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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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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使徒信經) 해설
사도신경의 유래
예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전도 활동이 계속될 때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며 또한 베드로에게 물으실 때 그는 구원 얻은 자답게 대답하기를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16:16)고 했습니다.
(마 10:32-33)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롬 10: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2세기 경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을 때 그들의 암호 기호로 익투스( )라는 글을 새긴 물고기 형상 ( )을 달고 다녔다고 합니다. 차츰 이단들도 생기게 되었고 교회마다 세례를 주기 위한 신앙의 고백이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390년 암브로스가 밀란에서 로마로 보내는 편지 속에 사도신경이 언급되었고, 404년에 루피누스에 의해 처음으로 주석이 되었습니다. 6,7세기경까지 수정되었다가 9세기경에는 세계적인 신조가 되었습니다.
익투스 ( 물고기 )
( , 예수스,예수 )
( , 그리스토스, 그리스도 )
( , 데우, 하나님 )
( , 휘오스, 아들 )
( , 쏘테르, 구원 )
앞 글자만 합치면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의 구원자입니다는 뜻을 함축한 것입니다.
1. 성부 하나님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1) 전능하신 하나님 -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으로 시인하고 믿는 것입니다.
(사 9: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고후 6:18)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시 33:9)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2)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 만유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창 1: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2:4)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3)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 믿음의 신실한
고백입니다
창조주를 인정하는 자들이 세상에도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창조주를 믿는다고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믿는 것과 철학적으로 아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아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지식과 신앙은 다릅니다. 지식은 인간의 의지에 속하나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바램이요 의지함입니다.
2. 성자 예수님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1) 외아들( 독생자 )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고 외계인이나 또는 일반인으로서 성현으로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먼저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데,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시인하지 않는 자는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요 1:14,18)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2) 주( 主 )
주인이 되신다 함은 대단히 중요한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주인이 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목표가 되고 가는 길이 되며 소망이 되신다는 고백입니다.
(행 2:36)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 예수 "는 구원한다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마 1: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헬라어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야 ( )인데 그 뜻은 기름 부음 받은 자입니다. 기름은 선지자, 제사장, 왕을 세울 때 의식에 사용한 것인데 예수께서는 이 세 직분을 영적으로 모두 수행하시고 종합하여 구원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요 4:25)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하나님이 잉태케하심,거룩한 탄생-
동정녀의 깨끗한 몸을 빌어 탄생하심은 무죄하신 예수님의 인성(人性)을 의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무죄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후 예수의 동생들을 낳았으니 그들은 인간적으로 출산시켰습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는 종신 처녀였다고 주장합니다. 1962년도에 법으로 제정하고 공포하므로 그들의 진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 ).
(마 1:18)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요 8:42)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사 7:14)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눅 1:34-35)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마 13:55-56)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그 형제들은 야고보,요셉,시몬,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민중들의 소리에 못 이겨 그리고 그의 직위의 불안 때문에 예수를 죽는데 내어주고 말았으니 얼마나 큰 과오를 범하였습니까? 직위는 하나님이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롬13:).
빌라도 총독의 아내는 예수에게 해로운 일이 없기를 남편에게 애원했습니다.
(마 27:19)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사 53:4-6)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마 27:24)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출 23:2)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
예수님은 어떤 이들이 억지로 부인하려는 것같이 실신하신 것이 아니라 확실히 돌아가신 것입니다.
(행 2:23)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마 27:50)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요 19:34)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마 27:57-61)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무덤에 넣어 두고 큰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마 28:1)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예수의 시체를 장사한 사람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입니다.
