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0006263932_00.jpg 두툼한 책인데 꼼꼼히 읽으면서 밑줄 그으며 열심히 키보드로 쳤습니다.
다음은 밑줄그으며 읽은 부분입니다. 좀 양이 많지요?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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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렇게 그가, 길을 가리켜 주었다

꿈에, 한 젊은이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여기 길 없어요. 사방이 철망으로 막혀 있어요" 하고 말했다. 그렇게 그가, 길을 가리켜주었다.

2.꿈에서 깨어나니 끝장을 보지 못해 서운하냐?

모든 사람을 불쌍하게 보는 눈, 그 바로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을 갖는다면 네가 분노와 증오로 끝장내 버릴 그런 인간은 세상에 없다.

3.꿈을 맘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도대체 안 되는 일이 없는 데가 꿈속 세상이다. 그런데 그 꿈을 조종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
그러나 그걸 꼭 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꿈에 신이 나면 얼마나 신날 것이며 신이 난들 그게 다 무엇인가? 한낱 꿈일 뿐인데. \

4.가시는 안에서 뽑아야 한다

신학교 선배가 운영한다는 허름한 식당에 갔다. 거기서 생선 머리 하나를 접시에 놓고 먹으면서 세상에 이렇게 가시가 많은 고기는 처음 본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그래도 가시만 뽑아내면 세상에 그보다 더 맛있는 고기가 없다오" 식당에서 일하는 여자가 말했다.
가시를 뽑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가시 부분을 잡고 당기면 잘 안 뽑아졌지만 뒤집어서 안에 있는 가시 부분을 당기면 쏙쏙 잘 뽑혔다. 가시가 몸 안에 뿌리를 두고 몸 밖을 향해서 나 있기 때문이었다.
아아. 누가 내 몸을 뒤집어 내 몸의 가시들을 모두 뽑아줄 것인가? 그러면 이 물건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될 터인데.
가시는 안에서 뽑아야 한다. 밖에서 뽑으면 뽑히지도 않을뿐더러 힘만 들고 피차 아프기만 하다.

5.어영부영 살더라도 열심히 어영부영 살아야 한다

나는 죽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그것을 결정짓는 것은 평소에 무슨 생각을 가장 깊게 절실하게 하면서 살았느냐일 것이다. 예수가 남긴 최후의 한마디,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깁니다"는 사실 그가 살아생전에 밤낮으로 하던 바로 그 말, "저를 아버지께 맡깁니다. 제 뜻대로 살지 말고 아버지 뜻대로 살게 하소서"를 그대로 반복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어영부영 살았다 하더라도 아직은 기회가 있다. 그러니 어영부영 살더라도 열심히 어영부영 살아야 한다 \

6.깨어나면 모든 꿈이 좋은 꿈이다

우리는 전쟁터에 가 있었다. 적군에게 쫓겨 안전한 피난처를 찾게 되었다. 그러다가 왼쪽은 깎아지른 벼랑이고 오른쪽은 낭떠러지 아래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어느 지점에 서 있게 되었는데 길굼턱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군이 뭐라고 방송을 하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진퇴양난이었다.
누군가가 죽게 되더라도 담담하게 죽자 그래도 마지막 순간이니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자 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살든지 죽든지 당신 뜻대로 되기를 빕니다. 하고 기도하지 않았다. 내 입에서는 계속 살려달라는 말만 나왔다.
그러다가 그 자리가 바로 친구와 함께 내가 잠든 어느 집 안방임을 알게 되었다.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웃음이 나왔다. "하느님이 우리 기도를 들어 주셨어" 우리는 이불 속에서 함께 웃었다.
인생사 일장춘몽이라는 말이야말로 복음이 아닐 수 없다. 꿈이니까 언제고 깨어날 수밖에 다른 무슨 뾰쪽한 수가 없쟎은가? 태어났으니 언제고 죽을 수밖에 다른 무슨 수가 없쟎은가 말이다

7.싱거운 말 한마디

무슨 식당 같은데서 여럿이 모여 웃고 떠들고 하다가, 한 젊은이가 지금 막 연애를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내가 말했다.
"연애? 좋지! 추우니 추운 줄 아나? 배고프니 배고픈 줄 아나? 그런데 그 좋은 게 연애 끝에 결혼을 하면 없어지니 어쩌지?"
이 말에 모두들 크게 웃었고, 나도 따라서 웃다가 잠이 깨었다.

8.꿈을 꾸되 그것을 속에 묻어두게

"꿈을 꾸되 그것을 속에 묻어두게. 그러고 있다가 누가 와서 어디에 당이 있는데 사지 않겠느냐고 물으면 자네 수중을 들여다보시게. 돈이 없으면, 돈을 구하러 밖으로 나가지 말고 돈이 없어서 살 수 없다고 말하게. 그러고 있는데 누가 와서 돈을 주거든 아무 말 말고 받아서 그 돈으로 땅을 사시게. 그러는데 자네가 수고한 바 있는가? 없지. 없어야 하네. 그래야 무슨 일을 해도 '내가 일을 했다'는 생각이 없지 않겠는가? 자네가 과연 공동체를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그 꿈을 어떻게 이루느냐가 아닌)일세. 우리가 드려야 할 마지막 기도는 '제 꿈을 이루어주소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가 되어야 하네. 우리가 이 땅에서 연습할 과목은 그것뿐일세"

9.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기

내가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강당에 가득 차 있던 그 많은 남녀노소가 일제히 사라졌다. 강당 앞자리에 앉아 있던 꿈속의 내 처지에서 보면, 꿈에서 깨어나는 그 순간, 나는 죽은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죽자 나 혼자서만 죽은 게 아니라 강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과, 강당과, 시끄러우면서도 뭔가 기대되던 분위기까지 모두가 죽어버렸다.
내가 죽으면 이 세상도, 내가 미워하고 사랑하던 사람들도, 모두 나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아직 그들이 있다.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상도 있고 부엌에서 일하는 아내도 있고 눈부신 아침햇살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나를 포함하여, 시한부다. 내가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 홀연히 사라질 것들이다.
그러니 어쩌란 얘긴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10. 정몽주와 이방원

이 세상은 정몽주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이방원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 이렇게 두 가지로 대강 나뉜다.
정몽주의 생각이란,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명히 설정하고서 오로지 그 길을 간다. 이 몸이 죽고 죽어 골백번 죽어도 그 길을 바꾸거나 자기 신념을 배신하지 않는다.
이방원의 생각이란 이러면 어떻게 저러면 어떠냐? 그저 형편 닿는대로 시류에 편승하기도 하고 제 모양을 바꾸기도 하면서, 만수산 칡넝쿨처럼 그렇게 살아간다.
그런데 역사는 누구의 손을 들어 주었나? 이방원?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아니다. 역사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선죽교에서도 정몽주 편을 들었다. 왜? 정몽주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살았지만 이방원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살지 못했다. 정말 이방원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했다면 정몽주가 어떻게 나오든 그를 죽일 이유가 없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랴.

11.첫 기도

"저는 난생 처음 기도라는 걸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말은 한마디도 못했고 눈물만 흘렸어요. 왜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나도 오래 헤어져 그리움이 사무쳤다가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요. 그렇지만 이제 앞으로는 하고 싶은 말이 막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만남의 순수한 감동은 차츰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쪼록 첫 만남의 순간에 흘렸던 눈물을 잊지 말고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시라..."고 말을 해줄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12.모든 꽃이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꽃이다

겉에서 보기에는 허름한 움막집 같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온갖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집이었다.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꽃이 피었다고, 학계에 보고해야 한다고 흥분하는 주인을 따라 그 꽃이 있는 곳으로 갔다. 커다란 나무 밑에 무당벌레처럼 생긴 납작한 꽃이 딱 한 송이 피었는데 빨간 부스럼딱지처럼 볼품은 없었다.
그런데 꽃은 어느 꽃이든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꽃이다. 만물일화(萬物一華)다. 그 어디에도 똑같은 꽃은 없다. 자세히 보면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이 꽃처럼 생긴 꽃은 이 꽃밖에 없다.
꽃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히고 그래서 이리저리 뒤틀리고 한정된 선입견과 편견을 벗어 모든 꽃들이 저마다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과 향기와 소중한 가치를 획일화시켜서는 안 된다.

