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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찬양의 위력

시편 조용기 목사............... 조회 수 3009 추천 수 0 2009.12.14 16: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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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100:4~5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8. 4. 6. 성찬주일설교 
<서론>
'감사와 찬양의 위력'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 가도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말을 배울 때 쯤 되면은 어머니가 꼭 가르치는 말이 있어요. '엄마, 아빠'라는 말을 먼저 가르치고 그 다음에는 '고마워요. 감사해요.' 꼭 뭐를 주면서 '고마워요. 감사해요.' 그러면 애도 따라서 '고마워요. 감사해요.'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민족에 가도 똑같이 엄마가 어린아이에게 가르치는 처음 언어가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고통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언어가 어릴 때는 엄마 아빠입니다. 고통을 당할 때 엄마, 아빠 밖에는 부를 데가 없지 않습니까? 사회생활에 나와서 인간관계와 자기 개인의 마음에 평화를 얻기 위해서도 항상 고맙습니다. 감사하는 말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 근원적인 언어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본론>
1. 감사와 찬양과 나의 삶의 관계
감사와 찬양과 나의 삶의 무슨 관계가 있냐고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냐하면 감사와 찬양을 할려고 하니까 힘이 들어요. 설교를 들을 때는 '야 오늘부터 감사하고 찬양하고 살아야지지.' 그러다가 버스타면 다 잊어버립니다. '왜 나는 이 모양이냐.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안 되는 것이 왜 이러느냐.' 탄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우리에게 부패한 습성을 전해 주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부패한 심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1절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영화롭게 생각하거나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부패한 심정이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부패한 심정은 미움, 분노, 시기, 비판, 원망, 부정적인 태도는 쉽게 취해요. 이것은 어린 아이에게도 안 가르쳐 줘도 미움은 갖고 분노를 하고 시기하고 비판하고 원망하고 부정적인 태도는 다 가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패한 성품의 자연적인 발로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의 바탕에 불안, 행복, 평안, 기쁨 등은 거리가 멉니다. 나는 평안을 갖고 행복을 얻고 기쁨을 갖겠다고 하면서도 마음엔 미움과 분노와 시기와 비판, 원망,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행복과 기쁨이란 날개를 치고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좋은 환경이나 지위나 명예 등 외부적인 조건이 행복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저는 요사이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젊은 형제들을 만나면 하나님이 주신 한 시간 동안 행복하게 살라고 늘 부탁을 합니다. 징징 짜고 울고 살지 말고 미워하고 물고 찢고 싸우지 말고 주어진 시간을 될 수 있으면 귀하고 행복하고 즐겁게 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그냥 가만히 있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내가 서울대학을 나오고 하버드를 나오고 뭐, CEO가 되고 돈을 많이 벌고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부귀, 영화를 가지면 행복하겠지 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조건은 될지 몰라도 그 속에서 행복은 결코 없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수백만 명을 만났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굉장히 큰 부자들도 만나고 평범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는데 부자라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고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기쁜 것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남미 같은데 대통령은 거의 저의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쿠데타를 당하고 또 쫓겨 나가고 또 선거를 통해서 돌아오기도 하고 피투성이가 되고 가정이 엉망이 되는 것을 제가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습니다.
