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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고전12:8-11 |
|---|---|
|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좋은교회 http://charmjoun.net |
2002·06·01 설교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다 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부모에게 감사하는 일보다 선물 자체에 관심이 훨씬 더 많습니다. 심지어는 부모가 선물을 들고 들어가면 부모는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선물에만 눈이 고정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은사에 대해서 이와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그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직 은사 자체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은사를 잘못 사용하거나, 은사로 인하여 교만해지거나, 은사에 무관심한 것 등 많은 부작용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은사에 대한 중요한 원리들
은사는 오직 성령께서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십니다(11절). 은사에 대한 주도권은 전적으로 성령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사람은 자랑할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는 다양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4절), '직임은 여러 가지나'(5절), '역사는 여러 가지나'(6절) 성령께서는 이 사람에게는 이런 은사를, 저 사람에게는 저런 은사를 주십니다. 나에게 주신 은사가 소중한 것처럼 남에게 주신 은사도 소중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다양한 은사를 각 사람에게 주심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아름답고 효과적으로 섬기게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예수는 주'시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십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만을 주로 높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도 오직 예수만을 주로 높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각자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섬길 때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주되심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와 같이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7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는 결코 개인의 영예와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은사를 주신 것은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은사들
본문에는 성령의 은사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 밖에도 롬12:6-8과 엡4:11-12에 은사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사들을 나열하고 있는 이 본문들을 보면 각각 다른 은사들이 언급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들로부터 어떤 확정된 은사의 명단을 추출해 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에 언급된 은사의 명단들이 모든 은사들을 다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은사는 실로 여러 가지입니다. 본문에는 모든 은사들이 망라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은사들은 모두 초자연적인 은사들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일반적인 재능들은 제외되고 있다는 것 역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은사들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합시다.
지혜의 말씀
지혜의 말씀은 특별한 문제를 꿰뚫어보고 교회가, 또는 성도 개인이 그 문제에 대해서 해야 할 일을 보여주는 능력입니다. 이 은사는 하나님의 지혜가 정확하게 나타내어 전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솔로몬과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입니다. 솔로몬은 두 여자가 서로 산 아기가 자기 아기라고 주장할 때 "산 아들을 둘에 나눠 반은 이에게 주고 반은 저에게 주라"고 말함으로써 누가 아기의 진짜 어머니인지를 드러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고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아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대답하심으로써 그들의 입을 막으시고 그들을 놀라게 하셨습니다. 오늘 이 은사는 자기의 사사로운 생각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따르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통해 주로 나타납니다. 성도들이 목회자와 신실한 선배들의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여 자신의 주장과 뜻을 내세운다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지혜의 은사가 결코 나타날 수 없습니다.
지식의 말씀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진리로 구비시키는 일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특별한 방식으로 이해하여 전달하는 이 은사를 교회에 주십니다. 목회자들에게는 이 은사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이 은사를 풍성하게 받았다면 그 교회는 매우 복된 교회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교회에 이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교회는 진리 위에 든든히 서갈 수 있습니다.
믿음
이 믿음은 '구원받는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외 없이 누구나 다 구원받는 믿음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확고하게 붙드는 은사입니다. 이 믿음의 은사는 당면한 문제와 상황을 넘어서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바라보며, 겉으로 보기에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확고하게 의지합니다. 이러한 믿음에는 놀라운 응답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은사는 종종 기적과 치유의 은사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은 이 은사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은사는 자신이 보거나 입증할 수 없었던 것들을 믿음으로 확신하고, 하나님과 함께 가장 힘겨운 상황을 뚫고 나아간 하나님의 사람들의 생애에서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이 은사는 히브리서 11장의 영웅들만이 아니라 죠지 뮬러, 허드슨 테일러, 조용기 목사 등 …, 그리고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이러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사람들이 믿음 없음을 자주 한탄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을 가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결단이 요구되는 은사입니다. 우리는 모두 믿음 있는 성도들의 되어야만 합니다.
