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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을 다스리는 법칙

로마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011 추천 수 0 2009.12.14 16: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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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4:17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8. 4. 27. 주일설교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나의 삶을 다스리는 법칙」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은 말고삐를 단단히 잡고 말을 운전을 해야 됩니다. 말이 사람을 먼저 알아봐요. 이 사람이 잘타는 사람인지 아닌지 고삐 잡는 것을 알아 보는데 제가 몽골에서 말을 탔는데 고삐를 잡을 줄 모르니까 말이 나를 얏잡아 보고 그냥 뛸려고 하더라. 말도 사람을 알아보는데 하물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인생의 고삐를 잘 조여서 운전을 하지 아니하면 삶이 진흙 창에 빠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도 핸들을 단단히 잡고 조종해야지 핸들을 잡지 않고서 농담을 하다가는 사고를 내고 마는 것입니다. 인생도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둬서는 안 됩니다. 삶도 우리가 반드시 다스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본론>
1. 삶을 잘못 다스리는 사람
삶을 잘못 다스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삶은 우리 현실에 나타나는 것이 원인이 아닙니다. 보이는 환경은 보이지 않은 것에 원인을 두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삶도 환경도 안 보이는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우리 공기가 안보이잖아요. 그래도 숨쉬고 살고 숨을 그치면 죽잖아요. 우리 모든 의식주 생활이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후에 눈에 안 보이는 것들로 말미암아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히브리서 11장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보이는 것은 현상적인 나타나는 것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안 보이는 배후에 능력으로 말미암아 현재 보이는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안 보이는 우리가 세계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목구비를 가지고 사지를 가지고 눈에 보이잖아요. 눈에 안 보이는 우리의 존재가 뭡니까? 여러분 생각을 본적이 있습니까? 생각을 못해봤지요?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운명을 다스린다는 것은 누구든지 부인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인생이 잘못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늘 생각하기를 '사는게 의미가 없어. 이렇게 살아서 뭘하겠느냐. 아이고 인생 될 대로 되라.' 그런 사람이 무슨 정사를 하겠으며 사업을 하겠으며 교육을 하겠으며 성공적인 인생을 살겠습니까?
'지겨워 꼼짝 못하겠어. 아이고 인생 지겨워. 아이고 몸서리나.' 그 몸서리난 사람이 무슨 좋은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게 엉망이야. 가정도 엉망이고, 생활도 엉망이고, 사업도 엉망이고, 내 생애가 엉망이야. 어디서 출발해서 어떻게 끝맺을지 몰라.'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혼돈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반드시 눈에 안 보이는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인생이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아 나는 이제 지쳤어. 다 귀찮아. 마누라도 귀찮고 자식도 귀찮고, 인생도 다 귀찮아.' 그리고 마약을 하고 술을 퍼먹고 하는 사람 여러분 성공하는 사람 보았습니까? 그 모든 실패가 그의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살고 싶지 않다. 신물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 많습니다. 살고 싶지 않고 신물이 나는 사람이 무슨 사는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생각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그 사람의 눈에 안 보이는 생각 속에서 나타나는 것을 알고 생각을 조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인생을 조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6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죽고 사는 것이 생각에서 나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생각을 운전하지 않고는 우리 인생을 바로 갈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나는 왜 이 모양이냐. 나는 모든 일이 잘 안되고 저주가 오고 고통이 오고 괴로움이 온다." 이 원인이 어디에 있냐. 현실에 있지 않습니다.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자식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다. 내 때문에 내 생각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생각이 눈에 안 보이는 것과 같이 또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이고 잘못된 꿈도 눈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 꿈을 꾸고 살아요. 잠잘 때 꿈꾸는 것은 적은 부분에 불과한 것입니다. 잠자기 전에 깨어 있는 우리들에게 마음속에 꿈이 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꿈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어릴 때부터 꿈이 있었을 거에요. 그 꿈이 있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그 꿈이 점점 커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마음속에 다 희미한 꿈이라도 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꿈을 통해서 내일이 생산되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머니가 없이 자식이 생산될 수 없는 것처럼 가슴속에 꿈이 없이 내일이 생산되지 못하기 때문에 꿈이 없는 사람은 내일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꿈을 놓쳐 버리면 내일이 없는 젊은이가 되고 가정주부나 가장이 꿈을 잃어버리면 그 가정의 내일은 없습니다. 어떤 국민이든지 내일에 대한 꿈이 마음속에 사라지면 내일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이명박 정부가 들어오고 난 다음 우리 국민들 가슴속에 '내일 잘살게 될 것이다.' 무언가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꿈이 있기 때문에 그런 내일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내일은 희망이 없어. 모든 것이 절망이야. 끝장이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런 꿈을 꾸고 있으면 내일은 다가오지 않습니다. 내일은 엉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부정적이고 잘못된 꿈을 그리면 내일이 망하고 현실이 망하는 것입니다. 실패한 삶을 꿈꾸지 마십시오. '나는 못되고 안 되고 할 수 없다. 손대는 것마다 실패한다.' 그런 꿈을 마음속에 꾸고 있으면 그 꿈이 여러분 생활 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늘 젊은이들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꿈을 보여 주십시오. 당신의 미래를 내가 예언해 주겠습니다.
