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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로마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955 추천 수 0 2009.12.29 0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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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4:17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8. 7. 6. 성찬주일 4부 설교 
<서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동물과 인간의 특별히 다른 점은 동물들은 있는 것을 그대로 보고 삽니다. 그러나 사람은 현재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마음에 꿈꾸며 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동물은 창조적인 능력이 없지만 사람은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창조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본론>
1. 일반상식으로 사는 삶
동물적으로 일반상식만 가지고 감각적으로 사는 사람은 체험해 보고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체험해 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봐야만 있지 눈으로 안본 것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천국과 지옥에 대한 설교를 했는데 설교를 마치자 어떤 젊은이가 나와서 목사님에게 대들었습니다. "목사님, 천국 봤습니까? 지옥 가봤어요? 나는 아직까지도 천국도 못보고 지옥도 못 보았으니 천국이 어디 있으며 지옥이 어디 있습니까?" 목사님이 난처해 있으니까 한 신사가 검은 안경을 끼고 옆에 와서 하는 말이 "여보시오. 내 말 좀 들으십시오. 하늘에 해와 달과 별들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해와 달과 별들이 있지요." "어떻게 압니까?" "보이니까요." 그러면 "이 건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지요." "어떻게 압니까?" "눈에 보이니까." "당신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내가요? 내가 여기 있지요." "어떻게 압니까?" "내가 나 스스로 만질 수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신사 하는 말이 "여보시오. 나는 해와 달과 별들이 안보이니까 없소. 건물도 내 눈에 안보이니까 없소. 당신이 내 눈에 안 보이니까 당신도 없소." 안경을 딱 벗는데 보니까 "장님이요.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단 말이요. 덤벼들려면 덤벼드세요. 이 사람이 두 손을 바짝 들었습니다. 안보이면 없다면 나에게는 천지가 없는 것 아니요. 당신 그런 말 하지 마시오. 나는 눈에 안보여도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것을 알고 이 건물이 있는 것을 알고 당신이 내 앞에 서 있는 것을 내가 안단 말이요. 보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요." 그 말에 청년이 머쓱해서 떠나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너무나 이 세상에 좁은 편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상식으로 사는 사람은 봐야만 믿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내가 직접 들어봐야 믿지 안 들어보면 안 믿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앉아있는 이 공간에 수없는 라디오파와 텔레비파가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안보이지요. 그러나 끊임없이 라디오 방송은 이 파가 지나가고 있고 텔리비 파장이 지나가고 있고 전화파장이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기계만 조절하면 다 귀에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귀에 안 들린다고 이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사람은 무식하기 짝이 없는 원시시대 사람인 것입니다. 귀에 안 들려도 라디오파, 무전파, 텔레비파, 핸드폰전파 끊임없이 우리 주위를 진동하고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냄새 맡아야 알지 냄새 안 맡으면 없는 것이다.' 냄새가 안 나는 것도 이 세상에 많잖아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은 잘 맡지만 후각이 상실된 사람은 냄새를 못 맡아요. 그리고 냄새 못 맡는다고 음식이 없나요? 못 맡아도 음식은 있지요. 접촉해서 느껴 보아야만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안 만져 봤는데 어떻게 아느냐." 안 만져 봐도 이 세상 우주만물이 우리가 있는 것을 아는 것은 다 우리가 만져볼 수 없습니다. 해를 어떻게 만져 봅니까? 달을 어떻게 만져 봅니까? 별들을 어떻게 만져 봅니까? 그래도 있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반드시 우리 일반상식으로 생각하듯이 눈으로 봐야 알고 귀로 들어야 믿고 냄새 맡아봐야 알고 접촉해서 느껴봐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단히 낮은 정도의 삶을 사는 동물적인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2. 창조적인 삶
