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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받고 심고 거두고

고린도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011 추천 수 0 2009.11.30 14: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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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후9:6~9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8. 1. 6. 성찬주일설교 
<서론>
오늘 저는 '주고받고 심고 거두고'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신 이유는 하나님께 함께 사는 자녀를 많이 갖기를 원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들도 결혼하면 자녀들을 많이 낳아서 가족이 많기를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역시 만물을 지으셨지만 하나님과 대화하고 함께 우주를 다스리고 함께 살 자녀들을 갖기를 소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충만케 하라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반역한 첫 인류 조상 때문에 하나님은 깊은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인류를 다시 구원하시기 위하여 계획을 세우셔서 그 결과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주신 것은 많은 자녀를 새로 얻기 위한 것입니다. 거듭나게 해서 새로 얻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한 알의 밀알이 되신 것은 많은 밀알의 열매를 맺기 위한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주고받는 것과 심고 거두는 법칙이 시작된 것입니다.

<본론>
1. 주고받고 심고 거두고
첫째로, 주고받고 심고 거두는 것을 우리는 잘 살펴봐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류 가운데 세운 영원한 법칙인 것입니다. 주어야 받지 주지 않고 받는 것은 강도요, 도적이요, 포악한 행동인 것입니다. 주면 자연적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즐겁게 주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후히 되어서 그냥 각박하게 되에 담아서 착 깎아서 주는 것이 아니라 후히 되어서 또 더 들어가라고 누르고 또 더 들어가라고 흔들어서 거기에 또 넘치게 해서 철철 넘치게 해서 가슴에 안겨 준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성경 읽을 때마다 우리 시대에 며느리들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사이 며느리는 집에서 큰소리하고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절절 매지만 옛날 며느리는 집에서 고생 많이 했습니다. 고추 당추 맵다 말라 시집살이 더 맵더라고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 눈치 아래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친정에 한번 다녀오면 눈물이 얼굴을 가립니다. 친정에서 좀 편안히 있다가 돌아갈 때는 어머니가 어찌하든지 친정 식구들에게 잘 보이게 하려고 쌀이나 보리나 밀이나 뭐 이런 곡물들을 그저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가지고서 넘치도록 해서 보따리에 싸서 가슴에 안겨 주면서 "야, 가져가거라! 가져가거라! 가져가서 시어머니, 시아버지 잘 모시고 고생스럽지만 꾹 참으라. 네가 참으면 나중에 좋은날이 온다." 그래서 도로 친정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보내는 그 모습이 분명히 마음속에 영상이 되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주면 주님께서 반드시 돌려줄 것이요,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므로 절대로 섭섭하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8장 22절에 노아의 홍수 이후 노아의 자녀들에게 하나님 말씀하기를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덥고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계속한 것과 똑같이 심음과 거둠은 변함이 없는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뭐 안 심은데 거둘 수 있지 않느냐. 그런 엉터리 같은 소리 하지 마십시오. 밤낮이 있고 춘하추동 사시절이 있는 것이 바로 심음과 거둠이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춘하추동이 사라지고 밤낮이 사라지면 심음과 거둠도 사라질지 모르지만 그것이 있는 이상은 심고 거두는 법칙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옥토에 뿌린 씨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23절에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좋은 땅에다가 씨를 심으면 30배, 60배, 100배로 거둔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엄청나지 않습니까? 한 알의 밀알을 심었는데 그 밀알이 30배가 되고 60배가 되고 100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의 근원은 심는데 있지 심지 않고 축복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톰 버틀러 보던은 「CEO의 책꽂이」라는 책에서 20세기의 몇몇 거부들의 성공 비결을 설명했는데, 이들은 먼저 철저한 십일조와 베푸는 삶을 살았습니다.
록펠러는 십일조를 하는 이유에 대해 "하나님이 내게 돈을 주셨으니 내가 십일조 하지요." 그렇게 간단히 말했습니다. 그런 그가 그렇게 말했는가 하면 폰더는 신명기 8장 18절을 인용했습니다. "네 하나님 야훼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하나님이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으므로 하나님이 주신 재물 중에 10분의 1을 받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제임스 윌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성공 비결은 아주 간단합니다. 수년 전에 나는 사무엘상 2장 30절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라는 말씀에 의지해서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을 존중하기 시작하자 하나님이 축복을 주셨다."고 한 것입니다.