당신 점쟁이 집에 갈 필요 없어요. 사주팔자 볼 필요 없어요. 당신의 마음속에 꿈을 보여 주시면 내가 내일을 말해주겠습니다." 왜, 꿈이 잉태된 사람이 밖으로 그것을 낳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는 소외되고 외로운 인생이다. 아무도 나의 친구가 돼주는 사람이 없다. 나는 버림받은 사람이다. 나는 너무나 외롭다.' 그런 꿈을 왜 꿉니까? 나는 주님이 같이 계시고 나는 교회가면 친구들이 있고 성도들이 있고 환영받고 사랑받는다는 꿈을 꾸는 것이 좋지 외롭고 소외되었다고 꿈을 꾸면 점점 더 외롭고 소외되고 마는 것입니다. 절망적인 자기 모습을 그리면 안 됩니다. 환자가 죽을병에 걸렸어도 죽을 형상을 바라보고 좌절하고 절망하면 곧장 죽습니다. 그러나 살아날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새로운 꿈을 꾸면 그 꿈대로 이뤄지게 되는 것입니다. 꿈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늘 말하기를 "당신의 꿈을 보여 주십시오. 당신의 미래를 당신에게 보여 주겠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사람이 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꿈이 사람을 만듭니다.
사람이 꿈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꿈이 사람을 이끌어 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만큼 꿈이 중요합니다. 교육을 시킬 때 젊은이들 가슴속에 꿈을 심어 주면 그 꿈이 젊은이들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을 가지고와 훌륭한 교육시설을 가지고 있더라도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지 못하면 그 교육시설은 아무 소용없는 녹슬은 기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절망적인 모습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희망차고 소망이 넘치고 행복한 모습을 그려야 되는 것입니다.
불행한 자기 모습을 그리고 있는 사람은 항상 불행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하나. 자식도 문제고, 아내도 문제고, 남편도 문제고, 넘어져도 코 깨지고, 넘어지면 뒤통수가 또 찢어지고.. 왜 일마다 안 되느냐. 짐승을 기르면 짐승이 병들어 죽고, 사업을 하면 사업이 안 되고, 그 원인이 어디 있느냐.' 근본적으로 보면 자기 마음속에 불행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꿈을 잘못 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 꿈이 그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꿈은 자생력이 있습니다. 꿈을 품고 있으면 꿈이 스스로를 이루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좋은 꿈은 좋은 일을 이루지만 나쁜 꿈은 나쁜 꿈을 이루는 자생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이고 잘못된 꿈을 그리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라고 했는데 마귀가 오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잘못된 좌절하는 절망적인 꿈을 꾸게 하는 것입니다. 와서 우리를 그냥 발가벗기고 매를 때릴 필요가 없어요. 마음속에 마귀는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꿈을 꾸게 만들어 주면은 자기 스스로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인생으로 걸어가고 말기 때문에 특별히 외부적으로 상처를 입힐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꿈은 우리가 단호하게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또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뭡니까? 부정적인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은 좋은 믿음만 가진 것이 아니라 잘못된 믿음도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믿음을 가지면 정말 고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말한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져도 된다고 했는데 그 믿음의 역사가 긍정적으로만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으로도 역사하는 것입니다. 나는 실패했다고 믿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환경에 갖다 놓아도 실패합니다. 자기가 실패했다고 믿고 있는데요. 어떠한 좋은 환경에 갖다 놓고 도움을 베풀어도 그는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 돈대주면 큰일 납니다. 다 까먹어 버리는 것입니다. 좋은 지위를 줘도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기는 세상에서 버림받았다고 믿는 사람치고 사람들과 좋은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 보았습니까? 나는 버림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내에게도 버림받고, 자식에게도 버림받고, 부모에게도 버림받고, 친구들에게도 버림 받았다. 나하고 친하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이렇게 부정적으로 믿는 사람에게 누가 와서 친구가 되고 누가 함께 손을 잡고 인생을 살기를 원하겠습니까? 사람들이 자기를 미워한다고 믿는 사람 참 고약합니다. 그런 사람 만나면 전부 적으로 삼고 원수로 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이 나쁘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운이 어디서 만들어 집니까? 바로 운이 여러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통해서 꿈을 통해서 믿음을 통해서 운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운을 환경에다가 맡기지 마십시오. 운은 여러분 속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지 바깥에서 만들어서 여러분에게 덮어씌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게 운명과 환경을 다스리라고 말했지 운명과 환경의 종이 되라고 말하지 않았었습니다. 