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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에 밀렸을 때

사도행전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268 추천 수 0 2009.11.28 17: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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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4:1-22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어떤 일을 하다가 힘으로 밀렸을 때 어떻게 합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사도들이 말씀을 전하다가 거대한 힘에 밀린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당시 성령이 임하시고 하루에 3000명이 주님을 믿고 주님의 제자가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성도들의 삶에는 생기가 돌았을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기가 얼마나 즐겁고 재미가 있었겠습니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40여년 동안 앉은뱅이로 있던 자가 일어났습니다. 사도들은 신이 났을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호사다마라고 이 때 찬물을 끼얻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힘있는 자들이 그들의 신앙활동을 저지하였습니다. 말씀 전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1절에는 제사장, 성전맡은 자(성전내 치안과 경비 담당), 사두개인들, 5절에는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입니다. 70인으로 구성된 산해드린 공회원들입니다. 유대교 최고의 재판 기관으로 사형권만 허락되어 있지 않고 종교 민사 모든 문제를 처리합니다. 6절에는 대제사장 안나스(9년 수행, 예수님 처형에 앞장 섬 요18:13)와 가야바와 요한 알렉산더와 및 대 제사상의 문중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강력한 힘있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힘으로 사도들의 활동을 저지하였습니다. 1)백성들을 가르치고 예수를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전하는 것을 싫어하였습니다(2). 특별히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자신들의 사상과는 다른 것입니다. 자신들의 일처리 방식과 자신들의 계획과는 다른 것입니다. 2)사도들의 권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7). 3)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못하게 하였습니다(18). 4)감옥에 가두기도 하였습니다(3).
만약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집안 일을 하는데 시어머니의 권세로 매사 며느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반대합니다. 직장에서 일을하는데 매사 부장의 권세로 일을 못하게 합니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힘있는 자들의 힘에 밀려 하고자 하는 것을 못합니다. 아이들을 잘 기르려고 하는데 거대하게 밀려오는 세속 문화에 어찌할 수 없습니다. 힘으로 밀렸습니다.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거대한 반대 세력이 힘으로 밀어 부칩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때 사도들은 어떻게 합니까?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이 밀렸을 때 어떻게 합니까?

1. 힘에 밀렸을 때 예수님만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사명을 이루어야 합니다(8-22).
힘있는 자들이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고 산해드린 공회 앞에 모아 놓고 심문을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때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사도들도 예수님처럼 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위협적으로 "무슨 권세와 누구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7)"라고 심문합니다. 그 때 사도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거대한 힘 앞에 무기력하게 쓰러졌습니까? 과거 그들은 힘없이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받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그들은 세상적인 힘 앞에 무력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자생력을 가졌습니다. 당당하게 증언합니다. 병자를 낳게 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10). 1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으로 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한 때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담대해졌습니다. 예수 이름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하니까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체험을 한 사람들이니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하지 않겠습니까? 요1서 2장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예수 이름으로 죄용서를 받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아냅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예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가 일어납니다. 사도행전4장30절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구할 때 응답을 받습니다. 요한복음14장14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이 예수님을 거대한 힘 앞에서 밀린다고 어떻게 포기하겠습니까? 그들의 힘이 아무리 거대하다하여도 예수님의 힘에 비길 수 있습니까?
