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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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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8. 5. 4. 어린이ㆍ성찬주일설교 |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토기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자기 마음에 생각대로 좋은 토기도 만들고 또 험하게 쓸 그릇도 만듭니다. 똑같은 진흙인데도 그것을 정성을 들여서 아름다운 밥상에 올라갈 수 있는 그릇도 만들고 장독간에 들어갈 그릇도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안에 있듯이 어린 아이도 어린 아이도 부모님의 손안에서 그 인격이 형성되어 가며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교육과 나쁜 교육이 어린이의 인격형성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 어린이 주일을 통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육이 우리의 자녀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어린이는 사랑을 먹고 자란다
첫째로, 어린 아이는 사랑을 먹고 살므로 어린 아이가 우리 가정에 하나님 선물로 주어지면 극진한 사랑을 가지고서 길러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는데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도 그 근본적인 존재는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의 교제, 사랑의 교통을 통해서 사람은 생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리 어머니가 젖을 잘 먹이고 좋은 잠자리를 마련해 줘도 시시때때로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등허리 쓰다듬어 주고 사랑을 하지 않으면 쉽게 병들어서 죽습니다. 의사들이 발표한 것을 보면 유아원에서나 어린이 병동에 입원한 어린 아이들을 돌볼 때 좋은 약을 먹이고 좋은 공부방의 온돌을 만들어 주고 좋은 이브자리를 줘도 하루에 세 번 이상 안아주고 얼러주고 쓸어주고 뽀뽀해 주지 아니하면 어린 아이들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의학적 증명을 하고 그 다음부터는 반드시 유아들이 있는 곳이나 어린 아이들 병동에는 하루에 세 번 이상 간호원이 가서 얼러주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아주고 스킨십을 해주는 것이 마음에 안심과 평안을 갖게 해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무의식중에 불안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평안히 있다가 세상에 태어나니까 모든 것이 불안하잖아요. 그 마음에 평안을 주고 안심을 주고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아직까지 대화가 안 되고 서로 의견이 교환되지 않은 형편에서는 부모님의 사랑이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또 이웃의 사랑이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은 말만 가지고서 사랑이 전달 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스킨십입니다. 안아주고 쓸어 주고 엉덩이를 두들겨 주고 얼굴을 비벼주고 뽀뽀해 주고 그것이 가장 마음속에 안심과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저는 나이가 이제 73살이지만 우리 할머니가 날 안아주고 품어주고 내 새끼하고 등허리를 어루 만져주던 그 기억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할머니 생각만 나면 할머님의 스킨십이 내 뼈 속에 아로 새겨 있는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가 어릴 때 스킨십을 해주는 것은 성장에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을 갖고 안심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스킨십을 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머니 아버지 여러분, 할아버지 할머니 여러분! 손주, 손녀 자녀들을 많이 끌어 안아주고 엉덩이 두드려 주고 그리고 얼굴도 비벼주고 뽀뽀도 해주고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이것이 자녀 교육에 절대적인 필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비단 자녀뿐만 아닌 것입니다. 요사이 부부들이 서로 소외되고 멀어지는 이유는 스킨십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한 번씩 안아 주십시오. 남편도 아내 안아주고 아내도 한번 안아주고 출근하기 전에도 서로 한번 안아서 얼굴 한번 비벼 주고 들어오면 반갑게 안아주고 '그것 한두 해 산 것도 아니고 10년 넘게 살았으면서 이제 새삼스럽게 무슨 그런 짓을 하느냐.' 그게 마음에 평안을 주고 안도감을 주고 생기를 돋아 주는 것입니다. 마음에 사랑의 기운이 스킨십을 통해서 통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가족하고 그렇지 아니하는 가족하고 가정에 사랑의 온도가 확실히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어린 아이는 더구나 많이 쓰다듬어 주고 안아줘 그들에게 사랑의 생기를 뜨겁게 만들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홀트 고아원에 제가 방문한 적이 있는데 전시에 6.25사변 때입니다. 혼혈아들이 미국의 부모들을 찾아가기 전까지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양부모가 와서 정해 놓으면 이제 공소를 하는데 수용된 곳에 가면 병아리 기르듯이 고아들이 와글와글 합니다. 그러면 어린 아이들이 제게 뛰어 와서 가슴에 매달리면 한번 매달리면 아무리 떼도 안 떨어져요. 엄청나게 끌어안고 그냥 고함쳐 웁니다. 떨어져 나갈까 싶어서.. 아주 마음이 아프기 그지없어요. 얼마나 사랑이 그립기에 잘 먹이고 잘 입혀 주고 잘 재워주는 데도 불구하고 어른들의 가슴에 매달려서 안 떨어지려고 저렇게 부르짖는거냐.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사랑이란 없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 없이는 다 헛된 거에요. 잘 먹여줘도 헛된 것이고 잘 입혀 줘도 그것이 만족을 주지 않습니다. 평안하게 살게 해줘도 그것으로써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사랑이 있어야 되고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아야 인생을 사는 것이고 어린 아이들도 사는 것입니다. 어린이 교육에서 사랑을 풍성히 부어 주십시오.
마가복음 10장 13절로 16절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밀쳐낸 것이 아니라 끌어안고 그리고 머리에 안수해서 축복을 해준 것입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예수님께 그때 한번 안기고 안수 받은 사람 전부 성자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2. 제일 먼저 하나님과 예수님을 배우게 하라
여러분 둘째로, 어린 아이들에게 예수님과 하나님을 먼저 배우게 만들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말을 배움과 동시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배우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지식이 그것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고 자기 목숨 하나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 때 가장 중심이 되는 보화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알도록 만들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원형이 있습니다. 그 원형이 죄로 말미암아 망가졌지만 그 원형에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채워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짐승들은 아무리 예수님과 하나님을 가르쳐도 못 깨달아요. 원형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원형이 있어요. 어린 아이가 아직 말도 배우지 않고 이성이 발달 안 되어도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한 것은 자연적으로 알도록 마음에 그렇게 원형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부모님이 채워주는 것입니다. 시골에 가면 우물물에 돌을 집어넣고 쓰레기를 집어넣어서 우물을 막아 놓아도 원래 우물물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파헤쳐 놓으면 물이 콸콜 쏟아나는 것입니다. 내버려 놓으면 그 우물은 막혀 있지요. 원래 하나님에 대한 사랑, 하나님의 모습을 마음속에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곳이 죄로 말미암아 막혀지고 더러워졌지만 이것을 청소해서 부모들이 다시 샘물이 솟아오르게 만들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가장 먼저 배우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를 말하기 전에 예수님, 하나님 이 말씀을 배우도록 도와 줘야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엄마, 아빠와 동시에 예수님, 하나님 아버지 일일이 교리적으로 다 알려줄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교리적으로 알려줘도 깨달을 수 있는 지성이 없습니다. 그래도 애들은 받아 외우고 같이 고사리 손을 합쳐서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는 이유는 마음속에 원형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기가 알던지 모르던지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알도록 이미 하나님의 형성이 꽉 찍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살려주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전도서 3장 11절에 보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이미 마음속에 영원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마음속에 주신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가수인 할버톤이 어느 날 어린 아들과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마음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한 소년이 그 아들과 이야기 하는데 "야, 우리 아버지는 이곳 시장님의 굉장히 가까운 친구요, 시장님하고 사랑스러운 대화도 하고 늘 만난단다." 그랬더니 이 오페라 가수인 할버톤씨의 아들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야, 그건 말도 하지 마라. 우리 아버지는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과 친구요, 우리 아버지는 매일 우리와 같이 하나님과 이야기 하고 하나님과 가까이 지낸단다." 그 대화를 듣고 아버지가 마음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얼마나 가정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감동을 느꼈던지 친구에게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가족은 친구요 가깝다는 것을 자랑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정도로 자녀들을 주님께로 교육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하나님이 이 땅에 부모에게 잠시 맡겨 준 선물입니다. 어린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께 돌려 줘야지. 왜 하나님의 자녀를 내 소유물로 빼앗아서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가정예배 같이 드리고 주일예배에 출석시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귀찮아 하더라도 잠자는 애를 깨워서라도 가정예배를 드리게 하고 밥 먹여서 주일날 손잡고 주일 예배에 참석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습관은 어릴 때부터 들여야 되지요. 습관이라는 것은 한번 만에 습관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자주 자주 반복해야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한 가지 습관에서 다른 습관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21번을 반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오른쪽 발을 가지고 신을 신고 그 다음 왼쪽 발을 신는 것을 그 다음 습관을 왼쪽 발부터 먼저 신는 습관을 들이려면 21일 동안 관심을 가지고 마음에 애를 써서 왼쪽 발부터 신을 신어야 그것이 습관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요사이 영어 열이 대단한데 하루 아침에 영어가 공부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는 습관입니다. 자꾸 말을 하므로 반복하지요. 처음부터 말 잘하는 사람 보았습니까? 어린 아기들 말하는 것 보십시오. 처음에는 할아버지를 말 못하고 할비, 할머님을 할미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할비, 할비, 할비, 할아비, 할아비, 할아버지, 할아버지.. 습관으로 자꾸 고쳐 나가는 것입니다. 그만큼 영어도 여러분 영어마을 같은데 들어가서 한 일주일 공부한다고 해서 영어가 되는 것 아닙니다. 집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대화하면 습관이 되어서 자동적으로 입이 열리는 것입니다. '아휴 머리가 좋아야 외국어를 잘하지.' 여러분, 바보도 말은 참 잘 한다구요. 바보도 말은 잘한다고.. 왜, 습관인 것. 언어라는 것은 습관이지 머리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자꾸 말을 해야 돼요. 저도 외국어를 40년 가까이 했습니다만 지금도 매일같이 영어신문을 읽고 있는 것은 하루라도 습관을 등한이 하면 가먹어 버립니다. 그냥 아물아물하고 까먹어 버리고 말아요. 자꾸 계속해서 습관을 계속해야 그것이 몸에 배어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 예배를 드리고, 주일예배 드리는 것을 습관화되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연적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가정예배 봐야 된다. 주일예배 봐야 된다. 안보면 마음이 깨끔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렇게 습관을 들여 줘야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6절로 7절에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라.