성경에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말한 것입니다. 내가 잘못 믿어놓고 잘될 것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운이 나쁘다고 믿고 있는 사람은 모든 일에 운이 나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한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 마음에 바라는 것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고 눈에 안 보이는 것이 이루어질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실상이요, 증거인 것입니다. "당신 잘된 증거를 내보내 주십시오." 그러면 믿음을 보여줘야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성공할 실상을 보여 주십시오." 믿음을 보여줘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믿느냐가 여러분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교사들은 실험에 참석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근에 연구한 결과에 보면 눈이 파란 애들이 눈이 갈색인 애들보다 훨씬 실력이 있고 능력이 있어서 학업성적이 좋아진 것을 발견했다. 눈이 파란 아이 손들어 보세요." 손 다 들었습니다. "눈이 갈색인 애들 손들어 보세요." 하니까...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적 결과를 보니까 눈이 파란 아이들이 월등하게 성적이 좋아졌어요. 그리고 눈이 갈색인 애들은 성적이 떨어졌어요. 그런데 교사가 다시 와서 말했습니다. "전번에 우리 실험한 것이 실수였습니다. 사실 알고 보니까 눈이 파란 아이들이 능력이 없는 애들이고 눈이 갈색인 아이들이 실력이 있는 애들입니다. 갈색을 가진 사람 손드세요." 하니까 쫙 손을 들었습니다. 그 다음 얼마 있지 않다가 보니까 성적실적을 보니까 눈이 파란 애들은 성적이 떨어지고 갈색의 애들이 성적이 확 올라갔습니다.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서 그 실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파란 아이들이 실력이 있다가 생각했는데 그리고 꿈꾸고 믿었을 때 실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눈이 갈색인 애들이 실력이 있다고 새로 발표를 하자 갈색의 애들의 실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생각의 방향이 얼마나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 어떠한 믿음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은 이처럼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는 실패했다고 믿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부정적인 믿음을 가질 때는 그 결과는 역시 부정적인 결과로써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뭔지 압니까? 눈에 안 보이는 것은 잘못된 입술의 고백인 것입니다. 말 들어 보면 그 사람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요. 동양 사람들은 될 수 있으면 말을 적게 하라고 말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될 수 있으면 말을 많이 하라고 합니다. 서양 사람하고 동양 사람하고 다른 것이 그게 다릅니다. 서양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 때 자꾸 말을 하면서 일을 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도 "머리를 그려야지. 코를 그려야지. 팔을 그려야지. 옷을 그려야지." 말을 하면서 그립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입을 딱 다물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그리고 말하면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서양 사람들은 자기를 표현하는 말을 많이 하라고 하고 동양 사람들은 머리에 들어 있을수록 말을 많이 아니하고 머리에 깡통이 되면 말을 많이 하고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하간 말을 잘못하면 인생에 실패하게 되는 것은 말이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제가 늘 말씀 드리는 것처럼 큰 화물선이 파도를 헤치고 항구로 들어가는 것은 눈에 안 보이는 밑에 키가 배를 움직이는 것처럼 성경에는 우리 혀는 적은 것이로되 배의 키와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혀는 적은 것이로되 말을 움직이는 입에 있는 재갈과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혀는 적은 것이로되 큰 도시와 산천을 태우는 불쏘시개와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혀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망하는 말을 하면 인생을 잘못되게 되는 것입니다. 원망은 완전히 부정적인 세계로 인생을 끌고 가고 반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망하면 반역을 하게 돼요. 짜증나는 말을 하면은 자기의 모든 실력을 다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이고 몸서리친다. 골치 아파서 못산다. 모든 것이 아주 실증이 난다." 이런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 것입니까? 분노에 찬 말을 하면은 여러분 파괴적이 되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요건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분노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최근 유명한 영화배우 한 사람이 교통체증에 걸렸다고 욕을 하다가 73살 먹은 노인이 무슨 젊은 사람이 욕을 하냐고 해서 나가서 때렸다가 개망신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말 안했으면 그렇게 안될 것인데 분노의 말을 했다가 결국에는 분노로 미움이 들어와서 73살 먹은 노인을 때렸으니 기가 막힌 일이지요.