세계적인 긍정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 박사는 물질이 주는 만족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비유한다고 말했었습니다. 물질적인 기쁨이란, 처음에는 아주 맛있지만 점점 녹아서 별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같다는 것입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참 맛있어요. 저도 요번에 하와이에서 집회하면서 나가서 아이스크림 사먹었습니다. 그것도 우리 집사람 몰래 사먹었어요. 절대로 아이스크림 못 먹게 하기 때문에 몰래 아이스크림을 사서 몰래 먹으니까 더 맛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그 문제가 몇 번을 핥아 먹을 때는 맛이 있는데 조금 지나가면 혀가 그만 거기에 마비가 되어서 맛있는 것을 알 수가 없어요. 그냥 덤덤하고 마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세계의 행복도 그런 것입니다. 좋은 집을 짓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 처음에는 굉장히 좋지요. 그러나 얼마 안 지나가면 그것이 보통이 되버리고 시시하게 보이고 별로 감격이 없이 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큰 인기를 얻고 성공을 거둔 연예인이나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운동선수나 권력을 한손에 쥐고 있는 정재계 인사들 가운데 불행한 종말을 맞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화려하고 풍성한 생활 속에서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으로 인생을 파멸 시키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호주 시드니에서 조금 떨어진 남태평양에 외딴 섬나라가 있습니다. '바누아투' 공화국입니다. 이 나라 인구는 19만 명에 문맹률이 85%나 됩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3천 불도 되지 못합니다. 아주 가난한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의 신경제학 재단(NEF)이 2006년에 발표한 행복지수 순위를 보면 세계 178개국 가운데 가장 행복하다고 국민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나라가 바로 이 '바누아투' 공화국으로써 행복지수 1등을 얻은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인 것입니다. 스위스, 노르웨이, 덴마크나 미국이나 블란서나 독일이나 호주나 이런 나라들이 물질적으로 부요하고 환경이 좋으니까 행복지수가 높을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가장 비난하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바누아투 공화국이 행복지수 1위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물질이나 좋은 환경, 지위나 명예 등 외부적인 조건이 행복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게 가만히 보면은 제가 50년 동안 목회를 했기 때문에요 심방을 다니면서 보면 부자들 집에 가면 별로 웃지 않는데 가난한 집에 가면 잘 웃습니다. 부자들은 근엄한 얼굴을 많이 가지고 젊잖은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명쾌하게 웃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 가면 대문에서부터 "하하하..하하하... 목사님 오세요.. 하하하하." 무엇 때문에 그래 웃는지도 모르게 웃습니다. 아무런 삶의 부담을 느끼지 않고 웃는 것은 그들에게 행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런 부담 없이 웃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요, 좋은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되 마음의 바탕이 변화되면 우리가 행복을 수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환경이 변화된 것이 아니라 마음에 바탕이 변화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마음의 바탕이 변화되면 비로소 환경도 감사히 받아들일 수가 있지 마음이 변화되지 않는데 환경을 아무리 변화 시켜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돼지소굴을 아무리 청소를 하고 이부자리를 깔아 놓아도 얼마 있지 아니하면 돼지소굴로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음이 변화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요번에 기독교 교도소를 만드는 이유가 교도소에 한번 갔다가 들어가면 또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교도소가 전문 범죄인 만드는 교육 제작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예 교도소에서 내에서 마음에 변화를 받기 위해서는 기독교 교도소를 세울 수밖에 없다고 작정을 하고 우리 교회에서도 거금을 내어서 기독교 교도소를 곧 착공을 하는 것입니다. 교도소에 들어가서 회개하고 말씀 듣고 찬송하고 변화 받아서 마음 바탕이 달라져야 교도소에 들어간 보람이 있지 들어갔다가 더 악한 일곱 귀신이 들어가서 나오면 효과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것 사람 힘으로 안 됩니다. 옛사람은 지나가고 새사람이 된다. 말은 쉽지 실제 그것이 잘됩니까? 안되지요.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우리 속에 이 역사를 일으켜 주셔야지요. 자력으로는 안 됩니다. 타력으로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이 넘치는 마음의 샘은 마음이 변화될 때 일어나는 것이지요. 마음이 변화되지 않는데 그 샘물이 마음속에 솟아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믿음, 소망, 사랑, 의, 평안의 샘물이 솟아나기 위해서는 이 샘물을 여는 것이 바로 감사와 찬양인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이 우리 마음에 감추인 샘물을 열어서 우리가 행복을 맛보고 그 샘물을 마실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마음의 미움을 제하여 주고, 분노를 가라앉히고 우울증을 치료합니다.
잠언서 17장 22절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입니다. 보통 좋은 약이 아닌 것입니다. 마음에 즐거워하면 몸속에 약 공장이 막 돌아가는 것입니다. 온갖 좋은 약 공장이 다 돌아가서 온 병을 치료하거니와 마음이 상하면 근심을 하면 뼈조차 마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의 요가 중에서 웃는 요가가 있어요. 모여 가지고서 다른 것 아니하고 그저 배를 안고 웃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병자가 나았다는 기록을 제가 본 것입니다. 여러분 웃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하루에 150번을 웃는다고 하는데 어른들은 하루에 다섯 번 밖에 안 웃는다고 그럽니다. 기왕 교회 모였으니 한번 웃어 볼까요? 원, 투, 쓰리...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좋은 일은 억지로 해도 괜찮다고.. 웃는 것은 좋은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웃어도 우리속의 신경은 진짜 웃는지 가짜가 웃는지 모른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할 수 있으면 많이 웃으세요. 저도 웃으려고 애를 많이 쓰지만 이것도 힘이 들더란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데이비스대학교 심리학과 로버트 에먼스 교수와 마이애미대학교 심리학과 마이클 매컬로프 교수는 공동과제로써 연구를 해서 감사와 심리적 변화의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사람들이 감사하고 찬송하며 웃고 지내면 삶에 대하여 더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있는게 아니라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찬양합니다." 그러면 내가 사는 것이 참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낙천적인 성격으로 변화됩니다. 늘 마음이 우울하던 사람이 즐거워하게 되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되고 활력이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열정적으로 일하게 되었으며 결단력이 강해졌고, 유머 감각이 생겨났고, 힘든 일을 처리하는데 자신감이 생겨났다고 말한 것입니다.
