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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상

사도행전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981 추천 수 0 2009.12.13 15: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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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11:19-30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2002.10.31
 지금 예수 믿는 사람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될까요? 기독교인 19억이라고 합니다. 교파 3만 3820개이고 기독교전임사역 자들(목사, 선교사, 전도사)은 5백 15만1천명이라고 합니다. 세계 교회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나라 교회 숫자를 보면 <한국종교연감>에 의하면 전국에 4만 2천 5백 89개의 교회가 있는 것으로 밝혀 지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많은 교회르 가지고 있는 교단이 장로교 합동 6626 교회(작년), 그다음은 예장통합으로 6천61교회였습니다. 그러면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생긴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설립된 교회는 안디옥 교회입니다. 본래 안디옥은 시리아의 수도였고 로마 시대 세계 삼대 도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인구 50만으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유명한 도시였고, 너무 아름다운 도시여서 이 안디옥을 가르켜서 '아시아의 눈'이라고 했고, 동쪽의여왕이요, 황금의 도시 안디옥이라고 불리우리 만치 무역과 산업과 문화가 교차되어 있는 유명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예술의 도시오, 실크로드가 포함되어있는 도시오, 헬레니즘과 로마의 문화가 함께 있고 세계 문화가 교차되는 곳이요. 시리아인, 로마인, 유태인 세계 여러나라 백성들이 모여 사는 자유도시였다고 합니다. 최초로 가로등을 밤새도록 켜고 있는 도시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도시는 전부 대리석으로 포장을 하리만큼 부요한 도시로 돈이 가장 숭배닫고 스포츠 발달되고 향략문화가 판을 치며 아폴로 신등 다양한 신을 섬기는 도시였습니다.
이 곳에 세계 선교를 감당하는 안디옥 교회가 만들어 졌습니다.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안디옥 교회를 좋은 교회로 평가하고 있고 우리도 이 안디옥 교회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교회 이름을 안디옥 교회로 짖는 교회들도 세계에는 많이 있습니다. 오늘 한 시대에 아름답게 쓰임받은 안디옥 교회를 살펴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상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가 배울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지상 교회들이 있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상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하여 세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교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둘째는 교회의 구성원 셋째는 교회의 사역 관점에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이냐 그렇지 않느냐? 좋은 교회이냐 나쁜 교회이냐라는 문제는 그 교회의 주인이 누구이냐가 문제입니다. 사탄이 교회의 주인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개척 맨버가 주인이 될 수도 있고 개척한 목사가 주인이 되어 내것이라고 자식에게 세습을 할 수도 있고 돈 많이 헌금한 장로가 주인이라하여 자신의 마음대로 교회를 끌고가려고 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입니다.
성삼위 일체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여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 없이도 얼마든지 부흥하고 세상적으로 잘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교회는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가 아닙니다. 어떤 교회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1) 본문: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받았습니다. 스데반은 순교를 당하였고 그 환난으로 사람들은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게 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고향을 버려야 합니다. 당시 농경 사회에서 논밭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아니면 가족은 놓아 두고 자신만 도주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흩어져서 무엇을 했습니까? 19-20절을 보십시오.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수다한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자신들이 스스로 개척하여 만든 교회가 아닙니다. 핍박을 받으니까 할 수 없어 도망가 세운 교회입니다. 억지로 된 교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교회를 잘못된 교회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후세의 사람들은 안디옥 교회를 보면서 모범적인 교회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니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 왔습니다. 나중에 바나바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에 파송되었을 때 아주 기뻐하였는데 왜 기뻐하였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어떻게 교회가 시작이 되었든 하나님이 함께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세운 교회이고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을 흩은 것은 그들이 예루살렘에 안주하니까 결국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명령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핍박이라는 도구를 하나님이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연약한 사람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만들게 하였고 헌신된 사람 바나바를 세워 교회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2)이 시대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가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할 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교회는 진정 하나님의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단지 인간들의 사교 모임이나 인간들이 자기 자랑하고 사람을 섬기는 모임이라면 그 교회가 아무리 화려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손이 움직이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문화의 손, 권력의 손, 돈의 손이 움직이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피값을 치루고 왜 교회를 이 땅에 세웠습니까? 마태복음 16장으로 가야 그 의미를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 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누구의 교회입니까? 베드로의 교회입니까? 내 교회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개척맨버의 교회가 아닙니다. 능력있는 직분자의 교회가 아닙니다. 세습해주어야 할 교회가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해야할 교회가 아닙니다. 조금 일을 맡으면 자기 마음대로 할려고 하는 못된 습관이 있습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 하와 같습니다. 이것은 사탄이 이용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끝없이 자기가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국가에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여러 기관을 만들어 놓고 분명 하나님이 주인이다는 사실을 확고하게 해 놓은 기관이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마저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으면 세상은 희망이 없습니다.