질병의 힘에 밀리고 있습니까? 걱정의 힘에 밀리고 있습니까? 염려의 힘에 밀리고 있습니까? 죄의 힘에 밀리고 있습니까? 죽음의 힘에 밀리고 있습니까? 돈의 힘에 밀리고 있습니까? 자연의 힘 앞에 밀리고 있습니까? 권력의 힘 앞에 밀리고 있습니까? 명예의 힘, 외모의 힘 앞에 밀리고 있습니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질병아, 죽음아, 걱정아, 염려야, 죄야 물러가라고 외쳐 보십시오. 우리 예수님의 이름 앞에 그 어떤 힘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그 예수님의 이름에 대하여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잇는 사랑을 그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아름 다운 보석..."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예수님의 증거되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들을 다시 사도들을 불렀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못하도록 합니다. 그 때 그들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9-20절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듭니까? 저는 골리앗 앞에 서있는 다윗을 말을 기억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을 들어갈 때 갈렙과 여호수아를 생각했습니다. 골리앗 거대한 힘 앞에 있습니다. 힘의 경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호랑이 앞에 있는 쥐와 같습니다. 블레셋의 힘 앞에서 백성들이 벌벌 떨고 있을 때 다윗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다윗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삼상 17:45-47)"
가나안 땅을 앞에 놓고 모두가 부정적인 말을 하며 모세를 원망하고 떨고 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민 14:8-9)"
힘겨운 힘이 있습니까? 넘어야 할 높은 담이 있습니까? 가야할 먼 길이 있습니까? 힘에 밀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입니까? 그것들은 밥에 불과합니다. 만약 골리앗이 없었다면 어떻게 다윗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골리앗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을 보시십오. 꿈을 꾸었습니다. 형제들이 부모가 자신에게 절하는 꿈입니다. 그는 그것이 비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꼭 이루고 가야할 사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루어야할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힘에 밀렸습니다. 형들의 힘에 의해 인신 매매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 가서 권력의 힘에 밀려 억울하게 감옥에 갔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꿈을 포기했을까요? 요셉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이루고야 말았습니다.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바람이 새차게 불어오면 풍력 발전소에는 더욱 많은 발전량을 가져옵니다. 파도 타기를 하는 사람은 큰 파도가 오기를 오히려 기대하고 있습니다. 시련은 우리에게 기회입니다. 발전의 기회, 향상의 기회, 재도약의 기회, 변화의 기회, 성숙의 기회입니다. 한나에게 있어서 힘있는 부닌나는 그를 더욱 기도하게 합니다. 만약 브닌나가 없었다면 한나란 인물은 그렇게 빛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브닌나가 없이 어떤게 한나가 빛날 수 있겠습니까? 보디발의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요셉이 감옥에 갔던 것이고 그 감옥이 있었기 때문에 국무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힘이 없다고 무기력하게 주저 앉지 마십시오. 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생의 산들을 넘어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2. 힘에 밀렸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23-31).
오늘 읽은 본문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1장에 120명입니다. 2장 41절 보면 제자의 수가 3000명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믿는 자의 수가 남자만 약 5천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되겠습니까? 적어도 2만은 넘을 것입니다. 적은 수가 아닙니다.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서울 역, 청화대에 가서 대모할 수 있습니다. 집단 파업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택한 방식을 무엇입니까?(24) 힘을 합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슨 기도를 드렸습니까? 4가지입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1)위협함을 하감해 달라는 것입니다. (2)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3)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4)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직접 대항하지 말아야 합니다. 힘겨울 때는 힘으로 밀릴 때는 핍박이 있고 괴로움이 있을 때는 기도하라는 신호로 알아야 합니다. 더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신호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기도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기도하니까 성령의 권능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말씀을 전할 때 각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 말로 말씀을 알아 듣는 신비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그들이 기도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31) 외적인 기적이 일어납니다. 냇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여러분의 생애에도 이런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가 거대한 힘 앞에 먼저 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어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 1:4-5)"
모세도, 다윗도, 에스더도, 예레미야, 에스겔, 엘리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다하여도 낙공불낙같은 성이 앞에 버티고 있다 하여도 기도하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7)"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실망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방황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끓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
왜 우리가 기도합니까? 우리 하나님이 힘의 근원이시고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면 우리에게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엘빈 토플러가 쓴 "권력의 이동(power Shift)"에서는 권력의 원천은 힘의 원천을 폭력. 부. 지식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폭력은 저품질적권력(Low-quality power)이라고 했고, 부는 중품질적 권력(medium-quality power) 지식을 고품질적 권력(high-quality power)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베스트 하이 퀄리티 파우어는 하나님의 힘입니다. 그는 이것을 몰랐습니다. 이사야 40장 27절을 보십시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 40:27-31)
기도의 사람 다윗은 어떤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시 18:1-3)"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서서 우리를 도와 주시길을 원합니다.
