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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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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법(구약)에서 그랬던 것처럼 은총의 법(신약)에서는
초자연적인 방법에 대해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이 왜 옳지 않은지
의심을 풀어본다. 사도 바울의 권위를 들어 증명한다.
1. 여러 가지 많은 의문들이 생기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빨리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우리가 문제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 가르침의 진리가 항상 명백하고 힘이 있기 위해서는 마땅히 해결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비록 우리의 앞길을 조금 더디게 할지라도 이런 의심들 가운데에는 여기에서 제기되는 의문들처럼 항상 우리의 목적을 더욱 밝게 해주고 많은 가르침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있다.
2. 우리는 앞 장에서 영혼들이 현시나 환청과 같은 것들을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해서 얻기 원하는 것이 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는 것인가를 다뤘다. 더 나아가서 성경의 증언을 통해서 우리가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그런 방법을 통해 사귀었고, 또 정당한 방법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명하셨다는 것을 보았다. 이사야서에서 보게 되는 것처럼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에는 오히려 하나님께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후손들을 꾸짖으시는데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이집트로 내려가기 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뜻을 물어보지도 않았다"(사 30:2), 역시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기브온의 주민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내용을 여호수아기에서 읽게 되는데(수 9:2-14) 성령께서 그들의 잘못을 꾸짖으신다. 주님께 여쭙지도 않았고 그들이 주는 먹을 것을 받았다. 성경을 보면 모세는 항상 하나님께 여쭈었고, 다윗 왕과 다른 이스라엘의 왕들도 그들이 치러야 할 전쟁과 필요한 것들이 있을 때마다 여쭈었고, 제사장들과 옛 예언자들도 그렇게 여쭈었다.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셨고, 그들과 말씀을 나누셨으며 화를 내지 않으셨다. 이러한 것은 잘 한 일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나쁜 일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신약인 은총의 법에서는 전에 그랬던 것처럼 되지 않을가?
3. 그에 대한 답을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여주어야 했던 것이 옳았고, 예언자들과 사제들 역시 하나님의 현시와 계시들을 원했던 것도 옮았다. 그때는 아직 신앙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고 복음의 법(신약)이 쓰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여줄 필요가 있었으며, 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혹은 계시들과 현시들을 통하여. 때로는 형상들과 비슷한 것들을 통해서, 그리고 다른 많은 상징들을 통해서 대답해주셨다. 말씀하셨고, 응답하셨고, 계시해주셨던 모든 것들은 우리 신앙의 신비들이었으며 신앙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것들이었다. 신앙에 관한 것들이기 때문에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그분의 입에서 직접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앞에서 우리는 바로 그분의 입에 물어야 했다고 말한 것이다. 신앙의 문제와 하나님께 관한 문제들을 다루면서도 아직 이들은 신앙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여쭈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결국 그분께서 조언을 주시도록 그분께 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꾸짖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위에 자리를 잡았고, 은총의 시대에 복음의 법에 드러났기 때문에 옛날식으로 하나님께 여줄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께서도 옛날처럼 말씀하시거나 응답을 주실 필요가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이신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에게 주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이 유일한 말씀을 통하여 다 말씀해주셨기 때문에 더 이상 말씀하실 것이 없으시다.