미국의 실업가 하이드는 10의 9조를 드린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한 때 만 달러의 빚을 지고 아홉 자녀의 생계를 걱정해야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무엇보다 먼저 철저하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이후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쏟아 부어 준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주고받고 심고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J. C. 페니는 미국의 부호로 이름이 난 후 증권 시장의 파동으로 재산을 잃고 병까지 얻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병원에서 늘 고통과 불안에 떨고 있던 페니에게 어느 날 병원 예배실로부터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잠시 후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계기가 일어났습니다. 페니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찬송과 성경 말씀과 기도 소리를 들으면서 기적처럼 캄캄한 굴속에 서서히 햇빛이 비치더니 나중에는 온 굴 속이 밝아져 마치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 것 같은 느낌을 체험했다." 말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새 출발을 결심하면서 그는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을 그의 사업과 생활의 표어로 정했었습니다. 재기한 후 그는 무엇보다 먼저 많은 헌금을 바쳐 플로리다에 은퇴 목사를 위해 주택 백 동을 건축해 헌납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것을 많은 사람에게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감사하는 생활 속에 넘치는 복이 있음을 알았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백화점 왕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먼저 줄 때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우리에게 안겨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고받는 법칙, 심고 거두는 법칙은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이상 밤과 낮이 있는 이상,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 이상 변하지 않고 우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법칙과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새해에 벽두부터 심고 거두고 주고받는 법칙을 우리 생활 속에 꼭 사용하게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신앙생활에도 적용되는 법칙
둘째로, 신앙생활에도 적용되는 법칙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겨자씨 한 알을 심어 큰 나무가 된다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31절로 32절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지 여러분 아시지요? 중동에서 겨자씨 하나를 가지고 온 선교사님이 그 겨자씨를 병에 담아서 제게 보냈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랬 습니다. 겨자씨가 먼지와 같은 것을 보고 놀랬습니다. 서대문에서 아침 새벽기도를 마치고 성도들에게 겨자씨 구경을 시키겠다고 줄을 세워서 겨자씨를 보여 주었는데 전등불 밑에서 잘 안보이니까 가까이 보고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이 많으신 할머니 한분이 와서 안보이거든. 눈이 어두운데 또 전등불 밑에 겨자씨가 너무 작으니까 "안보여요."하는데 입 바람에 날라 가 버렸습니다. 날라 간 겨자씨를 제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뒤에 줄선 사람이 할머니를 보고 원망을 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아,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 것 알았지? 그러나 네 믿음이 저 겨자씨 한 알만 있어도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고 해도 된다. 믿음이 크고 적은 것을 탓하지 말라. 믿음을 사용할 줄 알아야 된다.' 이런 교훈을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천국의 법칙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겨자씨만한 것이라도 심어야 돼요. 안 심으면 아무것도 돌려줄 것이 없습니다. 겨자씨라도 심어야 이것이 자라서 하나님 나라 법칙은 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씨앗을 심고 크게 거둘 것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농부가 밭에 아무 씨앗도 심지 않고 논뚜렁에 앉아서 밤새도록 철야기도하면서 "곡식을 많이 추수하게 해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심어라! 그러면 심은 것을 복 주어 30배, 60배, 100배로 축복해 주겠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로 8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실제적으로 씨앗을 심는 것과 함께 우리의 행동도 씨앗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과 불의와 불결과 나쁜 행실로 심어 놓고 난 다음 입 닦아 버리고 아무도 못 봤으니 내 행동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우리 행동을 씨앗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도 안 보는데 심어 놓아도 그것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안 보는데서 밭을 갈고 씨를 뿌려도 그 씨는 싹이 나고 열매를 맺고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밭에 씨를 심어도 그 씨는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행동에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을 따라 심어 놓으면 반드시 환난과 고통과 괴로움으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원망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심어 놓은 것 내가 책임지고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해 주고, 사랑해 주시지만 용서와 사랑과 거두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용서와 사랑은 하나님께서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는 것이지만 심은 것은 거둬야 되는 것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행동도 우리가 미워하고 분노하고 질투하고 사람을 못살게 굴고 잘못 심어 놓으면 그것이 내게서 떠나가고 난 다음에 내게 안돌아 올 것 같아도 나중에 반드시 돌아옵니다. 