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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찬가 (3) 하나님의 성실성

누가복음 이동원 목사............... 조회 수 2487 추천 수 0 2009.11.29 21: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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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54-55 
설교자 : 이동원 목사 
참고 : 지구촌교회 
11세기 독일의 황제 당시에 프로시아 라고도 불렀습니다만 프로시아 황제 가운데 헨리 3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그 왕 노릇 하는데 아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든 것 같아요. 우리가 한 가정에서 가장이나 가정 주부가 되어서 가정을 다스리는 것도 쉽지않죠? 그래서 나라 다스리는데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입니다. 아~그래서 ‘아, 내가 더 이상 이 일을 더 하고 싶지 않다’ 그는 수도사를 동경했습니다. 나도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내 한평생을 좀 기도하면서 보낼 수는 없지 않을까? 그래서 그 당시 유명한 그 수도원에 원장이였든 그 리챠드라는 수도사를 찾아가서 자기가 그 수도원에 입사하고 싶다고, 입사가 아니고 입원이라고 그러나? 수도원에 하여튼 들어오고 싶다고, 자기가 황제 일을 그만 두겠다고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수도사가 한참 그 황제를 계속 쳐다보았대요. 쳐다보더니 ‘황제여, 폐하여! 수도원에 일단 들어오시면 다른 수도사와 마찬가지로 모든 수도원의 계율에 철저하게 복종 해야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 수도원에서 가지는, 수도사들이 지켜야 할 그 계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계율이 뭔줄 아십니까?’ ‘모릅니다. 뭡니까?’ ‘그것을 우리는 순명이라고 합니다. 혹은 순종이라고 합니다.철저하게 순종 햐셔야 되는데 하실 수 있습니까?’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첫번째 계율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황제여 지금 당장 궁궐로, 왕의 보좌로 돌아가서. 나라와 백성을 성실하게 섬겨 주십시요’ 그래서 헨리 3세는 결국 수도원에 들어오지 못하고 다시 궁궐로 돌아갔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그는 열심히 나라를 그 후부터 새로운 심기일전에서 다스리게 되었고 그가 죽었을 때 그가 죽은 무덤의 묘비 문에는 ‘나라와 백성을 성실하게 섬겼든 황제가 여기에 잠들다’ 이런 묘비의 비문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우리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인데 한 해를 살다 보시면 내 가정과 직장 사업의 장에서 힘든 스트레스를 경험하면서 내가 이 자리를 탈출하고 싶다, 더 이상 계속할 여력이 없다, 이런 힘든, 버거운 마음으로서 이 금년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고 있는 성도들이 여러분 가운데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우리가 다시 한번 새로운 한해 우리의 삶의 장으로 다시 돌아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용기를 얻을 수가 있을까요?
저는 이 중요한 교훈을 위해서 다시 마리아의 찬미를 생각해 볼려고 합니다. 조금 전까지 마리아는 지쳐있었고 부끄러워 하고 있었고 절망해 하고 있었고 당황해 하고 있었고 내게는 이제는 앞길이 없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랬든 마리아가 한순간 갑자기 일어나 찬양을 지금 하고있단 말이죠?.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마리아가 하나님을 만난 것 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것 입니다. 마리아의 이 찬미, 유명한 찬미 가운데 보면 마리아가 경험한 하나님의 속성이 여러 가지로 강조되고 있어요.
우선 긍휼의 하나님, 긍휼히 여겨주시는 하나님. 또 하나님의 지혜, 지혜로우신 하나님. 그런가 하면 마리아가 자신의 그 임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이 사건을 통해서 경험한 하나님은 성실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신실성을 그는 경험하게 된 것 입니다. 그것이 마리아로 하여금 그의 절망과 당황의 자리를 박차고서 벌떡 일어나 찬양하는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만들었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오늘이라는 이 답답한 삶의 정황에서 어떻게 저와 여러분들이 이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확인하고 경험할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는 새로운 마음으로서 새해를 향해 걸어갈 수가 있을까요?

