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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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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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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사람의 안목은 바로 그 어디도 아닌 곳에서, 그 무엇도 아닌 것을 체험하는 영적 체험을 통해서 놀랍게 달라진다.
사람이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 데도 아닌 곳에서 체험할 때 그는 자신의 안목에 더없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영혼이 그 점에 주목하기 시작할 때 그는 자신이 태어나던 날부터 범한 지난날의 죄들이 육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간에 모두 거기에 은밀하게 그리고 새카맣게 새겨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들은 어디를 가든 그의 시선과 마주치다가 이윽고 힘든 노고와 진심에서 우러난 수많은 한숨과 고통스런 눈물을 흘리면서 사실상 그것들 모두를 씻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은 영적 투쟁 속에서 때때로 그는 자신이 지옥도 함께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그가 이 모든 고통을 통해 완덕과 평화에 이르는 과정에서 느끼는 절망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영적 여정에서 이처럼 멀리 나아가지만 그들은 당하는 고통이 큰데다가 아무런 위로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속세의 일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전혀 가당치 않은 영적 위로, 사실 그들이 끈기있게 견디어 냈더라면 얻어 누렸을 그 위로를 상실당한 대가를 메우기 위해 육체적이고 외형적인 위안거리를 찾는 것입니다.
사실 참고 견디는 사람은 자신의 지난날 죄 가운데 많은 것들이 은총으로 점차 숨겨져 가고 있음을 느끼고 실제로 깨닫기 시작하는 까닭에 때로 위로를 맛보고 완덕도 어느 정도 바랄 수 있게 됩니다. 그는 여전히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이 고통이 날로 줄어들기 때문에 언젠가는 끝나리라고 확신합니다. (편자 주 :삭제 = 그래서 그는 마침내 이를 '지옥'이 아닌 '연옥'이라 일컫기 시작합니다.) 그는 때로 거기에 적힌 특별한 죄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기도 하는데, 그런 중에도 여전히 죄를 하나의 덩어리'라는 관점에서 생각하기는 합니다. 그는 이것을 부분 부분으로 쪼개려 하지 않고 그냥 자기 자신이라고만 압니다. 그래서 이것이 원죄의 기틀이요 뼈아픈 결과라 지칭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거기에서 경이롭고 다양한 환희와 위로와 기쁨과 복된 성덕들을 발견하는 까닭에 이를 낙원이나 하나님의 나라라고 믿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를 하나님이라 믿을 만큼 거기에서 엄청난 평화와 휴식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도록 놓아두십시오. 그는 언제나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무지의 구름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사람이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 데도 아닌 곳에서 체험할 때 그는 자신의 안목에 더없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영혼이 그 점에 주목하기 시작할 때 그는 자신이 태어나던 날부터 범한 지난날의 죄들이 육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간에 모두 거기에 은밀하게 그리고 새카맣게 새겨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들은 어디를 가든 그의 시선과 마주치다가 이윽고 힘든 노고와 진심에서 우러난 수많은 한숨과 고통스런 눈물을 흘리면서 사실상 그것들 모두를 씻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은 영적 투쟁 속에서 때때로 그는 자신이 지옥도 함께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그가 이 모든 고통을 통해 완덕과 평화에 이르는 과정에서 느끼는 절망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영적 여정에서 이처럼 멀리 나아가지만 그들은 당하는 고통이 큰데다가 아무런 위로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속세의 일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전혀 가당치 않은 영적 위로, 사실 그들이 끈기있게 견디어 냈더라면 얻어 누렸을 그 위로를 상실당한 대가를 메우기 위해 육체적이고 외형적인 위안거리를 찾는 것입니다.
사실 참고 견디는 사람은 자신의 지난날 죄 가운데 많은 것들이 은총으로 점차 숨겨져 가고 있음을 느끼고 실제로 깨닫기 시작하는 까닭에 때로 위로를 맛보고 완덕도 어느 정도 바랄 수 있게 됩니다. 그는 여전히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이 고통이 날로 줄어들기 때문에 언젠가는 끝나리라고 확신합니다. (편자 주 :삭제 = 그래서 그는 마침내 이를 '지옥'이 아닌 '연옥'이라 일컫기 시작합니다.) 그는 때로 거기에 적힌 특별한 죄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기도 하는데, 그런 중에도 여전히 죄를 하나의 덩어리'라는 관점에서 생각하기는 합니다. 그는 이것을 부분 부분으로 쪼개려 하지 않고 그냥 자기 자신이라고만 압니다. 그래서 이것이 원죄의 기틀이요 뼈아픈 결과라 지칭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거기에서 경이롭고 다양한 환희와 위로와 기쁨과 복된 성덕들을 발견하는 까닭에 이를 낙원이나 하나님의 나라라고 믿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를 하나님이라 믿을 만큼 거기에서 엄청난 평화와 휴식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도록 놓아두십시오. 그는 언제나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무지의 구름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94. 우리가 죄를 범할 때라도 (「무지의 구름」 69장 참조)
사랑하는 벗이여, 방금 말했듯이 우리는 어디 있거나 어떤 상태에 놓여 있거나 하나님과의 사랑어린 경건한 합일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죄를 범했더라도, 아니 죄를 범했다면 더욱더 그래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점은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 우리의 사랑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입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듭해서 다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 우리의 벗이요, 진실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뒤쫓아오십니다. 완력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사랑으로 설득함으로써 우리를 돌아오게 만드십니다.
프란시스 톰프슨이 쓴 '하늘나라 사냥개'라는 아름다운 시가 있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하나님을, 어떻게든 도망치려고하는 자신을 끊임없이 뒤쫓는 사냥개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재물·부·권력·섹스·증오에 파묻힘으로써 하나님에게서 몸을 숨기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가 별짓을 다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쫓아오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를 저버리는 너를 삼라만상이 저버릴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혹독한 추적에 두 손을 들고 사랑으로 하나님께 몸을 내맡깁니다.
내가 앞서 가난한 글라라회의 노(老)수녀에 관해 했던 이야기를 상기하십시오. 그 수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삼라만상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어 간답니다· … 만물이 …· 만물이!"
사랑하는 벗이여, 방금 말했듯이 우리는 어디 있거나 어떤 상태에 놓여 있거나 하나님과의 사랑어린 경건한 합일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죄를 범했더라도, 아니 죄를 범했다면 더욱더 그래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점은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 우리의 사랑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입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듭해서 다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 우리의 벗이요, 진실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뒤쫓아오십니다. 완력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사랑으로 설득함으로써 우리를 돌아오게 만드십니다.
프란시스 톰프슨이 쓴 '하늘나라 사냥개'라는 아름다운 시가 있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하나님을, 어떻게든 도망치려고하는 자신을 끊임없이 뒤쫓는 사냥개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재물·부·권력·섹스·증오에 파묻힘으로써 하나님에게서 몸을 숨기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가 별짓을 다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쫓아오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를 저버리는 너를 삼라만상이 저버릴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혹독한 추적에 두 손을 들고 사랑으로 하나님께 몸을 내맡깁니다.
내가 앞서 가난한 글라라회의 노(老)수녀에 관해 했던 이야기를 상기하십시오. 그 수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삼라만상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어 간답니다· … 만물이 …· 만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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