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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나훔

나훔 한태완 목사............... 조회 수 939 추천 수 0 2009.10.23 14: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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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나1:1-15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나1:15)

오늘은 니느웨에 임할 심판의 선포자 나훔 선지자에 대해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나훔이란 이름의 뜻은 '위로자' '위안' '안위자' 또는 '구원'이라는 의미입니다. 그의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그는 앗수르의 횡포와 잔악함에 시달린 유다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들어서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지나치게 학대하여 하나님의 생각과 어긋나게 행동하는 앗수르를 묵과하시지 않고 반드시 보복하신다는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들어서 말했습니다.
나훔은 유다 출신 엘고스 사람으로서 히스기야 왕 때에 예언을 한 열두 소선지서 중 나훔서를 기록한 선지자입니다.(나1:1-8) 그는 포악한 앗수르가 멸망할 것을 예언했다. 그의 예언이 선포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B.C. 663-612년경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니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멸망된 B.C.612년 바로 몇 년전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대강국인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침범하여 열 지파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을 때 나훔은 탈출하여 유다로 갔던 것입니다. 나훔 선지자는 앗수르의 죄중에서 두 가지를 지적했습니다. 첫째는 군사력을 무자비하게 사용하였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피가 강물처럼 흘렀고, 많은 민족이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둘째는 비양심적인 교역을 지적했습니다. 주변국가들은 아부와 부패로 정복민들의 사치와 악을 만족시켜 주었으며 상인들은 온갖 종류의 우상과 세공품을 팔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정직과 도덕은 사라져 버리고 없었습니다. 오직 쾌락과 향락뿐이었습니다.(나3:1-2)
그는 니느웨는 망할 것이라는 메시지만을 반복했습니다. 그는 개인이나 국가가 의로 돌아설 것을 언급하지 않고 종교절기들을 지킬 것을 호소했습니다.
나훔의 예언은 불과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거의 모두가 시로 되어 있고 산문으로 된 곳은 몇 개의 단편들 뿐입니다. 그는 상당히 유능하고 독창적인 시인으로 그 시적문체는 생동감이 있고 극적입니다.
그는 세 개의 장을 통하여 한 번도 '하나님'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여호와'라고만 하였습니다. 이 명칭은 '스스로 있는자, 지존자'라는 뜻입니다. 또 그 기원을 찾아보면 말씀하는 자, 뜨겁게 사랑하는 자, 폭풍을 일으키는 자, 전멸시키는 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는 자존하시면서 공의와 자비를 겸하여 섬기시는 분이시다는 것을 나훔은 그의 백성들에게 강조했습니다.
니느웨는 이스라엘과 항상 대립관계에 있는 앗수르의 수도인데, 함의 손자 니므롯이 세운 성이었습니다.(창10:10)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서 앗수르를 몽둥이로 사용하셨습니다. 앗수르 군대는 여러 번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와서 도성을 훼파하고 인명을 학살하고 인질로 사로잡아 가는 등 여러 가지 잔악한 행위를 자행하였습니다. 이렇게 잔혹한 도성 니느웨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사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 도성에 가서 외쳤습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며 겸손히 회개하였습니다. 왕이 전국에 회개하라는 조서를 내렸고 짐승까지 금식시키는 철저한 회개운동이 실행되었습니다.(욘3:4-8) 그렇게 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고 멸망직전에 구원받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후 150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계속 포악한 행위를 자행했습니다.
이 시간에 나훔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시대적 배경
나훔은 B.C.663- 612년경에 주로 활동했는데, 당시는 팔레스틴은 물론 애굽의 옛수도 중 하나인 테베(노아몬)까지 정복하며 그 위세를 떨쳤던 앗수르 제국이 서서이 쇠퇴하고, 대신 나보폴라살(B.C. 625- 605)이 창건한 신바벨론 제국이 서서히 근동 지역의 강국으로 부상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나훔 선지자의 예언대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는 신바벨론 제국과 메대 연합군의 공격으로 B.C. 612년에 함락되기 직전 그 말기의 현상으로 정치, 사회적으로 크게 부패하고 혼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나훔은 니느웨 멸망을 선포함으로써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하에 있다는 사실을 선민 이스라엘에게 일깨워 주고 또 더욱 이 하나님을 신뢰토록 암시적으로 교훈하였습니다.

