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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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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8. 5. 11. 성령강림ㆍ선교헌금작정주일설교 |
<서론>
오늘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축복하는 날인 것입니다.
구약 4,000년 동안은 아버지가 직접 여러 모양과 여러 형태로 사람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4천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아버지가 뒤로 물러가시고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33년 동안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가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이 33년 지난 후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를 흘려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다 대속하시고 구원의 일을 다 이루시고 난 다음에는 예수님이 떠나가신지 50일 만에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령시대가 왔는데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이 시간이 이제 2천년이 되었었습니다. 오늘날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성령을 통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아버지가 직접 일하시던 때가 지나고 난 다음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만 일어났는데 이제 예수님이 일을 다 이루시고 난 다음에 성령이 그 일을 받아서 일하시기 때문에 성령을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아버지도 성령을 통해서, 아들도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실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 없이 혼자 나가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을 받고야 나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론>
1. 다른 보혜사 성령
첫째로, 성경에는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여러분 운동경기 때 언제나 마지막에 하는 것이 릴레이입니다. 청군, 백군 릴레이가 서로 뛰어서 배턴을 잡고서 뛰는 것입니다. 아무리 한사람이 잘 뛰어도 배턴 터치를 해서 다음 사람이 잘못 뛰면은 경기에는 져요. 하늘나라 릴레이는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 제일 먼저 뛰시고, 배턴을 예수님께 전달해 드렸는데 예수님이 그 배턴을 가지고 다 뛰시고 난 다음 마지막 질주자를 성령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마지막 주자로써 우리 인류를 구원하는 역사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배턴을 받으셨습니다. 성령님은 이제 예수 이름으로 예수님의 보혈로 값 산 예수님의 은혜를 온 천하만국에 전도하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 신앙생활에 기관차와 같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 동래중학교를 다녔었습니다. 부산에서 살았기 때문에 부산진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동래역에 가서 내려서 역에서 학교를 걸어 들어가곤 한 것입니다. 그런데 부산진역에 가면 역구내에 많은 화차들이 있어요. 짐을 잔뜩 싣고 철로에 딱 앉아 있는데 움쩍도 못해요. 어떤 화차는 3일, 어떤 화차는 일주일, 어떤 화차는 한달도 움쩍 못하고 철로위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 움직이느냐. 기관차가 와서 철커덩하고 연결이 되면은 그 다음 기관차가 뿌웅하고 앞으로 나가면 화차는 줄 줄 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늘 인상적으로 느낀 것은 '야, 기관차가 없이는 화차는 꼼짝도 못하는 구나. 아무리 보화를 싣고 있어서 앉아있지 움직이지 못하는구나. 기관차가 끌어줘야 가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늘날 성령의 역사가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성령이 바로 기관차인 것입니다. 우리는 화차요,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영특한 사람이라도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요. 보배를 잔뜩 싣고 있어도 그냥 앉아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끌어 주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는 아무것도 못해요. 성령이 끌어 주셔야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복음증거도 하고 사랑의 역사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 무슨 일을 한다고 날뛰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인 것입니다. 육신의 일 아무리 해봤자 아무효과 없어요. 성령께서 끌어 주셔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성령 없이는 나가지 마라. 3년 동안 내 밑에서 배웠지만 배운 지식을 가지고서는 일을 못한다. 성령이 기관차가 내게 임하여 너희가 철컥 연결이 되어서 기관차가 끌어줘야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50년 동안에 이렇게 자란 것은 불광동 천막교회시절부터 성령의 기관차에 철커덕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끌어 주셨어요.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흙 같이 어두울 때가 많았습니다만 성령은 밝은 대낮에도 캄캄한 밤에도 터널도 평상한 길도 끌어 주었었습니다. 성령께 꽉 붙어 있으면 성령이 끌어 주시고 그냥 우리는 철로위에 끌려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의 사역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은 예수님과 똑같은 보혜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첫째 보혜사요, 그 다음 다른 보혜사에게 배턴 터치를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예수님은 똑같은 보혜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보혜사냐, 예수님께서 다른 보혜사를 보냈다고 할 때 알로스 파라클레토스라고 말한 것입니다. 헬라어에 알로스라는 것은 똑같은 쌍둥이와 같이 겉도 속도 똑같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쌍둥이도 이란성쌍둥이는 좀 다른 데가 있어요. 그러나 일란성 쌍둥이는 가만히 보면 도대체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알 수가 없어요. 저는 늘 일란성 쌍둥이 아들이나 딸을 보면 저것 장가가고 난 다음 부인이 어느 것이 자기 남편인지 어떻게 알아보느냐. 아이고 저 딸은 시집가면은 남편이 엇갈리겠네. 그런 생각이 납니다. 외부 모습이 너무나 꼭 닮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일란성 쌍둥이라도 겉은 닮아도 속은 닮지 않습니다. 성격은 닮지 않더라구요. 보니까.. 똑같은 얼굴은 같은데 하나는 성격이 차분하고 하나는 성격이 고약하고 하나는 성격이 차분하고 하나는 성격이 싸납고 속은 다르더라구요. 그러므로 겉은 같아도 속은 다르니까 알로스는 아닌 것입니다. 헤테로스인 것입니다. 질이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령은 겉도 같고, 속도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성령 계시고 성령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그분이 두 분이 따로 계시지만 다른 인격이지만 전혀 똑같은 분이 바로 알로스 파라클레토스 다른 보혜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가시고 성령이 오신 것은 바로 예수님이 육으로 가시고 영으로 오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무엇 예수님이 육으로 계시지 무엇 때문에 영으로 오셨느냐. 육으로 계실 때는 예수님은 열두제자하고만 같이 계셨지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좀 만나보고 싶고 예수님 품에 안기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어찌할 도리가 없다구요. 그런데 예수님이 육으로 가시고 성령으로 오시니까 성령은 바람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성도 중에서 조용기 목사가 강단에서 바람을 혼자 다 마시가지고서 나는 교회 가서 숨도 못 쉬었다는 사람 있습니까? 없지요? 다 공평하게 숨을 쉬면 다 바람을 속에 들어갔다 나갔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은 프뉴마 토스 즉, 바람과 같이 와계시기 때문에 여러분 모두 다 함께 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곁에 계시고 속에 들어와 계시고 이제는 예수님을 한분만 소유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다 소유한 것입니다. 똑같은 질문을 제가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어느 시골 농부의 부인이 와서 나에게 말했습니다. "전도사님, 전도사님! 전도사님 말에 이해가 안 되는 것 있어요." "그것 뭐가 안 됩니까?" "예수님은 한분인데 왜 김씨도, 속에도 계시고, 박씨 속에도 계시고 조씨 속에도 계시고 석씨 속에도 계시고, 각자 속에 계시겠다는 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 한분밖에 없는 예수님을 어떻게 각 사람 속에 있을 수 있습니까?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이고, 무성이 엄마 그것 모르느냐. 무성이 엄마 교회 올 때 밤에 저녁 예배 올 때 논 뜰을 보십시오. 김씨 논에도 달이 떠있고 박씨 논에도 달이 떠있고, 석씨 논에도 달이 떠있고, 달은 하늘에 하나밖에 없는데 물이 차인 논마다 달이 다 둥실둥실 떠 있잖아요." 가만히 생각하더니 "맞았다. 맞았다. 맞았다. 알았어요. 예수님은 하늘에 한분 계셔도 다 우리 속에 비춰 들어오시군요." 그렇게 말하는 것이 지금도 기억나는 것입니다. 정말이에요.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 속에 다 들어와서 역사할 수 있기 때문에 육으로 가시고 영으로 오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보혜사라는 뜻은 뭡니까? 예수님도 보혜사 예수님이고, 성령도 보혜사 예수님인데 보혜사라는 것은 파라클레토스라는 헬라원어인데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여러분을 도와주기 위해서 하루 이틀도 아닌 한 평생을 항상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성령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안에 지금 와서 계신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성령 어디 계시느냐고 발버둥을 치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나는 어떤 사람이 우리 자동차 주차장에서 열심히 뭘 찾고 다니기에 내가 물었습니다. "뭘 찾느냐?"고 하니까 "자동차 키를 찾는다"고 그래요. 