13.모든 것이 변화일 뿐이다

인생은 똥 같은 것 아닐까? 모든 것은 변화일 뿐이다. 얼마나 향기롭고 맛있는 것들이었던가? 똥의 전신(前身)이란! 그런데 사람들은 동일한 물건의 전신은 좋아하면서 그 후신(後身)은 싫어하고 피하려 한다. 굳어진 편견의 열매일 따름이다. 그 똥이 거름이 되어 달콤한 호박으로 바뀌면, 사람들은 그것을 다시 좋아한다. 호박이 똥으로, 똥이 호박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바로 그 '변화'로 말미암아 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서. 

14. 내가 남에게 한 일이 곧 나에게 한 일이다.

"남에게 한 짓이 곧 자기한테 한 짓이라는 걸 배우는 일은,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도 뼈아픈 경험을 통해서 배워야 참된 앎을 얻었다 할 수 있다."
"당장 이번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2004.3월)
"심은대로 거둔다. 내가 남에게 한 일이 나 자신에게 한 일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는 진실이니 명심하도록 하여라"

15.버리려고 하지말고 그냥 놓아라

종교는 처음엔 "채우라"고 하다가 어느 단계에 이르러 "버리라"고 가르친다. 몸과 마음을 비우라고도 한다. 문제는, 버리고 비우는 방법에 대하여, 그것은 각자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버리는 방법을 친절하게 일러주는 스승은 별로 없다. 그것을 스스로 터득하는 데 종교의 본령이 있는지 모르겠다. 예수도, 가족을 버리라고만 했지 어떻게 하면 버릴 수 있는 것인지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삼척 살 때, 방에 가끔 지네가 출몰했다. 지네가 보이면 수건이나 걸레로 싸서 바깥마당에 버렸다. 처음엔 지네를 떨쳐버리려 수건을 탁탁 털었지만, 그럴수록 더 수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요령을 알게 되었다. 수건을 펼쳐 돌 위에 얹어 놓으면 지네가 제 발로 걸어서 돌 틈으로 사라졌다. 아주 쉬웠다. 그렇다. 가게 내버려두어라.
애써 버리려 하지말고 그냥 가도록 놓아주어라.

16.헐떡거리지 않으려고 헐떡거리지는 않겠다

헐떡거리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슨 일이든 천천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엊그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딸 소리한테 말했지. "네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라. 그려지는 만큼 그려라. 최선을 다해서 그리되, 남들이 설정한 최선이 아니라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라." 그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이기도 했다.
순간 순간을 간절하게 살아가는 내 인생의 방관자 또는 관객이 되고 싶다. 그러나 이 '되고 싶은' 마음까지도 나는 놓아버린다.

17.경계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그 행위를 통하여 먹히는 것과 먹는 것 사이의 경계를 없애는 일이다. 예컨대 내가 사과를 먹으면 그 순간 사과와 나 사이의 경계(이것은 사과, 이것은 나-라는 의식)가 없어진다.
그러나 사실인 즉 있던 경계를 없애는 게 아니라 본디 없던 경계를 실현(realize 이 말을 '깨닫는다'로 읽기도 한다)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나와 사과 사이에 경계가 있다는 착각에서 깨어지는 것이다.
방금 사과 반쪽을 먹고서 나는 사과 속으로 들어갔다. 천하가 천하에 감춰진 셈이다. 누가 무엇을 먹든 그것은 하늘이 하늘을 먹는 것이요, 제가 저를 먹는 것이다.

18.어차피 한번 해보는 장난이라면

집(house)걱정을 하는 것이 내 꿈에 자주 등장하는 레퍼토리인 것은 분명하다. 간밤엔 꿈속에서도 평생 집 한 칸 없이 떠돌다보니 이렇게 집 걱정하는 꿈을 꾸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후배라는 사람들이 어디에 아주 근사한 한옥이 있다면서 가보자고 했다. 그런데 아내가 단호하게 아니라고, 가보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집에 대하여 무슨 결별을 선언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곁에 있다가 "좋다. 그러자!"라고 아내를 편들었다. 비로소 집에서 해방(?)되는 듯한, 통쾌하고 시원섭섭한 느낌이 들었다.

19.너에게 끌려 다니지 말고 너를 끌고 다녀라

"사람들은 총이 자기를 지켜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총은 살생을 위해 있는 물건이다. 총으로 무언가를 지켰다는 얘기는 그보다 먼저 무언가를 해쳤다는 얘기다"
"하느님은 그런 총을 왜 만드셨을까요?"
"하느님이 왜 선악과를 만들어 가지고 사람을 괴롭히느냐는 식의 질문을 지금 하는거냐? 어둠이 없으면 낟알도 여물지 않는다. 에고가 없으면 해탈도 없다. 중생이 없는 부처가 어디 있느냐? 하느님이 너에게 '에고'를 만들어주신 것은, 너로 하여금 '칼을 녹여 보습으로 만드는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게 하시려는 것이다."

20.이 세상의 한 부분이요 조각

어느 빵 가게 안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장난감 기차 궤도처럼 생긴 커다란 빵을 보았다. 밖으로는 원형을 이루고 안에는 이리저리 선로가 얽히듯이 빵 줄기(?)가 교차하면서 중간중간 여백을 이루었다.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함께 나누어 먹도록 만든 빵이라고 했다. 그렇지! 맞아 빵은 하나야. 그 하나인 빵을 여럿이 잘라서 먹는 거야. 모든 재물은 하나에서 잘라내거나 베어낸 거야. 이런 생각을 하다가 깨어났다.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사실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여기서 여기까지는 내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 또한 알고 보면 "여기서 여기까지"인 존재다. 그러니까 누가 무엇을 먹고 있다면 그것은 '여기서 여기까지'가 '여기서 여기까지'를 먹고 있는 것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존재라 해도 제가 이 세상의 한 부분이요 조각이라는 사실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21.내게는 '나와 상관없는 세상'이 없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숨을 쉰다는 것이다. 숨쉬기는 밥 먹고 똥싸는 것으로 변형되기도 하고, 책 읽고 글 쓰는 것으로 변형되기도 하고, 야구 구경하고 노래하는 것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가, 보이는 짓이든 보이지 않는 짓이든, 결국은 숨쉬기다. 뭔가를 세상으로부터 받아들였다가(잘라서 먹었다가) 또 뭔가를 세상에 내놓는다. 거대한 빵 속에 파고들어 그 안에서 먹고 싸며 살아가는 벌레들! 그것이 인간이다. 그러므로 내게는 '나와 상관없는 세상'이 없는 것이다. 있다면 현실이 아니라 내 관념 속에나 있을 뿐이다.

22.과거와 현재가 그렇듯이 나의 미래도 이미 정해져 있다.

예배 순서지에 적힌 오늘의 성경말씀을 찾아 읽는데, 복음서인지 서신서인지는 기억나지 않고 아무튼 10장 10절이 오늘의 본문이다. "아침에는 한 잔 한 사람 같이 하고, 대낮에는 이미 늦은 사람같이 하고 저녁에는..."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속으로 무릎을 칠 만큼, 그래 바로 이거야! 했는데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동시에 "바로 이거야!"라고 반가워했던 '말씀'이 사라져버렸다. 저녁에는... 저녁에는... 참으로 기가 막힌 '말씀'이었는데, 그만 놓쳐버렸다. 아쉽다. 그러나 기억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 뿐, 그것은 거기에 적혀있기 때문이다. 내 어린 시절(아침)과 젊은 시절(대낮)을 거기 적혀 있는 대로 살았다면 내 노년시절(저녁)또한 거기 적혀 있는 대로 살지 않겠는가? 

23.하면 된다. 되면 한다

자기 아내가 "하면 된다"는 표어를 앞세워 잠자리를 강요하기에 자기는 "되면 한다"고 했다가 영원히(?) 쫓겨났다는 어느 개그맨의 재담이 생각난다. 절묘한 재담이다. 아직도 세상은 "하면 된다"파가 지배한다. 이런 세상에서 "되면 한다"파는 쫓겨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기꺼이 쫓겨나겠다.

24.현실이 꿈이라면?

