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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목자 예수님

시편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034 추천 수 0 2009.10.20 0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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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23:4~6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6년 11월 5일 성찬주일 3부 설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 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 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서론>
‘나의 목자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유대 광야에서는 양은 목자가 없이는 도저히 생존불가능 합니다.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목자가 인도하고 또 사나운 짐승들에게서 목자가 지켜주지 않으면 어디에서 굶어 죽거나 찢겨 죽을지 모르는 험악한 곳입니다. 하나님은 양을 치는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생의 목자가 되심을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론>
1.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목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님이 목자가 되어서 나와 함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시기 때문에 내가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체험은 언제나 있어요. 여러분 삶을 사는 과정에 크고 작은 절망의 골짜기에 빠지는 체험을 안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가끔 영적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기도가 막히고 찬양이 나오지 않고 말씀이 읽기 싫고 하나님을 예배드리기 싫어집니다. 영혼이 답답하고 캄캄합니다. 하나님은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시는 것 같고 마귀는 아귀같이 귀에 속삭입니다. ‘너는 버림받았다. 너는 이제 하나님 가까이 나갈 수 없다. 너는 은혜를 받지 못한다.’ 그러한 절박한 영적인 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영적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것입니다. 혹은 정신적으로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아우성치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마음에 우울증이 짓눌려 온 세상이 캄캄하고 살 희망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도 어떤 주부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습니다. 자기 생명을 내어 던져 자살할 정도가 될 때는 얼마나 마음이 좌절과 절망과 우울증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진실로 마음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또 그뿐 아니라 육체적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강건하게 살았는데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내렸습니다. 간암이다. 당신은 폐암이다. 뇌종양이다. 중풍병자다. 관절염이다. 온갖 사망의 선고가 내려질 때 그때 육체적 고통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합니다. 몸이 아파 힘을 쓰지 못하고 있을 때 집 앞을 지나가는 건강한 거지를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요. ‘차라리 내 재산 다주고도 저 거지처럼 얻어먹더라도 건강하면 좋겠다.’ 육체적인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어요. 사람은 인생행로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많이 통합니다. 부부간에 갈등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엉망진창이 되고 파괴 일보직전에 있을 때 가정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혹은 자식들이 부모를 거역하고 반역하고 죄를 지어서 부모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지요. 직장을 잃어버리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할 때 사망의 골짜기인 것입니다. 사업이 무너지고 자금이 고갈되고 빚 투성이가 되고 있는 것 다 빚잔치하고 갈 길과 올 길이 없는 그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자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우리는 지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시18: 4에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라고 했으며, 애 1: 20절에 “야훼여 보시옵소서 내가 환난을 당하여 나의 애를 다 태우고 나의 마음이 상하오니 나의 반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에서는 칼이 내 아들을 빼앗아 가고 집 안에서는 죽음 같은 것이 있나이다.”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마음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안생길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요.
인간 두려움에 대한 연구를 한 뉴 미실린 박사는 어린 아이가 태어날 때 세 가지 두려움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높은데서 떨어지는 두려움, 큰 소리가 날 때 느끼는 두려움, 어머니 품에서 떨어져 나가는 두려움 이 세 가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 세 가지 두려움은 우리 평생을 같이 합니다. 높은데서 떨어지는 두려움은 직장을 잃어버린다든지 명예를 실추한다든지 좋은 삶에서 가난하게 된다든지 사회적인 지위 상실하는 그 두려움으로 연속되는 것입니다. 큰 소리에 대한 두려움은 비난과 공격과 손가락질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멸시와 무시를 당하는 소리를 듣는 두려움으로 연속되고 어머니에게서 떨어지는 두려움이라는 것은 세상에 버림당하고 소외되고 사람들에게 멸시당하고 천시당하고 늙어지고 외로워지고 나중에 혼자 죽어야 하는 그런 두려움으로 번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려움을 통해서 해를 받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를 당해 고통과 낭패와 파탄을 당할 것을 상상할 때 마음이 얼어붙어 두려움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상상의 둥지를 트는 악마의 둥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를 두려워하면 이것을 자꾸 생각하면 눈사람처럼 커져서 그 속에 마귀가 들어앉아서 온갖 고문을 다하는 것입니다.