(마 27:57-60)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니고데모도 도왔습니다
(요 19:38)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 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부활을 본 사람은 많습니다
(1) 막달라 마리아
(막 16:9)(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2) 여인들
(마 28:9-10)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3) 글로바와 그의 동행인에게( 눅24:13-35 )
(4) 시몬에게
(눅 24:24)또 우리와 함께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고전 15:15)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5) 도마가 없을 때 제자들에게
(요 20:19-23)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6) 도마가 있을 때 제자들에게
(요 20:24-29)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7) 디베랴 바다에서 일곱 제자에게(요21:)
(8) 갈릴리 산에서
(마 28:16-20)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9) 500여 형제에게
(고전 15:6)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10) 예수의 형제 야고보에게
(고전 15:7)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11) 감람산에서 11제자에게
(눅 24:50-51)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 시니
(12)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행 9:3-7)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고전 9:1)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고전 5:8)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부활 후 40일간 땅 위에서 사심
부활의 몸으로 땅 위에서 40일간이나 사셨을 때 예수님을 보게 된 자들은 대단한 체험을 한 것입니다. 부활의 믿음이 확실하고 영생의 가능성을 재확인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행 1:3)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 기독교는 부활 종교입니다 ]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믿고 생활하는 것이 다른 종교보다 더 좋을 것도 없을 뿐아니라 오히려 괴로운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예수 믿는 자들은 불쌍한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요 6: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늘에 오르사
(요 3:13)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행 1:11)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빌 2:9-11)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께서는 성령을 주시기 위하여 승천(昇天)하셨습 니다.
(요 7:39)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 16:5-8)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우편은 권능을 상징하는 것이며 앉으심은 영광스런 위치에 계심을 뜻합니다.
스데반은 죽기 전에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계시는 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입장에 계시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권세의 자리에 위치하신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행 7:55-56)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예수께서는 죄인들로부터 공정치 못한 심판으로 사형 받으셨으나 다시 오시는 날에는 의롭고 공정한 뜻으로 심판하러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들이 심문 받을 것입니다. 물론 공정하게 심판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판은 진리의 하나님이 맡기신 심판으로 공의로울 것입니다.
(행 1:11)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계 22: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하나님은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요 5: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3. 성령님
성령을 믿사오며
(요 10:30)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 14:6)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진리는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시 31:5)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요일 5:7)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요 7:37-39)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고전 12:4-11)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행 16:6)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막 13:11)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영원히 함께 하심
(요 14: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성령으로 성경이 기록됨
(벧후 1:21)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성령의 9가지 열매
(갈 5:22-23)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속죄의 법
(롬 8:1-2)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령을 구할 것입니다
기도하면 기도의 내용대로 응답 받는 것이지만 항상 하나님은 그 내용을 함께 성령의 감화를 주십니다. 곧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눅 11:13)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4. 교회의 영적 교통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사오며
교회의 우주성, 주님이 계신 교회는 모두 상통하는 영적 유기성이 있는 한 몸된 것. 교회는 보이는 가시적 교회와 보이지 않는 무형적 교회로 하나님만 아시는 온전히 구원받을 교회(천상교회,계4:)로 두 교회가 있습니다. 지상의 가시적 교회일지라도 영적으로는 교통합니다. 사상이 같아서 뜻이 통할 뿐 아니라 영적으로 느낌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의(義)와 불의(不義)를 함께 인정합니다. 현실적으로 교회가 서로 교통하지 못하고 싸우며 의견 일치를 얻지 못하는 것은 성령의 교통을 믿는다고 말 할 수 있겠는지 의문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경의 법을 함께 인정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함께 받고 뜻을 같이 하는 것이 진정한 성(聖)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교단이 분리가 되고 주장이 엇갈릴 때 우리는 성령의 교통을 믿는다고 하기에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뿐아니라 신앙 고백의 신학적 의문을 남게 합니다.
(행 2:44-46)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마 12:49-50)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롬 12:4-13)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5. 사죄를 믿음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할 때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사 1:18)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요일 1:8-10)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롬 1: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3:22)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시 103:2-3)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대하 7:14-15)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눅 5:20-21)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엡 1:7)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골 1:14)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죄를 사함 받는 일에 있어서 어떤 죄는 갚아야 합니다.
삭개오의 경우(눅19:1-10)
상대방에게 잘못할 경우는 만족 할 만한 회개의 정도가 나에게 있지 않고 상대방이 인정할 만큼 회개하여 만족시킬 때 완전한 회개이며 용서받은 것이 됩니다.
