커매’라며 좋아하던 기억이 납니다. 만일 사람이 속으로든 겉으로든 욕을 하는 분량이 일정하다고 하면 저는 마음속으로 욕을 꽤 많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겉으로 드러내어 욕을 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5장의 예수님 말씀이 마음에 걸립니다. 22, 23절에서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를 모욕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의회에 불려 갈 것이요, 자기 형제나 자매를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옥 불 속에 던짐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 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고 하시고, 28절을 보면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겉으로 하지는 않아도 마음속으로 한 욕도, 미움도 죄이고 지옥 불에 던져진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무 어려운 말씀입니다. 혹시 다음에 주일날 제가 보이지 않아도 ‘그 사람 또 욕을 했구나’라고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예수님 말씀을 안 듣고 그래도 그냥 교회에 나옵니다.
제가 80이 넘으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최근에 어머니께 같은 잔소리를 두 번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좋아하시는 콩비지를 드시거나 하면 아주 맛있어 하십니다. 제 아이들은 콩비지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절대로 안 먹으려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알 수가 없어. 이렇게 맛있는 것을 왜 안 먹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투가 ‘네가 틀렸잖아’라고 하는 것 같이 들렸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내 어머니가 나이가 드셔도 감각이 세련되고, 두루 이해심이 넓고, 유연하게 사고 할 수 있는 분이었으면 하는데 자꾸 그렇지 않다고 여겨지는 모습이 보여서 마음이 불편하던 차였습니다.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단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 그러지 마세요. 어머니에게는 맛있어도 다른 사람은 맛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라고 젊잖게 말씀 드렸습니다. 어머니가 말씀은 안 하셨지만 제게 화도 조금 나고 그래서 제가 약간 미웠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어머니도 결코 겉으로 드러내어 화는 내지는 않으셨습니다.
제가 방금 말씀 드렸듯이 저는 겉으로 드러내어 화는 내는 일이 별로 없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아이들에게는 화를 많이 냅니다. 잘못되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 너무 잘 보입니다. 아이는 제가 자신을 제 마음대로 하려 한다며 따지고, 저는 길을 막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라는 식으로 아이와 옳다 그르다 논쟁을 하곤 합니다. 그러면 아이가 제게 그럽니다. ‘아빠 그러지 마세요. 내 생각은 아빠 생각하고 달라요.’ 어머니는 80이 넘으셨지만 저는 50도 안됐는데 벌써 그런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어도 ‘맞아 그렇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속으로 이 녀석이라고 하며 내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고 다시 반격할 기회를 기다립니다.
어머니에게도 내 생각이 옳은 것이고, 자식에게도 내 생각이 옳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창세기 4장을 보면서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도 좀 받아 주시지! 그러면 가인이 아벨을 죽이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데.’ 요한 1서 3장에서는 가인을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규정했고 신학적으로 적절한 해석이 있겠지만 창세기의 내용만으로는 가인이 아벨을 죽이기 전에 왜 악한 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인이 왜 악한 지 보다는 아벨에 대한 가인의 분노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가인은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고 했는데 그러면 가인이 그렇게 화가 났을 때 아벨은 마음은 어떠했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도 궁금했습니다. 가인의 분노는 실은 여호와 주님을 향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화는 아벨에게로 향하고 결과는 아벨의 죽음, 파멸이었습니다. 분노는 아벨을 죽게 했고 가인을 저주받은 인생으로 만들었습니다. 남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분노를 생각하면 기억에 떠오르는 아이가 있습니다. 제가 소아정신과 전임의를 할 때 보았던 12살짜리 남자아이입니다. 체구가 작고 아주 귀엽게 생겨서 주치의인 저도 10살 정도로 착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 아이는 자신의 형과 너무 싸워 형을 친척집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도 너무 싸움을 자주해서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형은 한 살 위였는데 부모는 노골적으로 형을 더 좋아했습니다. 불행하게도, 동생인 그 아이는 원하지 않았는데 임신이 되었고 안 낳으려다 그냥 낳은 아이였습니다. 그렇게 사랑이 부족한 아이는 귀여운 얼굴로 ‘지금은 내가 어리니까 할 수 없지만, 18살이 되면 형을 죽이고, 엄마를 죽이고 아빠를 죽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미움과 적대감은 그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보면 상상이 안될 정도로 극심한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미움의 사례는 애석하게도 너무나 많습니다.