2. 성품
(1)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면서 하나님의 절대 공의를 거듭 선포한 것으로 보아 매우 강직하고 의분이 넘치는 사람입니다.(나1: 2, 3, 11)
(2) 붕괴의 조짐도 전혀 없고 여전히 근동의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의 멸망을 담대히 선포한 것으로 보아 담대한 믿음이 소유자입니다.(나1: 7- 9)
(3) 다른 예언서에 비해 세련된 시적인 형식과 회화적인 문체로써 니느웨의 멸망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나1: 2- 10)

3. 구속사적 지위
(1)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나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임을 증거함으로써 앗수르의 위협을 받던 당시대의 유다 백성들과, 더 나아가 악한 세력으로부터 고통받는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 인내와 위로를 부여한 선지자입니다.(나1:3)
(2) 70 여년전 요나의 심판 경고로 회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패역해진 니느웨에 대하여 철저한 멸망을 선포한 증오와 분노의 선지자입니다.
(3) 예레미야, 스바냐와 같은 동시대의 선지자들이나 다른 선지자들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회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이 없고 원수 니느웨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만을 선포한 선지자입니다.

4. 참된 선지자 나훔
모든 성도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야 할 선지자적 사명을 맡았습니다.(행1:8) 그러나 날로 부패해 가는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핍박이 닥쳐오고 완악한 사람들의 마음에 아무리 복음을 외쳐도 반응이 없을 때 낙심되고 복음 전하는 것을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남기신 지상 명령(至上命令)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훔 선지자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낙심하고 좌절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큰 위로를 줄 것입니다. 나훔 선지자야말로 누구보다도 더 어렵고 고통스런 상황에 놓여 있었으나 끝까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참된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선지자 나훔이 어떠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는지 살펴봄으로 성도들의 복음 전파사명에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세상 권세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나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곳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였습니다.(나1:1) 그런데 앗수르는 당시 근동 지방을 다스리던 강대한 나라였으며 나훔은 그 앗수르에 의해 압제를 받던 유다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나훔이 감히 하나님께서 강대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심판하시고 멸망시킨다는 말씀을 전하였을 때 앗수르를 다스리던 권세자들과 강력한 군대가 분노하여 결코 가만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무력으로 나훔 선지자를 핍박하고 목숨을 위협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훔 선지자는 결코 그들의 권세와 무력앞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복음 전하는 것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핍박받고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것 때문에 좌절하거나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성경은 사람의 육신을 죽이는 세상 권세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까지 멸하시는 하나님의 권세를 두려워하라(마10:28)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계를 다스리던 앗수르의 권세에도 굴하지 않았던 나훔 선지자를 본 받아 담대하고 두렴없이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세상을 주관하시는 권능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욥23:6) 능히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2) 교만하고 사악한 사람들에게 굴하지 않았습니다.
니느웨 성은 과거에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할 때 회개하였던 곳입니다.(욘2: 5, 6) 그러나 그들은 교만하여 다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죄악에 빠졌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훔 선지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전파했을 때 사람들은 결코 나훔의 말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나훔을 조롱하엿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훔은 결코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복음을 전파할 때 사람들이 조롱하고 비웃는 것 때문에 낙심하고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또한 아무리 외쳐도 교만하고 사악한 자들이 듣지 않고 반응이 없을 때에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이 조롱과 무관심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나훔 선지자를 바라보십시오. 사람들이 조롱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격려하시며 사람들이 마음에 반응이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수고를 아시고 영광의 면류관으로 상주실 것입니다.

(3) 외로움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나훔은 앗수르에 의해 압제받던 유다 사람이었고 수많은 니느웨 사람 중에 아무도 보살펴 주는 이 없는 외로운 자였으며, 특히 오직 혼자서만 외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였습니다. 나훔은 아마 거대한 사막에 홀로 버려져 수많은 적들에 의해 포위당한 것과 같은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외로움도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나훔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아무도 관심이 없고 혼자서만 복음을 전한다고 불평하며 복음 전파를 포기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결코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복음 전파는 남들이 한다고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끝까지 혼자 남더라도 해야 하는 일입니다. 담대하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여러분을 위해 성령님께서 기도하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5. 나훔서의 메시지

