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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수무책

예레미야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443 추천 수 0 2009.11.16 14: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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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렘33:2~3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7. 9. 30. 주일설교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속수무책’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사면초가란 말이 있습니다. 사방이 원수들에게 둘러싸여 별 수 없이 이제는 항복하든지 망하게 되었을 때 사면초과성이 된다고 말합니다. 또 진퇴유곡이란 말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깊은 골짜기에 빠진 것을 뜻합니다. 또 우리가 많이 쓰는 말 중에 속수무책이란 말도 있습니다. 두 손이 묶인 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이와 같은 고난에 빠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안 그러면 좋겠는데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도리에 처할 때 가 있습니다.

<본론>
1. 아담의 타락과 속수무책

성경에 보면 아담의 타락과 속수무책의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으므로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은 값을 지불해야 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죄의 값은 결과는 사망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죄는 오직 그 죽음만을 그대가로 원하고 있는 것 입니다. 죄를 청산하려고 수양과 도덕을 아무리 닦아도 뭐라고 하면은 “그것은 대가가 될 수 없다. 죽음을 내 놓으라”
죄지었으니 대가로 죽음을 내놓지 도덕과 수양은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중에 물건 사러 갈 때 일본 엔화를 주면 "한국 원화를 내놓으십시오." 미국의 달러를 내놓아도 "원화를 내놓으십시오." "아니 유로화인데요?" "그것은 유럽에 가서 쓰시고 우리 한국에는 원화를 내놓으십시오." 원화를 내놓아야 우리가 배추도 사고 고구마도 사고 소고기도 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죄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죽음을 대가로 내놓으십시오. 수양과 도덕 안 받습니다. 고행도 안 받습니다. 아무리 고행을 해도 그것은 당신이 할 일이지 죽음을 내놓지 않은 이상 죄의 대가는 지불할 수 없습니다. 죽음을 내놓으십시오. "아 나는 불교를 믿는데. 유교를 믿는데, 도교를 믿는데, 마호메트교를 믿는데, 나는 기독교를 믿는데요." "아니요, 종교도 대가가 될 수가 없습니다. 죽음을 내놓으십시오." 죄가 요구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러니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그 후손들이 죄 중에 잉태되고 죄 중에 태어나서 죄악 중에 사니까 모두다 죄의 대가로 죽음을 내놓아야 되니까 죽으면 그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마귀가 인간을 속수무책으로 만든 것입니다. 인간은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마귀는 죄와 죽음을 통해서 인간을 꽁꽁 묶고 회심의 웃음을 지으면서 말합니다. "너희들은 속수무책이다. 죄 값을 지불하자면 죽어야 되니까 죽으면 그뿐이지 않느냐. 그러므로 나에게는 해방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운명적인 죄인, 죽음의 노예가 되어서 완전히 인생을 파멸되게 된 것입니다.
롬5:12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리고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의 영원한 노예로 속수무책입니다.
마귀는 영원히 인간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대책이 나타난 것입니다. 인간이 속수무책일 때는 하나님밖에 대책을 세울 수가 없는데 하나님은 죄 없는 사람을 세상에 생산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아담의 후예로써 죄 중에 태어나서 죽음의 값을 지불해야 되는데 죄 없는 사람을 태어난 것입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죄없이 태어나게 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의 죄를 청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게 된 것입니다. 마귀는 이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속수무책 일때 대책을 세워 놓으셔서 예수님이 오셔서 죄 없이 태어나시고 죄 없이 33년을 사시고 인간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 찢고 피 흘려서 인간의 죄책을 청산해 버리고 만 것 입니다. 그러므로 죄 없는 인간이 탄생했다는 것이 하나님이 대책인 것입니다. 인간은 대책을 세울 수 없으나 하나님은 대책을 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의 희생 제물로 보내시므로 말미암아 우리 대신하여 모든 것을 청산해 주었습니다.
사53:5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믿으면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청산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우리는 누구든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자라도 즉시로 죄에서 용서를 받고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고 해방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밖에 있으면 예수님이 아무리 십자가를 짊어지고 인류를 위해서 죄를 청산해 주어도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믿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야 보혈이 효과를 발생하는 것입니다.
