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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

요한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461 추천 수 0 2009.12.29 00: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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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9:1~7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8. 7. 20. 주일 4부 설교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시각장애인 한 사람이 동냥을 합니다. “한푼 주십시오. 한 푼 주십시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주님! 이 사람이 장님이 된 것은 자기 죄가 많아서 그렇습니까? 부모가 죄가 많아서 그렇습니까?”당연히 그때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병이 들면은 자기 죄 때문에 그렇던지 부모의 죄 때문에 병이 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전통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아니야. 이 사람의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깜짝 놀랄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 중에도 체험하는 많은 크고 작은 고난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위한 무대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촛불을 발명을 해서 아주 밝은 촛불을 만들었다고 큰소리 하면은 그 촛불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입니까? 어두울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밤이 와야 캄캄할 때 촛불을 켜야 효과가 있지 대낮에 촛불을 켜봤자 아무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촛불의 밝기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는 밤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음료수를 만들어서 코카콜라 굉장히 마시면 시원하다고 하는데 그 시원한 것을 언제 체험시킬 수 있습니까? 목이 마른 한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고 난 다음에 갈증이 났을 때 마셔보면 시원한 것을 깨달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음식을 먹으면 배가 든든하고 힘이 생깁니다. 그러면 배가 부르고 힘이 있는 사람에게 먹여봤자 소용이 없어요. 헐벗고 굶주려서 배가 고프고 허기증이 난 사람에게 그 음식을 먹여봐야 배가 불러지고 튼튼한 것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어떻게 알아요? 등 따수고 배부르고 몹시 평안한데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이 증거될 수가 있어요? 병든 자라야 의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배고픈 자에게 밥이 필요한 것입니다. 목마른 자에게 물이 필요한 것이고, 어두운 곳에 빛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에게 고난이라는 무대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하나님이 나타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 속에 많은 고난이 하나님이 무대를 허락하셔서 다가왔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고난을 가져오지 않아요. 그렇게 말합니다. 마귀를 허락해 주어서 고난을 만들게 하시는 이는 배후에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본론>
1. 출애굽 때 홍해가 갈라진 예
첫째로, 출애굽 때 홍해가 갈라진 예를 보면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홍해를 건너게 할 때 홍해 저 윗편에는 갈대의 밭이라고 있습니다. 물이 얕은 갈대숲이 많은 갈대의 바다가 있습니다. 그 홍해수 윗편으로 인도해서 갈대의 바다를 그냥 맨발벗고 건너갈 수가 있습니다. 그랬더라면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날 필요도 없고, 그런 요란스러운 역사가 일어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 홍해 저 북편에 갈대의 바다를 통해서 건너가게 하지 아니하고 정 가운데 아주 홍해가 넓고 깊은 곳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구태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와 같이 홍해가 창창하게 흐르고 멀고 깊은 곳으로 인도했을까요? 그래야 하나님이 홍해수를 가르는 기적을 나타낼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홍해의 정면 아득히 깊은 곳을 택하여 그 홍해 가에 진을 치게 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절로 2절에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모세가 마음대로 홍해수 가운데로 이끌어 온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데리고 와서 장막을 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배를 타고 건널 수도 없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건널 수도 없습니다. 물이 굉장히 깊고 저쪽 건너편과 이쪽에 굉장히 거리가 멉니다. 이러므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그곳에 와서 천막을 치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래야만 하나님이 홍해수를 가를 때 정말 하나님이 역사한 표적이 나타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연히 그렇게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대를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다음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사 대군을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게 한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8절로 9절 우리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야훼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바로의 왕을 강퍅하게 해서 그 대군을 거느리고 이스라엘 장막친 그 홍해가로 습격해 오도록 