창조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없는데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신학교 학생 시절에 굉장히 저의 마음속에 감동을 늘 느끼고 산 것은 저는 아직까지 신학교 학생으로 교회를 가지지도 못하고 부흥회를 열어 보지도 못했지만 제가 목회하는 교회와 내가 인도하는 부흥회에 수많은 병자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절름발이가 걸으며 장님이 보고 귀멍어리가 들을 것을 마음속에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고 집회 장소에 몰려 올 것을 늘 생각했었습니다. 그때는 인간적으로 그렇게 할 처지에 못되는 가난한 신학생이었는데 마음속에 생각은 굉장히 부요했습니다. 그렇게 늘 생각하고 살았어요.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는데도 내 생각에는 큰 교회와 수백, 수만, 수천 명의 성도들이 모이는 집회를 인도한다는 것을 늘 마음속에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지나고 보면 그 생각한 것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음속에 생각이 장차 여러분의 인생을 살아가는 밑천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생각을 해야 하나님이 그 생각을 담아 준다는 것입니다. 생각의 그릇이 없으면 아무것도 담지 못합니다. 생각이 잘못된 생각을 하면 잘못된 것이 생겨나고 잘된 생각을 하면 잘된 것이 생겨나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꿈꾸는 사람이 창조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꿈꾼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제가 아롤리드 목사님이라고 세계적인 부흥사를 모시고 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흥회를 마치고 대전에 가서 집회를 하는데 그때 여관에 우리가 같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여관에서 밥을 먹으면서 그 아롤리드 목사님이 저를 넌지시 바라봐요. 나는 아직 신학생이었고 그는 세계적인 유명한 부흥사였는데 안경너머 이렇게 저를 보더니만 나를 보고 "조학생, 성경 기억하냐?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고 하는데 나는 늙은이니까 꿈은 요사이 잘 꿔. 그런데 간밤에 내가 꿈을 꾸었는데 장차 자네가 서서 말씀을 전하는데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모여오는 것을 내가 보았어. 그리고 자네가 목회하는 교회가 굉장히 큰 교회에 목회하는 것을 보았어." 그런데 아롤리드 목사님하고 저하고 존허스톤 목사님하고 같이 식사를 했는데 식사를 끝마치고 난 다음 나오면서 존허스톤 목사님이 나를 한쪽으로 끌어내면서 "저 영감 미쳤어. 노망한 소리한다. 지금 신학생인 너를 보고 무슨 세계적인 교회를 목회하고 구름떼같이 많은 사람이 모여와서 부흥회 참석한다는 말을 하느냐? 나이를 늙으면 저렇게 노망 걸린 말을 한단다." 그렇게 말을 해요. 그러나 나는 그 말에 굉장히 반발심이 생겼습니다. 아롤리드 목사님이 하는 말이 내 맘에 콱 들어와서 그 시간부터 그 말이 내 꿈이 되고 만 것입니다. 결코 내가 목회하는 교회는 구름떼 같은 성도들이 모여오며 집회하는 곳에는 수많은 군중이 모여올 꿈을 아롤리드 목사님이 심어주신 것입니다. 신학생 시절에 마음속에 꿈을 심었으나 현실은 전혀 꿈과 달랐습니다. 현실은 너무나 어렵고 힘들고 삭막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그가 심어준 꿈을 계속 가지고 있을 때 오늘날 돌아보면 그 꿈이 다 이루어지고 가는 곳마다 구름 떼 같은 성도들이 모여왔고 큰 교회를 목회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음에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자녀들에게도 꿈을 심어 주십시오.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꿈을 심어 주십시오. 꿈이 언제나 싹이 떠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 꿈도 없으면 아무것도 안되는 것입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꿈은 우리가 꾸고 채우기는 주님이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입을 좁게 열면 아무것도 안돼요. 입을 크게 열어야 돼요. 입이 좁은 사람은 숟가락을 적은 숟가락으로 먹으니까 많이 밥이 못 들어 가지요. 입이 큰 사람은 큰 숟가락으로 집어넣으니까 많이 먹을 수 있지요. 한참 한 그릇에 밥을 나눠 먹을 때는 입이 큰 사람이 많이 먹어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우리가 같이 예수를 믿어도 하나님 앞에 꿈을 크게 가진 사람은 큰 복을 받아도 꿈을 주먹만 하게 가지면 조그맣게 은혜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적인 사람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꿈꾸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적인 사람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믿음이라는 것은 믿을 수 있고 안 믿을 수 있습니다. '아이고 나는 믿음이 없어요.'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이 늘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질 것이라"고 우리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에서 하트에 겨자씨 세알을 넣은 것을 지금 밖에서 나눠주고 있는 것입니다. 만원씩만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에 헌금하면 겨자씨가 담긴 하트 모양의 저 아름다운 것을 선물로 주는 것입니다. 저는 저 겨자씨 들은 하트 모양을 가지고 기도를 합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와서 자꾸 나보고 믿음이 없다고 합니다. 제가 목회를 50년 했는데도 불구하고 기도만 하려면 마귀가 '너는 믿음이 없다. 네 믿음 가지고 아무것도 안 된다.' 그러면 저것을 딱 내놓고 '봐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으면 산을 옮기는데 여기에 겨자씨 세알이 있어도 눈에 잘 안 보인다. 그러므로 나는 이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물러가라!' 