낙심과 탄식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후퇴하고 물러가는 것입니다. 뒤로 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했는데 낙심하고 탄식하고 못한다고 하고 좌절하고 절망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뒤로 물러가고 성공 못하는 것입니다.
잠언서 6장 2절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서 인생을 실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현실에 나타나는 여러분의 모든 상황은 눈에 안 보이는 생각, 눈에 안 보이는 꿈, 눈에 안 보이는 믿음, 눈에 안 보이는 말 이런 것들이 합쳐서 여러분 인생을 반죽을 해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셰드 헴스테더 박사는 인간은 하루에 5만에서 6만 가지의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말에도 오만 생각을 다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오만 가지 내지 육만 가지 생각을 하는데 이 생각의 75%는 부정적인 생각이고, 25%는 긍정적인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생각을 관리하지 않고 그냥 놓아두면 사람은 누구나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기울어지고 부정적인 말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성향 때문에 사람들은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욕하고, 흉보고, 거짓말하고, 손가락질 하는게 그렇게 재미가 있답니다. 사람의 성향의 75%가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주고, 오해를 가져오는 말을 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 용서하는 말, 감사의 말, 위로하는 말 등은 부단히 노력을 해야 이루어지지 가만히 내버려 놓으면 절대로 긍정적인 말을 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노력을 해야 돼요. 원망하고 짜증나는 말, 분노와 낙심에 차서 탄식하는 말 등이 모여 우리 생활을 실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현재 눈에 보이는 상황이 우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눈에 안보이는 우리의 생각이나 꿈이나 믿음이나 말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고 장차의 나도 이러한 일들이 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2. 삶을 옳게 다스리는 사람
그러므로 삶을 올바르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여러분의 삶을 올바르게 운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생각이 긍정적이고 복된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긍정적이고 복된 생활 하는데 무슨 긍정적이고 복된 생각을 할 꺼리가 있어야 하지요. 내 환경이 부정적이고 불행한데요." 그렇게 말할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면 생각을 바꿀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걸머지고 십자가에 청산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어떻게 새것이 되었어요. 용서받은 의인이 되고,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고, 치료받고 건강한 사람이 되고, 축복받고 형통한 사람이 되고, 부활 영생 천국인이 되는 은총을 갈보리 십자가에서 주님이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몸 찢고 피 흘려서 우리에게 새로운 인생을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여러분의 생각이 달라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내가 된 것을 생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이 나를 만들어 가기 때문에 생각을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온다고 말했기 때문에 마음에 생각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생각을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 십자가에 죽은 것을 몸이 짊어지라는 것입니다. 아예 아침부터 저녁까지 짊어지고 예수를 통해서 내 옛사람이 청산되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늘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복 많은 사람이다. 예수님 믿었기 때문에 인생에 좋은 일이 생겨난다. 나는 성공한다. 나는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도움을 받는다." 생각이 그렇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한다.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좋지 않은 것은 좋게 만들어 주실 것이 좋고, 모든 것이 좋아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삶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사람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사람인 것입니다.