감사를 하고 즐거운 마음을 갖게 되면 운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숙면을 취하게 되었으며, 눈에 띄게 건강이 좋아지고, 인생의 목표가 뚜렷해졌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었고, 타인을 돕는데 적극적이 되었으며,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었고, 부자에 대해서 시기, 원망이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이것 참 희안한 기적이지요. 우리가 대게 부자 보면 '지가 뭐 잘났다고 건방지게 아이 더러워서 못살겠네.'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여러분, 공짜로 부자가 되면 그런 욕을 먹어도 좋지만 실제로 부자 되려면 애를 많이 써야 됩니다. 왜 내가 그 말을 하냐면 50년 목회를 하고 뒤를 돌아보는데 많은 사람이 절 보고 욕을 많이 해요. 큰 교회 세웠다고.. 교회당을 크게 세우고, 수많은 교인들을 불러 모으고 지가 잘난 체하고.. 잘난 체도 안 합니다 나는... 교회를 내가 키웠나요? 하나님이 키워 주셨는데 게으르게 놀고 교회가 키워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진실로 여러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말씀 드리거니와 50년 목회 동안에 한번도 휴가를 가본 적이 없습니다. 교회 목숨을 내걸고 일을 해야 교회가 성장하지요. 일안하고 교회가 성장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부자도 참된 부자는 죽도록 뼈가 부러지게 일을 해야 부자가 되지 가만히 앉아 있는데 누가 돈 갖다 줍니까? 돈 갖다 주는 것이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정경쟁을 통해서 정부가 공정경쟁만 하게 해주고 전부 열심하고 근검하고 절약하고 애쓰며 노력해야 부자가 될 수 있지요. 그런데 비아냥 거리다가다도 우리가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마음이 긍정적이 되면은 부자도 '부자 될 만하니까 부자 되었지. 감사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자기만 먹고 산다면은 고생할 것 없어요. 부자 한사람 밑에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밥을 먹고 사는 것이니까 그것을 생각해야 돼요. 여러분 우리나라도 부자들이 많이 생겨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다 부자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여러분만 먹고 살지 말고 여러분 밑에 20명, 30명, 100명, 200명, 1,000명씩 먹여 살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자의 효과가 있지요. 이래서 우리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축복해 주시면 많은 부자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다 부자는 될 수 없지요. 다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돈 버는 능은 선택된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돈을 벌어서 나눌 수 있게만 만들어 주면 되는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이런 도움을 베풀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일을 체계적으로 하게 되었고, 보다 창조적이고 열린 시각으로 상황을 보게 되며, 어려운 상황에 더욱 탄력적으로 대처하게 되었고, 스트레스에 강해지고, 가족관계가 돈독해지고, 신앙심이 깊어졌다고 말한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이 이런 큰 인격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쓴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에프스키의 삶은 어릴 때부터 고통의 연속이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고아로 자랐습니다. 청년 시절에 혁명당 활동을 하다가 소련 황제에게 잡혀서 사형 선고를 받고 시베리아로 유배 가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의 시절을 보냈었습니다. 그리고 난 시베리아에서 해방되고 나오고 난 다음 결혼했는데 얼마 있지 아니하여 아내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래서 천신만고를 겪어서 다시 재혼을 했는데 첫애를 낳았는데 첫애가 또 병들어서 죽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설상가상으로 간질병에 걸려 평생을 고통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질병을 '거룩한 병'이라고 불렀었습니다. 원망하지 않았었습니다. 도스토에프스키는 모든 일에 감사했었습니다. 감사를 안 하고는 정신적으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감사를 통해서 그 신앙이 더 굳어지고 깊어졌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그 고통 속에서 적은 책들이 오늘 역사에 남아 있는 불후의 명작들이 되어서 「죄와 벌」이라든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든지 이런 책들은 오늘날도 온 세계 사람들에게 찬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고통이 그를 파멸시킨 것이 아니라 고통 가운데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한 것이 오히려 고통을 좋은 기회로 삼아서 승리의 발판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는 솔제니친은 시베리아 정치 수용소에서 11년의 고통 가운데 암이 걸려서 죽음에 이르자 예수님을 믿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출옥한 후에 수용소의 참상을 폭로하는 소설인 '수용소 군도'를 써서 1970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책속에서 솔제니친은 "감방이여 고맙소."