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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역사하는 교회.....

고린도전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043 추천 수 0 2009.11.19 14:4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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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16:1-9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2·09·21 설교

고린도전서 15장은 성경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말씀 중의 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이렇게 연약한 육신을 입고 율법과 죄와 죽음에 시달리며 살고 있으나, 우리는 장차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영광스럽게 변화된 부활체는 병드는 것이나 고통이나 슬픔이나 늙는 것이 더 이상 없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죄와 죽음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가슴 벅찬 소망입니까?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 부활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들입니다.
  
    다시 땅으로
  우리는 15장에 있는 영광스러운 소망과 승리의 메시지를 듣고 위로를 받았고 감격했으며 기뻐했습니다. 그 영광과 승리가 바로 우리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6장에 들어서면 갑자기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15장에서 하늘의 영광과 소망에 대해서 말했던 바울은 16장에서 헌금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온 기분입니다. 너무나도 은혜롭고 감격스럽고 기쁨이 충만한 하늘에서 문제와 연약함과 죄가 판을 치는 세상으로 다시 내려온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15장으로 그의 편지를 마쳤더라면 더 좋았을 터인데 왜 다시 이 땅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그의 편지를 마치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도는 하늘의 영광과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지만 아직은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요 천국시민이지만 그 나라에 들어가기까지는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늘의 영광과 소망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하늘의 영광과 소망을 놓쳐버리면 세상과 죄에 빠져 성도의 모습을 잃게 되기 쉽습니다. 성도는 또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힘써야 할 성도의 의무를 망각해서도 안됩니다. 만일 하늘의 영광과 소망을 바라보면서 기도만 하고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는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성도의 사명과 의무를 결코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의 영광과 소망은 성도로 하여금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에게 맡겨진 주의 일에 더욱 힘쓰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
  바울은 지금 성도를 위한 연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이 성도들은 곧 예루살렘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대부분 가난했으며, 심한 기근과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나 고린도 교회와 같은 이방교회들에게 그들의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을 보내도록 권면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움 당하고 있던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헌금을 보내는 것은 중요한 몇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이 구제헌금을 통하여 복음의 빛을 갚게 될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나중에 세워진 이방교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교회가 세워졌을 때 목회자와 교사들을 보내어 그들을 가르치며 돌보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이방교회들은 그들의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게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루살렘 교회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이방교회들이 구제헌금을 보내어 그들을 돕게 된다면 모교회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일이 될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시골교회들에게 진 빚이 큽니다.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시골교회 출신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시골교회는 우리의 모교회인 것입니다. 도시교회들이 이렇게 부흥된 것은 전도해서 된 부분도 있지만, 시골교회에서 이사온 성도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도시교회들은 부흥된 반면에 시골교회들은 갈수록 약해지고 어려워져갔습니다. 그래서 자립하지 못하는 교회들이 태반인 것입니다. 도시교회들은 시골교회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시교회들은 시골교회들을 도와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적게 돕고 있습니다. 교회가 넉넉하지 못하지만 할 수만 있으면 더 많이 도와야 합니다.
  둘째로 이것은 교회의 하나됨을 나타내는 일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에 보면 여러 교회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1절), 예루살렘 교회(3절), 마게도냐 교회(4절), 에베소 교회(8절), 아가야에 있는 교회(15절),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19절) … 바울이 이 편지를 쓰던 당시에 이미 교회들이 이렇게 국제적으로 퍼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교회들은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하나라는 것을 어떻게 나타낼 것입니까? 예루살렘 교회는 이미 많은 교사와 목회자들을 파송하여 어린 교회들을 도와줌으로써 교회의 하나됨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방교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것 역시 교회의 하나됨을 나타내는 일이었습니다. 이 모든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구제헌금을 보냈습니다. 요즘은 교회도 많고 교파도 많아서 이 모든 교회들이 하나라는 의식이 대단히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교회들이 극단적인 개교회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예외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 교회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협조해야 합니다. 어려운 교회를 남의 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 일처럼 생각하고 돕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교회의 하나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연보에 대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헌금할 것을 말하면서 사도 바울은 헌금에 대한 중요한 원리 몇 가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2절)라는 구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헌금은 먼저 매주일 첫날에 드려야 합니다. 매주일 첫날은 주일을 가리킵니다. 헌금은 주일에 모일 때마다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헌금이 생활화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렇게 주일마다 헌금을 드리고 있습니다.
  헌금은 또 각 사람이 드려야 합니다. 여유가 있고 부유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헌금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유가 있는 몇몇 성도가 많이 드려서 필요한 만큼의 헌금이 모아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모아진 헌금은 또 한 가지 중요한 의미를 놓쳐버린 것이 됩니다. 헌금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모든 성도들이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러한 정성된 마음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런데 모든 성도들이 정성을 다해 참여하지 않고 몇몇 사람들만 많이 드려서 액수가 찼다고 칩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과 정성된 마음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각 사람이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합니다. 프랑스 어느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오랫동안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 봉사했던 의사가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은퇴하는 의사를 위해 각자 포도주 한 주전자씩을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의사가 보니 통에 든 것이 완전히 물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물을 한 주전자씩 가져왔던 것입니다. 자기 한 사람쯤 물을 가져와도 다른 사람들이 가져온 포도주에 섞이면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헌금이 이렇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각 사람이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 되어야만 합니다.
  헌금을 드리는 액수에 대해서는 이를 얻은 대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구약의 십일조 정신이 계승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헌금은 원칙적으로 재산과 수입에 비례해서 드려야 합니다. 수입이 많은 사람은 당연히 더 많이 드려야 합니다. 수입이 적은 사람은 드리고 싶은 만큼 드릴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에만 이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헌금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헌금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최선을 다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헌금의 관리
  이렇게 모아진 헌금은 특별히 신중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인정한 사람에게'(3절) 헌금을 관리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울 자신이 이 모든 헌금을 모아서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기 위해서 직접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헌금을 가지고 간 사람들은 각 교회에서 보낸 사람들이었습니다. 목사가 헌금을 관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인정한 사람에게 맡겨서 잘 관리하게 해야 합니다. 누가 보아도 투명하고 깨끗하게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아진 헌금은 더 이상 개인의 돈이 아니고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부정한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목적에 올바르게 사용되도록 해야만 합니다.
  