죄를 회개한다는 것은 단순히 잘못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그 죄에 따라 치유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남의 것을 훔친 것이면 그것을 갚되 그 사람이 용서하는 만큼 갚을 것이며 배나 더 갚으라면 더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죄를 완전히 회개한 것입니다.
(엡 4:32)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눅 23:34)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 쌔
6. 부활을 믿음
몸이 다시 사는 것
부활은 기독교의 궁극 목표입니다
(요 6: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고전 15:52)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요 11:25-26)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롬 8:10-11)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욥 19:25-27)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
7. 영생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현 세상은 나그네의 삶이요 본향은 천국입니다.
(요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 11:13-16)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
사도신경 강해
Ⅰ. 서론
1. 사도 신경의 기원
사도신경은 8세기에 이르러서야 오늘날의 형태와 똑 같은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400년 경 루피누스는 그의 저서 [사도신경 주석]에서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세계로 흩어지기 전에 한 자리에 모여서 그들이 서로 다른 메시지를 전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짧은 요강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마태복음 28:19를 확장시킨 형태로 되어 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관한 교회의 신앙을 이 신조는 정의하고 있으며, 사도 신경은 모든 선교를 위한 설교의 기초가 되는 신앙의 근본적인 사항에 관한 교회의 신념을 선포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 틀림없다. 이 사도신경은 3세기 초반의 터툴리안의 저작물에서도 나타난다. 로마 교회에서는 기원 100년 경 이미 세례를 줄 때에 사용했던 고백문에서 사도신경의 신조와 같은 형태를 찾아 볼 수 있다.
2. 신조의 필요성
신조는 첫째, 신앙을 정의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가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표명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규범과 모범과 표준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 필요하다. 이단들로부터 신도들을 보호하고, 자신의 신앙과 사상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셋째, 교육과 설교의 자료를 제공해 주기 위해 필요하다. 설교자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를 한정해 주며, 그가 만나게 되는 인간 상황의 모든 사건에 대하여 적용하여야 할 계시된 원리들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어떤 신조도 완전할 수는 없으며, 궁극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조는 그것이 작성된 시대의 언어와 사상적인 범주 안에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3. 내가 믿사오니
사도신경에서의 "내가 믿사오니"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에 대해서 가르치신 바가 사실이라는 확신에 대해서 자기의 전 생활을 내어 맡기는 결단이요, 고백이다. 하나님께서 죽은 이삭을 살려서라도 약속을 지키실 것을 믿고 이삭을 번제로 드린 아브라함처럼, 또한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경외함으로 방주를 만든 노아와 같이 하나님께 서 가르치신 진리를 확신하고 그 진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믿음이다. 신앙 고백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처음 영접할 때 하는 일회적인 고백으로 종교적인 회심의 고백이다. 다른 하나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하루의 삶을 맡기며 하나님과의 친교를 확인하는 반복적인 고백이다. 사도신경의 "내가 믿는다"는 말은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우리의 삶과 신앙 생활의 근거이다.
Ⅱ. 사도신경 강해
사도신경은 마태복음 28:19에서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대한 우리의 신앙 고백이다.