잠 1:27에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냥 마음에 두려워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전주곡입니다. 큰 바위가 다가올 전주곡으로 우리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욥기에 욥을 보십시오. 욥은 평소에 하나님을 잘 섬기고 훌륭하게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자녀가 10명이요, 짐승 떼도 많고 동방에서 제일가는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마음속에 두려움이 들어왔습니다. 안절부절 합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마귀의 공포의 촉수에 잡힌 것입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어느 때 적군들이 처 들어와서 자기 짐승 떼를 다 빼앗아 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불안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열자식이 다 비명횡사할 것이라 생각하고 두려워하고 또 다른 때는 몸이 불치의 병에 들고 부인이 자기를 버리고 외롭게 혼자 살게 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욥은 이 두려움이 다가온 것입니다. 두려움이란 다가올 불행의 전주곡인 것입니다. 종이 뛰어와서 양떼와 소떼와 약대들을 다 잃어버렸다고 보고했습니다. 또한 종이 뛰어와서 자녀들이 형의 집에서 잔치하는데 집이 무너져서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온몸에 종양성 문둥병이 걸려 가지고서 기왓장으로 긁고 잿더미에 올라 앉아있는 비극이 다가오고 부인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욕을 하고 떠나갔습니다. 정말 처절한 절망이 다가온 것입니다.
욥 3:25~26에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두려움이 전주곡인 것입니다. 두려워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무 해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뒤에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손이 따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요일 4:18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 하였느니라”
두려움에는 두려워하는 것과 동등하게 벌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때 우리가 두려움을 바라보고 있으면 점점 더 두려워지고 얼어붙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두려움을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두려워할 때 함께 계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만이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려움이 다가올 때 ‘하나님이여, 두려움을 없애 주시옵소서. 두려움을 없애 주시옵소서.’하면 더 불안과 공포가 누적되어 가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올 때 여러분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찬미합니다. 주님을 감사합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찬미를 하면은 주님이 같이 오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계시는 야훼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최고의 기도가 찬미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려움이 다가올 때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십만 번이고, 백만 번이고 ‘주님을 찬미합니다. 주님을 찬미합니다. 주님을 찬미합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주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면 두려움은 햇빛 밑에 타들어가는 안개와 같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늘 보좌에 가면 천사들이 보좌를 둘러 진치고 늘 하는 말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야훼여,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야훼여.’ 이 말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여러분 하루 종일 특별한 기도를 하려고 하지 않을 때는 ‘주를 찬미합니다. 주를 찬미합니다. 주를 찬미합니다. 주를 찬미합니다.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예수님께 찬양합니다.’ 이것이 최고의 기도입니다. 이것이 두려움을 내쫓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시91: 2~ 3에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만이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때 주님을 찾아보고 주님을 찬미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돼요. 두려움도 오고, 주님도 옵니다. 두려움을 바라보고서 고함을 치면 점점 더 두려움에 잡히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제켜 놓고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찬양하고, 찬양하고 예배드리기 시작하면 두려움은 극복되어 버리고, 말고 예수님만 우뚝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예수님을 찬미하면서 주님은 목자로써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목자는 언제나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팡이는 길을 여는 것이고 막대기는 원수를 치는 도구인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와서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도 지팡이로 길을 열어 주시고 막대기로 원수를 처 물리쳐 주시고 우리를 해 받지 않게 평안히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오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41:10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계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 남자가 출근해 보니 책상위에 해고 통지서가 놓여 있었습니다. 마흔 살에 회사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충격과 함께 직장 상사에 대한 원한과 불평이 가득 찼습니다. 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집을 나가 여기저기 방황했으나 별다른 할 일을 발견하지 못하고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부인보고 “여보, 나는 죽고 싶소. 나는 모든 노력을 다 해 봤지만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소.” 그 말에 아내는 “당신이 시도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잖아요. 진지하게 기도해보지 않고 왜 그런 말을 합니까? 다른 일 다해보고 안되면 기도해 봐야지요. 주님이 계신데 왜 낙심합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마음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마음속에 직장과 상사를 향한 복수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그리고 기도 가운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융자를 얻어 조그마한 건축업을 시작해서 열심히 일한 결과 5년 이후에는 안정된 기업체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업을 하느라 이 곳, 저 곳 여행을 하다 보니까 마땅한 호텔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좋은 호텔은 너무 비싸고, 싼 곳은 시설이 엉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렴하면서도 깨끗한 호텔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 둘 호텔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 호텔사업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되어 세계적인 체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홀리데이 인 호텔(Holiday Inn Hotel)의 창업주 케몬스 윌슨(K. Wilson) 인 것입니다. 홀리데이 인이라는 것은 온 세상 어느 곳에도 다 있습니다. 저도 홀리데이 인에 머물기를 좋아합니다. 깨끗하고 서민적이고 값이 싼 호텔인 것입니다. 인생의 절망의 골짜기에서 예수님을 의지하고 기도한 결과 주님께서 길을 만들어 주셔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인생을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는 목자 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면 사망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고 마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시23: 4의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구절을 이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다윗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런 두려움도 없다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은 종류의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많이 있지만 그 두려움에 지지 않고 어디든지 목자가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간다는 것이다. 그는 때때로 자기에게 다가올 모든 위험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자의 지팡이 끝에 시야를 고정시키고 따라간다. 여기서 다윗은 위험과 시험으로부터 유일한 승리의 길은 오직 자신을 던져서 목자를 따르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선언한다. 그보다 더 좋은 길은 없다. 아니 그 외의 길은 없다. 그 외의 길은 위험의 길이요, 사망의 길인 것이다.”
