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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3: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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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3·10·04
우리는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참으로 좋은 교회가 되기를 열망하면서 이 교회를 창립하였습니다. 어떤 교회가 주님께 칭찬을 받게 될까요? 큰 교회? 일을 많이 하는 교회? 재정이 풍부한 교회? 시설이 훌륭한 교회? 여러분은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과연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앞으로 우리 교회는 성도의 수도 많아지고, 재정도 넉넉해지고, 예배당도 아름답게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만 가지고는 주님께 칭찬 받는 교회가 되기 어렵습니다. 오늘은 칭찬 받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이렇게 칭찬 받는 교회가 되도록 새롭게 다짐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절대 주권자이신 주님(7절)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자신의 모습을 절대 주권자의 모습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이가 가라사대"(7절)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막으시면 사람이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전적으로 주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고 주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절대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며,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님의 절대 주권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사람의 생각이 앞서고, 성령님의 음성이 희미해져가면 그 교회는 결코 좋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교회는 목사나 어떤 영향력 있는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되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에 순종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시는 주님은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보여주셨습니다.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2:1) 일곱 별은 교회의 목회자들을 의미하며, 일곱 금촛대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교회의 주인이시며 교회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전적으로 주님의 통치에 복종해야 하며, 그런 교회라야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 참좋은교회는 사람이 주인 노릇을 하지 않고 오직 주님께서 주인이 되시는 교회, 주님의 절대 주권에 온전히 복종하는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성도가 주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에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말세의 가장 모범적인 교회상
빌라델비아 교회는 말세의 교회를 대표하는 교회입니다. 10절이 이것을 보여줍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말세의 교회는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인데, 마24장에서 주님께서는 말세에 교회가 당하게 될 환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세란 주님께서 초림하셨던 때부터 재림하실 때가지를 가리킵니다. 오늘 우리는 말세 중에서도 마지막 때를 살고 있습니다. 말세에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성도는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교회를 이러한 환난 가운데 오래 두지 않으시고 속히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 때문에 당하는 환난을 두려워하거나 실망하여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 지키는 일 때문에 환난 당하는 일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참지 못하고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면 곧 오실 주님 앞에서 얼마나 부끄럽게 되겠습니까? 좋은 교회는 믿음 때문에 환난을 당하게 될 때 주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이기는 교회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말세에 대하여 생각할 때 주님 오시는 날이 과연 언제냐 하는 문제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는 주님께서 언제 오실 것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오실 때가 가까운 이 때에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는 데 있어야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 환난의 시대, 이 말세에 성도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어떤 면에서 말세를 사는 오늘 우리에게 모범이 되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적은 능력으로 충성을 다한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킨 교회였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8절) 여기서 적은 능력이라는 말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교세를 말하는 것인지, 재산이나 영향력을 말하는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미약한 교회였음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대개 교회가 작으면 목회자나 성도들이 자포자기하거나 비관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적은 능력을 가진 교회, 미약한 교회였으나 그것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으로 주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좋은 교회가 되려면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큰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가 작은 교회라고 해서 스스로 초라하게 여기고 비관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을 가지고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약함을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완전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당장 큰 것을 요구하지도 않으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적은 것을 가지고 주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비록 우리가 적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최선을 주님께 바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보실 때 미약한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그야말로 참 좋은 교회입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하여 주님께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난 중에 승리한 교회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칭찬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8절) 그들이 당한 고난은 무엇이었을까요? 빌라델비아 교회가 받은 고난은 불신자들이나 우상숭배자들에게서 받은 핍박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서 받은 핍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 중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너는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그 사람을 추방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추방된 사람은 유대인들과의 교제가 단절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유대인들의 예배와 친교의 장소였던 회당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황제를 거역하는 자들라고 로마의 관청에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바쳐 섬기던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그들의 믿음과 소망을 조롱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서 핍박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환난 가운데서도 빌라델비아 성도들은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인간관계가 어려워질 때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이나 문제를 주목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나 문제에 집중하면 할수록 문제는 더 꼬이고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문제가 어려워질수록 하나님과 나 사이를 점검하며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고 고통을 당한다고 해서 사람을 원망하며 억울해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해야만 하겠는가를 생각하게 되면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성도들은 이런 믿음으로 고난을 이겼습니다.