병 고치는 은사
이 은사에 대해서는 부작용과 논란이 많이 있어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병 고치는 은사가 예수님과 사도 시대에만 있었던 것으로, 지금은 사라졌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지금도 이 은사는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주장이 옳습니까? 이 두 입장에는 다 일리가 있으나, 동시에 극단적인 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차분하게 잘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병 고치는 은사가 예수님과 사도 시대에만 있었던 것으로 지금은 사라졌다는 주장을 검토해 봅시다. 이 주장이 일리가 있는 것은, 지금의 그 누구도 예수님이나 사도들처럼 신유의 은사를 행사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치유는 언제나 완전하고 순간적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치유에 실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의 치유는 오늘날 소위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경우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사도들이 행사하던 치유의 은사는 중단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치유가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도해서 병이 나은 경우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치료하시는 능력은 중단된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합심해서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병을 고쳐주실 수 있으십니다. 실제로 이런 방면에 관심이 많고, 또 그렇게 해서 병 고치는 일을 경험하는 성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런 입장도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병이 낫는다고 해서 함부로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도하면 누구나 병이 낫는다고 주장해서도 안됩니다. 실제로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진 것처럼 생각해서 탈선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몇 차례 신유를 경험하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은사가 악용되거나 타락할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능력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겸손하게 기도할 뿐입니다.
성경은 병 고치는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약5:14-15)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령하셨고,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사 고쳐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목회하면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실제로 고쳐주신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주님께서 이렇게 치유를 약속해 주셨다고 해서 병원에 가거나 약을 쓰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수단들이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의사의 진료에 의해서 낫는 것도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병들고 아플 때 의사나 약보다는 하나님을 먼저 의지해야 합니다. 먼저 기도하고,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일반적인 치료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성도의 합당한 자세입니다. 때로는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위해서 모든 인간적인 치료를 중단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신중하게, 그리고 목회자의 자문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교회는 치료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사명중의 하나가 치료하는 것이며, 교회에는 치료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믿음의 기도가 더욱 필요합니다.
능력 행함
이 은사는 기적 행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예컨데 죽은 자를 살리는 것(다비다를 살려 낸 일), 마귀를 내쫓는 것, 악한 자에게 내려지는 심판(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 바울이 박수 엘루마를 소경되게 한 일)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이런 일들을 행하였습니다. 오늘도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요? 분명히 오늘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사도들의 경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오늘은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은 지극히 드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도 교회의 지도와 감독을 벗어나 자기 멋대로 이런 사역에 관여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치유의 사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은사를 행사하는 것이 곧 그 사람의 권위와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권위와 능력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감독과 지도를 벗어나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교만해져서 탈선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의 몸된 교회와 자기 자신에게 조금도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은사를 주신 성령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영들 분별함
이 은사는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설명이 가능합니다. 먼저 이 은사를 계시와 연관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계시를 주셨다고 주장할 때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를 분별한 능력이 바로 영들 분별함이라고 주장한다면, 계시의 완성과 함께 이 은사를 끝났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은사를 이렇게 정의하는 것은 지나치게 제한된 견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시가 완성된 후에도 세상에는 많은 영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영들을 분별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도 이 문제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고 말했습니다(요일4:1). 물론 이 말씀은 성경을 통해서 검증하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는 영들 분별하는 것이 은사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초자연적인 역사가 나타났을 때 그것이 성령님의 역사인지, 아니면 악한 영의 역사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정신질환과 귀신들림에 대한 구분이 매우 모호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만일 사탄이 역사한 것인 줄도 모르고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하여 따라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귀에게 속아서 낭패를 당하는 일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들 분별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언과 방언, 그리고 방언 통역의 은사에 대해서는 14장에서 자세히 다루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은 다양하고도 풍성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은사들을 수건으로 싸서 땅에 묻어 둘 수도 있고, 열심히 사용하여 주님께 충성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에 바로 서서 열심을 내야 합니다. 