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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고난

시편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000 추천 수 0 2009.11.30 13:4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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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119: 67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7. 12. 16. 주일설교 
<서론>
오늘 저는 '삶과 고난'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생은 고난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생로병사 그 자체가 고난의 연속인 것입니다. 저도 짧은 70년의 삶을 뒤돌아 볼 때 온통 자욱한 고난의 연기 속을 통해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일본군의 한반도 강점의 말기 그 한없는 강제노동과 수탈, 해방 후 5년간의 좌우충돌과 사회 혼란,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의 와중에서 살아왔습니다. 그 후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 등 살아남기 위한 고난의 몸부림이 없었던 때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왜 인생은 고난을 위해서 태어났을까요?

<본론>
1. 인생과 일반적인 고난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고난을 당하며 삽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조상 아담이 타락할 때 인류에게 삼대재앙을 유산으로 남겨놓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삼대 재앙을 선포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6절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먹은 결과로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하나님은 재앙을 선포하셨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어다. 여기에 보면 너무나 비참한 재앙의 선언이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자 제일 첫째 재앙은 영혼이 죽은 것입니다. 범죄 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끊어지고 영이 죽고 만 것 입니다. 마치 옹달샘에서 끊어진 도랑의 물이 썩어져서 장구벌레와 더러운 물이 되는 것처럼 인간은 생명의 근본 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끊어졌으므로 온갖 부패와 부정이 그 영혼을 썩어지고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두 번째 재앙이 환경 재앙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 지구상에 환경재앙으로 가득하고 산야가 다 썩어가는 것처럼 환경재앙이 일어나서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올 저주의 재앙인 것입니다. 세 번째 재앙이 죽음의 재앙인 것입니다. 너는 식물을 먹고 고생하고 땀을 흘리며 살다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생로병사의 재앙인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 죽지 않도록 만들어졌는데 죄 때문에 죽게 된 것입니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게 되는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재앙은 모든 인류에게 상속으로 넘겨준 재앙인 것입니다. 어떠한 민족도 어떠한 개인도 이 삼대 재앙에서 벗어날 자가 없는 것입니다. 문명국가든 미개한 국가든 교육받은 사람, 못 받은 사람,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할 것 없이 모두다 이 재앙에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재앙에서 해방을 얻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고 벌버둥을 쳤지만 이 재앙은 인간의 힘으로 벗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2천년전에 하나님은 인류를 이 재앙에서 벗게 하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로 보내어서 이 재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한 것입니다. 성경에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한 것입니다. 죽음만이 이 재앙을 철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다 죄를 지었으므로 죽고 살아나지 못하므로 재앙의 희생물이 되지만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 없는 인간으로 태어나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친족이 친족의 빚을 대신 물어주는 것처럼 예수님은 인류로 태어나셔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섯 시간 십자가에 고난당하신 후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인류를 삼대 재앙에서 삼중축복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기시므로 첫째 재앙인 죄악의 재앙에서 해방시켜 준 것입니다. 우리가 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주님 앞에 나오면 우리의 죄를 다 대신 책임지고 사망을 담당하시므로 그 고통 속에서 죄를 청산하신 것입니다. 몸을 찢고 피를 흘리며 온갖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지옥 불에 타는 고통을 당하면서 우리의 죄악을 다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한해 두해의 죄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영원히 우리의 죄악을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리시므로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저주받은 자는 나무에 매달으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나무에 매달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이는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려 함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그 아브라함의 복이 예수를 믿을 때 우리에게 임하고 저주는 주님께서 대신 짊어지고 가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저주를 짊어진 자여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 저주를 대신 짊어졌으니 너는 평안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의 축복을 인류에게 나누어 준 것입니다. 