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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환난

고린도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603 추천 수 0 2009.11.16 14: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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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후1:2-5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7. 9. 23. 주일설교 
<서론>
오늘 저는 ‘위로와 환난’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아무리 우리 삶에 환난의 풍파 불어와도 가슴속에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면 그 환난을 거뜬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슴속에 하나님의 위로가 없이 삭막한데 환난을 당하게 되면 좌절하고 패배하며 절망하게 됩니다.
'위로'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시스'인데 이 말은 '파라 칼레오'라는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파라칼레오란 '용기를 돋우어주다', '도와주다', '위로 하다' 라는 뜻입니다. 고후1:3~7에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면서 '위로'라는 말이 무려 10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성령님을 '보혜사 성령님'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보혜사'란 말은 '파라클레토스'로 '곁에서 돕기 위해 부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흔히 상담자(counselor), 위로자(comforter), 돕는자(helper)라고도 해석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이 아무리 환난이 심해도 우리가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성령님이 충만하게 가슴 속에 계시면 하나님의 위로가 넘쳐서 환난을 거뜬히 이기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예수님이 체험하신 위로와 환난

예수님도 그가 받은 위로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다가올 십자가의 환난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에 변화산상에 올라간 체험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아홉 제자를 산 밑에 두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사람을 데리고 변화산상에 올라가서 기도하는데 그 모습이 햇빛처럼 변했습니다. 옷이 하얗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보니까 모세와 엘리야가 와서 예수님과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합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으로써 우리 주 예수님께서 와서 말씀을 듣는데 보니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실 것과 무덤에서 부활할 것을 말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그 장면이 너무나 황홀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깊이 잠든 상태에 있다가 다시 눈을 뜨니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앞에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감격해서 "주님! 이곳에 있는 것이 참 좋습니다. 여기에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해서,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하겠나이다." 하니까 구름이 싹 불어 와서 덮더니만 구름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택하신 자니 그의 말만 들으라." 그리고 구름이 사라지는데 보니까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졌고 예수님만 가운데 서 계신 것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체험을 통해서 굉장한 마음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주님 위로 없이 십자가를 걸머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독생자 되심을 다시 한번 하나님이 확인해 주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택하신 자”라는 음성을 하늘에서 직접 예수님께 들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와 선지자의 대표인 엘리야가 와서 예수님이 율법과 선지자의 모든 일을 완성하실 것을 예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체험의 위로가 장차 십자가의 혹독한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십자가의 고통이 혹독하더라도 이미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위로를 하나님께로부터 친히 변화산상에서 받았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죽으시기 엿새 전에 그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시몬의 집은 베다니에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마리아가 옥합을 하나 가지고 와서 그것을 문지방에 탁 때려 부셔 뜨렸습니다. 그리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옥합의 기름을 예수님 머리에 붓고 그의 수염을 통해서 옷에 떨어지니 머리로써 그 기름을 닦아서 예수님 발을 비벼 주었습니다. 온방에 나드 기름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러자 가롯 유다를 중심으로 해서 제자들이 분노를 했습니다. "이 무슨 낭비인가! 이 나드 기름을 3백 데나리온 주고 팔았으면 가난한 사람에게 도와 줄 것인데 왜 이렇게 낭비를 하느냐!" 그때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와 제자들을 보고 꾸짖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히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너와 같이 있으니 너희들이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좋은 일을 할 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한다. 이 여인은 나를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서 있는 것 향유를 내게 부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로 기억하게 하시리라” 에수님은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서 기름을 예수님 머리에 붓고 참으로 좋은 일을 해줬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걸머질 것을 생각하고 마음이 상당히 삭막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행동은 굉장히 마음에 힘을 주고 위로를 주고 힘을 주는 것입니다. 힘을 다하여 주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했습니다. 주님 죽을 것을 미리 준비해서 향기로운 기름을 부은 것은 마리아의 향기로운 사랑을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부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위로를 받으셨던지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것이 기억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리아의 진실하고 전심을 다하는 사랑이 이와 같이 큰 위로가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위로가 주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고난을 이기게 해주신 것입니다.
