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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을 부르심..

창세기 이정원 목사............... 조회 수 3071 추천 수 0 2009.12.30 22:56:48
.........
성경본문 : 창12:1-9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3·08·03
시인 김춘추의 작품 중에 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나는 이 시를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신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시기 전에는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신 후에야 나는 의미있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살고 많은 일을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불러주시기 전의 삶은 아무 가치도 의미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의 삶,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깨닫기 전의 삶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붙잡혀서 하나님을 위해 살게 된 성도라면 이 말에 철저하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직도 하나님께 붙잡히지 못한 성도가 있다면 오늘 당신에게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일어났던 결정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을 받은 이후 아브라함에게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인생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그가 살았던 모든 삶은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후의 인생은 엄청난 축복을 받고 사명을 감당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 후 아브라함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땅에서부터 하늘까지 치솟는 성장을 하게 되었고, 놀라운 기적과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당신에게도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역사
  인간은 스스로는 아무 소망이 없는 존재입니다. 아담의 타락과 가인의 범죄, 그리고 노아 홍수와 바벨탑 사건을 통하여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철저히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하여 멸망을 당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된 세상을 멸하시고 의인 노아로부터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삽시간에 온 세상을 죄로 물들이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을 몰아내고 스스로를 높이며 하나님 노릇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그들의 악한 도모를 좌절시키시고 사람들을 사방으로 흩으셨습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로 사람들은 사방에 흩어져 다시 번창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바벨탑 사건 이후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기는 삶을 살았을까요? 그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을 찾아볼 수조차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인류에게는 아무 소망도 없게 되어버렸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인류에게 남은 것은 심판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류의 역사는 인간 스스로는 아무 소망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반드시 구원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인류의 죄를 해결하시고 구원해주시기 전에는 아무 소망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아를 보내시기로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이 복음이 가장 처음 언급된 곳은 창3:15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보내시기 위해서 한 백성을 구별하여 선택하셨습니다. 이 선택된 백성의 조상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11장에는 구별된 백성 아브라함의 출현을 보여주기 위한 족보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족보는 구별된 백성 아브라함의 족보일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실 메시아의 족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메시아를 보내실 한 백성을 시작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왜 아브라함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을까요? 이런 경우에 우리는 대개 아브라함에게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어떤 좋은 점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그에게 어떤 특별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몰랐고 섬기지도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을 택하셨을까요? 그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셨기 때문이었을까요? 그가 하나님을 모르고 있었지만 순수하고 성실한 인격을 가졌기 때문이었을까요?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기 위해서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는 왜 아브라함을 택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무 조건도 없이 그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좋은 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구원받을 만한 조건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무 조건도 없이, 오직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달으면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 무한하신 그 사랑을 뜨겁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랑에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셨는지요? 당신에게는 이러한 감사와 감격이 있습니까?