그리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습니다. 있는 것만 믿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어야지요. 내 눈에 없는 천당을 있는 것같이 믿어야지요. 내 눈에 안 보이는 지옥을 있는 것같이 믿어야지요. 내 눈에 안 보이는 예수님이 같이 계신 것을 믿어야지요. 내 눈에 안 보이는 성령이 내 속에 와 계신 것을 믿어야지요. 우리가 마음속에 믿음을 사용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 믿을 때 하나님이 분량대로 주셨는데 모두다 겨자씨 보다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다 겨자씨 보다 큰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서대문에서 교회가 좁아서 여의도로 나오려고 할 때 우리 성도들이 모아놓은 현금이 100만원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서대문에 이 교회를 짓는데 10억이 필요한 것입니다. 요사이 돈으로 계산하면 1,000억도 넘습니다. 그런데 10억이 더 필요한 교회를 지으려고 하는데 단돈 100만원 가지고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100만원 플러스 예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돈 100만원만 들고 여의도로 나온다면 어림도 없지요. 그러나 100만원 보태기 예수님이니까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은 것입니다. 이 교회에 처음 시작할 때 기공식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기공식을 하려고 모였는데 날이 흐리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습니다. 그 때 내 마음에 스산한 생각이 났습니다. '내 인생이 이 비바람 치는 인생을 걸어가야 되겠구나.' 돈 100만원 가지고 건축업자는 우리가 돈이 많은 줄 알고 시작했는데 기공식을 하면서도 돈이 없는 것입니다.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돈에 쫓기는 나의 일생이 눈에 환하게 보여 진 것입니다. 비바람이 분다. 내 인생에 비바람이 불겠구나. 그러나 제가 한 가지 마음에 믿음이 있었던 것은 100만원 밖에 없지만 그러나 100만원 옆에 예수님이 서 계신다. 예수님이 100만원을 가지고 사용하시면 1억도 되고, 1,000만원도 되고, 1,000억도 될 수 있으니까 예수님을 믿어서 마음에 담대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강하고 담대하고 믿음을 가지고 시작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안 계시면 여러분 믿음만 가지고는 안 되지요. 빌립이 벳세다 광야에서 예수님이 남자만 5천명, 부녀자 수만 명이 있는데 먹을 것을 주라고 하니까 빌립은 기겁을 했습니다. 이 많은 사람을 먹이기 위해서는 3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이 없으니 먹일 수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먹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광야에 그 많은 배고픈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계신 것을 보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계산에 넣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예수님을 계산에 넣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기름 값이 올라가서 물가가 다 뛰었지요. 장바구니가 가벼워지지요. 천 원 짜리 가지고는 과자 하나도 살수 없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곤두박질치고 중소기업들이 무너지고 굉장히 어려운 시련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어떻게 처할까요? 환난을 당하고 고통이 다가올 때 우리 장바구니가 가벼워지고 지갑이 가벼워질 때 어떻게 할까요? 그 안에 예수님이 같이 계신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시편 23편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왜 안 무서워요? 무섭지요. 그러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도 같이 계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하기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때 일수록 기도하고 예수님만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는 역사를 예수님은 지금도 베푸십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믿는 믿음이 창조적인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환경은 두려워 어려워져도 예수님은 변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자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여러분, 자꾸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루가 어떻게 시작합니까? 하루가 여러분, 아침이 되고 점점 밝아졌다가 어두워지는 밤이 되지 않습니까?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지요. 그렇지요? 자신이 없는가보다. 말하는 것 보니까.. 하루가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가 일하고 저녁에 쉬잖아요.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 창세기 보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되더라. 하나님은 계산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되더라. 사람은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된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된다. 