그 다음 주님은 생로병사의 고리를 끊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죽더라도 영원히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대신해서 분명히 죽어 무덤에 들어가셨는데 사람을 대신해서 사흘 만에 죽음을 이기고 무덤을 해치고 부활하시므로 사망과 음부를 영원히 멸하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살아있을 동안에 육신의 질병조차도 우리의 연약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시므로 치료와 건강의 은총과 축복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아담 조상으로부터는 삼대 재앙을 물려받았으나 새 인류의 조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삼중축복의 은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죄악의 멸망, 저주의 멸망, 질병과 죽음의 멸망에서 건져 내는 일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삼서 1장 2절의 말씀대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고 말씀한 이유는 주님이 우리 대신해서 대속의 재물이 되어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일반적인 고통인 삼대재앙이 다가오면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삼대 재앙을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죄악을 물리치고 저주를 물리치고 질병을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달아 알고 이것을 꿈꾸고 믿고 기도하고 물리쳐야 이 일을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만히 감나무 밑에 입 벌리고 있으면 감이 입에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종교적으로 왔다 갔다 한다고 해서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재앙은 뿌리가 깊게 우리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 인류에게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뿌리를 뽑기 위해서는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가 진리를 깨달아 알고 그리고 이것을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보고 꿈꾸며 믿고 기도하고 담대하게 물리칠 때 성령이 역사해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고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2. 영광스런 고난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영광스러운 고난도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영광스럽다구요? 그렇습니다. 영광스러운 고난이 있습니다. 여러분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 알버트 슈바이처 같은 사람을 보십시오. 복음을 위해서 스스로 택한 고난인 것입니다. 타인을 고난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남의 짐을 대신 짊어진 고난은 영광스러운 고난인 것입니다. 자기를 희생하여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 때 자기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게 되고 삶의 참 행복과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같이 풍요의 생활 속에 사람들이 살면서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옛날에 없던 좋은 집도 가지고 텔레비와 라디오와 인터넷과 온갖 전자 기구를 다 가지고 자동차도 타고 다니면서 옛날에 그런 것 없이 살던 때보다 사람들은 더 많이 싸우고 분노하고 미워하고 살상하고 가정이 파괴되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느냐. 많이 소유하므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마귀의 철학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인 것입니다.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행복은 나누어 주는데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주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웃과 나누고 행복을 나눌 때 비로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되고 기쁨과 행복이 주어진 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친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을 위해서 내 목숨을 바치려 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섬기는 생활이 비로소 우리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해주고 참 행복과 기쁨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 보십시오. 마더 테레사는 건축업자이자 시의원인 아버지 밑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18살 되던 해에 수녀회에 입회하여 이듬해에 인도 캘커타로 가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사역 도중 결핵에 걸려 치료를 위해 히말라야 산에 있는 요양원으로 가던 중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라"는 계시를 받아 테레사는 단돈 5루피 약 120원을 가지고 빈민가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거지와 병자, 사경을 헤매는 노인을 돌보기 시작하여 50년간 가난하고 헐벗고 사회에서 천대받는 이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1996년에는 말라리아와 고역, 고질적인 심장병과 폐질환 등으로 치료를 받아야만 했는데, 당시 담당의사인 센 박사는 "구부린 자세로 병약자들을 돌봐 오랜 봉사생활을 하는 동안에 질병이 생겼다"고 말한 것입니다. 1997년 9월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노벨평화상, 케네디 인권상, 인도 최고의 바라트 라트리나 훈장 등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위해 사명을 위해 스스로 택한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와 평안이 넘치는 영광스러운 고난인 것입니다. 누가 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스스로 고난을 택해서 일생을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만 남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청춘을 바쳤고 자기의 행복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테레사 수녀는 큰 기쁨과 행복을 느꼈습니다. 어떠한 사람도 느끼지 못하는 행복과 기쁨을 그는 느끼며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도 한가지입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5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9살에는 이미 예배 때 오르가니스트를 할 정도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회를 하기 위해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한 뒤 교회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30살이 되면서 다시 6년간의 의학과정을 밟고 아프리카 랑바레네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서 구라파를 떠났습니다. 그는 그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아프리카에 들어갔습니다. 심지어 195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는데, 그때 받은 상금으로 나환자촌을 세우며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돌보다가 1965년 일생을 마쳤습니다. 