영국에 래클 경은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헨델의 메시아를 연주하곤 했답니다. 한번은 메시아 오라토리오 중에 절정이라고 볼 수 있는 할렐루야 합창 후에 나오는 소프라노 아리아 “내 주는 살아계고”라는 곡을 소프라노 가수가 부르는데 정확한 음정과 박자. 아름다운 음색과 감정표현 그리고 적절한 호흡을 조절해 가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많은 청중이 “야. 참 잘한다”하면서 듣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래클 경이 갑자기 지휘봉을 멈추고 노래를 중단시켰답니다. 부르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오케스트라 단원들. 심지어 관중들까지 놀라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서로 마주 보았답니다. 이 때 래클 경이 소프라노 가수에게 “너. 정말 내 주가 살아 계신 것을 믿느냐.”그 때 이 가수가 그런 것을 생각이나 했었겠읍니까. 너무 뜻밖의 질문이라 그저 당황해서 “예. 예.”하며 대답했답니다. 래클 경은 “그러면 다시 불러”하면서 지휘를 시작했답니다. 이 때 소프라노 가수는 음정. 음색. 호흡. 박자. 감정같은 것을 생각할 여지도 없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내 주는 살아 계시고.” 이 노래를 듣고 많은 청중들이 아까는 “참 잘한다”고 생각하며 노래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너무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습니까?
힘겨울 때 힘에 밀릴 때 그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구원하는 힘을, 병든 세상을 치료하는 힘을, 무지에서 지혜의 힘을, 무기력에서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절망하는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는 힘을, 썩은 현실을 변혁시키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3. 힘에 밀렸을 때 협동하여 작은 힘으로 큰 힘을 만들어야 합니다(32-37).
사람은 참 이상합니다. 어려울수록 더 힘을 합하여야 할텐데 힘에 밀리면 더 분열되고 뿔뿔히 흩어집니다. 오늘날 나라의 꼴을 보면 한심하지 않습니까?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서로 양보하며 서로 힘을 합해 큰 힘을 만들어야 합니다. 집안이 잘 될 때는 가정 식구들이 모두 하나인 것 같다가고 조금 어려움이 다가오면은 서로 해어지는 것을 봅니다. 공장도 잘 될 때는 하나인 것 같지만 어려워지면 서로의 이익 챙기기에 바쁩니다. 공을 차다 개인기가 없어 힘에 밀리면 팀웍으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작은 힘도 합하며 큰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에 밀리 때 지는 것은 우리의 싸움의 정체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영적 싸움은 근본적으로 누구와의 싸움입니까? 집안 식구와 싸움입니까? 정당끼리의 싸움입니까? 지역끼리의 싸움입니까? 동료와의 싸움입니까? 경쟁사와의 싸움입니까? 에베소서 6장 12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2)"
여기서 혈과 육은 인간을 말합니다. 정사 권세 어둠의 주관자는 정치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과 귀신을 말합니다. 우리의 대상은 영적 인 것입니다. 우리를 괴롭히고 넘어뜨리려는 힘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너무도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말씀하니까 베드로가 그리하지 말라고 만류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베드로의 뺨을 때렸습니까? 힘으로 밀어 붙였습니까?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 16:23)"
베드로 배후에 역사하는 사탄을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까지 "저들은 저들이 하는 것을 모릅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 당할 때 우리가 힘에 밀렸을 때 그 정체를 잘 알아야 합니다. 결국 그것을 통하여 우리의 가정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교회를 무너뜨리고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이들은 힘에 밀렸을 때 어떻게 하였습니까?
(1)우선 마음부터가 한마음 한 뜻이 되었습니다(32).
(2)사랑의 정신에 입각하여 사랑의 공동체를 구현하였습니다(32).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사랑의 공동체인 천국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3)큰 권능을 받아 부활을 증거하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4)핍절한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상호 상승 작용(synergetic)의 원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너지 효과라는 말로 요즈음 사용되고 있습니다. 10마력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실린더 엔진 하나로는 10마력의 힘이 나오지만 10마력의 엔진 여덟 개가 하나의 축에 연결된다면 80마력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승 작용에 따라 285마력의 힘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마12:25)"라 말씀합니다.
