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고린도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781 추천 수 0 2009.12.14 16:48:22
.........
성경본문 : 고후4:11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8. 3. 16. 종려주일설교 
<서론>
오늘 저는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심한 고생을 당하면 뭐라고 말합니까? "죽도록 고생했다" "죽을 고생을 했다" 그렇게 말합니다. 고생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사는가" 하고 물으면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을 지경이다" 그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살아 있는 우리가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진다'고 했었습니다. 왜 죽음에 넘겨지느냐. '예수의 생명도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죽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오면 생명도 뒤따라 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죽음의 반대급부는 생명으로써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본론>
1. 왜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져야 하나?
"왜 하필이면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져야 하느냐. 그냥 죽으면 죽었지 왜 예수를 위해서 죽음에 넘겨져야 하느냐."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릴 때 예수님의 생명의 광채가 나타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두워야 빛이 효과가 있지 어둠이 없는 곳에는 빛이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태양이 작열하는데 전등불이 무슨 효과가 있는 것입니까? 어두움이 내리 깔아야 전등불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죽음이 있는 곳에야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는 17살에 폐병에 걸려서 죽게 되었었습니다. 병원에 진찰하러 가니까 서울대학교 엑스레이과 과장 조중삼 박사님이 엑스레이를 들여다보더니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폐 오른쪽 중엽이 다 썩어서 구멍이 뚫어졌고 왼쪽은 폐병이 꽉 들어찼고 넉마는 고름이 꽉 들어찼으니 이런 병은 수술도 할 수 없고 약물치료도 없으니 그저 잘 먹고 잘 입다가 가는 것이 좋다." 완전히 절망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한국말로 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영어를 모르는 줄 알고 17살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해서 의사들끼리 영어로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다 알아 들었지요. 우리 아버님은 못 알아듣고 "그저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내가 아버지 손잡고 "아버지 갑시다. 필요 없습니다. 끝장났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하루 종일 냉방에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보고 천장의 파리똥만 헤아리고 별도리 없는 다른 종교의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으나 날로 날로 죽음이 내게 다가왔습니다. 여러분 죽음이 탁 오면 쉽지만요 숨이 차고 드러누워도 숨을 쉴 수 없고 앉아도 숨을 쉴 수 없는 그 고달픔은 밤새도록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고 아침이 오면은 저녁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괴로움은 말로다 할 수 없습니다. 그 죽음의 짙은 그림자가 비취니까 비로소 예수님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은 예수님은 살려 준다 그러니까. 그래서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고 진짜로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서 오늘 50년 동안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우면 예수의 생명도 또한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죽음이 있으면 반드시 생명도 따라오는 것입니다. 죽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도 다가오는 것입니다. 절망에 처해야 소망을 찾게 되고 소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부형님 한분이 이런 간증을 하는 것을 읽어 보았었습니다. 그는 갑상선암에 걸렸었습니다. 