첫째로,그렇게 하기를 원하신다면 첫째로 약속의 하나님을 신뢰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약속의 하나님을 신뢰 하셔야 합니다.
이 성경책은 약속의 책이죠? 우리는 구약과 신약이 있는데 구약은 예수님 오시기 전에 약속들이고 신약은 예수님 오신 이후에 그 약속들, 그래서 성경은 언약의 책, 약속의 책입니다. 성경에는 약속이 꽉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약속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경의 약속들을 읽어보시면 뭘 느낍니까? 그 약속가운데 우리의 구원이 있습니다. 그 약속에서 우리의 희망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약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발견합니다. 그렇습니다.이 약속은 우리의 구원이고 축복이고 희망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구원이 내 구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 축복이 내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희망이 나의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신뢰 할 수가 있어야만 하겠다 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기를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히브리서 11장 믿음의장에 11장 6절에 보시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어떻게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오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그리고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뭡니까? 상을 주시는 이 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습니까 여러분?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상급을 경험할 수가 있다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여러분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아브라함 에게 자식을 약속했지만 자식이 안 나오는 거에요.또 자식을 생산할 수 있는 나이의 한계를 이제는 지나쳤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포기 했습니다 사라도 포기했구요. 그런데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서 전능하신 나에게 내가 원한다면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아브라함의 희망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희망이 다시 살아났어요.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드리면서 그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성경에 보시면 그 순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하나님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
우리 기독교 교리 가운데 아주 중심되는 유명한 교리 가운데 하나가, 그 구원에 교리 가운데 핵심이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 소위 이신득의, 이신칭의, ‘Justification by fath alone’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 라는 교리가 있는데 그 첫번째 언급이 여기 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하나님이 이것을 의로 받아주셨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이 항상 일관성이 있었든 것은 아니에요. 아브라함의 믿음이 흔들리기도 했고 그리고 아브라함이 주저앉기도 했고, 그러나 마침내 흔들거렸든 그 믿음의 회의를 넘어서서 다시 한번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순간 성경은 기록하기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하나님이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은 그 순간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확인하면서 그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된 것 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인하고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다시 한번 신뢰하게 된 것 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제기하는 순간이였어요.
마리아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자,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설명을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을? 그것은 절망이죠. 그 사회에서 매장된 것 입니다. 앞날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너를 쓰시는 것이다 라는 사실을 확정시켜 주었을 때 그 약속을 붙드는 순간,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순간 마리아는 절망의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서 갑자기 마리아가 찬양을 시작하는 거에요. 이게 마리아의 찬미거든요.