최근 의학이 발견한 호르몬 중에 다이돌핀이 있습니다. 이 다이돌핀은 심한 통증 치료에 사용되는 모르핀보다 20배나 효과가 있다는 엔돌핀에 비해 4천 배의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발표되었습니다. 즉 모르핀보다는 8만 배나 더 높은 강도입니다. 우리 몸에서 다이돌핀이 나오면 어떠한 스트레스나 병도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즐거울 때 엔돌핀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이돌핀은 엔돌핀 보다 4천배나 더 강한 효과를 가진 것이 우리 뇌에서 분비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이돌핀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진리를 깨달아 마음에 큰 감동을 느끼든지 사랑에 빠졌을 때,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되었을 때 큰 마음에 감동을 받을 때 우리 몸에 생성되어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리며 힘을 다하여 주님을 섬김으로 십자가를 앞두고 마음이 무거운 주님을 크게 감동시켜서 우리 주님의 마음속에 다이돌핀이 넘쳐났을 것입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진실하고 전심을 다한 사랑의 위로는 주님이 십자가의 환난을 이기게 하는데 큰 위로를 주었던 것입니다.

2. 사도들이 체험한 위로와 환난
여러분 사도들이 체험한 위로와 환난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목격자로서 위로를 받지 않았다면 사도들이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고통을 견뎌내지 못하고 나중에 순교의 재물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고난이 오기 전에 사도들은 엄청난 위로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들 눈앞에서 죽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무덤에 장사 지낸 것을 보고, 그들은 낙심하고 절망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닌 3년 반의 세월이 헛되다는 것을 알고 그들은 모두 두려워해서 집안에 숨어서 문을 꽁꽁 닫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흘 만에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그들이 죽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고 무덤에 들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생생히 보았는데 그 예수님이 모인 자리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못자국난 손을 내어 보이시고 못자국난 옆구리를 내어 보이시고 손가락으로 못자국난 손을 만져 보라고 하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대화하시고 함께 음식도 잡수셨습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하루 이틀이 아니라 40일 동안 살아계신 예수님이 눈앞에 나타난 것을 보고 그들은 아주 너무나 놀라고 감동했습니다. 그냥 예수님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활 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아니라 그들은 자기들 눈으로 보았습니다. 생생이 살아있는 예수님이 끌려가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예수님이 살아나셔서 40일 동안 그들 앞에 생생이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며 보고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와 함께 음식을 먹었으니 그 감격이 얼마입니까? “야~ 진짜로 예수님은 살아 계시구나! 진짜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 진짜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주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주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터이니 이 예수님 보니까 우리 죽는 것 아무것도 아니다. 죽어도 까딱없다. 겁날 것 없다. 그들은 엄청난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위로를 받은 그들이기 때문에 나중에 감옥도 두려워하지 않고 매맞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죽어도 살리는 예수님이 살아계신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거기에 보태어서 오순절 날에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할 동안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이 임하여서 그 마음에 깊은 감동을 느끼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고 춤추며 기뻐했습니다. 그는 그 하나님의 은총에 넘치는 축복을 받아서 놀라운 위로를 얻었기 때문에 그때로부터 시작해서는 그들은 온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무수한 고난을 당하고 투옥을 당하고 죽음을 당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것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위로를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도바울 선생도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까? 그러나 바울이 사망이나 생명이나 고난이나 슬픔이나 삶이나 죽음이나 다 극복하고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은 특별한 위로를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서 감옥에 넣으려고 시리아의 다멕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이 나타난 것입니다. 대낮에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비취면서 예수님이 나타나니까 그 앞에 거꾸러져서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주여! 뉘시니이까?”그러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가시채를 뒷발질하기에 너만 괴롭다. 다멕섹으로 돌아가라! 네가 장차 해야 할 일을 보여 주겠다.” 그리고 일어나보니 눈이 장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다멕섹에 들어가서 금식기도하고 직가라는 곳에 있는 하나님의 귀한 종이 찾아와서 안수하매 눈에 비늘이 떨어지고 눈을 보게 되고 세례 받고 성령 충만하고 그는 예수 믿는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냥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살기등등한 그에게 길가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밤중에 나타난 것도 아니고 밝은 대낮에 햇빛보다 더 밝은 광채 가운데서 나타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말씀하고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음성을 직접 듣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살아계신 것을 너무나 가슴속에 깊이 느끼고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러므로 그 다음 이후로 매를 맞고 고통을 당해도 “예수님이 살아 계시고 예수님이 나와 같이 계시고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셨으니 내가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바울은 한번 하나님이 셋째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사람의 말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셋째 하늘에 올라가고 내려온 체험을 하고 난 다음에 천국이 있는 것이 너무나 확실하고 영생이 있는 것을 너무나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바울은 죽는 것쯤 아무것도 아닙니다.