어느 집 앞을 지나가는데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심하게 싸우고 있다. 보통 싸움이 아니었다.  남자가 여자 어깨를 비틀어 잡고는 한번 힘을 쓰자 뼈가 퉁겨지는 것 같았다. 이어서 이번에는 목을 잡고 목뼈를 부러뜨렸다. 여자 몸이 축 늘어지더니 손에 경련이 일었다. 남자가 야수같이 눈을 번뜩이며 이쪽을 노려  보았다. 어느새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려 도망가고 나 혼자 남았다. 나도 어서 도망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러고 있는데 돌연 남자가 웃으면서 손뼉을 탁- 쳤다. 그러자 늘어져 있던 여자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나더니 두 사람이 테이블에 마주앉아 술잔을 들어 부딪치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두 사람이 미국에서 활약하는 프로레슬러임을 알아보았다. 누군가 "오늘 연습이 잘 됐다"고 말했다. 어느새 내가 그들의 연습 파트너로 되어 있었다. 칼인지 뭔지 아무튼 날카로운 무기를 가지고 상대방을 찔렀지만, 물론 찌르는 시늉만 한 것이었지만 구경하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괜찮아요. 이건 연습이오. 아무도 다치지 않아요"
잠에서 깨어나 자리에 누워 생각해 본다. 내가 실제 상황으로 알고 있는 이 세상 현실, 죽고 죽이고 훔치고 잃어버리고 빼앗고 빼앗기는 일이 난투극처럼 벌어지는 이 현실 또한 아무도 죽지 않고 잃는 것 없고 빼앗기는 것 또한 없는, 그러니까 얻는 것도 사실은 없는, 그런 연습게임이 아닐까? 

25 분별은 하되 차별은 하지 말아라

원주악장(圓珠握掌)에 단청별(丹靑別)이라
둥근 구슬 손에 넣었지만 붉은색 푸른색을 분별한다고 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떻게 분별하지 않으면서 분별할 것인가?
저마다 다른 점을 받아들이되 차별하는 일이 없으면 될 것이다.
참 말은 쉽다.
오늘 하루, 그것을 연습하라는 걸까?

26.여기에서 눈을 뜨면 여기도 보이고 저기도 보인다.

오줌이 마려워 일어나는 순간, 번개처럼 떠오르는 한마디.
"여기에서 눈을 뜨면 여기도 보이고 저기도 보인다!"
예컨대, 뉴욕에서 안과수술로 눈을 뜬 사람이 뉴욕만 보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하늘도 볼 수 있고 구름도 볼 수 있고, 도교로 가면 도교도 보고 서울에 오면 서울도 보인다.
근본에 눈을 뜨면 근본 아닌 것이 없다.
천득일이청(天得一以靑)이요 지득일이녕(地得一以寧)이요 만물득일이생(萬物得一二生)이라, 그렇다. 하나에 눈을 뜨면 만물이 밝아진다.
필요한 것은 역시 하나로 족하다

27.해몽이 꿈의 내용을 결정하고 해석이 현실을 창조한다.

어젯밤 늦도록 손가락에 피를 보면서 단소 하나를 만들었다. 단소는 뿌리 족을 아래로 하여 만드는 것이 상식이고 시중에 파는 모든 단소가 그렇게 만들어졌고 나 또한 지금까지 그렇게 만들었지만 어젯밤에는 나무를 거꾸로 세워 뿌리 쪽에 취구(吹口)를 내었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취구를 만들려고 했던 나무 윗부분이 살이 너무 얇아서 좀 더 두터운 아랫쪽을 취구로 삼았던 것뿐이다. 만들어놓고 소리를 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시원스럽게 맑다. 나무가 "내 본디 방향을 살려줘서 편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무의 본디 방향이란 '뿌리에서 가지로'다. 그러니까 대금은 나무의 본디 방향을 순(順)하여 소리를 내게 되어 있고, 단소나 퉁소는 그것을 역(逆)해서 소리를 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단소를 만들 때에는 뿌리 쪽을 아래로 내려야 한다는 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옛적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었으니 그냥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이나 행위의 습관을 좇아서 산다면 그 인생에는 창조가 있을 수 없다. 창조없는 인생이라! 무슨 재미로 산단 말인가! 옳은 말씀, 꿈보다는 해몽이다!

28.한 인간의 경험은 인류의 경험이다.

어머니 사후에 어머니의 생애를 담은 책이 출판되었지만 그 내용에는 어머니 아닌 다른 많은 인간과 사물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개인이 아니었다. 어느 수피의 말이 생각난다. "한 인간의 경험은 인류의 경험이다" 내 손으로 인류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내가 꾸었지만 내 꿈이 아니다. 지적 소유권을 포함하여 모든 소유권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임을 인류가 깨닫고 그것을 포기하는 일은, 그러므로, 시간 문제다.

29.그가 그것을 그렇게 보면 그에게 그것은 그런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상에, "이것은 이것이다"하고 단언할 수 있는 이른바 객관적 진실이란 없는 것이다. 있는 것은 그것을 그렇게(또는 이렇게) 보는 사람(들)의 견해가 있을 뿐이다. 예수가 자기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자들을 보면서, 저들은 지금 자기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몰라서 저러는 것이니 용서해 달라고 빈 것은 그들을 자기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자들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를 미워하여 죽이려고 하는 자들을 사탄의 하수인이나 불의한 범죄집단이나 영원히 씨를 말려야 할 사악한 원수로 보지 않고,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리석은 군중으로 보았다. 예수에게 그들은 처벌받아야 할 '남'이 아니라 용서받고 깨우침을 받아야 할 '형제'들이었다.

30.귀중하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

누군가를 지명하여 그 사람이 귀중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옳은 말이지만, 다른 사람은 귀중하지 않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기에 위험한 말이기도 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았으면 좋겠다.

31.모순통일

남을 죽이는 건 저를 죽이는 것이요 남을 살리는 건 저를 살리는 것이다. 칼이 어떤 것인지 아는 자만 칼로 겁을 줄 수 있다. 돈의 눈치를 살피면서 사는 자만 돈으로 짓누를 수 있다. 죽음을 겁내지 않는 자를 어찌 죽음으로 다스릴 것인가?
수렁에 빠진 소가 제 힘으로 나올 수는 업는 법이다. 소가 빠져 죽는 이유는 수렁 때문이 아니라 제 몸무게 때문이다.

32.타고난 싸움군도 싸울 상대가 없으면 싱겁게 무너진다.

버스 안에서 웬 사람이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60대로 보이는 허름한 차림의 마른 남자였는데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아주 용한 의사(?)가 그가 괴로워하자 다가가 진맥을 하더니 "당신 몸 안에 독이 가득 차 있어서 며칠 안에 죽겠는데... 그 독은 바로 미움이오. 장재환 목사를 너무 미워하는군!"
장재환이라는 이름을 듣자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누군가가, 저 사람 장재환 목사네 교회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인데 장 목사하고 앙숙이라고 했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걷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바쁘게 비를 피하여 이리저리 달음박질을 쳤다. 갑자기 뭐라고 말할 수 없는 향내가 풍겼다. 은은한 향기였는데도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난초 향기 같기도 했고 연꽃 향기 같기도 했다. 어둠 속에서 누가 꼭지를 누르면 병 안에 있는 것이 분사되는 스프레이 같은 것을 들고 걸어갔다. 장재환이다.

33.광흑불이시비일(光黑不二是非一)

빛과 어두움은 둘도 아니지만 하나도 아니다. 유행하는 말로 하면 양비론(兩非論)이다. 양비론은 양시론(兩是論)의 다른 얼굴이다. 그러니까 시是는 비非인것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게 말하는 자의 생각이다)
색色은 공公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는데 색은 색이고 공은 공이다. 어두움은 어두움이요 빛은 빛이어서 섞일 수 없는데 어두움이 없으면 빛도 없고 빛이 없으면 어두움도 없다.
그러면 자, 어떻게 할 것인가? 겨우 머리를 굴려 생각해 낸 대답은 이것이다. "당신 생각을 존중한다. 그러나 당신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34.바보는 사악하지도 않고 미치지도 않는다

인간의 상상력이 닿는 경계 안에서만 신은 자기를 보여준다는 수피즘의 설명이 그럴듯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 앎의 내용이 얼마나 제한된 것인지를 기억하여, 겸손하게 빈자리를 남겨놓아야겠다.