1. 하나님
1)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창 1:1; 사 45:12; 출 3:14,15; 출 6:3)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관념적인 신이 아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의 신이다. 창조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창조라는 말이 세 번 사용되었다. 첫 번째는 1:1에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다. 최초에 창조된 땅의 상태는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 둘째 창조라는 말이 움직이는 동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이는 움직이는 생명체를 창조할 때 사용되었다. 이는 생명의 창조는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말해 준다. 생명은 반드시 생명으로부터 나옵니다. 이것이 생명의 법칙입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모든 생명이 창조되었다. 셋째, 창조라는 말은 인간을 창조할 때 사용되었다. 인간의 창조는 일반 생명의 창조와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영적인 존재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존재의 근원이시다. 우리의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생명의 청지기에 불과하다. 잠시 이 땅에서 관리하다가 다시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1:16에서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었으며,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주를 주관하시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주관하시고, 영혼을 가진 우리 인간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욥은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2,3)."라고 고백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피조물과 구별된 분이시요, 피조계에 속하지 아니한 창조주이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6)"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20)." 그러므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2) 아버지를 믿사오며 (신 32:6; 삼하 7:14; 시 68:5; 사 63:16; 64:8; 말 2:10; 마 5:16, 45, 48; 6:6-8; 10:29; 롬 8:14; 히 12:5-8; )
신명기 32:6에는 "그는 너를 얻으신 너희 아버지가 아니시냐?"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하 7:14에는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라는 말씀이 있으며, 로마서 8:14에서도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그의 능력에 있어서는 하나님이시고, 그의 사랑에 있어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다."고 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애정을 표현함에 있어서 그것을 대신할 다른 칭호가 없다. 히브리서 12:5-8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 아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아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양육하시며 보호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육신의 아버지는 그 자녀를 사랑하는데 있어서 한계가 있다. 아버지도 근본적으로 연약하고 자기중심적인 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는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 사랑은 완전하고, 영원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2. 예수 그리스도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어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And in Jesus Christ his only (begotten) Son our Lord; who was conceived by th Holy Ghost, born of the Virgin Mary;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Hades, spirit-world]; the third day he rose from the dead; he ascended into heaven; and sitteth at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quich and the dead.
1)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요 3:16-18; 요일 4:9; 요 1:14)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요한복음에 4번 사용되고 요한일서에 한 번 나온다(요일 4:9).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고 했다. 외아들이라는 말은 유일성(only)과 독특성(unique)을 나타내는 말이다. 외아들이라는 말은 출생이나 기원을 의미하기보다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요 5:20)" 또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을 가리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셨다(마 3:17) 이를 볼 때 외아들이라는 말은 곧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가 곧 아버지와 아들과 같이 사랑하는 관계임을 말해 준다. 동시에 본질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동일한 것과 같이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과 동등한 본질을 가지신 분이심을 말해 준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고백했을 때 기뻐하시고, 그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축복하셨다(마 16:16).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는 곧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시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자라는 뜻이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그리스도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서 예수님의 사역의 세 가지 직분을 말한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을 세울 때 그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 이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실 직분에 대한 암시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면에서 완전한 선지자요,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하늘에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신 영원한 제사장이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영원토록 왕노릇하시는 만왕의 왕이다. 주시라는 말은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예수는 주님이시다는 고백은 초대 교회 신자들의 신앙고백이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님이시며, 구속의 주님이시다.
2)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마 1:18-25; 눅 1:26-38; 사 7:14)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who was conceived by th Holy Ghost, born of the Virgin Mary).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말은 예수님이 남녀의 성적인 관계를 통해서 태어나지 아니하고, 전적으로 성령께서 잉태케 하셨다는 뜻이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이 되신 기적의 사건이다. 동정녀란 결혼하지 않은 여자, 남자를 전혀 알지 못하는 처녀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는 생물학적인 자연법의 테두리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인간 상식 밖의 일을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이 동정녀에게 탄생하신 것은 첫째, 예수님은 우리와 동일한 참 인간으로 오셨음을 말해 준다. 우리와 동일하게 어린아이로 태어나서 어른으로 성장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다. 둘째로 예수님이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말해 준다. 곧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시며, 동시에 죄가 없으신 거룩한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고, 예수님이 죄 없으신 인간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죄를 대신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반드시 성령으로 잉태되어야 하고, 사람의 아들도 이 땅에 탄생하셔야 되었다.