내가 보니까 손에 달고서 다니면서 "자동차 키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는데.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겠는데.." 키를 손에다가 딱 가락지처럼 끼고 서 있으면서 내가 눈에 보여요. "아니 키 손에 끼고 있는 그것은 키 아닙니까?" 그러니까 "아니 여기 있네?" 손에 키를 끼고 있으면서 자동차 키 찾는다고 온 사방을 헤매는 것과 같이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는데 "성령 찾으러 삼각산으로 가자. 성령 찾으러 용문산으로 가자. 성령 찾으러 순복음교회로 가자." 뛰어 댕겨 봤자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면 바로 그 자리에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찾아 천지를 헤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공기를 찾아 천지를 헤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같이 어디가나 공기를 숨쉴 수 있는 것처럼 성령은 어느 곳에 가나 예수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와서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보혜사로써 우리와 항상 같이 계시면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용기와 힘을 주시고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주시고 원수가 오면 우리를 대항하여 통하여 싸워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도록 해주는 것이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보혜사로써 우리에게 오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귀신을 쫓아 내시고 병을 고치시고 밥을 먹여 주시고 풍랑에서 건져 주시고 죽은 자를 살려 주시고 항상 함께 계시고 도와 주시고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원수를 물리치는 것처럼 성령도 똑같은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그러므로 요한복음 14장 18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고아는 부모를 잃어버린 자가 고아 아닌 것입니까? 주님께서는 "너는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예수님을 잃어버린 자처럼 버려놓지 아니하고 다시 오리라"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오시고 이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시 오셔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여러분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성령은 이 자리에 계신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은 여기 계시고 내 옆에 계시고 내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고아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부모인 성령께서 항상 같이 계시므로 아무리 고아를 만들려고 고아원에 갖다 놓아도 고아가 안돼요. 부모가 따로 있는데 어떻게 고아가 돼요? 성령이 같이 계시므로 여러분은 버림받지 아니하고 외롭지 아니하고 혼자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2. 성령의 사역
둘째로, 성령은 우리에게 와서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요한복음 16장 8절로 11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한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성령이 와서 하는 가장 중대한 일은 죄에 대하여 우리를 깨우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죄를 짓지 않았어요?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생각이 죄로써 들어차 있고 행위가 죄로써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죄를 지은 것을 하나님이 깨닫게 해줄 뿐 아니라 죄의 결과가 지옥으로 사람을 데려가기 때문에 가장 큰 것입니다. 그 지옥에서 우리를 건져 주기 위해서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가장 결정적인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의 죄로 지옥 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안 믿기 때문에 지옥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빚을 다 갚아 주셨는데 예수님을 배반하고 믿지 않기 때문에 자기 빚을 청산하지 못하고 빚쟁이에게 끌려서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에게 와서 깨우쳐라. 깨우쳐라. 너는 죄가 많고 불의하고 추악하지만 예수님이 죄를 대신 짊어지고 청산해 주었으므로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깨달으라. 믿으라. 믿으라. 믿으라. 그렇게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령이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에 대하여라 함은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신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갔다는 것은 죄를 지었을 때는 아버지께 버림 받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버림을 받았으나 죄를 다 청산하고 갚아 버리고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영접을 받아서 아버지 앞에 올라간 것은 우리를 데리고 올라간 것입니다. 저가 우리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사 함께 승천하여 보좌 우편에 앉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미 죄를 청산하고 우리를 끌어안고 부활해서 하늘에 올라가서 보좌 우편에 앉아 있다는 것을 성령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너는 죄에서 해방되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아버지의 품에 안기고 이미 육은 땅에 있으나 실제 속사람은 하늘에 앉아서 보좌에 앉아 있다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마귀가 이미 심판 받았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아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죄사슬로 우리를 묶어서 끌고 다녔으나 죄가 청산되므로 죄사슬이 끌러지고 죄를 통해서 우리를 유혹한 마귀는 십자가에서 이미 심판을 받고 만 것 입니다. 이제 마귀는 죄의 능력을 잃어 버리므로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죄를 통하여 죽음도 오고 병도 오고 저주도 오고 절망도 왔는데 죄의 사슬이 끌러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다 죄에서 자유를 얻고 질병과 저주와 절망과 죽음에서 해방을 얻었으므로 마귀는 이제는 심판을 받아 무력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령이 이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믿으라. 그러면 구원받는다. 믿으라. 예수님과 함께 이미 하늘에 올라가서 보좌 우편에 앉아있다. 믿으라. 이미 죄에서 해방되어 마귀에서 자유를 얻고 마귀는 쫓겨났다고 그렇게 가르켜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시면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은 교회에 와서 밤낮 졸고 있다가 가면서 무엇을 하느냐 하니까 "듣기는 들었는데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내 친구 한사람이 밤낮으로 내 텔레비를 봅니다. 그런데 텔레비를 보면서 자기는 "성경을 많이 배웠다." 합니다. 성경을 배웠다 하면서 "예배를 드리냐." "예배도 드리지 않고.." "예수를 믿느냐." "믿지도 않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참 좋은 거야. 종교를 가지는 것은 좋은 거야." "좋은 것이 아니라 네가 예수를 믿어야 되지 않느냐." "안 믿어도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알아서 구원받지 못하는 지식은 무슨 소용이 있는 것입니까? 성령은 지식을 우리 마음속에 깨닫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지식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에 넘버원 지성인인 이의령 박사 같은 분 얼마나 지식이 많으신 분인 것입니까? 한국에 현자 중에 현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른이 예수를 깨닫게 되고 회개하고 일본 동경에서 공식적으로 집회에 하용조 목사님 앞에서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깨달은 것입니까? 사랑하는 따님이 후두암에 걸려서 죽어갈 때 하와이에서 카페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딸아이가 후두암에 걸려서 죽어 가는데 정말 살아계시거든 우리 딸을 고쳐 주시면 내가 예수를 믿겠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자식이 죽는데 기도 안 할 사람 누가 있어요? 마누라가 죽는데 기도 안할 사람은 있어도... 자식이 죽는데 기도안할 사람은 없어요. 마누라 대신 여러분께 죄송합니다만.. 그런 사람이 간혹 있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의령 박사같은 현자가 딸이 후두암으로 죽어가니 얼마나 마음에 간절한 아버지의 심정으로 기도했겠습니까? '하나님이시여 내 딸을 고쳐 주시면 내가 예수를 믿겠습니다.' 병원에서 다 버리고 의사가 다 버렸는데 하나님이 그 딸을 고쳐주셨어요. 목소리를 회복하고 건강하게 되었어요. 거기에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야, 인간의 지성을 초월한 영적인 세계가 있구나.' 기독교를 아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실 결단을 내리고 그리스도를 모셔서 인간의 지성을 초월한 영원한 세계를 모셔 들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영원한 세계는 인간의 좁은 지식으로 판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좁은 지식으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주시는 것이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역사하는 설교를 듣거나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에 나가면 예수님이 살아서 내 마음속에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없는 공부는 공부에 불과하지요. 아무리 공부에 1등 한다고 해서 여러분 성공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와 같이 아무리 성경의 지식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거듭나는 것은 아니거든요.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보십시오. 예수에 대한 공부를 아무리 해도 성령이 와서 깨닫게 해주셔야 예수님을 내 구주로 모시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라고 말할 수가 있지. 인간의 지성을 가지고서는 예수님을 구주로 부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역사해야 돼요.