라고 고백하면서 하는 말이 내가 시베리아 감방에서 11년 동안 갇혀 있지 않았었으면 결코 수용소 군도라는 책을 짓지 않았을 것이요. 그 다음 노벨 문학상을 타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역경이 오히려 축복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 예수를 믿고 감사할 줄 아는 삶을 가졌기 때문에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경을 당하여 원망, 불평, 탄식하면 뼈가 마르게 되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우리 삶 가운데 감사할 것은 얼마든지 있는데 그렇지 않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그릇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의, 평안, 기쁨의 샘을 여는 문이 바로 감사와 찬양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빌헬름 웰러는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 감사와 찬양과 이웃과의 관계
여러분, 감사와 찬양은 우리 이웃과의 관계를 참으로 좋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웃에 감사하면 이웃의 자존심을 높여 주며 기쁨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이웃을 보고 비난하고 욕하면 이웃을 짓밟고,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어 주고 원수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에게 감사하고 이웃이 한일을 찬양하면 이웃이 자존심이 생기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조금 높은 위치 위에 있으면 욕을 많이 얻어 먹습니다. 저도 욕을 많이 얻어먹어요. 인터넷을 열기면 하면 조용기 욕을 하는 것이 언제나 나오는데 그것 별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끔가다가 잘한다는 칭찬도 나오면 기분이 굉장히 좋습니다. 사람이니까 어찌할 도리가 없지요. 우리가 서로 만나면 "참 감사합니다. 참 훌륭 하십니다. 잘하십니다."하면 말로써 천냥 빚을 갚는다고 기분 좋지요. 여러분 단순히 집에서 부부간에라도 남편이 아내보고 "여보 참 고맙소. 전에 몰랐는데 요사이 가만히 살펴보니까 꽤 이쁘게 되었는데... 당신은 언제나 이뻐." "또 날개 없는 비행기 태운다." 그러면서도 기분이 좋다고.. "아이 왜 이렇게 많이 늙었노 쭈굴쭈굴하고 이제 볼모양 없구나" 그러면 "나이 늙었는데 뭐 더 좋아지라고?" 그러면서도 "지는 안 그렇나 지는 더 못났는데..." 그렇게 반항하는 마음이 안생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서로 고마워하고 감사하고 칭찬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남편은 아내를 진실로 인정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남편도 아내를, 아내도 남편을 서로 감사하고 칭찬하고 살면은 이웃관계가 좋아지지 않습니까?
골로새서 3장 16절로 17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에 감사하는 것은 우리 삶에 기름을 치는 것입니다. 이웃과 선한관계를 맺어주기 위해서는 감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소문이 들리기를 "야, 그 사람이 자녀를 칭찬을 하더라." 벌써 마음속에 선한 감정을 가지고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들으니까 그 사람 뒤에 돌아다니면서 자네에게 나쁜 욕을 하고 손가락질 하더라." 감정이 악화되고 미운 생각이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5장 2절에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웃을 기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행복하고 감동을 받게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대학에서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줬었습니다. 부모님에게 감사편지를 쓰라고.. 지금까지 부모에게 기름을 받고 도움을 받았으나 감사편지를 안 썼으니까 이제 부모에게 감사편지를 한번 적으라고 절절히 길러 주시고 먹여 주시고 돌보아 주시고 대학까지 들어오게 해주시니 감사하다는 편지를 쓰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이 다 열심으로 편지를 써서 우편으로 자기 부모에게 붙였습니다. 혹은 객지에 나와 있는 학생들은 고향으로 집에 같이 있는 학생들도 편지로써 부모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부모들이 이 편지를 받고 난 다음에 얼마나 마음에 감격하고 학교 당국에 감사하다고 편지를 쓰고 전화 연락을 했는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식들이 부모에게 감사하다는 편지를 하고 난 다음 그를 읽어본 부모님들이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모는 자녀들과 관계가 좋아지고 학교와의 관계도 좋아졌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조그마한 사랑을 받아도 꼭 감사편지를 해야 되는데 제일 이 감사편지를 네는 것을 등한이 하는 것이 우리 한국 사람인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외국 사람들은 제가 외국에 가서 집회하고 돌아 오면은 꼭 고맙다는 편지가 날라 오는데 나는 우리 교회 와서 집회하고 가도 고맙다는 편지 않습니다. 귀찮으니까. 그러나 내가 외국에 가서 집회하고 오면 꼭 감사하다고 은혜 받았다고 편지를 해오는 그 분은 내 마음속에 기억에 꼭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집회를 해주고도 고맙다는 편지도 않고 감사하다는 내용의 무슨 인터넷 이메일이라도 오지 아니하면 그 사람 잊어버리는 마는 것입니다. 