이유가 뭐냐. 저녁이란 어둡지 않습니까? 어둠에서 시작해도 하나님은 밝은 것을 끝맺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밝은 것으로 시작해서 어둔 것으로 끝나지만 하나님은 어둔 것으로부터 시작했으나 밝은 것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둠이 따라와도 어둠이 다가오면 하나님은 아침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이 되는데도 '아이고 어둠이 올 것이다. 절망이다. 죽음이 다가올 것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우리 인생에게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하나님이 계시면 저녁이 오면 아침이 오는 것입니다. 아침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7일 동안에 내내 하나님은 저녁에 오고 아침이 오니 첫째 날이라. 저녁이 오고 아침이 오니 둘째 날이다. 저녁이 오고 아침이 오니 셋째 날이라. 내내 저녁이 오면은 아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이 오니 저녁이 온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예수 믿는 사람은 저녁이 오거든 아침이 오는 기대를 하고 긍정적인 희망을 갖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창조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데도 긍정적인 말을 하는데도 똑같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아이고 못살아.' 하는 말하고 '아이고 잘살아.' 하는 말하고 필요한 에너지는 똑같은 것입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에너지를 쓸 바에야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입술의 말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고 갈 길을 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수기 14장 28절 말씀을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하나님 귀에 무슨 말씀이 들리게 합니까? "못산다." "그대로 해주마." "병든다." "그대로 해주마." "망한다." "그대로 해주마." "잘산다." "그대로 해주마." "건강하다." "그대로 해주마." "승리한다." "그대로 해주마." "잘된다." "그대로 해주마." 성경에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리는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내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말조심해야 돼요. 입의 말로 내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이 그까짓 말 한마디 했는데 무슨 효과가 있느냐.' 여러분, 말이 그렇게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라 말은 내가 듣고 이웃이 듣고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듣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말에 조심해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라는 것은 항상 죽는다고 하지 말고 산다고 말하고 없다고 말하지 말고 있다고 말하고 망한다고 말하지 않고 승리한다고 말하고 물러간다고 말하지 말고 앞으로 나간다고 말하고 두렵다고 말하지 말고 평안하다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해서 하나님이 그대로 실천하게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이란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생활이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이란 감각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을 있는 것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통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있는 것으로 믿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감각을 통해서 체험할 수 없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사람들은 다 감각을 통해서 체험해야 믿는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도무지 체험할 수 없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 아기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은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었습니다. 어린아이 보십시오. 아직 말도 배우기 전에 부모들이 가정예배 보면 가정예배 와서 기도하라 하면 손 딱 잡고서 눈 감고 있습니다. 그것 왜 그렇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지만 마음속에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기도하라면 손을 잡고서 눈을 감고 중얼 거리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때부터 이미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을 수 있는 마음을 준 것입니다. 원숭이 새끼가 기도하는 것 보았습니까? 강아지가 기도하는 것 보았습니까? 그럴 마음이 없어요. 아예 하나님이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안 만들어 줬어요. 사람에게는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통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에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한다.