4. 사도 바울께서 옛날 방식으로부터 멀어지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하나님과 사귀던 것을 버려야 하며, 오로지 그리스도께만 눈을 돌리도록 가르치기를 원하면서 히브리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이런 뜻이다: "하나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 1:1-2), 사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입을 다무셨고,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는 것이다. 전에 예언자들에게 부분적으로 말씀하셨던 것을 당신의 아들인 모든 것을 주시면서 이미 다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5.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께 무엇을 여물고 싶거나 혹은 어떤 현시나 계시를 원한다면 그리스도께 눈을 돌리지 않으면서, 그리고 다른 새로운 것을 원하지도 않는 가운데 저지르는 어리석은 짓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묻는 이에게 이런 방식으로 대답하실 것이다. "나의 아들인 내 말씀을 통하여 모든 것들을 다 말했기 때문에 다른 할 말이 없다. 이보다 더 무엇을 네게 계시할 수 있으며, 응답할 수 있겠느냐? 오직 그리스도께 눈을 돌려라. 그리스도 안에 네게 말한 것과 계시한 모든 것이 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네가 청하고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찾을 것이다. 네가 특별히 계시들과 환청들을 청하는데 만일 그리스도께 눈을 돌린다면 모든 것을 찾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환청이며 응답이고, 나의 모든 현시이며 계시이다. 나는 이미 그리스도를 너희에게 형제로, 동료로, 스승으로, 대가(보상)로 그리고 상급으로 주면서 다 말했고, 응답했고, 보여주었고, 드러냈다. 나의 성령과 함께 타볼산에 내려갔을 때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마 17:5)고 한 그날부터 이미 옛날에 하던 응답이나 가르침의 모든 방식으로부터 손을 뗐으며, 그리스도에게 다 주었다. 너희는 그에게서 들어라. 나는 계시할 신앙밖에 더 이상 아무것도 드러낼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전에 말했던 것은 그리스도를 약속했던 것이었다. 만일 그들이 내게 물었다면 그 질문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요청과 기다림이었으며, 이제 복음사가들과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알게 해주는 것처럼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모든 선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러나 이제 옛날식으로 내게 질문을 한다면, 그리고 내가 무엇을 말하거나 계시하기를 바란다면 내게 그리스도를 또 다시 청하는 것이며, 신앙을 더 청하는 것이고, 이미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신앙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아들에 대한 대단한 모욕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다시 인간이 되라는 것이며, 이 세상을 살다가 처음처럼 또 죽으라고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원하거나 청할 현시들이나 계시들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잘 바라 보아라. 모든 것을 다 이루었고, 주었으니 네가 청하는 것보다 월씬 더 많은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 것이다."
6. "만일 내가 너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주기를 원한다면 나를 따랐고, 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굴복했고, 괴로움을 겪은 내 아들을 보아라. 얼마나 많은 응답을 네게 주는지 너는 볼 것이다. 내가 너에게 어떤 감춰진 것들이나 문제들을 설명해주기 원한다면 오로지 그리스도께 눈을 돌려라. 너는 그리스도 안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기적들과 감춰진 지혜와 신비들을 찾을 것이다. 나의 사도의 말을 따른다면 하나님의 아들 안에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온갖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골 2:3). 너에게 있어서 지혜의 보물들이란 네가 알고 싶어 했던 것들보다도 훨신 더 높고 달콤하고 유익한 것들이다. 그래서 나의 사도가(골 2:2)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해주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또 만일 네가 다른 거룩한 것이거나 육체적인 계시들이나 현시들을 원한다면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라. 그리스도 안에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찾을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온전히 충만한 신성이 육신의 형태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골 2,9)라고 하는 것이다.
7. 이제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묻는 것이 적합하지 않으며,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 대하여 모든 것을 다 말했으므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더 이상 드러내거나 드러낼 신앙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누가 만일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하여 무엇을 받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모든 것을 충분히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다. 신앙을 전제하고 받아들이면서도 그렇게 한다면 신앙보다는 호기심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해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그 어떤 가르침도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다 이루어셨다"(요 19:30)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것을 마치셨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방법들만 끝냈다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 의한 예절이나 의식까지도 끝냈다는 것이다. 이제 모든 것에 있어서 인간적으로, 그리고 가시적으로 인간이신 그리스도의 법과 교회와 교회의 직무를 맡은 사람들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영적 연약함과 무지를 극복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모든 것을 위한 명약을 얻을 것이다. 이런 방식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단지 호기심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대단한 무모함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하여 얻으리라고 믿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신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교회의 직무를 맡은 사람들을 믿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말하듯이 만일 하늘의 어떤 천사가 전했다 할지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했던 복음과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전했다면 저주를 받을 것이고 단죄될 것이다(갈 1:8).
8. 항상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머지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믿지도 말아야 하고, 그것에 동의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구약의 방식으로 하나님과 사귀기를 원하는 사람은 헛수고를 하는 것이다. 비록 구약의 어떤 시대가 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묻는 것이 합당한 것이 아니었고, 또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대답해주신 것이 아니라 단지 예언자들과 제사들에게만 대답해주셨다면 그것은 일반 대중은 그들로부터 교리와 율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혹시 하나님께 대하여 무엇을 알고 싶었다면 하나님께 직접이 아니라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을 통해서 물었다. 다윗은 예언자였기 때문에 가끔 하나님께 직접 질문을 했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사제들의 옷을 입지 않고서는 질문하지 않았다는 것을 사무엘서는 다윗이 사제인 아비아달에게 했던 말에서 잘 보여준다. 다윗이 "에봇을 가져오게 하였다"(삼상 23:9)고 했는데 에봇이란 제사장의 최고 권위를 말해주는 옷이었으며, 그것을 걸치고서야 다윗은 하나님께 질문을 했다. 그러나 때로는 나단 예언자나 다른 예언자들을 시켜서 하나님과 상의를 했다. 그리고 이 예언자들과 사제들의 입을 통해서 들은 말들을 그들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믿어야만 했다.