40대 초반의 한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그 분은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며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심으로 다 그만두고 동네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직위가 높아지다 보니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할 일이 많아지는 데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상대를 만나면 불편해서 못 견디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의 아버지는 술을 자주 마시는 분이었는데 술이 취해서 한 밤중이나 새벽에 들어오면 부인과 자식들 모두 온 가족을 깨워서 앉혀 놓고 훈계를 하는 것이 술주정이었습니다. 술이 취해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날이 반복되면서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면 심장이 두근거리곤 했습니다. 그 분은 청소년 시기를 술주정하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키우며 지냈습니다.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가지만 아버지와는 한 마디로 말을 안 한다고 합니다. 청소년기부터 가지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해결이 안 되고 40살이 넘도록 남아있어서 다른 나이 많은 대상에게 투사되어 대인관계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7살 정도 된 아들과 함께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던 젊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강요로 악기를 배우고 있었는데 5살 경에 아버지에게 하기 싫다고 했답니다. 그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악기를 부수어 버렸고 그 후 돌아 가실 때까지 한 번도 아버지에게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꼭두각시처럼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마음에 가득 차서 사소한 일에 감정이 폭발하기도 하고 차에 뛰어들어 죽으려 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말을 안 들을 때 아이 앞에서 책을 찢어 버리며 아버지의 행동을 반복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에는 긴장에 휩싸여서 제가 건네는 간단한 질문에도 전혀 관계없는 엉뚱한 대답을 하고 그 대답을 듣는 어머니는 순간 표정이 무섭게 굳어지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전에는 한 여자분과 불안에 대해 이야기 하며 무엇이 불안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다음 주에 그 분은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밤 1~2시가 되면 아버지가 소리치며 어머니를 때리고, 어머니는 울고불고 소리지르고 물건이 부서지고 하는 소리를 날마다 들으며 귀를 막고 공포에 떨었다고 합니다. 결혼을 한 후에도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한 밤중에 전화를 해서 한 두 시간씩 욕을 해대곤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쌓으며 살아온 그 분도 아들에게 폭발할 때면 모욕적인 말을 하고 때리곤 했습니다. 지능이 부족한 그 아들도 제게 진료를 받고 있는데 며칠 전에는 부모에게 혼나고 아버지에게 목검으로 엉덩이를 맞은 후 아버지의 양복을 모두 찢어놓았습니다. 아이는 화가 나서 복수를 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미움의 극단은 부모 살해라는 사건으로 우리의 현실에서 드물지 않게 경험했습니다. 15년 전 박모 대학생사건, 그 후의 김교수 사건, 2000년 소위 명문대 학생이던 이모군 사건 등. 그런 사건의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너무 끔찍해서 차마 여기서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일본에서도 해마다 부모살해 범죄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가 작은 미움에서부터 너무 극단으로까지 왔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해보면 내가 다른 누구와 대립적인 상황에 있을 때 항상, 언제나 나는 ‘아벨’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는 틀렸고, 나쁘고, 악한 ‘가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사소한 일상에서 보면 어머니에게도 내가 아벨이었고, 자식에게도 항상 내가 아벨이었습니다.
내가 가인이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학대를 받을 때 내가 가인이구나 했습니다.
대학 시절에 교회에서 분쟁 가운데 있으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마음이 무거웠을까요? 아벨이 되어 가인을 정죄하는 정의로운 입장이었으니 자랑스럽고 당당해야 했는데 언제나 피곤하고 마음이 어두웠습니다. 그 이유가 혹시 미움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 난 기사를 읽어보겠습니다.
「최근 미셸 장 캐나다 연방총독이 원주민 지역을 순방 중 물개의 심장을 시식해 국제적인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물개고기 요리를 제공하는 몬트리올의 한 프랑스 식당이 동물보호론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고 캐나다 통신이 5일 전했다.
지난 2년간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물개고기 요리를 선보인 프랑스 요리사는 지난달 총독의 물개심장 시식 사건 이후 자신의 편지함에는 동물보호론자들의 위협성 메일이 홍수처럼 밀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프랑스와 벨기에의 동물보호운동가들이 보내오는 메일은 "당신은 곧 죽을 것", "불타는 지옥에 떨어져라" 등 과격한 내용을 담고 있다. 」
기사를 보면 힘 없는 동물에 대한 애틋한 애정을 가진 ‘아벨’인 선량한 동물보호운동가들은 어느 새 ‘가인’이 되어 식당 주인에게 분노하며 죽으라고 합니다.
내가 아벨이라고 생각하지만 작건 크건 가인을 미워하는 순간 입장은 바뀌어 내가 가인이 되어있습니다. 화나고 미워하는 것은 가인의 몫이니까요.
진료실을 찾아 온 아이의 어머니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기 볼펜이 두 뭉치가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한 뭉치는 볼펜 사이를 접착제로 붙여놓은 것이고 다른 한 뭉치는 끈으로 단단하게 묶어 놓은 것입니다. 접착제로 붙여 놓은 것은 서로 떨어지지 않지만 끈으로 묶어 놓은 것은 끈만 풀면 금방 흩어져 버립니다.
만일 그것을 가정이라고 생각하면 가족들 사이에 신뢰나 애정이라는 접착제로 단단히 붙어있는 가정은 문제가 안되지만 신뢰나 애정이 없이 결혼이라는 형식으로만 묶여진 가정은 분열의 위험성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랑으로 출발한 결혼이겠지만 다름이나 의견 차이가 미움이 되고, 미움이 신뢰와 사랑을 사라지게 하면 단지 형식으로만 묶여 겨우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언제든지 흩어질 수 있는 가정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가족을 의미 있게 유지하도록 해주는 것은 가장의 강력한 지도력도, 헤어졌을 때 들을 지 모르는 남들의 비웃음을 두려워하는 체면도 아니고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와 애정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잠언 10장 12절에는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이야기를 듣자마자 형식적인 가정을 가리키며 ‘그게 우리집이네요’라고 하더군요. 어떤 가정이나 단체나 공동체나 사회나 모두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서는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제일이 사랑이라고 했을 때 믿음이 제일이 아니라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겉돌았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제일 큰 계명이 사랑이라는 말씀을 깨닫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어려움이 남습니다. 지금의 우리 현실을 생각할 때, 예수님이 성전에서 돈 바꾸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상을 둘러 엎으신 것을 생각할 때 어디까지 사랑해야 하고 어디에서 분노해야 하는 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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