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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07: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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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3·07·04
우리는 때로 우리가 걸어 온 길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특히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가 어떠했는지를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되며, 현재 내가 받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을수록 감사가 뜨겁고 풍성해집니다.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는 일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당하는 어려움과 하나님의 은혜
본문에서 시인은 여호와의 선하심과 그 인자하심을 인하여 그 분을 찬양하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대해서 몇 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내용들은 바벨론 포로귀환이라는 역사적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또 많은 사람들은 이 시편이 보다 보편적인 인간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주장합니다. 여기 나오는 내용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일들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은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됩니다. 본문은 과거에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하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 중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도와주시고 건져주셨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언급된 내용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여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한 경우입니다(4,5절).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일반적인 어려움을 나타냅니다. 두 번째로 언급된 것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이는 것입니다(10절). 이것은 매우 절망적인 고통인데, 시인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존자의 뜻을 멸시한 것 때문이라고 말합니다(11절). 그래서 하나님께서 수고로 그 마음을 낮추신 것입니다(12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때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지만, 끝내 돌이키지 않으면 이렇게 큰 징계를 주십니다. 시인이 세 번째로 말하는 것은 두 번째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범죄한 것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병이 들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되어 죽음 직전에까지 이른 것입니다(17-18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다에서 배를 타고 다니는 중에 광풍을 만나 죽을 위험을 당하는 경우입니다(25-27절).
이러한 일들을 생각해볼 때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이 우리의 과거 인생 길에서 일어났던 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본문은 마치 우리의 지나온 일대기를 보여주는 파노라마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아왔습니까? 얼마나 기가 막힌 위기를 넘겨왔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광야는 거칠고 메마르며 쉴 곳이 없으며, 마실 물이나 먹을 것도 없는 곳입니다. 더구나 끝없이 펼쳐진 광야 사막에서는 길을 잃기가 쉽습니다. 사막에서 길을 잃으면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얼마나 막막하고 불안하고 두렵겠습니까? 인생은 광야와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광야 인생 길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대개 젊은 시절에 우리는 인생에서 방황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입시에 실패했거나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불안해 한 적이 있었습니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직장을 구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봉급은 고사하고 겨우 재워주고 먹여만 줘도 감지덕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불황이 와서 실직하거나 사업을 포기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도 있었습니다. 어떤 성도는 지금도 이러한 어려움을 당하는 중에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황량한 광야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며 주리고 목마른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어려움을 당할 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그 고통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6-7절)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렇게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인도하시고 거할 성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라"(8절).
말씀을 거역하고 고통을 당함
시인은 또 죄로 인하여 우리가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본래 사람은 죄 없이 창조되었습니다. 죄가 없을 때는 죽음이나 질병이나 고통이나 갈등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한 결과 이 모든 것들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평안한 삶을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범죄하면 이러한 것들이 점점 우리를 사로잡게 됩니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이렇게 범죄할 때 하나님께서 징계하십니다. "그러므로 수고로이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12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너무나도 무모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온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우리의 생과 사가 그 분의 말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극심한 고통을 당할 때는 사람이 그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고통 가운데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니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13-14절)
주일 아침에 교회에 나오지 않고 놀러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고구마 전도왕으로 유명한 김기동 집사님은 이런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날 아침 1부 예배 참석하고 놀러가자고 아내를 속이고는 곧장 스키장을 향하여 차를 몰았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아내의 말을 "아침부터 미쳤냐? 예수가 밥 먹여 주냐? 나만 믿어!"하고 무시했습니다. 마침 스키 타기 좋게 눈이 점점 더 많이 오고 있었습니다. 강원도 인제 부근에서 마주 오는 그랜저 승용차가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정면으로 충돌했는데, 설상가상으로 뒤에 따라오던 2.5톤 트럭이 그대로 들이받았습니다. 그 사고로 아내와 두 아이가 처참하게 다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신 없이 하나님을 부르면서 가까운 병원에서 응급처지를 받게 하고 서울로 후송하여 정밀 검사를 받게 했습니다. 마침내 뇌와 장기에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실신해 버렸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가족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큰 어려움을 당한 적이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거역한 그대로 갚으신다면 우리 중에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것보다 두려운 일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돌이켜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셔서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가벼운 채찍만 때리셨습니다. 때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게 하신 적이 있었을지라도 우리에게 이렇게 은혜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당신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얼마나 감사하고 있습니까?
범죄한 결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이렇게 두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범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성경은 그런 자들을 미련한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련한 자들은 범죄한 것 때문에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미련한 자는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곤난을 당하매 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 가깝도다"(17-18절) 이것은 범죄한 결과 병든 것을 가리킵니다. 병이 들어서 식욕도 없어지고 음식을 소화시킬 힘도 없어진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하고 강한 척해도 하나님께서 그를 치시면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만 합니다. 전능하시며 공의로우셔서 죄인을 벌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범죄한 결과 당하게 되는 고통의 특징은 극심한 심리적인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할 때는 그 죄를 회개하기 전에는 치유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죄와 병으로부터 회복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깨닫고 회개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가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20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을 풍성하게 주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당신은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십니까?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성도가 복이 있습니다. 그가 치유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네 번째 경우는 바다에서 당하는 위험한 일과 고통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인간에게 닥친 고통과 위험, 그리고 그러한 일들로부터 구원받는 것을 가장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23-27절을 봅시다. "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물에서 영업하는 자는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저희가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푹풍을 만나 성난 파도와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과 심리가 얼마나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습니까?
