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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역설

고린도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943 추천 수 0 2010.01.05 13: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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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후12:7-10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8. 10. 5. 성찬주일 4부 설교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신앙인의 역설”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신앙생활에는 세상적인 삶의 원리에 정반대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예로 악을 이기는 길로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고 했습니다. 우리 세상 생각하고는 틀리지요. 오른편 뺨을 치거든 너도 한 대 갈기라고 했는데 성경은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송사하여 겉옷을 가지려거든 속옷까지 주며, 참 생각해도 알 수 없어요. 왜 속옷까지 줘야 될지..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십리를 가라고 하신 가르침이신 것입니다. 억지로 오리 가지고 하면은 “내 오리 더 가 드리지요. 십리까지 갔습니다.” 세상적인 우리 생각과 주님이 주시는 지혜가 정반대되는 역설이 될 때가 많습니다. 또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가르침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 생각하기에는 자꾸 받는 것이 복된 것인줄 아는데 주는 것이 복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반대 아닙니까? 오늘 그 중에 몇 가지를 여러분과 더불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론>
1. 내가 약할 때 강하다
첫째로, 내가 약할 때 강하다.
내가 약한데 뭘 강합니까? 약한데 쓰러질 지경인데 어떻게 강하냐? 여러분 약한 사람을 보면 누가 붙들어 주던지 지팡이를 집든지 휠체어를 타든지 자기보다 강한 것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강하면 다른 데 의지할 필요 없어요. 내가 두 다리로 굳세게 서고 두 손으로 나를 방어할 수 있지만 내가 약하면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든지 자동차에 의지하든지 지팡이에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약하면 도울 자를 찾고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9절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우리에게 어려움이 다가오고 우리가 약해지는 것은 강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간증을 하나 읽어 보니까 우리 교회 나오는 자매님이 처음 교회에 나왔다가 별 재미가 없어서 그만 집어 치웠는데 가족이 교통사고가 나서 남편이 목의 신경이 끊어져서 하반신 마비가 되어서 병원에 입원을 하니까 이제 집안 살아나갈 일이 막연합니다. 어찌합니까? 별도리 없이 그때부터 하나님 살려 달라고 새벽기도도 나오고, 주일 기도도 나오고 기도원에 가서 사흘 동안 평생에 안 해본 금식기도를 하고 하나님 살려 달라고 부르짖으니까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집에 와서 남편에게 안수 기도하니까 남편이 일어나 버리고 만 것입니다. 약했으니까 하나님을 찾았지 강했으면 하나님 안 찾았습니다. 남편이 건강하고 자녀들이 건강한데 뭘 하나님 찾겠느냐. 그러나 남편이 하반신 마비가 되니까 병원에서도 이제는 평생 하반신 마비로 병신이 되지, 낫지 않는다고 선언을 하니까 그때야 강한 자를 찾습니다. 나보다 더 강한 자가 와서 붙들어 줘야 되겠거든. 그래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이 응답을 해 주어서 건강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약할 때 강하다는 것은 바로 약한 강한 자를 붙잡고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계시나 지식이나 깨달음이 너무 많아 영적으로 강한 자였었습니다. 바울선생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지금도 제가 바울 선생의 글인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읽으면 마음에 굉장한 감동을 느끼고, 이렇게 깊은 계시를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감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계시를 받으니까 어깨가 우쭐해지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이만하면 되었다. 내가 충분한 지식과 계시와 말씀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바울선생을 더 크게 사용하려면 낮아지고 깨어져서 더욱 더욱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교만해질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는 약하게 만들어야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바울 선생께서는 사탄의 사자, 육신의 가시(병)가 그 몸에 와서 약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항상 의지하여 하나님의 능력 없이는 살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탄의 사자가 왔으니 사탄의 사자가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 선생은 일어서도 고통을 주고 앉아도 고통을 주고 일을 할 때도 적군들이 생겨나고 반대가 생겨나고, 여러 가지 괴로우니까 바울은 쉬지 않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하나님은 평안하면 잊어버릴 때가 많아요. 그러나 심신이 괴로운 사람은 24시간 내내 “아버지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살려 주옵소서.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합니다.”기도 안할 수가 없어요. 아프고 답답하니까. 저도 50년 동안 목회하면서 평안할 때는 ‘아이고 하나님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이 번뜩 납니다. 