35.더러운 것은 말이 아니라 입이요, 입이 아니라 속이다

새벽녘에 꾸었을 짤막한 꿈 한 토막. 맑은 샘물이 퐁퐁 솟는 우물에서 젊은 시절(40대 초반쯤?)의 어머니와 함께 놀았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으셨고 그냥 어린 내가 물장난을 하면서 노는 것을 보고만 계셨다. 한참 놀다가 레몬처럼 생긴 세수 비누를 발견하고 그것 베어먹기 시작했다. 마지막 꼭지 부분이 도토리 알만큼  남았을 때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리면서 토해냈다.(비누는 먹는 게 아니쟎는가)
그런데 뱉어낸 비누 조각들이 모두 유자 씨처럼 갈쭉하고 색깔은 거무튀튀한 갈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 입안이 저렇게 더러웠던가?-투명에 가까울 만큼 깨끗한 레몬색 비누가 잠깐 입안에 머물렀다가 나오면서 저렇게 거무튀튀한 갈색으로 바뀌었으니, 내 입이 얼마나 오염되어 있는지를 간단하게 보여주는 실물 아닌가?

36.아이는 어미를 먹고 산다

고만고만한 젖먹이들이 한 방 가득 모여 천방지축 웃고 울고 싸우고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아이가 큰 목소리로 시를 읊었다.
나는 가네 
나는 가네
엄마 젖 먹으러 
나는 가네  

37.말뚝이 나무로 되살아나는 수도 있다

'말'이 있기 전에 침묵이 있었다. '말'이 사라지면 다시 침묵이 있을 것이다. 말이 침묵을 있게 한 것이 아니라 침묵이 말을 있게 했다. 말은 말뚝이요 침묵은 나무다. 쉼표 없는 악보는 존재하지 않는다.(존재할 수 없다.) 음악이 쉼을 만드는 게 아니라, 쉼이 음악을 있게 한다. 들숨과 날숨 사이, 그 없는 듯 있는 멈춤의 공백이 인생을 만들고 역사를 창조한다.

38.주인만이 그걸 쓸 자격이 있다

"주어라. 아무 되갚아줄 것이 없는 아이에게 주어라"
"무엇을 주라는 말씀입니까?"
"너에게 있는 것을 주어라. 그러나 조심해라. 아이를 찾아나서지 말아라. 아이가 네게 와서 손을 내밀어 달라고 하기까지는 아무것도 주지 말아라"
"예"
"왜 그래야 하는지 아느냐? 물건은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주인이 있는 법이요, 주인만이 그것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물건을 제 것처럼 쓰는 자는 도둑이요 강도다. 아까운 인생, 도둑질로 마감할 수는 없는 일 아니냐?"
"명심하겠습니다." 

39.그림 값 매기기

정교한 피카소 위작품을 속아서 비싼 값으로 사다가 걸어놓고는 아침저녁으로 흐뭇해 하다가 그것이 가짜임을 알게 되면 누구나 낙담하고 분노하여 두 번 다시 그것을 쳐다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사람한테서 일어난 것이지 그림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어른들은 화가의 이름으로 그림 값을 매긴다. 아이들은 그림으로 그림 값을 매긴다. 마음 공부란 어른에서 아이로 돌아가는 공부다. 

40.여자들이 이끌어가는 새 세상에 남자들은 즐거이 협조해야 한다

바야흐로 여성 상위 시대가 오고 있다는 얘긴가? 그렇다면 반가운 일이다. 이제 세상은 여성 기질 womanhood이 중심을 잡고 이끌어가는 세상으로 바뀔 대가 되었다. 유연함 보다는 강인함, 수용 보다는 배타, 융합 보다는 분열, 방어 보다는 공격, 안 보다는 밖을 추구해 온 남성기질 manhood이 더 이상 지구행성을 지배하면 전체적 파멸밖에 얻을 것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남자들이 여자들을 억눌렀듯이 여자들이 남자들을 억누르는 세상으로 된다면 그것은 새로운 비극을 불러 올 것이다.
다만 여성 기질이 이니셔티브를 잡되 남성 기질의 적극적 협조를 얻어야 한다. 여자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에 남자들이 기꺼이 즐기면서 참여해야 한다. 

41.누가 나를 이 허위의 늪에서 건져줄 것인가?

거짓말을 하면서 거짓말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참말인가, 거짓말인가?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꿈에서 깨어났으니, 사람들이 조롱하든 말든 식사기도를 시키면 조용히 식사기도나 해야겠다.

42.모든 사람이 완벽한 사람이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궁극의 깨달음을 얻어 무아無我를 성취하기까지는 옹근 전체(하나)의 한 부분일 따름이다. 부분은 부분이다. 모자람에 무슨 모자람이 다시 있을 것인가? 모든 존재가 있 는 그 대 로 완벽한 모자람(부분)이다.
더 이상 완벽한 인간이 되고자 부질없는 수고를 하지 않겠다. 물이 어떻게 물로 되고 참나무가 어떻게 참나무로 되랴? 종로에서 서울로 갈 수 없듯이, 하느님 나라 또한 내게는 갈 수 없는 나라다. 

43.사랑하는 대상과 하나로 되는 것이 사랑이다.

지혜로운 사랑은 저와 세상을 살리지만 어리석은 사랑은 저와 세상을 함께 죽인다. 극약은 아이들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두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서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 지혜라는 이름의 의사가 처방한 대로 쓰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사랑'이 독약으로 바뀐다.

44.뿌리로 내려가면 거룩하지 않은 인간이 없다

어딘가에 소포를 보내는데 우표 붙일 자리가 모자라서 우표 위에 우표를 겹으로 붙였다. 누군가가 옆에 있다가 그러면 속에 있는 우표는 보이지 않으니까 안 붙인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했다. 그러자 기림이가 말하기를 "그래도 붙인 것은 붙인 것이지" 내가 말을 이었다. "보이고 안보이고는 저쪽 사정이고 붙여야 할 우표를 붙이는 것은 이쪽 일이야. 사람이 신용을 지키는 것은 자기를 지키는 일이지."
내가 세상을 믿고 살아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문제다. 상대가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계산하는데서 불신의 싹이 튼다. 사람을 보되 겉모습에 눈길을 머물지 말고 보이지 않는 그의 뿌리를 보도록 애쓸 일이다. 뿌리의 차원으로 내려가면 거룩하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45.예정에 없던 일들이 세상을 신선하게 만든다

세상은 예정대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예정대로 돌아가지 않기도 한다. 그게 세상이다. 그래서 사실은 더욱 흥미롭고 신선한 세상이다. 모든 일이 인간의 예정대로 돌아간다면 그보다 지루하고 싱겁고 구역질나는 세상도 없을 것이다.

46.꿈에 대하여 잠들어 있으면 꿈을 꾸지 않는 것과 같다

괜히 겪는 일은 없다. 밥을 먹었으면 소화를 잘해서 삶의 에너지로 바꿔야 하는 것과 같다. 꿈을 기억한다는 말은 꿈에 대하여 깨어 있다는 말이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이 무엇이며 이 경험에서 무슨 가르침을 받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가운데 인생은 차츰 무르익어 간다. 그것이, 잠들지 말고 깨어있으라는 옛 스승의 가르침이다.

47.크고 넓은 집은 좋은 집이 아니라 그냥 크고 넓은 집이다

우리는 지금 있는 집보다 평수가 크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면 '좋은 집'으로 간다고 말한다. 지금 타는 차보다 크고 비싼 차로 바꾸면 '좋은 차'로 바꾼다고 말한다. 보통 가죽 가방이 아닌 이른바 명품 고급 가죽가방을 가지고 다니면 '좋은 가방'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 말에 담겨있는 터무니없는 거짓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어째서 크고 넓은 집이 좋은 집이란 말인가?
크고 넓은 집은 좋은 집이 아니다. 값비싼 승용차는 좋은 차가 아니다. 그냥 크고 넓은 집이고 비싼 차일 뿐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집일 수도 있고 나쁜 차 일 수도 있는 것이다. 좋고 나쁨은 사물에 있지 않고 그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인데, 우리는 더 크고 비싼 것이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무의식적 고질병을 앓고 있다. 이 병에서 먼저 자유로워야 한다.

48.문제는 늘 복잡하고 대답은 언제나 간단하다

너무나도 심각한 인생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마더 데레사가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사랑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렇다. 문제는 본디 거창하고 복잡한 것이다. 그러니까 문제 아니겠는가? 그러나 해결책은 작고 단순한 데 있다. 다만, 그 작고 단순한 해결책을 발견하기까지가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정인 것이다.