갑상선암은 별로 위험한 암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에 가서 쉽게 수술을 했어요. 그 다음에 그 암이 전이 되어서 간암이 되었습니다. 간음 초기가 되어서 그것도 수술해서 나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것이 전이 되어서 후두암이 생겼습니다. 의사는 하는 말이 "전에 갑상선암을 수술한 것과 곁에 있으므로 이것은 수술 불가능합니다. 의학적으로는 못 고칩니다. 당신은 후두암으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야 정신이 번쩍 들면서 "누가 나를 살려 주겠는가. 하나님밖에 없겠구나!" 갑상선암도 심한 것이 아니니 하나님 생각을 안했다는 것입니다. 간암도 수술하고 고칠 수 있으니 하나님 생각 안했는데 후두암에 걸려서 이제는 살길이 없으니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하나님 밖에 떠오르는게 없더랍니다. 만사를 다 제켜 놓고 난 다음에 오산리 기도원에 찾아 올라가서 그곳에서 회개하고 금식하며 부르짖고 "주님, 살려 주십시오. 나는 예수도 안 믿고 주일도 안 지키고 소위 성도들이 말하는 십일조도 드리지 아니하고 내 멋대로 산 죄를 용서해 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그 다음 주일부터 우리 교회 나와서 등록하고 새벽기도회에 열심히 나오고 말씀 읽고 기도를 하고 부르짖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찾자 점점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지고 마음이 평안해지고 기뻐져서 그 다음 다시 재차 검진하러 가서 갑상선암을 후두암을 검사해 보니까 의사가 "얼마 전까지 있었는데.. 당신 기도 받았느냐?" "기도 받았다." "그럼 그렇지. 없어졌다 암이.. 깨끗이 나아버렸다." 그래서 그가 하는 말은 뭐냐면 "암이 나은 것만 기쁜 것이 아니라 암 때문에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되었으니 천하에 이렇게 좋을 수가 있느냐.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은 격이다. 병도 낫고 영혼도 구원받았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그런 간증을 기록한 것을 읽어 보았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할 때 해방시켜 주는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평범할 때는 예수님이 필요 없어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서 갈 길이 없을 때 우리를 해방시키는 예수님이 필요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봐야 답답할 때 우리를 이끌어 주는 예수님이 필요해서 비로소 새벽기도도 나오고 철야도 하고 부르짖어 기도해서 주님의 도우심을 받게 되고 남에게 핍박을 당해 버림을 당해봐야 그때는 나를 위로해 주시는 주님이 필요하기 때문에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님을 찾고 간절히 기도하게 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서 완전히 망해봐야 다시 잿더미 위에서 일으켜 세우는 주님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배고픈 사람이 밥을 찾고 병든 사람이 의원을 찾는 것처럼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있어야 그것을 채워줄 자를 찾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크고 작은 죽음에 노출되어야 생명을 주는 주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예수님의 생명을 체험하면 크신 은혜의 감정과 큰 확신을 가지고 이웃에게 생명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절로 5절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난이 넘치면 반대급부로 위로도 넘친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넘치면 생명도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경험하고 고난을 경험해봐야 생명도 체험하고 위로도 체험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2절에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우리가 사망을 체험해 봐야 생명을 맛보게 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전에도 말한 것 같이 주의 종은 많은 환난, 고통, 괴로움을 겪어서 주의 종이 되어야 성도들에게 살아있는 짜릿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학문적으로 배운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 없습니다. 바리새교인이나 사두개교인들과 같이 권세 없고 능력 없는 말씀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직접 고통을 당해보고 배고파 보고 헐벗어 보고 병들어 보고 죽음을 넘긴 사람은 살아있는 그리스도를 체험했기 때문에 그의 복음은 산 그리스도를 전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사망이 있는 곳에 생명의 역사도 따라오는 것입니다.