역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무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사람의 힘으로 못건널 홍해가에 진치게 하시고 난 다음 바로의 그 다음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해서 대군을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해 오도록 하나님이 섭리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이 구원을 베풀어야 진짜 구원이 되고 그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천년만세로 우리에게 읽혀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아 알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로 14절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무장이 되어 있지 않고 오합지졸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가에 있는데 애굽의 바로가 대 군대를 거느리고 공격해 오니 속수무책입니다. 절대 절명의 위기입니다. 큰일 났습니다. 대항할 군대도 없고 무기도 없습니다. 이젠 다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땅을 치며 “모세야 애굽에 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곳에 데리고 와서 장례 지내게 하느냐”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럴 때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엄청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무대를 만들어 놓으시고 당신의 영광을 나타낸 것입니다. 밤이 오게 하고 빛을 비취게 한 것처럼 배가 고프게 하고 밥을 주셔서 밥이 중요한 것을 알게 한 것처럼 목마르게 하고 물을 주어야 물의 중요함을 깨달아 아는 것처럼 그들이 적군에게 포위가 되고 앞을 건너갈 수 없는 바닷가에서 하나님이 기적을 행해야 그게 진짜 기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 말하기를 "그것은 병주고 약주는 것 아닙니까?" 맞았어요. 병이 있어야 약이 낫는지 안 낫는지 알 수 있잖아요. 병이 있어야 약의 효과를 볼 수 있잖아요. 환경에 고난이 다가와야 고난을 해결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우리의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무대라는 것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21절로 22절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야훼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라
그런데 애굽 사람들이 "야 이스라엘 백성이 갈라진 바다로 건너가는 것 보니 우리도 따라가자"고 그 대군이 바다 안으로 들어올 때 바닷물이 덮쳐서 한 사람도 남김없이 물에 빠져서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큰 기적을 행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에 맨 가운데에 바닷물이 깊은 해변가에 천막치게 하고 애굽의 바로왕으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그들을 공격해 오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한 장면을 만들고 난 다음 바닷물이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땅을 건너게 하고 난 다음 다 건넌 후에 애굽 사람들이 뒤에 따라오니 바닷물이 덮쳐서 다 죽게 하고 이 기적이 얼마나 큽니까? 역사적으로 영원히 기록에 남아있는 기적 아닌 것입니까? 이러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바닷물을 가르는 하나님을 믿고 알 수 있게 된 것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고난이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미국의 석유 왕 록펠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좋은 기회가 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가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두 걸음 다가오십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충만히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고난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난을 당했을 때 하나님을 등지고 멀리 나가면 고난은 고난대로 있고 해결할 하나님도 안계시고 절단이지요. 고난이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기 위해서 무대를 만드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영접하고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이 그 무대에서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 고난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경제적인 고난에다가 사회적인 혼란, 여러가지 어려움, 북한의 도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또 촛불시위 여러가지 어려운 환난이 다가온 것입니다. 이 고난 동안에 우리가 해야 될 것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영광을 나타낼 무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을 찾지 않고 우리가 원망, 불평, 탄식하면 고난은 고난대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우리를 멀리 떠나 계시면 모든 것이 절망인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 다가올 때 고난을 영광으로 변화시킬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고난을 무대로 삼아서 그 영광을 나타내는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때에 우리 한국의 교회들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나라가 시험과 환란 속에 빠지고 고통에 처했으니 하나님이 찾아와서 영광을 나타내 주시옵소서. 악을 변하여 선으로 만드시는 하나님, 이 악이 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는 하나님 모든 어려움과 고난이 합동하여 유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좋은 하나님 좋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과 능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문제의 해답으로 언제나 우리에게 찾아와 주시는 것입니다.