주야로 하나님 말씀을 강론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잃어 버려도 좋지요. 말씀을 잃어버리면 생명을 잃어 버리기 때문에 주야로 길을 걸어갈 때나 앉을 때나 설 때나 잘 때나 누울 때나 하나님 말씀을 강론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강조한 것이니 새벽기도, 아침예배, 주일예배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 한국 속담도 있거니와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미국의 뉴멕시코 주에 열두 살 된 흑인 소년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가쁜 숨을 내어 쉬면서 어린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시고 나도 너를 돌볼 수가 없어. 이제 내가 죽으면 너를 할머니 손에 맡겨서 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꼭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이 세상에 다른 것은 다 잊어 버려도 에수님을 믿는 것하고 예수님 안에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의 사랑을 가슴속에서 잊어버리지 말라. 이것이 내가 너에게 남겨준 유산이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주님을 통해서 항상 마음속에 간직해라." 그리고 어머니가 세상을 떴습니다. 이 소년은 자라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흑인으로써 인종차별을 당하고 소아마비 장애까지 있어 가지고서 인종차별과 가난과 병마로 인해 괴로운 나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어머니의 유언을 생각했습니다. "주안에서 믿음, 소망, 사랑을 잃지 말라"는 유언을 생각하고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고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나간 결과에 1950년 그는 흑인으로써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미국의 정치학자 랠프 번치 박사인 것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께 물려받은 신앙 유산은 절망에 처한 소년에게 힘이 되었고 꿈과 소망을 잃지 않게 된 것입니다. 어린 아이 때 마음이 부드러울 때 어머니가 삶의 보화를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니 그 보배를 어린 아이 때부터 품고서 산 결과에 그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찾는 원형이 있습니다. 부모는 그 신앙의 원형을 깨우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함께 가정예배 드리고 주일 성수하며 신앙을 가르칠 때 그것이 그의 인생을 기르는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3. 성격 좋은 인격자로 키우라
셋째로, 여러분 자녀를 키울 때 성격이 좋은 자녀로 길러줘야 그가 인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격을 고약하게 길러 놓아서 결혼해서 부부하고 늘 싸우고 이웃하고 늘 투쟁하고 인생을 상처 투성이로 사는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아주 성격이 고약해요. 같이 할수가 없는 사람이 있어요. 저도 70 평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는데 아주 사겨도 마음이 편안하고 부드럽고 즐거운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성격이 고약하고 삐뚫어지고 꽤꽤 틀려서 만나기만 하면 상처를 입고 고통을 주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하고는 인생을 행복하게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성격은 1살에서 6살에 인격의 기초가 이뤄진다고 말합니다. 부모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을 때가 바로 1살에서 6살까지인 것입니다. 그때는 백지와 같습니다. 백지에 여러분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그대로 물방울이 번져 나가지 않는 것입니까? 백지에 잉크로써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 있는데로 그려지지요. 이미 그려 놓은 그림책위에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백지와 같습니다. 1살부터 6살까지 인격이 형성되는 기초에 부모하고 제일 가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12절로 13절에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고 말한 것처럼 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요사이도 웃을 때 우리 아버지처럼 웃습니다. 걸음걸이를 걸을 때 우리 아버지처럼 걸음걸이 걷습니다. 면도를 할 때도 우리 아버지처럼 면도를 합니다. 싫어요. 자꾸 내 이 모든 생활에 아버지가 접촉하고 나는 사라지니까 싫지만 어린 아이 때부터 나는 아버지를 본으로 삼았었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걸으시더라. 이렇게 웃으시더라 이렇게 면도를 하시더라. 아버지가 식사를 이렇게 하시더라. 그것도 닮아 가지고서 늘 아버지 하는데로 따라 해요. 우리 아버님이 식사하실 때 늘 비벼 잡수셨습니다. 그래서 나도 늘 비벼 먹어요. 요사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먹는 것이 좋아졌습니다. 본이 되어서 몸에 딱 밴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바로 0살부터 6살까지 어린 아이의 악하고 흉악하고 고약한 부모사이 밑에서 살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력이라는 것이 자녀들에게 지울 수 없는 결과를 나타낸 것입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을 결정하는 가장 귀한 시기가 태어나서부터 6세까지라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콜디 마이어 박사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인들 행동 양상과 태도의 85% 이상이 1세에서 6세 사이에 심어진다는 것입니다. 1세에서 6세까지의 기간에 이미 그가 성인이 되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의 거의 대부분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잠언서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그 아이의 일평생 인격을 형성하는 데 대해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잘 돌봐줘야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자녀를 잘 키울 수 있게 하여 현명한 인에게 조언을 받으러 가겠다고 연락을 했습니다. 그분이 날짜를 정해서 오라고 해서 가니까 그 어머니를 정원으로 데려가더니만 정원에 나무를 여러 그루 심어 놓고 그 나무를 뽑으라고 합니다.
제일 처음 보니까 이제 막 심은 야들야들한 나무인 것입니다. 어머니가 쉽게 뽑았어요. 두 번 째는 심은 지가 좀 날짜가 지난 것인데 뿌리가 좀 내렸으나 그것도 쉽게 뽑았습니다. 세번째 나무는 벌써 심은지 1년이 넘었습니다. 그래도 그것 땀을 뻘뻘 흘리면서 뽑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나무는 심은지 5년 넘은 뿌리가 꽉 내렸는데 아무리 매달려도 땡기고 흔들고 매달려도 움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땀을 흘리면서 "선생님 이것은 못 뽑겠는데요." 하니까 "자녀 교육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어릴 때 야들야들 할 때는 쉽게 성격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좀 세월이 지나도 쉽게 돌볼 수 있지만 이미 5년 10년 습관이 깊이 뿌리 내린 성격은 결코 뽑히지 않습니다." 거기에서 큰 교훈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읽어 본 것입니다. 세월이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 때가 가장 인격을 형성할 수 있는 좋은 때이고 벌써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힘듭니다. 고등학교, 대학 들어가서 부모 말 잘 듣는 사람 봤습니까? 고등학교 대학 들어가면 벌써 말 안 들어요. 초등학교 때는 부모가 여름에 우리 제주도 가자하면 두말하지 않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중학교 가면 벌써 그중에 많은 사람이 "내 친구하고 놀러 가려고 했는데..." 고등학교까지 말 꺼내 놓지 못합니다. 대학은 어림없는 말 하지 마십시오. 자기는 자기대로 가지.. 그러므로 우리 부모를 따를 때가 초등학교 때인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 신앙을 심어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평생에 그 신앙의 습관을 내려놓으면 아무리 세상에 나가서 세상 유혹에 흔들려도 뽑히지 않는 것입니다. 5년 이상 10년 동안 신앙의 뿌리 뽑히면 그 뿌리가 깊어가지고서 습관이 뿌리가 깊어져 가지고서 세상이 아무리 와서 내 흔들어도 뽑혀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건강한 심성과 좋은 습관입니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과 같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배우게 하여 어린 아이 삶에 어린 아이의 삶에 뿌리 내리게 하는 것이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데 중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위, 명예, 권세 다 얻어도 영원히 지옥가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입니까? 오직 영원히 사는 길은 예수 믿고 아버지 섬기는 길밖에는 영원히 사는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만사형통하게 사는 것도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사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 말씀하기를 "내가 주는 이 성경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대로 하면 네가 가는 곳마다 형통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때는 모세 오경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66권이나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성경이 만사형통과 번영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 줄 것 없어요. 예수 믿고 하나님 섬기고 성경을 유산으로 주면 성경 가운데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찾아서 인생을 살면은 그것이 바로 금을 캐는 금맥이요, 바로 그것에서 다이아몬드를 캐는 광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을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 주어서 성경을 중심으로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폭력으로 아이를 고치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이들이 성격을 삐뚫어지게 하는 것은 부모가 어린 아이 성격 고친다고 무조건하고 뺨 때기를 후려 때리고 그냥 몽둥이로 패고 자녀 학대를 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하면 자녀들은 부모에게 대한 원한과 함께 사회에 대한 복수심으로 마음이 꽉 들어차는 것입니다. 적개심으로 마음이 삐뚫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뭘 잘못하더라도 이해하고 동정하고 그 다음에는 징계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선교사님 집에 종종 드나드는데 존 스테츠 목사님 집에 딸만 셋을 길렀는데 그 딸들이 참 잘 자랐어요. 그래서 내가 가만히 하는 것 보니까 딸이 잘못했을 때 아버지가 불러서 딸을 무릎이 앉혀 놓고 설명을 해요. "너 이렇게 이렇게 이런 것을 잘못했다. 너 잘못한 것 인정하지?" 어린 아이가 인정한다고 하니까 "잘못하면 내가 어떻게 한다고 했지?" "때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네가 오늘 잘못했으니까 매를 몇 차례 맞아라. 그래서 종아리 걷어." 그러더니만 종아리를 때려요. 그런데 잘못했다고 인정하기 전에는 절대로 강제로 종아리를 때리지 않아요. 늘 설명을 해요.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어린 아이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놓고 난 다음에 설득을 시키고 어린 아이가 왜 벌을 받는지 이해하도록 해놓고 난 다음 벌을 주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굉장히 충격을 주어서 제가 나중에 어린 아이 키울 때도 그 선생님의 하던 방법을 실천했습니다. 무엇을 잘못했으면 애들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잖아요. 충분히 변명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네가 이것을 잘못했는데도 잘했다고 생각하느냐? 못했지? 잘못했으면 고쳐야 되겠지? 그러면 잘못했으면 매를 맞겠다고 했으니 맞아야 되겠지?" 충분히 자기가 인정하고 난 다음 "그러면 바지 걷어." 그리고 난 다음 매를 사랑의 매를 때리는 것입니다. 때리는 것을 좋아할 리가 있습니까? 부모가 자식 때리는 것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 그렇게 고쳐줘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해시키고 동정하고 타이르고 징계해야지 무조건하고 폭력으로써 후려 때리고 발로 밟고 차고 이렇게 하면 어린 아이의 마음에 적개심을 가지고 삐뚫어지게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육도 아니고 폭력인 것입니다.