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웠습니다. “죽는 것이 뭐가 겁이 나느냐. 예수님이 살아 계시고 나는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이 예비한 모든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고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낫다. 차라리 이 몸을 떠나 예수님과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지는 것이 더 좋다”고 그는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어떠한 고난도 이기고 순교를 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위로를 받지 못하면 고난을 당할 때 견디지 못합니다. 그 고난의 괴로움에 항복하고 신앙도 포기하고 두 손 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엄청난 그리스도의 위로를 받은 사람들은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나 칼이랴. 죽음이랴. 이런 일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우리가 구해야만 하는 위로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구해야 할 것은 위로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삶의 고난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위로를 먼저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위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위로를 받아야 고난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66:13에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위로를 받아야 고난을 이깁니다. 아무리 시집살이 몹슬고 괴로워도 남편이 아내를 굉장히 위로해 주면은 새댁이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집 식구들에게 많이 고통을 당하고 눈물을 흘려도 남편이 주는 위로 때문에 너끈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집식구들에게 몸쓸 핍박을 받는데 남편조차 가세해서 핍박을 하면 파멸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위로를 흠뻑 해주면 이길 수가 있어요. 또 남편도 한가지입니다. 이 세상살이에 너무 고통스럽고 직장이나 일터에서 너무나 고통을 당해도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위로해 주고 격려해주면 아내의 위로가 흠뻑 마음에 가득차면 그 위로 때문에 그 다음날 고통도 또 그 다음날 고통도 능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위로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23:4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어떤 흑암의 골짜기를 지나도 주님께 은혜 받고 주님이 같이 계시다는 위로만 있으면 이겨 나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망의 골짜기도 겁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위로를 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항일 독립 운동가이며 교육자였던 주남선 목사님의 일대기에 「해와 같이 빛나리」라는 일제 시절 신사참배를 반대한 이유로 모진 고문을 받은 목사님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당시 밖은 영하의 추위가 몰아쳤고, 목사님은 잡혀서 흠씬 매를 맞고 얼음처럼 차가운 감옥의 시멘트 바닥으로 던져졌습니다. 고문으로 터진 살이 차가운 바닥에 닿으니 온 몸은 더욱 시려왔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주님의 위로와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를 위로해 주십시오. 하나님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얼마 후 시간이 지나자 이상하게 감옥 안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렇게 추운 감옥이 따뜻해지더니만 솜이불 같은 것이 주 목사님을 감싸 포근함 속에서 너무나 편안하기 때문에 잠이 들었습니다. 그는 매를 맞은 상처의 쓰라린 아픔도 잊어버리고 주님의 품안에 안겨 잠을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자기도 모르게 새 힘이 솟았고 아픈 상처가 아물었습니다. 그래서 그 위로로 말미암아 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신사참배를 저항하고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을 유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선교여행을 하다가 모진 박해를 당해 거의 죽을 뻔 당했으나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 내려온 위로를 통해 억센 고난과 환난과 죽음을 기꺼이 이기고 복음전도를 계속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받는 이웃을 위로하기 위하여 우리가 위로의 체험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남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내가 위로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많이 통한 지역장이나 구역장의 말씀 속에는 큰 위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고난 받아서 하나님의 위로로 이겼기 때문에 다른 고난 받는 사람을 위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의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인생의 쓰라린 고난을 많이 겪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주님의 은혜로 이긴 체험을 가진 주의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에 위로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고난 속에 하나님의 위로로 이겼으니까 그 위로를 가지고 고난당한 다른 사람을 위로해 줄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후1:3~4에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러므로 위로하는 자는 상처받은 치유자인 것입니다. 