중국은 문화대혁명 때 선교사들을 모두 쫓아내고 성경을 불태워 버리고 덩샤오핑은 말하기를 "중국에서 기독교를 장사 지냈다"고 큰소리했습니다. 그런데 중국 공산화 이후 중국교회의 운명을 말해준「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책에 이런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982년도에 '둥'이라는 한 여자가 예수 믿다가 잡혀서 수용소에 들어갔습니다. 600여 명의 죄수들이 있는 곳에 둥이라는 여자가 들어가서 전도를 해서 기도그룹을 만들었습니다. 하루에 10시간 일하고 난 다음에 저녁에 자는데 잠을 줄여 가면서 전도해서 전도그룹을 만들고 몰래 성경한권을 밀반입해가지고서 밥에 이불을 덮어 쓰고 전등불을 가지고서 성경을 손으로 필사했습니다. 성경을 하나하나 손으로 베껴서 죄수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전도한 것입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600명의 죄수가 다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아주 싸우고 물고 찢고 머리칼을 잡아당기던 죄수들이 방마다 모여서 회개하고 통회기도하고 찬송하고 하는데 공산주의 간수장들이 입을 딱 벌리고 뒤로 자빠진 것입니다. "그래 이것 어떻게 처리하느냐." "다른 데로 옮겨라." "옮겨놓으면 물들게 되니까 어떻게 하느냐. 한사람이 들어와서 600명을 물들게 만들었는데 이 600명을 옮겨 놓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물들게 하겠느냐." 그들이 기독교는 추방할 수 있고 선교사는 추방할 수 있어도 성령은 추방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엄한 공산주의 치하에도 성령이 역사해서 수많은 사람이 지하에서 예수를 믿고 오늘날 중국에는 5천만 내지 1만 명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권능을 주셔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증인이라는 것은 자기가 체험해야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목격자는 증인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자동차 사고 난 것을 눈으로 보았다." 그것과 "내가 자동차 사고 안에 타고 있다가 내가 살아났다"는 것 하고는 증거가 틀린 것입니다. 내가 보았다는 것하고 내가 체험했다고 하는 것은 천양지차로 틀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 일본에 가서 일본 사람이 만든 음식 아름다운 것을 눈으로 보았다.' 그것하고 "내가 일본에 가서 한상 차려 먹었다." 본 것하고 먹은 것 하고 같습니까? 다릅니까? 다르지요. 여러분, 성령이 오시면 증인이 되게 하는 것은 예수님을 모셔 들여서 체험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들은 것하고 배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서 체험해서 깨닫게 만들어 준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증인이 되는 것이 바로바로 권능인 것입니다. 사람이 깨닫고 난 다음에는 눈에 불을 켜고 입에 침을 흘리면서 "나는 예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는다. 나는 체험했다. 그가 지금 현재 살아 계신다." 그런데 할 말이 없어요. "나는 보았다"고 하면은 "눈이 어두워서 잘못 보았나보다." "들었다." "요사이 귀가 어두워서 잔소리 헛소리를 듣고 있는가보다." "배웠다." "잘못 배웠나보다." 그러나 "내가 체험했다." 그런데는 할 도리가 없어요. "너가 믿든지 안 믿든지 나는 체험했다. 내 목을 잘라라. 나는 믿는다." 그렇게 말 하는데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의 권능은 여러분 성령이 오셔야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보고 들은 사람은 많은데 증인이 적어서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위해서 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증인은 성령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하게 되면은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천국 내 천국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나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R. 켄트 휴즈가 쓴 「작은 이야기 속 큰 지혜」라는 책에는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 에밀 라누의 그림이 있는 것입니다. 그 그림에는 '돕는 손'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아주 급하게 흘러가는 강에 보트가 떠있는데 거기에 어린 소녀가 보트의 노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소녀가 그 급류를 어떻게 보트의 손을 잡고서 해나가는 것 보십시오. 잡고 있지요. 그런데 자기는 모르는데 옆에 할아버지가 그 보토의 노를 잡고서 어린아이는 자기가 젓는 줄 아는데 실제로는 할아버지가 뒤에서 저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급류를 타고 보트가 무사히 지나가니까 어린아이는 "야, 내가 내 힘으로 보트를 잘 조정해서 해안으로 왔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는 할아버지가 "오냐 맞았어. 너 잘했어." 그러나 그 위에는 할아버지가 잡고서 당겼다 말입니다. 그 할아버지가 누구냐. 보혜사 성령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으면서 살겠다고 팔딱 팔딱 팔딱 하는데 내가 뭘 하는지 알지만 성령께 의지하면 성령이 밀어 주시고 당겨 주시고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사는 사람은 참새 같아요. 참새는 여기서 저기 날라갈 때 할딱 할딱 할딱 그러나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 독수리 같아요. 천천히... 날개를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냥 바람타고 가는 것입니다. 바람은 내가 이렇게 간다고 활딱 활딱 활딱... 앉아서 숨차서 하하하하하.. 그런 인생을 살겠습니까? 성령의 바람타고 날개만 쭉... 믿음, 순종의 날개만 뻗고 유유히 날라 가겠습니까?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를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이 주신 성령바람 타고 편안하게 인생을 쉬면서 살 수 있으나 그러나 새보다 더 높이 날고 멀리 날라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은사
셋째로, 성령은 오시면 우리에게 은사를 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4절로 7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가지고 오셔요. 여러분 새로운 손님이 여러분에게 오시면 선물을 들고 오셔서 그 선물 보따리를 내려놓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옛날 개척할 때는 가난했기 때문에 외국 선교사님들이 오든지 부흥사가 오고 나를 찾아오면 뭘 좀 안주나. 그런 생각이 늘 나요. 뭘 좀 주고 가면 참 좋고, 안주고 가면 섭섭하고.. 가난하니까 언제나 선물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 선물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하늘나라 선물을 만들지 못하잖아요.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원하시는데로 선물을 가져오지 우리가 원하는 선물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 중에는 계시의 은사가 있는데 지혜로운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영분별의 은사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그때 필요할 때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은사가 있고 또 지식을 모르는 것을 깨달아 알 수 있게 하는 지식을 주는 은사도 있고 그 다음에는 마귀의 영인지 성령인지 천사의 역사인지 분별할 수 있는 분별의 능력을 주시는 계시의 은사를 주시기도 하고 발성의 은사를 주시는 것도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 예언의 은사, 이것은 발성의 은사인 것입니다. 그 다음 권능의 은사가 있습니다. 믿음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 이런 은사를 원하는데로 각자에게 성령이 나눠주신 것입니다. 내가 달라고 한다고 해서 내게 주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알아서 그 적성에 필요한데로 은사를 나눠 주셔서 너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라. 그래서 어떠한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같이 기도하면 해결책이 착착 잘 나옵니다. 지혜의 은사를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은 꿈을 잘꿔서 꿈만 꾸면 내 미래를 알아 맞혀요. 척척 미래를 알아 맞추기 때문에 어떤 때는 겁이 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지식의 은사를 주어서 모르는 것을 깨닫게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떠한 사람은 '아 저 사람은 귀신에게 붙잡혔다. 저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하고 있다.' 깨달아 알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방언은 가장 흔한 은사로써 방언, 방언통역, 예언, 예언사도 가지고 있고 믿음의 은사 참 좋지요. 자기 힘으로 안 믿어 지는 것 하나님의 능력으로 크게 믿어지는 것, 병 고치는 은사 받은 사람은 손을 얹으면 병이 낫고 권능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기적이 일어나게 하는 은사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은사를 성령께서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사역의 은사도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6절로 8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라"
은사가 임해서 예언하는 은사는 말씀을 전도하는 은사인 것입니다. 자나 깨나 말씀을 전해야 되겠다. 집에서 밥만 해먹고 설거지만 하고 나면 빨리 옷 벗고 화장 좀 하고 난 다음에는 가방 들고서 뛰어 나가서 전도하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은사가 왔기 때문에 안하고는 못 견뎌요. 앉아 있으라고 하면은 좀이 쑤셔서 살수가 없어요. 그런가 하면 섬기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어디가도 봉사를 해요. 어디가도 앞장서서 봉사해요. 어디가도 앉아서 일안하고 대접만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디가도 자기가 손수 나가서 일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있어요. 봉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남, 여선교회 회원들 봉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 희생하고 수고하며 다리가 퉁퉁 붓도록 수고하잖아요. 봉사의 은사를 받아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은사가 없이는 그렇게 못해요. 그리고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 교회학교 교사들. 저도 옛날에 평신도 때 교회학교 교사 해봤는데 죽을 지경이에요. 나는 은사가 없으니까. 애들이 떠들어 제키는데 목이 터져라 고함쳐도 전부 장난치고 뭐 만들고 던지고 그냥 서로 할퀴고 이게 무엇 때문에 하느냐. 못하겠다. 은사가 없으니까 못 받아요. 견디겠어요? 은사가 있는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돌보아주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은사가 있어서 잘 가르쳐서 깨닫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 위로하는 은사가 있는 사람은 낙심한 사람에게 찾아가서 기도해 주고 위로의 말을 해주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 하라고 하면 못해요. 호스피스에 들어가서 말기 암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 곁에 가서도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와주고 낙심하고 탄식하는 사람 도와주는 그런 은사가 있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구제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은 어찌하든지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애를 쓰는 구제하는 은사, 자기가 없으면 있는 사람을 끌어 당겨서라도 구제를 하게 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자는 열심히 행정적인 일을 돌봐서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다스리는 은사가 있고 긍휼을 베푸는 자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서 기도해 주고 위로해 주고 품어주고 안아주고 힘을 얻게 하고 용기를 얻게 하는 은사 이런 것이 다 성령의 은사로 오는 것입니다. 어떤 은사가 내게 왔느냐. 내게 전문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내게 무엇이 전문적으로 나타나느냐. 무얼 내가 제일 하고 싶고 내가 무엇을 제일 잘하느냐. 내가 하고 싶을 뿐 아니라 내가 제일 잘하고 내가 놀랄 만큼 잘하는 것을 할 때 아.. 내게 은사가 있구나. 저는 어떤 은사가 있습니까? 저는 50년 동안 목회와 복음전도자의 은사가 있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돌보고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제일 잘하고 장사하라면 나는 못합니다. 나는 사무 보라면 못봐요. 나는 노동하라면 못해요. 그러나 복음전도하고 교회 목회하라면 그게 제일 좋고 제일 잘하는 것입니다. 그게 내 은사에요. 그래서 내가 은사 있는 줄 알지요. 그러나 이 은사가 없는 사람 이 강단에 서서 복음 전도하고 목회하라고 하면 일주일 못해서 KO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수많은 사람 앞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긴장이 되는지 압니까? 50년을 설교했습니다만 지금도 내 무릎이 덜덜 떨리고 있는 것입니다. 안 그럴 줄 알아도 언제나 무릎이 떨리고 마음이 긴장되고 손발이 떨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것이 하고 싶으니 팔자가 그렇지요. 그게 은사라구요. 그게 하나님이 주신 은사요. 나는 우리 동리에 사는 한 어릴 때 자랄 때 산 일꾼을 보았는데 그 아버님이 학자에요. 한학자에요. 어떻게 하든지 아들을 공부시키려고 서당에 보내면 가보면 서당에 없고 글방에 보내면 글방에 없습니다. 어디 갔느냐 하면 지게지고 산에 가서 나무해 와요. 가만히 보니까 그 사람 나무하는 은사가 있어. 공부하는 은사가 없어. 아무리 공부하고 가르치려고 해도 공부를 하기 싫어하고 공부하기 싫어하고 산에 가서 나무하는 은사가 있어 나무를 잘해요. 그런데 나중에 장가가서 우리 아랫집에 와서 살았는데 나무를 해다 팔아서 잘 살았어요. 그는 글공부 했으면 빌어먹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인데 나무하는 은사가 있어서 나무를 해서 팔으니까 그로써 돈 벌어서 처자들 공부 다 시키고 잘 살더라구요. 자기 은사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은사도 있지만 성령이 다 택해서 은사로써 무장해 줘서 하늘나라를 세우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오면 그냥 여러분 그냥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신령한 은사와 사역의 은사를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4. 성령의 교통
