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째 천사의 나팔은 첫째 화이다. 그 내용은 황충 재앙이다. 그것은 사단 운동인데 곧 이단 운동이다. 황충은 거짓 교사(위사)의 상징이다. 그것의 목표는 영적인 것이다.
1. 황충 재앙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로부터 시작된다.
요한계시록 9장 1절에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고 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가 무엇인가?
1) 타락한 천사 곧 사단이요, 그 사단의 조정을 받는 마귀의 활동이다. 이사야 14장 12절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라고 했다. 누가복음 10장 18절에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고 했다. 다니엘서 8장 10절에 「그 군대와 별 중에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라고 했다. 성경은 사단, 뱀, 마귀, 귀신, 용 이름이 모두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인데, 이는 타락한 천사들로 악령을 의미하고 있다.
2) 무저갱 열쇠를 받은 자이다. 요한계시록 9장 1절에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고 했다. 여기 무저갱의 열쇠는 ‘밑 없는 구렁텅이의 그 열쇠, 끝없는 심연의 그 열쇠’인데 오직 그 열쇠 하나만으로 그 무저갱의 문을 열 수 있음을 뜻한다. ‘받았다’함은 ‘그에게 주어졌다’ 함인데, 이는 그가 인간들을 그 무저갱 속으로 집어던지는 절대적인 권리를 받은 것을 의미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 곧 사단은 하나님의 섭리적인 허락 안에서 무저갱의 열쇠를 받고 움직인다. 욥을 괴롭히던 사단이 하나님의 섭리적 허락 안에서 움직였던 것과 같은 것이다(욥 1:12, 12:6).
3) 무저갱을 여는 사자였다. 요한계시록 9장 2절에 「저가 무저갱을 여니」라고 했다. 여기 ‘연다’는 말은 한번 열므로 하나님 외에는 다시 닫을 자가 없는 결정적인 영원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단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는 일과 여는 일은 결국 하나님의 궁극적 결재 아래 움직이는 제한적인 행동이요, 행사이다.
4) 황충을 다스리는 임금이다. 요한계시록 9장 11절에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고 했다. 곧 무저갱의 천사로서 황충을 다스리며 지배하는 자이다.
5) 그 이름은 멸망이요 파괴자이다. 요한계시록 9장 11절에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고 했다. 히브리 음으로 아바돈(VAbbadw,n)은 그 뜻이 ‘멸망’이고, 헬라 음으로 아볼루온(VApollu,wn)은 그 뜻이 ‘멸망시키는 자’이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의 정체는 분명하다. 범죄로 타락한 천사는 사단으로 많은 사람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생명 파괴의 정체이다. 그의 이름을 헬라 방언과 히브리 방언으로 밝힌 이유는 그 몸의 활동 무대와 끼치는 악의 영향권이 범우주적(유대와 이방)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2. 황충 재앙의 출처는 무저갱이다(계 9:2~3).
요한계시록 9장 2절에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라고 했다.
1) 무저갱(Abyss or pit)이 무엇인가? 아바돈(계 9:1)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아 그것을 열었다. 여기 무저갱은 히브리말로 ‘테홈’(~AhT.)인데, 70인역(LXX, abussou)에 30회 이상 나타난다. (1) 밑이 없이 텅텅 빈 곳 즉 공허한 곳(창 1:2) (2) 하나님의 원수들의 거처(암 9:3, 시 74:13) (3) 한 커다란 틈바구니로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천군들과 땅 위의 일금들이 죄수로 붙들려 있는 깊은 감옥 같은 곳(사 24:21~22) (4) 요한계시록의 경우 타락한 천사, 마귀, 짐승, 거짓 선지자 그리고 사단이 형벌을 받는 중간지대인 듯하다(계 9:1~2, 11, 11:7, 20:1, 3, 17:8). 이 무저갱은 지옥과는 구별된 곳이다. 이곳은 같은 지옥의 영역이지만 타락한 천사 중의 일부가 감금되어 있거나, 어둠의 영들이나 그의 천사들이 천벌을 받기 위하여 감금되어 있는 장소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지옥은 최종 형벌의 장소로 불과 유황 못이 있는 곳이다(계 20:10, 14,15).