롬8:1~2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아무리 속수무책으로 인간을 묶어 놓아도 하나님이 대책을 세우시면 마귀의 속수무책은 아무 의미가 없고 힘이 없이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2.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속수무책
우리가 성경에 보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속수무책의 어려움을 당한 것입니다. 유대민족들이 바벨로니아의 포로로 잡혀갈 때 왕족 중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있었는데 머리가 좋아서 특별히 특채를 당하여 느부갓네살 왕이 경영하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특채를 받아서 바벨론도의 관리로써 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 왕의 큰 은혜를 입었지요.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이 두라 평지에 금 신상을 세워 놓고 제막식 날을 온 천하에 문무백관을 다 불러서 음악을 연주할 때 엎드려 절하게 만든 것입니다.
단3:6~7에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하니라”
모든 세상의 문무백관들은 느부갓네살 왕이 명령에 절대복종 했습니다. 안하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니까요. 그리고 기왕 그들은 우상에 절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느부갓네살의 금신상이라고 절을 못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십계명 중에 나 이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상에 절하기를 그는 거부하기로 결정한 세 청년이었습니다. 포로로 잡혀온 것도 원통한데 이방 땅에 와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우상에 절할 수가 있겠는가. 죽더라도 우상에 절하지 않겠다고 마음에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엎드려서 절을 할 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는 장대처럼 서서 절하지 않고 꿋꿋이 서 있었습니다. 단3:12에 보면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모든 사람 보는 앞에서 그들은 신앙을 견지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이 말을 듣자 진노해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불러서 “우상에 절하지 아니하면 7배나 뜨겁게 한 풀무 불에 던져 넣어서 태워 죽이겠다. 다시 한번 기회를 줄 것이니 우상에 절하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속수무책입니다.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하늘의 새도 떨어뜨리는 생사여탈권을 가진 느부갓네살이 분도막심하여 벌벌 떨면서 호령을 쳤는데 피할 길 있어요? 속수무책입니다.
단3:14~15에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여기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단을 해야 됩니다. 왕에게 굴복할 것이냐, 일사각오하고 신앙을 지킬 것이냐. 참으로 어려운 결정인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사람들이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세상을 따라 갈 것이냐, 주님을 따라 갈 것이냐, 세상을 따라가면 출세하고 돈 벌고 영화를 누리겠다고 하는데 이것을 거부하고 주님 중심으로 설 것이냐, 유혹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할 때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큰소리하는 사람들이 우상 앞에 나와서 넙죽넙죽 절하는 것을 볼 때 가슴이 답답하고 탄식스럽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쉽게 타협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바벨론 도에 도지사로써 출세하고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크게 호의호식하고 잘살 수 있습니다. 우상에 한번만 절하면 그들은 일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는데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우상에 절하지 아니하면 잡혀서 관직을 다 빼앗기고 풀무 불에 던져 넣어서 불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죽으면 죽으리 이다. 단호하게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단3:16~18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왕이 우리를 풀무불 가운데 던져 넣을 지라도 건져내실 것이고 안 건져 내어도 우린 우상에 절하지 않는다. 우리의 신앙의 지조를 지키겠다. 놀라운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이 분도 막심하여 병사들을 명해서 풀무불을 7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불이 뜨거웠던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어서 들고 가던 병사들이 그 풀무불 가운데 던지려고 하다가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어서 불에 던졌는데 분명히 바싹타야 되겠는데 순식간에 밧줄이 끌러지고 그 가운데 세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이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는 것입니다. 눈을 딱 떠 보아도 세 사람을 던졌는데 네 사람이 와서 춤을 추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신의 아들 같더라. 즉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불의 세력을 멸하신 것입니다. 왕이 너무나 놀래서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왕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하나님의 종아 불가운데서 나오라고 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온지라.