하루에 살면서도 내가 평안하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을 잊어버릴 때가 종종 있어요. 가끔 있는 것이 아니라 종종 있어요. 그러나 내가 고통스러우면 한시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 날 도와주십시오. 날 도와주십시오.’ 그럽니다. 여러분 자식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타향에 나가서 산 자식들이 평안하고 잘 살면 부모에게 1년에 편지 한 두번 할지, 더구나 요사이 핸드폰만 들면 이야기 할 수 있어도 전화도 안합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자꾸 전화가 오거들랑 좋은 소식인줄 생각하지 마세요. 괴로우니까 뭐 도와 달라고 전화를 하는 것입니다. 편안할 때는 부모에게 별 전화 안하다가 괴로우면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고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난 다음에는 “날 좀 도와주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약하니까 도움을 청하지 강한데 도움을 청하지 않지요. 바울선생이 그렇게 하나님께 묵시와 계시를 많이 받고 지식이 풍부하더라도 괴로우니까 사탄의 사자가 와서 그를 온통 괴롭게 하니까 그는 24시간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로 10절 이 배경을 알고 우리 한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약할 때 강하다. 내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약하지만 원수가 볼 때는 엄청나게 강하다. 왜, 내가 약하니까 강한자하고 손을 꽉 잡고 함께 가니까 강하거든. 어린 아이가 자기 혼자는 약하잖아요. 그러나 아버지와 손을 탁 잡고 나가면 기세당당하잖아요. 그러므로 실제 자기 개인적으로는 극히 약하지만 타인이 볼 때 엄청나게 강한 것은, 엄청난 강한자의 손을 잡고 의지하고 나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너무 힘없고 약하고 고달프더라도 예수를 의지하고 나가면 사탄이 볼 때는 여러분 엄청나게 강한자로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플러스니, 예수님이 함께 오는데 감당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예수님 없이 나 혼자 강하다고 끄덕 거리는 것은 사탄이 볼 때는 하루 아침 거리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강한 자는 자기가 약한 것을 아는 사람이 강한 자인 것입니다. 참으로 지혜 있는 자는 자기가 지혜 없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고 참으로 지식 있는 사람은 자기가 무지한 것을 깨달은 사람이고 참으로 부자는 자기가 가난한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래야 정말 지식과 지혜와 축복을 주는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고,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꿀만한 큼직한 사건들은 강한 사람들보다는 대부분 약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많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운동을 할 당시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은둔생활을 하는 가운데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습니다. 그 책이 바로 최초의 독일어 성경입니다. 또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고 하는 「천로역정」은 존 번연이 감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괴로울 때,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해서 신앙고백인 천로역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밀턴은 그의 유명한 「실락원」을 적었는데 그는 장님이 되어서 아무것을 볼 수 없을 때, 상상의 눈을 뜨고 실낙원이라는 아름다운 장편시를 지은 것입니다. 「레미제라블」은 나폴레옹 3세 때, 빅톨 위고가 국외로 추방당하여 망명생활을 할 때, 고난 당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여 적은 책인 것입니다. 음악의 거성인 베토벤은 청각 장애가 와서 음악을 들을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 자기 이외에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해서 훌륭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루즈벨트는 소아마비였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다녔지만 미국의 역대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4선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힘에 의해서 움직여진다.” 위에서 힘이 와야지 내 힘 가지고는 조그만 일밖에 못해요. 큰일을 하려면 위에서 힘이 와야지요. 위에서 힘을 얻으려면 의지해야지요.
의지하세 의지하세 곧 의지하세, 구하겠네 구하겠네 곧 구하겠네.
의지하는 자를 구해주지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꼿꼿이 선다고 자랑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붙들어 아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 강함이 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해 주시고, 우리를 품어 주시고 안아 주시고, 엎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2. 내가 하나님께 항복할 때 이기는 자가 된다
둘째로, 내가 하나님께 항복할 때 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반대하고 하나님 뜻을 거역하면서 아~ 내가 내 중심에 서서 내 고집대로 산다고 하는 사람은 형편없이 약한 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깨어져서 하나님께 항복하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개인이나 가정이나 생활이나 사업이나 모든 것이 순종하겠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나님께 항복할 때 하나님이 그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서서 나가는 자는 강하게 보이나 실제로는 형편없이 약한 자인 것입니다.