9.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은 만일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의 입을 통해서 확인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믿게 할 만한 아무런 힘이나 권위가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비슷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인간을 다루시고 통솔하시는 것을 매우 좋아하시며, 자연적 이성을 통해서 인간이 다뤄지고 통솔되는 것을 원하시는 분이시다. 또한 초자연적으로 우리에게 건네지는 것들을 우리가 전적으로 믿지 않기를 바라시며, 이런 것들이 인간의 입이라는 인간적 방법을 통해서 전해지기까지 우리 안에서 안전하고 확실한 것으로 정착되지 않기를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항상 영혼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 드러내시는데 말씀을 듣는 영혼, 즉 말씀을 듣기에 적합한 바로 그 영혼이 지니고 있는 경향에 따라서 말씀하신다. 이렇게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흡족해하지 않으시는데 인간이 당신과 비슷한 다른 인간으로부터 초자연적인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예가 사사기에 나오는 기드온 대장에게서 잘 드러나고 있음을 본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을 이길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여러 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의심을 품고 있었으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들을 때까지 그를 무기력하게 해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가 매우 나약해져 있음을 보시고 "'일어나 저 진영으로 쳐 내려가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이미 네손에 넘겨주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나면 진영으로 쳐내려갈 용기가 날 것이다'" (삿 7:9-11)라고 하셨다. 사실 그렇게 이루어졌다. 기드온이 그들을 이길 것이라고 꿈을 꾸었다는 미디안 사람의 꿈 이야기를 듣고 대단한 힘을 얻었으며, 커다란 기쁨으로 전투를 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이 단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신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가 자연적인 방법으로 안전함을 확인할 때까지 아무런 승리의 징표를 주지 않으셨음을 보게 된다.
10. 더욱 놀랄만한 것은 이러한 사실들이 모세에게서도 일어났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러 가도록 여러 가지 이유들을 주셨고 뱀의 지팡이와 나병에 걸리는 손을 통한 징표들로 확신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우 연약했고, 가기를 망설였다. 하나님께서 화를 내셨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그의 형 아론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실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러 가기 위한 신앙(용기)을 가질 마음이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길다 "나는 너의 형 아론이 말을 잘하는 줄 안다. 그가 지금 너를 만나러 오고 있다. 그는 너를 보면 마음으로 기뻐할 것이다. 너는 그에게 일러, 그가 해야 할 말을 그 입에 담아 주어라. 네가 말할 때나 그가 말할 때, 내가 너희를 도와 주겠다" (출 4:14-15).
11. 이 말을 들은 뒤, 모세는 자기 형이 해주었던 충고에서 얻게된 위로의 희망으로 즉시 용기를 냈다. 이것이 바로 겸손한 영혼의 태도이다. 겸손한 영혼은 단지 하나님과 사귐만을 추구하지도 않으며, 인간적인 충고나 지도가 없이 온전히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신다. 모세가 아론과 함께해야만 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에 발설되면서 자연적 이유에 바탕을 둔 진리를 알려고 모여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밝혀주시고 확인시켜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하신다.
그래서 복음에서는 내 이름의 보다 큰 영광과 영예를 보기 위하여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나도 그들 가운데 있다고 하셨다(마 18:19). 모인 이들의 마음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들을 분명하게 밝히고 확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잘 알아두어야 할 것은 혼자 있는 곳에 나도 거기에 있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적어도 둘이 있는 곳이라고 하셨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을 자신만을 위해 믿는 것은 물론이요 교회나 교회의 직무를 맡은 사람들을 제켜놓고 확신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혼자 있는 사람에게 그의 마음에 진리를 밝혀주고 확인시켜 주는 식으로 함께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진리에 대해서라면 연약하고 냉랭한 상태로 있을 것이다.