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단3:27) 얼마나 철저하게 주님께서 불의 세력을 멸하였던지 몸은 상하지 않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고 겉옷이 빛도 변하지 아니하고 불탄 냄새도 없었습니다. 완벽하게 하나님이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목숨을 바쳐서 단호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 중심으로 설 때 하나님이 돌보아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에게 도움을 베풀기 위해서 살피고 계신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단호한 결단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세상도 반, 하나님도 반, 세상도 따라가고 하나님도 따라가고 기회주의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박쥐와 같이 밤에는 새가 되고 낮에는 쥐가 되는 기회주의자가 되면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사람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같이 관직을 다 박탈당하고 목숨을 빼앗길지라도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해서 결단을 내리면 하나님은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속수무책이 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대책을 세워 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의 어려운 문제가 부딪혀서 속수무책이 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갈 곳이 없고 뒤로도 물러갈 곳이 없고 길이 다 막혔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이 모든 일에서 하나님은 대책을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먼저 구할 것 먼저 구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중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높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먼저 구하고 하나님을 나중 구하는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이 건져줄 수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먼저 섬기면 하나님도 우리를 먼저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시91편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단3:28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그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오히려 왕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신앙의 지조를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건져주므로 느부갓네살이 크게 감동하고 느부갓네살 조차도 변화 되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합동하여 유익이 되어서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뜻을 받들면 하나님이 화를 변하여 선이 되게 만들고 축복으로 변화시켜서 유익이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해럴드 살라가 쓴 책 「하나님께 목숨 건 사람들」에는 림 청 목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림청은 이 미얀마에 있는 목사인데 림청의 아버지는 사원 앞에서 은으로 만든 우상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 아들 림청은 그 우상을 빈 소원이 응답되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12살 되던 해에 그의 삼촌을 찾아가서 "삼촌 삼촌! 삼촌이 우상 앞에 절하고 빌어서 응답받은 증거가 있느냐" 삼촌이 가만히 고개를 흔들면서 "별로 응답 받은 것 없다" "그러면 응답도 못하는 우상에게 왜 절하고 섬기느냐?" 그는 곧 선교사를 찾아갔습니다. "선교사님은 당신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부르짖을 때 응답받은 체험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선교사가 "아~ 있고말고!" 자기가 응답받은 사건을 몇 가지 말씀해 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구원을 얻고 응답을 해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림청은 12살 먹은 때 "그렇다면 사랑해주고 응답해 주는 신을 믿어야지.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도 안 해 주는 우상을 믿을 필요가 있겠느냐" 그 아버지에게 찾아가서 "나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굉장히 화를 냈습니다. "야 이 미친놈아! 너는 예수 따라가. 우리 집에서 떠나가라!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했으니까 너는 썩 나가서 그 놈의 예수와 함께 살아라!" 그리고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주님만 의지했는데 선교사의 도움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캄보디아 족속을 섬기기 위한 사역을 했었습니다. 가족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차례로 주님을 영접했고 결국 우상을 만들던 아버지도 예수님을 구주로 모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로 결단한 그를 하나님께서는 어김없이 돌보아 준 것입니다. 그가 타협했더라면 하나님은 그도 구원하지 않고 가족을 구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타협하지 아니했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가족들이 말합니다. "예수를 그렇게 독실히 믿지 말고 제사도 지내고, 우상도 섬기고, 적당히 믿어라. 그러면 우리가 너를 존경하고 우리도 너를 따라 가겠다." 거짓말입니다. 