야곱의 얍복강 씨름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야곱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했는데, 처자들 데리고 많은 짐승들을 거느리고 고향으로 가까이 와, 얍복강을 건너고 난 다음에 형이 있는 곳에 사자를 보내니까, 형 에서가 동생을 죽이려고 400인의 집에서 기른 장정들을 데리고 출동을 했습니다. 이 소리를 듣자 야곱은 간담이 녹았습니다. 이래서 자기 처자와 짐승 떼를 얍복강을 다 건너게 하고 난 다음 자기는 안 건넙니다. “여보, 함께 가야지요.” “아빠! 왜 안건너가?” “너희들 먼저 가! 나 여기 볼 일이 있다.” 왜냐, 형이 와서 짐승 떼를 치고 처자를 치면 죽일 의사가 있으니까, 삼십육계를 놓겠다는 것입니다. 도망치고 안 죽이면 그때 슬며시 머리 긁고 나오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고약한 놈이 어디 있습니까? 처자를 형의 칼의 밥으로 내어 놓고 자기는 살겠다고 강 건너편에 쪼그리고 앉아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해가 지는데 갑자기 키가 크고 장대한 분이 다가오더니만 그를 꽉 붙잡고 “건너가라 이놈아! 강을 건너가서 처자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될것 아니냐! 건너가라!” “나 안가요. 내가 살아야지 뭐 처자가 죽더라도 내가 살아야지 무슨 소리 하느냐. 나는 안가요.” 그런 남편하고 결혼한 여자는 행복한 여자죠? 결혼할 때 조심해야 돼요. 책임질 사람하고 결혼해야지 결혼만 하고 책임 안지는 사람하고 결혼했다가는 신세 망치는 것입니다. 야곱은 책임을 안 져요. 처자가 다 형의 칼에 죽으면 자기는 도망치고 인생 새 출발하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성경 이때 읽을 때만 되면 야곱에게 한번 쥐어박고 싶은 생각이 나요.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건너가라! 건너가라!” “안가요.” 얼마나 고집이 세든지 초저녁에 씨름을 시작한 것이 새벽에 해가 뜰 때까지 항복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자가 손을 들어 환도뼈를 치니까, 뼈가 어그득하고 어그러져 자빠졌습니다.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보니 큰일났다 말입니다. 이제 형이 오면 도망치기 틀렸어요. 그냥 완전히 환도뼈가 어그러져서 걸을 걸어도 그냥 걷지 못하고 이러고 몇 자국 달아나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자를 붙잡고 “나에게 복 내려 주지 않으면 당신을 놓지 않겠나이다.” “네 이름이 뭐냐?” “야곱입니다.”쉽게 말하면 사기꾼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네 이름은 이제 야곱이 아니고 이스라엘로 불러라.”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긴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해서 졌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긴 자라고 말하느냐. 그가 하나님께 항복을 하니까, 하나님은 항복한 자를 승리자로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그 이야기가 창세기 32장 24절로 25절에 있는데 제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성경을 같이 한번 같이 읽어 보십시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 다음?창세기 32장 26절로 28절 읽으십시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완전히 하나님과 씨름해서 사실을 졌는데, 하나님은 진 사람 보고 “너는 이겼다.” 항복한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침에 저자들이 남편,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얍복강을 건너서 오는데, 머리를 삼발이 되고 얼굴은 전부 콩팥을 문지른 것같이 새까맣게 되고, 옷은 찢어지고, 절뚝, 절뚝, 절뚝하면서 걸어옵니다. “아이고 이것 왠일입니까? 어쩐 일입니까?”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고 “그냥 따라만 오너라. 너희들은 다 내 뒤에서라.” 이제는 처자들을 전부 자기 뒤에 세우고 자기가 앞에 섰습니다. ‘죽더라도 내가 먼저 죽는다. 인제’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래 형이 4백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죽이려고 와보니까 한줌도 안 되는 동생이거든 절름거리고 오는데, 불쌍해서 보지를 못하겠어요. 머리는 산발이 되고, 옷은 찢어지고, 절뚝절뚝 하는데 칼로써 뭘 죽이겠습니까? 과거의 원한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에서 뛰어내려서 동생을 껴안고 “야 이놈아, 20년 동안 날 떠나서 있더니 이제는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오느냐?” 엉엉 울고서 서로 목을 껴안고 화해하고 죽음을 면하고 살아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싸우지 아니하고 승리를 갖다 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가 무엇입니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큰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깨어지면, 하나님은 인생의 전쟁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는 것을 보라. 오늘 너희가 본, 이 애굽 적군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고 모세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우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항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복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데, 우리가 고집을 부리고 항복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멀리 서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 항복해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버리면 내 어디 가리까 그 찬송처럼 하나님께 항복하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3. 내가 빈 그릇이 될 때 가득 해진다
셋째로, 내가 빈 그릇이 될 때 가득해 지는 것입니다.