4. 어린이를 한 인격으로 취급하라
넷째로, 어린 아이를 키울 때 나이가 어리지만 한 인격적으로 취급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대화의 상대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우리한국 사회에서는 지금은 안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자랄 때는 어른들 이야기 하는데 가서 무슨 이야기 하면 "시끄럽다. 저리 가라! 어른들 이야기 하는데 왜 애들이 야단이야?"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도 '내가 고양이냐 개냐? 나는 왜 인간취급을 못 받느냐.' 내가 나이가 70이 넘었는데도 14살, 15살 때 경험한 것이 가슴속에 아직도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한번은 우리 학교에서 야구시합을 했는데 야구 경기에서 이겼단 말입니다. 나에게는 하늘 문이 열린 것 같은 그런 기분입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집에 오자마자 아버지에게 보고하려고 하는데 아버지 이웃 손님들하고 이야기를 하고 계세요. 그것을 뛰어 들어가서 "아버지, 아버지! 오늘 우리 동래중학교가 경남중학교하고 야구시합에서 이겼습니다." 그러니까 딱 보시더니만 "어른들 이야기 하는데 와서 참견 하는게 아니냐. 저리가!" 나는 그때 인생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인간도 아니구나. 빨리 어른이 되어야지. 어린이로써는 살수가 없구나.' 그때부터 어른 되기를 사모한 것이 지금까지 어른 되기를 사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를 인격자로 대해주지 아니하고 대화의 상대로 생각하지 아니한 그 어린 아이에게 마음에 굉장한 충격을 받고 나중에는 어른하고 이야기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에서 어린 아이도 인격자로써 인정을 받고 대화의 상대로 삼아 주어서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당당히 가정 일에도 서로 자기 의견을 말하고 자기 소신을 말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됩니다. 어린 아이는 어린 아이의 세계가 있지 않습니까? 고양이 기르는 것, 강아지 기르는 것, 꽃밭 가꾸는 것, 친구들 데리고 오는 것, 과자 먹는 것, 자기에 대한 의견인데 무조건하고 어린 아이의 의견은 무시하고 "너는 부모의 명령에 따르라!" 무조건하고 쥐어박고 부모명령 안 따르면 쥐어박고 부모 명령만 따르라고 하면은 그것은 인격적으로 취급하는게 아니고 동물로써 취급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어린 아이들하고 어린 아이들 레벨에서 대화를 하고 그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부모의 의견도 말하고 이것이 좋다는 것을 설득시킬 수 있는 그러한 인내력으로 자식을 키워야 되는 것입니다. 자식은 그냥 내 던져 놓으면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들풀처럼 자라지 말고 잘 가꿔서 자라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0절 잠잠히 귀 기울여서 들어 보세요.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여러분 가정에 있는 어린 아이를 여러분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아버지가 천사를 보내서 매일같이 그 어린 아이에 대한 보고를 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상대로 여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데 여러분이 무엇이기에 무시해 버리고 상대로 삼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가 굉장히 이 말씀을 깊이 있게 마음에 생각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도 천사를 보내셔서 어린 아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받게 하는데 우리가 어린 아이를 대화의 상대로 삼지 않고 물건취급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를 키울 때 과잉보호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어릴 때 보니까 우리는 그 당시에는 자전거가 좀처럼 없어서 남의 자전거를 빌리면 그 빌린 시간에 빨리 타서 자전거를 배워야 되는데 그러니 자전거를 배우자니까 얼치기 넘어지고 무릎이 깨지고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요사이 자전거는 성능이 좋지만 그때는 어른 자전거 큰 것을 그것을 올라 타려니까 발통이 잘 발라지지 않지요. 그런데 우리 친구 중에 부잣집 아들은 다친다고 부모가 절대로 자전거에 손도 못대게 했습니다. 우리는 늘 많이 했잖아요. 남의 자전거도 잘 타고 도둑 자전거도 훔쳐 타고 자전거를 잘 탔는데 걔는 학교 졸업할 때까지 자전거를 못 탔어요. 과잉보호해 가지고서 다치고 상처 입는다고 자전거를 못 타게 하니까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놀 때 그는 한 구석에 서서 팔짱끼고 구경만 했습니다. 못타니까 또 한집은 축구를 못하게 했습니다. 발에 차이고 넘어지고 다친다고 해서.. 그러나 들풀같이 자란 우리들은 그냥 축구를 하고 뛰고 밀치고 건강히 놀았는데 부모가 축구를 못하게 해서 그는 늘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과잉보호하면 잘 자랄 줄 알지만 그 아이가 옳게 자라지 못하고 완전한 인격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독립심을 길러 줘야 돼요. 자기가 밥도 할 줄 알아야 되고 청소도 할 줄 알아야 되고 왜냐하면 인생은 아픔과 실패를 통하여 자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만 통해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실재 해보고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실패가 굉장히 좋은 선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다 부모가 돌보아 주고 다 알아서 해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옷도 입히는데 부모가 전부 어릴 때부터 단추 끼워주고 옷 입혀 주고 하지 말고 "네 손으로 옷 내복도 입고 단추고 끼고 가방도 정리해서 학교 가라." 그래야지 학교 가는 모든 뒷처리를 부모가 해주면 나중에는 의존심이 생겨서 독립심을 잃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가 일어나서 이불도 개고 방청소도 하고 옷도 자기가 입고 가방도 정리해서 학교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해줘야지 귀하다고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도 다 해주고 옷도 다 입혀 주고 정리도 다 해주고 가방까지 다 만들어 주면 그는 결코 자라지 못하고 독립심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옷도 삐뚫게 입어 보고 바지도 거꾸로 입어 보고 화장실에 가서 소변 보려고 하는데 소변구멍을 못 찾아 가지고 보니까 옷이 거꾸로 입어 있고 자기가 실수해야 조심을 하고 이것은 안되더라. 이것은 되더라 배우지요. 누가 돌봐주면 안되는 것입니다. 실패의 아픔을 통해야 자란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23장 13절로 14절에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잠언 29장 15절에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고함만 치면 다 들어주고 응석만 부리면 다 들어주고 하면 완전히 버리지 않습니까? 부모가 잘 타이르고 교훈하고 가르치고 난 다음 안 들으면 "그때는 너를 채찍에 때린다. 나하고 약속이다. 너 요번에도 또 잘못하면 자 아빠가 때린다. 엄마가 종아리 때린다. 약속이다." 그리고 난 다음 잘못하면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해 주고 인정을 받고 난 다음 채찍을 때려서 고치는 것입니다. 사람이 채찍으로 얻어맞으면 그것이 마음속에 영혼 속에 깊이 박히는 것입니다. 짐승들도 때리면 나중에 주인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녀 기를 때 자녀에게 자꾸만 학교에서 성적 잘 받아오라고 강요하지 마십시오. 학교 일등이 사회 일등은 절대로 아닙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늘 감격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 초등학교 때 늘 1등 하던 애들은 벌써 다 죽었어요. 그런데 나하고 옆에 앉아있는 내 짝궁 있는데 누구라고 말은 안해요. 아직 살아 있습니다. 늘 꼴찌를 해요. 시험칠 때 내가 늘 보여주는데 보여주는 것도 못 베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졸업하고 난 다음 그는 제일 큰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동창회 하기만 하면 걔가 돈을 제일 많이 내요. 또 일등한 사람들도 나중에 졸업하고 난 다음 도움을 받으러 늘 걔에게 가요. 나는 걔를 볼 때마다 사회에 나가서 학교 일등이 사회 일등을 결코 하는 것이 아니구나. 꼴찌를 하더라도 자기 할일을 잘하면 잘하는 구나. 여러분, 여러분 자녀의 마음속에 무엇이 장기가 있는가를 알아줘야 되는 것입니다. 특성이나 장기를 다 가지고 태어나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특성이나 장기를 주어서 태어나게 해요. 그 특성이나 장기를 키워줘야지 자꾸 며느리밥풀을 장미가 되라고 모가지를 잡아 당기면 밥풀 꽃도 안되고 장미도 안 되고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요사이 부모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남이 피아노 치니까 너도 피아노 쳐라. 남이 태권도 하니까 너도 태권도 해라. 남이 영어 하니까 너도 영어해라. 남이 춤추니까 너도 춤춰라.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학교 공부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기본요소지 거기에 반드시 일등을 하고 특등을 해야 인생을 잘사는 것 아닙니다. 인생은 자기가 하나님이 주신 장기를 잘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장기를 잘 살려서 거기에서 특출하게 잘하면 자기도 잘되고 인생도 잘되는 것입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너무 어리석어 우둔한 아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다섯 살 때는 오리 알을 품에 부화 시킨다고 쭈그리고 있어서 부모가 못 찾아서 애를 먹었습니다. 