2001년에 노벨상 수상자에 관한 연구 기록이 출판되었습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들이 성공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긍정적인 생각'이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자기는 노벨상을 탈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이었다는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 데이빗 호킨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상태에서 힘을 테스트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때 근육이 더 강해지고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 근육은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신체운동을 연구하는 존 다이아몬드의 조사에 의하면 역도 선수들은 무거운 것을 들기 전에 성공적인 결과를 상상하고 있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 기본적인 훈련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하기 전에 마음속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합니다. '내가 60kg, 100kg 120kg를 들 수 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굉장히 중요해요. 옛날에 저는 초등학교, 중등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800m 선수였었습니다. 쫙 스타트 라인에 서서 800m를 뛰기 전에 언제나 마음속에 생각합니다. '내가 저 골인 선에 1등으로 들어간다.'는 마음에 생각을 하고 늘 이미지네이션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1등 골인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고서 뛰면 능력 있게 뛸 수 있는데 그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결과를 생각하고 뛰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일어난 결과를 생각하고 뛰어야 나쁜 일도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옳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생각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좋은 일이 생긴다. 나는 성공한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하나님이 도와 주신다 같은 긍정적이고 복된 생각을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복된 꿈을 꿔야 돼요. 얻어맞는 꿈꾸지 마십시오. 넘어져서 진흙창에 빠져서 온몸에 칠갑을 하는 꿈을 꾸지 마십시오. 진짜 꿈도 여러분 한상 잘 차려먹고 깨어나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까? 맑은 물에 목욕하고 깨어나면 기분이 좋지요.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사랑받고 꿈을 깨어나면 참 좋지요. 꿈, 실제적인 꿈도 우리 생활 속에 굉장한 영향력을 미치는데 우리의 마음에 그리는 그림이 꿈인 것입니다. 여려분, 사람들은 모두 다 마음에 그림을 그립니다. 자기 마음에 그림을 그려요. 비참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아름답고 찬란한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사이 카메라를 가지고서 사진을 찰칵찰칵 찍으니까 마음에 사진기에 자기 모습을 사진 찍는 셀프 이미지 사진을 찍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된 꿈을 꿔야 된다. 복된 사진을 찍어야 돼요. 내 마음속에 내 자화상을 복된 모습으로 걸어 놓아야지 일그러진 모습으로 걸어 놓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잘되는 꿈을 꾸십시오.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을 산다고 상상 하십시오. 인정받고 사랑받는 자화상을 가지십시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꿈꾸십시오. 무엇이든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꿈에 취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술 취하면 방탕하지만 꿈에 취하면 내일이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두 가지 꿈을 꾸고 살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수한 교회를 세우는 꿈하고, 온 천하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꿈을 꾸었었습니다. 한시도 그 꿈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좋을 때도 어려울 때도 잘될 때도 못될 때도 유수한 교회를 세우고 온 천하만국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 하겠다는 두 가지 꿈을 꾸었는데 오늘 50년의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 그 꿈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음속에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꿈꾸는 것이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것입니다. 얻어먹으러 가도 그릇이 있어야 얻어먹지 담을 그릇이 없으면 못 얻어먹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그릇이 바로 생각이요, 꿈이 그릇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왕 마음속에 꿈을 그럴 바에는 긍정적인 꿈을 그리라는 것입니다. 나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다는 긍정적인 꿈을 십자가를 통해서 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답답하고 괴롭고 슬플 때마다 여러분 예수 십자가 앞에 나가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저 곳에 내 새사람이 있습니다. 새로운 인생이 있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새사람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운명을 사람이 바꾸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 운명이 십자가에 바꾸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미 주님께서 대책을 세워 놓은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생각을 바꾸고 꿈을 바꾸면 인생이 바꾸어집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그림을 새롭게 그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긍정적으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사람이 함께 계신 것도 좋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이 얼마나 마음이 듬직하고 좋은 것입니까?