자, 오늘 본문에 에~ 다시 한번55절 한번 읽어보세요. 54절부터 보시면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자 55절 어떻게 시작됩니까? ‘우리조상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여기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어떤 단어로 바꿀 수가 있을까요?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과 같이, 그렇죠. 말씀 하신 것과 같이, 이 말을 다른 낱말과 바꿀 수가 있다면 우리조상에게 약속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그렇게 하신다. 이것은 약속이였다 그 약속의 실현을 위해서 하나님은 기적의 도구로 나를 쓰신다 그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드리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순간 마리아는 절망을 넘어서서 찬미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거에요.
그렇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오늘이라는 이 답답한 삶의 장에서 우리의 인생이 정말 찬양하며 새로운 내일을 향해서 걸어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드리시고 그리고 약속의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약속의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요.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약속의 하나님을 기다릴 줄 아셔야 합니다. 약속의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자,54절을 다시 보시면요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그 다음에 뭐하시되? ‘기억하시되’ 그랬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신 증거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기억해 주신 사건이 바로 마리아의 새 생명의 잉태 사건이였든 것 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신 것 이다.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잊어버리셨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 최초의 메시아의 약속,물론 그것을 창세기부터 찾을 수가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선택한 백성을 향한 구체적인 최초의 약속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약속하신 거란 말이죠. 너는 복의 근원이 된다 우리를 향한 약속일 뿐만 아니라 그 약속의 핵심은 메시야의 약속이에요.
그를 통해서 천하의 축복이 될 구원의 주님이 오실 것 이다 는 약속이라는 말이죠. 그로부터 2000년이 지나갔어요 무려 2000년이, 그러면 2000년 동안 견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2000년 동안 아무 사건이 안 일어난 거예요. 포기했겠죠. 아,하나님은 그 약속을 잊어버리셨든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든가,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결론을 내렸을 것 입니다. 더구나 그 구약과 신약의 그 사이에는 약 400년의 공간이 있습니다. 진공 기간이 있어요 중간기라고 말하는데 중간기. 그 400년 동안은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이 말씀 하셨다면 그 성경으로 기록되었을 텐데 그 신약과 구약 의 중간기에는 아무런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건 하나님의 침묵의 시간이였어요.
자,하나님이 말씀하지도 않고 침묵으로 견뎌온 세월 400년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결론은 하나였을 것 입니다. ‘하나님은 안계시든가 아니면 우리를 잊어버리신 모양이다’ 실제로 시편에 보시면을 이 대목이 자주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잊으셨는가?하나님은 우리를 잊으셨는가? 우리의 절망, 우리의 답답함을 보시면서도 메시야를 약속하셨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 당신은 어디에 계시나요? 하나님은 우리를 잊어버리셨나요? 그러나 드디어 마리아가 구세주를 잉태하는 그 순간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요 하나님의 간섭임을 천사의 메세지를 통해서 이 마리아가 깨달았든 그 순간 마리아가 뭐라고 찬양을 합니까?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신 사건이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잊어버리지 않은 그 증거가 드디어 나타났다고, 기억하셨다고, 그러나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침묵의 시간을 기다림의 시간을 인내하며 지내야만 했었든 것 입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 기다림이라는 것은 결코 무의미한 기다림이 아니에요. 그 동안에도 목적이 있는 기다림의 시간이였다는 사실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그것을 신약적으로 교리적으로 좀 어렵게 말하면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택한 백성에 대한 성화의 기다림의 시간, 그 백성을 거룩하게 하기위해서 하나님이 그 백성으로 하여금 기다리며 고난을 지나가게 한 시간이였다. 성화의 시간이였다