49.왜소한 자는 왜소하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다

정말이지 나는 몸을 더욱 숙여야겠다. 할 수만 있으면 세상에서 몸을 감추어야겠다. 아아, 밝은 도道는 어두운 것 같고 평탄한 도는 울퉁불퉁한 것 같고 크게 밝은 것은 욕됨 같고 너른 덕德은 모자라는 것 같다고 했거늘, 이제부터라도 나는 내 왜소함을 사랑하며 왜소하게 살아야겠다.
후후 또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 왜소한 게 왜소하게 살아야지 별다른 수 있다더냐?

50.한없이 커지는 또는 작아지는 격자 무늬 속의 또는 겉의 격자무늬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양곡>은 완성된 미완성인가, 미완성된 미완성인가? 결론이야 어떻게 나든, 그것이 슈베르트의 다른 많은 작품들에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미완성'이라는 이름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더욱 많이 받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혹시 그 까닭이, 저마다 자기가 미완성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51.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음은 그 자체가 은총이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함께 복잡한 시장에 갔는데, 웬 아이가 무척 부러워하는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따라왔습니다.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엄마와 함께 이런데 와서 엄마를 도와 물건을 들어드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없냐고 물어보자 아이의 대답이 "여기서 길을 잃었어요. 어디가 나가는 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아이를 인도하여 시장에서 나가는데 까지 데려다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아이가 작은 손으로 어머니의 짐을 덜어주는 모습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부러워하는 눈길이 있었다는 얘기는 조금 신선하다.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은, 그 '누구'가 사랑하는 사람일 경우에는 더욱, 은총이다.

52.길웅이라는 청년

길웅이라는 청년이 사람들의 칭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까닭인즉, 그의 곁에는 언제나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길웅 청년의 둘레에는 언제나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늘 그들을 돕고 있으니 도움 받는 쪽에서 도움 주는 쪽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그 청년한테만 모여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눈이 밝아서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그대그때 알아 본 것뿐이다. 이 세상에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사람이 있겠는가?

53.세상은 보물 창고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세상에 하나 뿐인 보물들이다. 다만, 그것을 알아보고 즐길 줄 아는 안목을 지닌 인간이 드물 따름이다. 심불재언(心不在焉)이면 보아도 보지 못한다고 했다. 마음이 먼저 그것에 가 있어야 그것이 들리고 보이는 법이다.
작은 도움 하나로 커다란 행복을 살 수 있는 곳이, 전쟁과 증오와 속임수로 어지러운 이곳 난장판 세상이다. 나도 마음만 있으면 내 주변을 도움이 필요한 보물들로 가득 메울 수 있다. 역시 문제는 눈이다. 보물을 보물로 알아보는 안목이다.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왜 보물인가? 나를, 사랑과 칭찬을 한 몸에 받는 존재로 만드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54.모기 

생각하며 잠시 누워 있자니 모기 소리가 앵- 하고 들린다. 왼손이 벌써 코끝을 탁- 친다. 자동이다. 살생에 자동화된 것은 내 왼손인가? 아니다. 왼손은 아무 잘못이 없다. 그럼 무엇인가? 이러고 있는데 어깨 위에 무엇이 내려앉는 가벼운 느낌이 든다. 다시 왼손이 자동 반격. 그러니 이번에는 그러고 있는 나를 처음부터 보았다.
다시 오면 가만있어 보리라. 모기한테 몇 방 물려서 어찌 되기야 하겠나? "피 0.0001그램만 다오" 이어서 뾰쪽한 침이 살에 들어와 박히는 느낌. 한 참 기다렸다가 이제 식사를 마쳤겠지 하면서 손으로 만져보니 모기 물린 자리가 둥글게 부풀어올랐다. 속으로 중얼거려본다. "먹었으면 설거지나 잘 하고 갈 것이지. 얘들은 꼭 성가신 뒷설거지를 나한테 맡긴단 말이야!"

55.저마다 최선을 다해 자기 길을 가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데 모기 한 마리가 날아온다. 어찌 하는지 두고 보기로 한다. 무릎 위에 앉았다가 날아서 왼손 등에 앉는다. 자리를 잡고는 침을 찌른다. 뒷다리 하나를 하늘로 치켜올리고는 나머지 다섯 다리로 버티고 서서 펌프질을 한다. 침이 흔들리면서 조금 따끔한 느낌이다. 계속 마음놓고 펌프질이다. 시간을 재어본다. 예상보다 오래간다. 5분쯤 그렇게 펌프질을 하다가 드디어 침을 뽑아낸다. 잘 보이지도 않던 모기의 아랫배가 익은 보리쌀처럼 통통하니 살이 쪘다. 저 정도면 0.0001그램이 아니라 0.01그램은 족히 되겠다. 드디어 모기가 날아 올랐다.
모기 앉았던 자리를 중심으로 반경 1쎈티미터쯤 둥글게 붉은 빛을 띤다. 침 꽂았던 자리에는 작은 무덤이 생겼다. 그런데 어찌된 것일까? 조금도 가렵지 않다. 오늘 녀석은 설거지까지 착실하게 하고 간 모양이다.

56.부끄러운 자랑거리

내 명함 한 장을 두고 아내와 다투었다. 그 명함에는 내 주소와 이름과 전화번호가 찍혀 있고, 같은 계통의 엷은 색깔로 이를테면 배경사진이 박혀 있는데 사진이 아니라 자필 글씨였다. 그런데 그 내용이 어느 살롱에서 이 달의 신사로 뽑혔다는 것이다. 세상에 무슨 자랑할 것이 없어, 술집에서 이 달의 신사로 선정된 것을 자랑한단 말인가?
깨어나서 스스로 한심스러워 하고 있는데 번쩍 떠오르는 짧은 한마디. "네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살롱에서 손님들 유혹하느라고 이 달의 신사니 이 달의 왕자니 이 달의 영웅이니 온갖 허명虛名을 나눠주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받고 자랑스러워 뽐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맙소사! 

57. 나는 나보다 무지 큰 자다

천하天下는 신기神器라 불가위야不可爲也라 했다.
내가 바로 천하다.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신의 그릇이다.
어느 누가 감히 나를 심심풀이 땅콩으로 삼는단 말인가? 

58. 사랑은 저를 담은 그릇보다 크다

잠에서 깨어나 창 밖으로 밝아오는 아침을 내다보며 생각한다.
내 인생도, 60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치면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앞으로 또 얼마나 더 겪을지 모르지만, 끝에 가서 남는 것은 말없이 주고 받는 소박한 사랑, 그것밖에 없지 않을까? 부디 그렇게 되기를!
오늘도 어제처럼, 아무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저 사람은 왜 저 모양일까 언짢아하지도 않고, 공손하게 미안하게 하루의 모든 것을 모셔야겠다.

59.침묵을 하려면 제대로 하여라

"침묵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구요?"
"제대로 된 침묵은 지금 너로서는 언감생심이다. 성의껏 하라는 얘기다. 밖으로 내보여지는 침묵은 쇼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침묵이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만사에 네 생각, 네 느낌을 좇지 말아야 한다. 거울에게 무슨 생각, 무슨 느낌이 있겠느냐? 다만 조용히 응할 따름이다. 너는 말하지 말고 대답만 하여라."
"철저한 피동태로 존재하라는 말씀인가요?"
"그래서 나로 하여금 네 안에 온전한 능동태로 살아있게 하여라."

60.나는 잡으려고 달려가지 않겠다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예수에게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했다. 그의 고백을 존중한다. 그러나, 나는 무엇을, 그것이 무엇이든, 잡으려고 달려가지 않겠다. 예수가 나를 잡으셨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새삼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아.무.일.도.하.지.않.겠.다. 뿌리에서 잘려 나와 구멍 뚫린 대나무 막대기(피리)가 무슨 짓을 스스로 할 수 있겠는가? 

61.잡음은 입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

잡음이 섞여 나오는 마이크로는 말을 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법이다. 그런 상태로는 말하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고단하기만 하다. 마이크는 아무 잡음이 섞이지 않는 마이크가 좋은 마이크다.
마이크 시설의 원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마구 코드를 뽑았다 꽂고 마이크를 주먹으로 치기도 하면 결국 잡음만 키운다. 마이크에서 잡음이 들리면 얼른 기계(엠프 시스템)를 조절하거나 손봐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내 말에 잡음을 섞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순수한 말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까? 내 입에서 잡음이 없는 순수한 말이 나오게 하려면 잡음이 나오는 구멍을 막아야 한다. 마음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는 법. '잡음'은 마이크(입)에 있지 않고 기계(마음)에 있다.

