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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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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전16:1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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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2·11·16 설교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나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부끄러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모두가 부끄럽게 생각하고 회개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경건하고 선한 삶을 통하여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성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말만 듣다보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들인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정말 믿음 좋고 훌륭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참좋은교회 성도들은 어디서나 모범적이고 자랑스런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를 살펴보면서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던 많은 문제점들을 보았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분쟁이 있었고 교만과 시기와 질투가 심했습니다. 음행이 있었는가 하면 우상숭배에 빠진 자들도 있었습니다. 성도들 사이의 일을 가지고 세상 법정에 가서 싸우는 부끄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성찬을 합당치 않게 먹는 일이 있었고,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고린도 교회에는 착하고 믿음 좋은 성도가 한 명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고린도 교회에 신앙이 성숙되고 충성된 성도들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오늘 우리에게도 좋은 본이 되는 성도들입니다.
스데바나의 집
고린도 교회에서 믿음의 본이 된 성도로 가장 먼저 언급된 사람은 스데바나입니다. 스데바나의 집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15절) 아가야의 첫 열매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아가야는 고린도가 속해 있는 지역의 이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스데바나의 집이 처음으로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이 사실은 사도 바울에게 특별히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로 오기 전에 아덴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덴에서 바울은 그곳 사람들이 헬라철학에 심취해 있는 것과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헬라철학에 조예가 깊었던 바울은 아덴 사람들에게 매우 철학적이고 유식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가 유명한 아레오바고 설교입니다(행17:22-31). 그런데 결과는 신통치 못했습니다.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행17:32-34) 아덴에서 이렇게 실패한 바울은 낙심되고 침체된 가운데 고린도에 오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에 왔을 때 바울은 매우 약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2:3) 그리고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 전하기로 작정했습니다(고전2:2). 이렇게 약한 가운데서 고린도에 와서 전도했을 때 맨 처음에 믿은 사람이 바로 스데바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데바나는 바울에게는 너무나도 고맙고 힘이 되어 준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바나는 고린도 교회의 첫 성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스데바나를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스데바나의 집안 사람들은 믿음이 성숙되고 충성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도를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작정하다'라는 말은 '전념하다' '몰두하다' '헌신하다'라는 뜻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몰두해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자신들의 일들에 몰두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 버는 일에, 또 어떤 사람들은 취미생활에, 그리고 세상 풍조와 쾌락에 몰두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성도를 섬기는 일에, 하나님의 일에 몰두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일주일에 한 두 시간을 주님께 드리는 것으로는 몰두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섬기는 일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이며, 그 일에 우리의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야 몰두한다는 말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주님의 일에, 성도를 섬기는 일에 몰두해 있습니까? 스데바나의 집안 사람들은 성도를 섬기는데 몰두한 사람들,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믿음의 사람들입니까?
목회할 때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섬기는 일에 변덕이 심한 것입니다. 은혜 받고는 죽도록 충성할 것 같이 열심을 내다가 이내 식어져서 포기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믿고 일을 맡겼는데 무책임하게 포기해버리면 얼마나 당황스럽고 곤혹스러운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섬기는 일을 맡았으면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에 몰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섬김의 리더십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과 같이 섬기는 자들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16절). 이것은 섬기는 자들을 지도자로 따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리더십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일찍이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5-28) 교회의 지도자는 섬기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섬김은 교회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우리 교회는 앞으로 좋은 지도자들을 많이 세워야 합니다. 과연 어떤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야 하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섬기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섬김을 받으려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불평과 원망과 섭섭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면 교회가 편할 날이 없게 됩니다. 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교회가 시끄럽고 문제가 끊일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섬기는 일에 몰두하는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성도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은 교회에서 섬기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서 지도자가 될 사람들은 반드시 섬기는 일에 힘쓰는 분들이어야 합니다.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고린도 교회에는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처럼 섬기는 일에 전념하는 성숙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또 스데바나와 더불어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고린도에서 에베소에 있는 바울을 찾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많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바울은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당장 고린도에 달려가서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갈 수가 없었습니다. 에베소에서 복음 전할 기회가 활짝 열려 있었고, 대적하는 자들도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고도 가지 못하는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고 답답했겠습니까? 그런데 고린도 교회로부터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세 사람이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 왔습니다. 바울은 이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온 것을 매우 기뻐했습니다. 바울은 이 사람들을 통해서 고린도 교회의 형편을 자세히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교훈을 주어 고린도 교회로 보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사람들은 바울과 고린도 교회를 연결하는 끈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람들이 고린도 교회의 부족한 것을 보충했으며,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을 시원케 했다고 말했습니다(17-18절).