내가 상처를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말에 과부가 과부사정 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고난 받아본 며느리가 고난 받는 며느리의 사정을 알다시피 내가 상처를 입어서 치유 받은 사람이 남 상처 받은 사람은 치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로는 나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그 위로로써 고난 받는 다른 사람을 위로해서 상처를 이기게 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사40:1에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를 위로하시기 위해서 위로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위로자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위로하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40:1에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받는 이웃을 위로하기 위해 먼저 우리가 위로의 체험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큰 사명에는 큰 고난이 다가올 것이므로 미리 위로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업을 할 때 마귀가 가만 두지 않습니다. 원수가 있어요.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원수가 우는 사자같이 돌아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데 가만히 있는 사람 삼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사람을 와서 발로 할퀴고 이빨로 깨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이 적으면 적은 공격을 받고, 하나님의 사명이 크면 큰 공격을 받습니다. 영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게 되고 육체적인 고난을 입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사업을 하겠다고 나오면 이미 고난당할 것을 각오해야 되는 것입니다. 칭찬을 받고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하나님 사업하는 사람 없습니다. 마귀는 언제나 일하는 사람에게 다가와서 온갖 흉한 말을 다하고 참소를 하고 고통을 주고 괴로움을 주어서 뒤로 물러가게 만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사명에는 큰 고난이 다가올 것이므로 미리 하나님이여 이 고난을 감당할 수 있도록 위로를 해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하는 사람에게 먹이지 않습니까?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아침밥 먹고 점심 먹기 전에 참을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기 전에 또 참을 먹습니다. 왜, 무거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영양분을 흡수해서 힘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위로를 받아야 하나님의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위로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부흥회 나가면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게 위로를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위로를 주셔야 부흥이라는 이 큰 무거운 짐을 걸머질 수 있습니다.” 매주일, 매수요일 말씀을 증거 한다는 것은 굉장한 부담입니다. “뭐 50년간 복음을 전했는데 뭐가 부담이 오느냐.” 하나님의 사업은 하면할수록 얼마나 중대한 것을 깨닫기 때문에 겁이 나고 더 중압을 느낍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 성령으로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은혜를 주셔서 위로를 해주셔야 이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항상 성령의 위로를 부르짖는 것입니다. 우리가 위로 받기 위해서는 말씀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우리가 읽고, 듣고, 감동적으로 진리를 깨달을 때 마음에 큰 위로가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굉장한 위로의 능력을 가지고 우리의 심령을 파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건성으로 읽으면 위로가 안돼요. 하나님 성령께 기도해서 말씀으로 위로해 달라고 간구할 때 하나님 말씀이 마음에 깨달아지면 어둠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나옵니다. 굉장한 위로가 마음에 오고 굉장한 마음에 감동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시119:50에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고난당할 때 말씀이 위로가 되어서 살린다고 말한 것입니다.
시50:15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환난 때 위로를 통해서 격려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의 은혜를 통하여 은혜를 받습니다. 성령은 위로의 영인 것입니다. 보혜사라는 것은 위로자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우리 마음속에 굉장한 쿠션이 되는 것입니다. 높은데서 떨어져도 푹신푹신한 쿠션이 있으면 다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하면 마음에 충격을 받고 핍박을 받고 환난을 당하고 억울한 소리 듣고 누명을 당해도 마음에 성령의 쿠션이 있기 때문에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고 그 고통을 견뎌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살전1:6~7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환난가운데 성령이 위로해서 기쁨이 충만해지면 어떤 환난도 이기고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롬8:26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우리 위해서 기도해 주셔서 미리미리 위로받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환난과 곤고가 다가오기 전에 성령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 마음에 위로를 잔뜩 채워 주시므로 환난과 고통이 다가와도 마음에 쿠션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아도 상처를 입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은혜를 통해서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늘 성령 충만을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은혜의 체험을 통해서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병 나음을 받아 기적을 체험하면 굉장한 위로가 오지요. 나의 기도를 통해서 가족이 구원받으면 그 체험으로 마음에 굉장히 위로가 오지요. 내가 소원하는 바를 기도하고 응답 받으면 굉장히 마음에 위로가 오지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나면 그것이 마음에 위로가 되어서 나중에 고난당해도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므로 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또 붙들어 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능히 담대하게 이길 수 있는 것은 특별한 은혜를 받아서 위로를 얻을수 있는 것입니다.
