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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전16:1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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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이정원 2002·11·16 설교
우리 교회는 말없이 봉사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지난 창립 3주년 기념 행사를 치를 때도 수고한 분들이 한 두 분이 아닙니다. 모두들 기쁨으로 최선을 다해서 봉사했습니다. 물론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하여 불편한 부분들도 상당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에 대해서 불평하는 성도들은 한 사람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이만하면 정말 좋은 교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만족할 수 없습니다. 더욱 좋은 교회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주님 보시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모범적인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아름다운 봉사자들
그렇게 문제 많고 어지러웠던 고린도 교회에도 정말 아름다운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과 브드나도, 아가이고 등이었습니다.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은 성도를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는 고린도 교회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주었으며, 바울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시원케 해준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처럼 문제가 많은 교회에 이렇게 아름답게 봉사하는 성도들이 있었다는 것은 특별히 귀한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하고 있을 때 믿음을 지키며 모범적으로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우리 교회에 이렇게 아름다운 봉사자들이 많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성도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성숙되고 아름다운 봉사를 기쁘게 받으시고 축복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가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특별히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언급하고 있습니다(19절). 이 두 사람은 참으로 믿음 좋은 부부였으며, 신약성경에서 헌신된 부부의 대명사가 된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이 부부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기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특별히 안부를 전하는 것일까요? 이 부부는 고린도 교회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복음을 전하고 탈진된 상태로 고린도에 왔을 때 이 부부는 먼저 고린도에 와 있었습니다. AD 49년경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박해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다른 모든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로마로부터 피신했습니다. 그들은 로마를 떠나 고린도로 왔는데, 그 때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행18:1-3) 바울은 천막 짓는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도 바울과 같은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며 업종도 같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울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함께 했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부는 고린도 교회의 초창기부터 바울과 함께 수고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고린도 교회에 관심이 많았을 것이며,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이 편지를 쓸 때 안부를 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 부부가 고린도에서 바울을 어떻게 도왔는지에 대해서 바울은 로마서 16장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3-4)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위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까지도 내놓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은 지금 바울과 함께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갈 때 자기들의 모든 것을 정리해서 바울을 따라갔습니다. 바울의 사역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얼마나 헌신적이고 충성된 사람들입니까?
그 집에 있는 교회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 집에 있는 교회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 집에 있는 교회'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에 교회가 있었단 말입니까? 이 말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자신들의 집을 열어서 교회를 위해 사용했다는 뜻입니다. 이 부부는 로마와 에베소와 고린도에서 교회가 세워지는 데 대단히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교회가 모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교제를 위해서 자신들의 집을 사용하도록 내놓았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대형교회들 중에는 처음에 이렇게 성도 개인의 집에서 시작된 교회들이 많습니다. 미처 예배당을 마련하지 못했던 시절에 자기들의 집을 예배장소로 내놓았던 것입니다. 거실에 있는 가재도구들을 아예 다 팔아치우고 예배장소로 내놓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이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여 예배당을 마련했을 때도 이 부부는 자기들의 집을 성도들의 교제와 모임을 위해 내놓았습니다. 그 가정은 성도들을 위해 항상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집에서는 늘 성도들이 함께 모이곤 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모임을 가리켜서 '그 집에 있는 교회'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런 헌신된 가정이 많기를
오늘 우리 교회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같은 믿음 좋은 부부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는 아직도 남편이 믿지 않아서 안타까워하는 여성도들이 많습니다. 맘껏 신앙생활을 하고 싶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싶은데 남편이 믿지 않아서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남편이 성숙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 충성하기를 원하는데 아내가 따라주지를 못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갈등과 아쉬움과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부부가 같은 믿음을 가지고, 같은 열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더욱 기도하고 힘써야겠습니다.
부부가 같은 믿음과 비전을 가지고 사는 것은 정말 큰 축복입니다. 보통 부부들은 자녀들 걱정과 먹고사는 걱정을 함께 나눕니다. 그것도 소박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부부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어떻게 충성하며 헌신할 것인가를 함께 나눕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주신 은혜들을 함께 나눕니다. 부부의 신앙이 성숙해갈수록 그들의 대화는 은혜로 풍성해지고 감사와 감격이 넘치게 됩니다. 이러한 부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얼마나 복되고 귀한 일입니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가정들입니까?