우리가 에베소서 5장에 보시면 바울 사도가 구원 받은 택함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놀라운 약속을 합니다.그 약속중의 하나는 뭐냐 하면 어느날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앞에,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주시겠다. 자기 앞에, 우리자기는 누구입니까 우리자기는? 우리 자기가 누구에요 우리자기가? 예수님이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그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영광스러운 신부로 세워 주실 그 약속을 하셨어요. 그러나 그 말씀에 앞서서 뭐가 강조되고 있습니까? 에베소서 5장에서 그 부분을 읽어보시면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그 다음에 우리를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주신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느날 주앞에 영광스러운 존재로 세워주기 위해서 주님이 우리를 만드시고 다루시는 시간이 먼저 앞서온다 말이죠. 이것이 성화의 시간입니다. 우리를 빚어서 만드시기 위해서 때로는 고난의 풀무불을 통과하게 하시고 2000년의 시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지내왔든 그 시간 동안에 하나님은 그 백성을 앗수르의 말 발굽아래에 짓밟히게 하시고 때로는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그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하게도 하시고 그리고 파샤에게 그리고 알렉산드가 지배하는 그리스에 의해서 지배함을 당하게 하신 하나님,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들고 있었든 것입니다.
Mold,피조,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에요. 그분이 쓰실 만한 그분이 자랑스러워 할만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자존심 앞을 부수시고 그들을 깍아 만드시며 하나님이 기쁘하시는 영광스러운 백성이 되도록 만드시든 그 하나님, 마리아가 찬미를 하고 예수님을 잉태하든 그 시점도 로마에 의해서 짓밟힘을 당하고 있었든 이 민족,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그 백성을 성화 시켜주기 위한 연단의 시간이였고 기다림의 시간이였든 것 입니다.
그렇다면 그 시간에 불평해서는 안되죠. ‘하나님! 맞습니다. 나를 만드시는군요. 당신이 기뻐하시는 존재로 나를 만든다면 나는 이 시간을 단순한 고난의 시간으로, 불평의 시간으로 삼지않고 이 시간을 자기 연단의 시간, 자기의 성찰의 시간 그리고 자기의 성숙의 시간으로 하나님 앞에 나를 빚어 만드는 시간으로 주님 앞에 나를 엎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를 드리겠습니다’
물론 이 시간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길고 지루한 시간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시간 관념과 우리의 시간 관념이 때로는 다르거든요? 고난을 받을 때 하루가 천년 같아요. 그러나 주님은 아마 천년을 하루같이 여기시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우리의 고난을 지켜보는 주님의 가슴이 편하지는 않으실 것 입니다.
성경에 보시면 그는 아파하며 우리를 지켜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분도 아파하시면서 그의 자비와 긍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면서 그러나 이 시간을 통과해야만 주님 앞에 아름다운 영광스러운 존재로 세워져야 할 우리의 모습을 보시며 그분이 기다리신다면 우리도 저와 여러분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고 내 인생의 고난의 시간을 잘 견디고 기다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약속의 하나님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새해를 영광스럽게 부딪혀 가고 또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기위해서는 세번째로 약속의 손을 붙들고 일어설 줄 알아야 합니다. 결정적인 시간에, 하나님의 때에 그분의 약속의 손을 붙들고 일어설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좌절하도록 그냥 지켜보고만 계셨든 것은 아니에요.약속만하고 내내 침묵하셨든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공부해 보시면 자 아브라함에게 메시야의 첫 약속을 해 놓으시고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그 아들 이삭에게 그 약속을 되풀이 하십니다.확인하시는 거에요.똑 같은 약속을 되풀이 하며 확인 하시는 거에요.또 야곱에게 그 약속을 되풀이해서 확인해 주십니다. 요셉에게 그리고 다윗에게, 다윗이 쓴 수많은 시편을 보세요.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확인시켜주십니다. 그리고 예언자들 선지자들 그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시면서 하나님은 계속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 나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 그 약속은 아직도 유효하다. 내 인생의 드라마는 그리고 내 인생의 역사는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니라고 나는 알고 있다고 기억하고 있다고. 그러나 결정적인 시간, 우리가 아주 주저앉지 않도록 하나님이 반드시 때가 찬 시간,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그 놀라운 하나님의 타임을,역사를 간섭하는 그 표현을 볼 때 등장하는 그 표현 중의 하나가 ‘때가 차매’라고 그래요. 결정적 순간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손길을 내리십니다.
이제는 일어서야 한다고, 일어서야 한다고, 그 손을 내려주시는 그 순간이 찾아와요.
마리아는 지금 그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에요. 그 순간을.

자, 이 부분이 본문의 마리아의 노래가운데 어떻게 표시 되어 있습니까? 54절을 다시 보시면 그 종 이스라엘을 그 다음에 어떤 단어가 나옵니까? ‘도우사’ 그랬어요.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그랬어요.이 돕는다는 단어가 영어로는 그냥 헬프(Help) 라는 단어죠. 헬프. 그러나 이것은 원어의 단어의 의미를 충분히 이렇게 설명해 낸 단어는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영어 번역에 보면 때때로 이 헬프라는 단어대신에 lift up, 이렇게 들어올린다, 혹은 Catch up, 켓치 해서 이렇게 손을 내려서 사람을 세워주시는 장면, 그게 돕는다는 단어의 본래의 뜻이에요.
우리가,부모가 아이들을 걸음마 연습을 시킬 때 걸음마 걸음마 이렇게 아이들을 아빠들이 걸음마 연습을 시킵니다. 때로는 아버지는 그 아들이 넘어지는 것을 허용합니다. 그래야 그 Exercise를 통해서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때로는 넘어짐을 허용하는,뭐 기분 좋은 것은 아니죠? 아파하면서 저러다가 다치면 어떡하나,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아주 주저앉아 울어버릴 그 순간에 아버지는 지체 없이 손을 내밀지 않습니까? 일어나라고, 이제 일어나라고,바로 그럴 때 사용되는 표현이에요. ‘도우사’ 이스라엘을 도우사, 결정적인 시간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우리 인생의 여정에서 종종 이런 손길들을 경험 하지 않습니까?