나훔서란 성경이 있는 줄 모르는 성도들이 적지 않습니다. 나훔이란 뜻은 ‘위로자’라는 뜻이며 주제는 니느웨의 멸망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나훔서의 예언이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나훔서 1장에는 니느웨 멸망의 선포,2장에는 멸망의 내용,3장에는 멸망의 이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훔서는 경고로 시작합니다.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 하시느니라” 그러나 이 심판의 선포 속에서도 은혜의 복음을 주십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1:7)
2장에는 니느웨를 치게 될 바벨론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의 용사들의 방패는 붉고 그의 무사들의 옷도 붉으며 그 항오를 벌이는 날에 병거의 철이 번쩍이고 노송나무 창이 요동하는도다”(2:3) 비록 니느웨의 군대가 이것을 막으려고 해도 그것도 다 헛되다고 했습니다.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정명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며…은을 노략하라 금을 늑탈하라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무하였도다”(2:6∼11) 중요한 것은 니느웨가 멸망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대적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게 대적이 되어 너의 병거들을 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너의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너의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그러면 왜 니느웨가 이렇게 심판을 받게 되었는가? 3장에 그 이유가 자세히 나옵니다. “화 있을진저 피 성이여 그 속에서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며 늑탈이 떠나지 아니하는도다”(3:1) 구약에는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언급합니다. 첫째는 선민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을 때,둘째는 주변 나라들이 선민을 괴롭혔을 때입니다. 여기서는 두번째의 경우입니다.

나훔을 통해 우리가 배울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1. 나훔의 예언은 니느웨의 멸망을 보여 준 것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엄위를 나타냅니다. 이 예언대로 바벨론 왕국은 멸망하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잔혹했던 만큼 자신들도 자혹하게 멸절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압제자의 손에서 구원을 받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사30:18)
2. 나훔은 자기 백성에 대해서는 심판이나 징벌을 한마디도 선포하지 않았고 오직 위로의 말만 하였습니다. 나훔은 왜 자기민족의 죄나 영적, 도덕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고, 니느웨의 심판에만 집중했을까? 아마도 당시 이스라엘은 요시야의 개혁이 상당히 성공을 거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니느웨의 멸망만을 외치며 하나님의 공의만을 선포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무하였도다 누가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 하시는도다"(나3:7)
3. 아직 붕괴의 조짐이 없는, 난공 불락의 천연 요새지에 위치한 부유한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한낱 공허한 소리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훔은 죄를 결코 사하시지 않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품성에 근거하여 니느웨가 멸망하게 될 것을 담대히 선포하였습니다,(나1:3) 이러한 나훔은 홍수 심판이 주어지기 120년 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의심치 않고 홍수 심판을 경고한 노아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창6:3) 이처럼 우리 모든 성도에게는 눈 앞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주의 말씀을 절대 신뢰하고 순종하는 자세가 절대 요청된다 하겠습니다.
4. 나훔은 니느웨의 멸망이라는 "아름다운 소식"을 유다 백성들에게 전하였습니다.(나1:15) 오늘 우리가 악한 자들에 의해 고통받고 억압당하는 성도들에게, 또한 아직도 참 생명을 모른 채 방황하는 불신 이웃들에게 전해야 하는 바 아름다운 소식은 무엇입니까?
5. 나훔이라는 동명이인으로는 예수님의 족보 중에 한 사람이 있습니다.(눅3:25)

성도 여러분! 오늘날은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남들 하는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그 말씀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려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자로 손가락질 받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실로 어렵고 고통스런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나훔 선지자를 바라보십시오. 지금은 여러분에게 고통이 닥쳐와도 언젠가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위해 여러분이 겪은 고통의 수백 배나 되는 축복과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부족한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의 전도자로 부르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지 이 위대한 소명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려움이 다가올 때에도 주님을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당하게 될 때에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으로 성장하게 하소서. 말씀에 순종하여 그리스도만을 전하고 모든 결과를 성령께 맡기는 전도자의 믿음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2부: 분반(구역)공부자료

1. 말씀: 복음을 전하자

본문: 마 28;19∼20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19절)