2) 무저갱에서 나온 것이 무엇인가? (1)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요한계시록 9장 2절에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라고 했다. ‘큰 풀무 같은 연기’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영원한 지옥불을 연상케 한다. 그 연기는 실로 독특한 것으로 다른 불과 연기로 전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태양빛과 맑은 공기 속에 공해가 극심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더 큰 상징적 의미가 있다. 여기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란 사단의 지배를 받아 유포하는 악한 사상을 의미할 것이다. 그 악한 사상이란 바로 무신론적 유물론, 불신앙적 우상주의, 절망의 허무주의, 일시적 쾌락주의, 맹목적인 샤머니즘, 감정에 뿌리박은 신비주의, 성경을 파괴하는 온갖 인본적 합리주의 사상 등일 것이다. 말하자면 반신(反神)적이요, 무신론적인 온갖 인본주의 사상과 기독교 안의 타락한 모든 이단 사상과 자유주의 신학 사상 등을 총칭할 것이다. 저들의 악한 사상운동으로 말미암아 해와 공기가 가려졌다 함은 복음 운동의 빛이 일시적이나마 그 기능이 상실된 듯이 느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해와 공기는 우리 생명의 필수 요건들이므로, 이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는 오늘 무신론적이요, 인본주의 사상의 소산물로 등장한 가공할만한 현대 무기들이 내뿜는 무서운 독소들인지도 모른다. 하나님 떠난 현대 과학은 결국 죽음에 이르는 다량의 무기 생산 공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실로 살인 기구의 공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살인 기구의 생산 공장들과 기계 장치들은 사단이 주장하는 보이는 무저갱인지도 모른다. 인간 이성을 왕으로 교육하여 기계 문명의 드높은 만세를 부르게 하는 과학만능주의는 확실히 영적인 공해가 아닐 수 없다. 그릇된 인본주의 교육(사상), 그 교육의 결과 생산되는 현대 살인 무기(불꽃, 연기)의 정체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2) 그 연기 속에서 황충이 올라왔다. 요한계시록 9장 3절에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라고 했다. 여기 ‘황충’은 황충 떼들을 의미함인데 메뚜기 유이다.
3. 황충 운동(계 9:3~11)
1) 그 이름들 (1) 가잠(gazam) ‘가위’, ‘자르는 자’, ‘깎는 자’란 뜻으로 나뭇가지나 잎을 자르며 깎아 먹는다는 뜻이다. (2) 아르벨(arbel) ‘들끓는 것’이란 의미로, 떼를 지어서 다니는 것이다. 숫자적 위세이다. (3) 하실(hasil) ‘끝장내는 자’란 뜻으로 황충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멸종으로 황폐에 이르고 마는 것을 말한다. (4) 솔담(soldam) ‘삼키는 자’, ‘진멸시키는 자’란 뜻이다. (5) 할골(hargol) ‘뛰는 말’, ‘질주하는 말’을 뜻함인데 이는 황충의 기동성을 나타내고 있다. (6) 첼라첼(Tzelatzel) ‘삐걱거리는 자’란 뜻으로 이는 황충 떼들이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사단 곧 아바돈(파괴자, 멸망자)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황충 떼들의 성격은 벌써 그 이름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저놈들은 떼를 지어 빠르게 날면서, 거짓 교훈의 소리를 지르고, 참된 교훈을 자르고, 맺은 열매를 따먹고, 그 마지막을 황폐로, 멸망으로 이끄는 정체이다.