미국인 청년이 오사카에서 나가사키로 향하는 배를 탔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일본 선교사역을 하기 위해 오랜 훈련을 받아 선교지로 가기 위해서 일본에 도착해서 오사카에서 배를 갈아타고 나가사키로 가는데 선실에 들어가서 잠을 자려고 하는데 기분이 이상해서 올라가 보니까 폭풍우에 배가 암초에 부딪혀서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구명복을 입고 물속에 뛰어 들어갔는데 보니까 구명복을 안 입은 한 여성이 물에 허우적거리고 물을 먹고 가라앉으려고 해요. 그래서 그 선교사 지망생인 미국청년이 그 여성을 붙잡아서 자기 구명대를 목에 걸어주면서 "나는 미국에서 일본에 온 선교사입니다. 이 풍랑에서 내 구명대를 당신에게 주고 나는 이 물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지만은 하나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죄악의 물에 빠져서 지옥의 강물로 떨어져가는 인생들을 위해서 나같이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가 십자가 죽었다가 부활하시므로 믿는 자는 다 살려주는 것이니 당신 물에서 건져 남을 받거든 이것을 온 일본 천지에 전하십시오." 그리고 난 다음 청년은 물에 휩쓸려가고 만 것입니다. 이 여인이 거기에서 구원을 받고 그 폭풍에서 건져냄을 받고 난 다음에 가는 곳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예수가 누군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에게 생명을 전달해 준 젊은 청년이 예수를 믿으면 죄악과 지옥의 물에서 건져냄을 받아 영생을 얻는다고 말했는데 내가 그 예수를 믿고 마음속에 평안을 얻고 영생을 얻었으니 여러분 이 예수를 믿으라."고 일본전역에 다니면서 눈물을 흘리며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죽었지만 그 죽음을 통해서 한 일본 여성에게 생명이 전달되어 그 청년이 일생을 보내려고 일본에 왔는데 그 선교사역을 대신으로 감당해 준 것입니다. 일본말과 문화를 잘 아는 그 여자이기 때문에 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망은 우리에게 역사해도 생명은 반드시 그 반대급부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안에서 환난을 당하는 것은 언제나 축복의 전주곡인 것입니다. 환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환난만 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2. 환난이 주는 축복
우리가 환난을 당하면 뒤에 축복이 온다는 사자로써 환난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환난을 보고 놀래서 뒤로 넘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 함께 읽어 보십시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환난은 잠시 받아요. 그러나 잠시 받은 환난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후한 것을 채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광물의 원석은 용광로의 불길을 통해서 재련해야 귀한 금석이 되지요. 원석인 철광석이나 구리 원석이나 다이아몬드도 원석 그대로는 가치가 없습니다. 그것을 재련을 해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욥기 23장 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요사이 금값이 굉장히 비싼데 주님이 우리를 단련하면 비싼 금이 된다는 것입니다. 단련을 하고 난 다음에 좋은 일이 생기게 하는 것입니다.
프랑스라 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 중에 하나가 '포도주'인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포도나무를 어떻게 심느냐. 산비탈 험한 바위 박토에다가 포도나무를 심습니다. "아~ 기름지고 좋은 땅에 포도나무를 심으면 좋겠는데 왜 기름지고 좋은 땅에 심지 않고 산비탈에 박토에다가 포도나무를 심느냐." 내가 하도 신기해서 그것을 수차례 물었습니다. "불란서 사람은 머리가 좀 아이큐가 모자라냐. 왜 아무 나무도 잘 자라지 못하는 저 산비탈 박토에 저런데 포도를 심느냐." 하니까 "그것은 이유가 있다. 좋은 땅에 포도나무를 심으면 포도나무 뿌리가 깊이 들어가지 않고 얕은데서 벌써 습기를 빨아들이고 모든 양분을 빨아 들이는데 얕은데는 중금속이 많고 오염된 흙이 많은데 그곳에서 중금속과 오염된 흙의 양분을 빨아들이므로 포도가 나중에 열매를 내더라도 포도주가 질 높은 포도주가 안 된다. 그러나 험한 산 박토에다가 심어 놓으면 포도나무가 살아나려고 깊이깊이 뿌리를 땅 밑에 깊이 들어가서 물기를 빨아들이고 양분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중금속이 없고 해독하는 요소가 없기 때문에 아주 좋은 포도열매를 맺어서 포도주가 질이 좋고 맑고 깨끗하고 맛있는 포도주를 양산할 수 있다." 그래서 '아~ 결국은 고통 속에 있으면 뿌리가 깊어져서 더 좋은 포도를 열매 맺는구나.' 하는 것을 제가 알았었습니다. 우리나라 소나무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여러분 대목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좋은 집을 짓는데 소나무는 얕은 산에서 무성하게 자란 소나무를 쓰지 않습니다. 소나무 질이 약하고 잘 부서지기 때문에 그것을 쓰지 않고 높은 산 낙락장송 어려운 환경 속에 자란 소나무는 뿌리가 깊고 험한 곳에 자랐기 때문에 나무질이 좋아서 좋은 집을 짓는데 재목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 사실을 잘 아시겠습니까? 이러므로 우리가 훌륭한 재목이 되고 하나님이 사용할 사람이 되려면 박토에 자라게 하고 고통을 당하게 해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심지가 굳고 연단된 사람으로 만들어서 축복을 주는 것입니다. 쉽게 쉽게 받은 복은 쉽게 쉽게 흘러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어렵게 번 돈은 어렵게 보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록펠러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록펠러 아버지는 세계적인 거부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점심때 내려와서 2센트 주고 샌드위치를 사먹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친구들을 구름떼같이 데리고 온 호텔 한 층을 다 점령해 놓고 난 다음 거부와 같이 밥을 먹습니다. 같은 호텔에 있는 직원들이 "아버지 록펠러씨여, 어떻게 아버지는 이렇게 샌드위치 2센트짜리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데 아들은 저렇게 많은 사람을 데리고 호텔 한 층을 다 점령해서 아주 백만장자처럼 식사를 하고 하는데 왜 그렇습니까?"
