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 출처 : |
|---|
제6권 신앙에의 길 - 11.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한편 나는 과거를 돌이켜 보고 깜짝놀랐습니다.
진리를 발견하기만 한다면 온갖 거짓된 소망과 온갖 거짓된 망상을
다 버리기로 결심한 것이 열아홉 살 때로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서
서른 살이 되었건만 아직도 오물속에 틀어박혀서
나를 이리저리 끌다가 사라져 없어지는
순간의 선을 마시고 싶어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때도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내일이면 발견할 수 있겠지.그것이 명백하게 들어나면 나는 그것을 꼭 붙잡을거야
그때 파우스투스가 온다. 그가 오면 모든 것을 증명해 주겠지.
오! 위대한 아카데미파들이여!
인생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확실한 것이라곤 하나도 붙잡을 수가 없다.
아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더 찾아봐야지. 결코 절망하지 말자.
성경에서 불합리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 불합리한 것이 아니고
달리 선의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니 나는 거기서 내가 설 자리를 찾겠다.
내가 어렸을 적에 부모님들이 나를 거기에 두셨거니와
내가 진리를 발견할 때까지 거기에서 발을 떼지 않으련다.
그러나 언제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암브로시우스에게는 여가가 없다.
나에게는 독서할 틈이 없다 어디서 그 책을 구한단 말인가.누구에게 빌려야 될까.
우리는 영혼구제를 위해 일정한 시간을 배정하자. 갑자기 커다란 희망이 솟는다.
카토릭 신앙은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근거없이 비난하던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교인들은 하나님을 인간적 육신의 형체로 생각하는 것을 신성 모독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다른 문제들도 밝히기 위해 문을 두드리기를 왜 주저하는 것일까.
오전 시간은 학생들에게 빼앗긴다지만 다른 시간은 무엇을 하며 보내는 것인가.
우리는 왜 그 한 가지를 위해 모험하지 않는가.
우리는 은혜를 받기 위해 저 존엄한 친구를 언제 방문할 것인가.
학생들이 우리에게 사 가려는 것을 언제 준비한단 날인가.
근심 걱정에 찢긴 우리의 정신을 가라앉힐 휴식은 언제 취할 수있을 것인가.
그런 것은 모두 없어져라.
그따위 쓸데없고 어리석은 일은 모두 집어치우자.
다만 지진리의 탐구에만 정신을 쏟자.삶은 비참하고 언제 죽음이 닥쳐올지 모른다.
그것은 소리 없이 갑자기 온다. 그후 우리는 어떻게 될까.
우리가 여기서 게을리한 것을 어디 가서 배울까.
오히려 태만했던 탓으로 벌을 받지 않을까.
그러나 이 죽음에 의해서 감각과 더불어 일체의 근심이 단절되고 끝난다면 어떨까.
그 점도 역시 탐구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결코 그럴리가 없다.
그리스도 신앙이 이렇듯 권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
허망하고 무의미한 일일 리가 없다.
육체의 죽음과 더불어 영혼의 생명도 없어진다면
그런 위대하고 멋있는일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실 리가 없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 세상의 희망을 버리고
하나님과 행복된 삶을 탐구하기 위해서 온 몸과 마음을 내던지기를 주저하는가.
그러나 잠깐만 기가려다오. 이 세상의 것도 역시 기쁨을 주며 달콤한 것이다.
그 맛은 결코 무시할 것이 아니다.
다시 되새긴다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므로
이 세상의 것과 쉽게 인연을 끊어서는 안된다.
사실 어떠한 명예로운 지위도 좀더 참으면 획득할 수 있는데
이 세상에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유력한 친구가 많으니 만큼 그처럼 서두르지 않아도 현지사쯤은 될 수있다.
그렇게 되면 돈 많은 아내를 얻어 생활비의 부담도 가벼워질 것이며
이만하면 욕망은 다 채워질 것이다.
진실로 교양있고 중요한 인사들 가운데는 결혼을 하고도
지혜의 탐구에 몰두해 온 사람이 많다.'
이런 말을 하면서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이리저리 쏠리는 동안 시간이 흘러
나는'주님께 돌아가기를 머뭇거리고' 당신의 속에 사는 것을
하루하루 미루면서 나날이 자신 속에서 죽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나는 행복된 삶을 사랑하면서도 그 생명의 거처 앞에서는 두려워하여
그 앞을 피하면서도 다시 그것을 쫓아가곤 했습니다.
사실 나는 여자와 살지 않는다면 무척 비참하리라 생각하고
이러한 약함을 고쳐 주시는 당신의 사랑의 약에 대해서는
경험한 일이 없기 때문에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리고 금욕이란 나 자신의 능력에 속한 일로 보였지만
내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어리석은 나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듯이
'만일 당신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아무도 절제할 수없다.'는 것을
전혀 몰랐으며 그것은 오직 인간의 능력에 달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슬픈 마음으로 당신의 귀에 대고 외치고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내 근심을 당신에게 맡겼더라면 당신은 분명 그것을 허락해 주셨을 것입니다.
