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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실수

창세기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991 추천 수 0 2009.12.30 22:5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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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9:18-29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3·07·13
여름이 되면 더워서 힘들고 지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방학이 있고 휴가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생활에도 방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열심히 했으니까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방학을 선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8월까지는 가정교회도 좀 쉬고, 큐티와 새벽기도와 심야기도회도 쉬겠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영적으로 침체되고 넘어지게 됩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방학도 없고 휴가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신앙생활 열심히 했다고 해서 방심하면 반드시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즉시 틈을 타서 공격해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던 믿음의 사람 노아, 홍수심판을 이겨낸 노아가 방심하여 넘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긴장을 풀어서는 안됩니다. 여름은 신앙의 방학이나 휴가를 가지는 계절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말씀과 성령 안에서 힘을 다해 봉사해야 하는 계절입니다. 여름을 시험에 빠지는 계절로 삼지 마시고 영적으로 더욱 무장하고 성장하고 충성하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방심한 노아
  홍수 심판이 끝나고 처음 방주에서 나왔을 때 노아는 세상이 완전히 황폐된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파괴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또 홍수가 터져서 세상이 다시 멸망을 당하지 않을까 두렵고 불안해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노아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세상을 물로 멸하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증거로 무지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맹수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여 공격하지 못하게 하셨으며, 사람에게 육식을 허용해주셨습니다. 또 사람을 죽이는 동물이나 사람은 반드시 죽이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노아와 그 가족들, 그리고 홍수심판에서 살아남은 동물들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 동안 노아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삶은 안정되었습니다. 비가 와도 하늘에 무지개가 나타나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농사도 잘되고 아들들도 자녀들을 낳으며 문제없이 잘 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안정되고 평안해지자 노아는 점점 긴장이 풀리고 방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노아의 실수
  노아는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만들었는데, 어느 날 노아는 포도주를 너무 마셔서 심하게 취하게 되었습니다. 술에 취한 노아는 옷을 다 벗어버렸습니다. 술에 취하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이 많아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대로 골아 떨어집니다. 술에 취하기만 하면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술에 취하면 노아처럼 옷을 벗는 사람들도 있습니까? 노아의 경우는 술에 취해서 나타난 단순한 술버릇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노아가 왜 옷을 다 벗어버렸을까요?
  술에 취한 노아는 추하고 죄악된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물론 노아가 처음부터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포도주를 한 번 맛보기만 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심한 노아는 포도주를 맛보는 순간 절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술에 취해 부끄럽고 죄악된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요, 심판을 이긴 자요, 두 번째 인류의 시조였던 경건한 의인 노아는 이렇게 해서 초라하고 수치스러운 죄인의 자리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수치스런 모습을 보고 조롱하며 정죄했으며, 하나님의 종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노아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방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방심하면 넘어지게 됩니다. 그래도 이번 여름에 신앙생활의 방학을 가져야겠다고 고집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방심하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인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래서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한순간이라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도 노아처럼 실패하게 됩니다. 신앙의 긴장을 풀지 말고 항상 깨어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함의 행동
  노아가 술에 취해서 벌거벗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은 둘째 아들 함이었습니다.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 두 형제에게 고하니"(22절) 함이 아비의 하체를 보았다는 것은 그냥 우연히 보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생각이나 의도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상상하면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28). 여기서 본다는 것은 어떤 성적인 연상을 하면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즘은 이런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장려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짧은 치마를 입고, 속이 비치거나 드러나는 옷을 입고 다닙니다. 성적인 매력을 강조하고 과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섹시하다고 하면서 선망하고 추구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현대인들은 여자나 남자를 보고 속으로 음욕을 품고 즐기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라고 생각하거나 나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정죄하셨습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함이 벌거벗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그는 우연히 아버지가 벌거벗은 것을 보고 민망해서 얼른 아버지를 이불이나 옷으로 덮어드리고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벌거벗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정욕적이고 부끄러운 것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서 형제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면서 아버지를 정죄하고 비난했습니다. 함은 자신의 내면에서 부끄러운 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숨기고 오히려 아버지를 비난하고 정죄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항상 거룩하고 경건한 생각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때로 부끄러운 생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그럴 때 어떻게 하십니까?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회개하면서 거룩하고 정결한 마음을 주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속으로 이런 죄악된 것들을 즐기면서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 남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가증한 모습입니까? 함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셈과 야벳의 행동
  함으로부터 아버지가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있다는 말은 들은 셈과 야벳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아버지가 실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여전히 존경하고 아버지의 실수를 덮어드리고자 했습니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창9:23) 이들은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으려고 일부러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버지의 추한 모습은 잊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여전히 경건하고 의로운 분으로, 하나님의 종이요 선지자로 기억하기 원했습니다. 셈과 야벳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들은 아버지의 실수로 인하여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함의 태도와는 얼마나 다릅니까?