2) 황충의 모양(계 9:7~11) (1)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다고 했다(계 9:7). 이는 그 활동의 신속성, 기동성, 기민성을 뜻함이다. 날쌘 전마상을 가진 자이다. 이것은 이단 운동의 악영향이 미치는 결과가 얼마나 빠르고 용감한가를 보여준다. (2)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다고 했다(계 9:7). 금 면류관이 아니고 비슷한 것이다. 모조 면류관이다. 이는 이단 운동의 일시적 득세, 승리, 그 위세를 의미한다. 언제든지 가짜는 진짜보다 더 빠르게 소문이 난다. 그러나 영구성, 항구성, 불변성, 진실성이 없다. 이유는 그것이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코 거짓 선지자의 영원한 승리는 없다. 그에게는 영원한 멸망뿐이다. (3) 얼굴은 사람 얼굴 같다고 했다(계 9:7). 이는 사단 운동, 이단 운동의 지혜와 계략성을 뜻함이다. 마귀의 지혜는 때로 사람의 지혜보다 능하고 앞선다. 사단은 언제나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다. 비진리 운동, 곧 거짓 운동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온갖 관계로 사람들에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양 같은 모양으로 나오지만 용같이 말하는 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4)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다고 했다(계 9:8). 이는 사단 운동의 아름다운 속임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여자의 긴 머리털은 그의 영광이요 남자의 즐거움이다(고전 11:14). 저렇게도 사단은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신부처럼 자기를 가장하여 참된 신자를 유혹한다. 그의 정체는 음녀이다(계17장). 그는 미혹의 왕관을 쓰고 참된 교회를 어지럽히는 놈이다. (5) 사자의 이 같은 이가 있다고 했다(계 9:8). ‘이’는 사자의 많은 ‘이’를 의미한다. ‘이’는 사단 운동의 잔학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정없이 사람의 영혼을 물어뜯는 그의 무자비성이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는 상태이다. 다수의 세력과 거짓 교훈을 감언이설로 나타내어 마침내 사람의 영혼을 씹어 절단을 내는 놈이다. 그가 씹는 이빨에는 무서운 사망의 독이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벧전 5:8~9). (6) 철 흉갑 같은 흉갑이 있다고 했다(계 9:9). 요한계시록 9장 9절에 「또 철 흉갑 같은 흉갑이 있고」라고 했다. ‘철 흉갑’은 가슴에 붙이는 방패이다. 여기 ‘있다’는 말은 상비용으로 항상 부착하고 있는 상태를 말함이다. 이것은 바로 사단 운동은 철통같은 무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들의 가슴에는 철 방패를 붙이고 있다. 이것은 어떤 복음의 도전도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며 항복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참으로 그러하다. 이단 운동가들이나 거기에 감염된 자들은 복음에 순종하거나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특징이다. 바로 그것이 멸망 받을 증거이다. (7) 날개들의 소리가 있다(계 9:9). 요한계시록 9장 9절 중에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라고 했다. 여기 ‘소리’는 아주 특이한 소리이다. 잘 듣지 못한 괴이한 소리이다. ‘달려 들어가다’함은 전진함을 의미한다. 이는 이단 운동이 요란함과 분요함 속에서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하여 침투하는 그의 공작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마치 전쟁터로 달려가는 군마들의 소리처럼 무섭고 시끄럽다. 저들은 이상한 행동과 소리와 모양들로 위풍을 떨면서 사람들의 영혼 속을 진격해 나아간다. 그 마음과 태도는 결사적이다. 죽음을 내걸고 나아가는 병사와도 같은 것이다. 사단은 무서운 항오를 벌리고 전마처럼 달린다. 그러나 저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부끄러움이다. (8) 꼬리에 힘이 있다(계 9:10). 요한계시록 9장 10절에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라고 했다.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다. 꼬리의 힘은 거짓 선지자를 규정했다. 이사야 9장 15절에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고 했다. 전갈의 힘이 꼬리에 있다. 그 꼬리에는 쏘는 살이 있다고 했다. ‘쏘는 살’은 ‘바늘’, ‘가시’, ‘꼬챙이’, ‘막대기’, ‘날카로운 끝’ 등을 의미함인데 독살하는 힘을 의미한다.