빈 그릇이 되는데 어떻게 가득해 지느냐. 가득한 그릇을 가져야지. 그렇지가 않습니다. 내가 인생에 빈 그릇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이 채워 주시지 가득히 담고 있으면 채울 곳이 없습니다. 가득히 담아 있는데 또 무엇을 채워요. 채울 틈이 없잖아요. 죄악과 세상이 가득하면 하늘나라를 어떻게 채워요? 벌써 가슴 속에 죄가 꽉 들어차고, 세상이 꽉 들어차 있는데, 거기에 하늘나라가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4:17)는 것은 죄와 세속을 회개하고 비워 버려야, 천국이 들어올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빈 마음에 가득히 임하는 것이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죄와 세상을 다 회개하고 털어 버리고 빈 그릇이 될 때 가득해지는 것입니다. 탐욕을 비워야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에 욕심이 꽉 들어차서 자기 욕심대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욕심은 우상입니다. 우리가 나무나 돌이나 그런 것을 가지고 형상을 만들어 절하는 것만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탐욕은 곧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욕심이 우상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우상숭배자는 절대로 천당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아주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욕심을 갖고 있으면 엄청난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욕은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탐욕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절대로 채워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도 십일조와 헌물을 아끼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는데, 십일조가 아깝고 헌물이 아까워서 그것을 안 드리고 하나님 축복만 주십시오. 십일조가 헌물이라는 탐욕을 비워 놓아야 그 그릇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그 그릇을 안 비워 놓는데 어떻게 복을 주십니까? 저는 목회 시작할 때 한 푼도 없는 빈털터리였었습니다. 불광동에서 서대문에 버스비가 없어서, 늘 걸어서 왔다 갔다 하고, 옷은 한 벌로써 봄, 여름, 가을, 겨울 갈아입을 필요 없이 한 벌만 있으면 다 입어요. 좀 살게 되고 난 다음에 팬티도 입고, 런닝도 입었지 팬티도 런닝구도 없이 살았습니다. 완전히 거지대장이었습니다. 교회는 뚫어진 천막에다가 가마니 깔고 살았어요. 그래도 내게 무엇 하나 생기면 십일조는 반드시 드렸습니다. 반드시 드렸어요. 점심때가 되면, 제가 점심을 먹고 올라오는데 우리 손자와 같이 점심을 먹는데, 우리 손자인 성욱이가 올 때마다, 할아버지에게 뭘 갖다 줍니다. 자기가 먹던 과자도 있으면 내게 갖다 주고, 바나나도 꺾어서 갖다 주고, 강냉이도 갖다 주고, 먹기 싫은 과자도, 젤리도 주고 자꾸 나에게 손에 쥐어주고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속으로 ‘네가 날 닮았구나? 주기를 좋아하는 날 닮았구나.’ 저는 원래부터 하나님께 드리기 원하고, 이웃에 주기를 좋아했었습니다. 이래서 있는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에 늘 도움을 베풀었는데, 그 어려운 시기에 심고 난 다음, 잠시 동안 어려움을 당했지만 50년의 목회생활에 99%는 하나님이 상상할 수 없는 축복과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내가 쌓을 것이 없도록 붓지아니하나 보란대로 그대로 해주신 것입니다. 저는 실제 나의 생활 속에 50년 동안 경험하고 배워서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해주신 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것으로 심고 비워 놓아야 하나님이 채워 주시지 내가 가득히 채워 놓고 난 다음에 복을 달라고 하면은 잘못된 것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로 12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야훼의 말이니라”