3)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마 27장; 막 15장, 눅 23장; 요 18-19장)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십자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형방법이었다. 십자가 형벌은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십자가 처형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참수형을 당했다. 다만 노예나 반역자나 살인 강도 등 흉악범들에게만 처형할 수 있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눅 23:14,15; 요 18:28; 19:4,6). 그러나 빌라도는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무죄한 자에게 가장 중한 십자가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법적으로 재판관인 빌라도의 책임이다. 그러면 죄 없으신 예수님이 그토록 잔인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왜 하나님께서는 외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기까지 버려 두셨는가? 이는 인간들이 받아야 할 죄 값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시도록 하신 것이다. 성경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으신 것은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대신 받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갈 3:13).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죄를 철저히 벌하셔야 했다. 죄를 처벌하지 않고 인간을 용서하신다면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게 하시고 철저히 징계하셨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또 장사되셨다. 예수님은 무덤에 묻히셨다. 장사되었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거짓이 아니라 확실히 죽으셨음을 증거해 준다. 뿐만 아니라 헬라어 원본에는 음부에 내려 가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음부란 죽은 영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에베소 4:8-10에는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 즉 땅 아래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다. 빌립보서 2:9-11에도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했다. 베드로 전서 3:18-20에도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이처럼 예수님은 지옥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영들에게, 구약에 수없이 예언된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 부활, 메시야의 예언이 성취된 사실을 선포하셨다. 이는 구약 시대에 죽은 사람들에게까지 언약의 성취가 증거되었음을 뜻한다.
4)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어(마 28장; 막 16장; 눅 24장; 요 20장)
예수님은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은 예수님이 죄 없이 죽임을 당하셨으며,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음을 증거해 준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성도들의 부활의 첫 열매로 부활하셨다(고전 15:20). 예수님의 부활은 나사로의 부활과는 차원이 다른 부활이다. 나사로의 부활은 다시 죽을 몸으로, 죽기 전의 몸으로 부활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다시 죽지 아니할 몸으로 영생의 부활로 부활하셨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도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부활한다는 보증이 되는 사건이다(고전 15:23). 부활은 초자연적인 사건이다. 옛 생명의 연장도 아니고 발전도 아니다. 옛 생명이 완전히 죽은 다음에 나오는 생명의 역사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은 후에는 반드시 부활이 있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말해 준다.
5)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막 16:19-20; 눅 24:50-53; 행 1:9-11; 딤전 3:16; 요 20:17; 엡 4:8-10; 히 4:14)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관해 가르치시고, 승천하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이 역사적인 사건인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도, 승천도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면 하늘에 오르셨다고 했는데 하늘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늘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늘(sky)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heavens)이다. 스카이는 공간적 의미에서 하늘을 가리키고, 해븐즈는 차원적인 의미에서의 하늘을 가리킨다. heavens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활동하시는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셨다는 사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음을 말해 준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주적 사건이었다.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가 되심을 말해 준다.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하신다.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거룩한 대제사장으로서 직분을 감당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서 그의 육체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나오는 모든 자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중보자가 되어 주신다. 또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는 말은 승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신 왕이 되심을 말해 준다(계 1:5; 5:11,12; 엡 1:21; 빌 2:9-11). 특히 사도신경에는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했다. 그만큼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역사의 주관자로서 살아 계신다. 예수님은 원수로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행 2:35-36). 또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심으로 성령을 보내셨다. 예수님의 승천의 사건은 우리 모든 신자들이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보증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집에 우리가 거할 처소를 예비하시고 다시 와서 우리를 데려 간다고 약속하셨다.
6)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마 24:30; 25:31; 행 1:11; 계 22:7,12,20)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심을 믿는다.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인류의 마지막 때이며, 만물의 마지막 때이다(벧후 3:8,9). 예수님의 재림은 신구약에 1518번이나 약속되었으며,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는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셨으며, 사도 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고 대답했다. 그때에 예수님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을 때는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다. 그래서 죽기까지 죄인들을 섬겨 주시고, 모든 인류의 죄를 십자가에 짊어지셨다. 그러나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심판장으로 오신다. 그날에 산 자와 죽은 자, 다시 말하면 그때까지 살아 있는 사람이나, 그전에 죽은 사람이나 모두 심판하러 오신다. 성경은 세상 끝 날 곧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심판이 있을 것을 말하고 있다(시 96:13; 전 3:17; 마 11:22; 25:31-46; 계 20:11-14). 그날에는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신다(마 25:31-46; 계 20:13).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을 믿고 예수님 앞에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우리 모든 인간들 앞에는 죽음과 심판이 있다. 사도신경은 우리 주가 재림하실 때 심판이 있음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의 결론으로 삼고 있다.
