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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 선교계 선도해 온 이광훈 목사 -
이광훈 목사가 차범근 감독을 전도한 이야기도 유명하다. 스포츠를 해 본적 없는 이광훈 목사를 보면 혹자는 물어온단다. '씨름을 했냐, 아니면 레슬링을 했냐'고. 그러나 이 목사가 한국 체육 선교계에 큰 역할을 한 것에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매일 한시간씩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것이 그가 하는 운동의 전부이지만 좀 남다른 데가 있었다. 이 목사는 달리는 시간이 곧 성경을 외우는 시간이다. 날마다 10여개의 구절을 지속적으로 외우고 있는 이 목사가 체육 선교계에 기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강력한 말씀의 힘 때문이었다. 차 감독을 전도할 수 있었던 것도 강한 말씀의 힘과 꾸준한 기도를 통한 성령의 힘에 의지한 것이었다.
"차 감독을 전도하려고 집에 찾아가서 2시간 내내 쉬지 않고 성경구절을 외면서 말씀을 전했어. 그런데 (차 감독이) 말씀을 듣지 않고 텔레비전을 켰어. 개의치 않고 계속 말씀을 전하는데 이번에는 전축을 켜는거야. '딱 돌아서서 나는 예수 안 믿는다'고 하는데, 돌아서면서 기도했지. '하나님, 씨를 뿌리고 갑니다. 하나님을 믿게 해 주세요. 차 감독을 복음의 도구로 사용해 주세요'"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1977년 10월, 월드컵 진출팀을 결정하는 중요한 경기를 치르기 위해 이란으로 갔던 이영무 목사가 놀라운 말을 전해왔다. 당시 함께 이란에 있었던 차범근 감독에게 현 프로축구 울산 김정남 감독이 찾아와서 '정말 하나님이 계시냐?'고 물어온 것이다. 당시만해도 김정남 감독은 불교신자였다. 그러자 차 감독은 이영무 목사를 불러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지 물었다. 놀랍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한 이영무 목사는 겨우 '하..하나님이 계계계..시지요'라고 밖에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차 감독이 김정남 감독에게 하는 말이 "이영무의 외삼촌에게 물어보면 그분이 잘 이야기해줄거야. 저번에 우리 집에 와서 말하시는데 하마터면 넘어갈 뻔 했다니까."
'옳커니, 이제 때가 되었구나'라며 이광훈 목사는 더욱 열심을 다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에 차범근 감독이 무릎고장으로 수술대에 올라갔다는 뉴스가 톱 기사로 올라왔다. 이튿날 차를 몰고 이 목사 집에 온 차범근 감독은 자신의 집에 함께 가 줄 것을 요청했다. 그 후 7시간동안 차 감독의 집에서 있었던 일들은 이광훈 목사에게 아직도 생생했다. 이 목사가 기도하기 시작하니 차범근 감독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두 손을 가슴에 모아쥐고 '아멘! 아멘!'을 강하고 짧게 연발했다. 큰 소리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것을 고백하며 눈물 흘리고 회개하는 차범근 감독에게 이 목사는 물었다. "주님께서 무릎을 낳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아멘!" "그렇다면 내일 병원에 가지 않겠습니까." "……."
3분만에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차 감독은 얼마 후 다시 들어와서 "병원에 가지 않겠습니다"고 결단했다. 이 목사는 차 감독의 무릎에 손을 대고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 조금 후 갑자기 차 감독은 이 목사의 귀청이 찢어질 것만 같은 큰 소리로 기도했다. "주여 불이 들어왔습니다. 불이 올라갔습니다. 불이 다 나갔습니다. 주여 믿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다음주 차범근 감독은 바로 교회에 등록하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으며, 1년 반만에 세례를 받고 독일로 건너가 '차붐' 열풍을 일으켰다.