넷째로, 우리는 성령과 교통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물건이 아닙니다. 공기가 아닙니다. 바람이 아닙니다. 사람인 것과 같이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제삼위 하나님으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모시기 때문에 여러분 인격적인 하나님을 모셔 들이면 대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 집에 가는데 오란 말도 안하고 방에 들어오라는 말도 안하고 그냥 본체만체 한다면 여러분 집에 며칠 묵겠습니까? 안 묵죠. 마당에서 그냥 나가버리고 말지요. 문전박대한다는 말 있지 않습니까? 문전에서 박대하면 떠나가 버리고 말지요. 크게 인정하고 환영하고 영접하고 모셔 들이고 그렇게 하면 얼마나 기뻐서 교제가 되잖아요.
고린도후서 13장 13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그러므로 성령의 교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성령과 어떻게 교통하는 것입니까? 교통이란 교제를 해야지요.
여러분 요한일서 1장 3절에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라"
사귐이 바로 교통인 것입니다. 서로 사귀려고 하면은 친해야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아무나 길거리에 들어가는 사람 보고서 붙잡고서 사귈 수가 있는 것입니까? 서로 왔다갔다 이해를 하고 동정을 하고 그리고 사랑을 하고 사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 와서 예수를 믿게 되면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에게 와 계셔서 그래서 성령님을 우리가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영접하고 성령과 대화를 하므로 말미암아 성령과 사귈 수가 있고 교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대화를 안 하면 안돼요. 사람들은 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수님께 기도하지 무슨 성령님께 기도하느냐.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려야지요. 물론 예수님께 기도해야지요. 그러나 성령이 아버지께 감사하도록 도와주고 예수님께 기도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 가장은 우리 아버지지만 어머니가 아버지 뜻을 받들어서 자식들을 잘 길러주지 않는 것입니까? 이처럼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예수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를 돌봐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령님 고맙습니다. 성령님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영접합니다. 모셔 들입니다. 성령님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저는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성령이여 오늘하루도 새날을 주셨습니다. 나와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분별영도 없고 지혜도 없고 총명도 없고 모략도 없고 재능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오늘 나와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설교할 때마다 저는 말합니다. 성령이여 함께 나가 주시옵소서. 나는 못해요. 나는 못해요. 성령이 나를 붙들어서 해주셔야 돼요. 그리고 언제나 성령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과 우리와 함께 일하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로 3절에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성령이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두 사람을 따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일은 성령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이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불러서 우리와 함께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기도하고 성경 읽고 신앙생활 하는 것도 성령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고 여러분께서 자녀 기르는 것도 성령이 함께 일하여 길러 주시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것도 성령이 동역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와 현재 함께 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보좌에 계시고 예수님 보좌 우편에 계시고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아버지와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과 성령님 통해서 함께 하여 주시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여러분과 함께 하므로 항상 성령님을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교사를 데리고 자녀를 공부 시키는데 자녀가 가정교사에게 자꾸 물어야 돼요. 자꾸 질문을 하고 도와 달라고 해야지 입 딱 다물고 아무것도 안하면 가정교사가 도와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님께 도와줘야 성령님 기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성령이여 전도하게 해주시옵소서. 성령이여 능력을 주시옵소서. 그래야 주시는 것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하나님은 안 구하는 사람에게 안줍니다. 우는 애기 젖 준다고 구해야 주는 것입니다. 성령은 항상 여러분과 하나가 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람은 우리 몸밖에 있는 것 같지만 여러분 폐 속에 들어와 있어요. 바람은 그 속에 있는 산소를 피와 동화시켜서 신선한 피를 만들어서 온 여러분의 몸을 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혈관이 얼마나 긴지 압니까? 지구의 둘레보다 세 바퀴가 더 깁니다. 지구를 한바퀴 휙 돌고 휙 두바뀌 돌보 휙 세바퀴 돌고.. 혈관이 그만큼 깁니다. 여러분 몸 안에 있는 혈관이... 그 혈관 속으로 이 공기 중의 산소가 다 피와 함께 같이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바람과 같이 산소와 같기 때문에 여러분 속에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삶속에 성령은 함께 계시고 여러분과 하나가 되었으니 이 성령을 떠내 보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산소가 없으면 사람은 숨 막혀 죽습니다. 성령이 없으면 영적으로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와 예수가 우리와 함께 안에 계신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1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실뿐 아니라 우리 안에 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우리 안에, 예수님도 우리 안에 누구를 통해서 성령님을 통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예수님은 우리 안에 성령은 우리 안에 그래서 우리도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삼위일체 하나님도 우리 안에 하나님과 우리가 동심일체가 되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대통령궁에 한번 초청을 받아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데 영원한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 주 예수님이 되시고 성령이 되셔서 우리 안에 와서 같이 있겠다고 하셨는데요. 여러분이 성전이 되어서 여러분 안에 와서 같이 있겠다고 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우리가 뭡니까? 우리는 진흙 아닙니까? 이 진흙이 어떻게 이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그렇고 성령의 역사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 아니고는 우리가 절대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없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성령이 우리에게 항상 안에 계셔서 충만한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신앙은 이론이나 학문이 아닙니다. 신앙을 이론이나 학문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것 입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요, 하나님을 함께 사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머리 속에 지식이나 상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요.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일하고,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이러한 생활이 신앙이 체험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가능케 하시는 이가 성령인 것입니다. 성령이 바람과 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와 계셔서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먹고 자고 깨고 일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성령과 함께 손을 잡고 살면은 우리의 삶은 초인적인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살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고 예수님처럼 일하고 예수님처럼 승리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범이요, 모형인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게 만드신 이가 보혜사 성령인 것입니다. 오늘 성령님을 인정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환영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영접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감사하면 아멘 하십시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박수! 예수님께 박수! 성령님께 감사!
다 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무엇이관데 아버지께서 우리 구원을 계획하시고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그것을 십자가에서 실천하시고 성령이 보혜사 오셔서 이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성령삼위일체 하나님이 힘을 합쳐서 우리 인생들을 구원해 주시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스럽고 즐거운 일입니까? 아버지의 시대가 지나고 예수님의 시대가 지나니 성령님의 시대가 오셔서 성령님이 우리 각자와 같이 계셔서 아버지를 모시고 예수님을 모시고 우리 가운데 와서 역사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아버지여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이여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성령이여 예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여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의 마음을 감화 감동 시키는 성령님 믿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깨닫게 해 주시옵시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하시고 믿는 우리들을 더 용기와 힘을 얻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축복하는 날인 것입니다.