Ⅲ. 성령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해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1) "성령을 믿사오며"
성령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그리스도를 잉태케 하셨고, 이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셨다(눅 1:35).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그를 메시야라 하셨다(마 5:16; 막 1:10; 행 10:38). 성령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그의 전 지상 사역을 수행하게 하셨고(마 12:28; 눅 4:14; 요 1:32)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시키셨다(고전 15:45). 초대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역사한 동일한 성령께서 창조시에 수면에 운행하셨고(창 1:2),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으며, 백성의 왕들에게 기름을 부으셨고, 믿는 자들에게 기도의 영감을 불어넣으셨다고 확신하였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이미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던 동일한 성령께서 마지막 때의 선물로서 부은 바 되었다고 경험하였고 이해했으며 선포했다(행 2:1-21). 신약은 오순절 때 주어진 성령께서 교회의 생명의 근원이시며, 복음의 설교를 통하여 신앙을 일깨워주시며, 세례를 통하여 새 지체들을 그리스도의 몸에 합체시킨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신앙의 불을 당시기고(고전 12:3), 신자와 공동체의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은사들을 공급하신다. 성령은 기도를 불러일으키고(롬 8:15-16), 하나님의 자녀들을 자유를 불러일으킨다(롬 8:12-16). 성령은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보혜사이시다(요 14:16). 마지막 때에 바로 이 성령께서 전 창조의 세계를 하나님의 영광 중 완성시키실 것이다(계2:17). 사도적 교회는 구약에 나타난 성령에 대한 증거를 이런 식으로 수용하면서 신앙의 빛에 비추어 역사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하나의 비인격적인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로고스를 한 인격이신 분으로 이해하면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 역시 하나의 신적인 인격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구원의 경세(the economy of salvation)에 참여하시는 하나님의 신적 위격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시 33:6; 겔 37:1-4; 롬 1:3-5,8:14-17).
성령은 삼위 하나님 가운데 제 3위로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예수께서 객관적으로 이루어 놓은 구원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 각자의 구원이 되도록 적용하는 역할을 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성령은 어떤 영적인 힘이나 감화력이 아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다를 바 없이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활동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바울은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이와 같이 우리 성령도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2:11)" 이와 같이 성령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이다. 요한복음 14:16에 보면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했다. 그분은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그것을 확신시켜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 성령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는 것이다(요 16:8).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 16:9-11). 그리고 성령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자비와 인내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갈 5:22). 성령께서는 복음의 선포와 성례전들의 축하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을 창조하시고 지탱하시고 계신다. 성령께서는 풍요롭고 다양한 은사들을 베풀어주신다. 이 같은 은사들은 교회를 세우고, 교회의 사회 봉사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은사들에는 가르침, 예언, 치유, 기적, 방언 및 영 분별(고전 12:4-11; 27-20) 같은 것들이 있다. 이 모든 은사들은 공동체의 공동선을 위하여 개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인데(고전 12:7), 이런 은사들이 바르게만 사용되면 우리들이 하나의 세례에 의해서 부름 받은 바 하나의 몸의 통일성을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엡 4:4,5).
