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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를 받을 때

사도행전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105 추천 수 0 2009.11.28 1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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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8:1-8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순교 열전에 순교하신 김대운 전도사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950년 6.25가 발발 했을 때 평양 장진 교회에 김대운 전도님이 시무하고 있었습니다. 평양에서는 당국의 지시로 교회는 문을 닫게 되었고 기독교인들은 체포되어 끌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김 전도사는 체포당하여 사리원으로 끌려 갔습니다. 악랄한 내무 서원들로부터 회유를 받았습니다. "예수만 믿지 않는다고 하시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가 예수 때문에 죽어야 되겠는가?" 그러나 김 전도사는 신앙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주님을 배반합니까? 주님은 우리를 위해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분을 믿어야 삽니다. 이것이 생명의 비밀입니다." 그때였다. 한 내무 서원이 소리쳤습니다. "저 새끼 혀를 잘라 버려." 몇 사람의 젊은이들이 김전도사에게 달려들어 혀를 늘여 칼로 잘라 버렸습니다. 입에서 피를 토해 내는 김전도사는 말을 할 수 없자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쳐들었습니다. 피는 그 입에서 폭포처럼 솟구쳤습니다. 상관인 듯한 자가 또 한 번 명령했습니다. "저 자식 우리말 듣지 않는 저 귀를 잘라 버려." 젊은이들은 또 다시 달려들어 귀까지 잘랐습니다. 김 전도사는 그래도 지지 않고 십자 성호를 그으며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동양에서 우리나라만큼 순교의 피를 흘린 나라가 없다고 합니다. 대원군 때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고 왜정 때에도 50여명의 목사가 순교했고 6.25 동란에 2,122개의 예배당이 파괴되고 목사만 535명이 순교했다고 합니다. 한국 교회는 이런 순교의 피로 자랐다고 말들을 합니다. 한국 교회 뿐 아닙니다.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약 5천 만명이 순교를 하였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될 당시도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로마의 박해 속에서 어떤 사람은 머리에 기름을 부은 후 불 지른바 되어 순교하였고, 짐승에게 찢기어 디오클레 티아누스 황제 때는 신자가 밀초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은 이런 박해는 없지만 예수믿는 다는 이유 하나로 많은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는데 이런 박해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1. 박해를 받을 때 박해만이 줄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원망하지 말고 그 뜻을 실현해야 합니다.
1)박해를 받을 때 그들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1)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잘되어가고 있을 때입니다. 3000명 5000명 부흥이 되어 갔고 서로 돈을 내어 놓고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성령 충만하였고 날마다 모이기를 힘썼고, 기도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였고, 집과 농토와 정든 사람들을 멀리하고 도망가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왜 예수 믿고 이런 꼴을 당하야하냐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2)사람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을 "스데반 네가 설쳐서 망쳤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적당히 예수 믿지 뭐 잘났다고 성난 바리새인들 앞에서 설교하다 우리까지 이런 어려움을 당하느냐고 원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데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장례를 치르면서 슬퍼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같이 일하다가 조금만 잘못되어도 상대방을 비난하고 그에게 책임을 전가하지만 그들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2)그들은 박해를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실천하였습니다.