출애굽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막을 짓습니다. 그 성막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법궤를 모셔 놓은 곳입니다. 성막이 쳐 지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모습을 구름 기둥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법궤를 앞세우고 가면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녀졌습니다.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판을 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세속적인 원리가 들어 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영광의 예배를 받는 곳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솔로몬이 성전 낙성식을 하는 장면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왕상8장). 심령이 병든 자가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치유받아야 합니다. 문제를 가지고 신음하는 자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손을 보고 가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고 가야 합니다.

2.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냐? 그렇지 못하냐를 판단하는 기준 하나는 그 교회의 구성원이 어떤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형편없으면 아무리 화려한 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사람들이 그 교회를 좋은 교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1)본문:
안디옥 교회의 모습을 보십시오.
(1)교회의 개척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19)
자발적으로 주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핍박받아 도망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무명의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이름도 없습니다. 그들은 온전한 성숙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겨우 핍박을 받아서야 순종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지만 19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아직도 유대적 사고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는 편협한 사람들이었고 고정관념을 깨뜨리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복음적인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었습니다(20).
(2)안디옥 교회의 목회자는 누구였습니까?(22)
바나바였습니다. 그는 훌륭한 인격을 가진 자였습니다. 본래 이름은 요셉입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 팔아 헌금할 정도로 헌신(행4:37)된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는 이런 사람들이 있을 때 세워지는 것입니다. 단순히 헌금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착한 사람이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물질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한 사람입니다(23). 중개자로 역할을 잘 감당한 사람입니다(행9:26,27, 행11:25,26) 복음의 열정에 불타는 동역자 바울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소에 운둔 생활을 하고 있는(행9:30) 바울을 한 집 한 집 뒤져 세밀이 찾아 함게 사역을 하였습니다.
(3)다양한 사람들이 교인이었습니다.
유대인도 있고 이방인도 있었습니다. 흑인도 있었습니다. 13장 1절을 보십시오. 니게르사람 시므온은 바로 흑입니다. 권력자도 있었습니다. 분봉왕 헤홋의 젖동생 마나엔이 있어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부유한 자도 있었습니다.
(4)그런데 그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26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이란 말입니다. 바나바가 권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주께 붙어있으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신분은 다르고 능력은 다르고 신앙의 정도는 다르다고 하여도 모두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당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유독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모이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 주께 붙어 있는 사람 그리스도인이 모이는 교회입니다.
신분과 지위가 빈부, 신앙의 정도가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가 주님께 붙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모두가 부족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크리스티아누스의 번역어입니다.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나바는 그들에게 주께 붙어 있으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편지,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교회의 주인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자리에 오실 때 공자의 제사, 석가의 제자, 과학의 제자, 석가의 제자, 텔레비전의 제자, 들이 득실거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신자(christian)는 사라지고 교인(churchman)만 있는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닙니다. 내가 사관학교를 견학했다고 군인이 되는 것 아닙니다. 의과대학에 잠시 다녀왔다고 해서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과대학에 갔다왔다고 해서 판검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드나들었다고 해서 크리스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권사라는 이름이나. 장로라는 이름이나, 목사라는 이름은 있으나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계시록 31에 보면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 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책망하시는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안디옥 교인들이 나가면 그들의 품격과 변화된 생활, 삶의 모습을 보고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날 우리도 저 사람 봐 신앙인 아니야, 작은 예수 아니야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시장에 앉아서 비단장사를 한다고 하여도 소문이 나기를..."그 작은 예수 집으로 가거라. 그집에 가면 틀림없다더라. 물건 속지도 않고최고 좋은 것만 주더라."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의롭다하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고린도후서 5:21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 희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영생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요한일서 3:2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우리는 그리스도의 전권대사가 된 사람들입니다. 고린도후서 5:20에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신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감격한 신분이 속에서 부글부글 타오르니까 입만 벙긋해도 그리스도가 나와야 합니다. 속에 돈이 부글부글한 사람은 입만 벌렸다 하면돈얘기, 속에 욕심이 불글부글한 사람이 입을 벌렸다 하면 욕심얘기...속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입만 벌리면 그것이 나오는데 초대교인들의 가슴속에는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의 은혜가 가득찼기 때문에 입만 벌리면 예수얘기 하나님 애기 했던 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인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모이는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어제 어느 전도사 전화-성지 순례, 해외 여행하는 교회를 소개하였습니다. 그것이 좋은 교회일까요? 요즈음 교인들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 헌금을 가지고 성지 순례, 해외 여행하는 교회가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일까요?