    소명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서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절) 갈대아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 남부 지역으로 당시 정치, 경제, 권력의 중심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4절). 당시의 수명을 감안할 때(그의 아버지 데라는 205세에 죽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가 인생의 중년기에 해당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당시 정치, 경제, 권력의 중심지였던 갈대아 우르에서 중년인 75세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가 좋은 지역에서 기반을 잡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떠나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지금까지 쌓아온 기반을 하루아침에 다 버리고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가 살고 있던 수도권을 떠나 언어와 문화가 다른 열악한 지방으로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정들었던 고향과 사람들을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안정된 사업, 직장, 이웃, 그리고 재산을 버리고 미지의 땅으로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학교 다니고 있는 자녀들도 학교를 그만 두게 하고 학교도 없는 곳으로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안정된 삶을 떠나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기만 한 곳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에게 얼마나 엄청난 것을 요구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렇게 무리한 것을 명령을 하셨을까요? 아브라함이 고향과 삶의 터전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면 안될 이유라도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제부터 하나님만을 섬기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의 본토 친척 고향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곳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이었을지 모르나 우상숭배가 심한 곳이었고 죄악의 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제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그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 모든 것들로부터 떠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떠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믿기 전에 가지고 있던 죄악된 습관들과 환경에서 떠나야만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예수 믿은 후 세상 친구들이 멀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서운하십니까?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들과 가까이 지내려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주일예배도 제대로 참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로부터 떠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떠나지 않고서는 새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떠나지 않고서는 새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아직도 여전히 옛 생활과 죄악된 습관들과 환경들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왜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합니까? 왜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지 못합니까?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가지고 있던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가치관과 문화와 친구들로부터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새 사람이 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면 이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려면,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시는 삶을 살려면 이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 섬기는 데 방해되는 것들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들로부터 과감하게 떠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라!
  믿음은 떠나는 것이며 동시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떠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충성하는 길을 가야 합니다. 이 길을 쉬지 않고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길에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와 기적과 축복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행7:2-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을 향해 갔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하란이라는 곳에 머물렀습니다. 하란은 갈대아 우르와 가나안의 중간 지점에 있는 곳입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는 이백 오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창11:31-32) 이 말씀으로 미루어볼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의 아버지 데라가 가족들을 데리고 함께 떠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데라는 갈대아 우르를 떠난 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으로 가다가 하란에 머물러 거기 정착했습니다.
  이것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후에 그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으나 곧장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지 않고 하란에서 한 동안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 데라가 하란에서 더 이상 떠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아버지를 떠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믿음의 길을 갈 때 도중에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데라는 가다가 중단하고 포기하고 하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버지를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갔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쉬지 않고 가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심지어는 부모까지도 떠나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부터 우리 인생은 새롭게 시작되었고 비로소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신 세상적인 것들로부터 완전히 떠났습니까? 만일 당신의 믿음이 성숙되지 못하고 있거나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아직도 세상적인 것들로부터 떠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것들에 미련을 두지 말고 과감하게 떠나고 그것들을 포기하십시오. 그것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은 것이 못됩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2:15-16)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을 강권적으로 사로잡으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인생에 전혀 새로운 차원이 열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적인 옛 습관과 환경과 생활에서 떠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전진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좇아가는 당신의 앞길에 선하신 계획과 놀라운 일들을 예비해놓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축복과 은혜가 당신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기 전에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살고 많은 일을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기 전의 삶은 아무 가치도 의미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의 삶,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깨닫기 전의 삶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그가 살고 있던 곳을 떠났습니다.
  믿음은 옛 생활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적인 방법과 가치관과 죄악된 습관과 환경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새로운 삶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옛 생활에서 떠나셨습니까? 죄악된 옛 습관을 버리셨습니까? 이 세상의 것들을 버리지 못한 채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죄악된 옛 생활로부터 철저히 떠나지 않기 때문에 믿음이 자라지 않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깨닫지 못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맛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옛 생활과 죄악된 습관과 환경들로부터 떠나면 새로운 차원의 인생이 열리게 되며,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능력으로 살게 됩니다. 옛 생활로부터 철저하게 떠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떠났습니다. 이렇게 떠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12:2-3) 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될 것이며, 그로 인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혈통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게 하신 것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속한 곳이면 어디서든지 복을 주심으로 이 말씀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이러한 축복은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요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어디를 가든지 요셉 때문에 그가 속한 곳에 복을 주셨습니다. 보디발의 집은 요셉 때문에 복을 받았으며, 감옥에 들어온 사람들도 요셉 때문에 복을 받았고, 애굽 전국 역시 요셉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다윗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큰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성도들은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이 몸담고 있는 가정과 직장과 사회가 당신 때문에 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고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아무도 아브라함을 해칠 수 없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이렇게 보호해주십니다. 부당하게 성도를 저주하고 괴롭히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으로 가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놀라운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순종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엄청난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사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아직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75세가 되도록 그의 아내 사래는 자식을 낳지 못한 채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어떻게 큰 민족의 조상이 되며, 그의 후손을 통하여 메시아가 오실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그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믿음을 주셨고,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내 뜻과 의지로 된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 속에 오셔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심으로 믿음이 생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믿음은 더욱 성장하고 견고해져가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의 믿음은 더욱 성장하며 견고해집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말씀에 순종할 때 믿음은 더욱 자라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4절)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8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보기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떠나갔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좇는 것이 때로는 막연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좇는 것이 우리의 지혜와 판단보다 훨씬 더 확실하고 분명합니다. 그 말씀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입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간 것은 우리가 보기에 무모하게 생각될지 모르나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습니다.