맞아요! 진정한 위험과 사망은 예수님을 떠나 살아갈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자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지팡이를 따라가고 그 막대기를 의지하면 두려움을 이기고 마음속에 평안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손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다가오거든 당장 여러분 고함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하십시오. 두려움보고 고함을 치면 안 됩니다.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주님을 쳐다보고 목자 되신 예수님을 감사하고 찬양하고 저 지팡이와 막대기를 바라보고 감사하고 찬양하십시오. 수천 번, 수만 번 주님을 찬양하면 두려움의 어두움은 사라지고 광명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목자
역대하 20장에 보면 여호사밧 왕이 모압 암몬 마온 사람들의 연합군 침묵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대군대 침략해서 얼마 있지 아니하면 예루살렘이 함락하게 되니 큰 불안과 공포에 떠는 여호사밧 왕이 전 문무백관을 다 거느리고 백성과 함께 성전에 가서 부르짖었습니다.
대하20: 3~ 4에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야훼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야훼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올 때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성경에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영광과 권세가 다 있습니다. 부르짖는 자에게 효과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이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고 진수성찬을 주셨습니다.
대하20:14~17에 “야훼의 영이 회중 가운데에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그는 아삽 자손 맛다냐의 현손이요 여이엘의 증손이요 브나야의 손자요 스가랴의 아들이더라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야훼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야훼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짐을 맡아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부르짖어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두려움을 맡아서 ‘전쟁은 내가 한다. 너희는 와서 구경만 하라.’ 그래서 여호사밧이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연합군들이 쳐들어오는 언덕위에 서서 거룩한 성가대에게 거룩한 옷을 입혀서 야훼를 찬송했습니다. 적군 앞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 것입니다. 그러자 적군들에게 혼선이 일어나서 서로 죽이고, 서로를 베고, 전멸을 당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가져온 모든 보화를 다 취하는 진수성찬을 얻게 된 것입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하나님이 진수성찬 차려 주시고 그들에게 승리의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어서 잔이 넘치게 되어서 찬양을 부르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원수의 목전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짐은 네가 짊어질 필요가 없다. 내가 짊어지마. 이 싸움은 네가 싸울 필요가 없다. 내가 싸워 주마.’ 우리가 북한 원자탄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전쟁은 내게 있는 것이니 내가 하리라. 원자탄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없애 버리리라. 내가 너희를 지키고 보호 하리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적군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할 때 하나님이 원수의 목전에서 오히려 진수성찬 차려 주시고 기쁨의 기름을 부어 주시고 잔이 넘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원수가 오지 아니하면 진수성찬도 없습니다. 원수가 오면 진수성찬도 오고, 기쁨도 오고, 즐거움도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언제나 우리에게 어려움이 다가오고 원수가 다가오면 뒤에 하나님의 진수성찬이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오시기 전에 마귀는 먼저 와서 우리에게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므로 축복을 못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망, 불평, 탄식하면 하늘 문을 닫아 버리기 때문에 먼저 원망, 불평, 탄식을 하도록 마귀가 와서 우리에게 고통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원수가 오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하면 하나님은 원수를 물리치시고 진수성찬을 차려 주시는 것입니다.