시편기자의 이 고백 속에서 우리는 그런 경험을 반추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드니’ 우리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드니 귀를 기우리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어셨도다. 저가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나를 끌어 올리시고’ 끌어올리시고.
인생을 살다가 그런 웅덩이와 수렁에 빠질 때 손을 내밀어 나를 끌어올려주시는 바로 그분의 도우심을 우리가 체험하지 않았나요? 또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가, 주의 자녀들이 주의 백성들이, 저가 넘어지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그 다음에 무어라고 그랬어요?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라. 다 같이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라’ 저가 넘어지되,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넘어지는 순간이 있어요. 무릎이 다치고 깨지는 순간이 있어요 아파하는 순간이 있어요. 고통의 순간 때로는 메스처럼 살을 에이는 인생의 고통이 나를 치는 아픔의 순간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가 넘어지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라’ 손으로 붙드심이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나타내어주고 있는 이 장면입니다.
마리아가 그랬을 거라구요. 그렇죠? 마리아가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얼마나 죽고 싶었을까요? 여인으로서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결혼도 안하고 그 봉건주의적 사회 속에서 이제 소문이 날 때 마리아가 겪어야만 했었든 삶의 환경을 마리아의 입장에서 한번 상상해 보세요.죽고 싶었을 꺼에요. 그런데 한 순간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메세지를 전해주시고 마리아의 마음을 만져주시는 그 순간, 마리아의 손을 잡아주시는 그 순간이에요 그 순간 마리아는 벌떡 일어나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간섭이고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 이라면 나는 오히려 자랑해야 한다고, 그는 일어나 갑자기 이 절망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찬양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보십시요. 내가 내 구주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나이다 말이죠. 찬양하나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순간이에요. 이것이.

오늘 여러분 어떤 모습으로 이 금년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까? 어떤 마음으로 지금 이 자리에 앉아계십니까? 지난 봄이라고 생각되는데 저의 집에서 이제 조선일보가 오기 때문에, 주문도 안했는데 오더라구요 계속 보내더라구요, 하하~ 보다가 그 글로벌 에티켓 란에서 기사 하나를 읽다가 잔잔한 감동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무슨 대단한 사건이 아닌데 독자의 투고란에서 아, 그 참 감동이 된다, 그래서 저가 오려서 파일을 해놓았든 평범한 기사하나가 있었습니다.
어떤 남자분인데 이분이 백화점에 가죽가방 하나 사러 갔든 모양이에요. 그래서 디자인도 괜찮고 마음에 들어 샀습니다. 그런데 백화점에 조금 나가다가 보니까 그 가방에서 흠이 이렇게 보이는 거에요. 그래서 다시 되돌아와서 좀 바꿔달라고 그러니까 점원이 그 뭐 흠이 보이지도 않는게 그러시느냐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바로 그 찰라에 고참인 듯한 점원 한 사람이 달려오더니 ‘선생님 괜찮습니다. 바꿔드리겠습니다. 잠간만 좀 기다리시죠. 죄송합니다’ 그래서 찾아보더니 ‘똑같은 디자인이 없네요 선생님,그런데 한 주간만 저에게 시간을 좀 주십시요 다음 수요일에 오시면 저희가 책임지고 그 가방을 구해놓겠습니다’ 그러면서 뭐 이렇게 그 주문서 하나를 내어 놓으면서 이 주문 계약서를 좀 써 달라고, 그래서 ‘아니 또 뭐 엉터리 가방 나오면 어떻거냐고, 돈을 먼저 받을 셈이냐고?’ 아니 돈 내시라는 것이 아니고요 주문 계약서만 써주시면 아마 다음주에 저희가 세일이 또 시작되기 때문에 훨씬 더 싼 가격으로 구입을 하시게 될 것 같습니다. 그냥 주문만 하시는거 거든요 제가 책임지고 연락 하겠습니다’. 그래서 주문 계약서 쓰고 집으로 왔다는 거에요. 그런데 정확하게 한 주간 후에 자기집으로 전화가 왔는데 그분이 ‘선생님 참 죄송한데 아직 저희가 그 가방을 찾지 못했습니다. 여러 매장에 수소문을 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요’ 그 다음날도 전화가 와서 지금 찾고 있다고,.그 다음날도 전화가 오고, 한 사흘 지나서 ‘선생님 드디어 찾았습니다. 좀 힘드시지만 나와주시면 제가 그 가방을 구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세일 기간이기 때문에 전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갔대요 가니까 뭐 세일 기간이라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는데 얼른 얼굴을 알아보고 ‘맞지요? 선생님이시죠? 저희가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가방을 탁 내놓는데 보니까 예쁜 카드하나를 ‘선생님 기다려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가방을 내어 놓더래요. ‘잘 살펴보시죠.’그런데 흠이 없어요 아주 좋은 가방이에요. 자기가 원했든 가방입니다. 그래서 사실 감사하다고 그러니까, ‘선생님 그 동안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손을 딱 잡더래요. 그런데 그의 손이 잡혀지는 그 순간 평범한 사건인데 자기 마음 속엔 감동이 되더라는 거에요. 그 마지막 기사가 이렇게 끝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마도 앞으로 이 매장에 평생 고객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시대에 드문 성실성을 여기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 대목이 저한테 감동이 되었어요.