하니까 "이 사람 모르냐. 그는 부자 아버지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부자 아버지가 없네. 아버지는 돈 번다고 하도 고생을 해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돈이 무서운 것을 알고서 아주 2센트짜리 점심 샌드위치를 먹지만 아들은 자기가 안 번 돈이니까 아버지가 번 돈이기 때문에 돈이 쉽게 벌어온 줄 알고 쉽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3대 부자들이 계속하지 못하는 것은 돈을 쉽게 여기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일본에 부자저널 보니까 일본의 명치유신 이후 100년 동안에 일본의 500대 기업 중에 30년 이상 계속한 기업이 없이 다 망했어요. 왜냐, 창설자는 고생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고 일을 하고 개혁을 하고 사업을 했는데 후대 3대는 쉽게 거드렁 거리고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하게 사업을 하다가 다 망해버린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늘나라를 여러분 속에 세우기 위해서 쉽게 하늘나라에 복을 받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망하고 하늘나라도 무너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어려운 고난을 통해서 연단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축복을 받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환난을 통하여 연단 받은 우리의 신앙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34절에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환난이 절망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가져오기 위해서 환난이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자식은 채찍 하나라도 더 때립니다. 미운 자식 떡 한 개 더 주라는 것입니다. 왜, 밥을 많이 먹고 배가 불러지면 뇌 활동이 적어지기 때문에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식은 매라도 한 대 더 때리고 꾸중을 하나 더 하는 것은 잘되라고 하기 때문에 소망을 주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절망을 주려고 매를 때리고 꾸짖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환난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바꿔 놓는 것입니다. 사망의 체험을 하고 환난과 고통의 체험을 하는 우리의 삶의 코스를 완전히 바꿔 놓고 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우리가 세상에 살 동안에 환난을 당하기 전에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을 주목하고 이 세상 부귀 영화 공명 이러한 것에 주목을 하지만 환난을 당하고 보면 이런 것이 다 물거품인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일장지춘몽인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이제 보이는 잠깐 있다 사라지는 것에 주목하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주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잠시 누리는 허망한 것을 버리고 마음의 영원한 평안과 기쁨의 천국을 주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에도 그런 찬송 있지 않습니까? 큰 풍파 일어나는 것 세상 줄 끊음일세.