슈바이쳐 박사같은 사람은 음악박사에, 철학박사에, 의학박사에...박사학위가 세개나 있어 유럽의 유명한 대학들이 서로 교수로 초빙하고자 안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모든 것을 사양하고 아프리카 밀림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수고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곳에 병원을 짓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병원을 운영하기에 돈이 너무나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슈바이쳐는 유럽으로 돈을 모으러 떠났습니다.
슈바이처는 파이프 올갠을 직접 제작, 연주하리만큼 음악에 있어 천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파이프 올갠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연주해 주기도 하고해서 돈을 모음니다. 조금이라도 돈을 많이 모으려고 밤이면 삼류여관에 들어가 때묻은 이부자락 뒤집어 쓰고 한쪽 구석에서 꾸부리고 잡니다. 그리고는 아침이면 툴툴털고 일어나 삼등기차를 타고 여행을 합니다. 누가 물었습니다. 그렇게 궁상맞게 그러느냐고...,그렇게 많이 버는 돈중 조금만 편하게 쓰면 어떠냐고...? 그 때 슈바이쳐는 말하기를 그 돈중 한푼도날 위해 쓸돈은 없다고 합니다. 그럼 열차라도 삼등칸을 타지 말고 일등칸을타고 편하게 여행하라고 하니까 사등칸이 없어서 삼등칸 탄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게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3.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을 하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좋은 교회냐 나쁜 교회냐?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냐? 그렇지 않느냐를 평가하는 기준은 그 교회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1)본문:
안디옥 교회가 하는 사역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몇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복음 증거 사역입니다.
수다한 사람 돌아 왔습니다.(20-21) 제 위치로 온 것입니다. 자신을 섬기고 사탄을 섬기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로 돌아 온 것입니다. 24절 보십시오. 바나바를 통하여 부흥이 일어납니다. 인격에 감화됩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제 이방 선교의 중심 역할을 하는 교회로 변하였습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13장) 바울을 이 교회를 전초기지로 삼고 선교를 합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2)양육 사역을 합니다.(26) 바나바와 바울이 힘을 합하여 일년 동안 가르침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주님의 말씀을 철저히 실천합니다. 안디옥은 당시 로마 제국에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큰 도시입니다. 인구 50만의 대도시가 된 고대 도시입니다. 아폴로 신과 잡다한 신을 숭배하였으며 부유하여 향락을 즐기는 도시입니다. 이 곳에서 그들의 사고 방식과 문화를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르침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은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이 교회에서 역사적인 인물이 배출됩니다. AD 2년 순교자 이그나티우스가 감독-루시안 데오도르 크리소스톰과 같은 지도자가 배출되었습니다.
(3)아름다운 동역 사역이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 아가보 여러 성도가 아름답게 동역을 하였습니다. 각자 맡겨준 하나님의 은사에 따라 아름답게 사역을 하였습니다. 27-28절을 보면 아가보가 예언(27,28)을 합니다. 그리고 그 예언이 글라우디오 황제 때 성취됩니다. 그는 바울의 투옥 예언도 예언하여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행21:10) 다양한 직분을 가진 자들이 아름답게 사역하였습니다.
(4)구제 사역을 하였습니다.(29-30)
흉년이 들었을 때 그들은 힘대로 즉 각자의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해 정성껏 헌금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도왔습니다. 복음에 빚진 자들로 사랑을 베풀어야 함(롬1:14) 교회 한 지체(고전12:27 엡4:4)됨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역은 교회마다 다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사역을 하느냐? 인간의 이름을 내기 위해 인간이 원하는 사역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을 낸다고 얼마든지 그릇된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얼마든지 자신의 이름과 하나님과 무관한 자기 교회의 이름을 낼 수가 있습니다.