구약 4,000년 동안은 아버지가 직접 여러 모양과 여러 형태로 사람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4천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아버지가 뒤로 물러가시고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33년 동안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가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이 33년 지난 후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를 흘려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다 대속하시고 구원의 일을 다 이루시고 난 다음에는 예수님이 떠나가신지 50일 만에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령시대가 왔는데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이 시간이 이제 2천년이 되었었습니다. 오늘날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성령을 통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아버지가 직접 일하시던 때가 지나고 난 다음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만 일어났는데 이제 예수님이 일을 다 이루시고 난 다음에 성령이 그 일을 받아서 일하시기 때문에 성령을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아버지도 성령을 통해서, 아들도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실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 없이 혼자 나가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을 받고야 나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론>
1. 다른 보혜사 성령
첫째로, 성경에는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여러분 운동경기 때 언제나 마지막에 하는 것이 릴레이입니다. 청군, 백군 릴레이가 서로 뛰어서 배턴을 잡고서 뛰는 것입니다. 아무리 한사람이 잘 뛰어도 배턴 터치를 해서 다음 사람이 잘못 뛰면은 경기에는 져요. 하늘나라 릴레이는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 제일 먼저 뛰시고, 배턴을 예수님께 전달해 드렸는데 예수님이 그 배턴을 가지고 다 뛰시고 난 다음 마지막 질주자를 성령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마지막 주자로써 우리 인류를 구원하는 역사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배턴을 받으셨습니다. 성령님은 이제 예수 이름으로 예수님의 보혈로 값 산 예수님의 은혜를 온 천하만국에 전도하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 신앙생활에 기관차와 같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 동래중학교를 다녔었습니다. 부산에서 살았기 때문에 부산진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동래역에 가서 내려서 역에서 학교를 걸어 들어가곤 한 것입니다. 그런데 부산진역에 가면 역구내에 많은 화차들이 있어요. 짐을 잔뜩 싣고 철로에 딱 앉아 있는데 움쩍도 못해요. 어떤 화차는 3일, 어떤 화차는 일주일, 어떤 화차는 한달도 움쩍 못하고 철로위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 움직이느냐. 기관차가 와서 철커덩하고 연결이 되면은 그 다음 기관차가 뿌웅하고 앞으로 나가면 화차는 줄 줄 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늘 인상적으로 느낀 것은 '야, 기관차가 없이는 화차는 꼼짝도 못하는 구나. 아무리 보화를 싣고 있어서 앉아있지 움직이지 못하는구나. 기관차가 끌어줘야 가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늘날 성령의 역사가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성령이 바로 기관차인 것입니다. 우리는 화차요,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영특한 사람이라도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요. 보배를 잔뜩 싣고 있어도 그냥 앉아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끌어 주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는 아무것도 못해요. 성령이 끌어 주셔야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복음증거도 하고 사랑의 역사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 무슨 일을 한다고 날뛰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인 것입니다. 육신의 일 아무리 해봤자 아무효과 없어요. 성령께서 끌어 주셔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성령 없이는 나가지 마라. 3년 동안 내 밑에서 배웠지만 배운 지식을 가지고서는 일을 못한다. 성령이 기관차가 내게 임하여 너희가 철컥 연결이 되어서 기관차가 끌어줘야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50년 동안에 이렇게 자란 것은 불광동 천막교회시절부터 성령의 기관차에 철커덕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끌어 주셨어요.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흙 같이 어두울 때가 많았습니다만 성령은 밝은 대낮에도 캄캄한 밤에도 터널도 평상한 길도 끌어 주었었습니다. 성령께 꽉 붙어 있으면 성령이 끌어 주시고 그냥 우리는 철로위에 끌려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의 사역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은 예수님과 똑같은 보혜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첫째 보혜사요, 그 다음 다른 보혜사에게 배턴 터치를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예수님은 똑같은 보혜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보혜사냐, 예수님께서 다른 보혜사를 보냈다고 할 때 알로스 파라클레토스라고 말한 것입니다. 헬라어에 알로스라는 것은 똑같은 쌍둥이와 같이 겉도 속도 똑같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쌍둥이도 이란성쌍둥이는 좀 다른 데가 있어요. 그러나 일란성 쌍둥이는 가만히 보면 도대체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알 수가 없어요. 저는 늘 일란성 쌍둥이 아들이나 딸을 보면 저것 장가가고 난 다음 부인이 어느 것이 자기 남편인지 어떻게 알아보느냐. 아이고 저 딸은 시집가면은 남편이 엇갈리겠네. 그런 생각이 납니다. 외부 모습이 너무나 꼭 닮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일란성 쌍둥이라도 겉은 닮아도 속은 닮지 않습니다. 성격은 닮지 않더라구요. 보니까.. 똑같은 얼굴은 같은데 하나는 성격이 차분하고 하나는 성격이 고약하고 하나는 성격이 차분하고 하나는 성격이 싸납고 속은 다르더라구요. 그러므로 겉은 같아도 속은 다르니까 알로스는 아닌 것입니다. 헤테로스인 것입니다. 질이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령은 겉도 같고, 속도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성령 계시고 성령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그분이 두 분이 따로 계시지만 다른 인격이지만 전혀 똑같은 분이 바로 알로스 파라클레토스 다른 보혜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가시고 성령이 오신 것은 바로 예수님이 육으로 가시고 영으로 오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무엇 예수님이 육으로 계시지 무엇 때문에 영으로 오셨느냐. 육으로 계실 때는 예수님은 열두제자하고만 같이 계셨지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좀 만나보고 싶고 예수님 품에 안기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어찌할 도리가 없다구요. 그런데 예수님이 육으로 가시고 성령으로 오시니까 성령은 바람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성도 중에서 조용기 목사가 강단에서 바람을 혼자 다 마시가지고서 나는 교회 가서 숨도 못 쉬었다는 사람 있습니까? 없지요? 다 공평하게 숨을 쉬면 다 바람을 속에 들어갔다 나갔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은 프뉴마 토스 즉, 바람과 같이 와계시기 때문에 여러분 모두 다 함께 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곁에 계시고 속에 들어와 계시고 이제는 예수님을 한분만 소유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다 소유한 것입니다. 똑같은 질문을 제가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어느 시골 농부의 부인이 와서 나에게 말했습니다. "전도사님, 전도사님! 전도사님 말에 이해가 안 되는 것 있어요." "그것 뭐가 안 됩니까?" "예수님은 한분인데 왜 김씨도, 속에도 계시고, 박씨 속에도 계시고 조씨 속에도 계시고 석씨 속에도 계시고, 각자 속에 계시겠다는 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 한분밖에 없는 예수님을 어떻게 각 사람 속에 있을 수 있습니까?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이고, 무성이 엄마 그것 모르느냐. 무성이 엄마 교회 올 때 밤에 저녁 예배 올 때 논 뜰을 보십시오. 김씨 논에도 달이 떠있고 박씨 논에도 달이 떠있고, 석씨 논에도 달이 떠있고, 달은 하늘에 하나밖에 없는데 물이 차인 논마다 달이 다 둥실둥실 떠 있잖아요." 가만히 생각하더니 "맞았다. 맞았다. 맞았다. 알았어요. 예수님은 하늘에 한분 계셔도 다 우리 속에 비춰 들어오시군요." 그렇게 말하는 것이 지금도 기억나는 것입니다. 정말이에요.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 속에 다 들어와서 역사할 수 있기 때문에 육으로 가시고 영으로 오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보혜사라는 뜻은 뭡니까? 예수님도 보혜사 예수님이고, 성령도 보혜사 예수님인데 보혜사라는 것은 파라클레토스라는 헬라원어인데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여러분을 도와주기 위해서 하루 이틀도 아닌 한 평생을 항상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성령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안에 지금 와서 계신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성령 어디 계시느냐고 발버둥을 치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나는 어떤 사람이 우리 자동차 주차장에서 열심히 뭘 찾고 다니기에 내가 물었습니다. "뭘 찾느냐?"고 하니까 "자동차 키를 찾는다"고 그래요. 내가 보니까 손에 달고서 다니면서 "자동차 키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는데.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겠는데.." 키를 손에다가 딱 가락지처럼 끼고 서 있으면서 내가 눈에 보여요. "아니 키 손에 끼고 있는 그것은 키 아닙니까?" 