기도에 힘서야 합니다. 특히 성경에 철저하게 비추어 은사들을 점검하고 바르게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풍성하게 나타나고, 다양한 은사들을 가지고 겸손하게 교회를 섬기고 형제들을 섬김으로, 주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다 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부모에게 감사하는 일보다 선물 자체에 관심이 훨씬 더 많습니다. 심지어는 부모가 선물을 들고 들어가면 부모는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선물에만 눈이 고정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은사에 대해서 이와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그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직 은사 자체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은사를 잘못 사용하거나, 은사로 인하여 교만해지거나, 은사에 무관심한 것 등 많은 부작용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은사에 대한 중요한 원리들
은사는 오직 성령께서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십니다(11절). 은사에 대한 주도권은 전적으로 성령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사람은 자랑할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는 다양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4절), '직임은 여러 가지나'(5절), '역사는 여러 가지나'(6절) 성령께서는 이 사람에게는 이런 은사를, 저 사람에게는 저런 은사를 주십니다. 나에게 주신 은사가 소중한 것처럼 남에게 주신 은사도 소중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다양한 은사를 각 사람에게 주심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아름답고 효과적으로 섬기게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예수는 주'시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십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만을 주로 높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도 오직 예수만을 주로 높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각자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섬길 때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주되심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와 같이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7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는 결코 개인의 영예와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은사를 주신 것은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은사들
본문에는 성령의 은사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 밖에도 롬12:6-8과 엡4:11-12에 은사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사들을 나열하고 있는 이 본문들을 보면 각각 다른 은사들이 언급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들로부터 어떤 확정된 은사의 명단을 추출해 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에 언급된 은사의 명단들이 모든 은사들을 다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은사는 실로 여러 가지입니다. 본문에는 모든 은사들이 망라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은사들은 모두 초자연적인 은사들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일반적인 재능들은 제외되고 있다는 것 역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은사들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합시다.
지혜의 말씀
지혜의 말씀은 특별한 문제를 꿰뚫어보고 교회가, 또는 성도 개인이 그 문제에 대해서 해야 할 일을 보여주는 능력입니다. 이 은사는 하나님의 지혜가 정확하게 나타내어 전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솔로몬과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입니다. 솔로몬은 두 여자가 서로 산 아기가 자기 아기라고 주장할 때 "산 아들을 둘에 나눠 반은 이에게 주고 반은 저에게 주라"고 말함으로써 누가 아기의 진짜 어머니인지를 드러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고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아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대답하심으로써 그들의 입을 막으시고 그들을 놀라게 하셨습니다. 오늘 이 은사는 자기의 사사로운 생각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따르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통해 주로 나타납니다. 성도들이 목회자와 신실한 선배들의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여 자신의 주장과 뜻을 내세운다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지혜의 은사가 결코 나타날 수 없습니다.
지식의 말씀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진리로 구비시키는 일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특별한 방식으로 이해하여 전달하는 이 은사를 교회에 주십니다. 목회자들에게는 이 은사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이 은사를 풍성하게 받았다면 그 교회는 매우 복된 교회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교회에 이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교회는 진리 위에 든든히 서갈 수 있습니다.
믿음
이 믿음은 '구원받는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외 없이 누구나 다 구원받는 믿음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확고하게 붙드는 은사입니다. 이 믿음의 은사는 당면한 문제와 상황을 넘어서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바라보며, 겉으로 보기에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확고하게 의지합니다. 이러한 믿음에는 놀라운 응답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은사는 종종 기적과 치유의 은사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은 이 은사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은사는 자신이 보거나 입증할 수 없었던 것들을 믿음으로 확신하고, 하나님과 함께 가장 힘겨운 상황을 뚫고 나아간 하나님의 사람들의 생애에서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이 은사는 히브리서 11장의 영웅들만이 아니라 죠지 뮬러, 허드슨 테일러, 조용기 목사 등 …, 그리고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이러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사람들이 믿음 없음을 자주 한탄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을 가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결단이 요구되는 은사입니다. 우리는 모두 믿음 있는 성도들의 되어야만 합니다.