12. 이것을 전도서에서도 강조하고 있다. "외톨이가 넘어지면 그에게는 불행! 그를 일으켜 줄 다른 사람이 없다. 또한 둘이 함께 누우면 따뜻해지지만 외톨이는 어떻게 따뜻해질 수 있으랴?"(전 4:10-11) 한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열로 몸을 녹일 수 있으나 혼자라면 어떻게 녹일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일들 가운데 있으면서 어떻게 춥게 지낼 수 있을까? 만일 한 사람이 더 강하고 더 녹여줄 수 있다면 이것은 바로 악마를 말하는데, 악마는 혼자서 하나님의 일들을 간직하려는 사람들보다 훨씬 강하고 우세하다. 그러나 둘이 함께하면 악마에게 대항할 것이다. 영적 스승과 제자는 진리를 알고 실천하기 위해 함께 뭉친다. 이것이 가능할 때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아무리 많이 들었다 할지라도 혼자서는 통상적으로 진리에 대하여 취약하고 적극적이지 못하다. 사람으로부터 들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복음을 선포하던 사도 바울 역시 자기가 했던 일과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갈 2:2) 베드로와 사도들을 찾아가서 상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 사도 바울에게 안심을 시켜주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일은 아주 중요한일인데, 자기에게 계시된 복음을 선포했던 사도 바울에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복음을 선포하면서 저지를 수 있는 오류를 막아낼 수 있는 안전함까지 계시될 수는 없었을까요?'
13. 여기에서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말하는 순서를 따르지 않고서는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시는 것들에 대하여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있는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바울 자신이 전한 복음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던 것처럼 어느 누가 확실함을 지닌다할지라도, 그 계시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계시 자체와 그 계시가 말하는 상황에 대해서라면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한 가지를 말씀하신다 할지라도 항상 또 다른 것을 말씀하시지 않으시며, 어떤 사건(일)에 대하여 자주 말씀하시지만 그것을 어떻게 하라는 방법까지 말씀하시지는 않으신다. 비록 하나님께서 영혼과 함께 오랜 기간 동안 매우 친절하게 사귀셨다 할지라도 그분은 통상적으로 인간의 충고나 교묘함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지도 않으시고 말씀조차 하지 않으신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아주 잘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직접 계시해주신 복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상의하러 갔던 것이다.
출애굽기에서도 이것을 보게 되는데(출 18:21-22),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아주 다정하게 대해주시면서도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그에게 주었던 건전한 층고와 같은 것을 결코 주신 적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아침부터 밤까지 기다리게 하지 않도록, 그리고 모세를 도와줄 수 있도록 몇 명의 유능한 사람들을 뽑으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이런 것은 인간의 이성과 판단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충고는 하셨지만 다른 말씀은 하시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현시들, 계시들, 그리고 환청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자주 드러내시지 않는데, 그 이유는 할 수 있다면 인간의 이성과 판단을 이용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단지 모든 판단과 이성이 미치지 못하는 신앙에 대한 것들을 제외하고, 신앙에 반대되지 않는 것들이라면 이 모든 현시, 계시, 환청들이 인간의 이성과 판단에 의해 정리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14. 하나님과 성인들께서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자신에게는 아주 다정하게 다뤄주셨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다른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알 수 있으므로 무슨 일에 있어서도 자신이 지니게 되는 오류들까지 밝혀주셔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베드로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교회의 수장이면서도 이방인들에게 적용했던 어떤 예식에서는 오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침묵을 지키셨음을 사도행전에서 읽을 수 있듯이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성 베드로를 꾸짖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에 따라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게바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민족들에게는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갈 2:1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손수 베드로의 잘못을 지적해주시지 않으셨다. 이런 정도의 잘못은 이성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15.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살면서 당신과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과 당신께서 많은 빛과 힙을 주셨던 사람들이 저지른 여러 가지 잘못들과 죄들을 단단히 벌하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가까움과 힘만을 믿고 조심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거부했기 때문이다. 복음에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듯이 이런 이들은 놀라게 될 것이다. 주님, 주님! 당신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신 예언들을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당신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물아내고 또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가 많은 기적과 덕행을 행하지 않았습니까?(마 7:22)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마 7:23)고 말씀하실 것이다. 발람 예언자와 다른 비슷한 사람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들과 말씀을 나누셨고 많은 은총을 베풀어주셨으나 죄를 저질렀다(민 22-24장)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당신과 가까이 했던 벗들과 선택되었던 이들이 저지른 부주의와 잘못에 대하여 반드시 벌을 주실 것이다. 이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라면 이미 그들에게 주신 법과 자연적 이성을 통하여 충분히 깨우칠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직접 주의를 주실 필요가 없었다.