열 한 살 때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발명왕이 되지 않았습니까? 조각가 로댕의 학교성적이 항상 꼴찌였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예술학교에 입학하려고 했지만 세 번이나 거부당했습니다. 천재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수학 성적 외에는 늘 낙제점이었습니다. 그는 네 살까지 말을 할 줄 몰랐고 일곱 살이 되어서야 겨우 글자를 읽을 정도로 둔재였습니다만 수학에 뛰어나니까 수학을 개발해서 세계적인 학자가 된 것입니다.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는 대학에서 계속 낙제를 해서 교수들은 그에게 '배우기를 포기한 젊은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과학자나 예술가들도 어린 시절에는 악평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아직 그들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기 재능에 해당되지 않는데 그것을 자꾸 하라고 하니까 될 턱이 없지요. 자기 잘하는 것을 알아야 잘하지 잘못하는 것을 하라고 하면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물박사는 쓰레기통입니다. 여러분 쓰레기통에 가면 담배꽁초도 있고, 밥찌꺼기도 있고, 종이도 있고, 수건도 있고 온갖 것 다 있잖아요. 만물박사는 쓰레기통인 것입니다. 쓰레기통으로 자신을 만들지 말고 자녀들에게 특별한 장기를 알아서 그것으로써 가르치십시오. 박세리가 골프 하나 잘하니까 세계적인 인물이 되지 않았습니까? 박세리 보고 지금 고등수학 풀라고 하면 못 풉니다. 그러나 골프 치라면 잘 치지요. 사람들마다 장기가 있는데 장기를 살려 주십시오. 자식들을 강제로 자꾸 일등 하라고 강압을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물론 우리 시대는 부모님들이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 일등도 하라고 말도 안하고 꼴찌해도 꾸짖지 않았었어요. 먹어 살든지 죽든지 그냥 자라서 나가라. 그런 식으로 우리는 자랐지만은 그것이 지금 생각해 보니 오히려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끝장나게 놀았으니까. 요사이 아이들은 잠잘 때도 잠도 못자고, 놀고 싶은데 놀지도 못하고, 산에 들어 다니면서 새알도 줍고 꿩알도 줍고 새도 잡으러 다니고 짐승들과 뛰어 놀고 그런게 없지 않습니까? 밤낮으로 책하고 놀고, 책 읽고, 이 책방으로 저 책방으로 이 학습장으로 저 학습장으로 뛰어 다니다가 인생 다 끝마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인생을 살라고 할 때 그렇게 살라고 만든 것 아닙니다. 여러분 용기를 내어서 자식들의 학업에 대해서 너무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사학비로서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데 그런다고 해서 자녀가 잘되는 것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가 나중에 장기를 발견하고 장기를 개발하면 잘해요. 오늘날 영어공부 시킨다고 돈을 수없이 수없이 밀어 넣는데 제가 제 자신을 예를 들어서 미안합니다만 저는 과외수업 한 적이 없어요. 6.25때 학교도 공부 못하고 우리는 늘 놀았습니다. 그러나 영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내가 공부하겠다고 결심하니까 영어를 할 수가 있다구요. 발음도 좀 둔하고 매끄럽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가지고 온 천하만국에 나가서 복음도 증거하고 할 말 다했다구요. 저는 과외도 못했을 뿐 아니라 정상적인 학교에서 영어수업을 받은 것도 별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래도 사는데 뭘 그렇게 야단법석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애를 쓰고 기러기 엄마가 되고 기러기 아빠가 되어서 야단법석 합니까?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평생에 기러기 아빠 안 되고 94살까지 살았어도 우리 아홉 자식 다 잘 자랐어요. 어제 텔레비 보니까 어린 아이 때부터 자랄 때부터 뱀을 좋아하는 자식이 있어서 부모가 도와 줬어요. 온 방안에 뱀 천지에요. 뱀 가지고서 살았어요. 학교 공부도 안하고 뱀만 모으고 뱀 가지고 살았는데. 오늘은 세계적인 뱀 학자가 되어 가지고서 뱀독을 뽑아 가지고서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일에 전념하는데 얼마나 유명했던지 한국 텔레비까지 다 나왔지 않습니까? 뱀 하나만 성공을 해도 한국 텔레비까지 나올 정도로 유명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뭘 가지고서 만물박사를 만들려고 합니까?
오늘 우리 자녀들의 학교 성적이 조금 나쁘다고 해서 대학 입시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이 실패한 것은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의 소질을 발견하여 소질과 특성을 개발시키는 것이 부모가 해야 될 일이지 부모의 욕심과 꿈의 희생물로 삼지 마십시오. 부모가 자식 못한 것 자식에게 시키고 부모가 자신이 달성하고 싶은 꿈을 자녀에게 덮어 씌울 수가 없습니다. 내가 대통령 못했는데 왜 대통령을 하라고 합니까? 나는 우리 삼촌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촌동생이 몸이 좋지 못해서 성적이 학교 잘 못하고 나중에는 나이가 먹어서 장가들어서도 신문 배달하고 살았습니다. 그 삼촌이 불러다가 탄식을 했어요. "야, 너희 사촌형인 조용기 보아라. 조용기는 자라서 세계적인 목사가 되었는데 너는 이 꼬락서니 뭐냐?" 가만히 있다가 "아버지는 왜 박정희가 못되었습니까?" 우리 삼촌이 제게 말씀하기를 "너희 사촌동생이 바보인줄 알았는데 내가 그 말 듣고 충격을 느꼈다. 너 왜 형처럼 되지 못했느냐고 하니까 아버지는 왜 박정희처럼 되지 못했느냐고 해서 그 말이 참말이라고 해서 무릎을 탁 쳤다고 왜 아버지의 꿈을 자식에게 덮어씌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자식은 자식 나름대로 사는 것입니다. 자식 나름대로 사는 거에요. 자기 나름대로 살도록 뒤에 밀어주고 협조해주면 좋지만 너 이것해라. 저것해라. 이것 못하면 안된다. 저것 못하면 안된다고 아버지의 욕심과 어머니의 꿈을 심어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다이어 박사의 보고에 의하면 8세에서 12세 사이의 미국 어린이 자살률이 1967년 이후 15년 동안 4배나 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원인을 분석한즉 가장 큰 원인은 부모의 욕심과 목표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자녀가 미리 좌절하여 자살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도 강요하니까 부모의 욕심과 꿈에 다 도달할 수는 없고 힘은 없으니까 자기는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낙심하여 자살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지나친 기대는 자녀에게 큰 부담으로 여겨집니다. 더욱이 자녀를 부모의 꿈과 욕심의 희생물로 삼아서는 결코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해줄 것은 자녀의 소질을 살려주고 난 다음에는 잘 자녀가 잘되도록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5. 항상 기도해 주라
역사상 위대한 인물 뒤에는 항상 기도하는 어머니가 계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2장 18절로 19절에 "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딸 시온의 성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 어귀에서 주려 기진한 네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이와 같이 자녀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인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노동자 부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링컨에게 어머니가 신앙을 길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계모가 들어왔는데 계모도 신앙이 좋아서 아브라함 링컨에게 신앙 교육을 시키고 성경을 늘 읽게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링컨의 전기를 적은 사람이 보면은 "하나님은 링컨이 위대한 사람이 될 만한 조건을 하나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링컨에게는 가난과 훌륭한 신앙의 어머니만 주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가난과 훌륭한 어머니만 주셨는데 그를 통해서 링컨은 미국 16대 대통령이 되고 세계적인 인물이 된 것입니다.
감리교 창설자인 존 웨슬리는 그의 어머니 수산나에게 글을 배울 때 성경 창세기부터 글을 배웠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글을 가르치지 않고 성경 읽는 것으로 부터 시작해서 어린 아이에게 글을 가르쳤는데 그 자녀들이 세계를 움직이는 위대한 주님의 종이 된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 방탕했으나 그 어머니 모니카의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서 그는 역사적인 성자가 된 것입니다. 무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성취한 것 가운데 위대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모두 어머니의 기도 덕택이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 뒤에는 항상 기도하는 어머니가 계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 여러분 자녀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 주십시오.
누가복음 23장 28절에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십자가를 걸머지고 가면서도 나를 위해서 슬퍼하지 말고 자식들이 잘되도록 위해서 기도하라고 예수님이 부탁하신 것입니다.