우리는 무슨 하나님의 그 패밀리들이고 자녀들이지 하나님의 어떤 초청객은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또 게스트(Guest)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단골 게스트죠. 밤낮 하나님 앞에 달라고 그러고 요청하니까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이 내가 주문하는 것이 내가 의도한 그대로 내게 주어지지않지만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 할수가 있다면 우리의 호스트요 주인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저와 여러분이 정말 기다릴 수가 있는지요?그리고 그가 마침내 응답의 손을 내미는 그 순간 감격으로 그 손을 붙잡을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준비하고 이 고난의 시간을 기다릴 수가 있겠는지요?

지난 성탄 이브에 우리민족 시인인 미당 서정주 선생이 세상을 떠나 타계하셨습니다.
뭐 이렇게 언론에는 별로 그런 기사가 안나갔지만 제가 미국이 있을 때 들은 이야기인데 그분의 그 자녀들이 다 미국에 계신데 아주 좋은 크리스챤이라고 그래요 이분은 평생 불교신앙이 있었든 분이지만 최근 마지막 몇 년간은 미국에서 열심히 교회에 나가시고 성경을 읽어면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서정주 시인 그러면 제일 생각나는 시가 어떤 시죠?
국화꽃 옆에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마지막 단원이 어떻게 시작됩니까?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이 오지않았나 보다.

잠들 수 없는 이 시대의 고통을 안고 새해를 기다리고 있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월이 아무리 어둡고 험해도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붙잡을 수가 있다면 그리고 그 약속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한번 더 신뢰할 수가 있다면 그리고 마침내 그가 나에게 내리실 그 손길을 바라보며 그 손을 붙들고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면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분 앞에 다가설 수가 있다면 새해는 정녕 새날이 될 수가 있다고 믿습니다.
Happy new year!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 다같이 일어나서 기도하시겠습니다.
이 한해가 결코 쉽지 만은 않았든 분들이 많이 있을 것 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직장에서 사업에서 결코 쉽지않은 한해를 힘들게 버겁게 지나오신 교우여러분, 그러나 이 한해가 지금 지나가고 있습니다. 새해가 승리로운 한해 축복의 한해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 꿇어 다가서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제가 아직도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준비하겠습니다. 이 고통의 시간을 하나님을 의뢰하고 준비하겠습니다. 하나님 저를 너무 오래 이 자리에 놓아두지 마시고 제 손을 잡아주세요

우리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 하십시다
기도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앞에 나와 다시 주시는 주의 말씀을 받습니다.고난의 세월 어두운 세월을 살고있는 우리 성도들을 주께서 붙잡아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위로해주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결코 우리의 삶은 고통의 연속만은 아니라는 것, 좋은 세월 준비하시고 약속의 실현의 새날을 준비하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의뢰할 수 있도록 믿음을 더해 주시옵소서 그 믿음으로 일어서게 도와주시옵소서 믿음으로 찬양하게 도와주시고 믿음으로 새날을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주님을 의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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