오늘 우리가 좋은 교회가 되려면 이러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비교적 믿음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은 핑계거리만 생겨도 신앙을 등한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기보다는 남을 원망하고 미워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때 믿음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교회가 되려면 모든 성도들이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며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어려울 때일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어려움을 만날수록 믿음을 지키며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질 때,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선교의 기회를 포착했던 교회
주님께서는 특별히 빌라델비아 교회가 적은 능력으로도 말씀을 지켰다고 칭찬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는 선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원하는 성도는 반드시 선교에 헌신하게 됩니다. 주님의 가장 큰 명령이 선교이기 때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선교의 기회를 잘 포착하여 선교의 명령에 순종했던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라는 도시는 로마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로써 아시아로 통하는 관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이 도시를 통하여 로마의 정치적, 문화적인 영향력을 아시아에 확산시켰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바로 이러한 조건을 복음 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선교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힘을 다하여 감당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선교의 기회를 주실 때 교회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감당해야 합니다. 이 기회를 놓쳐버리면 곧 문이 닫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중국에는 선교를 위한 절호의 기회가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마르코폴로 형제는 원나라를 방문하고 1269년에 이탈리아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원나라의 황제는 징기스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이었는데, 이 황제가 마르코폴로 형제를 통하여 편지를 한 통 보내왔습니다. 그 내용은 많은 과학자들과 종교를 가르칠 많은 교사를 보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를 보내달라는 이 요구를 받고 1294년까지 중국에 보내진 선교사는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쿠빌라이 칸 황제는 이미 죽은 뒤였고, 선교의 기회는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중국에 선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에 맥아더 장군은 미국 선교본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지금 일본은 선교의 황금기를 맞고 있습니다. 수천 명의 선교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의 편지를 받은 후 10년 동안 일본에 보내진 선교사는 백 명도 못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일본 사람들은 돈과 물질주의에 빠지게 되었으며, 그와 함께 복음에 대한 관심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복음 전하기가 가장 어려운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일본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는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일본과는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선교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감당하는 일은 한 나라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버릴 정도로 이렇게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선교를 위한 기회를 주실 때, 잘 감당하지 못하면 그 기회가 지나가 버리고 우리는 불충한 자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과 비전을 가진 교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는 주님께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작은 교회지만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선교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약해서 선교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복음 전파의 열정을 가지고 힘을 다하여 감당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주님께 칭찬을 받게 됩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
이처럼 적은 힘을 가지고도 충성을 다하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님께서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나타나셔서 그들 앞에 기회의 문을 열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의 열쇠는 구약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사22:15,20-22).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입을 받았을 때 셉나라는 반역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궁중에도 출입했고, 나라의 가장 중요한 국고도 마음대로 열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반역자 때문에 나라가 매우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사람을 세우셨는데 그 사람이 바로 엘리야김이었습니다. 그에게 열쇠를 맡겨 그가 궁중을 마음대로 출입하면서 국고를 관리하게 하셨습니다. 이 엘리야김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마치 엘리야김이 다윗 왕국의 열쇠를 가진 것처럼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바로 이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두신 것입니다. 이 문은 특별히 선교의 기회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문을 열어 주실 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문을 여시면 닫을 자가 없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서 서머나 교회와 더불어 칭찬만 받았던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가 어떻게 칭찬 받은 교회가 될 수 있었을까요?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의 절대주권에 겸손히 복종하는 교회였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교회의 주인이심을 잊지 맙시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으로 충성을 다하는 교회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미약할지라도 나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고난 중에서도 믿음을 지켜 승리한 교회였습니다. 참좋은교회 성도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빌라데비아 교회는 선교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감당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을 따라서 복음 전하기를 힘쓰며, 주님 오실 때까지 세계선교에 열정을 가지고 힘써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주님 오실 때 이 땅에 있는 수많은 교회들 중에 칭찬 받는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어떤 사람이 행복을 찾아서 큰 산을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행복은 없고 흰 말뚝에 “산 너머 저 쪽”이라고 쓰여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또 산을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역시 그 곳에도 흰 말뚝만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수 차례 했지만 행복이란 찾을 수조차 없었고, 흰 말뚝도 볼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늙어서 눈이 어두워 말뚝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아 해메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헛된 것인가를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독일의 시인 C. Busse는 이런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산 너머 저 쪽 하늘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건만,
아, 남 따라 행복을 찾으러 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네.