<결론>
자녀는 일생에서 한번 짓는 가장 중요한 농사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고 했었습니다. 자녀교육에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는 노년에 그 열매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모시고 아버지를 섬기고 성경을 가슴에 품고 늘 읽고 묵상하는 자녀가 되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하는 부모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하나님이 자녀를 우리에게 맡겨 놓은 것은 자녀를 잘 기르라고 부탁한 것이지 우리의 소유로 삼으라는 것은 아니옵니다. 자녀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자녀로 길러주면 그들이 어느 곳에 가든지 하나님의 은총으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살수가 있게 되옵나이다. 아버지 어린 아이 때 습관을 들여 놓으면 그 습관이 평생을 가며 세상에 나가서 아무리 흔들리더라고 뽑히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어릴 때부터 자녀 교육을 신앙중심으로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토기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자기 마음에 생각대로 좋은 토기도 만들고 또 험하게 쓸 그릇도 만듭니다. 똑같은 진흙인데도 그것을 정성을 들여서 아름다운 밥상에 올라갈 수 있는 그릇도 만들고 장독간에 들어갈 그릇도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안에 있듯이 어린 아이도 어린 아이도 부모님의 손안에서 그 인격이 형성되어 가며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교육과 나쁜 교육이 어린이의 인격형성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 어린이 주일을 통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육이 우리의 자녀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어린이는 사랑을 먹고 자란다
첫째로, 어린 아이는 사랑을 먹고 살므로 어린 아이가 우리 가정에 하나님 선물로 주어지면 극진한 사랑을 가지고서 길러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는데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도 그 근본적인 존재는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의 교제, 사랑의 교통을 통해서 사람은 생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리 어머니가 젖을 잘 먹이고 좋은 잠자리를 마련해 줘도 시시때때로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등허리 쓰다듬어 주고 사랑을 하지 않으면 쉽게 병들어서 죽습니다. 의사들이 발표한 것을 보면 유아원에서나 어린이 병동에 입원한 어린 아이들을 돌볼 때 좋은 약을 먹이고 좋은 공부방의 온돌을 만들어 주고 좋은 이브자리를 줘도 하루에 세 번 이상 안아주고 얼러주고 쓸어주고 뽀뽀해 주지 아니하면 어린 아이들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의학적 증명을 하고 그 다음부터는 반드시 유아들이 있는 곳이나 어린 아이들 병동에는 하루에 세 번 이상 간호원이 가서 얼러주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아주고 스킨십을 해주는 것이 마음에 안심과 평안을 갖게 해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무의식중에 불안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평안히 있다가 세상에 태어나니까 모든 것이 불안하잖아요. 그 마음에 평안을 주고 안심을 주고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아직까지 대화가 안 되고 서로 의견이 교환되지 않은 형편에서는 부모님의 사랑이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또 이웃의 사랑이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은 말만 가지고서 사랑이 전달 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스킨십입니다. 안아주고 쓸어 주고 엉덩이를 두들겨 주고 얼굴을 비벼주고 뽀뽀해 주고 그것이 가장 마음속에 안심과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저는 나이가 이제 73살이지만 우리 할머니가 날 안아주고 품어주고 내 새끼하고 등허리를 어루 만져주던 그 기억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할머니 생각만 나면 할머님의 스킨십이 내 뼈 속에 아로 새겨 있는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가 어릴 때 스킨십을 해주는 것은 성장에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을 갖고 안심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스킨십을 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머니 아버지 여러분, 할아버지 할머니 여러분! 손주, 손녀 자녀들을 많이 끌어 안아주고 엉덩이 두드려 주고 그리고 얼굴도 비벼주고 뽀뽀도 해주고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이것이 자녀 교육에 절대적인 필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비단 자녀뿐만 아닌 것입니다. 요사이 부부들이 서로 소외되고 멀어지는 이유는 스킨십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한 번씩 안아 주십시오. 남편도 아내 안아주고 아내도 한번 안아주고 출근하기 전에도 서로 한번 안아서 얼굴 한번 비벼 주고 들어오면 반갑게 안아주고 '그것 한두 해 산 것도 아니고 10년 넘게 살았으면서 이제 새삼스럽게 무슨 그런 짓을 하느냐.' 그게 마음에 평안을 주고 안도감을 주고 생기를 돋아 주는 것입니다. 마음에 사랑의 기운이 스킨십을 통해서 통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가족하고 그렇지 아니하는 가족하고 가정에 사랑의 온도가 확실히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어린 아이는 더구나 많이 쓰다듬어 주고 안아줘 그들에게 사랑의 생기를 뜨겁게 만들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홀트 고아원에 제가 방문한 적이 있는데 전시에 6.25사변 때입니다. 혼혈아들이 미국의 부모들을 찾아가기 전까지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양부모가 와서 정해 놓으면 이제 공소를 하는데 수용된 곳에 가면 병아리 기르듯이 고아들이 와글와글 합니다. 그러면 어린 아이들이 제게 뛰어 와서 가슴에 매달리면 한번 매달리면 아무리 떼도 안 떨어져요. 엄청나게 끌어안고 그냥 고함쳐 웁니다. 떨어져 나갈까 싶어서.. 아주 마음이 아프기 그지없어요. 얼마나 사랑이 그립기에 잘 먹이고 잘 입혀 주고 잘 재워주는 데도 불구하고 어른들의 가슴에 매달려서 안 떨어지려고 저렇게 부르짖는거냐.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사랑이란 없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 없이는 다 헛된 거에요. 잘 먹여줘도 헛된 것이고 잘 입혀 줘도 그것이 만족을 주지 않습니다. 평안하게 살게 해줘도 그것으로써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사랑이 있어야 되고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아야 인생을 사는 것이고 어린 아이들도 사는 것입니다. 어린이 교육에서 사랑을 풍성히 부어 주십시오.
마가복음 10장 13절로 16절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밀쳐낸 것이 아니라 끌어안고 그리고 머리에 안수해서 축복을 해준 것입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예수님께 그때 한번 안기고 안수 받은 사람 전부 성자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2. 제일 먼저 하나님과 예수님을 배우게 하라
여러분 둘째로, 어린 아이들에게 예수님과 하나님을 먼저 배우게 만들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말을 배움과 동시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배우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지식이 그것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고 자기 목숨 하나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 때 가장 중심이 되는 보화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알도록 만들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원형이 있습니다. 그 원형이 죄로 말미암아 망가졌지만 그 원형에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채워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짐승들은 아무리 예수님과 하나님을 가르쳐도 못 깨달아요. 원형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원형이 있어요. 어린 아이가 아직 말도 배우지 않고 이성이 발달 안 되어도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한 것은 자연적으로 알도록 마음에 그렇게 원형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부모님이 채워주는 것입니다. 시골에 가면 우물물에 돌을 집어넣고 쓰레기를 집어넣어서 우물을 막아 놓아도 원래 우물물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파헤쳐 놓으면 물이 콸콜 쏟아나는 것입니다. 내버려 놓으면 그 우물은 막혀 있지요. 원래 하나님에 대한 사랑, 하나님의 모습을 마음속에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곳이 죄로 말미암아 막혀지고 더러워졌지만 이것을 청소해서 부모들이 다시 샘물이 솟아오르게 만들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가장 먼저 배우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를 말하기 전에 예수님, 하나님 이 말씀을 배우도록 도와 줘야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엄마, 아빠와 동시에 예수님, 하나님 아버지 일일이 교리적으로 다 알려줄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교리적으로 알려줘도 깨달을 수 있는 지성이 없습니다. 그래도 애들은 받아 외우고 같이 고사리 손을 합쳐서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는 이유는 마음속에 원형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기가 알던지 모르던지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알도록 이미 하나님의 형성이 꽉 찍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살려주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전도서 3장 11절에 보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이미 마음속에 영원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마음속에 주신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가수인 할버톤이 어느 날 어린 아들과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마음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한 소년이 그 아들과 이야기 하는데 "야, 우리 아버지는 이곳 시장님의 굉장히 가까운 친구요, 시장님하고 사랑스러운 대화도 하고 늘 만난단다." 그랬더니 이 오페라 가수인 할버톤씨의 아들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야, 그건 말도 하지 마라. 우리 아버지는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과 친구요, 우리 아버지는 매일 우리와 같이 하나님과 이야기 하고 하나님과 가까이 지낸단다." 그 대화를 듣고 아버지가 마음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얼마나 가정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감동을 느꼈던지 친구에게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가족은 친구요 가깝다는 것을 자랑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정도로 자녀들을 주님께로 교육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하나님이 이 땅에 부모에게 잠시 맡겨 준 선물입니다. 어린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께 돌려 줘야지. 왜 하나님의 자녀를 내 소유물로 빼앗아서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가정예배 같이 드리고 주일예배에 출석시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귀찮아 하더라도 잠자는 애를 깨워서라도 가정예배를 드리게 하고 밥 먹여서 주일날 손잡고 주일 예배에 참석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습관은 어릴 때부터 들여야 되지요. 습관이라는 것은 한번 만에 습관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자주 자주 반복해야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한 가지 습관에서 다른 습관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21번을 반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오른쪽 발을 가지고 신을 신고 그 다음 왼쪽 발을 신는 것을 그 다음 습관을 왼쪽 발부터 먼저 신는 습관을 들이려면 21일 동안 관심을 가지고 마음에 애를 써서 왼쪽 발부터 신을 신어야 그것이 습관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요사이 영어 열이 대단한데 하루 아침에 영어가 공부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는 습관입니다. 자꾸 말을 하므로 반복하지요. 처음부터 말 잘하는 사람 보았습니까? 어린 아기들 말하는 것 보십시오. 처음에는 할아버지를 말 못하고 할비, 할머님을 할미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할비, 할비, 할비, 할아비, 할아비, 할아버지, 할아버지.. 습관으로 자꾸 고쳐 나가는 것입니다. 그만큼 영어도 여러분 영어마을 같은데 들어가서 한 일주일 공부한다고 해서 영어가 되는 것 아닙니다. 집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대화하면 습관이 되어서 자동적으로 입이 열리는 것입니다. '아휴 머리가 좋아야 외국어를 잘하지.' 여러분, 바보도 말은 참 잘 한다구요. 바보도 말은 잘한다고.. 왜, 습관인 것. 언어라는 것은 습관이지 머리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자꾸 말을 해야 돼요. 저도 외국어를 40년 가까이 했습니다만 지금도 매일같이 영어신문을 읽고 있는 것은 하루라도 습관을 등한이 하면 가먹어 버립니다. 그냥 아물아물하고 까먹어 버리고 말아요. 자꾸 계속해서 습관을 계속해야 그것이 몸에 배어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 예배를 드리고, 주일예배 드리는 것을 습관화되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연적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가정예배 봐야 된다. 주일예배 봐야 된다. 안보면 마음이 깨끔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렇게 습관을 들여 줘야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6절로 7절에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라.