구라파에서 행복하고 존경받고 유복한 삶을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을 도우기 위해서 다 버리고 가장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아프리카의 나환자들을 돌보기 위해서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남을 섬기기 위해서 일생을 바쳤습니다. 여러분 도저히 슈바이처 박사가 마음에 느낀 삶의 의미와 가치와 행복과 기쁨은 사람들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반드시 인생은 자기 자신을 섬기기 위해서 삶으로 행복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남을 섬기는 생활에는 십자가를 걸머지는 고통이 따름과 동시에 십자가 이후에 다가오는 부활의 기쁨과 행복도 같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인생에 참 기쁨과 행복이란 고통 없이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과 괴로움과 함께 짜릿한 기쁨과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남을 섬기는 것,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것, 나의 가진 것을 서로 나눌 때 비로소 내가 왜 사는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안 가르쳐 줘도 스스로 깨닫고 삶이 뿌듯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영혼 깊은 곳에 행복과 기쁨의 샘물이 터지는 것입니다. 내게 주시옵소서. 내게 주시옵소서. 나 중심으로 나만 위해서 사는 사람에게는 결코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를 터득할 수 없습니다. 정말 섬기면서 다가오는 그 뿌듯하고 놀라운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샘물은 마음에 감추어져 있으나 터져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슈바이처 박사는 좋은 환경과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는 터전을 거부하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보냈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좇기 위해 자원해서 짊어진 고난은 바로 영광스런 고난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영광스러운 고난을 택해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해안 기름 사고로 말미암아 그곳에 있는 주민들이 고통당하고 생태계가 파괴될 때 수 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나와서 고생하면서 그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우리 교역자들과 교회 대표들 모시고 내일 기름끼 제거하는데 봉사하러 갑니다. 남을 위해서 자기 시간과 노력과 돈을 바쳐서 일할 때 살아있는 의미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왜 내가 사느냐. 삶의 가치를 느끼게 되고 고통스럽지만 짜릿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동포들이 고난 당할 때 우리는 자원봉사자로 나가서 고난을 함께 짊어지십시다. 그럴 때 우리가 있는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되며 행복과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살면 절대로 우리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살고 섬길 때 고난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섬길 때 십자가를 걸머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부활의 영광,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볼 때 그 마음에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그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특별 고난

그러나 이 세상에는 특별한 고난도 있는 것입니다. 이 특별한 고난은 자아를 깨뜨리고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고난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 이후로 타락해서 인본주의로 자기중심으로 삽니다. 그저 사람 중심, 내 욕심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언제나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48장 11절에 "모압은 젊은 시절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이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하지 아니하였도다"
좋은 술은 어떻게 만드는지 압니까? 포도를 밟아서 그것을 그릇에 잔뜩 담아 놓으면 찌꺼기하고 포도즙하고 함께 섞여 있습니다. 그 그릇을 옮겨서 부으면 찌꺼기는 밑에 남고 다른데서는 꽤 맑은 포도즙이 모이는 것입니다. 그 포도즙을 또 다른 그릇에 옮기면 또 찌꺼기는 남고 더 맑아지고 이래서 반복하여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저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면 자꾸 찌꺼기가 남고 나중에는 아주 맑은 맛있는 향기로운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모압도 한가지입니다. 모압 이라는 나라가 강성한 이스라엘의 이웃국인 것입니다. 그러나 모압은 젊은 시절부터 평안하고 포로가 되어 나가는 전쟁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썩었어요. 냄새가 나고 찌꺼기가 꽉 들어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압을 깨뜨려서 하나님을 섬기는 발랄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다시 평안을 제하고 포로가 되게 하고 전쟁에 들어가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겨서 찌꺼기를 제하고 그래서 맛이 변하고 냄새가 변화를 일으키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인생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자아가 꽉 들어차고 자기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는 체험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옛날 맛이 그대로 남아있고 냄새가 변하지 않고 썩은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평안을 제하고 고통을 보내어서 찌꺼기를 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특별한 고난인 것입니다. 자아를 깨뜨리고 변화를 가지기 위한 고난인 것입니다. 징계로 자기 생각, 자기중심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냥은 안 깨어지는 것입니다. 호도가 그냥 손으로 만져서 깨어집니까? 망치로 바싹 때려야 깨어지고 속 알이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는 혼이 나야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혼이 나면 혼이 깨어지고 신령한 영적 사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5장 17절에 그러므로 만군의 야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내가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느니라.