시118: 5에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 셨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렘32:41에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평생토록 선하시고 인자하신 목자
목자 되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을 보면 부모나, 짐승이나 다 같이 자식에 대해서는 선하고 인자함을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김삼환 목사님이 캄보디아에 가셨을 때 체험을 방송하는 것을 제가 들어 보았습니다. 동물원을 운영하는 장관이 자기 동물원에 가보자고 해서 프놈펜에서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한차 싣고 동물원에 호랑이와 사자가 있는데 장관이 김목사님 보고 호랑이에게 먹이를 던져주라고 했습니다. 김목사님은 무서웠지만 참고 2kg짜리 쇠고기 여러 개를 만들어 3m이상 되는 철조망 위로 휙 던져주자 호랑이가 점프하더니만 쫙 낚아챘습니다. 놀랬는데 호랑이가 그 고기를 당장 받아먹을 줄 알았는데 먹지 않고 어미 호랑이가 4~5개월 된 새끼 네 마리에게 그 먹이를 갖다 주면서 새끼들이 막 달려들어 뜯어 먹는 것을 입맛을 다시며 구경만 하고 자기는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미 호랑이를 보니까 굶어 가지고서 갈비뼈가 듬성듬성 났어요. 먹이는 전부 받아서 새끼를 먹인다고 그 먹고 싶은 본능을 누르고 새끼를 먹고 난 다음 남은 찌꺼기를 갖다 먹습니다. 그것을 보고 김삼환 목사님이 놀랬다는 것입니다. 미물 짐승도 자기 새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새끼가 다 먹도록 기다렸다가 남은 찌꺼기만 먹어서 저렇게 야위었구나. 그때 자기 옛날이 생각났다는 것입니다. 시골이 얼마나 가난합니까? 그런데 자식들은 많지요. 먹을 것은 없는데 밥상에 애들이 달려들어 음식을 먹는데 어머니는 ‘먹어라. 먹어라. 나는 많이 먹어서 배부르다.’ 그것이 참말인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날로 파리해지고 40대 어머니가 피골이 상접하고 어머니 적삼 밑으로 늘어진 젖은 축 늘어져서 가죽부대같이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왜 저런가?’ 했더니 이제 보니까 어머니는 못 먹어서 그렇게 배가 고프면서도 자식들 먹이려고 ‘나는 배부르다. 나는 먹었다. 너희들 먹어라.’ 그렇게 하신 어머니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생각하면 그 마음이 메이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그런 간증을 제가 들어 봤습니다. 여러분, 짐승도 자기 새끼에게 선함과 인자함을 베풉니다. 새끼에게 젖먹이는 개 보십시오. 개가 뼈다귀만 남았지. 새끼가 젖을 다 빨아먹고, 어른들도 자식들을 기를 때 자식에게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베풀어서 자식들 위해서 온갖 희생을 다합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며 손발이 다 닳도록 수고하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대고 자식 다 길러서 시집, 장가보내면 부모님은 거미같이 되어 있습니다. 기름이 다 빠졌어요. 그와 같이 부모와 짐승들도 자식들에게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베푸시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인생을 어떻게 인자하심과 긍휼함으로 베풀지 않겠습니까?
시103:12~13에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사54:10에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인생에 대한 선하심과 인자하심의 극치가 어디 있습니까? 십자가 아닙니까? 사람이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해서 버림을 당하여 지옥에 갈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라마이 죽습니다. 그러면 육신의 장막 집을 떠나게 되면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죄악 가운데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지옥에 떨어지면 모든 죄가 다 습격해 오고 모든 절망, 모든 슬픔, 모든 고통, 모든 좌절, 모든 우울이 산더미같이 누르는 것입니다. 지옥은 절대절망의 처소요, 절대 슬픔의 곳이요, 절대 우울의 곳이요, 절대 고통의 곳입니다. 이곳에 들어가서 영원이 영혼이 고통당하는 것을 주님이 생각하고 우리를 건지려고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낸 것입니다. 사람의 죄는 사람이 갚아야 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므로 사람의 죄를 사람이 갚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린 것을 기억하십시오. 주님 33세 건장한 그분이 십자가에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히시고 매달려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심판하시매 하늘이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너무나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져 절망 가운데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고독과 외로움으로 꽉 들어찼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은 다 도망을 치고 로마인과 유대인들은 그를 향하여 손가락질하고 온갖 모욕을 당하고 육체는 피와 땀이 흐르고 매달려 있으니 가슴에 긴장이 와서 심장이 쪼여서 고통스럽고 괴롭기가 말로 다 할 수 없어 숨 쉴 수가 없습니다. 6시간 동안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극한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주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은 ‘내가 죽어야 네가 살고 내가 고통 받아야 네가 고통을 받지 않고 내가 지옥의 불에 타야 너희가 천당에 올라갈 수 있으니 나 죽고 너 살리자.’ 이 심정으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는 절대로 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혹독하고 모진 고통을 당하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 대한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그것을 참아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오늘날에는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예수 이름만 부르고 주님만 의지하면 용서와 의와 영광을 얻고 거룩함과 깨끗함을 얻고 천국 백성이 되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이런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반역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 미래에 다가오지 않습니까? 