주야로 하나님 말씀을 강론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잃어 버려도 좋지요. 말씀을 잃어버리면 생명을 잃어 버리기 때문에 주야로 길을 걸어갈 때나 앉을 때나 설 때나 잘 때나 누울 때나 하나님 말씀을 강론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강조한 것이니 새벽기도, 아침예배, 주일예배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 한국 속담도 있거니와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미국의 뉴멕시코 주에 열두 살 된 흑인 소년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가쁜 숨을 내어 쉬면서 어린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시고 나도 너를 돌볼 수가 없어. 이제 내가 죽으면 너를 할머니 손에 맡겨서 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꼭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이 세상에 다른 것은 다 잊어 버려도 에수님을 믿는 것하고 예수님 안에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의 사랑을 가슴속에서 잊어버리지 말라. 이것이 내가 너에게 남겨준 유산이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주님을 통해서 항상 마음속에 간직해라." 그리고 어머니가 세상을 떴습니다. 이 소년은 자라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흑인으로써 인종차별을 당하고 소아마비 장애까지 있어 가지고서 인종차별과 가난과 병마로 인해 괴로운 나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어머니의 유언을 생각했습니다. "주안에서 믿음, 소망, 사랑을 잃지 말라"는 유언을 생각하고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고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나간 결과에 1950년 그는 흑인으로써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미국의 정치학자 랠프 번치 박사인 것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께 물려받은 신앙 유산은 절망에 처한 소년에게 힘이 되었고 꿈과 소망을 잃지 않게 된 것입니다. 어린 아이 때 마음이 부드러울 때 어머니가 삶의 보화를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니 그 보배를 어린 아이 때부터 품고서 산 결과에 그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찾는 원형이 있습니다. 부모는 그 신앙의 원형을 깨우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함께 가정예배 드리고 주일 성수하며 신앙을 가르칠 때 그것이 그의 인생을 기르는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3. 성격 좋은 인격자로 키우라
셋째로, 여러분 자녀를 키울 때 성격이 좋은 자녀로 길러줘야 그가 인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격을 고약하게 길러 놓아서 결혼해서 부부하고 늘 싸우고 이웃하고 늘 투쟁하고 인생을 상처 투성이로 사는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아주 성격이 고약해요. 같이 할수가 없는 사람이 있어요. 저도 70 평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는데 아주 사겨도 마음이 편안하고 부드럽고 즐거운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성격이 고약하고 삐뚫어지고 꽤꽤 틀려서 만나기만 하면 상처를 입고 고통을 주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하고는 인생을 행복하게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성격은 1살에서 6살에 인격의 기초가 이뤄진다고 말합니다. 부모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을 때가 바로 1살에서 6살까지인 것입니다. 그때는 백지와 같습니다. 백지에 여러분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그대로 물방울이 번져 나가지 않는 것입니까? 백지에 잉크로써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 있는데로 그려지지요. 이미 그려 놓은 그림책위에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백지와 같습니다. 1살부터 6살까지 인격이 형성되는 기초에 부모하고 제일 가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12절로 13절에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고 말한 것처럼 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요사이도 웃을 때 우리 아버지처럼 웃습니다. 걸음걸이를 걸을 때 우리 아버지처럼 걸음걸이 걷습니다. 면도를 할 때도 우리 아버지처럼 면도를 합니다. 싫어요. 자꾸 내 이 모든 생활에 아버지가 접촉하고 나는 사라지니까 싫지만 어린 아이 때부터 나는 아버지를 본으로 삼았었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걸으시더라. 이렇게 웃으시더라 이렇게 면도를 하시더라. 아버지가 식사를 이렇게 하시더라. 그것도 닮아 가지고서 늘 아버지 하는데로 따라 해요. 우리 아버님이 식사하실 때 늘 비벼 잡수셨습니다. 그래서 나도 늘 비벼 먹어요. 요사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먹는 것이 좋아졌습니다. 본이 되어서 몸에 딱 밴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바로 0살부터 6살까지 어린 아이의 악하고 흉악하고 고약한 부모사이 밑에서 살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력이라는 것이 자녀들에게 지울 수 없는 결과를 나타낸 것입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을 결정하는 가장 귀한 시기가 태어나서부터 6세까지라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콜디 마이어 박사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인들 행동 양상과 태도의 85% 이상이 1세에서 6세 사이에 심어진다는 것입니다. 1세에서 6세까지의 기간에 이미 그가 성인이 되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의 거의 대부분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잠언서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그 아이의 일평생 인격을 형성하는 데 대해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잘 돌봐줘야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자녀를 잘 키울 수 있게 하여 현명한 인에게 조언을 받으러 가겠다고 연락을 했습니다. 그분이 날짜를 정해서 오라고 해서 가니까 그 어머니를 정원으로 데려가더니만 정원에 나무를 여러 그루 심어 놓고 그 나무를 뽑으라고 합니다.
제일 처음 보니까 이제 막 심은 야들야들한 나무인 것입니다. 어머니가 쉽게 뽑았어요. 두 번 째는 심은 지가 좀 날짜가 지난 것인데 뿌리가 좀 내렸으나 그것도 쉽게 뽑았습니다. 세번째 나무는 벌써 심은지 1년이 넘었습니다. 그래도 그것 땀을 뻘뻘 흘리면서 뽑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나무는 심은지 5년 넘은 뿌리가 꽉 내렸는데 아무리 매달려도 땡기고 흔들고 매달려도 움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땀을 흘리면서 "선생님 이것은 못 뽑겠는데요." 하니까 "자녀 교육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어릴 때 야들야들 할 때는 쉽게 성격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좀 세월이 지나도 쉽게 돌볼 수 있지만 이미 5년 10년 습관이 깊이 뿌리 내린 성격은 결코 뽑히지 않습니다." 거기에서 큰 교훈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읽어 본 것입니다. 세월이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 때가 가장 인격을 형성할 수 있는 좋은 때이고 벌써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힘듭니다. 고등학교, 대학 들어가서 부모 말 잘 듣는 사람 봤습니까? 고등학교 대학 들어가면 벌써 말 안 들어요. 초등학교 때는 부모가 여름에 우리 제주도 가자하면 두말하지 않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중학교 가면 벌써 그중에 많은 사람이 "내 친구하고 놀러 가려고 했는데..." 고등학교까지 말 꺼내 놓지 못합니다. 대학은 어림없는 말 하지 마십시오. 자기는 자기대로 가지.. 그러므로 우리 부모를 따를 때가 초등학교 때인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 신앙을 심어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평생에 그 신앙의 습관을 내려놓으면 아무리 세상에 나가서 세상 유혹에 흔들려도 뽑히지 않는 것입니다. 5년 이상 10년 동안 신앙의 뿌리 뽑히면 그 뿌리가 깊어가지고서 습관이 뿌리가 깊어져 가지고서 세상이 아무리 와서 내 흔들어도 뽑혀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건강한 심성과 좋은 습관입니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과 같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배우게 하여 어린 아이 삶에 어린 아이의 삶에 뿌리 내리게 하는 것이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데 중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위, 명예, 권세 다 얻어도 영원히 지옥가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입니까? 오직 영원히 사는 길은 예수 믿고 아버지 섬기는 길밖에는 영원히 사는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만사형통하게 사는 것도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사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 말씀하기를 "내가 주는 이 성경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대로 하면 네가 가는 곳마다 형통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때는 모세 오경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66권이나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성경이 만사형통과 번영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 줄 것 없어요. 예수 믿고 하나님 섬기고 성경을 유산으로 주면 성경 가운데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찾아서 인생을 살면은 그것이 바로 금을 캐는 금맥이요, 바로 그것에서 다이아몬드를 캐는 광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을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 주어서 성경을 중심으로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폭력으로 아이를 고치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이들이 성격을 삐뚫어지게 하는 것은 부모가 어린 아이 성격 고친다고 무조건하고 뺨 때기를 후려 때리고 그냥 몽둥이로 패고 자녀 학대를 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하면 자녀들은 부모에게 대한 원한과 함께 사회에 대한 복수심으로 마음이 꽉 들어차는 것입니다. 적개심으로 마음이 삐뚫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뭘 잘못하더라도 이해하고 동정하고 그 다음에는 징계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선교사님 집에 종종 드나드는데 존 스테츠 목사님 집에 딸만 셋을 길렀는데 그 딸들이 참 잘 자랐어요. 그래서 내가 가만히 하는 것 보니까 딸이 잘못했을 때 아버지가 불러서 딸을 무릎이 앉혀 놓고 설명을 해요. "너 이렇게 이렇게 이런 것을 잘못했다. 너 잘못한 것 인정하지?" 어린 아이가 인정한다고 하니까 "잘못하면 내가 어떻게 한다고 했지?" "때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네가 오늘 잘못했으니까 매를 몇 차례 맞아라. 그래서 종아리 걷어." 그러더니만 종아리를 때려요. 그런데 잘못했다고 인정하기 전에는 절대로 강제로 종아리를 때리지 않아요. 늘 설명을 해요.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어린 아이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놓고 난 다음에 설득을 시키고 어린 아이가 왜 벌을 받는지 이해하도록 해놓고 난 다음 벌을 주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굉장히 충격을 주어서 제가 나중에 어린 아이 키울 때도 그 선생님의 하던 방법을 실천했습니다. 무엇을 잘못했으면 애들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잖아요. 충분히 변명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네가 이것을 잘못했는데도 잘했다고 생각하느냐? 못했지? 잘못했으면 고쳐야 되겠지? 그러면 잘못했으면 매를 맞겠다고 했으니 맞아야 되겠지?" 충분히 자기가 인정하고 난 다음 "그러면 바지 걷어." 그리고 난 다음 매를 사랑의 매를 때리는 것입니다. 때리는 것을 좋아할 리가 있습니까? 부모가 자식 때리는 것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 그렇게 고쳐줘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해시키고 동정하고 타이르고 징계해야지 무조건하고 폭력으로써 후려 때리고 발로 밟고 차고 이렇게 하면 어린 아이의 마음에 적개심을 가지고 삐뚫어지게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육도 아니고 폭력인 것입니다.