62.매미들이 새벽부터 울어댄다

50년 전 구룡동 여름 뒷산에서 듣던 바로 그 소리다! 보리매미는 보리매미, 참매미는 참매미, 쓰르라미는 쓰르라미 소리로만 운다. 다른 소리를 낼 수도 없고 내지도 않는다. 바라노니 이 아무개여! 너는 너만이 낼 수 있는 네 목소리로 살아가거라. 다른 사람 소리는 아무리 근사하게 들리더라도 시늉 내려 하지 말아라. 남의 소리를 흉내내는 데 재미가 들려 타고난 제 소리를 잃어버린 앵무새는 되지 말아라.

63.사람이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단정지어 말하는 낡고 고약한 버릇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순간순간 내 생각과 내 말에 대하여 깨어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럴 수 있기를 바라는 것까지 불가능한 일은 아니렷다!
단정지어 말하지 않는 것은 관두고, 엉뚱한 추측으로 애먼 사람 잡는 일만이라도 하지 않게 되기를. 혹시 누가 내게 그러더라도 그 터무니없는 말에 너무 오래 휘둘리지 않게 되기를.

64.뿌리가 깊게 숨을수록 나무는 건강하게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세상의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 벌어지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악행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숨어서들 한다. 그래서 악행에 실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선한 일을 해놓고도 욕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숨어서 하지 않고 처음부터 그것을 세상에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어떤 씨앗도 햇볕에 노출된 상태로는 싹을 틔우지 못한다. 뿌리가 어둠 속에 깊이 숨을수록 나무는 건강하게 자라서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 법이다.

65.생일이 좋은 날이면 장삿날도 그만큼은 좋은 날이다

넓은 홀에 사람들을 앉혀놓고 설교인지 강연인지를 하는데 이런 말을 했다. "결혼이 중대한 인생사라면 이혼도 그만큼 중대한 인생사다. 기쁘게 결정한 일도 소중하지만 슬프게 결정한 일도 소중하다. 그러므로 결혼하는 두 사람을 축하하고 격려해 주는 것만큼 이혼하는 두 사람도 축하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어쩌면 결혼보다 더 많은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결혼보다 더 힘들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이혼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청중 가운데 여럿이 손을 번쩍 들고 박수를 쳤다. "지금 손 든 사람들 결혼할 사람들이냐, 이혼할 사람들이냐?" 하고 물으니 "와-"하고 웃었다.

66.내 생각을 두 번 이상 말하지 않겠다

무너지는 것은 무너지게 두든지 무너지지 않게 하든지 둘 중에 하나다. 무너지지 않게 할 수 있으면 하고 아무리 해도 그럴만한 능력이나 상황이 되지 않을 때에는 그냥 무너지게 두고 돌아서는 게 상책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피해야 할 것은 다만 억지를 부리는 일이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억지 아님'이고 어디부터가 '억지'인지를 분별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혹시 자연스러움과 억지 부림이 어떻게 다른지 그것 하나 배우려고, 이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인생 아닐까? 내 생각과의 의견을 아예 없애고 살 수는 없다. 거기까지는 아직 못 갔다. 그러나 내  생각과 의견을 두 번 이상 말하지는 않겠다. 거기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67.나를 위한 나에 의한 나의 길

30년 넘도록 함께 살아온 아내가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알기에 "당신은 저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자주 말했는데 처음에는 그 말이 인격 모독으로 들릴 만큼 싫더니 언제부턴가 '정말'로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렇다"고 시인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야말로 하늘이 내게 주신 은총이었다"고 뻔뻔스럽게 말한다. 여태껏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듯이 앞으로도 아마 내 관심은 '나'를 중심에 두고 그 언저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68.과잉 섭취는 건강을 해친다

요즘, 물가는 치솟고 주가는 떨어지고 내수 경기는 몰락하고, 경제가 말이 아니라고 야단들이다. 혹시 그 까닭이 과잉 생산에 있는 건 아닐까?

69.너를 괴롭히는 자들 모두가 바로 너다

나는 왜 꿈을 꾸는 것일까? 진짜 이유를 확실히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꿈이 내게 끊임없이 무엇인가 가르침을 준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 가르침을 얼마나 실생활에서 내 것으로 몸에 익히느냐는 별 문제다. 간밤 꿈만 해도 내게, 너를 쫓아다니며 네 인생을 고달프게 하는 모든 존재가 '남'이 아니라 바로 '너'라고 일깨워주지 않는가?

70.그가 늘 일등만 한 것은 혼자서 달렸기 때문이다.

간밤 꿈에 본 소주광蘇周光. 그는 언제나 일등이었다. 남들보다 빨리 달려서가 아니라 어디서나 혼자 달렸기 때문이다. 그의 일등이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보다 아름답고 빛난 까닭은 그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이등 이하 꼴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일등이 밤하늘 북극성처럼 영원하고 진실한 까닭은 사람들이 땅에서 무엇을 하든 결국은 혼자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71. 인류는 지금 중요한 학습을 받는 중이다

이 학습을 통해서 배우게 될 교훈은 내가 남에게 하는 일은 남에게 하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늘이 정한 법이기에 아무도 어길 수 없지만 아직까지는 몇몇 깨친 자들만이 그 법을 따라 살았고 나머지 대다수는 그 법을 어겨서 저와 남을 함께 괴롭혀왔는데 이제 바야흐로 대중이 그 법을 깨칠 때가 되었다. 값진 교훈일수록 받아서 익히는 데 그만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직업 군인 아닌 무수한 아이와 여자들이 죄 없이 죽어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72. 계산하지 말아라

"나는 계산을 하지 않고 세상을 살았다. 내가 계산을 했다면, 잃은 양 한 마리 찾고자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들판에 버려 두고 갔겠느냐? 내가 계산을 했다면 배고픈 5천 군중 앞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놓았겠느냐? 내가 계산을 했다면 새벽부터 일한 사람과 해거름에 와서 일한 사람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품삯으로 주었겠느냐? 내가 계산을 했다면 재산을 탕진하러 가는 아들을 그냥 보냈겠느냐? 내가 계산을 했다면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새 옷을 주고 잔치를 베풀었겠느냐? 내가 계산을 했다면 배신할 게 분명한 유다를 마지막날 밤까지 곁에 두었겠느냐? 내가 계산을 했다면 십자가를 지고 아버지께 버림받았겠느냐? 나는 계산하지 않고 살다가 계산하지 않고 죽었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다." 

73.하느님의 사랑은 대상을 찾지 않고 만든다

참사랑은 대상을 고르지 않는 게 아니라 고르지 못한다. 골라낼 대상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74.어떤 싸움에서도 이기지 않겠다.

나는 처음부터 하찮은 존재였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무엇이나 된 줄로 알았던 오랜 착각에서 이제 그만 해방되고 싶다. 누가 내게 덧걸이나 딴죽걸기를 시늉만 해도 벌러덩 나자빠지고 말리라. 어떤 싸움에서도 이기고 싶지 않다. 물이 흐르다가 막혀서 괴는 것은 장애물을 무너뜨리고 계속 흐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막힐 수밖에 없어서 막혀 있자니 괴는 것이고, 괴어 있자니 스스로 무거워져서 장애물을 무너뜨리거나, 아니면 수위가 장애물보다 높아져서 타넘게 되는 것이다.

75.자기보다 큰 물건은 버리지 못한다.

사람은 자기보다 큰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 사람이 어떤 물건을 버렸다는 것은 그 물건보다 커졌음을 뜻한다. 집이 사람보다 크면 그 기에 눌려서 사람이 크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본디 어떤 집이든 처음에는 집 주인보다 집이 큰 법이다. 문제는 저보다 큰 집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집보다 커져서 집을 버리고 더 큰 집으로 옮겨갈 수 있느냐다. 인생이란, 가없는 우주 공간에 저보다 작아진 헌 집을 떠나 저보다 큰 새 집으로 끝없이 이사가는 여정 아닐까?  

76.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다. 어차피 승패는 나기 마련이니 누가 지고 누가 이기는 게 무슨 상관이랴만, 반칙을 하면 즐거운 놀이 자체가 더러운 싸움질로 바뀌고 마니 승패를 떠나서 할 짓이 못 된다. 규칙은 그것이 더 이상 소용없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병아리에게 달걀 껍질이 그러하듯이.

