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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승리.....

고린도전 이정원 목사............... 조회 수 1780 추천 수 0 2009.11.19 14:44:50
.........
성경본문 : 고전15:51-58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2·09·13 설교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번 이겼다고 해서 다음에도 또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 졌다면 지난번에 이겼다고 해도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계속 이겼지만 한 번 짐으로써 영원히 패자가 되는 일도 많습니다. 역사를 보면 세계를 지배하던 강대국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강대국이 되기까지는 적들을 정복한 수많은 승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강대국들은 예외 없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습니다. 한 번의 패배로 그 동안 쌓아왔던 수많은 승리를 다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승리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세상에는 완전한 승리, 영원한 승리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진정한 승리, 영원한 승리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승리는 부활로써만 가능합니다.

    변화
  고린도 교인들 중에 부활을 부인했던 사람들은 부활을 단순히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활한 몸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부활체는 단순히 현재의 몸이 소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50절) 현재와 같은 몸으로 부활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 부활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부활은 우리의 육체적인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완전히 변화되는 것입니다. 부활체는 변화된 몸이며 육체적인 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스럽고 강하며 영원하고 신령한 몸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날에 우리가 다 변화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51절). 이 변화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앞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여러 종류의 육체들을 만드셨는데, 각각 그 생존환경에 적합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물고기의 육체는 물 속에서 살기에 적합하고, 새의 육체는 공중을 날기에 적합하며, 짐승의 육체는 땅에서 살기에 적합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체는 현세에서 살기에 적합한 몸입니다. 그러나 이 몸은 하나님 나라에는 적합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곳입니다(벧전1:4). 그러므로 죽어서 썩을 몸은 그곳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적합한 몸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적합한 몸이 바로 부활체입니다.
  그러면 누가 변화할 것입니까? 51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다 변화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죽은 사람이든지, 주님 오실 때까지 살아있는 사람이든지 다 변화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 오실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변화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이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날 것입니다. '순식간에'라는 말은 가장 짧은 시간을 가리킵니다. 이 말은 헬라어 ατομοσ를 번역한 말인데, 여기서 atom(원자)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 단어는 변화가 지극히 순간적으로 일어날 것임을 보여줍니다. 변화가 일어나는 그 시간은 눈 깜짝할 시간보다 짧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순간적인 변화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진화론자들은 지금의 사람이 있기까지는 수억 년, 아니 수 백억 년의 진화과정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단번에 세상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만일 진화론자들의 이론대로 한다면 우리가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려면 또 몇 백억 년의 세월이 지나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순식간에 변화시키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승리
  부활은 이렇게 변화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부활은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는 것이며,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는 것이며,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입는 것이고,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을 입는 것이며,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은 최후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54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 승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된다는 것은 부활로 사망을 이긴다는 뜻입니다. 사망에 대한 승리는 죄와 율법에 대한 승리를 포함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55-56절) 이 승리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도록 합시다.
  죽음은 지금까지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절대적인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죽음은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 젊은 나이에 죽음에게 붙잡혀 우리를 떠나갔습니다. 그 때 우리는 얼마나 슬퍼했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암담해 했으며, 얼마나 무기력감 속에서 절망했습니까? 나는 지금도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앞이 캄캄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안 계신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 안 계시는 집이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었으며, 특히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나도 외로워 보였습니다. 한 동안 밤이 되면 어머니가 너무나도 그리워서 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죽음은 이렇게 우리를 위협하고 압제하며 우리의 연약한 심령을 떨게 만들었습니다. 죽음은 우리의 단란한 행복을 여지없이 깨뜨려버렸으며, 우리를 한없는 슬픔과 절망과 허무감에 빠뜨렸습니다. 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것은 죽음을 향하여 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몸에 이상이 생기기라도 하면 우리는 지레 죽음의 공포에 떨게 됩니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데, 의사가 어쩌면 치명적인 병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저런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검사를 받는 동안 몸과 마음이 지치고 시달려 없는 병도 생길 지경이 됩니다. 이렇게 죽음은 지금도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 영광스러운 부활의 날에 이 사망은 여지없이 패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위협하거나 압제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을 바라보면서 사도 바울은 죽음을 향하여 이렇게 호령할 수 있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 날에 우리는 죽음과 그것이 주는 모든 두려움과 절망과 아픔과 슬픔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이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 압제하며 지배하게 되었을까요? 