4. 어린이를 한 인격으로 취급하라
넷째로, 어린 아이를 키울 때 나이가 어리지만 한 인격적으로 취급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대화의 상대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우리한국 사회에서는 지금은 안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자랄 때는 어른들 이야기 하는데 가서 무슨 이야기 하면 "시끄럽다. 저리 가라! 어른들 이야기 하는데 왜 애들이 야단이야?"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도 '내가 고양이냐 개냐? 나는 왜 인간취급을 못 받느냐.' 내가 나이가 70이 넘었는데도 14살, 15살 때 경험한 것이 가슴속에 아직도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한번은 우리 학교에서 야구시합을 했는데 야구 경기에서 이겼단 말입니다. 나에게는 하늘 문이 열린 것 같은 그런 기분입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집에 오자마자 아버지에게 보고하려고 하는데 아버지 이웃 손님들하고 이야기를 하고 계세요. 그것을 뛰어 들어가서 "아버지, 아버지! 오늘 우리 동래중학교가 경남중학교하고 야구시합에서 이겼습니다." 그러니까 딱 보시더니만 "어른들 이야기 하는데 와서 참견 하는게 아니냐. 저리가!" 나는 그때 인생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인간도 아니구나. 빨리 어른이 되어야지. 어린이로써는 살수가 없구나.' 그때부터 어른 되기를 사모한 것이 지금까지 어른 되기를 사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를 인격자로 대해주지 아니하고 대화의 상대로 생각하지 아니한 그 어린 아이에게 마음에 굉장한 충격을 받고 나중에는 어른하고 이야기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에서 어린 아이도 인격자로써 인정을 받고 대화의 상대로 삼아 주어서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당당히 가정 일에도 서로 자기 의견을 말하고 자기 소신을 말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됩니다. 어린 아이는 어린 아이의 세계가 있지 않습니까? 고양이 기르는 것, 강아지 기르는 것, 꽃밭 가꾸는 것, 친구들 데리고 오는 것, 과자 먹는 것, 자기에 대한 의견인데 무조건하고 어린 아이의 의견은 무시하고 "너는 부모의 명령에 따르라!" 무조건하고 쥐어박고 부모명령 안 따르면 쥐어박고 부모 명령만 따르라고 하면은 그것은 인격적으로 취급하는게 아니고 동물로써 취급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어린 아이들하고 어린 아이들 레벨에서 대화를 하고 그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부모의 의견도 말하고 이것이 좋다는 것을 설득시킬 수 있는 그러한 인내력으로 자식을 키워야 되는 것입니다. 자식은 그냥 내 던져 놓으면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들풀처럼 자라지 말고 잘 가꿔서 자라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0절 잠잠히 귀 기울여서 들어 보세요.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여러분 가정에 있는 어린 아이를 여러분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아버지가 천사를 보내서 매일같이 그 어린 아이에 대한 보고를 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상대로 여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데 여러분이 무엇이기에 무시해 버리고 상대로 삼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가 굉장히 이 말씀을 깊이 있게 마음에 생각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도 천사를 보내셔서 어린 아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받게 하는데 우리가 어린 아이를 대화의 상대로 삼지 않고 물건취급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를 키울 때 과잉보호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어릴 때 보니까 우리는 그 당시에는 자전거가 좀처럼 없어서 남의 자전거를 빌리면 그 빌린 시간에 빨리 타서 자전거를 배워야 되는데 그러니 자전거를 배우자니까 얼치기 넘어지고 무릎이 깨지고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요사이 자전거는 성능이 좋지만 그때는 어른 자전거 큰 것을 그것을 올라 타려니까 발통이 잘 발라지지 않지요. 그런데 우리 친구 중에 부잣집 아들은 다친다고 부모가 절대로 자전거에 손도 못대게 했습니다. 우리는 늘 많이 했잖아요. 남의 자전거도 잘 타고 도둑 자전거도 훔쳐 타고 자전거를 잘 탔는데 걔는 학교 졸업할 때까지 자전거를 못 탔어요. 과잉보호해 가지고서 다치고 상처 입는다고 자전거를 못 타게 하니까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놀 때 그는 한 구석에 서서 팔짱끼고 구경만 했습니다. 못타니까 또 한집은 축구를 못하게 했습니다. 발에 차이고 넘어지고 다친다고 해서.. 그러나 들풀같이 자란 우리들은 그냥 축구를 하고 뛰고 밀치고 건강히 놀았는데 부모가 축구를 못하게 해서 그는 늘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과잉보호하면 잘 자랄 줄 알지만 그 아이가 옳게 자라지 못하고 완전한 인격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독립심을 길러 줘야 돼요. 자기가 밥도 할 줄 알아야 되고 청소도 할 줄 알아야 되고 왜냐하면 인생은 아픔과 실패를 통하여 자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만 통해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실재 해보고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실패가 굉장히 좋은 선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다 부모가 돌보아 주고 다 알아서 해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옷도 입히는데 부모가 전부 어릴 때부터 단추 끼워주고 옷 입혀 주고 하지 말고 "네 손으로 옷 내복도 입고 단추고 끼고 가방도 정리해서 학교 가라." 그래야지 학교 가는 모든 뒷처리를 부모가 해주면 나중에는 의존심이 생겨서 독립심을 잃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가 일어나서 이불도 개고 방청소도 하고 옷도 자기가 입고 가방도 정리해서 학교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해줘야지 귀하다고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도 다 해주고 옷도 다 입혀 주고 정리도 다 해주고 가방까지 다 만들어 주면 그는 결코 자라지 못하고 독립심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옷도 삐뚫게 입어 보고 바지도 거꾸로 입어 보고 화장실에 가서 소변 보려고 하는데 소변구멍을 못 찾아 가지고 보니까 옷이 거꾸로 입어 있고 자기가 실수해야 조심을 하고 이것은 안되더라. 이것은 되더라 배우지요. 누가 돌봐주면 안되는 것입니다. 실패의 아픔을 통해야 자란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23장 13절로 14절에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잠언 29장 15절에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고함만 치면 다 들어주고 응석만 부리면 다 들어주고 하면 완전히 버리지 않습니까? 부모가 잘 타이르고 교훈하고 가르치고 난 다음 안 들으면 "그때는 너를 채찍에 때린다. 나하고 약속이다. 너 요번에도 또 잘못하면 자 아빠가 때린다. 엄마가 종아리 때린다. 약속이다." 그리고 난 다음 잘못하면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해 주고 인정을 받고 난 다음 채찍을 때려서 고치는 것입니다. 사람이 채찍으로 얻어맞으면 그것이 마음속에 영혼 속에 깊이 박히는 것입니다. 짐승들도 때리면 나중에 주인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녀 기를 때 자녀에게 자꾸만 학교에서 성적 잘 받아오라고 강요하지 마십시오. 학교 일등이 사회 일등은 절대로 아닙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늘 감격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 초등학교 때 늘 1등 하던 애들은 벌써 다 죽었어요. 그런데 나하고 옆에 앉아있는 내 짝궁 있는데 누구라고 말은 안해요. 아직 살아 있습니다. 늘 꼴찌를 해요. 시험칠 때 내가 늘 보여주는데 보여주는 것도 못 베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졸업하고 난 다음 그는 제일 큰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동창회 하기만 하면 걔가 돈을 제일 많이 내요. 또 일등한 사람들도 나중에 졸업하고 난 다음 도움을 받으러 늘 걔에게 가요. 나는 걔를 볼 때마다 사회에 나가서 학교 일등이 사회 일등을 결코 하는 것이 아니구나. 꼴찌를 하더라도 자기 할일을 잘하면 잘하는 구나. 여러분, 여러분 자녀의 마음속에 무엇이 장기가 있는가를 알아줘야 되는 것입니다. 특성이나 장기를 다 가지고 태어나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특성이나 장기를 주어서 태어나게 해요. 그 특성이나 장기를 키워줘야지 자꾸 며느리밥풀을 장미가 되라고 모가지를 잡아 당기면 밥풀 꽃도 안되고 장미도 안 되고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요사이 부모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남이 피아노 치니까 너도 피아노 쳐라. 남이 태권도 하니까 너도 태권도 해라. 남이 영어 하니까 너도 영어해라. 남이 춤추니까 너도 춤춰라.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학교 공부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기본요소지 거기에 반드시 일등을 하고 특등을 해야 인생을 잘사는 것 아닙니다. 인생은 자기가 하나님이 주신 장기를 잘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장기를 잘 살려서 거기에서 특출하게 잘하면 자기도 잘되고 인생도 잘되는 것입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너무 어리석어 우둔한 아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다섯 살 때는 오리 알을 품에 부화 시킨다고 쭈그리고 있어서 부모가 못 찾아서 애를 먹었습니다. 열 한 살 때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발명왕이 되지 않았습니까? 조각가 로댕의 학교성적이 항상 꼴찌였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예술학교에 입학하려고 했지만 세 번이나 거부당했습니다. 천재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수학 성적 외에는 늘 낙제점이었습니다. 