저는 해외에 나가서 수만, 수십만, 수백만 군중들 앞에서 설교할 때가 많습니다. 굉장히 마음에 공포심이 오고 두려움이 옵니다. 왜냐하면 내가 잘못하면 한국 망신, 내 망신, 하나님 망신, 망신을 여러번 하기 때문에 굉장히 신경이 쓰이고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텔에서 대게 3시간에서 5시간 엎드려서 기도를 하는데 "왜 그렇게 오래 기도하느냐." 하나님이 같이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 수많은 군중들 앞에 설 때 하나님이 같이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고 강단에 올라가면 마음속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뜨끈뜨끈한 아랫목 같이 느껴지면 두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불안도 없고요. 담대하게 설교할 수 있는데 아 여행에 바빠 가지고서 미쳐 기도할 여가 없이 얼굴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그냥 강단에 뛰어 들어가면 마음에 찬바람이 술술 불어 오는게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천지 찾아봐도 하나님도 안계시고 마음에 불안과 초조해서 말을 하면 입이 자꾸 딱딱 입술이 말라붙고 천정에 혀가 붙고 말을 아주 더구나 우리말도 안하고 외국어로 하니까 쥐 뜯어 먹은 말이 나오고 죽을 고생을 하거든요. 그러므로 제가 잘 알기 때문에 3시간 내지 5시간 기도하지 않고는 결코 대중 앞에 서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는 느낌만 가지면 어떠한 대책을 세울 수도 있고 어떠한 일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으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믿으십시오.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을 믿으면 안 됩니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믿으십시오. 내가 넘어지고 자빠져도 결국에는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좋은 일이 일어나는 계기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것을 믿으십시오. '나는 병들 것이다. 약할 것이다. 나는 불행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믿으면 안 됩니다. '건강해질 것이다. 나는 행복해질 것이다. 나는 더 좋게 될 것이다.' 왜,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짊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축복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대신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살 것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총이 얼마나 큰지 여러분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버리고서 헛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들어가서 내 생각과 꿈과 믿음이 달라지면 내 운명이 달라지고 내 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긍정적으로 안 믿을 수가 있어요? 성공하고 잘될 것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라.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면 우리가 두려워하고 놀랄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우리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꿈꾸고 긍정적으로 믿으면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말이 나올까요? "인생은 멋진 거야, 살 맛 난다. 살맛나. 두 사람 먹다가 한 사람 죽어도 모르겠다." 사람 문화라는 것은 달라요. 우리 한국사람 맛있는 것 먹을 때 둘 먹다가 한 사람 죽어도 모르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 일본에서 제가 목사님들 모여 가지고서 식사하면서 너무나 맛이 있어서 "야, 둘 먹다가 한사람 죽어도 모르겠네." 하니까 자꾸 나를 따지고 달라듭니다. "왜, 한사람이 죽느냐." 그러는 거에요. 둘이가 먹는데 왜 한사람이 죽느냐고 그래서 "아이고 너무 맛있어서 한사람 죽는 것도 모르겠다." 하니까 "왜 맛이 있는데 한 사람 죽는 것 모르느냐."고 그럽니다. 사람이 문화가 다르니까 이해가 안돼요. 그래서 제가 이제는 일본 가서 둘 먹다가 한사람 죽어도 모른다는 말 절대로 안합니다. 설명을 할 수가 없어요. 자꾸 캐묻기 때문에.. 그러나 인생은 멋진거야. 살맛나. 야, 둘이 먹다가 한사람 죽어도 모르겠네. 그 얼마나 맛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좋고, 또 좋아진다. 좋은 일이야. 모든 일이 좋아진다. 걱정할 것 없다. 낙심하는 아들 등허리 턱턱 두드리면서 "야, 걱정하지마라. 다 좋아진다. 잘된다. 하나님이 계신데 무엇이 못될 것이냐. 희망이 있다. 잘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또 그대로 되는 것으로 말을 그렇게 하면 "나는 행운아야. 나는 행복해. 나는 기분이 최고로 좋다." 그러면 기분이 최고로 좋아져요. 자꾸 앉아 가지고 "나 기분 나쁘다. 기분 나쁘다. 에이 기분 나쁘다." 하면은 좋은 기분도 싹 나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늘에 구름 끼듯이 싹 마음에 부정적인 구름이 끼어요. 그러나 "나는 기분이 좋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운아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면 구름이 싹 그치고 태양이 쫙 마음속에 비취게 되는 것입니다. 쨍하고 해뜰 날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에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보십시오. 풀고 매는 것이 우리에게 달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습니까? 하나님이 왜 날 버렸습니까?" 그렇게 말하지 말고 성경에는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땅에서 부정적으로 매면 하늘에서 부정적으로 이루게 하시고 땅에서 긍정적으로 매면 하늘에서 긍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시작해야 하나님이 역사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1947년 전보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는 12살 난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땀을 흘리며 전보를 들고서 집집마다 배달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보통 배달을 하면은 다른 사람은 그냥 전보를 받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서 그냥 문 닫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한집에 전보배달을 하는데 사람이 나와서 전보를 받고 난 다음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야, 너 굉장히 똑똑하고 총명하게 보이는구나. 