2. 나사로의 부활에 관하여
둘째로,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나사로의 부활에 관하여 알아 보십시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을 때 누이들이 예수님께 연락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요단강 저편에 있었기 때문에 “당신의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으므로 와서 고쳐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예수님은 그 부탁을 받고도 이틀 동안이나 있는 곳에 계시면서 베다니로 오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나사로가 죽도록 허락해 놓으신 것입니다. 병든 나사로를 구해 달라고 요단강 저 편에 계신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기별 했으나 일부러 이틀 더 머무르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6절로 7절에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왜 예수님께서 왜 이틀을 더 머물고 계셨습니까?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왜, 죽어야 부활시키는 기적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산 사람보고 "살아나라. 살아나라" 하면은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살아있는 뭘 살아나라고 합니까?" 죽은 사람보고 살아나라고 해야 살아나서 기적이 일어나지. 주님이 기적을 행하시기 위해서 나사로가 죽도록 기다리시며 죽도록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4절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보십시오. 나사로가 죽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무대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이해할 수 없었지요. 큰 불행이요, 큰 고통인줄 알고 탄식하고 통곡하고 먹지도 못하고 기절초풍을 할 정도가 되었는데 예수님은 그렇게 되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어둠이 와야 빛을 비취듯이 죽어야 살리는 역사를 베풀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렸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는 죽은 사람이 있어야 되고,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렸기 때문에 예수님이 훗날에 만인을 부활시킬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14절로 15절에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도록 한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 안믿는 사람도 죽을 병에 걸려서 모든 의학이 다 필요 없을 때 회개하고 돌아오면 주님이 고쳐 주십니다. 그러면 그 사람 예수 안믿게 되나요? 반드시 믿지요. 사업이 망해서 완전히 빚더미에 올라 앉아 헐벗고 굶주리고 절망에 처했을 때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서 주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그 사람 평생에 주의 영광을 바라보고 찬미하고 감사하고 주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시련이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과 환난과 시련과 고통은 하나님을 찾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무대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무대가 바로 우리에게 다가온 고난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38절로 44절에 좀 길지만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산사람 데리고 주님께서 구주인 것을 증명할 수가 없어요. 죽은 사람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사람을 살려내니까 그는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주인 것을 증명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홍해수가 갈라지게 한 것도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위대한 구원의 하나님인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홍해 가운데 못 끝날 처소에 이스라엘 백성을 진을 치게 하시고 애굽 군대를 와서 공격하도록 허락하시고 주님이 기적을 행하셔서 만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처럼 나사로가 죽도록 기다려서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도록 만들어 놓고 난 다음에 주님이 찾아와서 나사로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려 놓으시니 주님이 구주이신 것과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 만천하에 증명이 되고 오늘날도 우리가 이 기사를 읽고 마음에 힘과 용기를 얻고 큰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고난의 무대,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기 위함
셋째로, 고난의 무대는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기 위한 것이라고 성경에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1절 한번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있는 자가 항상 죽은 것과 같은 고통에 넘어지는 이유는 예수의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아무리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힘있고 복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나타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죽어줘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생활과 환경에 고통이 다가와야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서 이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가오는 당하는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과 고통이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 온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더 깨달아 알게 하고 더 큰 은혜를 받고 더 큰 복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깨달아 알수록 더 큰 복이 되고 하나님을 체험 할수록 더 큰 은혜가 되고 하나님과 동행 할수록 더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고 더 깨닫고 하나님의 더 은혜 깊은 속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 영혼이 정말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한없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인데 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고난과 시련을 통하지 않고는 없단 말입니다. 