77.잡으면 잡힌다

그대 장미를 생각한다면 그대 장미로 될 것이다.
그대 꾀꼬리를 생각한다면 그대 꾀꼬리로 될 것이다.
그대눈 물 한 방울 신성하신 분은 옹근 전체
살아있는 동안 전체이신 그분을 생각으로 붙잡아라.
그대, 옹근 전체로 되리니.  -지브 운-니사 

78.생각이 다른 사람이라도 서로 존중하는 세상을

비대한 몸집의 여자 혁명가가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말했다. "맨 처음 칼 마르크스의 논문 한편을 읽었을 때 가슴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 같았소." 그리고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당신은 그런 경험이 없나요?"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매우 따스한 부모 아래에서 젖먹이 시절을 보냈어요. 그래서 그런지 과격한 일에는 낯이 설지요. 아마 내가 그 논문을 읽었더라면 폭탄이 터지는 대신 얼어붙었을 겁니다. 나는 마오쩌뚱이나 게바라 보다 석가나 예수가 더 좋았어요. 시끄러운 데보다 조용한 데가 더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줍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 나 자신을 바꾸는 게 시급한 과제요, 그게 바른 순서라고 생각했지요. 그렇지만 당신처럼 인간보다 제도와 사회를 먼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고, 또 그런 생각에 동의는 하지 않지만 존중은 합니다. 저마다 자기 소신껏 살아가는 인생이니까요. 다만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 해도 서로 존중해주는 그런 세상이면 참 좋겠습니다. 생각이 달라도 함께 살려고 애써보다가 정 안되면 경계를 나누어 생각 같은 사람끼리 다로 살면 안 될까요? 그러면 누가 더 좋은 땅을 차지할 것이냐로 싸운다고요? 만일 당신이 나 같은 종자하고 같이 살 수 없다고 한다면 더 좋아 보이는 땅을 차지하십시오. 나는 당신이 남겨놓은 쪽에서 살겠습니다. 아마 마오쩌뚱보다 예수를 더 좋아하는 자라면 저와 생각이 같을 것입니다. 그것까지도 허용할 수 없다고 하신다면, 당신의 혁명에 동참하든지 아니면 반동분자로 처형을 당해야 한다고 하신다면, 할 수 없지요. 나를 처형하시고 당신들의 낙원에서 만수무강하십시오"
여기까지 얘기하다 가슴이 격해져서 깨어났다. 꿈이 아니라 생시였어도 비슷한 말을 했을 것이다. 과연 그런 경우가 닥쳤을 때 그렇게 실천할는지는 모를 일이나...

79.샤먼의 길을 가려면

"아무리 신을 모시는 몸이지만 그가 명하는 바가, 일반 상식선에서 양심을 짓밟는다든가, 나 아닌 남을 무시 또는 억압한다든가, 자연법을 어겨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거역하겠다."
신의 명령이라 해도 어겨야 한다고 판단되면 어기겠다는 말은 내가 한 말이지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명령에 무조건, 기계처럼 복종하기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우상이지 살아있는 신이 아니다. 한때 그런 신을 상상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80.모든 얼굴이 내 얼굴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요, 내가 그를 미워하는 것은 곧 나를 미워하는 것이다. 내가 간디를 존경하는 것은 곧 나를 존경하는 것이요, 내가 히틀러를 경멸하는 것은 곧 나를 경멸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간디와 히틀러를 나란히 존경할 수 없다. 나는 속도 보아야 하지만 거죽도 보아야 한다. 거죽과 속을 함께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불가능하다. 이 한계를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존경하면서 삼가고 경멸하면서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여기까지다. 앞으로 어찌 될 지는 모른다. 미리 알고 싶지도 않다. 

81. 함부로 하는 선행은 폭행 일 수 있으니 마땅히 삼갈 것이다.

세 사람이 둘러앉아 고깃국을 먹었다. 먹다보니 A의 국그릇엔 고기 건더기가 하나도 없는데 내 그릇에는 좀 있기에 하나를 젓가락으로 건져서 A의 국그릇에 넣어 주었다. 그러자 B가 자기 국그릇에서 말아놓은 밥과 국물을 건져 내 그릇에 쏟아 부었다. 순간 속에서 욕지기가 났다. 국물에 불어터진 밥알은 내가 싫어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도 B는 무슨 좋은 일을 했다는 그런 흐뭇한 표정이었다. 순간 B가 내게 한 것과 똑같은 짓을 내가 A에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A가 고깃국의 고기 건더기를 싫어할 수도 있지 않은가?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도와준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자칫,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상처를 입히거나 손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맘을 먹었다 해도 함부로 선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겠다. 자칫하면 선행의 탈을 쓴 폭행이 될 테니까.

82.몇 사람이 움직여도 한 구령에 따르면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렇다. 세상에는 구령이라는 게 있다. 한 사람이 움직이든 두 사람이 움직이든 아흔 아홉 사람이 움직이든 저마다 한 구령에 집중하여 자기를 복종시키면 그 모든 움직임에 흐트러짐이 없을 것이다. 지휘자의 손짓 눈짓에 따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오케스트라처럼. 문제는 각자가 제 구령을 만들어서 거기에 따라 움직이려 한다는 데 있다. 그러면 저만 다치거나 죽는 게 아니라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따라서 다치거나 죽는다.

83.젊은 고집으로는 늙은 고집을 꺾지 못한다

젊은이 둘과 둘러앉았는데, 청년들이 교회 어른들의 고루한 간섭에 반항하다가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며 그 대책을 논하는 자리였던 것 같다.
한 젊은이가 다른 젊은이(청년회장이라고 했다)을 가리키며 "이 친구는 너무 착해서 탈입니다." 하고 말했을 때 내가 입을 열었다. "저 친구가 착해서 탈이면 내가 보기에 자네는 너무 안착해서 탈인 것 같네. 자네는 젊은 고집과 늙은 고집이 부닥칠 때 젊은 고집이 늙은 고집을 꺾을 수 있다고 보는가? 천만에 말씀! 사람이고 나무고 늙어 죽을 때가 가까울수록 더욱 단단해 지는 법이라네. 만일 자네들이 교회 어른들을 그런 식으로 해서 꺾는다면 그건 자네들이 어른들보다 더 늙었다는 반증일 뿐일세. 자네가 나이는 나보다 한 참 아래인 것 같은데 생각은 나보다 더 늙은 것 같군! 완력으로 늙은이들을 꺾으려 들다니!"

84.민들레가 괴물을 물리친다

아무도 일삼아 씨뿌려 가꾸지 않는 꽃. 그래서 더욱 강인한 생명력으로 아스팔트 돌 틈에도 뿌리박아 사는 꽃. 밤에는 별이 있고 낮에는 내가 있다는 듯, 황금빛 또는 흰빛으로 무리 지어 반짝이는 꽃. 돈도 되지 않고 화병에 꽂히는 장식품으로 되지도 않는 꽃. 누가 거들떠보지 않아도 저 혼자 씩씩하게 피었다가 미련 없이 꽃잎 떨구고 솜털 구름처럼 하늘을 비행하는 꽃! 그런 민초民草들이, 제가 저를 죽이는 '괴물'의 눈을 멀게 하여 스스로 사라지게 한다는(또는 했다는), 가슴 벅찬 예언의 말씀을 주신 것일까?

85.가난과 부는 재물의 문제가 아니다

남들이 보기에 가난하지만 자신은 부자인 사람도 있고
남들이 보기에 부자지만 자신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도 있다.