그는 네 살까지 말을 할 줄 몰랐고 일곱 살이 되어서야 겨우 글자를 읽을 정도로 둔재였습니다만 수학에 뛰어나니까 수학을 개발해서 세계적인 학자가 된 것입니다.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는 대학에서 계속 낙제를 해서 교수들은 그에게 '배우기를 포기한 젊은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과학자나 예술가들도 어린 시절에는 악평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아직 그들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기 재능에 해당되지 않는데 그것을 자꾸 하라고 하니까 될 턱이 없지요. 자기 잘하는 것을 알아야 잘하지 잘못하는 것을 하라고 하면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물박사는 쓰레기통입니다. 여러분 쓰레기통에 가면 담배꽁초도 있고, 밥찌꺼기도 있고, 종이도 있고, 수건도 있고 온갖 것 다 있잖아요. 만물박사는 쓰레기통인 것입니다. 쓰레기통으로 자신을 만들지 말고 자녀들에게 특별한 장기를 알아서 그것으로써 가르치십시오. 박세리가 골프 하나 잘하니까 세계적인 인물이 되지 않았습니까? 박세리 보고 지금 고등수학 풀라고 하면 못 풉니다. 그러나 골프 치라면 잘 치지요. 사람들마다 장기가 있는데 장기를 살려 주십시오. 자식들을 강제로 자꾸 일등 하라고 강압을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물론 우리 시대는 부모님들이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 일등도 하라고 말도 안하고 꼴찌해도 꾸짖지 않았었어요. 먹어 살든지 죽든지 그냥 자라서 나가라. 그런 식으로 우리는 자랐지만은 그것이 지금 생각해 보니 오히려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끝장나게 놀았으니까. 요사이 아이들은 잠잘 때도 잠도 못자고, 놀고 싶은데 놀지도 못하고, 산에 들어 다니면서 새알도 줍고 꿩알도 줍고 새도 잡으러 다니고 짐승들과 뛰어 놀고 그런게 없지 않습니까? 밤낮으로 책하고 놀고, 책 읽고, 이 책방으로 저 책방으로 이 학습장으로 저 학습장으로 뛰어 다니다가 인생 다 끝마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인생을 살라고 할 때 그렇게 살라고 만든 것 아닙니다. 여러분 용기를 내어서 자식들의 학업에 대해서 너무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사학비로서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데 그런다고 해서 자녀가 잘되는 것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가 나중에 장기를 발견하고 장기를 개발하면 잘해요. 오늘날 영어공부 시킨다고 돈을 수없이 수없이 밀어 넣는데 제가 제 자신을 예를 들어서 미안합니다만 저는 과외수업 한 적이 없어요. 6.25때 학교도 공부 못하고 우리는 늘 놀았습니다. 그러나 영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내가 공부하겠다고 결심하니까 영어를 할 수가 있다구요. 발음도 좀 둔하고 매끄럽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가지고 온 천하만국에 나가서 복음도 증거하고 할 말 다했다구요. 저는 과외도 못했을 뿐 아니라 정상적인 학교에서 영어수업을 받은 것도 별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래도 사는데 뭘 그렇게 야단법석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애를 쓰고 기러기 엄마가 되고 기러기 아빠가 되어서 야단법석 합니까?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평생에 기러기 아빠 안 되고 94살까지 살았어도 우리 아홉 자식 다 잘 자랐어요. 어제 텔레비 보니까 어린 아이 때부터 자랄 때부터 뱀을 좋아하는 자식이 있어서 부모가 도와 줬어요. 온 방안에 뱀 천지에요. 뱀 가지고서 살았어요. 학교 공부도 안하고 뱀만 모으고 뱀 가지고 살았는데. 오늘은 세계적인 뱀 학자가 되어 가지고서 뱀독을 뽑아 가지고서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일에 전념하는데 얼마나 유명했던지 한국 텔레비까지 다 나왔지 않습니까? 뱀 하나만 성공을 해도 한국 텔레비까지 나올 정도로 유명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뭘 가지고서 만물박사를 만들려고 합니까?
오늘 우리 자녀들의 학교 성적이 조금 나쁘다고 해서 대학 입시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이 실패한 것은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의 소질을 발견하여 소질과 특성을 개발시키는 것이 부모가 해야 될 일이지 부모의 욕심과 꿈의 희생물로 삼지 마십시오. 부모가 자식 못한 것 자식에게 시키고 부모가 자신이 달성하고 싶은 꿈을 자녀에게 덮어 씌울 수가 없습니다. 내가 대통령 못했는데 왜 대통령을 하라고 합니까? 나는 우리 삼촌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촌동생이 몸이 좋지 못해서 성적이 학교 잘 못하고 나중에는 나이가 먹어서 장가들어서도 신문 배달하고 살았습니다. 그 삼촌이 불러다가 탄식을 했어요. "야, 너희 사촌형인 조용기 보아라. 조용기는 자라서 세계적인 목사가 되었는데 너는 이 꼬락서니 뭐냐?" 가만히 있다가 "아버지는 왜 박정희가 못되었습니까?" 우리 삼촌이 제게 말씀하기를 "너희 사촌동생이 바보인줄 알았는데 내가 그 말 듣고 충격을 느꼈다. 너 왜 형처럼 되지 못했느냐고 하니까 아버지는 왜 박정희처럼 되지 못했느냐고 해서 그 말이 참말이라고 해서 무릎을 탁 쳤다고 왜 아버지의 꿈을 자식에게 덮어씌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자식은 자식 나름대로 사는 것입니다. 자식 나름대로 사는 거에요. 자기 나름대로 살도록 뒤에 밀어주고 협조해주면 좋지만 너 이것해라. 저것해라. 이것 못하면 안된다. 저것 못하면 안된다고 아버지의 욕심과 어머니의 꿈을 심어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다이어 박사의 보고에 의하면 8세에서 12세 사이의 미국 어린이 자살률이 1967년 이후 15년 동안 4배나 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원인을 분석한즉 가장 큰 원인은 부모의 욕심과 목표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자녀가 미리 좌절하여 자살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도 강요하니까 부모의 욕심과 꿈에 다 도달할 수는 없고 힘은 없으니까 자기는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낙심하여 자살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지나친 기대는 자녀에게 큰 부담으로 여겨집니다. 더욱이 자녀를 부모의 꿈과 욕심의 희생물로 삼아서는 결코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해줄 것은 자녀의 소질을 살려주고 난 다음에는 잘 자녀가 잘되도록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5. 항상 기도해 주라
역사상 위대한 인물 뒤에는 항상 기도하는 어머니가 계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2장 18절로 19절에 "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딸 시온의 성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 어귀에서 주려 기진한 네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이와 같이 자녀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인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노동자 부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링컨에게 어머니가 신앙을 길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계모가 들어왔는데 계모도 신앙이 좋아서 아브라함 링컨에게 신앙 교육을 시키고 성경을 늘 읽게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링컨의 전기를 적은 사람이 보면은 "하나님은 링컨이 위대한 사람이 될 만한 조건을 하나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링컨에게는 가난과 훌륭한 신앙의 어머니만 주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가난과 훌륭한 어머니만 주셨는데 그를 통해서 링컨은 미국 16대 대통령이 되고 세계적인 인물이 된 것입니다.
감리교 창설자인 존 웨슬리는 그의 어머니 수산나에게 글을 배울 때 성경 창세기부터 글을 배웠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글을 가르치지 않고 성경 읽는 것으로 부터 시작해서 어린 아이에게 글을 가르쳤는데 그 자녀들이 세계를 움직이는 위대한 주님의 종이 된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 방탕했으나 그 어머니 모니카의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서 그는 역사적인 성자가 된 것입니다. 무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성취한 것 가운데 위대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모두 어머니의 기도 덕택이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 뒤에는 항상 기도하는 어머니가 계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 여러분 자녀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 주십시오.
누가복음 23장 28절에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십자가를 걸머지고 가면서도 나를 위해서 슬퍼하지 말고 자식들이 잘되도록 위해서 기도하라고 예수님이 부탁하신 것입니다.
<결론>
자녀는 일생에서 한번 짓는 가장 중요한 농사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고 했었습니다. 자녀교육에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는 노년에 그 열매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모시고 아버지를 섬기고 성경을 가슴에 품고 늘 읽고 묵상하는 자녀가 되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하는 부모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하나님이 자녀를 우리에게 맡겨 놓은 것은 자녀를 잘 기르라고 부탁한 것이지 우리의 소유로 삼으라는 것은 아니옵니다. 자녀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자녀로 길러주면 그들이 어느 곳에 가든지 하나님의 은총으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살수가 있게 되옵나이다. 아버지 어린 아이 때 습관을 들여 놓으면 그 습관이 평생을 가며 세상에 나가서 아무리 흔들리더라고 뽑히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어릴 때부터 자녀 교육을 신앙중심으로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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