고통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흩어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대로 놓아두면 자기들만 행복하게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이곳이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짖자고 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들에게 분부한 말씀은 무엇입니까? 1장 8절을 보십시오.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끼리만 잘 믿고 있지 이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말로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극단적인 방법을 쓰시는 것입니다. 사람 말로 잘 안되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 말고는 그들이 흩어지지 않으니까 박해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박해를 통하여 어떻게 되었습니까? 1절을 보십시오. 사도 외에는 다 흩어졌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무엇을 합니까? 4절보십시오.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3)우리도 박해를 받을 때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 그 뜻을 실현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네덜란드에 암스테르담 옛날 유명한 화가가 있었는데 이 화가는 좋은 그림을 많이 그려서 큰 돈을 벌었답니다. 특별히 유별나게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어요. 한가지 부족한 것은 자식이 없었답니다. 넓은 정원과 좋은 저택에서 아주 화려한 생활을 했습니다. 부러울 것이 없는 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부인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너무 상심돼 가지고 그만 정신없이 여기에 빠져 있는 동안에 재산 다 날려 버렸다고 합니다. 아주 거지가 되었어요. 이렇게 어려워졌을 때 비로소 사랑하는 친구가 "나와 같이 교회 나가자"고 전에 같으면은 그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에 따라 나갔고, 말씀을 듣게 되고, 성경을 읽게 됩니다. 예수의 사랑에 감격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제는 방향을 돌려서 성화를 그렸습니다. 그분이 바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예수'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 등을 그린 램브란트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이런 극단적인 어려움이 없었다면 예수 믿었겠습니까? 유대인들 보십시오. 민족주의 자들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이방인을 지옥의 땔감이나 개로 취급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적 교만이 대단합니다. 민족적 우월감이 대답합니다. 이런 자들이 이런 박해가 없었으면 사마리아로 가겠습니까? 우리가 어려움 당하면 그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뜻을 성취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이 말씀을 믿습니까? 우연한 어려움은 없습니다. 고통 속에는 주님의 뜻이 있습니다.

2. 박해를 받을 때 박해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신앙의 지조를 지켜야 합니다.
1)박해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평범한 때는 사람이 잘 평가되지 않습니다. 위기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해 보아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그들은 예수 믿는 다는 한가지 이유 때문에 논밭을 다 버리고 떠나야 합니다. 사마리아 지방 그들이 가기 싫은 곳입니다. 친구를 떠나야 합니다. 직장이 있으면 직장을 떠나야 합니다. 3절에 보십시오. 사울이 신앙인을 잔멸하려고 하였습니다. 옥에 갇힙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위해 얼마나 헌신된 사람인가? 진정 예수님을 믿는 자들인가?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2)이 때 그들은 신앙의 절개를 지킵니다.
오늘 본문에는 한 사람도 변절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핍박이 무서워서 도망가 개종하여 유대교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흩어져 복음의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가 왜 박해를 받는 것입니까? 우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입니까? 명예를 위해서입니까? 물질을 위해서입니까? 우리가 경건하게 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딤후 3:12)"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벧전 4:19)"
근본적으로는 세상이 우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 15:18)"

3)우리도 박해를 받을 때 박해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신앙의 지조를 지켜야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 때문에 건강하고 잘되고 잘먹고 잘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 때문에 조그만 어려움이 오면 신앙의 정절을 꺽어 버립니다. 돈 몇 푼에 신앙을 팔아 먹고, 체면 때문에 신앙의 지조를 꺽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앙의 정조를 지켜야 합니다.
교회의 감독이었던 순교자 폴리갑은 86세의 고령으로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화형에 처해야 되는데, 집행관이 참으로 난처했습니다. 덕망 높은 어른이요 모든 이에게 존경받는 어른을, 게다가 86세의 고령자를 화형에 처하기엔 웬지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 처형하게 되어 있어 안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하다못해 집행관이 그를 찾아가 설득하려 했다고 합니다. "비참하게 죽을 게 뭐 있습니까? 예수 안 믿겠다고 거짓말 한마디만 하십시오." 딱 한마디 거짓말만 하면 내가 놓아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분은 말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86년 동안 나에게 한번도 거짓을 말씀하신 적이 없는데, 내 어찌 구차한 생을 살겠다고 거짓을 말하겠소, 어서 나를 죽이라" - 그러면서 그는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장작더미에 올라 장렬하게 순교했습니다.
순교자들은 신앙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장렬하게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았습니다.
어제 아는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원주에 교회를 개척하여 지으려고 하는데 성도님들이 1억 4천 만원을 헌금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땅을 사고 건축업자하고 계약을 하여 교회를 짖는데 그 업자가 옛날에 자신이 주일학교를 담당할 때 부장 집사님이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고 신실한 분이어서 안심하고 맡기었는데 완전히 사기를 친 것입니다. 중도금 까지 넘겨 주었는데 도주를 한 것입니다. 알아보니 부인과는 이혼을 하였고 네 교회나 동시에 그렇게 돈을 받고 도주한 것입니다.