큰 풍파 일어나는 것이 세상 줄 끊기 위해서 큰 풍파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도 환난을 당해서 폐병에 안 걸렸으면 저는 정상적으로 갔으면 공학박사가 되고 우리 한국에서 기계공학에 아마 태두가 되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목표와 방향이 바꿔졌습니다. 폐병으로 죽다가 살아나니까 그 모든 인생의 목표가 허무하기 짝이 없고 주님의 나라를 찾게 되는 영원한 곳에 주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17살 때 수영을 잘하는 미국의 조니 소녀는 다이빙을 하다가 그만 밑에 바위에 머리가 부딪혀 목 밑의 뼈가 부러져서 신경이 전달되어서 전신 마비가 되 버리고 만 것입니다. 조니는 목이 부러져 하루 아침에 전신마비가 되는 장애가 되었으니 그는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가족들과 친구들이 위로해 주고 또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로써의 훈련을 받아서 그 취미로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지은 책 서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과 가족 그리고 친구들의 도움은 나를 완전히 절망에서 끌어내어 주었었습니다. 이 휠체어 인생으로부터 무엇보다도 더 먼저 감사받으셔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마비로 인한 내 모든 시련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제게 임하신 것임을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고통 뒤에 이유를 두셨고 그것을 알고 나니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러분의 고통 대해서도 하나님은 이유를 가지고 계십니다." 조니는 비록 목이 끊어져서 밑에 반신마비가 되어 휠체어 신세가 되었지만 그는 입으로 그림 그리는 유명한 화가가 되고 그의 그림은 비싸게 팔리고 어느 곳에 가나 강연자로써 부름을 받고 또 자기를 열렬히 사랑하는 남자가 생겨서 그 불구의 몸에도 결혼을 하고 상상할 수 없는 행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 모든 것 위에 조니가 말하는 것은 "나는 만일 내가 불구자가 되지 않았으면 예수를 믿고 하늘나라를 알지 못했을 것인데 내가 이 불구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하늘나라를 알게 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놀라운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반드시 불행이 불행이 아닌 것입니다. 불행과 고난은 그 뒤에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인생에 새로운 목표를 주기 위해서 다가온 시험과 환난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환난과 시험을 당하면 그 뒤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손길을 찾게 되고 인생의 목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의미 없이 그냥 우리를 죽이려고 다가오는 시험과 환난은 없는 것입니다.

3. 반드시 감당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험이 다가올 때 여러분, 내가 감당할 수 있겠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감당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내게 하나님이 짐을 지울 때는 짐을 질만한 힘이 있게 만들고 난 다음에 짐을 지우게 하시지 짐에 깔려 죽게 만들려고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우리가 시험을 당해서 고통과 괴로움에 처할 때 '이제 나는 살 수가 없다. 고통을 당하고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험당할 쯤에 하나님이 반드시 피할 길을 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피할 길 없이 시험을 당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시험을 당할 때 피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기 때문에 여러분 시험만 바라보지 말고 시험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는 성인이 되면은 반드시 밤에 산속에 나무에 묶여서 밤을 세워줘야 되는 것입니다. 사나운 짐승들이 많은데 성인식을 하고 난 다음에 아버지가 데리고 가서 그를 나무에다가 묶어 놓습니다. 밤새도록 사나운 사자와 호랑이나 여우들이 지근지척 하면서 그를 죽일 것인데 얼마나 두렵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통과해야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언제나 밤에 사나운 짐승이 곁에만 오면은 픽 쓰러져 죽고 픽 쓰러져 죽습니다. 왜 그러느냐, 성인식을 하고 그 아들을 나무에 묶어 놓은 아버지는 그 근처 나무 위에 올라가서 잔뜩 활에 화살을 먹여서 내려다보고 있다가 짐승이 아들 가까이 오면 쏘아 버리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안보이지만 휙하는 화살 소리가 나면서 짐승은 퍽 거꾸러져 죽는 것입니다. 어두움 속에 감춰진 아버지가 늘 있어서 보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우리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의 밧줄에 묶였을지라도 하나님은 숨어 계셔서 언제나 시험을 감당할 수 있게 해주시고 감당치 못할 시험이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게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항상 우리와 함께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그 날에는 내가 너 안에 내가 너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만 보지 마십시오. 파도만 바라보면 놀라서 빠질 수 있습니다. 시험의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 시험은 동등 이상 축복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험과 환난과 고난은 항상 동등 그 이상의 축복을 가져오기 위해서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는 것이지 무의미하게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가에서 무서운 시험을 당했지 않았습니까? 