나는 우리 교회에 이렇게 아름답고 복된 가정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아직 믿음에 열심이 부족한 남편들은 분발하기 바랍니다. 인생을 가장 값지고 보람 있게 사는 비결은 부부가 함께 성숙되고 충성된 믿음을 갖는 데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청년들은 결혼의 첫 번째 목적을 부부가 함께 하나님께 충성하는 데 두어야 합니다. 따라서 반드시 믿음 좋은 배우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같은 믿음과 비전을 가지고 맘껏 하나님을 섬기며 충성하는 복된 가정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정교회
초대교회에는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들이 많았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행2:46-47) 본문에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에 있는 교회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헌신과 봉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집에서 모이는 일이 많았던 것은 예배당이나 소그룹으로 모일만한 장소가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자기의 집을 열어 성도들이 함께 모이며 교제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우리 교회처럼 시설이 부족한 교회는 성도들이 소그룹으로 모일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복을 주시는 중에 있기 때문에 머지 않아 좀 더 넓고 여유 있는 공간이 마련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교회가 시설을 잘 갖춘다 해도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반면에 요즘은 과거에 비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집들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소그룹으로 모이는 일이 매우 편리해졌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집을 나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교회와 사랑하는 형제들을 위해 우리의 집을 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요즘에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는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가정교회입니다. 현재의 구역을 가정교회로 전환시키려고 합니다. 지금의 구역은 여성도들이 주로 모이고, 남성 구역은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가운데 있습니다. 가정교회는 구역을 가정별로 묶어서 모입니다. 가정교회의 지도자는 가장이 되고, 가장을 도와 협력하는 총무, 찬양담당자, 재정담당자 등을 둡니다. 가정단위로 모이기 때문에 모이는 시간은 주로 밤 시간이 됩니다. 벌써 이 가정교회를 실시하는 교회들이 있는데, 너무나도 은혜롭고 만족스럽게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교회를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같은 헌신된 부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을 받아 성숙된 믿음이 준비되어야 하며, 다른 성도들을 가족처럼 잘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자기의 가정을 열어 성도들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가정교회가 얼마나 은혜롭고 분위기가 좋던지 교회에는 안나오는 사람도 가정교회에는 출석한다고 합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머지 않아 교회에도 출석하게 됩니다. 이 가정교회에서 가장 은혜를 받는 사람은 가장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는 가장과 총무라고 합니다. 내년부터 가정교회를 시작할 수 있도록 모든 성도들이 마음의 준비를 해두기를 바랍니다. 특히 가정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기로 작정하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같은 부부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사도 바울은 이렇게 아름다운 봉사자들에 대해서 언급한 후에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0절). '거룩한 입맞춤'은 초대교회에서 애정을 나타내는 관습이었습니다. 특히 성찬이 끝난후 형제를 사랑하는 표시로 입맞춤이 교환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입맞춤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나타내는 인사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이 편지가 고린도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읽혀질 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서로 용서와 사랑의 표시로써 거룩한 입맞춤을 교환할 것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이 거룩한 입맞춤은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따뜻한 악수와 인사말로 그것을 나타냅니다. 특히 예배를 드리고 돌아갈 때 성도들이 함께 나누는 인사는 거룩한 입맞춤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섭섭함이나 유감을 가지고 있었다면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은 성도답게 그 모든 것을 용서하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살았던 것에 대해서도 미안한 마음과 더욱 사랑하기를 다짐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어야 합니다. 예배를 마치면 서둘러 돌아가지 말고 성도들과 함께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경고
22절에는 두 가지 경고가 나옵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왜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될까요?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통치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요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행4:12).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거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히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만일 그들이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그들이 사실상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며, 그런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게도 두려운 경고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인의 모습을 가지고 산다해도, 만일 우리가 끝까지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죄를 버리며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가 됩시다.