이것은 비단 바다에서 당하는 어려움만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인생의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폭풍을 만나 살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두려운 경우를 당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렸을 적에 동생을 목에 태우고 깊은 물 속에 들어갔던 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설마 하고 계속 들어갔는데 갑자기 입과 코가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멀리서 보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달려와 구해주시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동생과 함께 물에 빠져 죽었을 것입니다. 초보운전 시절에 빗길에서 앞차를 추월하다가 차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큰 사고가 날 뻔했던 일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렇게 아찔했던, 그야말로 죽음 앞에까지 갔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렇게 살아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극심한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곤경에서 부르짖을 때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28-29절)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평안히 목적까지 인도해주십니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30절)
우리가 큰 위험과 고통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지셔서 오늘 이렇게 평안하게 살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이러한 은혜를 입은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의 인생에서 일어났던 일들
이 모든 일이 우리 각자의 인생 길에서 일어났던 일들임을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이렇게 평안한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가 겪어온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수고와 노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위험한 일들을 당했습니까? 광야와 같은 인생 길에서 방황하며 앞길이 캄캄하기만 했던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던 일은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무섭고 무모한 일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범죄한 대로 갚으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오면서 당했던 사고는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꼭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더라면 과연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평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환난 중에서 기도하라.
혹시 지금 이와 같은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가 있다면 이번 감사주일을 계기로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공식이 나와 있는데, 그것은 곧 기도하는 것입니다. 6,13,19,28절에 같은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어려움 가운데서 건져주십니다.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기도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곧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혹시 회개할 것이 있다면 반드시 회개해야만 합니다. 회개할 것을 내놓지 않고 아무리 기도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반드시 해결해주십니다. 어려움 당하는 성도에게 이러한 회복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하라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하나님의 그 모든 은혜를 너무나 망각하고 지내지는 않았습니까? 시인은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절)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당신도 시인의 생각에 공감하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살아있을 수조차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이제부터 하나님의 이 모든 은혜를 잊지 않고 늘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가 걸어 온 길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특히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가 어떠했는지를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되며, 현재 내가 받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을수록 감사가 뜨겁고 풍성해집니다.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는 일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당하는 어려움과 하나님의 은혜
본문에서 시인은 여호와의 선하심과 그 인자하심을 인하여 그 분을 찬양하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대해서 몇 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내용들은 바벨론 포로귀환이라는 역사적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또 많은 사람들은 이 시편이 보다 보편적인 인간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주장합니다. 여기 나오는 내용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일들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은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됩니다. 본문은 과거에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하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 중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도와주시고 건져주셨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언급된 내용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여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한 경우입니다(4,5절).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일반적인 어려움을 나타냅니다. 두 번째로 언급된 것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이는 것입니다(10절). 이것은 매우 절망적인 고통인데, 시인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존자의 뜻을 멸시한 것 때문이라고 말합니다(11절). 그래서 하나님께서 수고로 그 마음을 낮추신 것입니다(12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때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지만, 끝내 돌이키지 않으면 이렇게 큰 징계를 주십니다. 시인이 세 번째로 말하는 것은 두 번째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범죄한 것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병이 들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되어 죽음 직전에까지 이른 것입니다(17-18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다에서 배를 타고 다니는 중에 광풍을 만나 죽을 위험을 당하는 경우입니다(25-27절).
이러한 일들을 생각해볼 때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이 우리의 과거 인생 길에서 일어났던 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본문은 마치 우리의 지나온 일대기를 보여주는 파노라마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아왔습니까? 얼마나 기가 막힌 위기를 넘겨왔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광야는 거칠고 메마르며 쉴 곳이 없으며, 마실 물이나 먹을 것도 없는 곳입니다. 더구나 끝없이 펼쳐진 광야 사막에서는 길을 잃기가 쉽습니다. 사막에서 길을 잃으면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얼마나 막막하고 불안하고 두렵겠습니까? 인생은 광야와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광야 인생 길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대개 젊은 시절에 우리는 인생에서 방황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입시에 실패했거나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불안해 한 적이 있었습니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직장을 구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봉급은 고사하고 겨우 재워주고 먹여만 줘도 감지덕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불황이 와서 실직하거나 사업을 포기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도 있었습니다. 어떤 성도는 지금도 이러한 어려움을 당하는 중에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황량한 광야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며 주리고 목마른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어려움을 당할 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그 고통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6-7절)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렇게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인도하시고 거할 성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라"(8절).