그러니까 "아니 여기 있네?" 손에 키를 끼고 있으면서 자동차 키 찾는다고 온 사방을 헤매는 것과 같이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는데 "성령 찾으러 삼각산으로 가자. 성령 찾으러 용문산으로 가자. 성령 찾으러 순복음교회로 가자." 뛰어 댕겨 봤자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면 바로 그 자리에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찾아 천지를 헤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공기를 찾아 천지를 헤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같이 어디가나 공기를 숨쉴 수 있는 것처럼 성령은 어느 곳에 가나 예수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와서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보혜사로써 우리와 항상 같이 계시면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용기와 힘을 주시고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주시고 원수가 오면 우리를 대항하여 통하여 싸워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도록 해주는 것이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보혜사로써 우리에게 오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귀신을 쫓아 내시고 병을 고치시고 밥을 먹여 주시고 풍랑에서 건져 주시고 죽은 자를 살려 주시고 항상 함께 계시고 도와 주시고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원수를 물리치는 것처럼 성령도 똑같은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그러므로 요한복음 14장 18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고아는 부모를 잃어버린 자가 고아 아닌 것입니까? 주님께서는 "너는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예수님을 잃어버린 자처럼 버려놓지 아니하고 다시 오리라"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오시고 이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시 오셔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여러분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성령은 이 자리에 계신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은 여기 계시고 내 옆에 계시고 내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고아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부모인 성령께서 항상 같이 계시므로 아무리 고아를 만들려고 고아원에 갖다 놓아도 고아가 안돼요. 부모가 따로 있는데 어떻게 고아가 돼요? 성령이 같이 계시므로 여러분은 버림받지 아니하고 외롭지 아니하고 혼자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2. 성령의 사역
둘째로, 성령은 우리에게 와서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요한복음 16장 8절로 11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한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성령이 와서 하는 가장 중대한 일은 죄에 대하여 우리를 깨우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죄를 짓지 않았어요?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생각이 죄로써 들어차 있고 행위가 죄로써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죄를 지은 것을 하나님이 깨닫게 해줄 뿐 아니라 죄의 결과가 지옥으로 사람을 데려가기 때문에 가장 큰 것입니다. 그 지옥에서 우리를 건져 주기 위해서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가장 결정적인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의 죄로 지옥 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안 믿기 때문에 지옥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빚을 다 갚아 주셨는데 예수님을 배반하고 믿지 않기 때문에 자기 빚을 청산하지 못하고 빚쟁이에게 끌려서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에게 와서 깨우쳐라. 깨우쳐라. 너는 죄가 많고 불의하고 추악하지만 예수님이 죄를 대신 짊어지고 청산해 주었으므로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깨달으라. 믿으라. 믿으라. 믿으라. 그렇게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령이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에 대하여라 함은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신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갔다는 것은 죄를 지었을 때는 아버지께 버림 받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버림을 받았으나 죄를 다 청산하고 갚아 버리고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영접을 받아서 아버지 앞에 올라간 것은 우리를 데리고 올라간 것입니다. 저가 우리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사 함께 승천하여 보좌 우편에 앉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미 죄를 청산하고 우리를 끌어안고 부활해서 하늘에 올라가서 보좌 우편에 앉아 있다는 것을 성령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너는 죄에서 해방되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아버지의 품에 안기고 이미 육은 땅에 있으나 실제 속사람은 하늘에 앉아서 보좌에 앉아 있다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마귀가 이미 심판 받았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아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죄사슬로 우리를 묶어서 끌고 다녔으나 죄가 청산되므로 죄사슬이 끌러지고 죄를 통해서 우리를 유혹한 마귀는 십자가에서 이미 심판을 받고 만 것 입니다. 이제 마귀는 죄의 능력을 잃어 버리므로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죄를 통하여 죽음도 오고 병도 오고 저주도 오고 절망도 왔는데 죄의 사슬이 끌러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다 죄에서 자유를 얻고 질병과 저주와 절망과 죽음에서 해방을 얻었으므로 마귀는 이제는 심판을 받아 무력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령이 이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믿으라. 그러면 구원받는다. 믿으라. 예수님과 함께 이미 하늘에 올라가서 보좌 우편에 앉아있다. 믿으라. 이미 죄에서 해방되어 마귀에서 자유를 얻고 마귀는 쫓겨났다고 그렇게 가르켜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시면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은 교회에 와서 밤낮 졸고 있다가 가면서 무엇을 하느냐 하니까 "듣기는 들었는데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내 친구 한사람이 밤낮으로 내 텔레비를 봅니다. 그런데 텔레비를 보면서 자기는 "성경을 많이 배웠다." 합니다. 성경을 배웠다 하면서 "예배를 드리냐." "예배도 드리지 않고.." "예수를 믿느냐." "믿지도 않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참 좋은 거야. 종교를 가지는 것은 좋은 거야." "좋은 것이 아니라 네가 예수를 믿어야 되지 않느냐." "안 믿어도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알아서 구원받지 못하는 지식은 무슨 소용이 있는 것입니까? 성령은 지식을 우리 마음속에 깨닫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지식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에 넘버원 지성인인 이의령 박사 같은 분 얼마나 지식이 많으신 분인 것입니까? 한국에 현자 중에 현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른이 예수를 깨닫게 되고 회개하고 일본 동경에서 공식적으로 집회에 하용조 목사님 앞에서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깨달은 것입니까? 사랑하는 따님이 후두암에 걸려서 죽어갈 때 하와이에서 카페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딸아이가 후두암에 걸려서 죽어 가는데 정말 살아계시거든 우리 딸을 고쳐 주시면 내가 예수를 믿겠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자식이 죽는데 기도 안 할 사람 누가 있어요? 마누라가 죽는데 기도 안할 사람은 있어도... 자식이 죽는데 기도안할 사람은 없어요. 마누라 대신 여러분께 죄송합니다만.. 그런 사람이 간혹 있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의령 박사같은 현자가 딸이 후두암으로 죽어가니 얼마나 마음에 간절한 아버지의 심정으로 기도했겠습니까? '하나님이시여 내 딸을 고쳐 주시면 내가 예수를 믿겠습니다.' 병원에서 다 버리고 의사가 다 버렸는데 하나님이 그 딸을 고쳐주셨어요. 목소리를 회복하고 건강하게 되었어요. 거기에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야, 인간의 지성을 초월한 영적인 세계가 있구나.' 기독교를 아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실 결단을 내리고 그리스도를 모셔서 인간의 지성을 초월한 영원한 세계를 모셔 들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영원한 세계는 인간의 좁은 지식으로 판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좁은 지식으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주시는 것이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역사하는 설교를 듣거나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에 나가면 예수님이 살아서 내 마음속에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없는 공부는 공부에 불과하지요. 아무리 공부에 1등 한다고 해서 여러분 성공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와 같이 아무리 성경의 지식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거듭나는 것은 아니거든요.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보십시오. 예수에 대한 공부를 아무리 해도 성령이 와서 깨닫게 해주셔야 예수님을 내 구주로 모시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라고 말할 수가 있지. 인간의 지성을 가지고서는 예수님을 구주로 부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역사해야 돼요.