하나님 거짓말 하시겠습니까? 하나님 거짓말 하면, 저 하늘 지으시고, 이 땅을 지으신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님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말씀대로 시행하고,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믿고 있으면 빈 그릇은 다 채워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신 주님, “도적이 오는 것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했는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풍성케 하사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을 착한 일은 넘치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뭐 있어야 착한 일을 하지 쥐뿔도 없는데, 무슨 착한 일을 해요? 하나님을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남을 복되게 하지, 아무것도 없는데 누구에게 복을 나눠줄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사랑과 행복을 이웃과 나누라고 하는데, 무엇이 있어야 나누지 않습니까? 그러나 내가 조그마한 것을 가지고 나누면, 하나님은 더 주시고 또 그것을 나누면 더 주시고, 하나님은 자꾸 주시는 양을 크게 하고, 그릇을 크게 하는 것입니다. 그릇이 있어야 복을 줘요. 엘리사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떠서 그 과부가 엘리사에게 와서 “엘리사 선생님! 우리 남편이 선지자인데 세상을 떴는데 채주들이 와서 애들을 잡아서 종으로 팔겠다고 합니다. 살려주십시오.”엘리사가 “집에 뭐가 있느냐?” “먹다 남은 기름 조금밖에 없습니다.” “어.. 집에 돌아가서 애들을 시켜서 이웃의 그릇을 빌리되, 많이 빌려라. 그리고 문을 닫아놓고 그 기름병으로 그릇에다가 부어라.” 그래서 이 과부가 애들 시켜서 이웃에서 모든 양푼과 대야를 다 빌렸습니다. 그리고 집에 부엌에 갖다 놓고, 문 닫아 놓고 그 조그마한 기름병 갖다 부으니까 기름이 줄줄 나오는데 끝이 없어요. 한 그릇 채워 놓고도 다른 그릇 내오니까 또 줄줄 나오고 또 줄줄 나오고 온 집에 있는 그릇에 기름이 가득차고 난 다음에 애보고 “얘야~ 또 대야 가지고 오너라!” “엄마 다 가져 왔어요. 이제 없어요.” 그러니까 기름이 뚝 그쳐 버렸어요. 기름이 그릇이 있을 동안에는 늘 흐르지만, 그릇이 없으면 그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계속 빈 그릇을 만들어야 계속 부어 주시지, 여러분 빈 그릇을 안 만들면 축복은 그칩니다. 내게 주시는 축복을 자꾸 나누어 주어서 내가 자꾸 적은 그릇을 비우면 큰 그릇으로 또 채워주고 큰 그릇을 비우면 더 큰 그릇으로 채워주는 것이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하나님은 그 풍성한대로 우리 쓸 것을 더하시고 채워 주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나는 이 성경만 보면 친정어머니가 눈에 보여요. 요사이는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 시집살이하다가 고생 많이 하고 친정에 왔다가 시집에 갈 때, 친정어머니가 부엌으로 불러다가, 조그마한 그릇에 딸이나 손녀가 함께 그 그릇에 보리나 쌀을 이렇게 대에 넣어서, 흔들어 가지고 눌러서, 또 넘치게 해서, 싸서, 안겨 보내는 것입니다. 더 주려고 무수히 애를 쓰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냥 그릇에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후히 되어서 또 눌러 가지고서 더 흔들어 가지고서, 또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 이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게 여러분의 하나님이요, 이게 여러분의 친아버지요, 여러분을 지으신 자의 소원인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데 왜 헐벗고 굶주린다는 말인 것입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런 것은 염려하지 말라. 