산 너머 저 쪽 하늘 저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건만.“
행복의 조건
사람들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할 줄 압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돈이 많아도, 건강해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면 돈이나 건강은 행복의 절대조건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진정한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진정한 행복의 조건은 3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되어 있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되어 있지 못하면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다 해도 결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둘째는 가정이 온전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교회 생활이 온전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되는 것과 가정이 온전하게 되는 것은 교회를 통해서 되어집니다. 그러므로 교회 생활이 온전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 생활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교회 생활이 온전하려면 좋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좋은 교회에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는 데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모범적인 교회였던 빌라델비아 교회를 통해서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를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충성을 다한 교회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켰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이 교회는 고난 중에 믿음을 지키고 승리했으며, 특히 선교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한 것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비록 교회가 크지 못하다 해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교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믿음을 지켜 충성을 다하는 교회,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빌라델비아 교회는 미약한 교회였는데도 칭찬을 받은 좋은 교회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미약한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적은 것을 적다 하지 않고 말씀을 지켜 나갈 때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교회를 위하여 주님께서는 기회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해야 할 것을 보여 주시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그 말씀을 지키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이렇게 계속해 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되며, 놀라운 일들을 감당하게 되며, 좋은 교회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씩 말씀을 지켜 순종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사용하실 것이며, 좋은 교회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성경을 배워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좋은 교회가 되는 관건은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잘 깨닫고 그대로 순종함으로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가는 것만으로 신앙생활 다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복음서를 조사해보면 ‘설교하다’(케리그마)라는 말이 한 번 나올 때 ‘가르치다’(디다케)라는 말은 열 번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한 번 설교하실 때 열 번 가르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가르치는 것에 큰 비중을 두신 것은 성경을 배우는 것이 신앙생활에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좋은 교회가 되려면 성도들이 성경을 열심히 배워야 하며, 신앙생활 잘 하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성경을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좋은 교회가 되는 관건은 주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지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참좋은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배우는 데 열심을 내어 진정으로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교회에게 주시는 축복의 약속들
주님께서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키며,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음 전파에 힘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많은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곧 승리의 기쁨과(9절) 시험에서 지키심(10절), 주님께서 속히 임하심(11절),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런 축복들(12절)입니다. 우리가 좋은 교회가 되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승리
주님께서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키며,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음 전파에 힘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승리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9절)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그 도시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많은 핍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주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늘 괴롭힘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을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사단의 회라고 폭로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 중 몇 사람을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굴복하게 하심으로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성도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과 주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 그리고 빌라델비아 성도들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임을 나타내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굴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유대인 회중의 중요한 지도자 몇 사람이 그리스도인들의 전도를 통하여 개종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지켜 본 빌라델비아 성도들은 얼마나 힘이 났겠습니까? 핍박만 당하는 줄 알았더니, 그렇게 핍박하던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교회에 나와서 주님을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였으며, 복음의 승리요 교회의 승리를 의미했습니다. 이렇게 개종한 유대인들은 소아시아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가 어떤 어려움 가운에서도 믿음을 굳게 지키면 주님께서 핍박하던 사람들, 마음이 완악하고 닫힌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부흥되려면 어떤 경우에도 믿음 지키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더욱 믿음을 지키며 승리하는 교회가 됩시다. 이런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지켜주심
빌라델비아 성도들이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지켰으므로 이제 주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10절). 주님께서는 시험과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며 말씀을 순종하며 끝까지 충성하는 성도를 지켜주십니다. 시험과 환난이 심할 때 주님께 대한 믿음과 충성을 지킨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해서 믿음을 버리거나 타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주님께서 지켜주시는 기적을 결코 맛볼 수 없습니다. 그런 신앙생활은 생명이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믿음을 지킴으로 주님께서 지켜주시는 은혜를 힘입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교회, 그리하여 주님께서 지켜주시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속히 임하시는 주님
교회는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끊임없이 환난을 당한다. 믿음을 지키려면 반대와 핍박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환난 당하는 교회를 그냥 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특히 심한 환난을 당할 때 주님께서 속히 임하셔서 교회를 구원해 주십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11절)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 지키는 것 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환난을 당한다 해도 주님께서 속히 임하셔서 구원해 주실 것을 바라보면서 인내해야 합니다.