등 따수고 배부른 사람,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아주 등따수고 배부르고 평안한 사람 새벽기도 나오는 것 보았습니까? 아무리 새벽기도 나오라고 해도 "아이고 좀 더 자구요. 피곤해서 못나와요." 그런데 고통이 다가오면 피곤이 어디 있습니까? 밤새도록 고함을 쳐도 피곤하지도 않습니다. 고난이 다가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배우가 아무리 연극을 잘해도 무대없이 어떻게 연극을 하는 것입니까? 무대를 먼저 만들어 놓고 난 다음에 배우가 와서 연극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아무리 권세와 능력과 영광이 많아도 나타나기 위해서는 무대가 만들어져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인데 그 무대가 바로 여러분이요, 여러분의 생애가 하나님이 나타나는 무대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영광을 나타나기 위하여 우리에게 무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세월이 흐르고 난 다음 뒤를 돌아보니 전에 모르던 것이 많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제가 17살 때 폐병 걸려 죽게 되었을 때 나에게는 엄청난 시련이었었습니다. 한참 청운의 꿈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며 앞날을 향하여 달리다가 나만 폐병에 걸려서 피를 토하고 쓰러져서 낙오자가 되고 6.25사변 난 이후에 너무나 적변하는 사회 현상이라 치료도 받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도 할 수도 없고,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니 나에게 절망이 얼마나 엄청났습니까? 그러한 절망이 아니고는 우리 집에 두터운 불교 집안의 그 벽을 뚫을 수가 없어요. 절대로 예수 믿는 것 허락되지 않습니다. 예수쟁이가 발걸음 한걸음도 집안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런데 내가 죽게 되니까 별도리 없지요. 완전히 죽게 되니까 그때야 "하나님 날 살려 주십시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와서 나에게 전도하게 되고 성경은 전달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때는 한없는 불행이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서 이제 73살이 되어서 내가 돌아보니 가슴에 환하게 보여요. 하나님이 다 작정 하셨군 “놀랬지? 깜짝 놀랬지?” 주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 보면 그때 내가 폐병 안 걸렸으면 예수 믿게 되지 않고 우리 집안 식구들도 다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고 내가 목사도 안되고, 천하만국에 나가서 복음도 못 전했을 것인데 그때 폐병 들렸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데 그 폐병을 들리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은 무대를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무대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저를 고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은혜를 받아서 신학교에 들어오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종이 되고 말씀을 증거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것입니까? 세월이 지나가 보면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난 당할 때 그때는 원망스럽고 불평하고 탄식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뒤를 돌아보면 '야~ 하나님이 나에게 큰 복을 주시려고 영광을 나타내셔서 나를 만나고 나를 더 깊이 믿을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구나!'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주님께서는 고난당하신 것은 다시 더 살리기 위해서 더 큰 영광을 위해서 죽음을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4절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우리를 다시 살리는 역사를 베풀기 위해서 우리에게 여러가지 죽음을 체험하게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고난당할 때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고난당할 때 마음에 확신과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 고난 당하는 것이 우연히 당하는 것도 아니고 날 죽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한 무대를 만든다는 확신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큰 역사를 베풀기 위해서 하나님이 고난을 준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오면 하나님이 나타날 무대를 만든다는 확신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당할 때 이러한 확신이 있으면 주님께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처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크고 은밀한 일을 하나님이 다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비밀을 하나님이 딱 포켓트에 넣고 계시면서 우리가 부르짖고 고통 중에 외칠 때 그 카드를 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당하는 고난과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당하는 고난은 틀린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당할 때 마음의 불신과 불순종의 돌문을 옮겨 놓아서 되는 것입니다. “왜 내가 고난당하느냐. 왜 하나님이 나를 버리느냐. 왜 내게 고통을 갖다 주느냐. 하나님이 안살아 계신가보다. 아이고 믿음 다 포기해 버리자.” 이렇게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고난당할 때 우리 마음의 불신앙과 불순종의 돌문을 옮겨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사로의 무덤에 돌문을 옮겨 놓듯이 우리 마음에 불신앙과 불순종의 돌문을 옮겨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는데 그때 고난 당할수록 새벽기도도 나오고 철야기도도 나오고 주일예배 드리러 나오고 기도원에 가서 부르짖어 기도하고 "하나님이시여 빨리 나타나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고난이라는 무대를 나에게 만들어 놓았으니 이제 하나님이 연출하여 주시옵소서. 