지금은 전보배달을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너는 온 세계에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 그 말 한마디가 마음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이민 와서 맨발벗고 사는 가난한 처지에 전보배달원의 소년의 마음속에 끓어올랐습니다. '야, 이분이 나를 알아주는 구나. 지금은 전보배달을 하고 있지만 장차는 온 세계가 알아주는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 휘파람을 불고 그는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꿈과 자기 자신에 대한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사람이 장차 누가 되었느냐. 미국의 카네기 강철 왕이 되고 세계적인 부호가 된 것입니다. 그는 나중에 부호가 되고 난 다음에도 자기에게 희망을 준 그 말 한마디가 자기에게 새로운 생각과 꿈과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말 한마디를 해도 올바르게 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더라도 격려하고 위로해 주는 말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저같이 50년을 목회를 하고 온 천하만국에 다니는 사람도 낙심이 될 때 평범한 우리 교회 구역장, 지역장이 와서 용기와 힘을 주는 말 한마디 하면 그 말이 굉장히 힘이 되고 용기가 되는 것입니다. 본인은 별 수 없는 말을 했다고 하지만 듣는 나에게는 굉장한 힘과 용기가 되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몸이 피곤하고 연약해서 기운이 쭉 빠지는데 아 나른하네.. "야, 목사님 요새 얼굴이 참 좋은데요? 무슨 좋은 약을 먹는가 봐요. 아주 건강해 보이는데요?" "아 그래요?" 당장 화장실 들어가서 거울한번 들여다보고 '아, 정말 건강해지는구나. 얼굴에 광체가 나고 아, 감사하다.' 그 지역장, 구역장 지나가면서 하는 말, 나에게 아부하려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진짜도 좋고, 가짜도 좋고, 격려해 주는 말이 굉장히 힘이 돼요. 그날 하루 종일 힘 있게 이럽니다. 그러나 나에게 잘 해 준다고 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진짜로 말해 줍니다. '아이고 요사이 많이 늙었네요. 주름살도 많이 지고 기운이 참 없어 보이는데 그만 집에 가서 드러누워 쉬시지요.' 그 말하고 나가면 '아이고 내가 힘이 없는가보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에 내 얼굴을 보며 '아이고 많이 늙었구나. 아이고 집에 들어가자. 가서 그냥 드러눕자. 오늘 아무것도 안하겠다.' 완전히 기가 빠지는 것입니다. 기가 들어오고 기가 빠지는 것이 여러분의 입술의 말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왕 말할 바에야 가족들에게나 이웃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말을 하고 희망을 주는 말을 하지 사람의 기를 뽑는 말을 안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우리가 눈에 보이는 우리 인생은 눈에 안 보이는 일들이 우리를 만든다는 것을 알면은 우리 인생을 잘 운전해 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바로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을 통하여 그 촌 영감을 변화시켜 놓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여러분 정말 초등학교도 못나온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촌 영감입니다. 갈디아우르에서 목장의 목동으로써 자란 사람인 것입니다. 이 아브라함이 기독교의 조상도 되고, 유대교의 조상도 되고, 이슬람교의 조상도 되고 요사이 정신문화를 뒤흔드는 위대한 분이 된 것입니다. 학교도 못나왔는데 하버드도 못나오고, 예일도 못나오고, 고려대학도 못나오고, 요사이는 고려대학 나와야 어깨에 힘을 주는데 고려대학도 못나오고... 서울대학도 못나오고 한세대학도 못나온 사람인데.. 그런데 이런 촌 영감이 어떻게 위대하게 되었느냐. 단순하게 인생을 변화시키는 법칙을 사용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내셔서 하룻밤에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헤아렸었습니다. 별들을 헤아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말씀하기를 "네 후손이 하늘의 저 별들같이 많으리라." 그를 통해서 그가 인생을 살아가는 법칙을 하나님이 깨닫게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없는 아들을 있는 것같이 많은 자식의 아비같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식도 없이 나이가 100살이 가까우고 아내는 아흔 살이 가까워 오는데 빈손 들고 인생을 떠나게 되는데 어떻게 할까요 하는 그에게 자식을 준 것이 아니라 생각을 바꿔 놓은 것입니다.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헤아려보고 네 자손들이 별들처럼 많을 것으로 생각하라. 우리보고 십자가를 쳐다보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누구든지 저를 바라보고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쳐다보고 바라보는 것 얼마나 중요합니까? 바라보고 생각이 바꿔지는 것이니까 아브라함이 하늘에 별들을 헤아리기 시작하자 그 마음속에 자기 자손들이 별들처럼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생각이 달라지고 슬픔이 사라지고 마음이 기뻐지고 긍정적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별들같이 많은 자식을 상상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가 눈만 감으면 별들이 하늘에 꽉 찬 것처럼 자식들이 온 세계 퍼져가서 아버지 아브라함이여라고 고함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간접적으로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 아닙니까? 유대인의 육의 자손들이고,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 받았으니 아브라함은 우리에게도 할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촌 영감이 출세했어요. 보통 출세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타나서 믿음의 법칙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생각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보는 그러한 하나님의 법칙을 깨달아 알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5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기적을 믿은 것입니다. 그는 생각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진 것입니다. 기적을 믿었습니다.