보는 감각으로만 살지 않고 우리는 마음에 믿음으로 산다. 마음이 있다는 것 놀라운 일 아닙니까? 마음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살지 감각으로만 살고 마음을 버리고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안보고 믿어야 복을 받지 보고 믿으면 이미 늦은 것입니다. 보지 않는 것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믿는 신앙생활이 우리가 참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감각을 초월해서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기 전에 성경을 보면 골치가 아파요. 제가 예수 안 믿는 무당 할머니에게 성경을 갖다 주니까 하루 만에 도로 가지고 왔어요. 그것 왜 가져왔냐고 하니까 하나님이 잔소리가 너무 많아서 못 읽겠다고 합니다. 무당에게는 잔소리로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진리의 영원한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나면 성경이 온전히 보배 덩어리인 것입니다. 황금과 같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모략과 재능이 들어있어 그 말씀대로 살면은 영혼도 살고 마음도 살고 육체도 살고 생활도 성공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보이는 것은 현실 그대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안 보이는 말씀이 배후에서 만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적인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음식을 잘 만드는 사람이라도 재료가 없으면 음식을 못 만들지 않습니까? 우리가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재료인 말씀을 가지고 있는 이상은 말씀을 읽고 말씀을 통하여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서 안 보이는 세계가 만들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도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겨요. 나는 2부, 3부 이영훈 목사 설교를 텔레비로써 사무실에서 듣고 있으면 내 마음속에 보혈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무척 생겼던 것입니다. 항상 제가 설교했던 말씀인 것입니다. 또 이영훈 목사가 내 제자이기 때문에 나보다 더 설교를 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세월이 흘러가면 더 잘하게 되겠지요. 그런데도 이영훈 목사님이 보혈에 대한 설교를 하는 것이 내 마음속에 찡하고 닿아지면서 마음에 보혈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보혈에 대한 은혜가 생기고 눈물이 마음에 핑 돌더라구요.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누가 설교해도 조용기가 하든 이영훈 목사가 하던 여러분이 설교하든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하면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은 감각을 초월해서 믿을 때 우리에게 참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면 언제나 감격적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여러분 우리보다 훨씬 교육을 못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갈대아우르에서 태어나서 그는 초등학교도 못 다닌 사람인 것입니다. 무식한 사람인 것입니다. 요사이 초등학생보다 훨씬 지식이 없지요. 그리고 생활이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위대하게 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탁월했기 때문에 위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가나안 땅으로 출발한 그를 보십시오. 어린아이와 같이 여러분, 가나안 땅이 무슨 장난입니까? 갈대아우르에서 가나안 까지 얼마나 먼곳에 긴 세월을 가야 되는데 내 전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 말 한마디에 하나님 음성을 듣고 그는 보따리 싸서 아내 데리고 갈디아우르를 떠난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2절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이와 같이 하나님 말씀 한마디에 그는 절대로 믿고 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달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므로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 알아야 믿고 순종했다면 믿고 순종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우리가 다 알아요? 못 알아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바라보라고 해서 또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본 것입니다. 그가 가나안 땅에 왔었을 때 조카 롯은 그를 떠나고 나이는 많은 아브라함이 외롭게 객지에 남아 있을 때 하나님이 하루 그를 불러 서서 높은 언덕으로 올라오라고 하시고 난 다음 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아브라함은 바라보았습니다. 동서남북을 쭉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하기를 네 눈에 보이는 이 땅을 내가 네게 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보는 땅을 주겠다. 안 보이는 땅을 주겠다고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네 눈에 보이는 땅을 네게 주겠다.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여러분 그러므로 바라봄의 법칙이란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가 항상 마음으로 잘못된 것을 바라보면 잘못된 것을 상속을 받게 되고 잘된 것을 바라보면 잘된 것을 상속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에 물린 사람을 위해서 놋뱀을 만들어 높이 달아서 놋뱀을 바라보라 했던 것입니다. 놋뱀을 바라보고 병 고침을 받는다고 믿은 사람들은 다 고침을 받았지만 바라보지 않은 사람은 다 죽은 것입니다.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치료가 온 것입니다. 예수님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자는 다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우리에게 위대한 생명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으로라도 매일같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은 나를 바라보십시오. 영혼도 못되고 범사도 망하고 병들고 박살난 나를 생각하고 바라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바라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15장 5절에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바라보고 85세 노인을 바깥 어두운데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헤아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85세가 되어 자식이 없어 무자한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밤중에 나와서 별들을 바라보고 헤아려라. 네 자손이 저 별들처럼 많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인 것입니다. 이렇게 바라보는 것이 인생의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 눈 가지고 뭘 바라봅니까? 마음으로 무엇을 바라봅니까? 잘못된 것을 바라보면 잘못되고 잘된 것을 바라보면 잘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왕 바라볼 바에야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모습을 바라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의 셀프 이미지가 어떤 것입니까? 자화상이 어떤 것입니까? 망한 자화상입니까? 가난한 자화상입니까? 실패한 자화상입니까? 내 자화상은 성공하고 승리하고 축복받은 하나님의 백성 된 자화상을 가지고 바라보면 또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을 닮은 자는 아브라함과 같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믿었습니다.