86.내가 겪는 일들은 내가 차린 밥상이다

언덕 위에 탑이 우뚝 서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 온 영혼들이 마지막으로 통과해야 할 관문이었다. 나는(우리는?) 거기서 세 가지 할 일이 있었다. 용서와 포기와 망각이 그것이었다. 이 세 가지 일을 마치면 탑 모양으로 서 있는 문을 통과하여 '신성한 장소'로 가게 되어 있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 자나 무엇인가를 움켜잡고 있는 자나 어떤 것을 깨끗이 잊어버리지 못한 자는 탑을 통과하여 '신성한 곳'으로 가지 못한 채 멀고 먼 길을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나를 '신성한 곳'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결국, 사람에 대하여는 용서하고 사물에 대하여는 놓아버리고 이 세상 살면서 겪었던 모든 일에 대하여는 잊어버리는 것이란 말인가? 깨어나면서 문득, 한 세상 산다는 게 밥 한 상 차려먹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87.잘 먹는 일도 중요하지만 잘 싸는 일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더욱 중요한 일이 있으니 먹은 것을 소화시켜 삶의 영향소로 삼는 일이 그것이다. 인생이 살면서 겪어야 하는 이런저런 일들, 만나야 하는 이런 저런 사람들, 그것들 모두가 밥상에 차려진 음식물과 같다. 모두 내가 주문한 대로 차려진 것들이다. 개중에는 미처 어떤 맛인지 모르고 주문했다가 먹느라고 고생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내가 주문하지 않는 것은 내 밥상에 올라오지 않는다. 내가 초래하지 않은 사건은 내게 일어나지 않고 내가 부르지 않는 사람은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괴롭게, 때로는 기쁘게 때로는 슬프게, 그 모든 것들을 겪는다. 겪으면서 영혼의 성숙(성장)에 필요한 영양소(가르침)를 섭취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남은 찌꺼기는 미련 없이, 깨끗하게 버려야 한다. 그것이 망각이요 표기요 용서다.

88.지구가 오늘도 탈 없이 제 궤도를 돌고 있는 것은

바다 때문이오. 바다가 쉬지 않고 출렁거리며 또는 급히 흐르며 지구 무게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이란 말이오. 만일 바다들이 모두 얼어버려서 딱딱하게 굳어져 더 이상 출렁거릴 수 없게 된다면 지구는 그 순간 균형을 잃고 스스로 붕괴되고 말 것이오.
사람들은 지구의 재물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편중되어 있다고 걱정합니다만, 그래도 아직 이렇게 소위 '지구 경제'라는 게 파탄에 이르지 않고 버티는 것은 어디선가 '남는 것을 헐어 모자라는 데를 채우는' 하늘의 도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 아니겠어요?

89.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잘못을 저지를 수 없도록 굳어져 있는 것보다 훨씬 낫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은하계의 돌아가는 태양계의 돌아가는 지구 행성에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기울어지는 것을 겁내지 말자. 거꾸로 처박히는 것도 그대로 받아들이자. 안 그러면, 비싼 돈주고 탄 청룡열차를 즐기기는 관두고 죽어라 고생만 하다가 때가 되매 하릴없이 내려오고 말 것과 같은 것이다. 어머니가 얼마나 아프게 낳아 고생하며 길러준 몸인데, 나는 또 얼마나 힘들게 태어난 인생인데, 그렇게 바보처럼 살다 갈 수는 없는 일이다. 
 
90. 별처럼 나비처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또는 걷고 있는 발걸음도 별 같고 나비 같았으면 좋겠다. 언제나 때가 되면 그 자리에서 빛나는 별처럼 변함이 없으면서도, 한 송이 꽃에 붙잡혀 있지 않고 이 꽃 저 꽃 순방하는 나비처럼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정해진 궤도를 따라 한치도 어긋남 없이 순회하는 별처럼 엄격하면서도, 봄날 아지랑이 타고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행보가 가벼웠으면 좋겠다. 별처럼 나비처럼" 

91. 기계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행정 마을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 가서 '반'이라는 성씨를 가진 청년을 만나려고 했다. 마을 입구에 우체국이 있는데 만나러 온 사람을 찾아서 불러주는 편리한 컴퓨터 자동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자판을 두드리려고 보니 ㄱ ㄴ ㄷ ㄹ...은 없고 숫자만 1에서 9까지 뒤섞여 있어 무엇을 어떻게 눌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한 처녀가 다가와 도와주려다가 '반'씨성 하나로는 절대로 이 기계가 사람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하릴없이 우체국에서 나와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막차가 벌써 떠나고 없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와 천천히 걷기 시작했을 때 웬 아이가 다가오더니 마을이 작으니까 집집마다 찾아보면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깜짝 놀라며, 그렇게 쉬운 방법이 있는데 왜 그걸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하고 소리 질렀다.

92. 네 일 속에서 스스로 방관자가 되어라

소리가 외국에 일이 있어 나가는데 공항에서 입국하는 누구를 만나 무엇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했다. 탑승시간은 다가오건만 입국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 혼자 몸이 달아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는데 정작 비행기를 탈 본인은 태연자약이다. 비행기에 탑승하는 일보다 입국자를 만나 주고 받을 것을 주고받는 게 먼저 할 일이니까, 탑승은 그 다음에 생각해볼 문제라는 것이었다. 나는 할 말이 없어 가만있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러다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마디. "무슨 일을 하든 지극 정성으로 하여라. 동시에 그 일속에서 방관자가 되어라!"
일을 정성껏 하되 일에 예속되지 말라는 일에서 자유로우라는 얘기다. 간밤 꿈에 소리를 자기 일에 방관자였고 나는 남의 일에 주인아닌 주인이었다.

93.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드러날 진실을 향해 춤추는 가짜였다

벼 가마에 담긴 벼를 심사할 때 벼가마 옆구리를 찔러 벼를 꺼내는 작은 쇠삽이 있다. 대나무로 만든 찻숟갈 비슷하게 생겼다. 그것으로 벼 가마를 찌르면, 거죽에는 ~ 형태로 자국만 남고 벼 한 톨 그리로 새어나오지 않는다. 누군가, 그와 같이 생긴 두 개의 삽으로 잡목들이 듬성듬성 나 있는 풀밭을 찔렀다. 그러게 해서 생긴 흔적을 통해 땅 속으로 들어가자 놀라운 세계가 펼쳐졌다.
모든 것의 뿌리가 땅 속에 있다. 나무들만 뿌리를 땅 속에 둔 것이 아니다. 지상에 있는 것은 때가 되면 지하로 돌아갈 공동 운명을 지니고 있다. 오직 하나,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물건이 있는데 그것만이 때가 되면 땅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다. 우리가 영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그것이다

94.안으로 들어가면 하나요 밖으로 나가면 여럿이다

인생은 진지하게 산다는 것은, 히말라야 산 속이나 고대 티베트에 사는 것처럼, 명상 속에서 일생을 보낸다는 뜻이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인생의 깊은 의미를 관조할 짬도 없이 9시 출근 5시 퇴근에 얽매여 살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균형을 이루는 것, 중도를 발견하는 것, 지나친 활동과 막중한 임무로 자신을 혹사하지 말고 우리 인생을 더욱 더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다. 현대인이 행복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열쇠는 '단순함'에 있다.(소걀 린포체)

95. 밥 한 그릇 만들어 먹는, 거기에 설교가 있다

밥 한 그릇 만들어 먹는, 그 속에 진짜 설교가 숨어있다. 그것을 찾아서 나눠야 한다. 그렇다! 연두색 가운 아래 몸을 감추고 높은 강대상에서 청중을 내려다보며 듣거나 말거나 쏟아내는 설교는 설교가 아니라 폭력이다.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폭력을 행사했던가! 죄송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사 속에 감추어두신 하나님의 보물을 찾아 값없이 나누는, 그것이 진정한 설교다. 

96.내 도움 없이는 아무도 나를 돕지 못한다

구원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받는 내가 없다면, 누가 누구에게 구원을 베풀 것인가? 도움 받는 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누구도 누구를 도울 수 없는 법이다. 

98.받은 것은 많은데 줄 것은 없다

바울은 아무것에도 빚진 바 없고 다만 사랑에 빚졌다고 했지만, 나는 사랑을 포함하여 모든 것에 빚진 자다. 그리고 그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 능력만 없는 게 아니라 그럴 만한 자격도 없는, 나는 천생天生 거지다. 이 사실을 망각하고, 저에게 무엇이 있는 줄 착각하여, 감히 "내가 이것을 너에게 준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 지금 내가 안고있는 문제다. '망각'이 낳은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자의 하늘같은 자유를 맛이라도 보려면.

99.꿈에도 길이 있다

꿈속의 내가 한 짓은 꿈꾸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내가 꿈에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형사들이 나를 잡아갈 리도 없고, 꿈에 말보다 빨리 달렸다고 해서 국제육상경기연맹이 나에게 세계에서 제일 빨리 달리는 사람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메달을 안겨줄 리도 없다. 꿈에 햄 소시지를 먹었지만 그 때문에 두드러기로 고생할 리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인도의 라마나 마하르쉬는 말하기를, 우리가 현실이라고 알고 있는 이것과 꿈이라고 알고 있는 그것이 사실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 모두가 꿈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어서 깨어나려고 괜히 안달할 것 없다. ⓒ이현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