말씀을 거역하고 고통을 당함
시인은 또 죄로 인하여 우리가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본래 사람은 죄 없이 창조되었습니다. 죄가 없을 때는 죽음이나 질병이나 고통이나 갈등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한 결과 이 모든 것들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평안한 삶을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범죄하면 이러한 것들이 점점 우리를 사로잡게 됩니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이렇게 범죄할 때 하나님께서 징계하십니다. "그러므로 수고로이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12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너무나도 무모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온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우리의 생과 사가 그 분의 말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극심한 고통을 당할 때는 사람이 그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고통 가운데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니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13-14절)
주일 아침에 교회에 나오지 않고 놀러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고구마 전도왕으로 유명한 김기동 집사님은 이런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날 아침 1부 예배 참석하고 놀러가자고 아내를 속이고는 곧장 스키장을 향하여 차를 몰았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아내의 말을 "아침부터 미쳤냐? 예수가 밥 먹여 주냐? 나만 믿어!"하고 무시했습니다. 마침 스키 타기 좋게 눈이 점점 더 많이 오고 있었습니다. 강원도 인제 부근에서 마주 오는 그랜저 승용차가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정면으로 충돌했는데, 설상가상으로 뒤에 따라오던 2.5톤 트럭이 그대로 들이받았습니다. 그 사고로 아내와 두 아이가 처참하게 다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신 없이 하나님을 부르면서 가까운 병원에서 응급처지를 받게 하고 서울로 후송하여 정밀 검사를 받게 했습니다. 마침내 뇌와 장기에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실신해 버렸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가족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큰 어려움을 당한 적이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거역한 그대로 갚으신다면 우리 중에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것보다 두려운 일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돌이켜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셔서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가벼운 채찍만 때리셨습니다. 때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게 하신 적이 있었을지라도 우리에게 이렇게 은혜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당신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얼마나 감사하고 있습니까?
범죄한 결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이렇게 두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범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성경은 그런 자들을 미련한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련한 자들은 범죄한 것 때문에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미련한 자는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곤난을 당하매 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 가깝도다"(17-18절) 이것은 범죄한 결과 병든 것을 가리킵니다. 병이 들어서 식욕도 없어지고 음식을 소화시킬 힘도 없어진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하고 강한 척해도 하나님께서 그를 치시면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만 합니다. 전능하시며 공의로우셔서 죄인을 벌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범죄한 결과 당하게 되는 고통의 특징은 극심한 심리적인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할 때는 그 죄를 회개하기 전에는 치유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죄와 병으로부터 회복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깨닫고 회개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가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20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을 풍성하게 주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당신은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십니까?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성도가 복이 있습니다. 그가 치유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네 번째 경우는 바다에서 당하는 위험한 일과 고통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인간에게 닥친 고통과 위험, 그리고 그러한 일들로부터 구원받는 것을 가장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23-27절을 봅시다. "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물에서 영업하는 자는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저희가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푹풍을 만나 성난 파도와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과 심리가 얼마나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습니까?
이것은 비단 바다에서 당하는 어려움만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인생의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폭풍을 만나 살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두려운 경우를 당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렸을 적에 동생을 목에 태우고 깊은 물 속에 들어갔던 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설마 하고 계속 들어갔는데 갑자기 입과 코가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멀리서 보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달려와 구해주시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동생과 함께 물에 빠져 죽었을 것입니다. 초보운전 시절에 빗길에서 앞차를 추월하다가 차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큰 사고가 날 뻔했던 일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렇게 아찔했던, 그야말로 죽음 앞에까지 갔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렇게 살아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극심한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곤경에서 부르짖을 때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28-29절)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평안히 목적까지 인도해주십니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30절)
우리가 큰 위험과 고통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지셔서 오늘 이렇게 평안하게 살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이러한 은혜를 입은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의 인생에서 일어났던 일들
이 모든 일이 우리 각자의 인생 길에서 일어났던 일들임을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이렇게 평안한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가 겪어온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수고와 노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위험한 일들을 당했습니까? 광야와 같은 인생 길에서 방황하며 앞길이 캄캄하기만 했던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던 일은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무섭고 무모한 일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범죄한 대로 갚으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오면서 당했던 사고는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꼭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더라면 과연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평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환난 중에서 기도하라.
혹시 지금 이와 같은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가 있다면 이번 감사주일을 계기로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공식이 나와 있는데, 그것은 곧 기도하는 것입니다. 6,13,19,28절에 같은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어려움 가운데서 건져주십니다.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기도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곧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혹시 회개할 것이 있다면 반드시 회개해야만 합니다. 회개할 것을 내놓지 않고 아무리 기도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반드시 해결해주십니다. 어려움 당하는 성도에게 이러한 회복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하라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하나님의 그 모든 은혜를 너무나 망각하고 지내지는 않았습니까? 시인은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절)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당신도 시인의 생각에 공감하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살아있을 수조차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이제부터 하나님의 이 모든 은혜를 잊지 않고 늘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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