말하여도 자아 중심에 서고 자기만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불러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불러도 대답 안할 때는 하나님께서 재앙을 보내는 도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고통을 보내는 도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이 니느웨에 가서 40일 동안 회개의 복음을 전하라. 안 그러면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라고 하라고 했는데 그 말에도 듣지 아니하고 불러도 대답 없이 다시스로 도망을 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위해서 배 밑창에 들어가서 잠을 잤습니다. 그러니까 고난의 풍랑을 보내어서 잠에서 깨어나게 하고 바닷물에 던짐을 받게 만들어서 고난당하게 한 것입니다. 고난은 이유 없이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불러도 대답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고난을 보내어서 깨뜨리는 것입니다. 깨어져야 자기 생각이 깨어지고 자기중심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링컨이 어느 한가한 날 시골길을 걷고 있는데 한 농부가 말을 몰아 쟁기로 밭을 갈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링컨은 농부에게 인사를 하려고 다가갔는데 마침 말 엉덩이에 파리가 엉겨 붙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링컨은 보기에 민망스러워서 파리가 말을 귀찮게 하는 게 분명했기 때문에 파리를 쫓아버리려고 손을 흔들자 그 순간 농부가 말했습니다. "그만 그만 그만 두세요. 그 파리 때문에 이 늙은 말이 그나마 움직이고 있는 것이랍니다." 말이 노쇠하여 그 어떤 일에도 꿈쩍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파리가 여기 저기 날면서 말을 귀찮게 굴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대로 내버려 놓으면 게을러서 움직이지 않는데 파리라도 와서 뜯어 먹으니까 괴로우니까 꼬리를 흔들고 귀를 흔들고 일어나서 털고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텔레비전을 보니까 우리 한국에 어느 동물원에 나이가 훨씬 늙은 곰이 죽을 나이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안죽고 있는데 힘이 빠져서 움직이지 않는데 거위 두 마리를 그 우리에 넣어 놓으니 거위가 자꾸 같이 돌아다니면서 괴롭게 하니까 일어나서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게을러빠지고 열심을 내지 않는 사람은 고난이 다가오면 게을러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늦잠 안자고 새벽기도 나와요. 더 괴로우면 기도원에 가서 금식해요. 평안하고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늦잠자고 기도 안하고 혹시 교회도 참석 안하고 성경도 읽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멀리 할 때가 많아요. 그러므로 고난은 우리를 깨뜨려서 하나님 중심으로 서게 하고 열심을 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삶 가운데 어느 정도의 고난과 고통은 인간으로 하여금 더 성숙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찾아오는 고난은 오히려 우리 신앙의 성장을 위한 자극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 없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크고 작은 고난이 연속적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더 크게 사용하려면 더 큰 고난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적당히 사용하려면 적당한 고난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버린 사람은 고난하지 않습니다. 등 따뜻하고 배부르고 혼자 살다가 돼지처럼 죽으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당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신앙이 성장하고 믿음이 성장하며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욥기 23장 10절에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순금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불에 녹여서 찌꺼기를 제거하고 또 불에 녹여서 찌꺼기를 제거해야 순금이 되는 것입니다. 불같은 고난과 연단을 통해야 삶의 모든 나쁜 찌꺼기가 다 통회하고 자복하고 없어지고 우리가 순수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정말 올바른 말씀 아닙니까? 저도 목회생활 50년을 뒤돌아 볼 때 언제 제일 하나님께 헌신하고 충성했느냐. 얻어 맞았을 때인 것입니다. 대단히 얻어맞을 때 얻어터지면 회개하고 돌아서서 주의 뜻을 따르겠나이다. 한번만 살려 주십시오. 그렇게 부르짖었고 일생을 살아오면서 하나님께 가장 감사한 것은 나를 때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으면 세속화 되고 세상을 따라갈 것인데 때려 주셨기 때문에 돌이켜 회개하고 바른길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 교육에도 회초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회초리 없이 내버려 두면 못된 방종하는 자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보세요. 고난 당해야 기도하는 것입니다. 평안하면 기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도할 거리도 없어요. 기도하세요. 뭘 위해서 기도합니까? 잘 먹고 잘 입고 잘사는데.. 내가 북구라파는 사회제도가 잘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교회를 안 나가고 기도를 안해요. 교회 나오고 기도 안하니까 "우리는 교회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국가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다 수업료 대주고 병들면 병원에 가면 국가가 다 병원비 대주고 자녀들이 많으면 양육비를 국가가 대주니 하나님 대신 국가가 다 해주므로 우리는 하나님 믿을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꽉꽉 차요. 왜냐하면 국가가 못 도와주는 병든 사람만 교회 찾아와요. 병원에서 못 고치는 병자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관절염, 신경통, 암 괴로운 사람들이 부흥회 할 때 꽉 들어차요. 병을 고치는 그리스도를 전할 때 교회가 꽉꽉 들어차고 그냥 예수를 전하면 아무도 안와요. 사람은 자기 고통스러우니까 그것에서 면하려고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에게 하나님이 고난을 완전히 재끼지 아니하신 이유는 깨어지고 회개할 뿐 아니라 신앙에 힘을 얻고 기도하고 장성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고난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정신과 전문의사 에릭린드맨 박사가 위기를 당한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를 했습니다. 