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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08) 말보다 삶으로 승부하십시오 (행 19:13-20)
< 스게와의 일곱 아들 > 바울을 통해 희한한 능력이 많이 나타나자 에베소에서 마술하는 유대인들도 악귀 들린 자에게 말했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귀야 물러가라!” 그들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는 것을 일종의 주문처럼 생각하고, 그 주문대로 말하면 능력이 나타날 줄 알았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입니까? 능력의 통로는 ‘정확한 주문’이 아니라 ‘말씀 중심적인 믿음’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이름을 주문처럼 사용하던 마술사들 중에 자칭 유대 제사장인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예수님의 이름을 사칭하며 악귀 들린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귀야! 당장 떠나가라!” 그때 악귀가 대답했습니다. “임마! 내가 왜 떠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그 말과 함께 악귀 들린 사람이 스게와의 아들들을 공격하자 저희들이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쳤습니다(16절). 이 장면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 3계명을 생각나게 합니다. 믿음도 없이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고 주문 외우듯이 하면 오히려 진노의 대상이 됩니다. 가끔 보면 찬양과 경배도 믿음 없는 감정적인 찬양과 경배가 있고, 기도도 믿음 없는 형식적인 기도가 있습니다. 찬양과 기도도 그 바탕에 믿음이 없으면 아무런 역사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라고 하면서 성경에 없는 말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령하게 보이려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시하셨는데 오늘 동쪽으로 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한 달 안으로 결혼 배우자를 만날 것입니다.” 그런 헛된 계시를 남발하는 사람도 진노의 대상이 되지만 그런 계시를 믿는 사람도 진노의 대상이 됩니다. < 말보다 삶으로 승부하십시오 > 또 한 가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왜 주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람은 맹세를 완벽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맹세는 대개 거짓말이 됩니다. 말할 때는 결과까지 생각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언어생활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진실하기를 힘쓰면 선한 열매가 나타납니다. 결국 진실이 무서운 것이고 진실이 강한 것입니다. 2종류의 거짓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말할 때부터 하는 거짓말이 있고, 또 하나는 말한 대로 실천하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된 거짓말이 있습니다. 무엇을 하겠다고 한 후에 나중에 핑계를 대고 안하는 것도 거짓말이고, 그 하겠다는 약속을 잊어버리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가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말합니다. “너 이렇게 하면 맞아!” 그처럼 매번 “맞아!”라고 하면서도 잘못했을 때 매를 들지 않으면 부모의 말은 권위를 잃게 됩니다. 말의 권위를 잃으면 자연히 말이 많아지면서 잔소리도 늘어납니다. 그처럼 부모의 말이 잔소리로 느껴질 때 그 잔소리는 오히려 자녀들의 의식을 잠재우는 자장가 소리로 변합니다. 말한 것은 최대한 실천하십시오. 맹세는 더욱 그렇습니다. 맹세는 ‘피를 걸고 한 약속’입니다. 그런 맹세를 남발하면 정말 피를 흘리게 됩니다. 맹세를 주의하고 맹세하는 어투도 주의하십시오. 사람은 맹세를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한 말은 진실한 마음을 담아 한 말이었지만 결국 예수님을 부인함으로 거짓말을 한 셈이 되었습니다. 결국 입으로 맹세를 많이 남발할수록 죄의 가능성은 높아지고 인격의 품질은 점점 떨어집니다. 항상 말보다는 삶으로 승부하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이름이 훼손되지 않도록 힘쓰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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