큰 나무가 되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나중에 큰 환난과 고통과 괴로움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행하든지 우리가 하나님을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지 아무도 못 봤으니 뭐 내가 걱정할 것 무엇이냐고 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이 우주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심은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로 심어 놓으면 그것이 30배, 60배, 100배가 되어서 거두게 되고 그것이 내대에 못 거두면 내 자손 대라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믿음의 씨앗을 심고 크게 거둘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심는 자는 잘 심으면 큰 축복을 받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로 9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시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귀, 영화, 공명이 있다고 해도 영혼을 잃어버리면 아무런 행복도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영혼이 잘되더라도 사업이 망해서 거지가 되어서 남에게 구걸하고 다니면 축복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어도 돈 100만 불을 가지고도 암이 걸려서 드러누워 죽게 되면 행복도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참 행복과 기쁨은 삼중축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전인구원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전인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심고 거두는 법칙을 사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는 것입니다. 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면 하나님이 축복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우연히 인간의 노력으로 축복을 받는 줄 생각하지만 인간의 노력으로 축복받는 것은 얼마가지 아니하여 바람에 날라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여러분, 의가 영원히 있다. 하나님이 영원히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난한 사람에게 흩어 준 것은 영원히 기억한다. 내가 날 위해서 우리 가족 위해서 먹고 마시고 잘 입고 잘사는 것은 하나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선을 베풀고 나누어 주면 그 행위는 영원히 기억되어 하나님이 자자손손이 갚아 주시고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게 심고 적게 거두고 많이 심고 많이 거둔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적게 심어 놓고 난 다음 더 많이 거두기를 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적게 심으면 수확도 적고 많이 심으면 많이 수확을 거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심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사람들 말하기를 "나는 심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나는 가난하고 내 자신이 빈손 들었으니 무엇으로 심습니까?" 그럽니다. 심을 마음이 있어 기도하면 심을 씨를 주시고 먹을 양식을 주시고 심게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심은 자에게 도우시는 하나님이 고린도후서 9장 10절로 11절에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보십시오. 심는 자에게 심을 수 있는 씨를 주시고 따라서 먹을 양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심을 마음이 없어서 그렇지 심을 마음이 있으면 심을 씨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을 동안에 필요한 양식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가던 청교도들은 오랜 항해로 먹을 것이 떨어져 죽어가는 사람이 생기는 어려움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랑하는 자식이 굶어 죽어 가는데도 종자만은 먹이지 않았습니다. 배속에 종자씨앗을 많이 싣고 갔습니다. 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도 종자씨앗은 손을 대지 않았었습니다. 왜냐하면 종자는 신대륙에 도착해서 뿌려야 하는 씨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만큼은 소중히 지켜야 하는 생명의 종자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다고 종자씨앗까지 먹어 버리면 나중에 진짜로 굶어 죽습니다. 우리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종자씨앗인 것입니다. 내일을 위해서 종자씨앗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 종자씨앗 조차 먹어 버리면서 내일이 암담하고 캄캄한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종자씨앗은 그대로 간수해야 다음 사람들이 종자씨앗을 심어서 먹고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와 헌물을 '떼어먹었다'고 말씀하시 않았습니다. 우리는 십일조 떼어 먹었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도적질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떼어먹는 것과 도적질하는 것은 틀립니다. 떼어 먹는것은 내게 속한 것을 내가 떼어먹지만 도적질한 것은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 도적질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물질을 다 가지고 계시고 더구나 그중에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종자씨앗으로 주신 것인데 하나님의 것을 우리가 도적질하면 저주는 받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떼어 먹는 것 아닙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도둑놈이 하나님 보고 "복을 주시옵소서. 복을 주시옵소서." 그런다고 하나님이 도둑놈 말을 듣고 복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의로운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도둑놈의 기도는 안들어 주실 것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꼭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야 되는 것입니다.

