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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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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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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그리스도의 승천 역시 그 같은 본보기가 아니다. 관상 중에는 시간과 장소, 육신을 잊어버려야 한다.
만일 그대가 나에게 우리 주님의 승천을 거론하면서 하늘로 오른 것은 엄연한 사람의 육신임을 알고 있고, 또 그분은 진실로 하나님이자 진실로 사람이신만큼 틀림없이 영적인 의미에 못지않게 육체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분이 이미 죽으셨던 것이고 따라서 그때는 이미 불멸의 옷을 입고 계셨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심판날'에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때 가면 우리는 육신과 영혼이 더없이 순화된 나머지 육신을 지닌 상태로도 지금 우리가 머릿속에서 생각으로 어디나 금방 갈 수 있듯이 어디든지 신속하게 갈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학자들 말마따나 위 아래, 좌우, 앞뒤 모두가 우리에게는 아무래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영적으로만 갈 수 있지 육신을 지니고서는 갈 수 없습니다. 그곳은 철두철미하게 영적이어서 육적인 구석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의 위든 아래든, 옆이든 앞이든, 뒤든 말입니다.
그러므로 확실하게 해두어야 할 점은 영적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사람, 특히 이 책이 윤곽을 제시한 그런 종류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올린다.'거나 '들어간다.'는 말을 대할 때, 혹은 이 책에서 어떤 일을 일컬어 '움직임'이라고 지칭할 때 이 움직임이 육체적인 의미에서 올라가거나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요, 또한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상적 완덕은 그 자체가 매우 멋지고 철저히 영적이라서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만 하면 우리는 그것이 어떤 육체적인 움직임이나 장소와는 정반대되는 대립개념임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움직임보다는 차라리 갑작스런 '변화'라고 일컫는 편이 훨씬 합리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상기도에서는 시간과 장소와 육신에 관한 일체의 것들을 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지니고 승천하신 일을 본보기로 받아들여 마치 그대가 달을 지나 하나님의 나라로 오르기라도 하려는 듯이 육체적으로 위를 지향하는 망상을 발동하고자 애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는 그다지 영적인 것이 되지 못합니다.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처럼 육신을 지니고 하늘로 오르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승천을 본보기로 삼아도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이 되신 그분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다."(요 3:13)는 그분의 말씀마따나 그런 일은 하나님이 아니고는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지만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는 더욱 완전한 영적 활동을 위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요, 우리 또한 오로지 영의 힘에 의해서만 '위로 '안으로 , '옆으로 또는 어디로든 가도록 만드는 우리네 망상으로 인한 온갖 육체적 긴장과 압박감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같은 오류는 그냥 모른 체하십시오. 절대 그렇게 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만일 그대가 나에게 우리 주님의 승천을 거론하면서 하늘로 오른 것은 엄연한 사람의 육신임을 알고 있고, 또 그분은 진실로 하나님이자 진실로 사람이신만큼 틀림없이 영적인 의미에 못지않게 육체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분이 이미 죽으셨던 것이고 따라서 그때는 이미 불멸의 옷을 입고 계셨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심판날'에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때 가면 우리는 육신과 영혼이 더없이 순화된 나머지 육신을 지닌 상태로도 지금 우리가 머릿속에서 생각으로 어디나 금방 갈 수 있듯이 어디든지 신속하게 갈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학자들 말마따나 위 아래, 좌우, 앞뒤 모두가 우리에게는 아무래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영적으로만 갈 수 있지 육신을 지니고서는 갈 수 없습니다. 그곳은 철두철미하게 영적이어서 육적인 구석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의 위든 아래든, 옆이든 앞이든, 뒤든 말입니다.
그러므로 확실하게 해두어야 할 점은 영적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사람, 특히 이 책이 윤곽을 제시한 그런 종류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올린다.'거나 '들어간다.'는 말을 대할 때, 혹은 이 책에서 어떤 일을 일컬어 '움직임'이라고 지칭할 때 이 움직임이 육체적인 의미에서 올라가거나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요, 또한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상적 완덕은 그 자체가 매우 멋지고 철저히 영적이라서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만 하면 우리는 그것이 어떤 육체적인 움직임이나 장소와는 정반대되는 대립개념임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움직임보다는 차라리 갑작스런 '변화'라고 일컫는 편이 훨씬 합리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상기도에서는 시간과 장소와 육신에 관한 일체의 것들을 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지니고 승천하신 일을 본보기로 받아들여 마치 그대가 달을 지나 하나님의 나라로 오르기라도 하려는 듯이 육체적으로 위를 지향하는 망상을 발동하고자 애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는 그다지 영적인 것이 되지 못합니다.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처럼 육신을 지니고 하늘로 오르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승천을 본보기로 삼아도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이 되신 그분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다."(요 3:13)는 그분의 말씀마따나 그런 일은 하나님이 아니고는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지만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는 더욱 완전한 영적 활동을 위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요, 우리 또한 오로지 영의 힘에 의해서만 '위로 '안으로 , '옆으로 또는 어디로든 가도록 만드는 우리네 망상으로 인한 온갖 육체적 긴장과 압박감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같은 오류는 그냥 모른 체하십시오. 절대 그렇게 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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