16. 이 주제에 대하여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이미 말한 것을 반복해야 한다. 영혼이 받게 되는 무엇이든지, 그 방법이 무엇이 될지라도, 즉 초자연적인 방법이 될지라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단순하게, 그리고 즉시 영적 지도자에게 말해야 한다. 비록 이것을 영적 지도자에게 모두 말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라 여겨질지라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환시나 계시들에 말려들지 않고, 그것들을 원하지 않으면서 모두 파기시켜야 한다. 비록 주어진 현시들과 계시들, 그리고 다른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분명하지도 않고 혹은 거의 의미가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말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여겨질지라도 영혼이 안전하게 되려면 영적 지도자에게 말을 해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으며, 세 가지 이유들을 꼽을 수 있다.
첫째, 앞에서 말했듯이 하나님께서는 많은 은총을 주시는데 그 효과나 힘, 그리고 빛이나 안전함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인 은총을 체험한 영혼의 영적 판관으로 세워주신 영적 지도자와 잘 지낼 때까지 영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확인시켜 주시지는 않는다. 영적 지도자는 영혼 안에 있는 은총을 확인하거나 증명해보고, 그 은총을 끓어버리거나 풀어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성경의 권위를 통해 확인해본 결과와 우리가 매일의 체험을 통해 확인한 것에 따른다면 이런 초자연적인 지각들이 주어지는 겸손한 영혼들에게서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해야 하는 영적 지도자들과 상의를 한 뒤에는 오히려 새로운 만족과 힘, 빛과 안전함을 체험하는 것을 본다. 그렇게 상의할 때까지 어떤 영혼들은 차분하게 있지 못하거나 자신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말한 뒤에는 새로운 은총이 주어진다.
17. 둘째, 어두운 밤이라고 하는 영적 가난과 벗어버림을 따라 걸어가기 위해 영혼이 겪는 일들에 대한 적합한 가르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일 영혼에게 이런 가르침이 없다면 영혼이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무것도 알지도 못하면서 영성생활에서 매우 둔해질 것이며, 감각에 의한 영성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주 부분적으로 은총을 체험하게 된다.
18. 셋째, 비록 영적 지도자가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지라도 영혼의 겸손과 순종과 극기를 위해서라면 자기 영적 지도자에게 모두를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은총들이 어떤 영혼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사실들에 대해 말한다면 영적 지도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는 이유로 그런 것을 말하기를 무척 어렵게 생각하는 영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면 겸손이 없는 것이며, 겸손이 없기 때문에 말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춰야 한다. 어떤 영혼들은 성인(聖人)들에게나 해당되는 그런 초자연적인 은총들을 갖게 되었다고 여기거나 그것에 대해 말하는 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이런 체험들에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영적 지도자에게 굳이 말할 이유가 없다고도 한다. 이런 때에는 그것을 말하기위해 겸손하고 공손하며, 유연하고 재빠르게 될 때까지 극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영적 지도자에게 말을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다음에는 더욱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 이제껏 말한 것에 대해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초자연적인 은총들을 떨쳐버리라고 했고, 고해신부들은 영혼들에게 그런 것들에 대하여 입에 담지도 말라고 했지만, 영적 지도자들이 그런 말을 하는 영혼들에게 불쾌함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영혼들을 움츠러들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건성으로 흘려듣거나 그런 말을 하는 영혼들을 우습게 여기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말하도록 강요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오히려 말문을 막아버리는 아주 좋지 않은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영적 지도자들은 이것 또한 그런 영혼들을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방법이며 방식이기 때문에 좋지 않게 대한다든지 놀란다든지 혹은 추하게 여긴다든지 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대단한 부드러움과 고요함을 가지고 그런 영혼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면서 말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만일 필요하다면, 가끔 다루기 어렵다고 여겨지는 영혼들에게는 명령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적 지도자들은 영혼들이 저 초자연적인 것들로부터 눈을 돌리도록 좋게 타이르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면, 그런 것들에 대한 욕심이나 마음을 어떻게 비워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을 주면서 신앙 안으로 영혼들을 이끌고 가야한다. 그리고 이런 초자연적 현상들을 체험한다는 것이 무슨 공로가 되거나 흠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늘에서 주어지는 수많은 초자연적 현시들과 [계시들] 그리고 은총들을 가질 수 있는 것보다 애덕으로 실천하는 의지의 행위나 노력이 하나님의 눈에는 훨씬 더 고귀하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영적 지도자들은 이런 사실들에 대하여 아무 상관없는 수많은 영혼들이 그런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체험한 영혼들에 비해, 아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앞으로 많이 나아간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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