로마서 4장 18절로 22절 다 소리 내어 읽으십시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아브라함은 믿을 수 없는 중에 믿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인 것입니다. 턱도 없는 소리다. 어림도 없다는 그런 가운데도 아브라함은 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바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이 배짱 좋은 믿음을 우리도 가져야 돼요. 아브라함은 간을 배밖에 내놓고 믿었어요. 망하면 망하리다. 죽으면 죽으리다. 그는 그런 믿음으로 믿었으니 오늘날 하나님이 그런 믿음을 발견한다면 큰 역사를 베푸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내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고 탄식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약아서 아브라함처럼 무턱대고 믿지를 않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입으로 말을 했습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고 하나님이 이름을 고쳐 주셨을 때 그대로 따라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고 하지 않고 아브라함이라고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라. 이제 자기 이름을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조상이라는 이름을 바꿔서 입으로써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게 한 것입니다.
창세기 17장 15절로 16절에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사라라는 말은 여러 민족의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어린 아기가 없는 자기 아내를 보고 여러 민족의 어머니라는 이름을 부르게 한 것입니다. 말을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건방지다고 사람들에게 욕을 얻어먹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허풍쟁이라고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말을 긍정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말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나중에 가나안 땅을 다 선물로 받았으며 자식 이삭을 얻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거기에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4. 신앙생활의 갈등
그러면 우리가 이런 것을 바라볼 때 우리 신앙생활에 자연적으로 갈등이 생깁니다. 우리가 영혼이 육체 속에 사니까 영혼 따로 놀고 육체가 따로 놀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마음 따로 놀고 몸 따로 놀잖아요. 그러면 굉장히 갈등이 있잖아요. 한 가정에도 남편 따로 놀고 아내 따로 놀면 가정에 분쟁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가 된다는 것이 힘들지요. 육의 눈과 영의 눈이 있어서 육의 눈이 보고 안돼, 없어. 큰일이야. 영의 눈은 하나님을 믿으니 괜찮아.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해. 그러면 내속에 육의 눈과 영의 눈이 서로 보고 싸우는 것입니다. 육의 눈은 영을 보고 '너 잘못 봤다.' 영의 눈은 육의 눈을 보고 '네가 잘못 봤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인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러나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아들이고 말씀을 읽을 때 아멘, 할렐루야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몸에 육의 눈이 있고 영의 눈이 있으니 갈등이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신앙에 늘 갈등이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또 마음에 있어 갈등을 하는 것입니다. 육의 생각은 영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영의 생각은 육의 생각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5절로 7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그런데 세상에 내 한 몸에 육이 있으니 육의 생각이 따로 있고 영이 있으니 영의 생각이 따로 있어 이것이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생각을 따라갈지 몰라서 갈팡질팡 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적인 생활인 것을 우리가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육신의 감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서로 대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각으로 느끼는 것은 하나님 말씀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감각은 내가 아직 몸이 아프다고 하는데 성경은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네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현재 어렵고 생활이 어려운데 성경 말씀은 십일조와 헌물을 들여 하나님 창고에 양식이 있게 하고 하나님이 쌓을 곳이 없도록 붓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육신의 감각과 영적인 생각, 말씀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지체 속에는 다른 법을 즐거워하기 때문에 서로 투쟁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영의 말과 육의 말이 또 있는 것입니다. 우리 혀가 새치 혀지만 육신의 말을 할 때가 있고 영의 말을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말을 하면 우리가 듣는 사람에게 낙심을 주고 우리도 낙심하게 되고 영의 말을 하면 격려와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8절로 10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한입에서 찬송도 나오고 저주도 나오고 긍정적인 말도 나오고 부정적인 말도 나오고 이긴다고 하기도 하고 진다고도 말하고 산다고 하고 죽는다고도 말하고 이 새치 혀가 온갖 장난을 다 하니까 우리 마음에 괴로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갈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이 갈등에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갈등이 없다고 하는 사람 없어요. 다 있어요. 여러분 50년 목회한 저의 마음도 어떤 일을 당할 때마다 언제나 육의 사람, 영의 사람, 육의 눈, 영의 눈, 육의 생각, 영의 생각이 들어와서 씨름을 하고 갈등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이겨내면 신령한 생활과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5. 승리하는 신앙생활