중국은 문화대혁명 때 선교사들을 모두 쫓아내고 성경을 불태워 버리고 덩샤오핑은 말하기를 "중국에서 기독교를 장사 지냈다"고 큰소리했습니다. 그런데 중국 공산화 이후 중국교회의 운명을 말해준「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책에 이런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982년도에 '둥'이라는 한 여자가 예수 믿다가 잡혀서 수용소에 들어갔습니다. 600여 명의 죄수들이 있는 곳에 둥이라는 여자가 들어가서 전도를 해서 기도그룹을 만들었습니다. 하루에 10시간 일하고 난 다음에 저녁에 자는데 잠을 줄여 가면서 전도해서 전도그룹을 만들고 몰래 성경한권을 밀반입해가지고서 밥에 이불을 덮어 쓰고 전등불을 가지고서 성경을 손으로 필사했습니다. 성경을 하나하나 손으로 베껴서 죄수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전도한 것입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600명의 죄수가 다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아주 싸우고 물고 찢고 머리칼을 잡아당기던 죄수들이 방마다 모여서 회개하고 통회기도하고 찬송하고 하는데 공산주의 간수장들이 입을 딱 벌리고 뒤로 자빠진 것입니다. "그래 이것 어떻게 처리하느냐." "다른 데로 옮겨라." "옮겨놓으면 물들게 되니까 어떻게 하느냐. 한사람이 들어와서 600명을 물들게 만들었는데 이 600명을 옮겨 놓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물들게 하겠느냐." 그들이 기독교는 추방할 수 있고 선교사는 추방할 수 있어도 성령은 추방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엄한 공산주의 치하에도 성령이 역사해서 수많은 사람이 지하에서 예수를 믿고 오늘날 중국에는 5천만 내지 1만 명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권능을 주셔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증인이라는 것은 자기가 체험해야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목격자는 증인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자동차 사고 난 것을 눈으로 보았다." 그것과 "내가 자동차 사고 안에 타고 있다가 내가 살아났다"는 것 하고는 증거가 틀린 것입니다. 내가 보았다는 것하고 내가 체험했다고 하는 것은 천양지차로 틀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 일본에 가서 일본 사람이 만든 음식 아름다운 것을 눈으로 보았다.' 그것하고 "내가 일본에 가서 한상 차려 먹었다." 본 것하고 먹은 것 하고 같습니까? 다릅니까? 다르지요. 여러분, 성령이 오시면 증인이 되게 하는 것은 예수님을 모셔 들여서 체험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들은 것하고 배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서 체험해서 깨닫게 만들어 준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증인이 되는 것이 바로바로 권능인 것입니다. 사람이 깨닫고 난 다음에는 눈에 불을 켜고 입에 침을 흘리면서 "나는 예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는다. 나는 체험했다. 그가 지금 현재 살아 계신다." 그런데 할 말이 없어요. "나는 보았다"고 하면은 "눈이 어두워서 잘못 보았나보다." "들었다." "요사이 귀가 어두워서 잔소리 헛소리를 듣고 있는가보다." "배웠다." "잘못 배웠나보다." 그러나 "내가 체험했다." 그런데는 할 도리가 없어요. "너가 믿든지 안 믿든지 나는 체험했다. 내 목을 잘라라. 나는 믿는다." 그렇게 말 하는데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의 권능은 여러분 성령이 오셔야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보고 들은 사람은 많은데 증인이 적어서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위해서 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증인은 성령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하게 되면은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천국 내 천국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나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R. 켄트 휴즈가 쓴 「작은 이야기 속 큰 지혜」라는 책에는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 에밀 라누의 그림이 있는 것입니다. 그 그림에는 '돕는 손'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아주 급하게 흘러가는 강에 보트가 떠있는데 거기에 어린 소녀가 보트의 노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소녀가 그 급류를 어떻게 보트의 손을 잡고서 해나가는 것 보십시오. 잡고 있지요. 그런데 자기는 모르는데 옆에 할아버지가 그 보토의 노를 잡고서 어린아이는 자기가 젓는 줄 아는데 실제로는 할아버지가 뒤에서 저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급류를 타고 보트가 무사히 지나가니까 어린아이는 "야, 내가 내 힘으로 보트를 잘 조정해서 해안으로 왔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는 할아버지가 "오냐 맞았어. 너 잘했어." 그러나 그 위에는 할아버지가 잡고서 당겼다 말입니다. 그 할아버지가 누구냐. 보혜사 성령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으면서 살겠다고 팔딱 팔딱 팔딱 하는데 내가 뭘 하는지 알지만 성령께 의지하면 성령이 밀어 주시고 당겨 주시고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사는 사람은 참새 같아요. 참새는 여기서 저기 날라갈 때 할딱 할딱 할딱 그러나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 독수리 같아요. 천천히... 날개를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냥 바람타고 가는 것입니다. 바람은 내가 이렇게 간다고 활딱 활딱 활딱... 앉아서 숨차서 하하하하하.. 그런 인생을 살겠습니까? 성령의 바람타고 날개만 쭉... 믿음, 순종의 날개만 뻗고 유유히 날라 가겠습니까?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를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이 주신 성령바람 타고 편안하게 인생을 쉬면서 살 수 있으나 그러나 새보다 더 높이 날고 멀리 날라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은사
셋째로, 성령은 오시면 우리에게 은사를 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4절로 7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가지고 오셔요. 여러분 새로운 손님이 여러분에게 오시면 선물을 들고 오셔서 그 선물 보따리를 내려놓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옛날 개척할 때는 가난했기 때문에 외국 선교사님들이 오든지 부흥사가 오고 나를 찾아오면 뭘 좀 안주나. 그런 생각이 늘 나요. 뭘 좀 주고 가면 참 좋고, 안주고 가면 섭섭하고.. 가난하니까 언제나 선물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 선물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하늘나라 선물을 만들지 못하잖아요.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원하시는데로 선물을 가져오지 우리가 원하는 선물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 중에는 계시의 은사가 있는데 지혜로운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영분별의 은사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그때 필요할 때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은사가 있고 또 지식을 모르는 것을 깨달아 알 수 있게 하는 지식을 주는 은사도 있고 그 다음에는 마귀의 영인지 성령인지 천사의 역사인지 분별할 수 있는 분별의 능력을 주시는 계시의 은사를 주시기도 하고 발성의 은사를 주시는 것도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 예언의 은사, 이것은 발성의 은사인 것입니다. 그 다음 권능의 은사가 있습니다. 믿음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 이런 은사를 원하는데로 각자에게 성령이 나눠주신 것입니다. 내가 달라고 한다고 해서 내게 주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알아서 그 적성에 필요한데로 은사를 나눠 주셔서 너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라. 그래서 어떠한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같이 기도하면 해결책이 착착 잘 나옵니다. 지혜의 은사를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은 꿈을 잘꿔서 꿈만 꾸면 내 미래를 알아 맞혀요. 척척 미래를 알아 맞추기 때문에 어떤 때는 겁이 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지식의 은사를 주어서 모르는 것을 깨닫게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떠한 사람은 '아 저 사람은 귀신에게 붙잡혔다. 저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하고 있다.' 깨달아 알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방언은 가장 흔한 은사로써 방언, 방언통역, 예언, 예언사도 가지고 있고 믿음의 은사 참 좋지요. 자기 힘으로 안 믿어 지는 것 하나님의 능력으로 크게 믿어지는 것, 병 고치는 은사 받은 사람은 손을 얹으면 병이 낫고 권능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기적이 일어나게 하는 은사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은사를 성령께서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사역의 은사도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6절로 8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라"
은사가 임해서 예언하는 은사는 말씀을 전도하는 은사인 것입니다. 자나 깨나 말씀을 전해야 되겠다. 집에서 밥만 해먹고 설거지만 하고 나면 빨리 옷 벗고 화장 좀 하고 난 다음에는 가방 들고서 뛰어 나가서 전도하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은사가 왔기 때문에 안하고는 못 견뎌요. 앉아 있으라고 하면은 좀이 쑤셔서 살수가 없어요. 그런가 하면 섬기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어디가도 봉사를 해요. 어디가도 앞장서서 봉사해요. 어디가도 앉아서 일안하고 대접만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디가도 자기가 손수 나가서 일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있어요. 봉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남, 여선교회 회원들 봉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 희생하고 수고하며 다리가 퉁퉁 붓도록 수고하잖아요. 봉사의 은사를 받아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은사가 없이는 그렇게 못해요. 그리고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 교회학교 교사들. 저도 옛날에 평신도 때 교회학교 교사 해봤는데 죽을 지경이에요. 나는 은사가 없으니까. 애들이 떠들어 제키는데 목이 터져라 고함쳐도 전부 장난치고 뭐 만들고 던지고 그냥 서로 할퀴고 이게 무엇 때문에 하느냐. 못하겠다. 은사가 없으니까 못 받아요. 견디겠어요? 은사가 있는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돌보아주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은사가 있어서 잘 가르쳐서 깨닫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 위로하는 은사가 있는 사람은 낙심한 사람에게 찾아가서 기도해 주고 위로의 말을 해주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 하라고 하면 못해요. 호스피스에 들어가서 말기 암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 곁에 가서도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와주고 낙심하고 탄식하는 사람 도와주는 그런 은사가 있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구제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은 어찌하든지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애를 쓰는 구제하는 은사, 자기가 없으면 있는 사람을 끌어 당겨서라도 구제를 하게 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자는 열심히 행정적인 일을 돌봐서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다스리는 은사가 있고 긍휼을 베푸는 자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서 기도해 주고 위로해 주고 품어주고 안아주고 힘을 얻게 하고 용기를 얻게 하는 은사 이런 것이 다 성령의 은사로 오는 것입니다. 어떤 은사가 내게 왔느냐. 내게 전문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내게 무엇이 전문적으로 나타나느냐. 무얼 내가 제일 하고 싶고 내가 무엇을 제일 잘하느냐. 내가 하고 싶을 뿐 아니라 내가 제일 잘하고 내가 놀랄 만큼 잘하는 것을 할 때 아.. 내게 은사가 있구나. 저는 어떤 은사가 있습니까? 저는 50년 동안 목회와 복음전도자의 은사가 있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돌보고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제일 잘하고 장사하라면 나는 못합니다. 나는 사무 보라면 못봐요. 나는 노동하라면 못해요. 그러나 복음전도하고 교회 목회하라면 그게 제일 좋고 제일 잘하는 것입니다. 그게 내 은사에요. 그래서 내가 은사 있는 줄 알지요. 그러나 이 은사가 없는 사람 이 강단에 서서 복음 전도하고 목회하라고 하면 일주일 못해서 KO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수많은 사람 앞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긴장이 되는지 압니까? 50년을 설교했습니다만 지금도 내 무릎이 덜덜 떨리고 있는 것입니다. 안 그럴 줄 알아도 언제나 무릎이 떨리고 마음이 긴장되고 손발이 떨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것이 하고 싶으니 팔자가 그렇지요. 그게 은사라구요. 그게 하나님이 주신 은사요. 나는 우리 동리에 사는 한 어릴 때 자랄 때 산 일꾼을 보았는데 그 아버님이 학자에요. 한학자에요. 어떻게 하든지 아들을 공부시키려고 서당에 보내면 가보면 서당에 없고 글방에 보내면 글방에 없습니다. 어디 갔느냐 하면 지게지고 산에 가서 나무해 와요. 가만히 보니까 그 사람 나무하는 은사가 있어. 공부하는 은사가 없어. 아무리 공부하고 가르치려고 해도 공부를 하기 싫어하고 공부하기 싫어하고 산에 가서 나무하는 은사가 있어 나무를 잘해요. 그런데 나중에 장가가서 우리 아랫집에 와서 살았는데 나무를 해다 팔아서 잘 살았어요. 그는 글공부 했으면 빌어먹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인데 나무하는 은사가 있어서 나무를 해서 팔으니까 그로써 돈 벌어서 처자들 공부 다 시키고 잘 살더라구요. 자기 은사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은사도 있지만 성령이 다 택해서 은사로써 무장해 줘서 하늘나라를 세우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오면 그냥 여러분 그냥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신령한 은사와 사역의 은사를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4. 성령의 교통