3백만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서 모세를 따라 홍해수가에 왔는데 앞에는 창열한 바다요, 뒤에는 애굽의 바로가 군대를 동원해서 다시 그들을 잡으러 진격해 왔었습니다. 샌드위치가 되었습니다. 피할 곳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을 향해서 부르짖어 고함치고 모세를 향하여 애굽의 장지가 없어 우리를 이곳에 와서 다 죽게 하느냐고 탄식을 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말했습니다. "너희는 오늘날 가만히 있어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는 구원을 보라 오늘 너희가 본 애굽 사람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했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손을 내밀매 홍해수가 갈라지고 그들은 홍해수를 육지같이 건널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왜 이런 일이 생기느냐.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백성들에게 나타내기 위해서 이런 무대를 만든 것입니다. 이 무대 없이도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을 능히 이끌고 홍해수 윗쪽에 갈대밭을 지나서 광야를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홍해수 중간에 데리고 와서 이런 시련을 겪게 하느냐. 하나님이 환난과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며 하나님이 어떤 영광과 권세가 있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역사한 은혜의 무대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능력을 나타내기 위한 무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무대 없이 배우가 와서 연출할 수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무대가 없이 나타나실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이 다가오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나타나기 위한 무대를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무대를 우리가 완성하면은 하나님이 그 무대에 나타나셔서 주인공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시험에 넘겨지면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기 위한 기회인 것입니다. '왜 내게 이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하게 하고 죽음의 고통이 다가오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나타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무대가 있어야 연극을 하지요. 무대가 있어야 하나님이 나타나시지요. 나는 조용기가 폐병에 안 걸렸으면 병을 고쳐서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은 결코 체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병이 걸렸기 때문에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초년에 많이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나 고마운게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기도 응답하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잘 먹고 잘 입고 평안했으면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지 아니했을 것이요. 그리고 하나님이 기적으로 응답하는 체험을 못했을 것인데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고 빈손 들고 갈 길이 없어 답답했기 때문에 밤새도록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할 수 있어서 오늘날 돌아볼 때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아름다운 경험인지 말로 다 형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대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환난은 무대요, 죽음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날 수 있는 무대를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말하기를 "원수가 다가오면 원수를 기회로 해서 나에게 밥상을 차려주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잔이 넘치게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밥상 차려주고 기름 부어 주셔서 높여 주고 잔이 넘치게 해주려면 원수가 다가와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가 없는데 혼자서 그렇게 해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인생에는 환난이 있으면 축복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생명이 있는 반대급부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로 13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불시험은 기쁨과 즐거움을 갖다 주기 위한 무대에 불과한 것입니다. 많은 시련을 겪어봐야 시련에서 해방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늘 좋은 환경만 있으면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이 무엇인 것입니까?
저는 일정말년에 너무나 배고플 때 자라났고 육이오 사변 때 피난생활에 억척같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지금 돌아보면 그때가 얼마나 고마운지 요사이 매일 마다 따뜻한 잠자리 들어갈 때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침대 이렇게 좋은 이불을 덮고 자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요사이 젊은 애들에게 말해 보십시오.