우리는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 것입니까? 생각이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육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을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육의 생각이 어떻게 부정적인 말을 하더라도 영의 생각을 따라서 우리가 마음을 훈련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영의 생각은 말씀을 따라서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새것이 되었으므로 새로운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따라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따라서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 된 것을 생각해야 되고 거룩하고 의롭게 된 것을 생각해야 되고 치료받는 것을 생각해야 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것을 생각해야 되고 영생복락을 얻은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은 자화상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택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된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강제로라도 영적인 생각을 하도록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가 긍정적으로 하나님을 따라 생각하겠다고 하면은 성령이 우리를 도와 줘서 생각이 달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꿈이 없으면 자기 마음대로 행해요. 마음속에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언제나 크고 적은 꿈을 품고 사는 것이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나에 대한 꿈, 남편에 대한 꿈, 아내에 대한 꿈, 자식에 대한 꿈, 나라에 대한 꿈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나라가 혼돈하고 무질서하고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을 바라볼 때 하나님 앞에 좋은 꿈을 가집니다. 하나님이 이 나라에 계시고 1,200만 성도가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신다. 하나님은 악을 변하여 선이 되게 하시고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종국에는 잘될 것이다. 좋아진다는 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꿈을 저도 가지고 여러분도 꿈을 그렇게 가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소원이라는 말이 바로 꿈인 것입니다. 꿈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그 꿈을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나쁜 꿈을 갖지 말고 좋은 꿈을 항상 마음에 가지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승리하는 신앙생활의 비결인 것입니다.
이근미 씨가 최근 출간한 「플러스 1퍼센트(+1%)로 승부하라」는 책을 요사이 제가 재밌게 읽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전 세계 사회 각계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전 세계 커피 전문점 매출 1위를 달리는 스타벅스의 회장 하워드 슐츠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대한 기업을 세우고자 한다면 위대한 꿈을 가질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작은 꿈을 꾼다면 작은 것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꿈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나는 작은 꿈 대신에 큰 꿈을 꾸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계 66개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킨 리더십 매니지먼트 인터내셔널 (LMI)의 창립한 폴 마이어는 "당신이 간절히 바라고 마음속에 바라고 꿈을 꾸고 깊이 믿고 행동하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음에 꿈을 꾸고 믿음을 가지고 행하면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 입을 넓게 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가 크고 위대한 꿈과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도하고 나가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살아야지 감각으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느낌으로 살거나 감각으로 살거나 환경을 바라보고 요동하면 안 되고 내 마음에 믿었으면 줄기차게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번 믿었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믿어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긍정적인 말을 하고 살아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언 18장 21절)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달렸다. 여러분 우리가 말을 늘 하고 살지만 말에 대한 힘은 너무나 등한시 하고 사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일이 혀에 달렸다고 말하니 이것 보통일이 아닌 것이 아닌 것입니까? 긍정적인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이 얼마나 큰 힘이 있는가를 연구한 여러 실험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의 연구가 에마토 마사루는 말 한마디의 효력을 '밥'을 가지고 실험을 했는데 유리병에다가 새로 밥을 지어서 한 유리병에는 새로 지은 밥을 넣고 겉에다 '감사합니다'라는 라벨을 붙였습니다. 