감사는 더 감사를 가져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마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8절에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고 사람을 칭찬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서로 도와줄 마음이 생기고 경계심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감사하는데 갚아 주고 도와주고 돌보아주고 싶은 생각이 나지요. 저는 50년 목회하면서 가끔 가다가 배신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지극히 사랑하고 돌봐주고 뒤를 물어준 사람이 나중에 나를 배신하고 그리고 험담하고 고발하고 온갖 고통을 줄 때 그때는 그냥 눈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피눈물이 나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욕은 못하고 같이 저주는 못하니까 피눈물이나 흘려야지 뭐 별도리 있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배신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 도와줄 마음이 생기고 경계심이 사라지게 되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0절에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친구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서로 감사하고 칭찬하면 좋은 친구가 되고, 헐뜯고 흉보면 친구가 되지 않습니다.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야훼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느니라"
원수와 더불어 화목하게 되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칭찬하고 이웃에 감사해야 화목하게 되고 좋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하라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감사와 찬송의 생활을 하면 내게 유익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당연한데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살면 어떻게 될까요? 하늘나라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궁전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청와대에 들어가기가 쉬운 줄 압니까? 아직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 나보고 한번도 오라고 말도 안 해요. 내 이웃 친구 같으면 내가 찾아 갔지만은 청와대 들어가기도 쉽지 않은데 하늘나라 궁전에 어떻게 들어갑니까? 하나님 궁전에 감히 우리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까? 그런데 감사와 찬양은 하늘나라의 문이 열리고 하늘나라 궁전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4절로 5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야훼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아멘
여러분 감사하면 하나님 문에 들어가고 찬송하면 하나님의 궁전에 들어간다. 와~ 이것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만나기 위해서 특별히 기도원에 가거나 특별한 교회에 찾아갈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내 사무실에서 내 부엌에서 내 안방에서 하나님께 꿇어 엎드려서 감사하고 찬미하면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 궁전 앞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간구하면 그 간구가 응답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감사와 찬양 중에 거하십니다.
시편 22편 3절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찬송이 바로 하나님이 임재하게 하는 향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합니다. 여러분 이 우주에서 하나님 보다 높으신 이가 있습니까? 안계시지요. 하나님보다 영화로우신 분이 어디 있습니까? 영화의 극치를 가지고 계시며 지극히 거룩하고 높으신 분이 더 높아질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더 높일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하면 하나님이 존귀를 받고 영화로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최고로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더 높이고 더 영화롭게 하는 길이 감사와 찬양의 길인 것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더 이상 높일 수가 없고 더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할 수 있습니다. 감사와 찬양을 하면 하나님이 정말로 더 높아진 마음에 고요함을 가지고 더 영화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을 하면 하나님이 영화로움을 느끼지요. 여러분 자녀들이 부모에게 와서 감사를 하면 여러분 마음이 화끈해지고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참 자식 잘 길렀다. 더 잘 돌봐줘야 되겠다. 영화로운 마음이 생기고 도와줄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 것입니까?