    나를 보내달라!
  사도 바울은 지금 에베소에 있으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는 중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까지는 예루살렘에 가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에베소에서 모든 일이 잘 끝나면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고린도에 들러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만나보고, 또 그들과 함께 얼마동안 지내기를 원했습니다. 이렇게 계획을 잡고 있지만 바울은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습니다(7절). 계획은 자기가 세우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모든 일을 항상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아주 중요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계획하고 결정할 때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이 살아가는 자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나를 나의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습니다(6절). 이 말은 바울이 그의 선교사역을 위해 고린도 교회의 후원을 기대한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마땅히 선교사들을 후원해야 할 의무가 있고, 선교사들은 교회의 후원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가지 못한 선교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선교사를 후원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며 특권입니다. 우리는 선교사들을 후원함으로써 보내는 선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다보니 선교지에 직접 나가서 복음 전하는 일은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선교사들을 후원함으로써 우리는 이 사명에 동참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너희가 나를 보내어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나를 보내어 달라'고 요구하는 선교사들이 많음을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기회와 반대에 직면함
  지금 바울은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에서의 일이 정리되는 대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에 오를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에베소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9절)
  첫째는 에베소에서 복음 전할 기회가 활짝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좀 더 에베소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 반 동안 머무르면서 복음을 전하며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이 유독 에베소에서 이렇게 오랜 기간을 머문 것은 거기서 복음 전할 문이 활짝 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가르친 결과 아시아 전역이 다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행19:10). 성령께서 사도 바울의 에베소 사역을 강력하게 후원해주셨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19:12) 에베소에서 말씀을 배운 사람들이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 등에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복음 전할 기회가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아직 에베소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를 떠날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대적하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의 강력한 반대를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는 말로 표현했습니다(고전15:32). 첫째로 에베소에는 마술을 행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전파되면서 이 악한 세력들이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행19:19) 둘째로는 데메드리오가 이끄는 은장색 조합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은으로 아데미 신전의 모형을 만들어 참배자들에게 팔아 많은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힘있게 전파되자 사람들이 우상숭배에서 돌이킴으로써 그들의 사업이 급격히 기울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바울과 그 일행에게 격노하여 큰 폭동을 일으켰으며, 바울과 그 동료들은 큰 일을 당할 뻔했었습니다(행1:23-41). 이렇게 반대가 심했기 때문에 바울은 에베소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이제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이러한 반대들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더 머물면서 교회를 돌보아야 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교회의 살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여러 가지 상황을 뚫고 계속 확장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넓은 지역에 교회들이 세워지면서 바울을 비롯한 많은 사역자들이 순회하면서, 또는 각 교회에 파송되어 이 교회들을 돌보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에 세워진 교회들에 목회자와 교사들을 파송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교회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힘껏 구제헌금을 모아서 전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맹렬한 반대에 직면했으나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교회의 모습입니까?
  오늘 우리는 창립 3주년을 바로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풍성합니까? 이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더욱 부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힘을 다해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고 선교사들을 후원하며 형제 교회들을 돕는 데 더욱 힘써야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복음을 능력 있게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좋은교회를 가꾸어 가는 데 힘을 다합시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우리가 이 사명을 힘차게 감당하도록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시고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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