"좋은 침대, 좋은 이불 덮고 자는 것 고맙게 여겨라." "누구는 안 그래 잡니까? 뭔 별나게 그렇게 말을 합니까?" 밥을 먹어도 밥풀 하나 다 뜯어 먹습니다. “아이 주접을 떨고 밥풀 하나까지 다 주워 먹는다. 왜 그렇게 합니까?”육이요 때 너무나 배가 고팠기 때문에 밥풀 하나를 먹으면서 눈물을 흘린 것을 알기 때문에 밥 먹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여러분 밥 먹는 것 행복한 줄 알아요? 밥 먹을 때마다 '아~ 행복하다.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나는 밥 먹을 때마다 기억하는 것은 육이오 사변 때 우리 고모집에 내가 갔는데 우리가 점심을 먹고 있는데 피난살이 온 아주 아리따운 젊은 여성이 보퉁이를 들고 물건 팔러 왔다가 물건을 못 팔고 우리가 밥 먹는데 가만히 서서 입맛을 쭉쭉 다시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우리 고모님이 "여기 와서 앉으세요. 한술 뜨세요." 그러면서 자기가 먹던데 아직 침이 붙어있고 밥풀이 붙어있는 그 숟가락을 주는데 내 속으로도 '고모가 저걸 씻어주지. 저것 자기가 먹던 것을 왜 주느냐.' 그런데도 그 부인은 날래 뛰어 오더니만 그 숟가락을 잡아서 밥을 떠먹으면서 눈에 눈물을 죽죽죽죽 흘리던 것 지금도 내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쳐다보고 얼굴이 정말 이쁘더라구요. 정말 미인이고, 날씬하고, 환경이 좋았었으면 남편 사랑받고, 온 사람에게 추앙을 받고, 무릇 남자들의 동정을 받고 했을 것인데 피난살이에 다 먹고 살기 힘드니까 개떡같이 취급을 받고 남의 먹던 침이 묻은 밥숟가락에 밥을 더 줘도 눈물을 흘리고 먹는 것을 보게 될 때 여러분 밥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압니까? 감사한 일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과 고난이 나중에 우리에게 기뻐하고 감사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인생을 사는 것을 고맙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은 초년에 고생을 해본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초년고생은 금 주고도 못 바꾼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시험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말고 예수님의 생명의 역사를 바라보고 긍정적인 기도와 감사를 하십시오. 환난의 시험을 당해서 원망하고 탄식하고 불평하고 뒤로 물러가면 않되는 것입니다. 야 시험과 환난이 다가왔으니 하나님이 좋은 일 예비하시는구나.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기뻐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하지 말고 시험과 환난 당하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고 하나님께 맡겨라. 하나님이 합동하여 유익을 이루어 주실 것이니까.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고린도후서 1장 8절로 10절은 우리에게 굉장한 귀감이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바울이 아시아에서 얼마나 핍박을 당했던지 도저히 살아갈 희망조차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지혜로써는 살아갈 길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내버려 두신 것은 인간의 막다른 골목은 하나님의 열린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무력은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완전히 포기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완전히 포기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바울을 건져주는 기적을 체험했기 때문에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라.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 그래서 하나님이 건지시는 영원한 건짐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경험하게 하셔서 과거에도 건지고 지금도 건지고 장차도 건질 것을 믿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시험과 환난을 당한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돌이켜 하나님을 바라보고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하나님의 지시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기대하면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여러분의 생애 속에 홍해수 사건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데 하나님을 바라보니 쌓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했는데 하나님을 바라보니 답답한 일에서 건져냄을 받고 핍박을 받아 버림을 받았는데 하나님을 바라보니 위로가 넘쳐서 도움을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해 망했는데 주님께서는 다시 재기해서 불꽃같이 일어나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인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체험해서 간증도 하고 자서전도 적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다고 사람들에게 외칠 수 있지 그런 