3. 삶의 문제를 당했을 때
셋째로, 태산 같은 삶의 문제를 당했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새해를 살아가면서 개인 문제, 가정문제, 생활문제, 자녀문제, 사업문제 가지가지 문제들이 우리 앞을 막습니다.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이여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아무리 고함쳐도 하나님이 응답 안 해 주시면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지 않습니까? 태산을 옮기는 방법을 주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어서 당황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벙어리 되고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제자들이 이 귀신 되고 벙어리 된 아들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와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오니 사람들이 제자들을 몰아세우고 있고 제자들이 당황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장 그 아들을 데려다가 귀신을 쫓아내고 고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왜 우리는 못 쫓아냈습니까?" 주님께서는 "너는 믿음이 적은 연고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었으면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고 해도 될 것이요 못 할 것이 없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살아있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산은 죽었지 않습니까? 죽은 산은 움직이지 못하고 자라지 못하고 그대로 있는 것이지만 겨자씨는 아무리 작아도 살아있는 것입니다. 겨자씨는 적은 겨자씨를 심어 놓으면 줄기가 나고 잎이 나고 큰 나물이 되어서 새들이 와서 둥지를 틀 정도로 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겨자씨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께 인생문제를 가지고 고민하지 말고 믿음으로 씨앗을 심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겨자씨는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속으로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네 믿음을 보여 다오. 네 믿음을 보여 다오." 믿음이 겨자씨만큼 적을지라도 보이는 믿음을 하나님은 원하시지 형이상학적으로 안 보이는 마음속에 숨은 믿음은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실 때 항상 저의 믿음을 보시고 축복하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2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했는데 한 알의 밀알이라도 심어야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겨자씨 같은 믿음이라도 행동으로 옮겨 심어놓고 기도해야 태산이 옮겨가는 것입니다. 그냥 태산만 보고 "물러가라. 물러가라. 하나님이여 이 태산이 물러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면 안 물러가는 것입니다. 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에 죽은 믿음 가지고 아무리 고함을 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태산이 물러가기 전에 겨자씨만한 믿음을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심고 난 다음에 믿습니다는 적거나 크거나 진짜 믿음인 것입니다. 심지 않고 말하는 것은 헛된 믿음이요, 탐욕스러운 믿음이요, 거짓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심고 거둔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도 인생을 구원하실 때 그냥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권세로 죄인들을 구원한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도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으로 보내셔서 한 알의 밀알로 땅에 심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셔서 무덤에 들어가 심고 난 다음에 거기에서 도로 부활하셔서 오늘날 세상에 수십억 수백억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심고 거두는 법칙을 우리가 알고 믿음의 씨앗을 심고 기적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막연하게 하나님이 기적을 주시옵소서 하지 마십시오. 겨자씨만한 것이라도 심고 난 다음에 기적을 달라고 기도해야 살아있는 믿음이 되어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심지 않고 기적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을 보여 주십시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너무나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서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믿었으면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믿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죽은 믿음은 아무 역사도 못해요. 태산은 죽은 것이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아요. 겨자씨는 살아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겨자씨 믿음이란 살아있는 믿음 즉, 심는 믿음 즉, 드리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께서 십일조라는 씨앗을 심어 놓고 시험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고 시험을 해보라. 하나님이 기어코 하늘 문을 여시고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않는가 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내 주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다른 면에는 시험치 말라고 했지만 십일조만은 시험해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황공스러운 말씀인 것입니다. 한번 나를 시험해 보라. 내가 거짓말 하는지 참말 하는지.. 그러므로 우리는 십일조 씨앗을 심으면 산 믿음을 심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꿈과 믿음을 가지고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심을 때 그냥 억지로 심는 것이 아닙니다. 씨앗을 심을 때 마음에 큰 나무가 될 것을 꿈꾸고 태산이 옮겨갈 것을 마음에 꿈꾸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꿈과 믿음을 가지고 심으십시오. 인생이란 꿈과 믿음이 있어야 내일이 있는 것입니다. 씨앗을 심을 때 그냥 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씨앗을 심으면 큰 나무가 되고 태산이 옮겨간다는 꿈을 꾸고 믿음을 가지고 즐겁게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마게도니아 교인들이 감옥에 갇힌 바울에게 선교비를 보냈습니다. 바울이 그 선교비를 받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조그마한 헌금을 보냈는데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모든 것을 채우시는 은혜를 마게도니아 교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하나님을 겨자씨 믿음으로 찾을 때는 상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믿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겨자씨 씨앗을 심고 난 다음 꿈과 믿음으로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기도해야지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로 8절에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0)