상급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렇게 충성되고 복음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헌신한 교회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빌라델비아 교회는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계속되면 인간은 연약하여 실망하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교회에게 바로 그것을 굳게 붙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상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다가 핍박이나 고통스러운 일을 당할 때 우리는 너무 힘이 들어서 뒤로 물러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상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경기하는 선수들을 보십시오. 그렇게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지 않습니까?
빌라델비아 교회는 상을 잃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핍박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이 교회를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이 교회는 다른 교회들이 다 사라져 갈 때도 소아시아 지역에 끝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1차 대전 때까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전쟁이 끝난 후 그리스로 떠났다고 합니다. 이 교회는 끝까지 믿음을 지켰으며, 선교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교회를 끝까지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주님께서 인정하시고 끝까지 사용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이기는 교회에게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12절) 이것은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가 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운 이름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세력 있고 지위가 높은 권세자들 섬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하물며 우리가 전능하신 창조주,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며 특권입니까?
주님께서는 ‘나가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빌라델비아는 지진이 잦아서 지진이 날 때마다 사람들은 이사를 다니곤 했다고 합니다. 최근에도 그 지역에 큰 지진이 일어나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고 많은 피해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켜 이기는 자에게 주님께서는 다시는 지진과 같은 환난으로 인하여 이사 다니는 일이 없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을 지킨 성도들이 장차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나가지 않고 살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무엇도 믿음을 지키고 주님께 충성을 다한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품, 은혜의 보좌 앞에서 내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를 하나님 집의 기둥으로 삼으시고, 그 기둥 위에다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님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인정하시며 사랑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된 일입니까? 이러한 상급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좋은 교회는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의 주권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교회입니다. 적은 능력으로 충성을 다하는 교회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음전파에 힘쓰는 교회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교회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교회를 환난 가운데서지켜주시고 승리하게 하시며, 하나님 나라에서 큰 상급을 얻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는 진정으로 행복한 성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좋은 교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참으로 좋은 교회가 되기를 열망하면서 이 교회를 창립하였습니다. 어떤 교회가 주님께 칭찬을 받게 될까요? 큰 교회? 일을 많이 하는 교회? 재정이 풍부한 교회? 시설이 훌륭한 교회? 여러분은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과연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앞으로 우리 교회는 성도의 수도 많아지고, 재정도 넉넉해지고, 예배당도 아름답게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만 가지고는 주님께 칭찬 받는 교회가 되기 어렵습니다. 오늘은 칭찬 받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이렇게 칭찬 받는 교회가 되도록 새롭게 다짐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절대 주권자이신 주님(7절)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자신의 모습을 절대 주권자의 모습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이가 가라사대"(7절)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막으시면 사람이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전적으로 주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고 주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절대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며,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님의 절대 주권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사람의 생각이 앞서고, 성령님의 음성이 희미해져가면 그 교회는 결코 좋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교회는 목사나 어떤 영향력 있는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되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에 순종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시는 주님은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보여주셨습니다.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2:1) 일곱 별은 교회의 목회자들을 의미하며, 일곱 금촛대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교회의 주인이시며 교회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전적으로 주님의 통치에 복종해야 하며, 그런 교회라야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 참좋은교회는 사람이 주인 노릇을 하지 않고 오직 주님께서 주인이 되시는 교회, 주님의 절대 주권에 온전히 복종하는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성도가 주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에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말세의 가장 모범적인 교회상
빌라델비아 교회는 말세의 교회를 대표하는 교회입니다. 10절이 이것을 보여줍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말세의 교회는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인데, 마24장에서 주님께서는 말세에 교회가 당하게 될 환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세란 주님께서 초림하셨던 때부터 재림하실 때가지를 가리킵니다. 오늘 우리는 말세 중에서도 마지막 때를 살고 있습니다. 말세에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성도는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교회를 이러한 환난 가운데 오래 두지 않으시고 속히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 때문에 당하는 환난을 두려워하거나 실망하여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 지키는 일 때문에 환난 당하는 일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참지 못하고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면 곧 오실 주님 앞에서 얼마나 부끄럽게 되겠습니까? 