타협하면 마귀가 손가락질하고 ‘너 가짜 믿는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단호히 타협하지 않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의지하면 핍박을 하다가도 하나님이 같이 계시므로 다 거꾸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요사이 가만히 세상 살아온 옛날을 돌이켜 볼 때 제가 예수 믿을 수 있는 형편이 못됩니다. 우리는 대대로 불교집안이고 기독교는 알지도 못했습니다. 교회를 가본적도 없고 교회를 보지도 못했습니다. 우리는 시골에서.. 그런데 제가 병들었을 때 전도 받아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우리 아버님, 우리 가족들이 나에게 설득을 많이 했습니다. "가족을 버리겠느냐. 예수를 믿으면 우리 집안에 없는 신앙을 가지게 되는데 집안 식구들하고 다 등을 돌리게 되는데 가족을 버리겠느냐. 예수님을 버리겠느냐. 택하라!"고 강요를 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집안에 대대로 믿어오던 신앙을 가지고 조상을 버리지 말고 예수를 버리라고 말하는데 제가 단호하게 기도하고 "난 예수를 믿겠다." 그래서 제가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20살에 제가 집을 뛰쳐나와서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럴 때 우리 집에서는 전부 저를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하고 몇 년 동안 저하고 편지거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호하게 주를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신학교에 와서 공부하고 주의 종이 된 이후로 우리 가족들이 다 구원을 받아 아버님은 장로가 되고 어머님은 권사가 되고 동생들은 다 목사, 장로들이 되고 누이, 동생들은 권사들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단호하게 주를 믿으면 핍박하다가 모두 다 꺼꾸러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타협해서 우상을 섬기고 제사 모시고 세상적으로 살았다면 우리 집안 식구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법일 지키고 단호하게 결단을 내리면 하나님이 여러분 편에 서 계시게 되는 것입니다. 속수무책이 될 때 하나님은 대책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속수무책이라고 해서 세상을 따라서 타협하는 여러분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3. 풍랑 만난 제자들의 속수무책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의 풍랑을 만났었을 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눅8:22~23에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갈릴리 호수는 지상보다도 600층이나 낮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물이 하늘로 뜁니다. 30분 이내에 피하지 아니하면 무슨 배라도 파선합니다. 바다 한 가운데서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물결이 뛰기 시작하니까 제자들이 혼비백산해서 돛을 내리고 노를 저어서 안전한 해변으로 오려고 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물이 막 배에 덮쳐 들어온 것입니다. 그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 어부로써 배를 잘 부릴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수단과 방법을 다해도 나중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주무셨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보통 사람으로써는 그런 풍랑 가운데서 주무실 수 없습니다. 혼비백산 일어나서 안절부절 할 것입니다. 아무리 수양과 도덕을 닦은 사람도 이런 큰 풍랑 가운데 안절부절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왜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님 다 가지고 계시므로 주님 명령 없이 파도가 예수님을 물에 빠뜨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주의 대왕이기 때문에 권력을 손에 쥐고 계시므로 아무리 아무리 파도가 쳐도 파도가 예수님을 침몰하지 못할 줄을 알기 때문에 주님은 편안히 주무셨습니다. 제자들이 속수무책이 되어 이제는 죽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 예수님을 잠에서 깨웠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그럴 때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눅 8:24)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눅 8:25) 여러분 보십시오. 제자들이 속수무책의 난관에 처했을 때 그들이 뛰어 내려가서 헤엄을 치지 않았습니다. 죽는다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찾은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개인, 가정, 생활, 자녀 문제가 있어서 풍랑이 일어나서 침몰할 위기에 처했을지라도 여러분은 찾아갈 곳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 가십시오. 우리가 기도를 게을리 하고 성경을 읽지 아니하고 주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해서 예수님을 등한이 여기면 예수님이 잠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 속에 예수님을 등한이 여기면 예수님이 잠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풍랑이 다가오지요. 마귀는 예수님이 잠들 때 우리를 쳐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말씀 읽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헌신하여 충성해서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키면 주님께서 속수무책에서 해방의 대책을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옛 우리 한국말에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는데 세상에서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없어요.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속수무책이 되더라도 예수님을 찾으면 주님이 우리에게 대책을 세워줄 수 있는 것입니다.