저는 언젠가 국민일보 겨자씨에서 이런 간증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 한 사업가가 있었는데 사업을 하던 중에 부도가 났습니다. 그때 손에 남은 돈은 5백 만원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돈으로 필리핀의 파나이 섬에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바치기로 작정하고 남은 마지막 돈을 선뜻 내놓았습니다. 마침 교회 지을 돈이 없어서 나무 밑에서 예배를 드리던 필리핀 사람들이 그 돈으로 교회를 건축하여 교회 이름을 '부도난 교회'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왜냐하면 부도난 사람이 돈을 주었다. 왜 그 이름을 붙였느냐 하면 한국의 사업가를 잊지 않고 언제나 기도하기 위해서 교회 이름만 보면 부도난 사업가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부도가 났던 그 사업가의 사업이 다시 일어나 오늘 번창한 기업으로 변화 되었다는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는 것입니다. 태산 같은 삶의 문제를 당했을 때 믿음의 씨앗을 먼저 심으면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심고 거두는 법칙인 것입니다.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답도 있는 것입니다. 그 해답은 꿈과 믿음을 가지고 믿음의 씨앗을 심을 때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것입니다. 태산은 겨자씨만한 믿음 앞에서 물러갑니다. 태산이 움직이기 위해서 큰 반석이 때려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겨자씨만한 믿음, 살아있는 믿음을 심고 하나님께 꿈과 믿음을 가지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도하고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나서 태산이 옮겨가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막연하게 믿습니다를 외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기대보다는 불확실성만 가득합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하면서 마음속에는 "안 믿어요. 안 믿어요."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왜, 행함이 없는 믿음이기 때문에 공을 벽에 던지면 돌아오듯이 헛된 믿습니다 소리는 메아리쳐 돌아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믿음은 주고받고 심고 거두는 법칙을 적용할 때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심고 난 다음 기도하면 적어도 의지할 때는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내가 심었으니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합니다. 심었으니 이 씨앗이 반드시 자랄 줄 믿습니다. 내가 심은대로 나무가 자라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줄 믿습니다. 심어놔야 의지할 때가 있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지 심지 않고 믿습니다는 허공을 치고 메아리치는 것이요, 헛된 공간을 울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새해를 살 때는 주고받고 심고 거두는 법칙을 반드시 적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지 않는데 돌려주지 아니하고 심지 않은데 거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법칙을 새 년 벽두에 알고서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관계를 연구하여「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썼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가 가는 곳마다 경제가 살아난다." "기독교 국가가 모든 국가 위에 머리가 된다.", "예수를 잘 믿는 가정이 그렇지 않은 가정 위에 머리가 된다." 이러한 이유를 막스 베버는 성경 안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막스 베버는 유명한 경제학자입니다. 그는 하는 말이 기독교가 들어가는 나라마다 경제가 흥하고 기독교를 잘 믿는 가정마다 흥한다. 왜, 심고 거두는 법칙을 사용하고 주고받는 법칙을 기독교에는 사용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은 전부 내 중심으로 삽니다. 내게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하고 삽니다. 그러므로 심지 않는 경제를 가지므로 자라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죽어 사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주고받고 심고 거두는 법칙을 사용하기 때문에 나라의 경제도 개인의 경제도 자라고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영국의 알프레드 마샬은 인류의 오랜 역사를 통해 생존과 발전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두 요인은 '종교와 경제'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건강하고 사람을 살리는 사역을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경제도 건강하게 되어 자연히 국가 경제가 성장하여 그 나라와 민족이 순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교회는 어떻습니까? 욕심이 너무 앞서서 남을 주지 않고 남을 생각하지 않고 남을 돕지 않습니다. 교회 가면 귀족화 되어서 우리끼리 모여서 예배드리고 우리 끼리 모여서 찬송 드리고 우리 끼리 모여서 부흥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살이는 말할 것 무엇입니까? 자기들끼리 믿고 저들끼리 부흥회하고 저들끼리 야단이다. 저들끼리 잔치하는데 우리와 무슨 상관있느냐. 그래서 세상이 오늘 교회와 성도들을 손가락질 하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하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은혜를 받고 함께 힘을 모아서 밖으로 나와 병들고 죽어가고 소외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축복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종교학자가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살리는 사역을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경제도 건강하게 되어 자연이 국가 경제가 성장하여 그 나라와 민족이 순탄하게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OECD 국가 중 상위에 속하는 미국,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독일 등은 대부분이 기독교 국가임은 이를 잘 증명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높이는 개인과 민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심고 거두는 법칙은 자연적인 법칙이요, 영적인 법칙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에서 건짐을 받고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탐욕으로 주시옵소서만 하고 하나님께 드리고 받고 심고 거두는 법칙을 사용 안한다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금년 새해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손잡아 건져 주시고 여러분을 오른손으로 높여 주시기 위해서는 주고받는 법칙을 사용하고 심고 거두는 법칙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비로소 여러분의 기도를 통하여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하나님이 축복을 여러분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오늘 우리가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의 실천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을 보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여, 예수님도 자기 생명을 주시고 난 다음에 많은 생명을 건져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들을 심으시고 난 다음에 많은 생명의 열매를 거두셨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이것이 밤낮의 법칙과 같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법칙과 같이 심고 거두는 법칙은 영원한 것이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여 영원한 법칙을 거역한 개인과 나라는 망하고 이 영원한 법칙을 순종하는 나라와 개인은 흥합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그러므로 우리는 새해에는 더욱 열심히 하나님께 심고 열심히 이웃을 돕는 생활을 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나누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면 우리에게 더 큰 사랑이 오고 더 큰 행복이 온다는 것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라 그리하면 돌려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신 이 말씀을 잊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면 먼저 남을 대접하라고 하신 이 말씀을 잊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심고 거두는 법칙을 잊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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