병 고치는 은사
이 은사에 대해서는 부작용과 논란이 많이 있어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병 고치는 은사가 예수님과 사도 시대에만 있었던 것으로, 지금은 사라졌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지금도 이 은사는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주장이 옳습니까? 이 두 입장에는 다 일리가 있으나, 동시에 극단적인 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차분하게 잘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병 고치는 은사가 예수님과 사도 시대에만 있었던 것으로 지금은 사라졌다는 주장을 검토해 봅시다. 이 주장이 일리가 있는 것은, 지금의 그 누구도 예수님이나 사도들처럼 신유의 은사를 행사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치유는 언제나 완전하고 순간적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치유에 실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의 치유는 오늘날 소위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경우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사도들이 행사하던 치유의 은사는 중단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치유가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도해서 병이 나은 경우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치료하시는 능력은 중단된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합심해서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병을 고쳐주실 수 있으십니다. 실제로 이런 방면에 관심이 많고, 또 그렇게 해서 병 고치는 일을 경험하는 성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런 입장도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병이 낫는다고 해서 함부로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도하면 누구나 병이 낫는다고 주장해서도 안됩니다. 실제로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진 것처럼 생각해서 탈선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몇 차례 신유를 경험하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은사가 악용되거나 타락할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능력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겸손하게 기도할 뿐입니다.
성경은 병 고치는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약5:14-15)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령하셨고,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사 고쳐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목회하면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실제로 고쳐주신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주님께서 이렇게 치유를 약속해 주셨다고 해서 병원에 가거나 약을 쓰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수단들이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의사의 진료에 의해서 낫는 것도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병들고 아플 때 의사나 약보다는 하나님을 먼저 의지해야 합니다. 먼저 기도하고,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일반적인 치료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성도의 합당한 자세입니다. 때로는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위해서 모든 인간적인 치료를 중단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신중하게, 그리고 목회자의 자문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교회는 치료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사명중의 하나가 치료하는 것이며, 교회에는 치료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믿음의 기도가 더욱 필요합니다.
능력 행함
이 은사는 기적 행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예컨데 죽은 자를 살리는 것(다비다를 살려 낸 일), 마귀를 내쫓는 것, 악한 자에게 내려지는 심판(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 바울이 박수 엘루마를 소경되게 한 일)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이런 일들을 행하였습니다. 오늘도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요? 분명히 오늘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사도들의 경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오늘은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은 지극히 드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도 교회의 지도와 감독을 벗어나 자기 멋대로 이런 사역에 관여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치유의 사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은사를 행사하는 것이 곧 그 사람의 권위와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권위와 능력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감독과 지도를 벗어나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교만해져서 탈선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의 몸된 교회와 자기 자신에게 조금도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은사를 주신 성령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영들 분별함
이 은사는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설명이 가능합니다. 먼저 이 은사를 계시와 연관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계시를 주셨다고 주장할 때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를 분별한 능력이 바로 영들 분별함이라고 주장한다면, 계시의 완성과 함께 이 은사를 끝났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은사를 이렇게 정의하는 것은 지나치게 제한된 견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시가 완성된 후에도 세상에는 많은 영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영들을 분별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도 이 문제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고 말했습니다(요일4:1). 물론 이 말씀은 성경을 통해서 검증하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는 영들 분별하는 것이 은사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초자연적인 역사가 나타났을 때 그것이 성령님의 역사인지, 아니면 악한 영의 역사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정신질환과 귀신들림에 대한 구분이 매우 모호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만일 사탄이 역사한 것인 줄도 모르고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하여 따라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귀에게 속아서 낭패를 당하는 일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들 분별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언과 방언, 그리고 방언 통역의 은사에 대해서는 14장에서 자세히 다루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은 다양하고도 풍성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은사들을 수건으로 싸서 땅에 묻어 둘 수도 있고, 열심히 사용하여 주님께 충성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에 바로 서서 열심을 내야 합니다. 기도에 힘서야 합니다. 특히 성경에 철저하게 비추어 은사들을 점검하고 바르게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풍성하게 나타나고, 다양한 은사들을 가지고 겸손하게 교회를 섬기고 형제들을 섬김으로, 주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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