    마침내 가나안에 도착함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마침내 가나안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마침내'라는 단어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은 아버지와 데라와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오는 도중에 하란에 머물렀습니다. 거기서 그의 아버지 데라는 더 이상 가지 않으려 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아버지를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가나안 땅을 향해 하란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나안에 도착했습니다.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5절) 믿음이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이상한 것은 아브라함이 이렇게 믿음으로 말씀을 순종하여 가나안까지 갔지만 모든 일이 평탄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마침내 가나안에 도착해서 보니 거기에는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6절) 아브라함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를 위해 예비된 광활하고 비옥하며 아름다운 땅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갈대아 우르나 하란보다 못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미 주인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실망스러운 일입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온갖 어려움을 이기고 여기까지 온 결과가 고작 이것이란 말입니까?
  때로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했는데 이렇게 실망스런 결과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실망하기 쉽습니다. 뭔가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속이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대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계획은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준비시키시고 차근차근 그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질이 급합니다. 당장에 하나님의 기적과 엄청난 결과가 나타나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실망하고 혼란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당신 자신을 보십시오. 당신의 믿음이 이만큼 자라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까? 우리는 믿음이 너무나도 더디게 자라면서 하나님의 일이 당장에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자신은 믿음이 그렇게도 더디게 자라면서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믿음이 빨리 자라지 못하는 것을 참아주기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은 그보다도 더 더디게 믿음이 자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이 당장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더욱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믿음이 성숙되고 준비가 되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아브라함이 마침내 가나안 땅에 도착했으나 그가 기대했던 것은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실망하며 당황해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다시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7절) 사실 노아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이렇게 누군가에게 나타나신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여 나그네길을 떠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특별하고 친밀한 관계가 맺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약해지려고 할 때마다 찾아오셔서 그의 믿음을 북돋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실망하고 혼란스러워할 때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위로하시며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면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성도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반드시 찾아와 위로해주시고 격려해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한 모래 위의 발자국이란 시가 있습니다.

어느 날 밤 한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속에서 그는 예수님과 함께 해변 가를 따라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늘을 가로질러 그의 삶의 장면들이 펼쳐졌습니다.
모래 위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그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그의 삶의 마지막 장면이 그의 앞에 펼쳐졌을 때  그는 모래 위에 새겨진 자신의 발자국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그의 삶의 여정에서 오직 하나의 발자국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또한 그 때가 그의 삶에서 가장 절망적이고 슬픈 일들이 일어났던 때였음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그를 괴롭게 했고 그래서 그는 주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면 항상 저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주님은 언제나 저와 동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제 삶의 가장 어려웠던 순간들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음은 어찌 된 일입니까? 왜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주님께서는 저를 떠나셨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한, 정말 소중한 아이야.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나는 너를 결코 떠난 적이 없었단다. 네가 고통과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
모래 위에서 한 사람의 발자국만을 본 것은, 그 때 내가 너를 업고 지나갔기 때문이란다."

  오늘 힘들고 어려운 때를 보내고 있는 성도가 있습니까? 주님께서 당신을 특별히 붙들고 계심을 기억하십시오. 여전히 말씀을 굳게 붙잡고 믿음을 지켜나가십시오.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 일로 망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런 성도들에게 오셔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처럼 말씀을 통하여 위로해주시고 비전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심으로 능히 이기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하는 믿음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실망하고 당황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그를 위로해주시고 축복의 약속을 다시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고 그를 위로해주셨을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으며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과 감사의 표시로 단을 쌓았습니다. 단을 쌓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공개적인 신앙고백이요 예배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나타냈으며,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던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예배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믿음 있는 성도는 예배를 가장 소중히 여기며 기뻐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예배보다 봉사를 더 우선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봉사가 중요하지만 예배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예배를 외면하고 봉사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태도이며 믿음이 없는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봉사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예배가 없이 봉사하는 사람은 조금만 어려움을 당해도 쉽게 실망하고 탈진하게 됩니다. 참된 예배 없이 봉사하는 사람은 교만하게 되고 부작용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믿음 있는 성도냐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봉사를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온전한 예배를 드리느냐로 나타납니다. 믿음 있는 성도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며,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힘입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주일학교 시간에 나와서 봉사하고 정작 예배시간에는 나오지 않는 성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고 그 시간에 이런저런 일을 쫓아다니는 성도들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주일 점심식사 봉사하는 일 때문에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 없을 것 같으면 1부 예배에 나와서 온전한 예배를 드리도록 하십시오. 예배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많은 일을 하기보다는 하나님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배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힘입는 성도라야 봉사도 제대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무엇보다 좋은 예배자들, 진정한 예배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옛 생활과 죄악된 환경이나 습관들로부터 완전히 떠났습니까? 오직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러한 성도들에게는 분명히 하나님의 놀라우신 축복이 충만하게 임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데 혹시 실망스런 일을 당하고 있는 성도가 있습니까? 당신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기 위해서 곁에 와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기로 작정한 당신에게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져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며,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을 충만하게 허락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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