협동력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란 협동의 산물입니다. 협동력이 강할수록 힘은 강해지고 협동력이 약할수록 힘은 약해지는 것입니다. 조직의 생명은 협동에 있는 것입니다. 조직이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수인의 협동체계인 것입니다. 아프리카 밀림에서 가장 강한 동물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개미’라고 합니다. 개미들이 떼지어 이동하면 그 길이가 무려 10리나 된다고 합니다. 밀림의 맹수들은 개미떼를 보고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숲으로 도망간다고 합니다. 몸집이 가장 큰 코끼리도 겁을 먹고 사자도 개미가 이동하는 반대 방향으 쏜살같이 달려간다고 합니다. 개미에게 잘못 걸리면 아무리 힘샌 동물도 순식간에 개미의 밥이 된다고 합니다. 맹수들이 개미를 두려워하는 것은 개미가 개인적으로 힘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개미의 무서운 협동심 때문입니다. 개미는 지극히 작은 벌레에 불과하지만 수십만 마리가 힘을 합쳐 코끼리를 공격하면 단 하루만에 앙상한 뼈만 남는다고 합니다.
어려울수록 가족이 더 협동하고 힘에 부칠수록 성도가 더 협동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내부 분열만큼 힘을 빠지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나라 기업의 평균수명이 30년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1백대 기업이 삼십년 동안에 거의 다 망하고, 겨우 16개의 기업만이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미국은 22%가 살아 남았고, 일본은 21%가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적자생존의 냉엄한 법칙이 적용되는 현실 속에서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브라운관을 만들고 있으면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더 큰 원인 중의 하나는 내부 분열입니다. 밖에 있는 적보다 내부에 있는 간첩하나가 더 무서운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철옹성같은 여리고 성도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아이성 전투에 실패하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간의 법죄 때문입니다. 내부 분열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합하여 나아간다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8-9)" 것입니다.
힘에 밀렸을 때 예수님만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사명을 이루고(8-22). 힘에 밀렸을 때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기 위해 기도해여(23-31), 힘에 밀렸을 때 협동하여 작은 힘으로 큰 힘을 만들어냄으로 (32-37)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1)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옵니다(4).
2)힘있는 자들이 인정을 합니다.(13-14,16)
3)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21).
4)성령 충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합니다(31).

우리 성도님의 가정과 우리 성도님의 삶의 현장에 이런 역사가 있기 바랍니다.

힘에 밀렸을 때/행4:1-22/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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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1 에배소서 믿는 것과 아는 것 엡4:13-14  강종수 목사  2009-11-29 3339
2380 사도행전 박해를 받을 때 행8:1-8  김필곤 목사  2009-11-28 2105
2379 사도행전 최후 승리하는 사람 행7:54-60  김필곤 목사  2009-11-28 2879
2378 사도행전 서로 충돌이 있을 때 행6:1-7  김필곤 목사  2009-11-28 2419
2377 사도행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의 모습은 행6:8-15, 7:54-60  김필곤 목사  2009-11-28 2427
2376 사도행전 계속적인 압박이 있을 때 행5:17-42  김필곤 목사  2009-11-28 1925
2375 사도행전 실패가 주는 교훈 행4:36-5:16  김필곤 목사  2009-11-28 2050
» 사도행전 힘에 밀렸을 때 행4:1-22  김필곤 목사  2009-11-28 2268
2373 사도행전 유쾌하게 되는 날 행3:11-26  김필곤 목사  2009-11-28 2562
2372 사도행전 일어나야 할 사람 행3:1-10  김필곤 목사  2009-11-28 2541
2371 로마서 성령님이 간구하십니다. 롬8:26~27  박노열 목사  2009-11-28 1822
2370 예레미야 주여! 우리를 버리지 마소서! 렘14:1~9  박노열 목사  2009-11-28 1730
2369 사무엘상 마음이 괴로운 자여 삼상1:9~18  박노열 목사  2009-11-28 1862
2368 열왕기하 주여 눈을 열어 주소서! 왕하6:14~23  박노열 목사  2009-11-28 2132
2367 로마서 믿음의 법과 죄의 법 롬7:14~23  박노열 목사  2009-11-28 1751
2366 열왕기하 여호와께서 감동하시니... 왕하3:13~20  박노열 목사  2009-11-28 2029
2365 느헤미야 예루살렘을 위하여 느1:4~11  박노열 목사  2009-11-28 1668
2364 사사기 능력을 구한 기도 삿16:28~31  박노열 목사  2009-11-28 2001
2363 사도행전 문제의 시발점과 해결점 행17:16-21  이한규 목사  2009-11-28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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