로마서 4장 18절로 22절 다 같이 소리 내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하나님이 약속한 것을 믿었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으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감각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무조건하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계시적인 믿음을 믿습니다. 주님이 주신 말씀이 계셨기 때문에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말씀을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은 것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은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에 모래 같은 자손 줄 것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드린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말을 바꾸게 했지 않습니까? 아브람,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조상이요, 사라는 많은 자식의 여주라고 창세기 17장 5절에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였다 했고
창세기 17장 16절에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라
말로써 그들의 삶에 운명을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절망에서 소망으로 패배에서 승리로 무자에서 자식이 있는 부모로 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우리가 생각을 바꾸고 꿈을 바꾸고 믿음을 바꾸어도 말로써 부인해 버리면 깽판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말 잘못하면 여태까지 생각 바꿔 놓은 것 긍정적으로 꿈꾼 것 긍정적으로 믿는 것 다 지워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말이 눈에 안 보이는 영향력 중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말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하고 말을 통해서 꿈꾸고 말을 통해서 믿습니다. 말을 통해서 우리가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은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조상이라는 이름으로 사래를 사라로 이름을 바꾸신 것입니다. 하루 종일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이름이 바꾸어지므로 말미암아 긍정적으로 시인하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집에 들어가서 부부간에 여보 그러지 이름 안 부르잖아요. 우리 집에서도 이름 안 불러요. 우리 집사람 날보고 "용기야" 안 그래요. 저도 "성혜야" 안 그래요. 우리 동양의 습관은 부부간에 여보라고 말하지 이름은 안 부르지만 이 중동이나 서양에 가면은 부부간에 이름을 불러요. 아브라함, 사라. 많은 민족의 조상이여, 많은 자식의 어머니여,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늘 불렀습니다. 그게 중요해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자. 따라 말씀하세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자. 없는 믿음을 있다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없는 거룩함을 있는 것처럼 말하고 없는 건강을 있는 것같이 말하고 없는 복을 있는 것같이 말하고 믿음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보세요.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는 것입니다. 혀가 얼마나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데 큰 힘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혀에서 방정을 떨면은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결론>
인생은 현실은 끊임없이 눈에 안 보이는 내 생각과 꿈과 믿음과 언어가 옷 입고 나오는 것입니다. 놀랬지 하고 나오는 것이 누구냐. 내 생각이 꿈이 믿음이 언어가 현실이라는 옷을 입고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이 싫으면 생각을 바꾸십시오. 꿈을 바꾸십시오. 믿음을 바꾸십시오. 말을 바꾸십시오. 그러면 지금은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여러분 생각을 바꾸고 이유 없이 꿈을 바꾸고 이유 없이 믿음을 바꾸고 이유 없이 말을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문지른다고 우리가 무슨 바꿀 조건이 있어야 되지 십자가가 우리에게 그 조건을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날 위하여 몸 찢고 피 흘려서 옛사람을 청산하고 새롭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십자가 때문에 나는 생각을 바꿀 수가 있고 십자가 때문에 새로운 꿈을 꿀 수가 있고 십자가 때문에 내가 새로운 믿음을 가질 수가 있고 십자가 때문에 나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십자가가 우리 중심에 꽉 들어서야 되고 예수 주인 것을 몸에 걸머지고 우리는 매일같이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를 통하여 변화된 우리 인생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처음 만든 것처럼 두 번째 새로운 인생은 십자가를 통하여 만들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도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인생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인생들을 하나님은 여러분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언어를 통해서 만들어 가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통해서 창조적인 역사를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지 마십시오. 책임을 여러분께 돌리고 여러분이 변화를 받으면 하나님이 변화의 역사를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예수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인생이 달라지게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광야에서 뱀의 독에 물려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모세가 매달아 놓은 놋 뱀을 바라보고 다 나음을 입은 것처럼 마귀의 독에 올라서 죽어가는 우리들이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고 모두 다 달라지게 도와 주시옵시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태어날 때부터 잘못된 운명 짊어지고 태어난 사람이 없사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운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옛사람은 청산되고 새사람으로 변화될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 예수님을 통해서 생각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게 도와주시옵소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옷 입고 사는 사람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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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 마태복음 화평과 검으로 오신 예수 마10:34-39  강종수 목사  2009-12-13 1844
2509 사도행전 한 시대 하나님의 쓰임받는 사람들 행13:1-3  김필곤 목사  2009-12-13 2697
2508 사도행전 땅을 보는 사람과 하늘을 보는 사람/ 행12:17-25/  김필곤 목사  2009-12-13 3125
2507 사도행전 인간의 불가능 속에 계시는 하나님 행12:1-17  김필곤 목사  2009-12-13 2564
2506 사도행전 한 시대의 순교자 행12:1-3  김필곤 목사  2009-12-13 2032
2505 사도행전 경건한 사람 행10:1-8  김필곤 목사  2009-12-13 2151
2504 사도행전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상 행11:19-30  김필곤 목사  2009-12-13 2981
2503 사도행전 변화 행11:1-18  김필곤 목사  2009-12-1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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