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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계7: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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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석원태 목사 |
| 참고 : | 경향교회 http://www.ghpc.or.kr/ |
| 2007' 경향의 강단 요한계시록강해(4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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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맞은 자들의 특징" 요한계시록 7장 9~14절 석원태 목사 |
| 1.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이다.
요한계시록 7장 9절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했다. 2. 흰 옷을 입고 있다. 요한계시록 7장 9절 중에 또 말하기를 「흰 옷을 입고」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7장 13절에도 「흰 옷을 입은 자들」이라고 했다. 그 하늘의 장로는 답하기를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고 했다. 그렇다면 저들은 사죄 체험을 입은 자들이다. ‘흰 옷을 입는다’는 말은 ‘흰 옷 입혀짐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입혀 주셨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구원은 인간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로 말미암은 것이다. 1) 어린양의 피는 어떤 피일까? (1) 언약의 피라고 했다. (2) 구속의 피, 곧 사죄의 피라고 했다. (3) 그 피는 생명의 피라고 했다. 2) 어린양의 피의 공효 (1) 우리의 사죄를 성립시켰다. (2) 화평을 성립시켰다. (3)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했다. (4)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했다. (5) 예수의 피가 옷을 씻어 깨끗하게 했다. |
요한계시록 7장 9절에 또 말하기를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7장 14절에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라고 했다. 이 종려나무는 승리와 기쁨과 찬송(감사)의 상징이다.
레위기 23장 40절에는 1년간의 수고로 얻은 토지소산을 추수한 후 종려가지를 들고 찬송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장막절에 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지붕을 덮고 그 안에서 야숙하면서 출애굽 운동의 구원을 회상하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예수께서 나귀 타고 입성하실 때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따르던 무리들의 옹위를 받았다.
여기 본문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천성을 향하여 입성하는 광경 중에도 저들은 손에 종려나무를 들고 들어가고 있다. 저들은 큰 환난의 격전지들에서 승리한 명장, 명군들이다. 역전의 용사들이 아닌가?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 이것은 큰 핍박으로부터 나온 자들이다. 흰 옷 입은 무리들은 환난을 통과한 자들이다. 그것이 대환난이든 소환난이든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환난을 통과한 것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서 역경의 환난을 통과하는 것이다(요 16:33, 행 14:22). 천국에는 아무도 패자는 없다. 이유는 천국은 승자에게 주어진 기업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이긴 자들인가?
1) 죄를 이긴 자들이다.
미가서 7장 8절에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라고 했다. 이사야 50장 7~9절에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고 했다.
바울은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1~39)고 했다. 죄를 이긴 사람들은 천하의 명장들이다. 이유는 죄를 이긴 자들은 사망을 이긴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망을 정복한 자들에게 세계와 그 가운데 역사를 맡기셨다. 확실히 죄를 이긴 자들은 역사상의 불기둥들이었다. 그들이 아브라함이요, 요셉이요, 모세요, 여호수아, 다윗, 베드로, 바울, 어거스틴, 칼빈, 메이첸, 주기철, 손양원, 한상동 목사님들이 아닌가? 죄를 이긴다 함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 문제를 해결 받은 자들이란 말이다. 죄 용서 받은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죄인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죄를 범치 않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죄를 범했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2) 세상을 이긴 자들이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했다. 히브리서 11장 38절에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라고 했다.
저 유명한 히브리 신앙 영웅들은 세상을 이긴 자들이 아닌가? 실로 역사계의 거인들이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약속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16:33)고 했다.
3) 마귀를 이긴 자들이다.
요한일서 2장 13절에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고 했다. 악한 자는 마귀요, 사단이요, 뱀이요, 귀신이다.
성도들은 악한 자가 즐겨 쓰는 유혹, 협박, 학정, 위선, 외식, 교만, 불신앙, 도전 등의 모든 침략의 무기들에서 이긴 자들이다.
4) 사망을 이긴 자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저들은 사망을 향하여 호령하지 않는가?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5-57)라고 했다.
이러한 승리 체험의 용사들의 손에 종려나무를 쥐게 한 것이다. 그래서 천국은 승자들의 세계요, 개선장군의 행렬이 아닌가?
4. 하나님의 보좌 앞에 능히 설 수 있는 자들이다.
요한계시록 7장 9절 하반절이 또 말하기를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6장 17절에는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고 했다.
멸망 받은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자주자, 종들은 천국에 발붙일 곳이 없었다. 그런데 인 맞은 자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 얼마나 가고 싶었던 장소인가? 이 얼마나 영예로운 모습인가? 요한계시록 7장 15절에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라고 했다.
저들은 금세에서도 구원의 주를, 사후 내세에서도 구원의 주를 높였다. 이것이 저들 삶의 전부였다. 저들의 삶의 주체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구원이었다. 저들은 구속론적 삶을 치렀다. 저들은 세상의 어떤 사람이나 명예나 부나 다른 신에게 구원함이 없다고 했다. 오직 구원하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고백적인 삶을 살았다. 저들은 새 예루살렘에 도착할 때 첫 고백의 함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었다.
생명적 구원 고백의 장소는 ① 하나님의 보좌 앞과 어린양 앞이었다. ② 누구의 고백인가? 흰 옷을 입고, 종려나무를 손에 잡은 자, 곧 십사만 사천 인들의 고백이다. ③ 그 고백의 주제는 구원이었다. ④ 그 고백의 방법은 ‘큰 소리’였다. 위대한 승리의 개가였다.
저들은 세상에서 임금들과 종들 앞에서 멸시와 천대, 수모, 심문, 죽임을 당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서 승리의 새 노래와 함께 영광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사죄의 은총을 입어 흰 옷을 얻어 입은 자들이 무수한 전쟁에서 승리하면, 손에 종려나무를 들고 최종의 날에 설 수 있는 개선의 무대가 하나님의 보좌 앞이요, 어린양 예수 앞이 아닌가!
저들은 예수 때문에 이 세상에서 발붙일 곳을 찾지 못했다. 암혈과 토굴과 강가와 바다로 유리하던 자들이었다. 이제야 저들은 올 자리에 왔고, 설 자리에 섰고, 만날 자를 만난 것이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5. 큰 소리로 구원을 고백하는 자들이다.
요한계시록 7장 10절에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다고 했다. 이것은 저들이 이 세상에 살 동안의 생명의 신조였다.
6. 천계에서 절대적인 축복을 받는 자들이다.
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와 네 생물들이 구원받은 자들의 주위에 섰다고 했다(계 7:11).
참으로 영화스러운 장면이다. 저들이 세상에서는 복음 때문에 악도들과 핍박자, 불신자들에게 둘러싸여 역사의 구경거리가 된 자들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제 저들은 영광 속에 싸여 있다. 모든 천사가 구원받은 성도들을 둘러싼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섰는데 저들도 그 호위를 받게 된 것이다. 이유는 저들이 서 있는 장소가 하나님의 보좌 앞이요, 어린양의 앞이기 때문이다.
2) 저들은 영물의 화답을 받고 있다.
저들은 구원하심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다고 감사의 고백을 했다(계 7:10). 이때 이 영물들도 아멘으로 화답함으로(계 7:12) 사실상 구원 받은 성도들을 축하하고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택자 구원을 완성하신 하나님! 당신의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힘이 있음을 감사합니다.’라고 한 것이다.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흰 옷을 입은 큰 무리!
종려가지를 손에 든 큰 무리!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 앞에 서 있는 큰 무리!
큰 소리로 구원을 고백하는 큰 무리!
천계의 축복 속에 잠겨있는 큰 무리!
바로 나는 이 무리 중의 하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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