우리가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이 지시한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19∼20절) 이 말씀은 반드시 지키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여기에서 “복음을 전파하라”라는 말씀은 지상에서 가장 늦게 말씀하신 주님의 유언입니다.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두번째 이유는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길이 전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또 구원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해 주셨다면 우리도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사랑하는 길은 바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길이 전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가장 크게 영광 돌리는 길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가장 크게 기뻐하십니다.
네번째는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장 큰 상급을 쌓는 것이 전도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상급을 쌓고 하늘에 예금하는 길,그게 바로 전도입니다. 가장 큰 영광의 상급입니다.
다섯번째는 불신자의 영혼이 애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시아에 가려고 할 때 성령께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어디로 가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까?” 그랬더니 마케도니아 사람이 와서 환상 중에 오라고 손짓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인줄 알고 마케도니아에 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것이 유럽에 복음을 전파한 최초의 일입니다. 그때부터 유럽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섯번째 이유는 지옥에 간 영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9∼31절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와 나사로가 함께 죽었습니다. 부자는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너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낙원에 보니까 나사로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애원합니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내 혓바닥에 갖다 달라” 그때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여기에는 구렁이 있어서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내 고향에 내 형제 다섯이 있는데 저 죽은 나사로를 보내서 복음을 전파하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죽은 자가 살아나도 듣지 아니할 것이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음부에서 울부짖는 부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 기도: 우리에게 전도하기를 명하신 주님, 저에게 성령충만함을 허락하사 전도자로서 세계를 바라보게 하소서. 전도하다가 이 땅에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큰 상급의 주인공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묵상 및 토의
0 나훔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 해 보세요
0 나는 나훔의 어떤 면을 닮고 싶은지 이야기 해보세요.
0 나훔은 하나님의 말씀 선포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최근 나는 복음 전파에 힘쓰고 있습니까?
0 성도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이야기 해 보세요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 복음전파

1982년 일본 NHK 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당신이 지금 종교를 갖는 다면 어떤 종교를 갖겠습니까?" 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응답자의 36%가 기독교를 갖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의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도 채 안 되는 실정입니다. 물론 그때 대답했던 사람들은 단지 기독교의 외형적인 면만을 보고 응답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전도가 부족해서 아직 그들에게까지 복음이 미치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중동의 작은 나라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전 세계로 확정되었습니다. 지금도 복음의 확장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전도자로 부르셨습니다. 내 이웃으로부터 바다 건너 이웃한 나라와 세상 끝까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땅은 무궁무진합니다. 세상의 기업이나 정치적 이해 관계에서나 아니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계 경영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 성경: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 예화(2) : 멸시천대 받아도

검찰에서 근무하는 교인의 얘기입니다. 나름대로 한 때 수사검사로 날리기도 했던 그였지만 요즘은 한직에 한직을 맴도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드러내놓고 전도하는 그의 행보로 인해 왕따를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위에서 “아예 개업을 하지 그러냐”고 권하면 대답이 걸작입니다.
“나 아직 검찰에서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검찰 복음화의 소명을 받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폭탄주가 만연하고 고사 지내는 것이 상례인 검찰문화에서 전도사명을 감당하겠다는 것 자체가 이란격석(以卵擊石), 달걀로 바위치기격 아닌가요.
신기한 것은 그의 얼굴이 한없이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전도한 교인 수가 무려 1600여명. 때로 멸시와 천대를 받아도, 아니 계속해서 멸시와 천대를 받는다 하더라도 올곧게 신앙을 지키는 그가 참 부럽습니다.

* 예화(3) : 펜실바니아주 댐 사고

펜실바니아주의 강물을 막고 있는 댐을 조사한 기술진들은 그 댐이 안전치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다음 해에도 조사반은 같은 결론을 내리고 여러 차례 경고했으나 주민들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위험 아니냐’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마지막 경고가 있은 지 보름도 못되는 1889년 5월 31일에 그 큰 댐은 결국 장마 비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이 댐의 붕괴로 존스타운 주민 2,200명이 순식간에 몰사한 미국 역사상 대 홍수 사건이 발생했다. 여러 번 경고를 받고도 태연하던 자들이 맞게 된 결과였다.

4. 찬송: (350장) 나의 죄를 정케하사

1. 나의 죄를 정케하사 주의 일꾼 삼으신 구세주의 넓은 사랑 항상 찬송합니다
2. 내게 부어 주시려고 은혜 예비하신 주 그 은혜로 채워 주사 능력있게 합소서
3. 죄의 짐을 풀어주신 주의 능력 크도다 나를 피로 사신 예수 내맘속에 옵소서
4. 주여 내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우사 생명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옵소서

[후렴]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어 언제든지 주 뜻대로 사용하여 줍소서 아멘

5. 복음에 관한 성경말씀:
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1:27)
0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0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9:16)