  함은 아버지의 실수를 보고 마음 속으로 범죄했습니다. 그는 마음 속에 부끄럽고 악한 생각 품은 것을 회개하지 않고 그것을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아버지를 정죄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수치스러운 실수를 핑계로 하나님을 떠나버렸습니다. 우리는 함의 후손인 가나안 족속들을 통하여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극도로 타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 지키지 못한 사람들의 핑계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중단한 사람들을 간혹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교회를 떠난 이유는 대개 비슷합니다. 목사에게 실망을 했다든지, 장로나 집사 때문에 시험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교회 나가지 않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안타깝고 그렇게 만든 그리스도인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교회나 다른 사람들에게 있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만일 형제 중에 하나가 자기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합시다. 그런 경우에는 그 형제를 낳은 부모님과 관계를 끊어야 할까요? 우리는 교회나 다른 성도들의 실수 때문에 하나님을 떠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이 얼마나 모순된 핑계에 불과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교회가 온전치 못하다거나 믿는 사람들이 잘못한 것은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을 떠난 이유가 될 수가 있습니까?
  진짜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고 그 사람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떠날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핑계거리를 찾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실수를 비난하면서 그것을 핑계로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 이 문제를 정확히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핑계는 하나님 앞에서 조금도 통할 수 없습니다.
  오늘 형제의 실수를 볼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그 정도의 죄와 잘못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그것이 밖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형제가 실수를 했을 때 자기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그를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은 정말 악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악하고 추한 생각을 내놓고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형제의 실수를 덮어주어야 합니다. 형제가 실수했음에도 불구하고 형제를 여전히 사랑하기로 다짐해야 합니다. 가장이나 목사가 실수했다 하더라도 그를 위해서 더욱 기도하며 여전히 사랑하고 존경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성도는 남의 실수 때문에 시험에 들거나 범죄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형제가 실수했을 때 먼저 자신을 살피고 내 안에 있는 악한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형제의 실수를 덮어주며 여전히 형제를 사랑하는 성숙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노아의 예언
  본문은 이런 일이 있은 후 노아가 자녀들에 대해서 예언한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창9:24-27)
  이 말씀은 마치 노아가 술에서 깨어난 후 둘째 아들 함이 한 행동을 보고 화가 나서 그를 저주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노아는 괜히 자기가 실수해놓고 자식을 저주하는 아주 나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부당한 저주가 이루어지게 하실까요? 이 말씀은 노아가 술에 취해 실수한 것과는 상관이 없는 말씀입니다. 노아는 지금 선지자요 설교자로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에 그런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오해를 하기 좋게 된 것입니다.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했습니다. 이것은 괘씸한 아들에게 복수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언이요 설교요 경고였습니다. 함의 아들 가나안은 성에 대해서 지나치게 호기심이 많고 문란한 성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함의 경우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나안을 보고 노아는 경고를 했던 것입니다. "네가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살면 너는 망하게 될 것이다."
  가나안이 노아의 설교를 잘 받아들였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은 할아버지의 예언을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나 맘껏 죄를 지으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노아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던 당시에 가나안 족속들이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으며, 특히 성적으로 매우 문란하고 타락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노아는 셈과 야벳을 축복했습니다.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창9:26-27) 노아는 셈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축복과 계획을 깨닫게 되자 먼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셈의 계통을 통하여 택한 족속을 보존하시고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셈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고 있습니다. "셈의 하나님!" 이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 축복입니까?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에 사용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일컬음 받으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기뻐하시겠습니까? 막내 아들 야벳은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살게 될 것이며, 셈의 장막에 와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영적인 방심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배웠습니다. 아무리 덥고 휴가철이 온다해도 신앙생활의 방학을 계획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방심하게 되면 반드시 넘어지게 됩니다. 항상 깨어 기도하며 말씀에 굳게 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혹시 다른 사람이 넘어진 것을 보거든 자신을 돌아보고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형제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시기를 기뻐하실 만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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