좋은 교회는 믿음 때문에 환난을 당하게 될 때 주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이기는 교회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말세에 대하여 생각할 때 주님 오시는 날이 과연 언제냐 하는 문제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는 주님께서 언제 오실 것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오실 때가 가까운 이 때에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는 데 있어야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 환난의 시대, 이 말세에 성도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어떤 면에서 말세를 사는 오늘 우리에게 모범이 되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적은 능력으로 충성을 다한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킨 교회였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8절) 여기서 적은 능력이라는 말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교세를 말하는 것인지, 재산이나 영향력을 말하는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미약한 교회였음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대개 교회가 작으면 목회자나 성도들이 자포자기하거나 비관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적은 능력을 가진 교회, 미약한 교회였으나 그것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으로 주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좋은 교회가 되려면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큰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가 작은 교회라고 해서 스스로 초라하게 여기고 비관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을 가지고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약함을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완전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당장 큰 것을 요구하지도 않으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적은 것을 가지고 주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비록 우리가 적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최선을 주님께 바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보실 때 미약한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그야말로 참 좋은 교회입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하여 주님께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난 중에 승리한 교회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칭찬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8절) 그들이 당한 고난은 무엇이었을까요? 빌라델비아 교회가 받은 고난은 불신자들이나 우상숭배자들에게서 받은 핍박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서 받은 핍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 중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너는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그 사람을 추방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추방된 사람은 유대인들과의 교제가 단절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유대인들의 예배와 친교의 장소였던 회당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황제를 거역하는 자들라고 로마의 관청에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바쳐 섬기던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그들의 믿음과 소망을 조롱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서 핍박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환난 가운데서도 빌라델비아 성도들은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인간관계가 어려워질 때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이나 문제를 주목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나 문제에 집중하면 할수록 문제는 더 꼬이고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문제가 어려워질수록 하나님과 나 사이를 점검하며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고 고통을 당한다고 해서 사람을 원망하며 억울해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해야만 하겠는가를 생각하게 되면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성도들은 이런 믿음으로 고난을 이겼습니다.
오늘 우리가 좋은 교회가 되려면 이러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비교적 믿음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은 핑계거리만 생겨도 신앙을 등한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기보다는 남을 원망하고 미워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때 믿음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교회가 되려면 모든 성도들이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며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어려울 때일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어려움을 만날수록 믿음을 지키며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질 때,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선교의 기회를 포착했던 교회
주님께서는 특별히 빌라델비아 교회가 적은 능력으로도 말씀을 지켰다고 칭찬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는 선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원하는 성도는 반드시 선교에 헌신하게 됩니다. 주님의 가장 큰 명령이 선교이기 때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선교의 기회를 잘 포착하여 선교의 명령에 순종했던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라는 도시는 로마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로써 아시아로 통하는 관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이 도시를 통하여 로마의 정치적, 문화적인 영향력을 아시아에 확산시켰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바로 이러한 조건을 복음 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선교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힘을 다하여 감당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선교의 기회를 주실 때 교회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감당해야 합니다. 이 기회를 놓쳐버리면 곧 문이 닫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중국에는 선교를 위한 절호의 기회가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마르코폴로 형제는 원나라를 방문하고 1269년에 이탈리아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원나라의 황제는 징기스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이었는데, 이 황제가 마르코폴로 형제를 통하여 편지를 한 통 보내왔습니다. 그 내용은 많은 과학자들과 종교를 가르칠 많은 교사를 보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를 보내달라는 이 요구를 받고 1294년까지 중국에 보내진 선교사는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쿠빌라이 칸 황제는 이미 죽은 뒤였고, 선교의 기회는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중국에 선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에 맥아더 장군은 미국 선교본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지금 일본은 선교의 황금기를 맞고 있습니다. 수천 명의 선교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의 편지를 받은 후 10년 동안 일본에 보내진 선교사는 백 명도 못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일본 사람들은 돈과 물질주의에 빠지게 되었으며, 그와 함께 복음에 대한 관심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복음 전하기가 가장 어려운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일본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는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일본과는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선교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감당하는 일은 한 나라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버릴 정도로 이렇게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선교를 위한 기회를 주실 때, 잘 감당하지 못하면 그 기회가 지나가 버리고 우리는 불충한 자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과 비전을 가진 교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는 주님께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작은 교회지만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선교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약해서 선교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복음 전파의 열정을 가지고 힘을 다하여 감당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주님께 칭찬을 받게 됩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