라이놀드 G. 그린 목사는 "인생의 가장 좋은 일들은 슬픔이나 고난의 보자기에 싸여서 온다."고 말한 것입니다. 슬픔이나 고난이 다가올 때라도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면 슬픔과 고난의 보따리 속에 하나님은 좋은 것을 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헨리 워드 비쳐는 "우리는 날마다 두개의 손잡이를 잡고 살아간다. 하나는 두려움의 손잡이며 다른 하나는 믿음의 손잡이다."고 말한 것입니다. 두려움의 손잡이를 잡고 우리가 떨면서 물러갈 것이냐 믿음의 손잡이를 잡고 끝까지 주님 중심으로 믿고 나갈 것이냐는 우리가 선택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4. 삶이 속수무책일 때
삶이 속수무책 일 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큰소리쳐도 우리의 삶속에 속수무책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사업이 도산해서 갈 길이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가정이 파탄에 이르러 진퇴유곡에 빠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가 사면초가가 되어서 피할 곳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속수무책입니다. 도울 자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때 어떻게 할까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크고 비밀한 대책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을 기억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렘33:2~3을 다같이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야훼, 그의 이름을 야훼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 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속수무책에 당했을 때 주님께 부르짖으면 주님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비밀을 보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속수무책이라도 주님에게는 속수무책이 아닙니다. 주님은 대책이 있는 것입니다. 만세전에 이미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대책을 세워 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속수무책을 당했을 때도 하나님은 대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것을 알고 우리는 믿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숨을 내어 건 믿음의 결단으로 하나님께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도 의지하고 하나님도 의지하고 인간의 힘도 의지하고 하나님도 의지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죽으면 죽으리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께 내어 던져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살겠다고 발버둥칠 때는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습니다.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 살겠다고 허우적거릴 때 건지러 들어가면 틀림없이 같이 빠져 죽습니다. 허우적 거리는 사람이 발을 몸에 걸면 헤엄칠 수 없어서 같이 빠져 죽지요. 물에 빠진 사람이 물에 물을 충분히 먹고 기절해서 늘어졌을 때 들어가면 무사히 건져 내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여러분이 인간의 힘으로 수단과 방법을 다하고 허우적거릴 때는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다 맡기고 주님께 의지하고 두손 들고 나올 때 주님께서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를 의지하며 철야하고 금식하며 주님께 부르짖어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온다고 할 때 그때 주님은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반드시 주님이 살아계시고 주님을 찾으면 상 주신다는 것을 믿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반신반의하고 나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크신 비밀의 대책이 있다고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전2:9에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나아갈 길이 없습니다. 눈에도 갈 길이 안보이고 귀로 들어도 좋은 소리 없고 마음으로도 생각지도 못한 캄캄한 밤에 주님은 우리의 갈 길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길을 만드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사방에 길이 막혀도 주님은 길이 되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옛날에 굉장히 교회에 어려운 문제가 생겨서 답답할 때 밤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사면초가입니다. 진퇴유곡입니다. 속수무책입니다. 갈 길이 없습니다. 주여 나는 어디로 가야 되겠습니까?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자는데 밤에 엘리베이터를 타다가 엘리베이터가 딱 서더니만 고장이 났습니다. 문이 안 열립니다. 엘리베이터에 갇혀서 올 데 갈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 하니까 엘리베이터에서 주님이 나타나시면서 ‘내가 길이니 나를 통해 가라’ 예수님을 통해서 나가니까 밖으로 나와 버리고 말았어요. 엘리베이터가 사면에 갇혔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시니까 예수님을 통해 나가니까 밖으로 나왔어요. 성경은 내가 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의 길을 통하면 들어가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답답한 일을 당해도 예수님을 붙잡으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죽을 곳이라도 예수님을 통하면 살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망할 때라도 예수님을 통하면 흥할 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 되십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예수님은 당신의 길이 됩니다 라고 말하십시오.