두 번째 경고는 "주께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인사였습니다. 그들은 아람어로 '마라나다'라고 인사했습니다. 이 말은 초대교회 시대에 주님께서 속히 재림하실 것에 대한 간절히 열망을 나타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을 갈망하는 이러한 열망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은 신실한 성도들에게는 더 없는 위로와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하며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가장 두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불순종하며 범죄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로 이 말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에게는 주님의 재림이 위로와 축복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큰 두려움이 되겠습니까?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믿음에 굳게 서서 순종하며 충성함으로써 이제 곧 다시 오실 주님을 큰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제 곧 오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있게 될 징조들이 지금 너무나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충성되게 섬기는 아름다운 봉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눈물을 씻겨주시며 영광스런 상을 주실 것입니다. 이제 곧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말없이 봉사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지난 창립 3주년 기념 행사를 치를 때도 수고한 분들이 한 두 분이 아닙니다. 모두들 기쁨으로 최선을 다해서 봉사했습니다. 물론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하여 불편한 부분들도 상당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에 대해서 불평하는 성도들은 한 사람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이만하면 정말 좋은 교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만족할 수 없습니다. 더욱 좋은 교회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주님 보시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모범적인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아름다운 봉사자들
그렇게 문제 많고 어지러웠던 고린도 교회에도 정말 아름다운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과 브드나도, 아가이고 등이었습니다.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은 성도를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는 고린도 교회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주었으며, 바울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시원케 해준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처럼 문제가 많은 교회에 이렇게 아름답게 봉사하는 성도들이 있었다는 것은 특별히 귀한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하고 있을 때 믿음을 지키며 모범적으로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우리 교회에 이렇게 아름다운 봉사자들이 많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성도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성숙되고 아름다운 봉사를 기쁘게 받으시고 축복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가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특별히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언급하고 있습니다(19절). 이 두 사람은 참으로 믿음 좋은 부부였으며, 신약성경에서 헌신된 부부의 대명사가 된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이 부부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기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특별히 안부를 전하는 것일까요? 이 부부는 고린도 교회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복음을 전하고 탈진된 상태로 고린도에 왔을 때 이 부부는 먼저 고린도에 와 있었습니다. AD 49년경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박해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다른 모든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로마로부터 피신했습니다. 그들은 로마를 떠나 고린도로 왔는데, 그 때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행18:1-3) 바울은 천막 짓는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도 바울과 같은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며 업종도 같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울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함께 했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부는 고린도 교회의 초창기부터 바울과 함께 수고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고린도 교회에 관심이 많았을 것이며,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이 편지를 쓸 때 안부를 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 부부가 고린도에서 바울을 어떻게 도왔는지에 대해서 바울은 로마서 16장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3-4)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위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까지도 내놓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은 지금 바울과 함께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갈 때 자기들의 모든 것을 정리해서 바울을 따라갔습니다. 바울의 사역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얼마나 헌신적이고 충성된 사람들입니까?
그 집에 있는 교회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 집에 있는 교회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 집에 있는 교회'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에 교회가 있었단 말입니까? 이 말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자신들의 집을 열어서 교회를 위해 사용했다는 뜻입니다. 이 부부는 로마와 에베소와 고린도에서 교회가 세워지는 데 대단히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교회가 모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교제를 위해서 자신들의 집을 사용하도록 내놓았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대형교회들 중에는 처음에 이렇게 성도 개인의 집에서 시작된 교회들이 많습니다. 미처 예배당을 마련하지 못했던 시절에 자기들의 집을 예배장소로 내놓았던 것입니다. 거실에 있는 가재도구들을 아예 다 팔아치우고 예배장소로 내놓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이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여 예배당을 마련했을 때도 이 부부는 자기들의 집을 성도들의 교제와 모임을 위해 내놓았습니다. 그 가정은 성도들을 위해 항상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집에서는 늘 성도들이 함께 모이곤 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모임을 가리켜서 '그 집에 있는 교회'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런 헌신된 가정이 많기를
오늘 우리 교회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같은 믿음 좋은 부부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는 아직도 남편이 믿지 않아서 안타까워하는 여성도들이 많습니다. 맘껏 신앙생활을 하고 싶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싶은데 남편이 믿지 않아서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남편이 성숙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 충성하기를 원하는데 아내가 따라주지를 못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갈등과 아쉬움과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부부가 같은 믿음을 가지고, 같은 열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더욱 기도하고 힘써야겠습니다.
부부가 같은 믿음과 비전을 가지고 사는 것은 정말 큰 축복입니다. 보통 부부들은 자녀들 걱정과 먹고사는 걱정을 함께 나눕니다. 그것도 소박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부부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어떻게 충성하며 헌신할 것인가를 함께 나눕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주신 은혜들을 함께 나눕니다. 부부의 신앙이 성숙해갈수록 그들의 대화는 은혜로 풍성해지고 감사와 감격이 넘치게 됩니다. 이러한 부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얼마나 복되고 귀한 일입니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가정들입니까?