6. 금언:
0 당신이 만일 하나님의 복음 가운데서 좋아하는 것만을 믿고 싫어하는 것을 거절한다면 당신이 믿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다.(어거스틴)
0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는 지옥에 가리라(윌리엄 선데이)
0 내가 철학을 전파하였더니 사람들은 칭찬하였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더니 사람들은 회개하였다.(깁스)
0 하나님은 성경에만 복음을 기록하신 것이 아니라 나무들과 꽃들, 구름들과 별들에도 기록하셨다.(마르틴 루터)
0 거짓 종교의 속임수는 그들의 주지가 계속 바뀐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원히 동일하다. 다른 거짓 종교의 빛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정한 빛은 계속 빛나고 있다.(데오도 레드야드 카이어)
0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느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복음을 배우는 방법이 없다. 어떤 과학은 머리로 배울 수 있으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과학은 마음으로만 배울 수 있다.(스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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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2152 마가복음 기도원의 예수, 새길의 예수, 그리고 공동체 막10:46~52  홍상수 형제  2009-10-31 1865
2151 창세기 생존과 해방으로의 인도자 - 하갈의 하나님 창16:7~12  최만자 자매  2009-10-31 2043
2150 마태복음 이렇게 배웁니다 마4:3~8  안인숙 자매  2009-10-31 1495
2149 마태복음 하나가 되기 전에는 마5:23~24  이상익 형제  2009-10-31 1997
2148 예레미야 희망의 노래 렘32:37-41  정지석 형제  2009-10-29 2147
2147 사도행전 신앙의 현실과 삶의 현실 행2:42-47  정용섭 목사  2009-10-29 2331
2146 베드로전 희망은 기다림이다. 벧전1:13-21  정용섭 목사  2009-10-29 2411
2145 사도행전 부활의 증인 공동체 행2:22-32  정용섭 목사  2009-10-29 1809
2144 요한복음 부활을 증거 하는 여인 요20:11-18  정용섭 목사  2009-10-29 2043
2143 마태복음 갈릴래아 나자렛 사람 마21:1-11  정용섭 목사  2009-10-29 2099
2142 요한일서 왜 죄를 짓지 말아야 하나? 요일3:1~6  조용기 목사  2009-10-28 2037
2141 누가복음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눅10:17~19  조용기 목사  2009-10-28 2485
2140 요한복음 우물물과 생명수 요4:13~14  조용기 목사  2009-10-28 2113
2139 마태복음 마음하늘 마6:10  조용기 목사  2009-10-28 1628
2138 누가복음 아! 하나님의 은혜로 눅15:11~24  조용기 목사  2009-10-28 2687
2137 여호수아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 수1:2~9  조용기 목사  2009-10-28 3790
2136 고린도후 새해의 주인 하나님(God, the Master of the New Year) 고후6:1~2  조용기 목사  2009-10-28 2247
2135 이사야 크리스마스에 오신 아기 사32:1~4  조용기 목사  2009-10-28 1803
2134 히브리서 예비된 안식 히4:1~11  조용기 목사  2009-10-28 2103
2133 히브리서 징계 히12:5~13  조용기 목사  2009-10-28 1937
2132 고린도전 나의 새 생명의 모태 십자가 고전1:18~25  조용기 목사  2009-10-28 1690
2131 고린도전 성령의 능력으로 하라 고전2:1-5  박노열 목사  2009-10-26 1937
2130 고린도전 하나님의 미련한 것으로.. 고전1:18~25  박노열 목사  2009-10-25 2013
2129 로마서 승리하려면 근심하라 롬7:22-25  강종수 목사  2009-10-25 1676
2128 고린도후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고후5:1-10  김필곤 목사  2009-10-24 2285
2127 창세기 명절의 만남, 중요한 것은 창45:4-10  김필곤 목사  2009-10-24 1866
2126 로마서 서로 만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롬1:8-13  김필곤 목사  2009-10-24 1845
2125 갈라디아 서로 짐을 지라 갈6:1-5  김필곤 목사  2009-10-24 2410
2124 시편 낙심되었습니까? 시42:1-11  김필곤 목사  2009-10-24 2170
2123 에배소서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2:1-10  김필곤 목사  2009-10-24 1709
2122 전도서 종교적 회의를 넘는 능력있는 신앙인 전3:11-22  김필곤 목사  2009-10-24 1713
2121 사무엘상 잃은 것 찾게 하시는 하나님 삼상30:1-10  김필곤 목사  2009-10-24 2181
2120 창세기 끝도 아름다워야 합니다 창50:22-26  김필곤 목사  2009-10-24 1838
2119 히브리서 가정 문화, 변혁의 주인공 히11:8-10  김필곤 목사  2009-10-24 1744
» 나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나훔 나1:1-15  한태완 목사  2009-10-23 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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