2)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우리는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을 믿는다. 거룩한 공회란 세상과 구별된 보편적인 교회라는 말이다. 우주적 보편적 교회이다. 고대 사회의 종교는 장벽을 세우는 것이었다. 로마와 헬라의 공식적인 종교는 모두 국가 종교였다. 그들의 신들이 하는 일은 다른 모든 나라들과 대립하는 그들의 나라의 국가적인 이익을 돌봐주어야 하는 일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종교는 국수주의적이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장벽이 없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구분이 없었다(골 3:11). 교회란 에클레시아라는 말로서 구약 성서에서 이스라엘의 회중을 가리킨다. 곧 교회란 하나님의 메시지를 기다리는 백성들의 모임이다. 둘째로 헬라적인 배경으로 에클레시아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초대와 명령을 받아들인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이다. 신약 성경은 예배드리기 위해 모인 그리스도인의 모임을 교회라 한다. 교회(church)라는 말은 쿠리아콘(kuriakon)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주님께 속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원래의 본질적인 면에서 볼 대 주님께 속한다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귐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라는 말을 흔히 건물을 가리키는 데 사용하고 있다. 신약 성서에는 그러한 용법이 한 번도 나타나 있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서로간에 충성과 헌신을 맹세한 사람들을 의미하였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패거리를 뜻했다. 성도란 거룩한 무리라는 뜻이다. 제자라는 호칭이다.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신자이다.
교회는 성도들의 교제를 통해서 형제애와 새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성도란 "거룩한 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에서 벗어난 죄를 씻음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성도는 교회 공동체의 유기적인 연합 활동과 교제를 통하여 서로 배우고 격려를 받는다. 사도행전 2:42에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라는 말씀과 같이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 가르침을 받는 유익을 얻는다. 성도의 교제 중 가장 거룩하고 신비한 교제는 바로 성만찬이다. 이 예식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의 자녀와 교회 공동체가 세상에서 성별된 단체임을 분명하게 나타내 보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성찬 예식을 통하여 멸망의 사람과 하나님의 자녀를 구분하는 성별 예식으로 삼으셨다. 성만찬은 성도 교제의 극치이다. 왜냐하면 이 성만찬 예식을 통하여 인종과 문화와 역사를 초월하여 온 세계의 교회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성도의 교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는 친교를 말한다. 성도의 교제의 내용은 말씀을 나누는 말씀의 교제, 같이 모여 기도하는 기도의 교제, 같이 모여 찬양하는 찬양의 교제, 물질을 나누는 봉사의 교제,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권면의 교제, 간증을 나누는 간증의 교제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마 5:24 형제간에 불편한 관계에 있는 경우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라"는 명령을 주셨다.
3)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죄를 사해 주시는 것과' 라고 했는데 사실은 '죄를 사함 받는 것과' 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우리 신자들은 죄를 사함 받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은 자들이다. 예레미야 31:34에 의하면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하셨다. 시편 103:12에는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멀리 옮기셨다고 했다. 요한일서 1:9에는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죄 사함을 받았지만 매일의 삶 속에서 또 많은 죄를 짓고 산다. 그러므로 날마다 우리 죄를 자백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자백함과 동시에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신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야 한다.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히 4:16)"이라고 하였다.
4)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우리 사도 신경에는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고 했는데 이는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믿는다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곧 우리 몸의 부활을 믿는 것이다. 고전 15:13에서는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였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였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라"하였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은 우리 모든 신자들의 몸의 부활의 보증이 된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했다. 요 11:25에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40에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살리리라"고 하셨다. 초대 교회의 메시지의 핵심은 부활의 복음이었다. 고전 15:54에는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 했다. 사도들도 몸의 부활을 주장했고, 썩을 몸과 죽을 몸이 썩지 아니하고 죽지 아니하게 되는 신령한 몸으로 육체가 반드시 변화될 것을 믿었다.
5)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아멘
영생이란 무엇인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영생이란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안다는 말은 인격적인 깊은 사귐을 통해서 인격적인 만남으로 아는 것이다. 곧 사랑의 관계성을 의미한다. 우리 하나님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이다. 영생하시는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성을 회복하고, 친교를 하게 되면 우리는 자연히 영생을 누리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이니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곧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에 우리는 영생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5:24에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셨다. 영생이란 무작정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것이다. 영생하는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와 바른 관계성을 맺고, 유지하는 것이 영생이다. 이 관계성은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지금이나, 육신을 벗고 신령한 몸을 입은 이후나 영원토록 계속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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