엡3:20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예수님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게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9.11 테러로 미국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을 때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의 간증입니다. 당시 그는 100층에 있었는데, 폭격으로 엘리베이터는 쓸 수 없었고 100층에서 뛰어 내려오는데 마음 속에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빌딩에 불이 활활 붓고 연기가 충천하고 언제 빌딩이 무너질지 모릅니다. 그런데 주님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급한 바람에 "Jesus! Jesus!" 그러면서 "예수님, 예수님!" 이름을 부르고 나오는데 뒤에 많은 사람이 따라오기 때문에 "Call GOD! Call Jesus!"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라"고 외치고 모두다 "하나님, 예수님" 고함을 치면서 계단을 뛰어 내려옵니다.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데 계단에 내려올 때 화염이 붙다가도 예수 이름을 부르고 나오니까 불이 착 갈라지고 연기가 꽉 차였다가 예수 이름을 부르니까 연기가 팍 흩어졌습니다. 50분간을 뛰어 내려오는데 계속해서 불길이 갈라지고 연기가 갈라져서 그들이 빌딩 밑에 나와서 문밖으로 나오자마자 빌딩이 파싹 무너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 이름을 부른 자들은 모두 살아난 것입니다. 이 간증은 다음날 온 미국을 뒤덮는 큰 화재가 된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고통에 우리가 속수무책일 때 바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께 나오면 주님이 대책을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로스엔젤레스에서 부흥회를 열 때 30층 호텔에 있었는데 27층이 내 방이었습니다. 밤중에 한참 자는데 전화가 자꾸 울려요. 드니까 차일석 장로님이 로비에서 고함을 칩니다. "목사님, 호텔에 불이 나서 지금 불길에 쌓였습니다. 빨리 내려 오십시오." 일어나서 보니까 전등불이 다 나갔어요. 창문을 열어 보니까 밑에 소방서에서 소방차가 요란스럽게 와서 야단입니다. 불이 캄캄하니까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그리고 방안에 연기가 꽉 새어 들어옵니다. 너무 급해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잠옷을 벗었는데 벗기는 벗었는데 깜깜한 밤에 더듬어서 바지와 저고리를 찾았는데 어느 것이 바지가랭인지가 보여야지요. 온몸이 떨리고 정신이 없으니까 아무리 바지 가랭이에 발을 넣어도 옷자락에다가 발을 집어 넣어 가지고서 걸을수가 없어요. 그래서 다 던져 버리고 팬티 하나만 입고 문을 박차고 나가니까 벌써 복도에 연기가 가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방마다 뛰어 나옵니다. 제가 앞서서 "예수님! 예수님"하고 부르면서 내가 뛰니까 뒤에 전부 날 따라오는데 계단을 여러분 27층 계단을 뛰는데 아무리 뛰어 내려와도 또 계단이고 아무리 뛰어 내려와도 계단이고 정말로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요. 예수님 밖에 생각이 안나요. 연기가 계단에서 굴뚝처럼 올라오는데 코를 막고서 예수님 이름을 부르면서 오는데 모두 다 나를 따라서 계단을 뛰어 내려왔습니다. 뛰어 내려와 보니까 놀랜 것은 거의 다 발가벗고 내려왔어요. 내가 그때 알은 것은 서양 사람들은 잘 때 발가벗고 자는 것을 비로소 알았어요. 부부간에 전부 발가벗고 내려왔는데 그 밑에서 담요를 가지고 한 장씩 담요를 던져 줘요. 그래서 저도 담요를 받아서 몸에 감고 발가벗은 부부들도 담요로써 몸을 감고 그래서 밤새도록 로비에서 떨 동안에 소방서에서 불을 끄고 안전하게 구출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면요 정신이 아뜩해서 지혜도 총명도 생각나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어요. 오직 주님 이름만 부르고 주님이 시키는데 로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옷을 갈아 입으려고 애를 쓰고 옷이 안 입혀져서 부들부들 떠니까 내 마음속에 성령께서 한마디 말씀을 해요. "뛰라! 뛰라! 뛰라! 뛰라!" 그 음성밖에는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옷을 던지고 뛰었어요. 안 그랬으면 거기 주절 거리다가 연기를 마시고 쓰러졌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속수무책일때도 하나님은 대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책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에게 속수무책은 하나님의 나타나실 기회인 것입니다. 건곤일척의 믿음으로 기적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그냥 믿는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모든 것을 다하여서 주님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지하고 살면 전도할 것이고 죽으면 천당 갈 것이니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만 따라갑니다. 그리고 의지해야 주님께서 나타나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는 여러분을 항상 속수무책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 만은 우리에게 대책을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외치면 하나님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구원하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풍랑 가운데서 건져 내듯이 100층 빌딩에 불이 났을 때 살려 주듯이 오늘날도 주님은 손을 내밀어 대책을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대책을 만드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길을 만드시는 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사면초가를 당할 때가 있고 진퇴유곡의 어려움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난감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대책을 세우시는 하나님이시오 우리를 도와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옵니다.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여 살고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아니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온전히 순복하고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도 전적으로 우리를 위해서 일해 주심을 감사드리옵나이다. 아버지여 속수무책에도 대책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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