병든 사람들,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 또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 위기를 당했던 사람들을 전부 조사한 결과, 위기를 당한 사람들의 85%가 결국 위기가 축복이 되었다는 결론을 얻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나쁜 습관을 고치게 되었고, 가정이 바르게 회복되었고, 또 하나님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게 되고, 시간과 물질을 절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새롭게 변화되기도 하고, 또 발전하고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과 고통을 당할 때, 절대로 원망, 불평하지 말고 오직 그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고난을 축복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17세기 영국의 신학자 토마스 아담스는 "그대에게 시련을 주는 것은 무엇이나 그대의 유익으로 계산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연단과 훈련, 신앙의 근육 개발을 위해서 고난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연단 받지 아니하면 안되잖아요. 제가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으로 훈련받을 때 그때는 너무나 생활환경이 어려웠습니다. 밥을 적게 주므로 하루 종일 배가 고팠습니다. 천막에서 추워서 잠을 잘못 잤습니다. 훈련받을 때 양지 볕에서 앉으면 그냥 졸아요. 그러면 교관 선생님이 훈련을 하다말고 가르치다가 말고 이야기를 합니다. 농담을 합니다. 농담을 하면 눈을 반짝 떠서 조금 뜨고 있다가 또 이 소총의 사거리는 얼마고 실탄은 얼마에 몇 분에 얼마 발사하고 하면 또 잡니다. 그러니까 교관이 하는 말이 "야, 이놈 자식들아! 눈 좀 똑똑이 뜨고 내말을 들으라! 나도 너희 조는 놈들을 깨우고 싶지 않으나 내말을 안 들으면 전쟁나면 제일 먼저 죽는다! 안 죽으라고 훈련시키는 것이지 너희 괴롭히려고 훈련시키는지 아느냐! 열심히 훈련을 받으면 안 죽고 살아남지만 너희들 졸고 게으르면 전쟁나면 총알받이가 되고 만다." 그 말이 머릿속에 박혀서 기억이 늘 납니다. 맞았어요. 왜 훈련을 합니까? 살아남으라고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왜 운동선수들이 끊임없이 일찍이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 늦게 까지 훈련을 합니까? 근육에 힘을 얻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근육을 개발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신앙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야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이 훈련되고 믿음에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따라 말씀하세요.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신다. 얼마나 좋습니까? 고난이 와야 고난이 우리를 온전하게 변화시키고 굳건하고 강하고 우리 신앙의 터전을 튼튼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난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용광로가 없으면 광채를 어떻게 녹이며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자동차로부터 비행기로부터 아름다운 집으로부터 예술 작품부터 어떻게 만듭니까? 용광로에 녹여서 고난을 통해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광물을 얻어내어야 비로소 모든 필요한 물건을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난당해야 우리가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3절로 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함이라.
우리가 인내를 배우고 연단을 배우고 소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고난을 통해야 얻을 수 있는 귀한 값진 선물인 것입니다.
캐나다 로키산에는 무릎 꿇은 나무가 있습니다. 보통 해발 3천 미터 이상 올라가면 나무가 자라지 못해요. 바람이 너무 세고 토질이 각박하고 날씨가 춥기 때문에 자라지 못해요. 그런데 캐나다 로키산 중턱에 올라가면 오랜 세월 폭풍우를 견뎌내며 자라온 나무가 있는데 그 과정 가운데 마치 무릎을 꿇은 것처럼 순종하는 자세로 서있는 모습을 갖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소나무가 전부 엎드러져 있어요. 무릎을 꿇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무릎을 꿇어 예배드리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나무가 명품 바이올린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무릎 꿇은 나무, 바람과 폭풍우를 만나고 척박한 땅에서 고난을 당하면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 자세를 낮추고 낮추고 무릎을 꿇은 채 자란 그 나무를 베어서 바이올린을 만들면 명품 바이올린이 되어서 소리가 가장 잘난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좌절하고 낙심하며 원망하면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전적으로 항복할 때 그 사람은 명품 인생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저질이 있고 명품이 있지 않습니까? 저질인생은 고난당하지 않기 때문에 안 깨어지므로 저질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여 무릎을 꿇고 깨어지면 명품인생이 되어서 하나님이 아름답게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토마스 왓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물을 잃으면 아무것도 잃은 것이 아니다. 생명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린 것이다." 예수님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무릎을 꿇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1966년 중국에서 소위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기독교인들은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혁명이 일어날 당시 중국의 기독교인들은 대략 3백만 명 정도였으나 혁명을 겪고 난 후 1980년대 초반에는 기독교인이 가정교회까지 합하면 무려 10배나 늘어난 3천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고난과 핍박이라는 도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신앙 근육을 개발하시어 우리를 더욱 강하게 하시고 이로써 오히려 하나님 백성을 번성케 합니다. 심한 학대와 핍박이 기독교인들을 좌절시키는 것 같지만 그 가운데 기도하고 믿음이 강해져서 더욱 전도하여 3백 만명인 것이 3천만으로 변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예수 믿는 사람을 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짜는 떨어지게 만들고 진짜는 더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4. 특별 고난 때 할 일