넷째로, 우리는 성령과 교통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물건이 아닙니다. 공기가 아닙니다. 바람이 아닙니다. 사람인 것과 같이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제삼위 하나님으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모시기 때문에 여러분 인격적인 하나님을 모셔 들이면 대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 집에 가는데 오란 말도 안하고 방에 들어오라는 말도 안하고 그냥 본체만체 한다면 여러분 집에 며칠 묵겠습니까? 안 묵죠. 마당에서 그냥 나가버리고 말지요. 문전박대한다는 말 있지 않습니까? 문전에서 박대하면 떠나가 버리고 말지요. 크게 인정하고 환영하고 영접하고 모셔 들이고 그렇게 하면 얼마나 기뻐서 교제가 되잖아요.
고린도후서 13장 13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그러므로 성령의 교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성령과 어떻게 교통하는 것입니까? 교통이란 교제를 해야지요.
여러분 요한일서 1장 3절에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라"
사귐이 바로 교통인 것입니다. 서로 사귀려고 하면은 친해야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아무나 길거리에 들어가는 사람 보고서 붙잡고서 사귈 수가 있는 것입니까? 서로 왔다갔다 이해를 하고 동정을 하고 그리고 사랑을 하고 사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 와서 예수를 믿게 되면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에게 와 계셔서 그래서 성령님을 우리가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영접하고 성령과 대화를 하므로 말미암아 성령과 사귈 수가 있고 교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대화를 안 하면 안돼요. 사람들은 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수님께 기도하지 무슨 성령님께 기도하느냐.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려야지요. 물론 예수님께 기도해야지요. 그러나 성령이 아버지께 감사하도록 도와주고 예수님께 기도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 가장은 우리 아버지지만 어머니가 아버지 뜻을 받들어서 자식들을 잘 길러주지 않는 것입니까? 이처럼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예수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를 돌봐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령님 고맙습니다. 성령님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영접합니다. 모셔 들입니다. 성령님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저는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성령이여 오늘하루도 새날을 주셨습니다. 나와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분별영도 없고 지혜도 없고 총명도 없고 모략도 없고 재능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오늘 나와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설교할 때마다 저는 말합니다. 성령이여 함께 나가 주시옵소서. 나는 못해요. 나는 못해요. 성령이 나를 붙들어서 해주셔야 돼요. 그리고 언제나 성령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과 우리와 함께 일하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로 3절에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성령이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두 사람을 따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일은 성령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이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불러서 우리와 함께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기도하고 성경 읽고 신앙생활 하는 것도 성령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고 여러분께서 자녀 기르는 것도 성령이 함께 일하여 길러 주시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것도 성령이 동역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와 현재 함께 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보좌에 계시고 예수님 보좌 우편에 계시고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아버지와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과 성령님 통해서 함께 하여 주시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여러분과 함께 하므로 항상 성령님을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교사를 데리고 자녀를 공부 시키는데 자녀가 가정교사에게 자꾸 물어야 돼요. 자꾸 질문을 하고 도와 달라고 해야지 입 딱 다물고 아무것도 안하면 가정교사가 도와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님께 도와줘야 성령님 기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성령이여 전도하게 해주시옵소서. 성령이여 능력을 주시옵소서. 그래야 주시는 것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하나님은 안 구하는 사람에게 안줍니다. 우는 애기 젖 준다고 구해야 주는 것입니다. 성령은 항상 여러분과 하나가 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람은 우리 몸밖에 있는 것 같지만 여러분 폐 속에 들어와 있어요. 바람은 그 속에 있는 산소를 피와 동화시켜서 신선한 피를 만들어서 온 여러분의 몸을 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혈관이 얼마나 긴지 압니까? 지구의 둘레보다 세 바퀴가 더 깁니다. 지구를 한바퀴 휙 돌고 휙 두바뀌 돌보 휙 세바퀴 돌고.. 혈관이 그만큼 깁니다. 여러분 몸 안에 있는 혈관이... 그 혈관 속으로 이 공기 중의 산소가 다 피와 함께 같이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바람과 같이 산소와 같기 때문에 여러분 속에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삶속에 성령은 함께 계시고 여러분과 하나가 되었으니 이 성령을 떠내 보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산소가 없으면 사람은 숨 막혀 죽습니다. 성령이 없으면 영적으로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와 예수가 우리와 함께 안에 계신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1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실뿐 아니라 우리 안에 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우리 안에, 예수님도 우리 안에 누구를 통해서 성령님을 통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예수님은 우리 안에 성령은 우리 안에 그래서 우리도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삼위일체 하나님도 우리 안에 하나님과 우리가 동심일체가 되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대통령궁에 한번 초청을 받아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데 영원한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 주 예수님이 되시고 성령이 되셔서 우리 안에 와서 같이 있겠다고 하셨는데요. 여러분이 성전이 되어서 여러분 안에 와서 같이 있겠다고 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우리가 뭡니까? 우리는 진흙 아닙니까? 이 진흙이 어떻게 이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그렇고 성령의 역사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 아니고는 우리가 절대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없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성령이 우리에게 항상 안에 계셔서 충만한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신앙은 이론이나 학문이 아닙니다. 신앙을 이론이나 학문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것 입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요, 하나님을 함께 사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머리 속에 지식이나 상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요.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일하고,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이러한 생활이 신앙이 체험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가능케 하시는 이가 성령인 것입니다. 성령이 바람과 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와 계셔서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먹고 자고 깨고 일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성령과 함께 손을 잡고 살면은 우리의 삶은 초인적인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살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고 예수님처럼 일하고 예수님처럼 승리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범이요, 모형인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게 만드신 이가 보혜사 성령인 것입니다. 오늘 성령님을 인정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환영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영접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감사하면 아멘 하십시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박수! 예수님께 박수! 성령님께 감사!
다 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무엇이관데 아버지께서 우리 구원을 계획하시고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그것을 십자가에서 실천하시고 성령이 보혜사 오셔서 이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성령삼위일체 하나님이 힘을 합쳐서 우리 인생들을 구원해 주시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스럽고 즐거운 일입니까? 아버지의 시대가 지나고 예수님의 시대가 지나니 성령님의 시대가 오셔서 성령님이 우리 각자와 같이 계셔서 아버지를 모시고 예수님을 모시고 우리 가운데 와서 역사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아버지여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이여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성령이여 예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여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의 마음을 감화 감동 시키는 성령님 믿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깨닫게 해 주시옵시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하시고 믿는 우리들을 더 용기와 힘을 얻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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