영광을 나타내 주시옵소서." 부르짖고 찾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대를 만들어 놓으시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도록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무대에 출연해서 크고 작은 능력을 나타내서 온 영광을 받으시고 박수갈채를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고 마가복음 11장 23절처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된다”믿음의 역사를 베풀면 그대로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휴 나는 믿음이 약하고 없는데요." "또 다시 그 말을 하십니까?" 겨자씨 한알 만한 믿음만 있으면 산들에 명하여 바다에 던지라 했는데 아무도 겨자씨 보다 적은 믿음 가진 사람 없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믿음을 주셨다고 말씀했는데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겨자씨 보다는 큰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다는 소리는 다시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팔을 주셨는데 팔이 없다고 안 쓰면 그냥 옆에 달려 있지요. 달려있는 팔이 되지 말고 팔을 주신 것을 알면 팔을 들고 쓰면 쓸 수 있지요. 믿음을 주신 것을 알고 그 믿음을 사용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감사와 찬양하며 기적을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과 동시에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감사하고 찬양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없지요. 하나님이 안계신데 무슨 기적이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 오실 때는 보통 찾아오실 때도 있지만은 기적을 타고 찾아 오실 때가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킬 것을 기대하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우리가 고난 당할 때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을 부르고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6절에 “사람이 야훼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너무 조급하게 부르짖지 말고 잠잠하게 기다리면서 기도하고 감사하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30장 18절에도 “대저 야훼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의 기다림이 얼마나 간절합니까? 저는 어릴 때 우리 집이 언양시내 하고는 멀었습니다. 장날 어머니가 장에 갔다가 오시면 어머니 기다린다고 길에 나가서 소나무에 올라가서 내내 늘 저 멀리 바라봅니다. 저 멀리서 여자만 나오면 '아이고 우리 어머니인가 보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도 어머님 걸음은 우리가 잘 알아요. 많은 여자들이 길을 걸어와도 "저것은 아니야. 저것은 아니야." 내 동생들이 "아이고 저기 어머니 오시나보다." "아니야. 어머니 아니야." "왜?" "어머니 걸음걸이가 내 머릿속에 꽉 박혀 있거든. 어머니가 엉덩이를 실룩실룩 흔들면서 걷거든... " 어머니 걸음걸이를 보면은 “아이 어머니다. 우리 뛰어 가자.” 어머니를 향해 뛰어 갑니다. 그 기다리는 것 우리 형제들이 모여서 어머니 오기를 그렇게 기다린 것은 어머니가 시장에 갔다 올 때는 눈깔사탕이라도 사 오시거든요. 그것 받아먹으려고 그렇게 기다리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이제 어머니를 기다리는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기다려야 눈깔사탕도 얻어먹지 안 기다리는 자에게는 눈깔사탕도 안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해서 기다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어려움 당하실 때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며 잠잠히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찾아오실 때 큰 영광을 나타내시고 그렇게 마음이 반갑고 기뻐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오래전 영국 사이스 웰스의 한 작은 탄광촌에서 갱이 무너져서 14명의 광부가 갱 속에 갇혔습니다. 그래서 이 광부를 찾는다고 바깥에서 그 무너진 흙더미를 뒤지는데 어디에 갇혔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 나흘 동안 파헤쳤으나 광부가 어디 매몰되었는지 알 수가 없어 포기하려고 하는데 조용한 노래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귀를 기울여 보니까 "예부터 도움 되시고 내 소망 되신 주. 이 세상 풍파 중에도 늘 보호하시리. 예부터 도움 되시고 내 소망 되신 주. 일평생 지나갈 동안 늘 보호 하소서" 찬송가 438장을 부르는 찬송가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래서 그 찬송가 소리를 통해서 들리는 곳으로 파헤쳐 들어가니까 나중에 광부들을 발견했는데 그 사람 14명이 하나님 앞에 기다리면서 나흘 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물도 못마시면서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그들이 기다린 것은 다른 구조원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와줄 것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면서 기다렸는데 그 찬송소리가 바깥의 구조원들을 이끌어서 그들을 구원받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한사람도 남김없이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고통 가운데 계십니까? 감사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기적을 기다리십시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도 멸망 받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눈동자처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감사하며 기다리는 자를 주님께서 때가 늦지 않게 찾아와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원치 않으시고 하나님은 미쁘사 시험 당할 때 피할 길을 내사 우리로 능히 감당케 하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고난을 주실 때라도 감당치 못할 고난 안주십니다. 