다른 유리병에는 그 밥을 넣고 뭐라고 했냐면 '망할 자식'이라는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초등학생 두 사람에게 매일 아침 매일 점심, 매일 저녁에 이 유리병을 바라보고 한 병을 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한 병은 "망할 자식, 망할 자식" 그렇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 결과는 '감사합니다'고 자꾸 말을 불러준 그 병의 쌀은 아주 멋진 누룩이 되어서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데 망할 자식이라고 한 그 병에 있는 밥은 썩어 가지고 고약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잔뜩 피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한 달 만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은 밥은 발효가 되어 향기로운 누룩 냄새가 나고 '망할 자식'이라는 말을 들은 밥은 형편없이 부패해서 검은색으로 악취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말의 힘은 이처럼 엄청납니다. 그런데 자기 자식을 보고 "이 망할 놈의 자식아 이 못난 놈의 자식아, 이 죽일 놈의 자식아" 그러면 썩어서 부패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늘 생각나는 것은 초등학교 때 내 아랫집에 있는 어머니의 말입니다. 내 친구를 보고 말만하면 "이 혀 빠질 놈아, 이 빌어먹을 놈아, 이 범 물고 갈 놈아." 그렇게 욕을 해요. 그러니 그 애가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망해서 죽었습니다. 자식을 보고 왜 그런 말을 합니까? 그때 화가 난다고 그런 말을 하겠지만 그 말이 얼마나 효과를 발생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말에 있는 것입니다. 한 달 만에 똑같은 밥이 하나는 향기로운 누룩이 되고 하나는 썩어 냄새가 나는 고약한 밥이 되는 것처럼 말이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싸움 할 때도 남편보고 독한 욕하지 마세요. 남편이 잘못되면 여러분 자신이 잘못 되는 것 아닙니까? 밉더라도 자꾸 좋은 말 해주세요. 부인에게도 좋은 말, 남편에게도 좋은 말, 자식에게도 좋은 말을 해주십시오. 말이 나가서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말이 나가서 창조적인 권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잠18:20~21)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팔자소관을 말하지 말고 오늘부터 말에 조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이 훌륭한 신앙을 건설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의 육은 삼차원의 감각적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사차원 이상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육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삶과 영혼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삶은 확연히 틀린 것입니다. 육은 삼차원의 세계에서 지배를 당하고 살기 때문에 창조적인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영은 사차원의 세계를 통해서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므로 없는 것을 있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기적을 행하는 역사를 하나님을 통해서 베풀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 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다 삼차원에 살지 말고 예수 믿고 거듭나서 사차원의 세계 속에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꿈꾸고 하나님의 생각을 통하여 말하고 하나님의 생각을 통하여 믿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여 우리가 운명이요, 팔자라고 해서 인생을 환경에 내맡기지 말고 운명과 환경과 팔자를 바꾸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변화의 역사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 환경에서 오지 않는 것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운명을 다스린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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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6 데살로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뜻 살전5:16~18  조용기 목사  2009-12-29 2174
2625 창세기 주어진 삶과 나의 태도 창50:15~21  조용기 목사  2009-12-29 2255
2624 요한복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 요9:1~7  조용기 목사  2009-12-29 2478
2623 고린도후 예수님의 죽으심을 짊어진 사람들 고후4:10  조용기 목사  2009-12-29 1657
» 로마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롬4:17  조용기 목사  2009-12-29 2955
2621 고린도후 은혜의 하나님 고후13:13  조용기 목사  2009-12-29 2218
2620 누가복음 잃어버렸다가 찾았으며 죽었다가 살아남 눅15:11~24  조용기 목사  2009-12-29 2153
2619 요한복음 니고데모의 고민 요3:1~17  조용기 목사  2009-12-29 8125
2618 마가복음 믿으려고 해도 안 믿어질 때 막9:17-24  조용기 목사  2009-12-29 2775
2617 창세기 사람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3:1-9  장윤재 교수  2009-12-28 2168
2616 요한복음 의미의 반석 요1:1-18  길희성 형제  2009-12-28 1978
2615 역대하 이유를 모르고 어려움을 당할 때 대하14:9-15  김필곤 목사  2009-12-28 2191
2614 역대상 승리 뒤에 오는 실패를 통해 얻는 교훈 대상13:13-17  김필곤 목사  2009-12-28 2208
2613 요나 은혜로 사는 인생 욘4:1-11  김필곤 목사  2009-12-28 3508
2612 누가복음 아름다운 기억 하나 눅15:11-24  김필곤 목사  2009-12-28 2105
2611 에스겔 살아야 할 사람, 살려야 할 사람 겔37:1-10  김필곤 목사  2009-12-28 2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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