이 목사가 반도체 장비회사를 운영하며 실리콘 밸리 뿐 아니라 미국에서 주목받는 TYK그룹 김태연 회장을 전도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155cm의 작은 키에 태권도 8단의 실력을 갖춘 김태연 회장은 23세에 도미하여 고등학교 태권도 사범으로 미국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안식년을 지내던 이 목사는 김 회장의 집에서 3일간 집중적으로 말씀을 전해 또 한 인물을 변화시켜 놓았다. 밤 3시까지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면서 말씀을 접한 그 때 이후 김 회장은 태권도 도장 곳곳에 붙여놓은 자신의 사진을 내리고, 이 목사가 써준 8개의 성경 구절을 대신 달도록 지시했다.
조카 사랑에서부터 비롯된 이광훈 목사의 스포츠 선교는 체육인선교회를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진행된 기도운동을 통해 계속된다. 81년 체육인선교회는 '체육을 통한 세계 복음화'를 구호로 삼아 하루 3명씩 1년간 릴레이기도를 하며, 그 해 86년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이 유치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86년 아시안게임에서는 태능선수촌 선수들을 통해 92개의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공산국가에 접촉하는 유일한 통로로 스포츠 선수들에게 복음을 소개할 기회를 가졌다. 86년 아시안게임은 2년 후에 열릴 88올림픽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161개 국가가 참석한 88올림픽을 대비하여 선교회는 전국 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기도와 환영식, 관광, 응원, 예배 등으로 체계적인 복음전파에 나서 총 참석국가 중 64개 국가가 예수를 받아들이는 성과가 있었다. 이 여세를 몰아 90년 북경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철의 장막인 공산권을 위해 138곳의 기도회, '말씀 달리기 선교 대행진'을 열었다.
"그 해(90년) 공산권 붕괴에 관해 사람들은 다 이야기를 달리 하지만, 나는 사상, 문화, 국경, 언어, 종교를 초월한 스포츠가 큰 공로를 한 것을 확신하고 있어. 138개 지역에서 열린 연합기도성회에는 하나님께서 해주시지 않았다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지. 더러는 장사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메달을 따기 위해 스포츠를 하지만, 우리는 예수를 증거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자 하는 믿음으로 스포츠를 하고, 또 큰 역사를 이룩한거야."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많은 응원단들이 전도와 중보기도로 역사를 일으켰다. 2002 월드컵 유치를 위해 10년 전부터 사전 준비해 온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준비가 미흡했지만, 96년에는 3백 교회를 선정하여 교회 성도들이 월드컵 유치위원을 놓고 하루 풀금식을 하는 릴레이 금식기도를 1백일간 했다. 그 때에도 이광훈 목사는 전국을 다니며 한국 선수들의 4강 진출을 놓고 기도했다. 96년 기적적으로 한국이 일본과 월드컵을 공동개최하기로 결정됐고, 한국 선수들은 정확히 4강에 진출하는 역사를 써냈다. 스포츠로 전세계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다.
해외에서 진행되는 할렐루야축구단의 활약도 대단했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동에 이르기까지 국경 없는 스포츠 선교를 펼친 이들은 경기 전 복음 증거와 무료 축구교실 등을 펼치며 민간외교에도 몫을 담당했다. 86년 6월 멕시코에서 열린 월드컵에는 자비량으로 축구선교를 가서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모인 6만 관중들에게 30분간 복음을 증거, 그 자리에서 8천명이 일어나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것을 다짐했다.
그곳에서 한편, 이광훈 목사는 멕시코 태권도의 대부로 불리는 문대원 사범이 당시 도장 280군데에서 10만 명의 제자를 훈련시키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할렐루야 태권도단을 창설하기에 이른다. '태권도 선교사' 모집광고에 몰려든 78명을 3박4일간 말씀 수련회에 참석하게 하고, 그 중에서 사명감과 실력을 두루 갖춘 20명을 뽑아 87년 3월 30일 할렐루야 태권도단 창단식을 가졌다. 체육선교신학교도 비슷한 시기 세워지면서 스포츠 자비량선교사를 길러내 전세계에 파송했다. 이들은 선교지에서 지도자로 사역하면서 신앙의 기본적인 훈련도 병행하여 가시적인, 비가시적인 많은 기독교인들을 길러냈다.