3) 황충의 권세 (1) 자연계의 황충 권세 황충은 메뚜기 유이다. 출애굽 때에 하나님은 이 메뚜기를 보내어 애굽의 재앙을 더하고 바로 왕을 징치한 일이 있다. 구약성경 요엘 1~2장은 이 황충의 파괴적 운동에 대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저놈은 포도원을 황폐케 하고, 나무껍질까지 전부 벗기고 또 토지의 모든 곡물을 완전 절단 내어 버렸다. 저놈의 크기는 약 5cm, 날개가 10cm 이상이나 되는데 한번 날을 때는 그 떼들의 두께가 약 25m, 떼들의 길이는 약 6km나 되어 60m 미만의 건물을 아예 알아볼 수조차 없게 암흑의 구름덩이처럼 되어버린다고 한다. 이러한 메뚜기 떼들이 한번 지나가면 옥토였던 평야의 곡물은 그 흔적조차 찾아볼 길이 없고, 땅은 불타서 재만 남는 격이 되어버린다고 한다. 예컨대, 1866년 알제리아에 이 황충 떼들이 들이닥쳤는데 그 결과 20만 명의 사람이 기근을 만나 죽은 일이 있다. 그렇다면 여기 다섯째 나팔에 나타난 황충은 자연적인 메뚜기의 충재를 의미함인가? 아니다. 그 이유는 ① 그 황충들이 전갈과 같은 권세를 받았고, ② 푸른 풀이나 수목은 해하지 못한다는 명을 받았고, ③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을 해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④ 사람은 죽이지 못하고, ⑤ 다섯 달 동안만 사람을 괴롭게 하라는 제한적인 활동을 받았음을 볼 때 자연재앙이 아님이 확실하다. (2) 사단적인 황충의 권세 사실상 요한계시록 9장 1~11절의 황충은 자연 재앙이 아니라 영적, 사단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그것은 저놈이 받아 행하는 권세를 봐서 그러하다. ① 전갈의 권세를 받고 있다. 요한계시록 9장 3절에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고 했다. 전갈(독사)은 팔레스타인의 재앙 중의 하나이다. 그 모양은 바다의 작은 가재같이 생겼다. 이 전갈은 가재와 마찬가지로 집게발을 가지고 있고, 그 발로 먹이를 잡는다고 한다. 그 전갈은 꼬리를 갖고 있는데 그 꼬리 끝에 구부러진 집게가 있다. 그는 이 꼬리 집게로 독을 뿌린다고 한다. 이 전갈의 크기는 약 15cm 정도 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놈은 벽의 갈라진 큼으로 기어든다. 그리고 모든 돌 밑이나 구멍에 살고 있다고 한다. 전갈이 쏘는 것은 황호박벌이 쏘는 것보다 더하고 심하면 생명까지 위험이 온다고 했다. ② 황충의 권세는 그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자들에게 제한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9장 4절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고 했다. 그가 누구인가?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유기된 자 곧 불택자이다. 요한계시록 9장 2~3절이나 14장 1절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이마에 인을 쳐서 그 구원을 확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황충 운동은 택자들의 영혼을 미혹하거나 파괴할 수 없는 것이다. ③ 황충의 권세는 고통을 줌에 있다. 요한계시록 9장 6절에 「그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라고 했다. 어떤 고통인가? 요한계시록 9장 5절에 「괴로움」은 ‘고통스러운 것’, ‘고문’인데 그것은 영혼을 찌르는 영의 아픔이요, 육체의 가시 같은 괴로움이다. 이 고통은 필연적인 고통이다. 피하거나 지연될 수 없다.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아니한 자는 누구든지 이 고통을 받아야 한다. 이 고통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죽음을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아예 죽음이 피해가는 고통이다. 여기 죽음(qa,natoj)은 육신의 죽음을 의미했다. 죽고 싶어도 죽음이 피하는 고통이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지옥의 고통이다. 참으로 무서운 영의 고통이요, 또한 육체적 고통이다. 이것이 사단이 쏘는 독소(살)이다. 사단은 재물, 육친의 혈육, 거짓 종교의 교훈, 질병, 이별 등 여러 가지를 가지고 사람을 괴롭힌다. 죽이지 않고 살려 놓고 죽음 이상의 고통을 더하는 이 사단성이야말로 얼마나 잔혹한가? 실로 그놈은 파괴자요, 어둠의 자식임이 확실하다. 죽이지는 않고 고통을 줌에 있다. ④ 제한된 권세 활동이다. 요한계시록 9장 5절에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9장 10절에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고 했다. 5개월이 무엇인가? 글자대로의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흐름을 볼 때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고 볼 것이다. 확실히 아는 것은 이 어간은 황충이 활동하는 기간이다. 그것은 예수 재림 직전에 더 강화될 마지막 징조 기간이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는 10일 동안의 짧은 환난이 교회에 있다. 그 짧은 기간에 비하면 5개월(150일)은 상당히 긴 기간이다. ⑤ 황충의 권세 활동은 무저갱의 사자의 지령을 받고 움직인다. 요한계시록 9장 11절에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고 했다. 황충의 임금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 곧 무저갱의 사자이다. 그놈의 임금은 파괴와 멸망의 왕이다. 그 왕의 지령을 받는 황충이야말로 인류의 파괴와 멸망을 목적하는 것이 아닌가?