살후2:16~17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에 보십시오. 영원한 위로와 은혜를 통해서 마음을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신앙이란 그냥 이 딱 깨물고 고통을 참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우리에게 강물처럼 넘쳐나서 말씀을 통하여 위로받고 성령을 통하여 위로받고 기도응답을 통하여 위로받고 또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 와서 위로를 해주시므로 그 위로를 통해서 환난과 곤궁과 핍박과 괴로움과 슬픔을 이겨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위로받지 못하면 이겨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신앙을 잘 가지려고 해도 너무나 세상에 고통이 많고 시련이 많기 때문에 이기지 못할 때 구역예배에 가서 기도를 받고 위로를 받고 주일예배, 수요예배에 와서 위로를 받고 말씀 읽고 기도하다가 위로 받아서 위로로 말미암아 고난을 능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여러분 항상 주님께 위로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라고 한 것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눅11:9)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구해야 될 것은 위로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위로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위로해야 되는 것입니다. 위로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고 공격하고 할퀴고 상처 입히는 사람은 사단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결론>
고후1:5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
보십시오. 고난이 넘치고 고난에 내버려 놓으면 다 고난으로 다 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위로도 넘친다고 말한 것입니다. 불이 활활 타면 불을 끌 수 있는 물도 많이 주는 것입니다. 마귀가 물을 갖다 부으면 기름도 주님께서 많이 부어서 불이 활활 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위로도 다가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요, 마귀는 고난의 원수이기 때문에 고난의 원수가 와서 고난을 주면 주님은 위로의 하나님이 되어서 넘치는 위로를 주셔서 고난을 이기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과 하나님의 위로는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삶 그 자체가 크고 작은 고난의 연속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승리하고 이웃을 승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위로가 넘치는 삶을 살아야 되고 항상 위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장 큰 질병은 결핵이나 문둥병이 아닙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아무도 위로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이것이 가장 무서운 병입니다. 세상에는 빵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작은 사랑이나 위로가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므로 우리는 그 안에서 승리하고 또한 이웃을 승리하도록 서로 위로로 도와줘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위로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필요하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으면 이것은 죽음의 병에 걸린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위로할 수 있는 하나님의 귀한 일꾼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웃을 위로해 주고 사랑해주고 격려해 주고 이웃사람을 다독 거려 주면 그것이 위로가 되어서 이웃사람을 어떠한 시련과 환난과 고통도 극복하고 이겨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의 말로 이웃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비난하고 공격하고 비평하고 손가락질하는 말을 하면 이웃사람을 죽입니다. 그러나 위로하고 격려하고 사랑하고 힘을 주는 말을 하면 그 위로로 말미암아 환난에 빠진 이웃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로가 우리에게 넘치는 것처럼 우리도 항상 위로하는 하나님의 사자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조차도 변화산상과 마리아의 위로를 받아서 십자가를 걸머지셨습니다.
사도들이나 사도 바울선생도 억센 고난을 그들이 받은 위로 때문에 이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위로를 받지 못하면 결코 신앙도 생활도 이길 수가 없고 사회생활도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위로를 받지 못하면 스트레스에 걸려서 앞에서 넘어지고 뒤에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맙니다.
내 아버지 수많은 병들이 위로받지 못한 가슴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위로받게 도와주시옵소서. 말씀을 통하여 위로받고 성령 충만하여 위로받고 기도응답 받아서 위로받고 마음속에 하늘의 위로가 넘쳐나서 세상의 환난을 능히 이길 수 있게 도와 주시 옵소서. 고난이 넘친 것 같이 그리스도의 위로도 넘치게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모두 다 위로받은 성도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어느 곳에 가나 위로하는 성도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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