나는 우리 교회에 이렇게 아름답고 복된 가정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아직 믿음에 열심이 부족한 남편들은 분발하기 바랍니다. 인생을 가장 값지고 보람 있게 사는 비결은 부부가 함께 성숙되고 충성된 믿음을 갖는 데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청년들은 결혼의 첫 번째 목적을 부부가 함께 하나님께 충성하는 데 두어야 합니다. 따라서 반드시 믿음 좋은 배우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같은 믿음과 비전을 가지고 맘껏 하나님을 섬기며 충성하는 복된 가정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정교회
초대교회에는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들이 많았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행2:46-47) 본문에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에 있는 교회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헌신과 봉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집에서 모이는 일이 많았던 것은 예배당이나 소그룹으로 모일만한 장소가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자기의 집을 열어 성도들이 함께 모이며 교제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우리 교회처럼 시설이 부족한 교회는 성도들이 소그룹으로 모일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복을 주시는 중에 있기 때문에 머지 않아 좀 더 넓고 여유 있는 공간이 마련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교회가 시설을 잘 갖춘다 해도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반면에 요즘은 과거에 비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집들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소그룹으로 모이는 일이 매우 편리해졌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집을 나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교회와 사랑하는 형제들을 위해 우리의 집을 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요즘에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는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가정교회입니다. 현재의 구역을 가정교회로 전환시키려고 합니다. 지금의 구역은 여성도들이 주로 모이고, 남성 구역은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가운데 있습니다. 가정교회는 구역을 가정별로 묶어서 모입니다. 가정교회의 지도자는 가장이 되고, 가장을 도와 협력하는 총무, 찬양담당자, 재정담당자 등을 둡니다. 가정단위로 모이기 때문에 모이는 시간은 주로 밤 시간이 됩니다. 벌써 이 가정교회를 실시하는 교회들이 있는데, 너무나도 은혜롭고 만족스럽게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교회를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같은 헌신된 부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을 받아 성숙된 믿음이 준비되어야 하며, 다른 성도들을 가족처럼 잘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자기의 가정을 열어 성도들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가정교회가 얼마나 은혜롭고 분위기가 좋던지 교회에는 안나오는 사람도 가정교회에는 출석한다고 합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머지 않아 교회에도 출석하게 됩니다. 이 가정교회에서 가장 은혜를 받는 사람은 가장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는 가장과 총무라고 합니다. 내년부터 가정교회를 시작할 수 있도록 모든 성도들이 마음의 준비를 해두기를 바랍니다. 특히 가정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기로 작정하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같은 부부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사도 바울은 이렇게 아름다운 봉사자들에 대해서 언급한 후에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0절). '거룩한 입맞춤'은 초대교회에서 애정을 나타내는 관습이었습니다. 특히 성찬이 끝난후 형제를 사랑하는 표시로 입맞춤이 교환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입맞춤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나타내는 인사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이 편지가 고린도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읽혀질 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서로 용서와 사랑의 표시로써 거룩한 입맞춤을 교환할 것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이 거룩한 입맞춤은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따뜻한 악수와 인사말로 그것을 나타냅니다. 특히 예배를 드리고 돌아갈 때 성도들이 함께 나누는 인사는 거룩한 입맞춤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섭섭함이나 유감을 가지고 있었다면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은 성도답게 그 모든 것을 용서하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살았던 것에 대해서도 미안한 마음과 더욱 사랑하기를 다짐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어야 합니다. 예배를 마치면 서둘러 돌아가지 말고 성도들과 함께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경고
22절에는 두 가지 경고가 나옵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왜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될까요?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통치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요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행4:12).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거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히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만일 그들이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그들이 사실상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며, 그런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게도 두려운 경고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인의 모습을 가지고 산다해도, 만일 우리가 끝까지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죄를 버리며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가 됩시다.
두 번째 경고는 "주께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인사였습니다. 그들은 아람어로 '마라나다'라고 인사했습니다. 이 말은 초대교회 시대에 주님께서 속히 재림하실 것에 대한 간절히 열망을 나타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을 갈망하는 이러한 열망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은 신실한 성도들에게는 더 없는 위로와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하며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가장 두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불순종하며 범죄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로 이 말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에게는 주님의 재림이 위로와 축복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큰 두려움이 되겠습니까?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믿음에 굳게 서서 순종하며 충성함으로써 이제 곧 다시 오실 주님을 큰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제 곧 오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있게 될 징조들이 지금 너무나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충성되게 섬기는 아름다운 봉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눈물을 씻겨주시며 영광스런 상을 주실 것입니다. 이제 곧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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