부족함을 보충해주는 사람
바울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고린도 교회의 부족함을 보충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교회에는 이렇게 부족함을 보충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교회에는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많을 때 서로 부족함을 보충해주는 성도들이 되어야 교회가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목사에게 부족한 것이 있을 때는 성도들이 보충해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목사가 깜박 잊어버리고 어려움 당한 가정에 심방을 가지 못했다 칩시다.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이럴 때 대신 가서 위로해주고 이해를 시켜주는 성도가 있으면 문제가 커지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 목사가 심방도 안 다니고 뭐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하고 공격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목사는 위축이 되고 교회는 은혜가 메마르게 될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봉사하다가 실수를 했다고 칩시다. 이럴 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세라 대신 처리해주고 감싸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그것을 꼬투리 삼아 야단을 치고 흉을 보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서로의 부족함을 보충해주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래야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맘껏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봉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
이 세 사람은 바울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염려하던 사도 바울에게 이 세 사람이 와서 자세한 사정을 말해주고 그 문제들에 대해서 함께 염려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권면과 지시를 듣고 돌아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그들이 돌아가면 고린도 교회의 사정이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되어 마음이 편해졌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바울을 만나고 돌아가서 그들에게 사도 바울의 권면과 지시와 문제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서 와서 도와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들을 통해서 많은 위로를 받았을 것이며, 문제에 대한 답을 듣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람들이 자신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교회에는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는 성도들이 많아야 합니다. 그 사람만 만나면 위로가 되고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속에 있는 이야기도 마음놓고 털어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안심이 됩니다.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힘이 되어줍니다. 내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생각해줍니다. 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은 성도들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너무나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반면에 영 불편하고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 앞에서 말 한 마디라도 실수하면 소문이 온 교회에 퍼져 곤욕을 치르기 때문에 말 한 마디도 마음놓고 할 수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호통을 치거나 흉을 보고 다닙니다. 좋은 일도 늘 부정적으로 봅니다. 기분이 좋았다가도 그 사람만 만나고 나면 마음이 불편해져 버립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늘 낙심케 하고 불편하게 하는 사람입니까?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서로의 부족함을 보충해주는 사람들보다는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는 사람들보다는 불편하고 낙심케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는 그렇게 문제가 많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특별히 서로의 부족함을 보충해주는 일과 남을 시원케 해주는 일을 강조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보충해주며, 서로를 시원케 해주는 성도가 된다면 우리는 정말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알아주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러한 사람들을 알아주라고 말했습니다(18절). 봉사하는 사람들은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자기가 수고한 것을 알아주지 않을 때 섭섭한 마음이 들고 시험에 들게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봉사하는 것은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께서 다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사하는 사람들은 누가 알아주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위의 성도들은 봉사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알아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다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수고와 진실과 피곤함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이해해 주고 격려해주고 칭찬해주어야 합니다. 그의 어려움과 애로사항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목회하는 중에 때로는 실망스럽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위로해주시고 힘을 주시기 때문에 다시 회복되어 일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어떻게 알았는지 어떤 성도가 전화를 해주거나 찾아와 위로를 해줍니다. 그것이 얼마나 고맙고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나는 되도록 성도들이 수고한 것에 대해서 격려하려고 애씁니다. 물론 잊어버리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그냥 지나칠 때는 잊어버린 것이지 일부러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렇게 위로하고 격려할 때 또 조심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다른 사람이 칭찬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 아낌없이 칭찬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며, 그의 사정과 진심을 알아주는 성도들이 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참좋은교회를 세워주시고 그 동안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주셨습니다. 나는 우리 성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모릅니다. 이번에 창립 3주년 기념 행사들을 치르면서 이 사실을 더욱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 어느 교회보다 좋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도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더욱 좋은 교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먼저 배려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 섬기는 일에 전념하고 몰두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들추어내고 비판하며 흉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충해주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 만나도 형제를 시원케 해주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수고와 진심을 알아주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좋은 성도가 되기를 힘쓰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나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부끄러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모두가 부끄럽게 생각하고 회개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경건하고 선한 삶을 통하여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성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말만 듣다보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들인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정말 믿음 좋고 훌륭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참좋은교회 성도들은 어디서나 모범적이고 자랑스런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를 살펴보면서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던 많은 문제점들을 보았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분쟁이 있었고 교만과 시기와 질투가 심했습니다. 음행이 있었는가 하면 우상숭배에 빠진 자들도 있었습니다. 성도들 사이의 일을 가지고 세상 법정에 가서 싸우는 부끄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성찬을 합당치 않게 먹는 일이 있었고,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고린도 교회에는 착하고 믿음 좋은 성도가 한 명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고린도 교회에 신앙이 성숙되고 충성된 성도들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오늘 우리에게도 좋은 본이 되는 성도들입니다.