4. 보라(계 9:12)
1) 첫째 화는 지나갔음을 보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9장 12절에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라고 했다. 황충 재앙을 ‘화’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이 재앙이 인간에게 주는 고난과 고통의 괴로움이 너무 극심함을 이름이다.
2) 아직도 화 둘이 남아있음을 보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9장 12절에 또 말하기를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라고 했다. ‘이르리로다’ 함은 오고 있는 사실이다. 필연적인 도래요, 피하거나 지연시킬 수 없는 불가항력적 도래이다. 그 두 화는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재앙을 의미한다.
5. 영적 교훈
1) 사단 운동의 출처가 무저갱임은 성령운동의 출처와 정반대이다(계 9:2, 11). 언제나 성령운동은 그 출처가 하늘이요, 하나님의 보좌이다. 창조 계시가 하늘에서, 구원 계시가 하늘에서 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화육강세가 하늘에서, 성령강림이 하늘에서 왔다. 기록된 영감 계시(성경)가 하늘의 산물이다. 그러나 사단의 주구인 황충은 무저갱에서 올라왔다. 저놈은 필연 하늘을 도전하고, 대적하는 정체가 아닌가?
2) 황충 운동은 불신자의 죄를 심판하는 고통이다. 그 고통은 궁극적으로 인 맞지 않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 중에는 비기독교도인 우상 숭배자,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향락주의자들도 포함되지만, 소위 기독교인이라 일컬어졌던 무리 중에 이단 운동을 따르는 모든 자도 해당된다. 이유는 저들은 실상은 불신자이기 때문이다. 저들은 벌써 이 세상에서도 죽음 이상의 지옥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어떤 고통일까? (1) 어둠의 고통이요, 절망적인 고통이다. 우리가 겪는 고통 중에는 소망의 고통이 있다. 예컨대 아이를 해산하는 산모의 고통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생산적인 고통이요, 창조적인 고통이요, 희망적인 생명의 고통이다. 교회를 위한 해산의 고통, 재림 준비를 위한 수절과 진리 증거의 고통이야말로 실로 가슴 설레는 고통이다. 장차의 영광과 비교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래서 이 고통을 축복과 영예로 여기고 감수한다. 그러나 황충이 그 꼬리의 살로 찌르는 고통은 어둠이요, 절망적인 고통이다. 어둠은 지옥의 특색이다. 마태복음 22장 13절에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다. 어둠 속에는 아무 소망이 없다. 뿐 아니라 어둠 속에는 아무 일을 할 수 없다.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고 했다. 일이 없는 세계는 바로 죽음의 세계가 아닌가? 그 죽음의 세계는 아무런 동작도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2) 쏘는 고통이다. 그 황충에게는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다고 하였다(계 9:5, 10). 이것은 마치 바늘처럼 찌르는 고통인데 그것은 죄의 결과이다. 죄는 마치 바늘처럼 찌르고 쏘는 아픔을 가져다준다. 이것이 양심을 찌르니 더 아픈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고 했다. 사단은 우리 죄를 이용하여 양심을 찌른다. 또한 육신을 찌른다. 실로 무서운 고통이요, 아픔이 아닌가? (3) 죽어지지 않는 고통 죽고 싶어도 죽음이 피하여 가는 고통이다. 이것이 지옥의 영벌이요, 지옥의 영생이다. 죽지 않고 살아 의식 활동을 가지면서 당하는 고통이다(계 9:5). 참으로 괴롭고 두려운 고통이다. 불신자(이교도, 이단자)들은 금세의 고통, 내세의 고통이다. 그것은 영원한 고통이다.
3) 성도들의 절대 안전 보장을 보게 된다. 이러한 황충들의 파괴적이요, 멸망적인 활동은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을 대상했다(계 9:4). 인 맞은 자는 성도들이다. 하나님의 종들이다. 14만 4천인의 무리들이다(계 7:2~4, 14:1). 저 무서운 황충(메뚜기) 떼들이 애굽 땅에 임할 때 문설주 인방에 양피로 인을 친 자들을 넘어가 버리듯이(Pass-over) 여기 황충 떼들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에게는 감히 그 파괴적 활동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롬 8:1)에게는 하나님의 사랑 약속(요 13:1)이 세상 끝 날까지 효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마 2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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