것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체험하지 못하므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여러분을 통하여 무대를 만드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을 만한 사람을 택해서 환난과 고난과 죽음을 통하게 하시므로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난과 고통이 다가오면 하나님이 찾아올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과 환난과 죽음이 경험을 달리 해석해야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처럼 불안과 초조와 절망 속에 고함치고 뒤로 물러갈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무대를 만드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하며 선택 당하여 하나님 무대가 된 것을 즐거워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당신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시고 놀라운 간증을 하게 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만들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야훼 하나님이여 우리 성도들은 신앙이 자라서 어린 아이와 같이 환난 앞에 고함을 치고 울고 도망치지 말고 환난을 끌어안고 소화시키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 옵시고 환난을 감사하고 찬송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환난 저 건너편에 오는 하나님을 맞이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2537 요한계시 교회 가운데 계시는 주님 - 촛대 사이의 인자 계1:12-20  석원태 목사  2009-12-16 1947
2536 요한계시 계시록과 사도 요한 계1:9-11  석원태 목사  2009-12-16 3049
2535 요한계시 계시록과 종말 계1:7-8  석원태 목사  2009-12-16 1898
2534 요한계시 계시록과 교회 계1:4-6  석원태 목사  2009-12-16 1871
2533 요한계시 반드시 속히 될 일 계1:1-3  석원태 목사  2009-12-16 2004
2532 요한계시 요한계시록은 승리의 책 계17:14  석원태 목사  2009-12-16 2213
2531 사무엘상 민중의 소리와 하나님의 통치 삼상8:1-22  정용섭 목사  2009-12-15 2044
2530 마가복음 마음의 장애를 넘어 막2:23-3:6  정용섭 목사  2009-12-15 2110
2529 로마서 현재의 고난과 미래의 영광 롬8:12-17  정용섭 목사  2009-12-15 2237
2528 에스겔 마른 뼈와 야훼의 영 겔37:1-14  정용섭 목사  2009-12-15 2595
2527 요한복음 사랑의 계명과 기쁨 요15:9-17  정용섭 목사  2009-12-15 2234
2526 마태복음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마23:1-12  정용섭 목사  2009-12-15 2041
2525 에배소서 가족의 그리스도론적 정체성 엡6:1-4  정용섭 목사  2009-12-15 2353
2524 요한일서 하나님의 자녀 요일3:1-10  정용섭 목사  2009-12-15 2379
2523 고린도후 자유를 향한 부르심 고후3:17  정용섭 목사  2009-12-15 1764
2522 고린도전 살아 계신 주님 고전15:1-11  정용섭 목사  2009-12-15 1970
2521 베드로전 마귀가 왜 나를 억압하나? 벧전5:8-9  조용기 목사  2009-12-14 2610
2520 누가복음 새 시대 새 삶 눅4:16-21  조용기 목사  2009-12-14 1851
2519 요한복음 사랑과 행복 나누기 요3:16  조용기 목사  2009-12-14 2552
2518 사도행전 오순절 성령 강림의 날 행2:1~4  조용기 목사  2009-12-14 2328
2517 잠언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잠22:6  조용기 목사  2009-12-14 2994
2516 로마서 나의 삶을 다스리는 법칙 롬4:17  조용기 목사  2009-12-14 2011
2515 빌립보서 삶의 푯대와 인생 빌3:13~14  조용기 목사  2009-12-14 2638
2514 열왕기하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 왕하6:14~17  조용기 목사  2009-12-14 2241
2513 시편 감사와 찬양의 위력 시100:4~5  조용기 목사  2009-12-14 3009
2512 마가복음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막15:12  조용기 목사  2009-12-14 1728
» 고린도후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고후4:11  조용기 목사  2009-12-14 1781
2510 마태복음 화평과 검으로 오신 예수 마10:34-39  강종수 목사  2009-12-13 1844
2509 사도행전 한 시대 하나님의 쓰임받는 사람들 행13:1-3  김필곤 목사  2009-12-13 2697
2508 사도행전 땅을 보는 사람과 하늘을 보는 사람/ 행12:17-25/  김필곤 목사  2009-12-13 3125
2507 사도행전 인간의 불가능 속에 계시는 하나님 행12:1-17  김필곤 목사  2009-12-13 2564
2506 사도행전 한 시대의 순교자 행12:1-3  김필곤 목사  2009-12-13 2032
2505 사도행전 경건한 사람 행10:1-8  김필곤 목사  2009-12-13 2151
2504 사도행전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상 행11:19-30  김필곤 목사  2009-12-13 2981
2503 사도행전 변화 행11:1-18  김필곤 목사  2009-12-13 2303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