스데바나의 집
고린도 교회에서 믿음의 본이 된 성도로 가장 먼저 언급된 사람은 스데바나입니다. 스데바나의 집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15절) 아가야의 첫 열매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아가야는 고린도가 속해 있는 지역의 이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스데바나의 집이 처음으로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이 사실은 사도 바울에게 특별히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로 오기 전에 아덴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덴에서 바울은 그곳 사람들이 헬라철학에 심취해 있는 것과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헬라철학에 조예가 깊었던 바울은 아덴 사람들에게 매우 철학적이고 유식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가 유명한 아레오바고 설교입니다(행17:22-31). 그런데 결과는 신통치 못했습니다.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행17:32-34) 아덴에서 이렇게 실패한 바울은 낙심되고 침체된 가운데 고린도에 오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에 왔을 때 바울은 매우 약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2:3) 그리고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 전하기로 작정했습니다(고전2:2). 이렇게 약한 가운데서 고린도에 와서 전도했을 때 맨 처음에 믿은 사람이 바로 스데바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데바나는 바울에게는 너무나도 고맙고 힘이 되어 준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바나는 고린도 교회의 첫 성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스데바나를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스데바나의 집안 사람들은 믿음이 성숙되고 충성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도를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작정하다'라는 말은 '전념하다' '몰두하다' '헌신하다'라는 뜻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몰두해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자신들의 일들에 몰두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 버는 일에, 또 어떤 사람들은 취미생활에, 그리고 세상 풍조와 쾌락에 몰두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성도를 섬기는 일에, 하나님의 일에 몰두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일주일에 한 두 시간을 주님께 드리는 것으로는 몰두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섬기는 일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이며, 그 일에 우리의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야 몰두한다는 말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주님의 일에, 성도를 섬기는 일에 몰두해 있습니까? 스데바나의 집안 사람들은 성도를 섬기는데 몰두한 사람들,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믿음의 사람들입니까?
목회할 때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섬기는 일에 변덕이 심한 것입니다. 은혜 받고는 죽도록 충성할 것 같이 열심을 내다가 이내 식어져서 포기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믿고 일을 맡겼는데 무책임하게 포기해버리면 얼마나 당황스럽고 곤혹스러운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섬기는 일을 맡았으면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에 몰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섬김의 리더십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과 같이 섬기는 자들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16절). 이것은 섬기는 자들을 지도자로 따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리더십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일찍이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5-28) 교회의 지도자는 섬기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섬김은 교회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우리 교회는 앞으로 좋은 지도자들을 많이 세워야 합니다. 과연 어떤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야 하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섬기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섬김을 받으려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불평과 원망과 섭섭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면 교회가 편할 날이 없게 됩니다. 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교회가 시끄럽고 문제가 끊일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섬기는 일에 몰두하는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성도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은 교회에서 섬기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서 지도자가 될 사람들은 반드시 섬기는 일에 힘쓰는 분들이어야 합니다.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고린도 교회에는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처럼 섬기는 일에 전념하는 성숙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또 스데바나와 더불어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고린도에서 에베소에 있는 바울을 찾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많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바울은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당장 고린도에 달려가서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갈 수가 없었습니다. 에베소에서 복음 전할 기회가 활짝 열려 있었고, 대적하는 자들도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고도 가지 못하는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고 답답했겠습니까? 그런데 고린도 교회로부터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세 사람이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 왔습니다. 바울은 이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온 것을 매우 기뻐했습니다. 바울은 이 사람들을 통해서 고린도 교회의 형편을 자세히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교훈을 주어 고린도 교회로 보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사람들은 바울과 고린도 교회를 연결하는 끈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람들이 고린도 교회의 부족한 것을 보충했으며,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을 시원케 했다고 말했습니다(17-18절).