특별한 고난당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특별한 고난당할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우리 힘으로 이길 수 없잖아요. 깨어지고 회개하고 눈물이 범벅이 되어 엎드리면서 '하나님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고난을 견뎌내게 해주시옵소서.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4절로 15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19절에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야훼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고난이 많을 때 건지시는 이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야 되고 우리 고난당할 때 왜 내가 고난 당하는지를 반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꾸짖어도 반성하지 아니하면 앞길이 캄캄한 것입니다. 궂이 부모가 왜 자꾸 꾸짖습니까? 반성하라고 꾸짖는 것입니다. 반성만 하면은 사랑을 해주지 왜 꾸짖겠습니까?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 보내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변화되지 않고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꾸짖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당할 때 내가 뭘 잘못했는가. 어디에서 떨어지는가를 돌이켜 생각하고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6장 3절에 "유다 가문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난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리니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 하시니라"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하나님은 용서를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59절로 60절에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들을 향하여 내 발길을 돌이켰사오며 주의 계명들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말씀을 비춰보고 내 발길을 돌이키고 행위를 고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고난을 중지시켜 주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큰 축복은 나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항복하는 것입니다. 전쟁할 때 지면 끝까지 싸우다가는 죽잖아요. 빨리 백기를 들고 항복 하는게 좋잖아요. 하나님께 매 맞을때 하나님께 항복합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주님께 두 손 들고 항복하고 나오면 하나님이 때리던 채찍을 그만두시고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왜 때립니까? 잘되라고 때리잖아요. 그런데 회개하고 나오면 품어주지 않겠어요?
호세아 5장 15절로 6장 1절에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오라 우리가 야훼께로 돌아가자 야훼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뉘우치고 회개할 때까지 주님은 주님의 처소에 가서 숨어서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 받을 때 우리가 회개하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숨은 곳에서 나오셔서 때렸으나 처매어 주고 꾸짖었으나 어루만져 주고 상처를 입었으나 싸매어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 받을 때 늘 원망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 알아서 그런 것입니다. 고난 당하는 것은 유익이라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게 보탬이 되는데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 꾸중 들을 때는 굉장히 불평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세월을 두고 보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중학교 다닐 때 영어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영어를 무엇 때문에 배워야 하느냐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들어가니까 콩코드라는 영어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들어올 때 이만한 장대를 들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애들 때리기 위해서.. 좌우간 명령해서 외우라고 한 단어를 못 외우거나 현재 사, 과거사, 과거분사를 외우지 못하면 나가서 종아리가 붙도록 얻어맞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그 선생이 무서워서 죽도록 외우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늘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놈 안죽냐. 교통사고가 나서 탁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는데 세월이 지나고 오늘날 보면은 그 선생 때 배운 것은 지금도 머릿속에 다 외우고 있어요. 제가 온 세계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영어의 기본적인 문법을 그 선생 때 배운 것입니다. 나를 안 때려 주었으면 안 그래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역사 선생 한분이 계셨는데 얼마나 사람이 좋은지 틀려도 옳지 그럼. 옳지 그럼. 괜찮아. 괜찮아. 틀려도 괜찮다니까 공부 안했어요. 얻어 맞을 일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국사에 요사이 지금도 눈이 깜깜하다 말입니다. 어린 아이 때 안 먹으려는 음식도 강제로 먹여야 건강을 얻는 것처럼 안배우려고 하는 것도 강제로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깨어지게 하고 회개하게 하고 하나님을 순종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먼 눈으로 보면 큰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에 들어가거든 고난학교에 입학했다고 생각하십시오. 학교는 우리를 잘 가르치기 위해서 입학시키는 것처럼 고난의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를 잘 가르쳐서 훌륭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시편 119편 71절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보세요. 고난이 우리를 배우게 하지 않습니까?