한편 나는 과거를 돌이켜 보고 깜짝놀랐습니다.
진리를 발견하기만 한다면 온갖 거짓된 소망과 온갖 거짓된 망상을
다 버리기로 결심한 것이 열아홉 살 때로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서
서른 살이 되었건만 아직도 오물속에 틀어박혀서
나를 이리저리 끌다가 사라져 없어지는
순간의 선을 마시고 싶어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때도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내일이면 발견할 수 있겠지.그것이 명백하게 들어나면 나는 그것을 꼭 붙잡을거야
그때 파우스투스가 온다. 그가 오면 모든 것을 증명해 주겠지.
오! 위대한 아카데미파들이여!
인생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확실한 것이라곤 하나도 붙잡을 수가 없다.
아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더 찾아봐야지. 결코 절망하지 말자.
성경에서 불합리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 불합리한 것이 아니고
달리 선의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니 나는 거기서 내가 설 자리를 찾겠다.
내가 어렸을 적에 부모님들이 나를 거기에 두셨거니와
내가 진리를 발견할 때까지 거기에서 발을 떼지 않으련다.
그러나 언제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암브로시우스에게는 여가가 없다.
나에게는 독서할 틈이 없다 어디서 그 책을 구한단 말인가.누구에게 빌려야 될까.
우리는 영혼구제를 위해 일정한 시간을 배정하자. 갑자기 커다란 희망이 솟는다.
카토릭 신앙은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근거없이 비난하던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교인들은 하나님을 인간적 육신의 형체로 생각하는 것을 신성 모독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다른 문제들도 밝히기 위해 문을 두드리기를 왜 주저하는 것일까.
오전 시간은 학생들에게 빼앗긴다지만 다른 시간은 무엇을 하며 보내는 것인가.
우리는 왜 그 한 가지를 위해 모험하지 않는가.
우리는 은혜를 받기 위해 저 존엄한 친구를 언제 방문할 것인가.
학생들이 우리에게 사 가려는 것을 언제 준비한단 날인가.
근심 걱정에 찢긴 우리의 정신을 가라앉힐 휴식은 언제 취할 수있을 것인가.
그런 것은 모두 없어져라.
그따위 쓸데없고 어리석은 일은 모두 집어치우자.
다만 지진리의 탐구에만 정신을 쏟자.삶은 비참하고 언제 죽음이 닥쳐올지 모른다.
그것은 소리 없이 갑자기 온다. 그후 우리는 어떻게 될까.
우리가 여기서 게을리한 것을 어디 가서 배울까.
오히려 태만했던 탓으로 벌을 받지 않을까.
그러나 이 죽음에 의해서 감각과 더불어 일체의 근심이 단절되고 끝난다면 어떨까.
그 점도 역시 탐구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결코 그럴리가 없다.
그리스도 신앙이 이렇듯 권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
허망하고 무의미한 일일 리가 없다.
육체의 죽음과 더불어 영혼의 생명도 없어진다면
그런 위대하고 멋있는일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실 리가 없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 세상의 희망을 버리고
하나님과 행복된 삶을 탐구하기 위해서 온 몸과 마음을 내던지기를 주저하는가.
그러나 잠깐만 기가려다오. 이 세상의 것도 역시 기쁨을 주며 달콤한 것이다.
그 맛은 결코 무시할 것이 아니다.
다시 되새긴다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므로
이 세상의 것과 쉽게 인연을 끊어서는 안된다.
사실 어떠한 명예로운 지위도 좀더 참으면 획득할 수 있는데
이 세상에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유력한 친구가 많으니 만큼 그처럼 서두르지 않아도 현지사쯤은 될 수있다.
그렇게 되면 돈 많은 아내를 얻어 생활비의 부담도 가벼워질 것이며
이만하면 욕망은 다 채워질 것이다.
진실로 교양있고 중요한 인사들 가운데는 결혼을 하고도
지혜의 탐구에 몰두해 온 사람이 많다.'
이런 말을 하면서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이리저리 쏠리는 동안 시간이 흘러
나는'주님께 돌아가기를 머뭇거리고' 당신의 속에 사는 것을
하루하루 미루면서 나날이 자신 속에서 죽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나는 행복된 삶을 사랑하면서도 그 생명의 거처 앞에서는 두려워하여
그 앞을 피하면서도 다시 그것을 쫓아가곤 했습니다.
사실 나는 여자와 살지 않는다면 무척 비참하리라 생각하고
이러한 약함을 고쳐 주시는 당신의 사랑의 약에 대해서는
경험한 일이 없기 때문에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리고 금욕이란 나 자신의 능력에 속한 일로 보였지만
내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어리석은 나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듯이
'만일 당신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아무도 절제할 수없다.'는 것을
전혀 몰랐으며 그것은 오직 인간의 능력에 달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슬픈 마음으로 당신의 귀에 대고 외치고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내 근심을 당신에게 맡겼더라면 당신은 분명 그것을 허락해 주셨을 것입니다.
|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