세상에 돈 몇푼 받자고 자신과 같이 하나님을 섬겼던 목사까지 속여 먹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시대는 신앙의 지조가 참으로 필요한 때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처럼 예수님 논밭을 잃고 집을 잃고 가족과 이별을 한다고 해도 신앙의 지조만큼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이런 신앙인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가 사육신이나 생육신을 존경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갖은 고초와 회유 가운데서도 한 임금을 섬기는 지조를 굳히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들을 보면서 현실 주의자가 아니라고 누가 비난하겠습니까? 얼마 전에 텔레비전 드라마로 한 바 있는 목민 심서를 쓴 정약용을 욕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약용, 정약전 형제는 천주교인이었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 온다하여도 정절을 지키는 것 때문입니다. 다니엘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3. 박해를 받을 때 박해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며 능력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주를 위해 당하는 박해는 그 결과가 상급입니다.
박해 가운데 복음을 전하자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1) 사람들의 생명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입니다(6).
(2) 사람들의 삶의 질이 변화됩니다(7). 치유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귀신들려 사는 사람들에게 귀신이 쫓겨났습니다. 중풍병자가 일어났습니다. 앉은뱅이가 정상적으로 걷게 되었습니다.
(3) 공동체에 큰 기쁨이 넘쳤습니다(9). 혼자만 기뻐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천대 받던 지역에 기쁨이 넘치는 삶 복음적인 삶의 꽃이 피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2)박해를 두려워하지 않은 성도들은 능력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비굴하게 살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여 생명 구원 사역에 쓰임받습니다. 능력있게 치유의 사역을 감당합니다. 숨어살지 않습니다. 용기있게 살아갑니다.

3) 우리도 박해를 받을 때 박해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며 능력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박해의 끝에는 상급이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 5:11)"
상급이 있습니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눅 6:23)"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 1:7)"
이 세상은 이 세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과 지옥은 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이 땅에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이 땅의 삶의 잠깐이면 끝이 납니다. 영원한 나라가 있습니다. 이 땅의 삶은 영원한 나라에서 상급받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신앙의 성숙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입니다. 축복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박해는 축복의 또다른 얼굴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박해가 온다하여도 이 땅에 사는 동안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물질이 없다고 학식이 없다고 외모가 부족하다고 권세가 없다고 비굴하게 사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주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분을 모시고 사는데 무엇이 부족하고 비굴할 필요가 무엇이 있습니까? 조금 만 돈있는 사람 앞에 가면 머리를 못들고 조아리고 조금만 권력이 있는 사람 앞에 가면 손발이 다 달토록 비는 삶을 살지 말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고 무엇이 부끄러운 것이 있습니까? 능력의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그분이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다 고통당하고 어려움 당할 때 우리 주님께서 멀리 가신 것이 아닙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엔도우 슈사꾸의 「침묵」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 읽어 보았을 것입니다. 소설의 내용을 보면 일본에서 선교하고 있던 크리스토퍼 페레라 신부가 일본 도꾸가와 정권의 고문에 굴복, 배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를 가장 존경했던 제자 3명의 신부가 생명을 걸고 일본으로 잠적해 들어가는 것으로 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 중의 한 명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로드리고 신부입니다. 결국 로드리고 신부도 잡혀 취조를 받게 되는데 교활한 일본인들은 '후미에'라는, 예수님상이 새겨진 동판을 나무판에 붙여 그것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은 살려 주는 고문을 했습니다. 로드리고 신부는 차마 그 '후미에'를 밟고 지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저주저하는 로드리고 신부에게 예수님이 말했습니다.
"나를 밟아라. 나는 본래 밟히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냐? 나를 밟을 때 네 마음이 아플 것이다. 마음으로 아파해 주는 그 사랑만으로 충분하다." 그러자 로드리고 신부는 통분합니다. "주여,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있는 것을 나는 원망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침묵한 것이 아니다. 너와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는 이 구절이 감동적입니다. "내가 침묵한 것이 아니라 너와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순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 왜 침묵합니까를 되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당할 때 침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공통의 현장에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박해를 받을 때
(1)담대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 16:33)
(2)기뻐하고 즐거워 하라고 말씀합니다.
(마5 : 12)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합니다.
(벧전4 :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박해를 받을 때/행8:1-8/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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