사람이 한 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어떠한 젊은 청춘도 안 죽을 사람 없는 것입니다. 육체는 무너지고 육체를 떠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냐, 주님이 예비한 천국에 들어가서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영 영광, 영영 기쁨, 영영 소망, 영원 즐거움, 영원한 평강에서 살 것이냐. 우리가 그것을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대속의 은총은 사53: 5~ 6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세상 부귀, 영화, 공명도 예수님과 바꿀 수 없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 한분 모시면 여러분 온 천하를 다 얻은 것입니다. 세상에 돈 얼마 있으면 사라져요. 세상에 명예, 헌신짝 같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의 칭찬도 며칠 없으면 다 사라지고 말아요. 예수님의 구원과 사랑은 영영 세세무궁토록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예수님을 사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더라도 예수님을 잃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성공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짧은 성공은 그 후에 영원한 적막강산이 다가오지만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성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여러분은 정말로 세상말로 팔자가 늘어진 사람이요,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육신의 장막 집 벗어서 천사의 손에 들려서 주님이 예비한 곳으로 갈 때에 계 7:15~17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이 세상에 태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의 태양보다 수천 배 더 밝은 예수 그리스도의 광채가 우리를 비취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나무는 거칠기 짝이 없습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수풀이 꽉 들어차고 이 세상의 새소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새들의 울음소리는 얼마나 즐거운 노래가 될 것이고 이 세상에 흐르는 물은 탁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너무나 맑은 물이 금이나 은 같은 자갈 위로 흐를 것입니다. 보좌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고 거기에 수많은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수많은 천군천사들과 구원받은 성도들이 손과 손을 잡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노래 부르며 영광스럽게 살고 이 세상의 맨션은 거기에 비하면 똥션이야. 하나님이 지으신 맨션이 상상을 초월해 표현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하루, 이틀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영원히 살게 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새롭다는 겁니다. 자고 일어나도 새롭고, 깨어나도 새롭고, 늘 새롭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기쁨, 새로운 사랑, 새로운 희망이 새로운 즐거움이 충만한 곳입니다.
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이 얼마나 큽니까? 진실로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결론>
시23: 4~ 6말씀은 고뇌의 꽉 찬 인생여정에 형언할 수 없는 위안과 평안과 삶의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삶의 종말인 죽음 저 건너편 찬란한 미래의 꿈도 보여주십니다. 저는 언제나 어려울 때 시23: 4~6을 외우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기에 나의 목자 되신 예수님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함께 하셔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에 감사하고 원수가 오면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성찬을 차려주시고 이기게 해주시고 기쁨의 기름을 부어주시고 잔이 넘치게 해주시고 끝없는 용서와 사랑과 불쌍히 여겨주셔서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고 나중에 천국의 영광을 들어가게 하신 우리의 목자를 생각할 때 마음에 얼마나 큰 용기와 희망이 되는 지 모릅니다.
목자없는 인생은 자기혼자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굶어죽고 상처입고 죽고 짐승에 찢겨 죽습니다. 우리는 목자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험한 길을 걸어가도 목자와 같이 가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광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 목자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감사합니다. 어떠한 두려움이 다가와도 두려움보다 더 크신 예수님이 같이 계시므로 예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며 두려움을 극복하고 우리는 영광스러운 평안과 기쁨과 승리를 가지고 살게 됨을 감사합니다. 온 세상이 다 원수가 되어 온다 하더라도 주님이 같이 계셔서 오히려 원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진수성찬 차리게 하시고 기쁨의 기름을 부어 주시고 잔이 넘치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용서하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일으켜 세워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 의지하고 일어나서 이 땅에서 살뿐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살게 해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 주님의 은총을 너무나 감사하여 찬양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찬양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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