부족함을 보충해주는 사람
바울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고린도 교회의 부족함을 보충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교회에는 이렇게 부족함을 보충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교회에는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많을 때 서로 부족함을 보충해주는 성도들이 되어야 교회가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목사에게 부족한 것이 있을 때는 성도들이 보충해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목사가 깜박 잊어버리고 어려움 당한 가정에 심방을 가지 못했다 칩시다.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이럴 때 대신 가서 위로해주고 이해를 시켜주는 성도가 있으면 문제가 커지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 목사가 심방도 안 다니고 뭐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하고 공격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목사는 위축이 되고 교회는 은혜가 메마르게 될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봉사하다가 실수를 했다고 칩시다. 이럴 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세라 대신 처리해주고 감싸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그것을 꼬투리 삼아 야단을 치고 흉을 보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서로의 부족함을 보충해주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래야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맘껏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봉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
이 세 사람은 바울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염려하던 사도 바울에게 이 세 사람이 와서 자세한 사정을 말해주고 그 문제들에 대해서 함께 염려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권면과 지시를 듣고 돌아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그들이 돌아가면 고린도 교회의 사정이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되어 마음이 편해졌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바울을 만나고 돌아가서 그들에게 사도 바울의 권면과 지시와 문제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서 와서 도와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들을 통해서 많은 위로를 받았을 것이며, 문제에 대한 답을 듣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람들이 자신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교회에는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는 성도들이 많아야 합니다. 그 사람만 만나면 위로가 되고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속에 있는 이야기도 마음놓고 털어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안심이 됩니다.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힘이 되어줍니다. 내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생각해줍니다. 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은 성도들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너무나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반면에 영 불편하고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 앞에서 말 한 마디라도 실수하면 소문이 온 교회에 퍼져 곤욕을 치르기 때문에 말 한 마디도 마음놓고 할 수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호통을 치거나 흉을 보고 다닙니다. 좋은 일도 늘 부정적으로 봅니다. 기분이 좋았다가도 그 사람만 만나고 나면 마음이 불편해져 버립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늘 낙심케 하고 불편하게 하는 사람입니까?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서로의 부족함을 보충해주는 사람들보다는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는 사람들보다는 불편하고 낙심케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는 그렇게 문제가 많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특별히 서로의 부족함을 보충해주는 일과 남을 시원케 해주는 일을 강조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보충해주며, 서로를 시원케 해주는 성도가 된다면 우리는 정말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알아주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러한 사람들을 알아주라고 말했습니다(18절). 봉사하는 사람들은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자기가 수고한 것을 알아주지 않을 때 섭섭한 마음이 들고 시험에 들게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봉사하는 것은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께서 다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사하는 사람들은 누가 알아주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위의 성도들은 봉사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알아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다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수고와 진실과 피곤함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이해해 주고 격려해주고 칭찬해주어야 합니다. 그의 어려움과 애로사항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목회하는 중에 때로는 실망스럽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위로해주시고 힘을 주시기 때문에 다시 회복되어 일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어떻게 알았는지 어떤 성도가 전화를 해주거나 찾아와 위로를 해줍니다. 그것이 얼마나 고맙고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나는 되도록 성도들이 수고한 것에 대해서 격려하려고 애씁니다. 물론 잊어버리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그냥 지나칠 때는 잊어버린 것이지 일부러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렇게 위로하고 격려할 때 또 조심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다른 사람이 칭찬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 아낌없이 칭찬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며, 그의 사정과 진심을 알아주는 성도들이 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참좋은교회를 세워주시고 그 동안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주셨습니다. 나는 우리 성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모릅니다. 이번에 창립 3주년 기념 행사들을 치르면서 이 사실을 더욱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 어느 교회보다 좋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도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더욱 좋은 교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먼저 배려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 섬기는 일에 전념하고 몰두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들추어내고 비판하며 흉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충해주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 만나도 형제를 시원케 해주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수고와 진심을 알아주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좋은 성도가 되기를 힘쓰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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