앞으로도 이 목사는 '할렐루야! 아멘!'을 수시로 외치는 이 '할멘'들을 전세계에 파송, 스포츠선교사로 활약하도록 기대하고 있다. 이 일의 일환으로 이광훈 목사는 이달 내에 기존의 한기총 문화예술체육분과위원회에서 체육분과위원회를 따로 분리시키는 일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체육분과위원회가 분리되면 각 교단에서 위원을 한 사람씩 선정하여 스포츠를 통한 교단선교를 활성화시키고 실행위원회를 교육하고 경희대 등 체육학과가 있는 대학에서 믿음이 있는 교수 연구팀을 구성하는 등 기반을 다지고자 한다. 이 목사는 "세계스포츠선교회가 구성돼 있지만 열정있는 몇몇 사람들만 참여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기총 차원에서 움직이면 좋겠다"고 전했다.
"모든 경기에서 룰을 따르지 않으면 탈락하듯, 우리 인생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야. 나는 스포츠를 잘 모르지만 성경에 있는 음성에는 스포츠와 관련된 룰이 다 있지. 사도바울은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4~25)'고 했는데, 경기 전 승패에 대한 부담감이 심한 선수들에게 '우리는 영생의 면류관을 위해 달려간다'는 생각을 심어주면 평안을 얻고 매우 좋아하지. 하루 7~8번 게거품을 물고 극기훈련 된 이들이 앉아 있는 것보면 다 사자같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체육인은 단순해. 그 심령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하게 되면 누구보다 철저하지."
한 발 앞으로 가면 한 발 열어주시는 하나님은 이 목사의 인생을 그리 이끌어 왔다. 그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는 말처럼 스포츠라는 문화를 타고 입으로 시인할 때 구원의 능력이 들어가며, 이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 바로 교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체육인들에게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인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기독체육인들의 24시간 예배화'를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뤄 온 역사에 만족하지 않고 쉼없이 스포츠 선교 열정을 불태우는 이광훈 목사를 보며 하나님 사역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았다.
[크리스천투데이] 이지희 기자 jhlee@chtoday.co.kr
이광훈 목사가 차범근 감독을 전도한 이야기도 유명하다. 스포츠를 해 본적 없는 이광훈 목사를 보면 혹자는 물어온단다. '씨름을 했냐, 아니면 레슬링을 했냐'고. 그러나 이 목사가 한국 체육 선교계에 큰 역할을 한 것에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매일 한시간씩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것이 그가 하는 운동의 전부이지만 좀 남다른 데가 있었다. 이 목사는 달리는 시간이 곧 성경을 외우는 시간이다. 날마다 10여개의 구절을 지속적으로 외우고 있는 이 목사가 체육 선교계에 기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강력한 말씀의 힘 때문이었다. 차 감독을 전도할 수 있었던 것도 강한 말씀의 힘과 꾸준한 기도를 통한 성령의 힘에 의지한 것이었다.
"차 감독을 전도하려고 집에 찾아가서 2시간 내내 쉬지 않고 성경구절을 외면서 말씀을 전했어. 그런데 (차 감독이) 말씀을 듣지 않고 텔레비전을 켰어. 개의치 않고 계속 말씀을 전하는데 이번에는 전축을 켜는거야. '딱 돌아서서 나는 예수 안 믿는다'고 하는데, 돌아서면서 기도했지. '하나님, 씨를 뿌리고 갑니다. 하나님을 믿게 해 주세요. 차 감독을 복음의 도구로 사용해 주세요'"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1977년 10월, 월드컵 진출팀을 결정하는 중요한 경기를 치르기 위해 이란으로 갔던 이영무 목사가 놀라운 말을 전해왔다. 당시 함께 이란에 있었던 차범근 감독에게 현 프로축구 울산 김정남 감독이 찾아와서 '정말 하나님이 계시냐?'고 물어온 것이다. 당시만해도 김정남 감독은 불교신자였다. 그러자 차 감독은 이영무 목사를 불러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지 물었다. 놀랍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한 이영무 목사는 겨우 '하..하나님이 계계계..시지요'라고 밖에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차 감독이 김정남 감독에게 하는 말이 "이영무의 외삼촌에게 물어보면 그분이 잘 이야기해줄거야. 저번에 우리 집에 와서 말하시는데 하마터면 넘어갈 뻔 했다니까."