이처럼 적은 힘을 가지고도 충성을 다하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님께서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나타나셔서 그들 앞에 기회의 문을 열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의 열쇠는 구약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사22:15,20-22).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입을 받았을 때 셉나라는 반역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궁중에도 출입했고, 나라의 가장 중요한 국고도 마음대로 열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반역자 때문에 나라가 매우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사람을 세우셨는데 그 사람이 바로 엘리야김이었습니다. 그에게 열쇠를 맡겨 그가 궁중을 마음대로 출입하면서 국고를 관리하게 하셨습니다. 이 엘리야김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마치 엘리야김이 다윗 왕국의 열쇠를 가진 것처럼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바로 이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두신 것입니다. 이 문은 특별히 선교의 기회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문을 열어 주실 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문을 여시면 닫을 자가 없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서 서머나 교회와 더불어 칭찬만 받았던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가 어떻게 칭찬 받은 교회가 될 수 있었을까요?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의 절대주권에 겸손히 복종하는 교회였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교회의 주인이심을 잊지 맙시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으로 충성을 다하는 교회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미약할지라도 나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고난 중에서도 믿음을 지켜 승리한 교회였습니다. 참좋은교회 성도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빌라데비아 교회는 선교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감당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을 따라서 복음 전하기를 힘쓰며, 주님 오실 때까지 세계선교에 열정을 가지고 힘써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주님 오실 때 이 땅에 있는 수많은 교회들 중에 칭찬 받는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어떤 사람이 행복을 찾아서 큰 산을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행복은 없고 흰 말뚝에 “산 너머 저 쪽”이라고 쓰여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또 산을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역시 그 곳에도 흰 말뚝만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수 차례 했지만 행복이란 찾을 수조차 없었고, 흰 말뚝도 볼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늙어서 눈이 어두워 말뚝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아 해메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헛된 것인가를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독일의 시인 C. Busse는 이런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산 너머 저 쪽 하늘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건만,
아, 남 따라 행복을 찾으러 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네.
산 너머 저 쪽 하늘 저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건만.“
행복의 조건
사람들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할 줄 압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돈이 많아도, 건강해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면 돈이나 건강은 행복의 절대조건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진정한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진정한 행복의 조건은 3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되어 있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되어 있지 못하면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다 해도 결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둘째는 가정이 온전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교회 생활이 온전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되는 것과 가정이 온전하게 되는 것은 교회를 통해서 되어집니다. 그러므로 교회 생활이 온전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 생활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교회 생활이 온전하려면 좋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좋은 교회에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는 데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모범적인 교회였던 빌라델비아 교회를 통해서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를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충성을 다한 교회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켰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이 교회는 고난 중에 믿음을 지키고 승리했으며, 특히 선교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한 것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비록 교회가 크지 못하다 해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교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믿음을 지켜 충성을 다하는 교회,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빌라델비아 교회는 미약한 교회였는데도 칭찬을 받은 좋은 교회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미약한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적은 것을 적다 하지 않고 말씀을 지켜 나갈 때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교회를 위하여 주님께서는 기회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해야 할 것을 보여 주시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그 말씀을 지키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이렇게 계속해 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되며, 놀라운 일들을 감당하게 되며, 좋은 교회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씩 말씀을 지켜 순종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사용하실 것이며, 좋은 교회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성경을 배워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좋은 교회가 되는 관건은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잘 깨닫고 그대로 순종함으로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가는 것만으로 신앙생활 다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복음서를 조사해보면 ‘설교하다’(케리그마)라는 말이 한 번 나올 때 ‘가르치다’(디다케)라는 말은 열 번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한 번 설교하실 때 열 번 가르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가르치는 것에 큰 비중을 두신 것은 성경을 배우는 것이 신앙생활에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좋은 교회가 되려면 성도들이 성경을 열심히 배워야 하며, 신앙생활 잘 하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성경을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좋은 교회가 되는 관건은 주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지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참좋은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배우는 데 열심을 내어 진정으로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교회에게 주시는 축복의 약속들