로마서 8장 17절로 18절 우리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보세요. 고난과 영광은 이콜입니다. 고난이 있어야 영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영광을 바라보고 가면 영광에 가는 길은 고난의 길인 것입니다. 고난은 고통스럽지만은 이후에 영광이라는 짜릿한 행복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남을 섬기며 나를 희생하는 것은 십자가를 걸머지고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행복과 기쁨이라는 짜릿한 영광이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예수 믿고 고난 당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그러나 그 후에 영광이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고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므로 고난은 고난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의 뒤안길에는 영광이 기다리고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내가 고난을 걸머지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고통 뒤에 행복과 기쁨이 다가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요? 잠시 행복한 것 같다가 그 다음에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쁜 아내, 잘난 남편 모시면 행복할까요? 몇 년간은 행복할지 모르지요. 나중에는 쳐다보세요. 이쁜지 안 이쁜지 잘났는지 못났는지 모른다구요. 좋은 옷을 입으면 행복할까요? 한 일주일은 행복하겠지요. 일주일 후에는 행복한지 안 행복한지 모르지요. 좋은 집에 가면 좋겠지요? 며칠 동안은 '야~ 좋다!' 며칠이 지나면 그만 보통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행복이란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물거품 잡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견디다 못하여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좋은 옷, 더 좋은 사람을 찾아서 방황하고 허덕이는 것입니다. 내 가정을 깨뜨려 버리고 다른 가정을 이루면 더 행복할 것이라 생각해서 또 다른 가정을 이루면 또 역시 그와 같은 것입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은 무려 남편을 5번이나 바꿨습니다. 그러나 여섯 번째 남자하고 살 때 도 목말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이 물을 마시면 다시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목마르지 않고 영원히 배속에서 솟아나는 생수가 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영원히 기쁨과 행복을 누리려면 나를 위해서 살지 말고 남을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를 섬기기 위해서 살지 말고 남을 섬기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면 고통스럽습니다만 그 뒤에 짜릿한 행복과 기쁨이 다가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한 사람이기 때문에 영광의 길을 가는 고난을 감수하고 받아들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의 헨리 워드 비쳐 목사는 고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난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찾아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을 슬프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진실하게 하며, 불쌍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욱 현명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씨를 백 배, 천 배로 늘리기 위해 쟁기질로 땅을 비옥하게 하듯 고난은 우리에게 더 큰 기쁨과 영적인 결실을 줍니다." 여러분 우리는 고난당할 때 좌절과 실의에 빠질 것이 아니라 유익을 생각하며 축복의 기회로 삼아서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 당할 때 너무 빨리빨리 고난을 벗어나오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 한국 사람은 빨리 빨리가 세계적인 대명사입니다. 한국 사람만 보면 빨리 빨리 빨리 빨리 그럽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를 빨리 빨리 자라라고 목을 매일 아침 당기면 병신이 되지 않겠습니까? 농부가 곡식을 심고 빨리 자라라고 곡식 목을 잡아당기면 다 하얗게 말라지지 않겠습니까? 빨리 빨리가 반드시 유익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때를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삶은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신 것입니다.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슬플 때가 있으면 기쁠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으면 죽일 때도 있고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면 하나님은 때를 따라서 훈련을 받게 하고 난 다음에 기쁨으로 옮겨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을 빨리 신속하게 뛰어 넘으려고 하면은 안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제 텔레비전의 건강 프로그램을 보니까 의사 선생님이 그 사람 몸에 활성산소가 너무 많으니까 이온수를 마시면 활성산소가 없어지니 이온수를 매일 한 병씩 한 페트병을 마시라고 했는데 이 사람이 물 중독에 걸려서 죽게 되어 가지고서 병원에 뛰어 왔습니다. 왜 그러냐니까 한 병 마시면 이온수가 없어진다고 해서 큰 페트병으로 두병을 마셨다는 것입니다. 이만것이 아니고 요만한 것을 빨리 빨리 활성산소가 없어지고 빨리 나으려고 이온 수 두 큰 페트병으로 마셨으니 사람이 삽니까? 왜냐하면 몸 안에 소금기인 나트륨과 물이 발랜스가 잡혀야 몸이 정상적으로 운행하지 나트륨이 희석되면 물이 세포막을 타고 들어와서 온몸이 퉁퉁 붓고 물 중독에 걸려 죽습니다. 마라톤하는 사람이 땀이 많이 났다고 목마르다고 갑자기 물을 한꺼번에 많이 마시면 그대로 쓰러져 죽습니다. 물이라는 것도 씹어 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마셔야지 좋다고 한꺼번에 다 마시면 한꺼번에 좋아지는 것 아닌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고난도 단방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번 선거에 단박에 날라 간다고 하더니만 단박에 날라간 사람 한 사람도 없어요. 이 세상에 단박에 날라가는 일은 절대로 없어요.