2)사람이 원하는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사역이 이루는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처럼 도하는교회 (19-21), 환란을 인하여 전도(19상-)하는 교회, 협력으로 전도(19하-20-)하는 교회,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와 함께 전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21).
어는 교회 권사님 한분이 일년에 223명을 전도했다는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111명 전도한 권사님의 이야기도 보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였습니다. 주의 힘으로 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 1:29)"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때의 봉사(27-28)합니다. 힘대로 봉사(29-)합니다. 무명의 봉사를 합니다. 지도자를 양육하는 것이나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나 선교하는 것이나 모두 예수 중심 사역이었습니다.
저들의 사역은, ① 예수 중심의 사역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3절에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② 성경 중심의 사역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6절에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마 28:19-20) 예수의 최후 명령을 실행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교회가 옆 교회가 불이 났을 때 건축헌금을 한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교회 사역은 나의 이름을 내냐 하나님의 이름을 내냐가 관권입니다. 직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분을 주면 자기 이름내기에 급급합니다. 내 마음대로 해보고 싶어합니다. 목회자의 말은 이제 듣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회사에서도 못하는데 하나님께 괜챦겠습니까? 어린 아이들 보십시오. 처음에는 부모 말씀 잘 따르고 같이 여행도 갑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이 넘으면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자신의 생각과는 맡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방향을 바꾸면 바꾸는 것입니다.(행16:7, 10) 내 자존심, 나의 일, 나의 지조, 나의 체면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신앙 생활하면서도 그렇습니다. 창세기 11장 보면 타락한 인간들이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 이름을 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내기를 원하십니다. 목사가 목회하여 성공하여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사역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역을 하여 나는 죽고 고달프고 힘겹다하여도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1. 하나님이 주인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입니다.
2. 교회의 구성원이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사람이 모이는 교회입니다.
3.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을 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상/사도행전11:19-30/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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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6 마태복음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마23:1-12  정용섭 목사  2009-12-15 2041
2525 에배소서 가족의 그리스도론적 정체성 엡6:1-4  정용섭 목사  2009-12-15 2353
2524 요한일서 하나님의 자녀 요일3:1-10  정용섭 목사  2009-12-15 2379
2523 고린도후 자유를 향한 부르심 고후3:17  정용섭 목사  2009-12-15 1764
2522 고린도전 살아 계신 주님 고전15:1-11  정용섭 목사  2009-12-15 1970
2521 베드로전 마귀가 왜 나를 억압하나? 벧전5:8-9  조용기 목사  2009-12-14 2610
2520 누가복음 새 시대 새 삶 눅4:16-21  조용기 목사  2009-12-14 1851
2519 요한복음 사랑과 행복 나누기 요3:16  조용기 목사  2009-12-14 2552
2518 사도행전 오순절 성령 강림의 날 행2:1~4  조용기 목사  2009-12-14 2328
2517 잠언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잠22:6  조용기 목사  2009-12-14 2994
2516 로마서 나의 삶을 다스리는 법칙 롬4:17  조용기 목사  2009-12-14 2011
2515 빌립보서 삶의 푯대와 인생 빌3:13~14  조용기 목사  2009-12-14 2638
2514 열왕기하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 왕하6:14~17  조용기 목사  2009-12-14 2241
2513 시편 감사와 찬양의 위력 시100:4~5  조용기 목사  2009-12-14 3009
2512 마가복음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막15:12  조용기 목사  2009-12-14 1728
2511 고린도후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고후4:11  조용기 목사  2009-12-14 1781
2510 마태복음 화평과 검으로 오신 예수 마10:34-39  강종수 목사  2009-12-13 1844
2509 사도행전 한 시대 하나님의 쓰임받는 사람들 행13:1-3  김필곤 목사  2009-12-13 2697
2508 사도행전 땅을 보는 사람과 하늘을 보는 사람/ 행12:17-25/  김필곤 목사  2009-12-13 3125
2507 사도행전 인간의 불가능 속에 계시는 하나님 행12:1-17  김필곤 목사  2009-12-13 2564
2506 사도행전 한 시대의 순교자 행12:1-3  김필곤 목사  2009-12-13 2032
2505 사도행전 경건한 사람 행10:1-8  김필곤 목사  2009-12-13 2151
» 사도행전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상 행11:19-30  김필곤 목사  2009-12-13 2981
2503 사도행전 변화 행11:1-18  김필곤 목사  2009-12-1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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