주님께서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키며,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음 전파에 힘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많은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곧 승리의 기쁨과(9절) 시험에서 지키심(10절), 주님께서 속히 임하심(11절),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런 축복들(12절)입니다. 우리가 좋은 교회가 되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승리
주님께서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키며,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음 전파에 힘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승리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9절)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그 도시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많은 핍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주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늘 괴롭힘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을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사단의 회라고 폭로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 중 몇 사람을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굴복하게 하심으로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성도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과 주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 그리고 빌라델비아 성도들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임을 나타내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굴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유대인 회중의 중요한 지도자 몇 사람이 그리스도인들의 전도를 통하여 개종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지켜 본 빌라델비아 성도들은 얼마나 힘이 났겠습니까? 핍박만 당하는 줄 알았더니, 그렇게 핍박하던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교회에 나와서 주님을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였으며, 복음의 승리요 교회의 승리를 의미했습니다. 이렇게 개종한 유대인들은 소아시아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가 어떤 어려움 가운에서도 믿음을 굳게 지키면 주님께서 핍박하던 사람들, 마음이 완악하고 닫힌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부흥되려면 어떤 경우에도 믿음 지키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더욱 믿음을 지키며 승리하는 교회가 됩시다. 이런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지켜주심
빌라델비아 성도들이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지켰으므로 이제 주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10절). 주님께서는 시험과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며 말씀을 순종하며 끝까지 충성하는 성도를 지켜주십니다. 시험과 환난이 심할 때 주님께 대한 믿음과 충성을 지킨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해서 믿음을 버리거나 타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주님께서 지켜주시는 기적을 결코 맛볼 수 없습니다. 그런 신앙생활은 생명이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믿음을 지킴으로 주님께서 지켜주시는 은혜를 힘입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교회, 그리하여 주님께서 지켜주시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속히 임하시는 주님
교회는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끊임없이 환난을 당한다. 믿음을 지키려면 반대와 핍박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환난 당하는 교회를 그냥 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특히 심한 환난을 당할 때 주님께서 속히 임하셔서 교회를 구원해 주십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11절)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 지키는 것 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환난을 당한다 해도 주님께서 속히 임하셔서 구원해 주실 것을 바라보면서 인내해야 합니다.
상급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렇게 충성되고 복음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헌신한 교회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빌라델비아 교회는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계속되면 인간은 연약하여 실망하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교회에게 바로 그것을 굳게 붙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상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다가 핍박이나 고통스러운 일을 당할 때 우리는 너무 힘이 들어서 뒤로 물러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상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경기하는 선수들을 보십시오. 그렇게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지 않습니까?
빌라델비아 교회는 상을 잃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핍박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이 교회를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이 교회는 다른 교회들이 다 사라져 갈 때도 소아시아 지역에 끝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1차 대전 때까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전쟁이 끝난 후 그리스로 떠났다고 합니다. 이 교회는 끝까지 믿음을 지켰으며, 선교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교회를 끝까지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주님께서 인정하시고 끝까지 사용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이기는 교회에게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12절) 이것은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가 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운 이름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세력 있고 지위가 높은 권세자들 섬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하물며 우리가 전능하신 창조주,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며 특권입니까?
주님께서는 ‘나가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빌라델비아는 지진이 잦아서 지진이 날 때마다 사람들은 이사를 다니곤 했다고 합니다. 최근에도 그 지역에 큰 지진이 일어나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고 많은 피해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켜 이기는 자에게 주님께서는 다시는 지진과 같은 환난으로 인하여 이사 다니는 일이 없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을 지킨 성도들이 장차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나가지 않고 살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무엇도 믿음을 지키고 주님께 충성을 다한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품, 은혜의 보좌 앞에서 내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를 하나님 집의 기둥으로 삼으시고, 그 기둥 위에다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님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인정하시며 사랑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된 일입니까? 이러한 상급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좋은 교회는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의 주권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교회입니다. 적은 능력으로 충성을 다하는 교회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음전파에 힘쓰는 교회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교회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교회를 환난 가운데서지켜주시고 승리하게 하시며, 하나님 나라에서 큰 상급을 얻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는 진정으로 행복한 성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좋은 교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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