바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56절) 사망의 쏘는 것이란 우리가 죽음에 직면하여 느끼는 두려움과 절망과 불안함 등입니다. 그런데 사망이 이렇게 우리를 쏘는 것은 어디서 왔을까요? 그것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죽음은 죄 때문에 오게 되었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왔으며, 더 나아가서 죽음에게 우리를 위협하며 압제할 능력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죄는 어디서 죽음을 통해 우리를 위협하고 압제할 능력을 얻었을까요? 바울은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는 말로 이 문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무엇이 죄인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한 대가는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하면, 마치 경찰이 불법주차 스티커를 차량에 붙이는 것처럼, 율법은 우리에게 '정죄 고지서'를 붙여 우리를 꼼짝 못하게 묶어버립니다. 우리가 율법을 어길 때마다 죄는 우리에게 "너는 이제 죽어 마땅해!"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도저히 물리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불안하고 두려워 안절부절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이 죽음과 죄와 율법은 더 이상 우리를 파멸시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삼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의하여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심지어 지금도 우리는 이 삼자에 대한 승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났으며, 죄로 인한 멸망을 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살게 되었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이 승리의 완전한 열매는 마지막 날에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이 삼자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비록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세우거나 우리를 영원한 지옥에 파멸시키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우리는 이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죄를 짓고 괴로움에 시달리며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인하여 슬픔을 이기지 못할 때도 있는가 하면, 우리 자신도 이 죽음의 위협을 당하며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실 때, 우리가 주님처럼 영광스럽게 부활하며 변화할 때 우리는 이 삼자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죽음에게 이렇게 큰 소리를 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날이 되면 죽음을 향해 코를 내밀며 '날 잡아봐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혀를 내밀며 "메롱∼"하고 조롱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
  부활로 인한 영광스러운 변화와 사망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말한 다음,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합니다(57절). 이 영광스러운 변화와 완전한 승리를 두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할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제 성도는 이 은혜 때문에 감사하지 못할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죽어도 감사해야 합니다. 가난해도 감사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일이 잘 안 풀리는 것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잠깐 지나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이 찬란한 부활과 영광스런 승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 무엇도 우리의 감사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부활의 승리 때문에, 성도라면 그 누구도 이 명령이 무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이 부활의 소망과 승리를 바라보면서 이김 주시는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성도가 됩시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쓰라!
  이 놀라운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죄와 곤고함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영광의 승리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욱 신실하게 믿음을 지켜야 할 것이며,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58절) 이 영광의 소망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주의 일에 더욱 힘쓰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특히 우리가 침체되어 있을 때나 곤고한 일을 만날 때일수록, 시련을 만나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일수록 이 영광의 소망은 우리를 강하게 격려해줍니다.
  당신은 지금 주의 일에 더욱 힘쓰고 있습니까? 주님을 섬기는 일에는 인색하면서 자신의 사적인 일에는 무한대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붙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께서 주신 소득에서 십일조 드리는 것도 크게 생각하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무슨 건수만 생기면 기꺼이 쫓아가면서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예배를 빼먹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주의 일에 더욱 힘쓰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과 승리와 소망을 바라보는 성도답지 못한 것입니다. 그 엄청나고 놀라운 소망을 바라보는 자가 어떻게 그렇게 시시하게 굴며 부끄럽게 살아갈 수가 있단 말입니까? 오늘 당신에게 새로운 결단이 내려지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 살아가는 자세가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헛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일을 위해 수고하고 봉사하는 것을 손해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당신 자신을 위해 사용한 모든 것이 손해가 될지언정 주님을 위해 수고한 것은 절대로 손해가 아닙니다.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전도하는 것과 선교하는 것, 우리가 믿는 모든 것, 그리고 우리가 믿음 때문에 참고 견디고 수고한 모든 것들이 다 헛것이 될 것입니다(14절). 그러나 부활이 진실하며 확실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부활이 분명한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의 생애와 수고하는 모든 것들은 가장 고상한 목적과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계22:12) 그러므로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성도의 생애보다 더 고귀하고 값진 생애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우리를 영접하시기 위해서 오실 때까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그 전에 부활의 소망 안에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가슴 벅찬 소망을 가지고 그 날을 바라봅니다. 그 날에 주님께서 나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주님께서 나를 영접해주실 그 나라에는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을 것입니다(계21:4). 그 나라에는 밤이 없으며 죄와 저주가 없습니다(계22:3-5). 무엇보다 죄와 죽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살게 될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감격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이 소망으로 가슴 벅찬 감격을 누리며, 그 영광스런 소망 때문에 기쁨으로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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