'옳커니, 이제 때가 되었구나'라며 이광훈 목사는 더욱 열심을 다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에 차범근 감독이 무릎고장으로 수술대에 올라갔다는 뉴스가 톱 기사로 올라왔다. 이튿날 차를 몰고 이 목사 집에 온 차범근 감독은 자신의 집에 함께 가 줄 것을 요청했다. 그 후 7시간동안 차 감독의 집에서 있었던 일들은 이광훈 목사에게 아직도 생생했다. 이 목사가 기도하기 시작하니 차범근 감독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두 손을 가슴에 모아쥐고 '아멘! 아멘!'을 강하고 짧게 연발했다. 큰 소리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것을 고백하며 눈물 흘리고 회개하는 차범근 감독에게 이 목사는 물었다. "주님께서 무릎을 낳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아멘!" "그렇다면 내일 병원에 가지 않겠습니까." "……."
3분만에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차 감독은 얼마 후 다시 들어와서 "병원에 가지 않겠습니다"고 결단했다. 이 목사는 차 감독의 무릎에 손을 대고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 조금 후 갑자기 차 감독은 이 목사의 귀청이 찢어질 것만 같은 큰 소리로 기도했다. "주여 불이 들어왔습니다. 불이 올라갔습니다. 불이 다 나갔습니다. 주여 믿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다음주 차범근 감독은 바로 교회에 등록하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으며, 1년 반만에 세례를 받고 독일로 건너가 '차붐' 열풍을 일으켰다.
이 목사가 반도체 장비회사를 운영하며 실리콘 밸리 뿐 아니라 미국에서 주목받는 TYK그룹 김태연 회장을 전도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155cm의 작은 키에 태권도 8단의 실력을 갖춘 김태연 회장은 23세에 도미하여 고등학교 태권도 사범으로 미국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안식년을 지내던 이 목사는 김 회장의 집에서 3일간 집중적으로 말씀을 전해 또 한 인물을 변화시켜 놓았다. 밤 3시까지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면서 말씀을 접한 그 때 이후 김 회장은 태권도 도장 곳곳에 붙여놓은 자신의 사진을 내리고, 이 목사가 써준 8개의 성경 구절을 대신 달도록 지시했다.
조카 사랑에서부터 비롯된 이광훈 목사의 스포츠 선교는 체육인선교회를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진행된 기도운동을 통해 계속된다. 81년 체육인선교회는 '체육을 통한 세계 복음화'를 구호로 삼아 하루 3명씩 1년간 릴레이기도를 하며, 그 해 86년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이 유치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86년 아시안게임에서는 태능선수촌 선수들을 통해 92개의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공산국가에 접촉하는 유일한 통로로 스포츠 선수들에게 복음을 소개할 기회를 가졌다. 86년 아시안게임은 2년 후에 열릴 88올림픽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161개 국가가 참석한 88올림픽을 대비하여 선교회는 전국 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기도와 환영식, 관광, 응원, 예배 등으로 체계적인 복음전파에 나서 총 참석국가 중 64개 국가가 예수를 받아들이는 성과가 있었다. 이 여세를 몰아 90년 북경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철의 장막인 공산권을 위해 138곳의 기도회, '말씀 달리기 선교 대행진'을 열었다.