이는 이방인들이 염려하는 것이요, 너희 천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좋은 하나님을 여러분 의지하고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젊은 사업가인 워너 메이커가 하루는 장미 화원을 잘 가꾼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그 집의 주인은 워너 메이커를 정원으로 데리고 나가서, 백장미와 흑장미 등 온갖 종류의 장미들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더니 장미꽃들을 꺽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마누라 닮았는가봐. 우리 정원에 나가면 나무들이 좋고, 꽃들이 잘 피었는데 ,우리 집사람하고 나가기만 하면 자꾸 나무를 꺾어요. 나는 너무 아까워 못 견디겠는데 “아 그것 꺾지마라고..” 꺾어야 잘된다고 자꾸 꺾습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읽기 전까지도 섭섭하게 생각했는데 이 이야기를 읽고 보니까 우리 마누리가 나보다 지혜가 있어요. 장미꽃을 꺾기 시작했는데, 몇 개의 덩굴은 꽃 한 송이만 남겨두고, 모두 가지를 다 꺾어 버립니다. 이를 보고 놀란 워너 메이커가 물었습니다. "아니, 왜 가지를 모두 칩니까?" 그러자 집 주인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좋은 장미 덩굴을 만들려면 가지를 다 쳐버려야 됩니다. 내가 가지를 쳐서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워너 메이커는 가지를 잘라내도 잃는 것이 없다는 말에 큰 교훈을 받고 충격을 얻었습니다. ‘아.. 내 사업에 여러 가지 가지를 쳐서 자꾸 나누어 줘버리면 본통 사업이 축복을 받는구나!’ 가지를 그대로 늘여 놓으면 꽃들이 장미꽃이 조그마한 것만 달랑달랑 달리는데 다 꺾어버리니까 몇 송이 피더라도 큼직하고, 보암직하게, 피는 것처럼 복도 자잘한 것은 다 나누어 줘버려야 큼직한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워너 메이커는 이 사실을 깨닫고 그 사업체는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미국의 대재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욕심과 탐욕을 비워 빈 그릇이 될 때 가득히 채울 수 있습니다.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리고, 사랑과 행복을 나누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은 다 나눠드리고, 다 흩어주고, 우리 생활에 가지를 꺾어 가지고서, 너무 늘어진 것 다 나눠주고 나면은 하나님이 크게 열매 맺게 해주는 것입니다. 좌우간 인생은 너무 복잡하게 살지말고 단순하게 사는 게 좋습니다. 먹지도 않을 것 집에 갖다 놓고, 쓰지도 않을 것 벽장 속에 두지 말고, 오늘 가서 다 가지고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에 가지고 오세요. 베게도 좋고 홑이불도 좋고, 담요도 좋고, 먹던 약도 좋고, 내가 안 쓰는 것을 왜 가지고 있습니까? 나 쓰기는 필요 없고 남 주기는 아깝고 썩을 때까지 갖다 놓습니다. 사실 여러분 벽장 열어보면 쓸데없는 것 많아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먹는것 많이 있고 돈도 남아서 안 쓰고 놔두고 있으면 가지고 오세요. 하하하..좌우간 자꾸 비워야 하나님이 성령의 기름이 부어지지 비우지 아니하면 안부어지는 것입니다. 버려야 얻는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4. 내가 죽을 때 영원히 산다
넷째로, 내가 죽을 때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왜냐 나는 두 사람이 함께 살거든요. 속사람과 겉사람이 함께 살아요. 여러분 모두다 이중인격입니다. 속에 영혼의 사람과 육신의 사람 두 사람이 살아요. 그런데 그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죽어야 다른 사람이 사는 것인데, 세상 사람은 속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육신만 살다가 70, 80, 90 되면 흙으로 돌아가고 지옥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살려면 정욕과 탐욕과 욕심인 겉사람이 죽어야 돼요.