우리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고난 주셔서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기도하고 기다리고 부르짖어서 하나님 만나서 더 큰 축복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좌우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무슨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야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식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야깃 거리를 들어서 우리가 별 볼일 없는 것입니다. 직접 만나야 돼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아버지를 만나야 돼요. 그 만나는 체험이 바로 고난을 통해야 만날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난이란 왜냐, 내가 깨어져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거든. 내 고집대로 내 중심대로 섰을 때는 하나님은 만날 수가 없어요. 내가 깨어지고 내 음성대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내 고집 대신에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이와 같은 변화가 다가와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인데 그런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시험과 환란을 통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험과 환란을 통하여 완전히 멸망당하도록 내버려 놓지는 결코 아니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중국 양주에서 선교할 때의 일입니다. 선교사들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양주의 학자들과 일부 군인들이 들고 일어나서 그들에게 돌맹이를 던지고 선교사들을 죽이고 큰 시련과 환난이 다가온 것입니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영국에 전파되어 결국 국가 간에 큰 문제로 확대 되었습니다. 게다가 영국 정부에서는 허드슨 테일러를 골칫거리로 생각하고 오히려 정부에서 허드슨 테일러를 박대하고 영국에서 보내는 선교헌금도 못보네게 해서 큰 시련에 빠졌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200여명의 선교사를 거느리고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데 재정적으로 심각한 문제에 걸려서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최대의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서 떠나가자. 우리 철수하자”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러다가는 굶어 죽겠다.” 그러나 허드슨 테일러는 그때 사람들에게 호소하거나 탄원하지 아니하고 사무실 문을 닫고 엎드려서 주님께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구차한 변명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가서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어려운 문제를 사람으로 해결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부르짖는데 영국의 고아의 아버지 죠지뮬러 목사님이 2천 파운드나 되는 큰돈을 격려의 편지와 함께 보냈었습니다. 아주 어려울 때 2천 파운드나 되는 거대한 돈이 와서 그 문제가 해결되고 그들은 죽음에서 건져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그동안에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에서 일하는 것을 모르던 영국의 많은 교회 성도들이 이것이 신문에 나고 사람들의 입에 입을 통해서 소문이 나자 허드슨 테일러가 영국에서 나가서 중국에서 내지선교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회가 모아지고 헌금이 모아지고 전에 보다도 더 많은 돈이 모아져서 화가 변하여 큰 복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드슨 테일러에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 큰 시련을 겪게 했는데 허드슨 테일러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의지하니 하나님의 고난의 무대를 만드시고 난 다음에 영광으로 나타내 주셔서 전에 하던 선교사역 보다 더 큰 선교사역을 하고 더 많은 하나님의 역사를 베풀 수 있는 자원을 얻을 수가 있었다고 그는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하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시험을 당할 때는 피할 길도 예비하셔서 우리로 능히 감당케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결코 여러분의 삶 속에 다가오는 고난으로 인하여 낙심하지 마십시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몰라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여러분 나타나기 위한 무대를 만드신 것을 아시고 고난당하거든 하나님이 무대를 만드시는 분이요, 또 나를 만나기를 원하시는 분이요, 날 만나게 도와주옵소서. 그렇게 기쁘게 하나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고난 따라 하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언제나 고난이 오면 하나님이 따라 오시고 체험이 오면 환난이 오면 뒤에 하나님이 따라 오셔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나타내 주시고 영광을 보여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우리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고난은 그 시간에는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이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무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도와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많은 사람들이 고난 당하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돌아서므로 하나님도 잃어 버리고 고난 속에 축복도 잃어버리고 말 때가 많습니다. 결코 고난 다가올 때 원망, 불평, 탄식하지 말게 도와 주시 옵시고 깨어지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찾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나타나시면 더 나은 영혼의 축복과 생활의 축복과 승리가 다가온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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