시편 104편 33절에 "내가 평생토록 야훼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그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낌없이 도와줄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닙니까? 여러분 아무리 내 뼈 속살에서 나온 자식이라도 늘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면 여러분 도와 줄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하나님의 구원과 도우심의 팔을 뻗으시는 것은 찬송을 통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로 26절에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혀서 한밤중에 차고에 차인 체 온몸은 맞아 상처가 입어 아프고, 빈대, 벼룩이 들끓는 곳에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부르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감동을 하시고 영화로움을 느끼든지 빌립보 옥토를 잡고 흔들어 버렸습니다. 거대한 진동이 일어나고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다 열려 버리고 차고가 다 끌려져 버리고 그들은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이 해방과 자유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불행과 우울증과 고통으로 묶어 놓지만은 감사와 찬양은 자유와 해방을 가져오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양은 굉장히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하면 입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 어릴 때 여우 잡으러 가면 여우 굴에다 생나무를 꺾어다가 내리 불을 때 찌르면 여우가 코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서 튀어 나오면 몽둥이로 때려잡았어요. 그래서 옛날에 다 여우 목도리 하고 다니는 사람은 그렇게 여우 때려잡아서 여우 목도리 하고 다녔었습니다. 요사이 그러다가 환경주의자들에게 큰일날 소리하겠지만... 그런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연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 향기가 나게 하는 것입니다. 아주 달콤한 향기가 나게 하시므로 하나님께서 향기를 흠향하시고 기뻐하시고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69편 30절로 31절에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야훼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하나님께 황소를 잡아서 재물로 드리는 것보다도 감사와 찬양을 하는 것을 하나님이 더 영화롭게 생각한다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을 가치 있게 하지요. 주님께서 십자가 짊어지고 고생을 당했는데 감사한 말을 안 하면 헛고생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몸 찢고 피 흘려 얼마나 고통을 당했습니까? 얼마나 아프셨나. 못 박힌 그 손과 발 죄 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그 예수님에 대해서 감사와 찬양을 하면 주님의 고통이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고난당한 것이 가치가 있다. 부모가 애를 써서 자식을 낳고 난 다음에 자식이 응아하고 울고 나오면 구로한 어머니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구로한 것은 보람 있고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우주를 지으시고 인생을 만드시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고난당한 것을 가치 있고 보람되게 만들기 위해서는 감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라고 말했었으며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로 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M. J. 라이언은 「감사」라는 책에서 인생을 변화시키는 감사의 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하면 기쁨이 넘치며, 언제나 생기가 있고, 우울증이 치유된다. 감사하면 건강해지고, 걱정 근심이 없어지며,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고통과 분노가 사라지며, 부족함을 받아들일 수 있다. 감사하면 공허하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게 되고, 상처받더라도 사랑하며, 무엇이든지 나누어 주고 싶어진다. 감사하면 모든 생명체와 교감이 있으며, 평범한 일상도 은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격언에는 "지옥이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 찬 곳이고 천국이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라고 말했었습니다. 템플턴상으로 유명한 존 템플턴은 그의 책 「열정」에서 감사의 생활을 실천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첫째, 감사할 대상을 찾아 칭찬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라. 둘째, 우리가 열망하는 좋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미리 감사부터 먼저하라. 셋째, 우리에게 닥친 문제와 도전 과제에 감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결론>
감사와 찬양은 내 자신의 삶을 행복하고 발전적으로 변화시키고 성공적인 삶으로 이끌며 이웃과 함께 협력하며 잘 살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 감사와 찬양을 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양의 삶은 손해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 개인에게도 플러스가 되고 이웃과의 관계에도 플러스가 되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께는 더욱 큰 플러스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힘써 해야 되겠는데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마귀인 것입니다. 성령은 감사와 찬양을 하라고 말합니다. 마귀는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환경에 처해 보십시오. 내 위치에 처해 보십시오. 내가 어떻게 감사 찬양할 처지가 됩니까?" 여러분, 처지가 안 되니까 더욱 감사하고 찬양해서 그런 처지가 되도록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여러분에게 좋은 선물을 가져오지만 원망과 불평은 여러분에게 수렁을 만들어 놓고 마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우리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여!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원망과 불평과 탄식 소리가 천지를 진동합니다. 이 세상이 이렇게 불안하고 평화롭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 것은 불평과 원망과 탄식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관계, 부부관계, 사회 노사관계, 정부 모든 일에 아버지 감사 캠페인이 일어나서 적은 일에 감사하면 더 큰 일에 감사 할 수 있는 복을 주신 줄 믿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이 생기고, 전등불 보고 감사하면 태양이 생기고, 태양 보고 감사하면 천국이 다가온다고 스펄전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감사의 마음을 쉬지 않고 가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감사할 꺼리가 없으면 감사할 꺼리를 만들어서라도 감사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우리가 자세히 찾아서 감사할 것을 과거나 현재에서 발견하여 감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적은 감사가 점점 30배, 60배, 100배로 커져서 큰 기쁨과 행복의 샘물이 터지게 할 줄로 믿사옵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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