베드로전서 4장 12절로 1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내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내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일이 안될 때도 오래 참고 기다리면서 하나님이 때를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한 여자가 신문기자가 생활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다쳤습니다. 그래서 실직한 그녀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출판사마다 원고를 가져갔는데 다 외면 당했습니다. 이 출판사 가도 안돼요. 저 출판사 가도 안돼요. 낙심해서 원고를 버리려고 하다가 네이슨 이라는 출판사 사장이 여행을 하는 것을 알고 뛰어가서 기차역전에서 기차에 탄 그분에게 원고뭉치를 던져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원고인데 한 번 읽어 보세요" 이분이 기차를 타고 가다가 심심하니까 그 원고를 읽었는데요. 무심히 원고를 읽기 시작하자 잠시 후에 놀라움으로 원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 원고가 무엇이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원작인 것입니다. 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명작은 마가렛 미첼이라는 여자가 지은 것인데 이 책은 하루에 5만 부 이상 팔렸고 12개 국어로 번역 되었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어 세계적인 화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멋진 원고가 수많은 출판사에서 거부를 당했습니다. 이 여자는 고난에 사무쳐서 절망적이 되었습니다만 참고 기다리고 낙심하지 않자 그것을 알아주고 출판해준 사람이 있어 일약 유명한 작가가 되고 만 것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도우심의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으신 하나님께서 가장 적합할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 주는 것입니다.

<결론>
고난은 이상한 일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삶의 전반적인 경험입니다. 고난당할 때 싸울 것은 싸우고, 연단을 받을 것은 받고, 회개하고 깨어질 것은 깨어지고 주님 품에 더 깊이 안기는 것이 승리의 길인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밥을 먹고 운동을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반드시 고난이 다가와야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난이 우리에게 먹은 말씀이 양분이 되고 자라게 되는 것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고난 당할 때 불평, 원망, 탄식하지 말고 깨어지고 회개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서게 도와 주시 옵시고 오히려 영광스러운 고난, 자원해서 고난 받음으로 말미암아 삶의 의미와 가치도 깨닫고 짜릿한 기쁨과 행복도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끊임없이 고난당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며 고난의 의미를 묵상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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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8 사도행전 서로 충돌이 있을 때 행6:1-7  김필곤 목사  2009-11-28 2419
2377 사도행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의 모습은 행6:8-15, 7:54-60  김필곤 목사  2009-11-28 2427
2376 사도행전 계속적인 압박이 있을 때 행5:17-42  김필곤 목사  2009-11-28 1925
2375 사도행전 실패가 주는 교훈 행4:36-5:16  김필곤 목사  2009-11-28 2050
2374 사도행전 힘에 밀렸을 때 행4:1-22  김필곤 목사  2009-11-28 2268
2373 사도행전 유쾌하게 되는 날 행3:11-26  김필곤 목사  2009-11-28 2562
2372 사도행전 일어나야 할 사람 행3:1-10  김필곤 목사  2009-11-28 2541
2371 로마서 성령님이 간구하십니다. 롬8:26~27  박노열 목사  2009-11-28 1822
2370 예레미야 주여! 우리를 버리지 마소서! 렘14:1~9  박노열 목사  2009-11-28 1730
2369 사무엘상 마음이 괴로운 자여 삼상1:9~18  박노열 목사  2009-11-28 1862
2368 열왕기하 주여 눈을 열어 주소서! 왕하6:14~23  박노열 목사  2009-11-28 2132
2367 로마서 믿음의 법과 죄의 법 롬7:14~23  박노열 목사  2009-11-28 1751
2366 열왕기하 여호와께서 감동하시니... 왕하3:13~20  박노열 목사  2009-11-28 2029
2365 느헤미야 예루살렘을 위하여 느1:4~11  박노열 목사  2009-11-28 1668
2364 사사기 능력을 구한 기도 삿16:28~31  박노열 목사  2009-11-28 2001
2363 사도행전 문제의 시발점과 해결점 행17:16-21  이한규 목사  2009-11-28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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