요한일서 2장 15절로 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에 탐욕은 다 세상 육신에 속한 것 아닙니까? 보는 대로, 듣는 대로, 만지는 대로 그대로 다 가지고 싶고, 방탕하고 허랑한 육신을 따라 살면 영은 죽어요. 육신을 죽이고,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면 육은 싫어하지요. 그러나 영은 사는 것입니다. 주일날 교회 안 나오고 세상에 놀러 다니고, 등산가고, 낚시가고 하면 육은 재밌지요. 그러나 영은 말씀 못 먹고 굶주려 죽지 않습니까? 기도 안하고 텔레비젼 보고 허~~ 하고 있으면 육은 좋지요. 그러나 영은 말라 죽지요. 세상에 화려한 것에 취해서 세상을 따라 가면 육은 좋아하지만 영은 죽습니다. 영은 교회를 찾아와서 말씀 읽고, 기도하고, 하나님 찬양하면 살지요. 그러나 이 세상은 얼마 있지 아니하여 끝나잖아요. 제가 20대, 30대에는 60,70이 되면 ‘와따~ 고목나무구나. 곰팡이 폈구나. 얼마 안 있으면 사라지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내가 그 고목나무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람 사는 것 여러분,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입니다. 젊다고 자랑하지 마세요. 나도 옛날에 자랑했다고.. 순식간에 할아버지, 할머니 되고 말아요. 육신의 삶이란 있는 것 같은데 벌써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는 영혼을 구원해야 돼요. 영혼을 잃어버리면 온 천하를 구해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름다운 국민 아이돌(idol)이 된 배우가 자살을 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왜 죽노? 살아야지. 세상을 따라 살다 가니까 세상에 절망이 오니까 생명을 끊잖아요. 세상이 그런 겁니다. 세상이 한때는 환영을 하다가 필요 없으면 짓밟고 욕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았으면 좋을 때는 하나님이 좋아서 좋고 나쁠 때는 하나님이 위로하고 붙들어 주시니 좋고 하나님 보다 더 좋은데가 어디 있는 것입니까? 예수를 믿고 아버지를 섬기고 살았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피투성이가 되어도 살아야지. 하나님이 주신 영(令)대로 이 땅에 살고 하나님 섬기며 살다가 하나님 오라 하실 때 천국에 들어가면 영원무궁토록 부귀와 영화와 공명은 견줄 수가 없는 아름다운 삶을 살 것인데 그 길을 택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로 21절에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항상 예수와 함께 육신의 세상에서 나는 죽고, 십자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꿈꾸고, 그렇게 믿고, 그렇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원으로 해서 이전 것인 그 겉사람은 죽었습니다. 십자가에 그리스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장사 되었다가 부활한 것을 새사람이 살아난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사람이 되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난 변화를 항상 생각하고,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고 꿈꾸고 믿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고, 새사람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애써야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기만 하면 무조건 하고 은혜로 구원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는 육체는 점점 죽이고, 영적으로는 점점 살아나야 되는 것입니다. 자라나야 돼요. 어린아이로 태어나는 것은 어머니가 태어나게 해서 태어났는데, 그 다음 지가 먹어야지요. 그래야 자라지 안자라고 핏덩어리로 남아 있으면 안 되잖아요. 예수 믿고 구원 받았으면 영적으로 성장해야 되고, 장성하게 되어야 천국을 나가서 장성한 분량대로 은혜를 받습니다. 천국에 올라가서 다 똑같은 곳에 사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안 자란 어린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살고 초등학교 정도는 초등학교에 살고 대학정도 자란 사람은 대학정도 살고 완성된 사람은 완성된 곳에서 살고 천국에 차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천국에 주님께 더 가까이 가서 살지, 천국 말죽거리에 가서 사는 여러분 안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요사이는 말죽거리가 좋게 되었지만 우리 어릴 때는 말죽거리가 우스웠어요. 그러므로 예수가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다고 생각하십시오. 예수와 함께 죽었다고 꿈꾸십시오. 예수와 죽었다고 믿으십시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습니다. 지금은 성령을 모시고 속사람이 살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여러분, 성경에는 내가 약할 때 주님께서 붙들어 주므로 강하고, 내가 하나님께 항복해서 두 손 들었을 때, 하나님은 나에게 이기게 만들어 주시고, 나를 비우면 충만하게 되고, 내가 죽으면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으시기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강하다고 할 때, 사실은 약하고,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고, 고집부릴 때 깨어지고, 나를 채워 놓으면 빈 그릇 되고 내가 살면 영원이 죽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 십자가의 도리를 따라 우리는 항상 나를 의지하지 말고 나를 강하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께 깨어져서 항복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도와 주시옵시고, 내 자신을 항상 비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도와 주시옵시고, 나의 영혼이 살기 위해서 육체가 십자가에 늘 못 박혀 죽게 만들어 주옵소서. 도와주옵소서. 이 세상이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하나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사람이 자기 목숨과 무엇과 바꾸겠습니까? 순식간에 지나가는 세상 붙잡고 살다가 영혼을 잃어버려 지옥 불에 타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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