"그 해(90년) 공산권 붕괴에 관해 사람들은 다 이야기를 달리 하지만, 나는 사상, 문화, 국경, 언어, 종교를 초월한 스포츠가 큰 공로를 한 것을 확신하고 있어. 138개 지역에서 열린 연합기도성회에는 하나님께서 해주시지 않았다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지. 더러는 장사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메달을 따기 위해 스포츠를 하지만, 우리는 예수를 증거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자 하는 믿음으로 스포츠를 하고, 또 큰 역사를 이룩한거야."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많은 응원단들이 전도와 중보기도로 역사를 일으켰다. 2002 월드컵 유치를 위해 10년 전부터 사전 준비해 온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준비가 미흡했지만, 96년에는 3백 교회를 선정하여 교회 성도들이 월드컵 유치위원을 놓고 하루 풀금식을 하는 릴레이 금식기도를 1백일간 했다. 그 때에도 이광훈 목사는 전국을 다니며 한국 선수들의 4강 진출을 놓고 기도했다. 96년 기적적으로 한국이 일본과 월드컵을 공동개최하기로 결정됐고, 한국 선수들은 정확히 4강에 진출하는 역사를 써냈다. 스포츠로 전세계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다.
해외에서 진행되는 할렐루야축구단의 활약도 대단했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동에 이르기까지 국경 없는 스포츠 선교를 펼친 이들은 경기 전 복음 증거와 무료 축구교실 등을 펼치며 민간외교에도 몫을 담당했다. 86년 6월 멕시코에서 열린 월드컵에는 자비량으로 축구선교를 가서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모인 6만 관중들에게 30분간 복음을 증거, 그 자리에서 8천명이 일어나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것을 다짐했다.
그곳에서 한편, 이광훈 목사는 멕시코 태권도의 대부로 불리는 문대원 사범이 당시 도장 280군데에서 10만 명의 제자를 훈련시키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할렐루야 태권도단을 창설하기에 이른다. '태권도 선교사' 모집광고에 몰려든 78명을 3박4일간 말씀 수련회에 참석하게 하고, 그 중에서 사명감과 실력을 두루 갖춘 20명을 뽑아 87년 3월 30일 할렐루야 태권도단 창단식을 가졌다. 체육선교신학교도 비슷한 시기 세워지면서 스포츠 자비량선교사를 길러내 전세계에 파송했다. 이들은 선교지에서 지도자로 사역하면서 신앙의 기본적인 훈련도 병행하여 가시적인, 비가시적인 많은 기독교인들을 길러냈다.
앞으로도 이 목사는 '할렐루야! 아멘!'을 수시로 외치는 이 '할멘'들을 전세계에 파송, 스포츠선교사로 활약하도록 기대하고 있다. 이 일의 일환으로 이광훈 목사는 이달 내에 기존의 한기총 문화예술체육분과위원회에서 체육분과위원회를 따로 분리시키는 일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체육분과위원회가 분리되면 각 교단에서 위원을 한 사람씩 선정하여 스포츠를 통한 교단선교를 활성화시키고 실행위원회를 교육하고 경희대 등 체육학과가 있는 대학에서 믿음이 있는 교수 연구팀을 구성하는 등 기반을 다지고자 한다. 이 목사는 "세계스포츠선교회가 구성돼 있지만 열정있는 몇몇 사람들만 참여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기총 차원에서 움직이면 좋겠다"고 전했다.
"모든 경기에서 룰을 따르지 않으면 탈락하듯, 우리 인생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야. 나는 스포츠를 잘 모르지만 성경에 있는 음성에는 스포츠와 관련된 룰이 다 있지. 사도바울은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4~25)'고 했는데, 경기 전 승패에 대한 부담감이 심한 선수들에게 '우리는 영생의 면류관을 위해 달려간다'는 생각을 심어주면 평안을 얻고 매우 좋아하지. 하루 7~8번 게거품을 물고 극기훈련 된 이들이 앉아 있는 것보면 다 사자같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체육인은 단순해. 그 심령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하게 되면 누구보다 철저하지."
한 발 앞으로 가면 한 발 열어주시는 하나님은 이 목사의 인생을 그리 이끌어 왔다. 그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는 말처럼 스포츠라는 문화를 타고 입으로 시인할 때 구원의 능력이 들어가며, 이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 바로 교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체육인들에게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인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기독체육인들의 24시간 예배화'를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뤄 온 역사에 만족하지 않고 쉼없이 스포츠 선교 열정을 불태우는 이광훈 목사를 보며 하나님 사역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았다.
[크리스천투데이] 이지희 기자 jhlee@ch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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